장모님... 나의 장모님... (3)
그렇게 갑작스레 우리 둘의 관계가 깊어 지기는 했지만, 나보다도 그녀가 더 빨리 냉정을 찾은 것인지, 아니면 그 나이가 되면 그럴 수 있는 자제력이 있는 건지 한동안 우리는 서로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난 답답했다. 그녀를 내 여자라고 생각했는데, 그녀는 그렇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먼저 다가가고 싶었지만,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저 다행스러운 것은 그녀와 나의 투자는 계속 작지않은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것이었다. 더욱이 난 어느 누구의 구좌보다도 그녀의 구좌 관리에 정성을 다 쏟았고, 역시 정성을 들인 만큼의 결실은 거두어 지고 있었다.
그녀를 만나지는 못했지만, 난 그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기에 그녀가 날 찾기 전까지는 찾지 않았으나, 그럴수록 내 마음속의 갈증은 커져만 갔다.
왜? 라는 의구심이 내 가슴에 자꾸 커져 갈 때 불현듯 이 과장이 나에게 했던 뜻 모를 말이 생각난 건 무슨 까닭일까?…..
"그래, 몰랐구나... 아주 대단한 여자지... 후후후"
’아주 대단한 여자’ 하고 했고, 조소의 웃음도 빠뜨리지 않았었다.
혼란스러웠다.
난 서해에서의 밤을 떠올렸다. 뜨겁고 황홀한 밤이었다. 난 진실로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다. 비록 나이 차이가 있었고 어찌 보면 신분의 차이도 있지만, 그래도 난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더군다나 그녀는 내 가슴을 파고 들며 ‘사랑해요’ 라고 중얼거렸다.
머리를 크게 흔들어 봐도 역시 혼란스러웠다.
그렇게 시간은 가고 있었다.
내가 그녀를 볼 수 없는 날들이 계속되었지만, 그래도 우리의 투자는 계속되었고, 오히려 수익률은 그 이전보다 좋아졌다.
난 내가 그녀를 행복하게 해준다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했고, 그녀에게 떳떳했다.
물론 그녀에 대한 그리움은 조금씩 커져 갔지만…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갈증이 커진 어느 날이었다.
“여보세요?”
언제나 처럼 그녀의 목소리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어 경쾌하기까지 했다.
“성숩니다”
“아… 성수씨, 잘 지냈어요?…”
그녀의 목소리에 약간의 격식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대수롭게 생각되지 않았다.
“오늘 뭐합니까?”
내 목소리는 퉁명스러움으로 어색함을 감추고 있었다.
“후후… 왜요? 저녁 같이 할래요?”
그렇게 해서 근 2개월 만에 난 그녀와 다시 재회할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역시 아름다웠고 화사했다. 같이 식사를 하고 칵테일을 마시면서 우리는 일 얘기와 그간의 생활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많이 궁금했어요…”
난 조급해지고 있었다.
“나도 그랬어요…”
그런데 왜 연락이 없었단 말인가?
“오늘 시간 괜찮아요?”
그녀가 말 대신 눈을 슬쩍 감으며 고개를 끄덕여 긍정의 의사를 표현하는 것을 보자 ‘휴우~’ 하고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그날 우리는 오래 만에 서로의 사랑을 확인했다.
그녀는 여전히 많이 뜨거웠고, 날 사랑하는 마음에는 전혀 변화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난 그간의 내 염려가 기우였음을 알았고, 다시 살아나는 듯한 기쁨을 느꼈다.
그녀는 예전보다 더 적극적이었고 더 화려해졌다. 애무의 농도도 더 진해지고 사랑의 감흥도 더 깊어진 듯 했다.
내가 그녀의 몸의 구석 구석을 애무하면, 그녀는 더 오랜 시간을 내 몸의 구석 구석을 애무해 주었고, 내가 힘겨운 섹스를 끝내기 위해 사정을 하려고 하는 순간에는 날 멈추게 하고 ‘성수씨 아직 이요… 조금만 더 해줄래요?’ 라고 말하며, 빨갛게 홍조를 띄었다. 사랑스러웠다.
