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 - 28.1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그 순간이 이 녀석으로 하여금 다시금 떠올랐다. 대군장 이후 처음으로 영생을 바라는 자.. 치우는 마치 지금 대군장을 바라보고 있는듯 분노하며 2층에 있는 남자를 노려보았다.
『아아.. 그렇게 흥분해도 소용없다고.. 그 결계는 너를 위해서 특별히... 』
후카츠는 더이상 말을 잊지 못했다. 분노로 자신을 향한 살의를 비춰보이며 앞으로 발을 내딛는 치우의 발이 너무도 쉽게 결계밖으로 빠져나와버렸기 때문이었다.
『이.. 이런..?? 어떻게 이런 일이..?? 』
후카츠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결계라는 것은 어떤 목적으로 펼치느냐에 따라 그 쓰임이 달라진다. 그렇기에 결계를 제대로 펼치려면 결계에 대한 이해는 물론 지식까지 충분히 갖추어야하고 결계를 사용할 대상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하면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비록.. 문서나 여러가지 루트로 도깨비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고는 하나 그 정보들이 모두 정확한 사실일지는 장담할 수 없었고 설사 사실이라하더라도 그것만으로 도깨비의 성향이나 힘을 단정짓기는 무리가 있었다.
자칫 잘못하면 어렵게 찿아낸 그것도 우연치않은 기회가 아니었다면 마주할 기회도 없었을지 모르는 도깨비를 아예 소멸시키거나 없애버릴지도 모르는 일이었고 그와반대로 애써 펼쳐놓은 결계를 도깨비가 허무하게 부셔버리고 나올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결계로 상대를 가둬두거나 어찌하기에는 상대에 대한 정보가 너무 없었다. 그렇기에 후카츠는 머리를 굴려 하나의 방법을 찿아냈다.
음기자체를 봉쇄해버린다면...?
어차피 도깨비의 능력이나 힘이 어떻든간에 결국에는 하나의 귀일 뿐이었다. 귀는 근본적으로 음기로 움직이는 것들이었고 그렇다는건 음기자체를 결계안에 완전히 가둬놓을 수만 있다면 음기를 근본으로 하는 귀 역시 결계안에 갖혀있을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후카츠는 음기를 완벽하게 봉쇄해놓은 결계를 어렵게 공을 들여 펼쳐놓았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있는 도깨비는 결계따위는 아무렇지도 않은듯 결계밖으로 걸어나오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그 결계를 내부에서 힘으로 부술수는 있다. 결계를 이루고있는 힘보다 더욱 강한 힘으로 내부에서 뚫고 나올 수는 있는 일이었기에 후카츠는 최대한 도깨비의 약점이라고 생각되는 백마의 피나 이런것까지 사용해서 나름대로 최고로 견고한 결계를 만들어놨다. 그런데.. 이 도깨비는 부수는 것도 아니고 뚫고 나오는 것도 아닌 마치 그런 결계따위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하는 것처럼 그대로 결계밖으로 걸어나오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는건.....?
『마.. 말도 안돼.. 너.. 너는 귀가 아니란 말이냐??!! 』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일이 흘러가자 후카츠는 당황했다. 충분히 가둬놓을 수 있을거라 생각한 도깨비가 아무런 문제도 아니라는듯 결계밖으로 걸어나오고 있었고 걸어나온 도깨비는 지금 살의를 가득담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주..죽는다..."
후카츠의 머리속에 죽음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죽음이라는 단어는 공포를 불러일으키고 죽음이 불러온 공포는 후카츠의 온 몸을 마비시키고 있었다.
『죽어라..!! 』
치우가 한 손을 후카츠를 향해 내뻗었다.
치우가 한 손을 내뻗자 후카츠의 몸이 공중으로 들어올려졌다. 마치 치우가 허공을 격하고 후카츠를 잡아 들어올리고 있는듯 후카츠는 무형의 힘에의해 공중으로 들어올려졌고 치우가 무엇을 내던지듯 팔을 한쪽으로 휙 쳐내자 후카츠의 몸은 그 방향으로 날아가 벽에 부딪치며 바닥으로 떨어져내렸다.
