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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도깨비 - 7

『안녕하세요 김경수라고 합니다.. 』

 

『네.. 안녕하세요 서현지에요.. 』

 



현지와 한 남자가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의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서로 인사를 마친채 어색하게 마주앉아 있었다. 현지의 앞에 앉아있는 남자는 현지로서도 오늘 처음 보는 남자로 이른바 소개팅이라 불리는 자리에 나와있는 것이었다. 어제 이런저런 이유로 거의 한달동안 들리지 않았던 동아리방에 들렀던 것이 우연치않게 이런 결과를 낳고 말았다.


 


 

사실 현지는 그동안 일부러 시간이 나도 의식적으로 동아리방에 들르는 것은 피했었다. 은경이가 보채는 바람에 가입한 동아리인데다 은경이 역시 딱히 자신의 취미나 관심사같은것 보다는 자신이 좋아하는 선배와 가까워질수 있다는 이유 하나로 가입한 동아리였기에 은경이의 생각이 날것 같기도 하고 소설처럼 자기 멋대로 써놓은 일부 잡지나 신문기사 덕분에 동아리 사람들이 자신을 어떤 시선으로 볼지도 조금은 걱정이 되었기에 되도록 가지 않다가 마냥 그렇게 피해다닐 수만은 없다는 생각에 큰 맘먹고 동아리방에 들렸었다.

 



다행인지 동아리 아이들은 은경이의 일은 벌써 어느정도 잊은듯 오랜만에 보는 현지를 반갑게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맞아주었고 하필 현지가 들어간 그때에 여자들끼리 모여앉아 한명이 펑크나 버린 소개팅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에 때마침 그곳에 들른 현지는 그렇게 그들에 휘말려 오늘 이렇게 난생 처음으로 소개팅이라는 자리에 나와있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무슨 말을 해야할지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조금은 어색하고 난감해하고 있는 현지였다. 그런 현지의 어색함을 깨어주려는듯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친구가 크게 기대는 하지 말라고 해서 별 기대없이 나왔는데 안나왔으면 큰일 날뻔했네요 』

 

『네?? 』

 

『아하하.. 현지씨가 상당히 마음에 든다는 이야기에요 』

 

『아.. 네 감사합니다 』




현지는 감사하다는 말을 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선배나 교수님에게 인사하듯이 고개를 숙여 보이고 있었다.

그렇게 고개를 숙인 현지의 귀에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지랄을 하네 아주.. 』

 

『응?? 』




잘못듣기라도 한듯 갑자기 튀어나온 예상외의 조금은 상스러운 말에 현지는 깜짝 놀라며 고개를 들어 상대를 바라보았다. 썩 빼어나게 잘생기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준수한 편이었고 상당히 깔끔하고 매너있어 보이는 모습의 상대는 현지가 놀란 눈으로 상대를 바라보자 살짝 웃어보이고 있었다.



문득 현지의 뇌리속에 불길한 생각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불길한 생각을 확인하기라도 하려는듯 현지는 획하니 방향을 틀어 자신의 옆자리를 바라보았다.



『아... 』



현지의 얼굴에 순간 당황스러운 표정이 떠올랐다. 분명 아무말도 하지 않았고 동아리방에서 여자들끼리의 은밀한(?) 모의가 있을때도 옆에 없었던 도깨비가 상당히 마음에 안든다는 얼굴을하고 현지의 옆자리에 앉아있었기 때문이었다.



『무슨 불편한 일이라도...?? 』

 


경수라 자신을 소개한 남자가 당황스러워하는 모습의 현지를 보고 조금 걱정스러운 낮빛으로 물어보고 있었다.




『아.. 아니요... 아하하.. 』



현지는 남자의 질문에 어색하게 웃어보이며 말하고는 남자가 잠시 다른 곳에 신경을 쓰는 사이에 재빨리 낮은 목소리로 치우란 이름을 가진 도깨비에게 말했다.