그날도 우리는 몇 번씩 오르가즘을 느꼈고, 난 그녀의 질 안에 내 분신들을 깊이 깊이 흘려 보냈다. 뜨겁고 질펀한 섹스였다.
오래 만의 길고 억센 섹스 후에 지친 몸을 부둥켜 안고 잠이 들었고, 환한 아침 햇살이 커튼 틈을 비집고 들어와 눈을 부시게 할 때 즈음에서야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흔히 있는 일이 아니었기에, 가슴이 뿌듯했다.
그녀는 그간의 무관심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난 그녀의 헌신적인 섹스로 인해 모든 것을 잊었다.
다시 볼 것을 약속하고 헤어지면서 난 그녀에 대한 내 감정이 그렇게 깊고 절실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는 나 자신에게 놀라고 있었다.
난 그녀에게 일부의 돈을 전환 사채에 투자 할 것과 코스닥 비중을 높일 것을 권유했고, 우리의 선택은 아주 시기 적절한 것이었다.
그녀와 내가 한 팀이 되서 투자를 한지 겨우 9 개월여 만에 그녀의 자금은 거의 2배로 불어났고, 행복해 하는 그녀를 보는 것이 나에게는 더 할 수 없는 기쁨이었다.
그녀는 나에게 필요한 게 있으면 말을 하라고 몇 번을 물어왔지만, 난 그저 그녀가 성공하고 있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고, 그녀에게 뭔 보답을 요구하는 것이 우스꽝스럽게까지 느껴졌다.
시장의 중심 축이 거래소에서 코스닥으로 넘어 가면서 시장은 많은 부작용이 생겨 나기 시작했다. 그 중에 가장 큰 것은 주가 조작이었다.
거래소 상장 기업들보다 자본금이 적고 시장에서의 인지도가 높지 않은 벤쳐 기업들이 많았기에, 이들 기업을 중심으로 펀드들의 여러 가지 형태의 작전이 횡횡 하기 시작했고, 그 와중에 기업의 내재 가치를 몇 배, 몇 십배 상회하는 주가를 형성한 기업들이 생겨났다.
우리는 의도적으로는 아니었지만, 여러 가지 사전 정보를 가지고 몇몇 기업에서 적게는 100% 가량, 많게는 500% 가량에 이르는 수익을 올리기도 하는 횡재를 하게 되었고, 그녀의 이름은 이제 시장에서 ‘큰손’으로 통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감각도 뛰어 났지만, 우리들 속어로 좋은 정보들을 많이 물어 왔고, 난 그녀가 전해준 정보를 분석하고 조합해서 적절히 포지션을 운영하고, 또 일부는 시장에 흘리는 실무 역할을 했다.
벌어 들이는 수익이 점차 기하학적인 단위가 되어가면서, 난 시장에서의 이상한 분위기를 눈치 챌 수가 있었다.
우리가 혹시 작전을 구사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었다.
난 당혹스러웠다. 사실 우리는 일종의 루머를 퍼뜨리는 걸 유효 적절하게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작전이라고 올가미를 씌우면 그렇게 매도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난 상황이 빠르게 진행되는 것을 피부로 느끼면서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송 여사님… 상황이 안 좋은 것 같아요”
전화의 반대 편에서는 그녀의 웃음 소리와 ‘괜찮아요’ 라는 말 밖에 들려오지 않았다.
난 우리의 거래 기록들을 다시 확인하고 서류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만약에 경우에 대비하기 위해서 였다.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지점장의 호출이 있었고, 대비책을 준비하라는 오더를 받았다. 기분이 참담했다.
난 내 자신의 명예와 회사의 이익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열심히 일한 것밖에는 다른 잘못이 없었다.