『이번엔 확실하게 죽여주마..!! 』
그대로 후카츠의 목숨을 끊어버릴듯한 기세로 후카츠에게 다가가던 치우가 갑자기 그 자리에서 멈춰섰다.
"현지....!!"
후카츠에게 다가가던 치우에게 현지의 느낌이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결계의 영향때문인지 결계안으로 들어서면서 끊어져버렸던 현지가 치우에게 느껴져왔다.
잠시 후카츠를 노려보고 있던 치우가 방향을 틀었다. 이런 놈따위 죽여버리는 것은 언제라도 가능하다. 일단은 현지의 안전을 확보하는게 더 중요하다. 치우의 판단이었다. 그 판단에 따라 현지의 기운이 느껴지는 2층쪽을 향해 치우는 빠르게 몸을 날렸다.
콰앙...!!!!
엄청난 굉금과 함께 별장의 2층에 있는 방문 하나가 부셔지듯 제각에서 벗어나며 열렸다. 부셔져버린 문 앞 그 앞에 치우가 서있었다.
『뭐...뭐야??!! 』
침대가 놓여져 있는 넓은 방..
침대 앞에서 바지를 입고 있던 한 남자가 놀란듯 치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하지만 치우의 눈에는 그 남자보다 남자에 가려져있는 침대에 있는 여자의 모습만이 들어왔다.
『으읔... 』
쿠웅...
귀찮은듯 치우하 한 손을 남자를 향해 뻗어낸뒤 옆으로 밀쳐버리는듯한 제스쳐를 하자 남자는 무엇인가에 밀리는듯한 모습으로 한쪽 벽으로 나가떨어져버렸다.
『치..치우..? 』
치우의 눈에 들어온 여자는 분명 현지였다. 놀란듯 동그랗게 커진눈으로 치우를 바라보고 있는 여자.. 알몸으로 본능적으로 가슴을 가리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여자.. 얼굴에 정액인듯 보이는 허연 물체를 뒤집어쓰고 금방이라도 눈물이 새어나올듯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여자.. 분명.. 현지였다.
기숙사에서 그 일을 당한지 몇 일이 채 지나지도 않았건만.. 또다시 현지에게 이런 일이 생긴 것을 직접 두 눈으로 보고있자니 미칠것만 같은 심정이었다.
『죽여버린다!! 』
치우가 한쪽에 쓰러져있던 지후를 들어 다른 쪽 벽을 향해 집어던지듯 날려버렸다.
『꺄악..!! 』
지후가 또다시 다른쪽 벽에 부딪치며 바닥으로 떨어져내리자 현지가 비명소리를 질러냈다. 치우는 비명을 지르며 침대에서 일어난 현지의 행동에 커다란 망치로 뒷통수라도 맞은듯이 멍한 기분이 되어버렸다.
비명을 지르며 튕겨오르듯 침대에서 일어난 현지가 다름아닌 자신이 방금 벽을 향해 집어던졌던 남자에게로 달려나갔기 때문이었다.
『선배.. 선배... 괘..괜찮아요? 선배.. 치우..!! 너 무슨 짓이야!! 』
『선배는... 』
치우의 입에서 나온 "그 놈은..." 이라는 말..
그리고 현지의 입에서 나온 "선배는...." 이라는 말..
그 두 말이 동시에 치우와 현지의 입에서 나왔다.
『사람이 아니야.... 』
아주 약간의 시간차이로 그 이후에 나온 말은 치우쪽이 빨랐다. 지금 현지의 앞에 있는 놈.. 이 놈.. 분명 사람이 아니다. 전에는 잘 모르고 지나쳤지만 지금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거기다 조금전에 봤던 놈.. 그리고 이 놈.. 그리고 이곳에 흐르는 기운.. 기숙사에서 일어났던 모든일들.. 이 놈들 짓임이 분명했다. 그것을 말하려던 치우의 귀에 현지의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야!! 』
현지의 목소리가 치우에게 전해져오자 치우는 더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뭔가 잘못되었다. 치우가 현지에게서 떠나 온 날까지만해도 현지의 마음속에 이 남자는 없었다. 생각하고 어쩌고 할 것도 없이 현지가 이 놈들에게 속고 있는 것이었다.