 


『너.. 얌전하게 있어.. 여기서 시끄럽게 굴면 가만히 안둬 진짜.. 』

 

『너도 참.. 뻔한거 아냐.. 저 느끼한 멘트하며 어떻게 너 꼬셔서 잠자리라도 같이 해볼까 하는 저 놈의 시커만 속이 내눈에는 훤히 보이는구만.. 』

 

『세상 사람들이 다 너같은 줄 알아??!! 』

 

『야~ 세상사람들은 내가 너보다 훨씬 더 많이 겪어봤어.. 뻔한걸 가지고... 』




.
.
.
.



『저기...?? 』



도깨비랑 잠시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사이 그 모습을 보았는지 남자가 또다시 의아한 표정을 하고는 현지를 부르고 있었다.



『아.. 네.. 아하하 아무것도 아니에요 』

 

『재밌는 분이시네요 현지씨는.. 아 참... 』


현지가 또다시 어색하게 웃으며 남자에게 말하자 남자가 웃음으로 현지의 말에 답하고는 옆자리에 놓인 가방을 뒤적거리며 한송이의 꽃을 꺼내 현지에게 건내주며 말했다.




『꽃을 좋아하실지 모르겠지만 마음에 드는 분이 나오시면 드리려고 오다가 하나 샀어요 』

 

『와.. 이쁘네요 고맙습니다.. 』


현지는 남자에게서 꽃을 받아들고 꽃의 향기를 맡아보았다. 솔직히 말하면 난생 처음으로 남자에게서 받아보는 꽃이었고 생각이외의 남자의 호의에 현지는 진심으로 좋은 기분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기분을 확 잡쳐버리는 멘트가 또다시 현지의 옆에서 들려왔다.




『우웩... 생쇼를 하네.. 와.. 저거 완전 작정하고 나왔네!! 』

 


향기로운 꽃내음을 맡고있던 현지의 아미가 살짝 찌푸려졌다. 현지는 남자에게 받은 꽃을 자신이 들고온 가방에 살짝 꽃아넣으면서 남자가 눈치채지 않게 낮은 목소리로 옆자리에 앉아있는 치우에게 말했다.




『한번만 더 끼어들면.. 죽!! 는!! 다!! 』

 

『어휴.. 순진하기는.. 내가 진짜.. 』




현지가 말하는 도깨비를 살짝 째려보듯 바라보자 도깨비는 하던 말을 중단하고 알았다는 듯이 두손을 번쩍 들어올리며 말했다.



『알았어.. 알았어.. 안하면 될거아냐.. 쳇... 』

 


치우는 현지에게 이젠 나도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이고는 자리에서 휭하니 일어나 다른곳으로 가버렸다. 그런 치우의 뒷모습을 보면서 현지는 길게 한 숨을 내쉬고 있었다. 대타로.. 어쩌다 우연하게 나온 자리이지만 그래도 현지에게는 첫번째로 경험해보는 소개팅이었고 앞에 앉아있는 남자도 대체적으로 준수했기에 억지로 등을 떠밀듯 현지에게 소개팅을 강요한 동아리 언니들의 말대로 오늘은 정말 아무 생각없이 소개팅을 즐기며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마음 편히 풀어볼 생각이었다.




경수라는 남자와 대화가 오가면서 조금씩 어색한 분위기가 풀어져가고 있었다. 치우의 말대로 가끔씩 느끼한 멘트를 날리고 조금 노골적으로 현지를 마음에 든다고 하는게 조금 부담스러운 점만 빼면 나름대로 괜찮은 편이었고 그런 표현들이 부담스럽긴 했어도 은근히 싫은 느낌은 아니었기에 현지도 경수의 리드에따라 조금씩 자신의 이야기를 해나가고 있었다.



『어맛!!!! 』


 

 


쨍그랑...!!


 


현지가 경수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 도중에 레스토랑 내에서 작은 소란이 일었다. 여자의 짧은 비명소리와 함께 접시가 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레스토랑에서 서빙을 하던 여자 종업원이 무엇에 놀랐는지 서빙하던 접시를 놓쳐 접시가 바닥에서 깨진 것이었다. 레스토랑내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 종업원에게 모아지자 여종업원은 얼굴이 시뻘겋게 되어서는 연신 죄송하다는 말을 사방에 대고 하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

 


창피한지 얼굴까지 새빨개져서 사과를 하고 있는 종업원에게 몰렸던 시선들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고 있었지만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현지는 쉽사리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현지도 소란이 일어난 후에 바라보았기 때문에 무슨일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렇게 연신 사과를 해대고 있는 종업원 옆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치우의 모습이 상당히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었다.