모든 정리를 마치고 나자, 지점장이 저녁이나 같이 하자며 손을 이끌었고 우리는 송 여사와 첫 대면을 하고 갔던 일식 집으로 향했다. 모든 서비스를 마다하고 방에서 단 둘만이 많은 술을 마셨다.
“난 김 대리가 실력도 있고, 좋은 전주도 잡고 있고 해서 일일이 체크를 안 했었는데…”
“어쩌다 그런 일에 휘말리게 됐어? 이 사람아…”
지점장은 처음부터 상황을 한쪽으로만 몰아가고 있었다.
“지점장님, 전 제가 뭘 잘못하고 있는 건지, 왜 상황이 이렇게 되었는지도 아직 모르겠어요?”
난 약간의 고집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이 사람이…. 참… 여하튼 일단 상황을 보자구”
사실 더 이상 할 말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말을 하고자 한다면 아마 밤을 새고도 모자를 것이고, 안 하려고 한다면 한 마디도 필요 없는 뻔한 얘기였다.
얼마나 많이 마셨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택시 안에서 눈을 떴을 때 이미 시침은 1시를 지나고 있었고, 어찌된 일인지 난 그녀의 청담동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빌라의 입구에서 난 망설였다. 이 시간에 그녀를 찾아가 무슨 얘기를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아니 그녀는 이 시간에 자고 있을 텐데 어떻게 깨우나… 부터가 문제였다.
난 한참을 망설이다 초인종을 눌렀고, 안에서 바로 반응이 왔다.
“접니다. 김성숩니다”
그녀는 많이 놀라는 듯했다. 얇은 잠옷에 가운을 걸쳐 입은 모습으로 현관문을 열어 주며 ‘이 시간에 어쩐 일이냐’ 고 많이 걱정하는 눈빛으로 내가 안으로 들어서는 것을 도와주고 있었다. 결코 몸을 못 가눌 정도는 아니었지만, 왠지 그녀를 보자 몸에서 힘이 빠져 나갔다.
넓은 거실의 쇼파 한쪽에 젊은 여자 하나가 의아한 눈으로 나와 그녀를 바라다 보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손님이 계시군요”
“우리 딸 이예요”
“엄마, 누구셔?’
두 모녀는 각각 다른 상황에 황당해 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딸에게 나를 간단하게 소개하고 정황을 대충 얘기하는 것 같았다. 왠지 동정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이 곳을 찾아온 내 자신이 초라하고 원망스러웠다.
“이리로 오세요. 그러지 않아도 우리도 한잔 하고 있었는데, 같이 한잔 해요”
그녀는 딸의 이해를 얻었는지 나에게 자리를 마련해주고 술을 한잔 따라 주었다.
향기가 좋은 브랜디였다. 결례를 범할 수가 없어서 차츰 정신을 집중하고 조심스럽게 행동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그녀의 딸은 그녀가 21살에 낳아서 지금은 대학 4학년이라고 했고, 불문학을 전공한다고 했다. 그녀의 딸이자 친구 같은 존재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엄마를 닮아서 키고 크고, 뽀얗고 예쁜 얼굴이었다.
“약주를 좀 하신 것 같은데…”
그녀 딸의 걱정스러운 눈빛을 대하니 괜스레 무안해졌다.
집안은 모녀만 사는 집치고는 상당히 크고 화려했지만, 뭔가 썰렁한 기운이 도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술을 마시면서 난 그녀보다도 그녀의 딸이 더 나에게 신경을 써서 배려를 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상당히 사려 깊은 여자였다. 어짜피 밤늦게 찾아 온 내가 많이 무안하고 어색할 것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가능한 배려일 것이다.
딸이 같이 있었던 관계로 업무 얘기를 꺼낼 수가 없었고, 그저 세상 돌아가는 얘기만을 주고 받으며 술잔을 기울였는데, 얘기를 하는 도중에 언뜻 언뜻 보여준 딸의 변별력과 논리력이 대단했다.