『선배를 죽이려면.. 차라리 날 죽여!! 』
그런데...
눈물과 정액이 범벅이 되어서 자신에게 소리치고 있는 현지의 모습....
치우의 눈에 현지의 모습위로 세아의 모습이 겹쳐지는듯한 느낌이 들어왔다. 이곳에 오기전에 떠올랐던 과거의 기억때문인가..? 아니면 그때와 비슷한 상황이 다시 연출이 되어서인가..? 왜 현지의 모습위로 세아의 모습이 겹치는 거지..?
오래전 세아와 지아가 세상을 떠난 그 날 이후.. 지금까지 지아를 잊지못하고 지아를 떠올리며 그리워했지만 딱히 세아를 떠올려본 적은 없다. 세아의 기억은 떠올리기 싫었다. 지아라면 몰라도.. 세아가 떠오를때면 항상 나쁜기억도 함께 떠올랐으니까..
너무 오랫동안 잊고있어서인지 세아의 얼굴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왜그런지 현지의 얼굴.. 세아와 비슷한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왔다.
"설마... 현지가...?"
설마... 설마... 현지가.. 세아란 말인가?
지금껏 현지를 보고 떠올랐던 지아에 대한 감정들... 그것들이 모두 무의식중에 기억하지 못하고 있던 세아와 닮은 현지의 얼굴때문이었다는 건가? 그렇다면.. 지금까지 기억하지 못하는 세아가 치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깊은 기억속에 묻어두려했던 지아에 대한 기억과 감정을 자극했고 그것이 치우에게 현지를 볼수록 지아를 떠올리게 만들고 있었다는 건가?
세아가 동정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세아때문에 지아가 죽었다...
그래서 세아에 대한 기억은 언제나 동정과 미움과 함께 떠올랐다.
지아 이후에 처음으로 마음이 끌리는 아이가 나타났는데....
그게.. 세아였단 말인가?
언젠가... 현지를 보며.. 지아에게 미안한 마음을 마음속으로 전한 적이 있었다..
세아때문에... 지아에게 미안해하고... 지아에게 이해해달라 마음속으로 말했던 거란 말인가?
『네가.. 네가.. 돌아와서.. 기뻤는데... 사실인거였던거야? 은경이가 했던 말.. 후카츠라는 사람이 했던 말.. 모두 사실이었던거야? 』
지금껏 치우가 싸우는 모습이나 공격적인 모습을 본적이 없는.. 단지 장난기 많은 친구처럼만 생각했던 현지로서는 지금 치우의 모습이 부정적으로 다가오는 것이 무리도 아닐것이었다. 더구나 기숙사에서 그런 일을 당했으니 치우의 공격적인 모습이 그들과 치우를 동일하게 다가올 수도 있는 일이었다.
『아니잖아... 치우 넌 그런 애가 아니잖아... 이러지마.. 응.. 제발.. 』
현지를 바라보고 있는 치우의 감정은 복잡했다. 단지 그렇게 느껴지는 것 뿐인것일까..? 아니면 정말로 현지가 세아인 것일까..? 지금까지 현지에게 느꼈던 좋은 감정 그리고 현지를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한 미안함과 자책감 그리고 안타까움이 떠오르는것과 동시에 사기꾼에게 전 재산을 날려버린 사람이 자신의 앞에 나타난 사기꾼을 보고 있는것과도 같이 속았다는 느낌도 들어오고 다른 한편으로는 분노같은 감정도 느껴지고 있었다.
결국에는 지아를 그렇게 만든 세아가 떠오름으로해서 분노와 같은 감정이 드는건지 아니면 좋아하는 현지가 자신이 아닌 다른 남자를 감싸고 도는 것때문에 드는 감정인지 묘한 배신감 같은 것도 들어오고 있었다.
어차피 이 자들이 무얼하든 치우와는 상관 없는 일... 현지가 이 놈들에게 무슨 일을 당하는 거라면 몰라도.. 저런 상황이면.. 그냥 이대로 떠나버릴까..?
