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 - 28.3
희연이 눈을 떴다.
유니폼을 입은 승무원이 중앙에 길게 이어진 통로를 따라 희연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어디 불편하신 곳이라도..? 』
괜찮다고 대답하고 있지만 그 말이 못미더운듯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희연을 바라보던 승무원이 희연에게 재차 물었다.
『식은땀을 많이 흘리신거 같은데...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
『네.. 감사합니다.. 』
몇몇 좌석의 사람들이 작은 소란에 희연쪽을 바라보았지만 그들은 이내 시선을 돌려 자신들이 하던 일을 하기 시작했다.
"꿈...."
정말 오랜만에 꾸는 꿈이었다.
언제부터인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다만 아주 어렸을때부터 가끔씩 꾸어왔던 꿈... 언제나 변하지 않고 같은 일만 반복되는 꿈... 오랜만에 그 꿈을 다시 꾸었다.
지금까지와 꾸었던 꿈과 지금 꾸었던 꿈이 다른 점이 있었다면 마치 실제를 보는것과 같이 너무도 생생하다는 것... 그래서 꿈속에서 어떤 남자에게 고문받고 있던 여자아이가 느껴지던 고통을 마치 희연 자신이 그대로 느끼고 있는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는 것... 희안하게도 오늘은 그 꿈이 두려울정도로 생생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축축한 느낌에 희연은 자신의 모습을 내려다 보았다. 옷이 조금만 더 얇았으면 어쩌면 속살이 그대로 비춰보일수도 있었을만큼 땀에 흠뻑 젖은 모습이었다. 마치 샤워를 마치고 난 후에 물기를 닦지 않고 그대로 옷을 입은것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희연이 이번에는 다리를 조금 오므려보았다. 음부에서 느껴지는 축축한 느낌.. 마치 팬티를 입은채로 실례를 해버린것마냥 축축하게 젖어있는 느낌.. 그것이 땀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희연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꿈속에서 고통스러워하던 그 고통이 희연 자신에게도 그대로 전해져오던 그 여자아이.. 그 여자아이는 엄청난 성욕을 참아내느라 죽을힘을 다했고 희연 역시 꿈속에서 그 아이의 그 느낌을 그대로 전해받은듯한 느낌이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몰랐다.
『무섭고도.. 슬픈 꿈을 꾸셨나보군요? 』
묵직한 남자의 목소리와 함께 곱게 접혀져있는 손수건이 불쑥 희연의 앞으로 내밀어졌다. 자신의 앞에 불쑥 내밀어진 손수건을 바라보던 희연이 고개를 돌려 손수건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30대 초반..? 아니면.. 후반정도? 되어보이는 남자로 검은 정장에 하얀 와이셔츠를 입고 있었지만 넥타이는 하지 않은채 앞섭을 두세칸 정도 풀어내고 있는 모습으로 희연을 향해 웃어보이고 있었다.
『아.. 괜찮습니다.. 』
이 조그만 손수건으로 흠뻑 젖어있는 땀을 닦아내는 것도 무리이고 그렇게 할 수 있다해도 이 자리에서 그럴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희연은 정중히 사양하며 손수건을 물리쳤다. 하지만 사양하는 희연의 말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손수건을 내려놓지 않으며 말했다.
『눈물... 이라도 닦으시는게 좋을것 같은데요.. 』
남자의 말에 희연이 자신의 눈쪽에 손을 가져다 대자 언제부터인지 눈물까지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 감사합니다.. 』
결국 마지못해 희연은 남자의 손수건을 받아들고 눈물을 훔쳐내고는 손수건을 남자에게 돌려줬다. 하지만 남자는 희연이 내민 손수건을 사양하며 희연에게 말했다.
『그건 가지고 계시다 나중에 주세요... 』
『네? 나중에.. 라니요..? 』
마치 또다시 볼 일이 있을것처럼 이야기하는 남자의 말에 희연이 반문하자 남자는 그지 빙긋이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
『안정이 필요할때는.. 음악을 듣는게 좋지요.. 그것도 누군가 직접 연주를 해주는 음악을요.. 』
손수건에는 관심없는듯 다른 말을 하는 남자의 말에 희연은 남자에게 손수건을 받아갈것을 재촉하지 못하고 결국 슬그머니 내민 손을 회수하며 남자를 바라보았다.
분명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리 많아봐야 30대 후반정도의 나이로 보이고 있었지만 왠지 30대를 훨씬 뛰어넘는듯한 기풍이 느껴지는것 같았다. 많지않은 나이에 자신의 나이를 훌쩍 뛰어넘는 기풍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상당히 드물다.
그래서일까?
평소에 남자에는 거의 관심이 없던 희연도 묘한 호기심이 들어오고 있었다.
『음악을 업으로 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다만 연주하는 것을 좋아할 뿐이지요.. 』
희연의 물음에 남자는 희연을 바라보고 선해보이는 웃음을 지어보이며 말했다.
『사람이요... 』
희연도 살짝 웃어보이며 말을 하고는 시선을 돌렸다.
묘하게 호기심이 가는 인물이다.
아마도 다시 만날 일은 없겠지만...
저 사람은 자신의 옆에 귀가 앉아있다는 걸.. 알고 있을까?
어려서부터 희연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로인해 오해도 많이 받았고 저주받은 아이라는 이야기까지 들었지만 이제는 익숙하다.. 거기다 가끔씩 귀찮게 달려드는 녀석들만 빼놓으면 어떤면에서는 유용할때도 있었다.
이 남자.. 제 명에 죽지는 못한다..
남자의 옆자리에 앉아있는 귀... 우연히 그 남자의 옆자리에 앉아있는 녀석이 아닌듯 보였다.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그 남자를 따라다니는 귀였고 대게 그런 경우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한 제 명을 다하고 죽는 경우는 상당히 드물다.
그나저나.. 선영언니는 괜찮은 걸까..?
내게 연락이 올정도면 평범하게 다친 정도는 아니란 이야기일텐데....
서울로 향하는 비행기안에서 희연은 다시 시트에 몸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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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가 눈을 떴다.
누군가 현지를 어디론가 옮기고 있다.
아니.. 누군가가 아니다.. 몇 명정도는 되어 보이는 것 같다.
어지럽다.. 어지러운데다 모든 사물이 희미하게 보여 자신을 옮기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가 없다. 다만.. 한가지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도 덩치가 크다는 느낌...
무슨 소리가 들려온다..
현지를 옮긴 그들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듯 하지만... 한국말이 아니다..
영어인가? 불어? 일본어? 아니면.. 중국어..?
그 어느 언어도 아니다.. 최소한 현지가 들어본 그런 종류의 언어는 아닌것 같았다.
여긴.. 어디지...? 이들은 누구지?
왜 난 움직일 수가 없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