역시 대화는 딸과 내가 주도가 되어 이어졌고, 송 여사는 그저 옆에서 술만 홀짝거리며 가끔 가다 고개를 끄떡이는 정도였다. 어쩐 일인지, 딸과 대화를 하면서 내 초라했던 기분이 많이 회복되었고,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다.
굳이 방이 많으니 자고 가라는 그녀 모녀의 손을 뿌리치고 새벽 3시가 넘어서야 거리로 나왔다. 새벽 공기가 시원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짧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난 많이 포기하고 있었다. 그렇게 사는 게 인생인가 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휴가를 내고 집에서 쉬고 있는 데, 같이 일하는 지영이 한테서 전화가 왔다. 어떤 여자가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하는 데 알려줘도 되느냐고… 난 직감적으로 송 여사의 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영이의 전화를 끊자 마자 송 여사의 딸, 영미에게서 전화가 왔다.
“괜찮으세요? 어제 약주가 과하셔서 댁에 잘 들어갔나 하고 회사로 전화를 했더니, 오늘 출근을 안 하셨다고 해서…”
난 ‘괜찮다’ 고, ‘그냥 쉬고 싶어서 쉬는 거’ 라고, ‘걱정해줘서 고맙다’ 는 말로 전화를 끊으려고 했는데, 그녀가 먼저 괜찮으면 저녁이나 같이 하지 않겠냐고 얘기를 꺼냈다.
그러지 않아도 하루 종일 굶다시피 해서 허기가 심했다.
간편한 차림으로 대학로의 ‘시분초’로 향했다.
그녀는 학생답게 캐주얼한 차림이었지만, 어머니의 피를 받아서 그런지 아니면 내가 그렇게 선입관을 갖고 있어서 인지, 상당히 세련 되고 조금 과하게 말한다면, 요염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어머니와 나와의 관계가 보통의 고객과 증권사 직원의 관계가 아니었기 때문인지, 난 그녀를 대하면서 여간 어색하고 조심스러운 게 아니었으나, 그녀는 나와는 입장이 달랐던 거 같았다.
“성수씨라고 불러야 하나요, 아니면 성수 오빠라고 불러야 하나요?”
“편한 대로 불러요”
난 그녀를 대하면서도 그녀의 어머니의 영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마치 그녀가 매 순간 그녀의 딸과 함께 하는 것처럼…
어제, 아니 정확하게 표현하면, 그날 새벽에 그녀의 집에서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나온 내 입장에서는 그녀가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남녀 상열지사를 엮어 내는 청춘의 남녀처럼 긴장이 감도는 그런 관계는 아니었다.
우리는 그저 저녁을 먹고 커피를 마시는 그런 평범한 식사 이상을 하지 못했다.
“혹시 술 한잔 괜찮으시겠어요?”
그녀는 내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어봤지만, 난 오히려 그녀의 그런 조심스러움이 부담스러웠다.
그녀의 요청대로 우리는 자리를 옮겨 술자리를 가졌고, 그날 새벽과는 다르게 그녀는 상당한 주량을 과시했다.
얼마나 술을 마셨을까? 양주 한 병이 거의 바닥을 드러내었을 때 즈음에 그녀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우리 엄마랑 애인 사이신가요?”
참 난감한 질문이었다. 그 자리를 나오면서 그런 류의 질문이 있을 지도 모른다고 예상을 안한 것은 아니었지만, 막상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그녀에게 그런 질문을 받자 난처해 지고 말았다.
“글쎄… 난 영미 어머니를 많이 좋아하고 있지… 그런데, 어머니는 내가 별로 인가봐…”
궁색한 대답이었다.
“아니요… 엄마도 아저씨를 많이 좋아하세요”
“단지…”
난 그녀의 나머지 말을 듣고 싶었다. 그건 나에게 매우 중요한 말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끝내 말을 잇지 않았다.
난 그녀를 쳐다보며 말을 끝내라는 무언의 암시를 주었지만, 그녀의 닫혀진 입술은 그저 술을 마실 때만 조금씩 열릴 뿐이었다.