현지가 속고있는 것은 분명 하지만.. 그것이 현지의 선택이라면.. 그것또한 치우가 뭐라할만한 성질의 것은 아닐테니까...
그런 생각이 치우에게 들어왔다. 그래.. 그냥 이대로 떠나버리면 되는거야...
그렇게 이 자리를 그리고 현지를 떠나버리면 모든게 끝난다. 해피엔딩도 새드엔딩도 없다. 그냥 예전의 치우로 돌아가는 것뿐이었다. 그러면 되는 거였다.
그런데.. 왜.. 이렇게 발길이 안떨어지는 거지..?
저 놈들에게 현지가 속아넘어가 앞으로 무슨일을 당할지 걱정때문일까..?
그런 걱정때문이라면.. 정말.. 현지를 많이 좋아하고 있는건가..?
혹시.. 세아에 대한 감정때문에 그와 겹쳐지는 현지의 모습때문에 그 때문에 현지가 어떻게 되도 상관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너무나 많은 생각들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그 많은 생각들이 수도없이 머리속에서 얽히고 설키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 현지가 어린시절에 치우와 만났던 기억이 떠올라왔다.
다 죽어가는 몸으로 치우와의 약속을 지키기위해 흠뻑 비를 맞고 성황당으로 찿아왔던 현지.. 그때의 기억이 또 다른 기억을 불러오기 시작했다. 아주 오래된 기억.. 세아와 지아의 어릴때의 좋았던 기억.. 언제나 지아에게 헌신적이면서도 자신의 모든 것을 지아에게 주려고 하던 세아의 모습...
그 기억의 마지막에.. 지아의 말도 떠올랐다.
『세아... 그 아이를... 미워하지 말아줘... 그 아이를.... 지켜줘.... 』
이런 옹졸한...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주겠다 스스로에게 다짐했으면서...
그게 아니라도... 만약 현지가 세아라면.. 지아의 부탁도 있었다. 비록.. 그 당시에는 어쩔 사이도 없이 세아가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길을 선택했지만.. 지금은.. 지켜줄 수도 있다... 그게.. 지아가 바라는 거라면... 아니.. 어쩌면 지금은 치우 자신도 바라는 일일지도 몰랐다.
『현지야... 비켜... 』
현지가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이고 있을 그 때..
현지의 뒤쪽에서 정신을 차린 지후는 머리를 굴리며 현재의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처음 보는 모습이지만... 지금 현지와 대화를 하고 있는 녀석은 분명 후카츠가 말한 도깨비라는 녀석임이 분명했다. 후카츠가 도깨비를 맞이할 준비는 끝났다고 말했는데 이 녀석이 여기까지 왔다는 것.. 더구나 이 상황이 되도록 후카츠에게서 아무런 반응이 없다는 것.. 그것은 이미 후카츠도 이 녀석에게 당했다는 이야기...
"찿아야 해.. 여기서 벗어날 방법을 찿아야해..."
이대로라면 저 녀석에게 죽는다. 어떻게든 여기서 벗어나야만 한다.
하지만 어떻게..? 후카츠조차도 실패한 녀석인데 어떻게 여기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렇게 여기서 빠져나갈 궁리를 하고 있던 지후의 귀에 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냐... 치우 너가 잘못 알고 있는거야.. 그럴리가 없어.. 』
머리를 굴리고 있던 지후의 머리속에서 번쩍하고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다. 스스로에게도 이런게 과연 가능할까? 싶은 생각이 들어왔지만 지금으로서는 뾰족히 생각나는 방법도 없었고 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면 무엇이라도 해봐야만 했다.
『저 놈 말.. 믿지마...!! 저 녀석은 네가 필요할 뿐이야.. 날 믿어..!! 』
지후가 현지와 치우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도깨비라는 녀석이 무엇때문에 현지를 보호하려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분명 어떤 이유가 있을것이고 이렇게 현지를 달래고 있는 것을 보면 최소한 아직 도깨비라는 녀석에게 현지는 지금 죽어서는 안될 인물이라는 것이 지후의 판단이었다.