많은 말들이 그녀의 꼭 다문 입술을 헤집고 나올 것 같았다…
난 답답했다. 그녀를 내 여자라고 생각했는데, 그녀는 그렇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먼저 다가가고 싶었지만,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저 다행스러운 것은 그녀와 나의 투자는 계속 작지않은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것이었다. 더욱이 난 어느 누구의 구좌보다도 그녀의 구좌 관리에 정성을 다 쏟았고, 역시 정성을 들인 만큼의 결실은 거두어 지고 있었다.
그녀를 만나지는 못했지만, 난 그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기에 그녀가 날 찾기 전까지는 찾지 않았으나, 그럴수록 내 마음속의 갈증은 커져만 갔다.
왜? 라는 의구심이 내 가슴에 자꾸 커져 갈 때 불현듯 이 과장이 나에게 했던 뜻 모를 말이 생각난 건 무슨 까닭일까?…..
"그래, 몰랐구나... 아주 대단한 여자지... 후후후"
’아주 대단한 여자’ 하고 했고, 조소의 웃음도 빠뜨리지 않았었다.
혼란스러웠다.
난 서해에서의 밤을 떠올렸다. 뜨겁고 황홀한 밤이었다. 난 진실로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다. 비록 나이 차이가 있었고 어찌 보면 신분의 차이도 있지만, 그래도 난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더군다나 그녀는 내 가슴을 파고 들며 ‘사랑해요’ 라고 중얼거렸다.
머리를 크게 흔들어 봐도 역시 혼란스러웠다.
그렇게 시간은 가고 있었다.
내가 그녀를 볼 수 없는 날들이 계속되었지만, 그래도 우리의 투자는 계속되었고, 오히려 수익률은 그 이전보다 좋아졌다.
난 내가 그녀를 행복하게 해준다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했고, 그녀에게 떳떳했다.
물론 그녀에 대한 그리움은 조금씩 커져 갔지만…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갈증이 커진 어느 날이었다.
“여보세요?”
언제나 처럼 그녀의 목소리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어 경쾌하기까지 했다.
“성숩니다”
“아… 성수씨, 잘 지냈어요?…”
그녀의 목소리에 약간의 격식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대수롭게 생각되지 않았다.
“오늘 뭐합니까?”
내 목소리는 퉁명스러움으로 어색함을 감추고 있었다.
“후후… 왜요? 저녁 같이 할래요?”
그렇게 해서 근 2개월 만에 난 그녀와 다시 재회할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역시 아름다웠고 화사했다. 같이 식사를 하고 칵테일을 마시면서 우리는 일 얘기와 그간의 생활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많이 궁금했어요…”
난 조급해지고 있었다.
“나도 그랬어요…”
그런데 왜 연락이 없었단 말인가?
“오늘 시간 괜찮아요?”
그녀가 말 대신 눈을 슬쩍 감으며 고개를 끄덕여 긍정의 의사를 표현하는 것을 보자 ‘휴우~’ 하고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그날 우리는 오래 만에 서로의 사랑을 확인했다.
그녀는 여전히 많이 뜨거웠고, 날 사랑하는 마음에는 전혀 변화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난 그간의 내 염려가 기우였음을 알았고, 다시 살아나는 듯한 기쁨을 느꼈다.
그녀는 예전보다 더 적극적이었고 더 화려해졌다. 애무의 농도도 더 진해지고 사랑의 감흥도 더 깊어진 듯 했다.
내가 그녀의 몸의 구석 구석을 애무하면, 그녀는 더 오랜 시간을 내 몸의 구석 구석을 애무해 주었고, 내가 힘겨운 섹스를 끝내기 위해 사정을 하려고 하는 순간에는 날 멈추게 하고 ‘성수씨 아직 이요… 조금만 더 해줄래요?’ 라고 말하며, 빨갛게 홍조를 띄었다. 사랑스러웠다.
그날도 우리는 몇 번씩 오르가즘을 느꼈고, 난 그녀의 질 안에 내 분신들을 깊이 깊이 흘려 보냈다. 뜨겁고 질펀한 섹스였다.
오래 만의 길고 억센 섹스 후에 지친 몸을 부둥켜 안고 잠이 들었고, 환한 아침 햇살이 커튼 틈을 비집고 들어와 눈을 부시게 할 때 즈음에서야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흔히 있는 일이 아니었기에, 가슴이 뿌듯했다.
그녀는 그간의 무관심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난 그녀의 헌신적인 섹스로 인해 모든 것을 잊었다.
다시 볼 것을 약속하고 헤어지면서 난 그녀에 대한 내 감정이 그렇게 깊고 절실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는 나 자신에게 놀라고 있었다.
난 그녀에게 일부의 돈을 전환 사채에 투자 할 것과 코스닥 비중을 높일 것을 권유했고, 우리의 선택은 아주 시기 적절한 것이었다.
그녀와 내가 한 팀이 되서 투자를 한지 겨우 9 개월여 만에 그녀의 자금은 거의 2배로 불어났고, 행복해 하는 그녀를 보는 것이 나에게는 더 할 수 없는 기쁨이었다.
그녀는 나에게 필요한 게 있으면 말을 하라고 몇 번을 물어왔지만, 난 그저 그녀가 성공하고 있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고, 그녀에게 뭔 보답을 요구하는 것이 우스꽝스럽게까지 느껴졌다.
시장의 중심 축이 거래소에서 코스닥으로 넘어 가면서 시장은 많은 부작용이 생겨 나기 시작했다. 그 중에 가장 큰 것은 주가 조작이었다.
거래소 상장 기업들보다 자본금이 적고 시장에서의 인지도가 높지 않은 벤쳐 기업들이 많았기에, 이들 기업을 중심으로 펀드들의 여러 가지 형태의 작전이 횡횡 하기 시작했고, 그 와중에 기업의 내재 가치를 몇 배, 몇 십배 상회하는 주가를 형성한 기업들이 생겨났다.
우리는 의도적으로는 아니었지만, 여러 가지 사전 정보를 가지고 몇몇 기업에서 적게는 100% 가량, 많게는 500% 가량에 이르는 수익을 올리기도 하는 횡재를 하게 되었고, 그녀의 이름은 이제 시장에서 ‘큰손’으로 통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감각도 뛰어 났지만, 우리들 속어로 좋은 정보들을 많이 물어 왔고, 난 그녀가 전해준 정보를 분석하고 조합해서 적절히 포지션을 운영하고, 또 일부는 시장에 흘리는 실무 역할을 했다.
벌어 들이는 수익이 점차 기하학적인 단위가 되어가면서, 난 시장에서의 이상한 분위기를 눈치 챌 수가 있었다.
우리가 혹시 작전을 구사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었다.
난 당혹스러웠다. 사실 우리는 일종의 루머를 퍼뜨리는 걸 유효 적절하게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작전이라고 올가미를 씌우면 그렇게 매도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난 상황이 빠르게 진행되는 것을 피부로 느끼면서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송 여사님… 상황이 안 좋은 것 같아요”
전화의 반대 편에서는 그녀의 웃음 소리와 ‘괜찮아요’ 라는 말 밖에 들려오지 않았다.
난 우리의 거래 기록들을 다시 확인하고 서류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만약에 경우에 대비하기 위해서 였다.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지점장의 호출이 있었고, 대비책을 준비하라는 오더를 받았다. 기분이 참담했다.
난 내 자신의 명예와 회사의 이익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열심히 일한 것밖에는 다른 잘못이 없었다.
모든 정리를 마치고 나자, 지점장이 저녁이나 같이 하자며 손을 이끌었고 우리는 송 여사와 첫 대면을 하고 갔던 일식 집으로 향했다. 모든 서비스를 마다하고 방에서 단 둘만이 많은 술을 마셨다.