만약.. 도깨비라는 녀석이 지금 현지를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현지를 잘 이용하면 어쩌면 지금 상황은 벗어날 수도 있으리라는 것이 지후가 간신히 떠올린 생각이었다.
『도깨비니 뭐니 해도 어차피 귀신일 뿐이야.. 넌 인간이잖아.. 내 말을 들어.. 그리고 저 녀석에게 물러나라고 말해.. 』
머리속이 복잡한 것은 현지도 마찬가지였다.
치우는 믿는다.. 다시 꼭 와주었으면 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치우가 지후선배를 공격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지후선배의 말이 거짓인것 같은 생각이 드는건 아니었다.
치우도.. 지후선배도.. 모두 믿지만.. 지금 둘은 서로 대립하고 있었다. 어찌해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 치우는 지후선배를 죽이려들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걸 그대로 두고볼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최소한 누가 죽거나 하는 일은 막아야만 했다.
『치우야.. 부탁이야.. 날.. 믿는다면.. 지금은 그냥.. 그냥.. 이대로.. 물러나줘.. 』
현지의 말에 치우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묘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는 가운데 잠시동안 아무런 대답도 어떤 행동도 하지않고있던 치우가 입을 열었다.
『미안해.. 현지야 그럴수는 없어.. 나중에.. 모두.. 이야기해줄게.. 』
『치.. 치우야 안돼!! 』
결심한듯 치우가 현지와 지후가 있는 쪽으로 다가서려했다. 장난기가 좀 지나친 면이 있긴 했어도 지금껏 딱히 치우가 현지의 뜻에 어긋나는 행동은 보인적이 없었다. 어쩌면 그래서 조금은 치우가 그대로 물러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금.. 치우는 현지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지후를 죽여야만 하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현지는 당황했다. 어떻게든 치우를 말려야만 했다.
『다..다가오지마!!! 』
그 때...
지후가 소리쳤다.
그리고 그 소리에 다가가려던 치우가 그 자리에 멈춰섰다.
『다...다가오면 이 년 목을 그어버릴거야!! 』
언제 꺼내들었는지 지후의 손에는 날카로운 칼이 쥐어져 있었고 그 칼의 칼날은 금방이라도 베어버릴듯 현지의 목을 겨누고 있었다.
『흐흐흐.. 그래.. 역시나 맞았어 으흐흐흐 』
『서.. 선배...? 』
음흉한 웃음이 지후의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현지는 지후의 행동에 놀라고 있었다. 자신에게 칼을 들이대고 있는 것도 그렇고 자신을 "이 년"이라고 부른것에도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흐흐흐 역시 네 놈에겐 이 계집년이 아직 필요한 거지? 이 계집이 죽으면 안돼는 거지? 흐흐흐... 』
현지는 멍한 기분이 들어왔다. 도대체 지금 지후선배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현지를 이해해줄 수 있는.. 그리고 현지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는데 지금 그 사람이 자신은 사람이 아닌 귀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모든걸 알려주지.. 도깨빈지 뭔지.. 저 놈 말이 모두 사실이다.. 은경이도 기숙사 사건도 모두 우리가 한 일이야 크크크 』
기숙사..? 그럼.. 은경이도... 그때 치우와 은경이를 만나기 위해 들어갔을때 현지를 공격했던 것도.. 모두 지후선배가??
『은경이 그 년도 참 불쌍한 년이지.. 원래는 너였어.. 은경이가 날 좋아하지 않았으면 아니 네가 은경이를 생각해준답시고 나와 은경이 사이에서 빠져주지만 않았어도 기숙사사건을 일으킨건 은경이가 아니라 바로 너였을거야 크크 』
"나.. 대신 은경이가..?"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아니 알아 들을 수는 있는데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왠지.. 선영언니의 병원에 있을때 왔던 지후의 전화.. 현지가 기숙사에 있는 것을 알고 있는 일.. 그런 단편적인 기억조각들이 지후의 말에따라 하나의 완성된 그림을 향해 모아지고 있는듯한 느낌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그럼... 모든 일이... 선배가 꾸민...? 』
대답을 한 것은 지후가 아니었다.
어느새인가 방문앞에와서 서있던 후카츠가 한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