“난 김 대리가 실력도 있고, 좋은 전주도 잡고 있고 해서 일일이 체크를 안 했었는데…”
“어쩌다 그런 일에 휘말리게 됐어? 이 사람아…”
지점장은 처음부터 상황을 한쪽으로만 몰아가고 있었다.
“지점장님, 전 제가 뭘 잘못하고 있는 건지, 왜 상황이 이렇게 되었는지도 아직 모르겠어요?”
난 약간의 고집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이 사람이…. 참… 여하튼 일단 상황을 보자구”
사실 더 이상 할 말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말을 하고자 한다면 아마 밤을 새고도 모자를 것이고, 안 하려고 한다면 한 마디도 필요 없는 뻔한 얘기였다.
얼마나 많이 마셨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택시 안에서 눈을 떴을 때 이미 시침은 1시를 지나고 있었고, 어찌된 일인지 난 그녀의 청담동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빌라의 입구에서 난 망설였다. 이 시간에 그녀를 찾아가 무슨 얘기를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아니 그녀는 이 시간에 자고 있을 텐데 어떻게 깨우나… 부터가 문제였다.
난 한참을 망설이다 초인종을 눌렀고, 안에서 바로 반응이 왔다.
“접니다. 김성숩니다”
그녀는 많이 놀라는 듯했다. 얇은 잠옷에 가운을 걸쳐 입은 모습으로 현관문을 열어 주며 ‘이 시간에 어쩐 일이냐’ 고 많이 걱정하는 눈빛으로 내가 안으로 들어서는 것을 도와주고 있었다. 결코 몸을 못 가눌 정도는 아니었지만, 왠지 그녀를 보자 몸에서 힘이 빠져 나갔다.
넓은 거실의 쇼파 한쪽에 젊은 여자 하나가 의아한 눈으로 나와 그녀를 바라다 보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손님이 계시군요”
“우리 딸 이예요”
“엄마, 누구셔?’
두 모녀는 각각 다른 상황에 황당해 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딸에게 나를 간단하게 소개하고 정황을 대충 얘기하는 것 같았다. 왠지 동정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이 곳을 찾아온 내 자신이 초라하고 원망스러웠다.
“이리로 오세요. 그러지 않아도 우리도 한잔 하고 있었는데, 같이 한잔 해요”
그녀는 딸의 이해를 얻었는지 나에게 자리를 마련해주고 술을 한잔 따라 주었다.
향기가 좋은 브랜디였다. 결례를 범할 수가 없어서 차츰 정신을 집중하고 조심스럽게 행동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그녀의 딸은 그녀가 21살에 낳아서 지금은 대학 4학년이라고 했고, 불문학을 전공한다고 했다. 그녀의 딸이자 친구 같은 존재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엄마를 닮아서 키고 크고, 뽀얗고 예쁜 얼굴이었다.
“약주를 좀 하신 것 같은데…”
그녀 딸의 걱정스러운 눈빛을 대하니 괜스레 무안해졌다.
집안은 모녀만 사는 집치고는 상당히 크고 화려했지만, 뭔가 썰렁한 기운이 도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술을 마시면서 난 그녀보다도 그녀의 딸이 더 나에게 신경을 써서 배려를 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상당히 사려 깊은 여자였다. 어짜피 밤늦게 찾아 온 내가 많이 무안하고 어색할 것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가능한 배려일 것이다.
딸이 같이 있었던 관계로 업무 얘기를 꺼낼 수가 없었고, 그저 세상 돌아가는 얘기만을 주고 받으며 술잔을 기울였는데, 얘기를 하는 도중에 언뜻 언뜻 보여준 딸의 변별력과 논리력이 대단했다.
역시 대화는 딸과 내가 주도가 되어 이어졌고, 송 여사는 그저 옆에서 술만 홀짝거리며 가끔 가다 고개를 끄떡이는 정도였다. 어쩐 일인지, 딸과 대화를 하면서 내 초라했던 기분이 많이 회복되었고,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다.
굳이 방이 많으니 자고 가라는 그녀 모녀의 손을 뿌리치고 새벽 3시가 넘어서야 거리로 나왔다. 새벽 공기가 시원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짧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난 많이 포기하고 있었다. 그렇게 사는 게 인생인가 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휴가를 내고 집에서 쉬고 있는 데, 같이 일하는 지영이 한테서 전화가 왔다. 어떤 여자가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하는 데 알려줘도 되느냐고… 난 직감적으로 송 여사의 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영이의 전화를 끊자 마자 송 여사의 딸, 영미에게서 전화가 왔다.
“괜찮으세요? 어제 약주가 과하셔서 댁에 잘 들어갔나 하고 회사로 전화를 했더니, 오늘 출근을 안 하셨다고 해서…”
난 ‘괜찮다’ 고, ‘그냥 쉬고 싶어서 쉬는 거’ 라고, ‘걱정해줘서 고맙다’ 는 말로 전화를 끊으려고 했는데, 그녀가 먼저 괜찮으면 저녁이나 같이 하지 않겠냐고 얘기를 꺼냈다.
그러지 않아도 하루 종일 굶다시피 해서 허기가 심했다.
간편한 차림으로 대학로의 ‘시분초’로 향했다.
그녀는 학생답게 캐주얼한 차림이었지만, 어머니의 피를 받아서 그런지 아니면 내가 그렇게 선입관을 갖고 있어서 인지, 상당히 세련 되고 조금 과하게 말한다면, 요염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어머니와 나와의 관계가 보통의 고객과 증권사 직원의 관계가 아니었기 때문인지, 난 그녀를 대하면서 여간 어색하고 조심스러운 게 아니었으나, 그녀는 나와는 입장이 달랐던 거 같았다.
“성수씨라고 불러야 하나요, 아니면 성수 오빠라고 불러야 하나요?”
“편한 대로 불러요”
난 그녀를 대하면서도 그녀의 어머니의 영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마치 그녀가 매 순간 그녀의 딸과 함께 하는 것처럼…
어제, 아니 정확하게 표현하면, 그날 새벽에 그녀의 집에서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나온 내 입장에서는 그녀가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남녀 상열지사를 엮어 내는 청춘의 남녀처럼 긴장이 감도는 그런 관계는 아니었다.
우리는 그저 저녁을 먹고 커피를 마시는 그런 평범한 식사 이상을 하지 못했다.
“혹시 술 한잔 괜찮으시겠어요?”
그녀는 내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어봤지만, 난 오히려 그녀의 그런 조심스러움이 부담스러웠다.
그녀의 요청대로 우리는 자리를 옮겨 술자리를 가졌고, 그날 새벽과는 다르게 그녀는 상당한 주량을 과시했다.
얼마나 술을 마셨을까? 양주 한 병이 거의 바닥을 드러내었을 때 즈음에 그녀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우리 엄마랑 애인 사이신가요?”
참 난감한 질문이었다. 그 자리를 나오면서 그런 류의 질문이 있을 지도 모른다고 예상을 안한 것은 아니었지만, 막상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그녀에게 그런 질문을 받자 난처해 지고 말았다.
“글쎄… 난 영미 어머니를 많이 좋아하고 있지… 그런데, 어머니는 내가 별로 인가봐…”
궁색한 대답이었다.
“아니요… 엄마도 아저씨를 많이 좋아하세요”
“단지…”
난 그녀의 나머지 말을 듣고 싶었다. 그건 나에게 매우 중요한 말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끝내 말을 잇지 않았다.
난 그녀를 쳐다보며 말을 끝내라는 무언의 암시를 주었지만, 그녀의 닫혀진 입술은 그저 술을 마실 때만 조금씩 열릴 뿐이었다.
많은 말들이 그녀의 꼭 다문 입술을 헤집고 나올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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