"아흐.. 불안해..."



다시 대화를 주도해나가는 경수에게 시선을 돌린 현지가 다시 경수의 말에 집중하려할때즈음 또다시 작은 소란이 레스토랑내에서 일어났다.



『어마맛!! 』



이번에는 종업원이 아닌 화장실을 다녀오던 손님이었다. 짧은 소리였지만 제법 큰 소리였고 두번째로 일어난 소란이기에 사람들의 시선이 다시 그 손님에게 모아지면서 이번에는 손님들도 조금은 기분이 상한듯한 얼굴들이었다.



『죄송합니다.. 』

 

『네?? 』


아무래도 치우가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것 같은 불안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던 현지에게 경수가 뜬금없이 사과를 하는 바람에 현지는 조금 놀라는 얼굴로 경수를 바라보았다.




『가끔 오는 곳인데.. 평소에는 이렇지 않았거든요.. 오늘은 좀 많이 소란스럽네요 』

 

『아.. 경수씨 잘못도 아니잖아요.. 』

 

『조금 더 좋은 곳으로 모셨어야 하는데.. 』

 

『괜찮아요 전 여기도 충분히 좋아요 』


현지는 경수라는 남자가 상당히 배려심이 많고 괜찮은 남자 같다는 생각을 했고 억지로 떠밀리다시피 나오긴 했지만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치우가 신경이 쓰여 치우의 위치를 확인하느라 주위를 자주 둘러보는 바람에 경수에게 집중하기가 조금 어려웠고 가끔씩은 경수가 하는 말을 듣지 못해 어색하게 웃음으로 때워 넘겨야 하는 경우도 생기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곳에 집중하지 못하고 경수의 말을 듣다가 경수가 눈치채지 못하게 주위를 둘러보다가 하던 현지의 눈에 치우의 모습이 들어왔고 치우와 눈이 마주치자 현지가 살짝 검지손가락을 까닥거리며 이쪽으로 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여기저기서 사고를 치고 다니는것같은 불안함에 차라리 현지가 조금 불편하더라도 자신의 옆에 앉혀놓는게 낫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치우는 현지의 신호를 알아듣고 현지의 옆자리로 와서 앉았지만 여전히 앞에앉아있는 경수가 마음에 안든다는 표정을하고 한쪽다리를 꼬고는 힘껏 등받이에 몸을 기대는 자세로 앉아있었다. 이제 치우가 어디에 있는지 주위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현지가 다시 경수의 대화에 집중하려고 할 때 옆에서 치우의 말이 들려왔다.



『핑크색이야... 』

 

『 ...??? 』




뜬금없는 치우의 말에 현지는 무슨 소리인지 궁금했다. 현지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옆에서 지겹도록 혼자 말그대로 네버엔딩 스토리를 종알거리던 치우가 이번에는 심드렁하게 한마디 던지고는 더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이상하게도 현지는 치우의 말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어 가고 있었다.



치우의 그 한마디에 자꾸만 신경이 쓰여 또다시 경수의 말에 집중을 하기가 어렵자 현지는 조금 전에 나온 스테이크를 한 입 베어물고는 살짝 치우를 쳐다보며 눈짓으로 조금 전에 핑크색이라고 말한게 무슨뜻인지 물어보았다.



표정마저도 심드렁하게 있던 치우가 무관심한척 하더니 더이상 참지 못하고 잔뜩 궁금한 표정을 하고 자신을 바라보며 살짝씩 눈짓을 하는 현지를 보더니 기다렸다는듯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아까 그 종업원 팬티 말이야... 핑크색이였어~ 』



치우의 엉뚱한 말에 깜짝놀란 현지는 입속에 들어가 아직 채 씹히지도 않은 고기조각을 그대로 내뱉을 뻔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치우의 말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조금 전 그 아줌마는 망사던데..?? 오늘 좋은 일 있나봐~ 』

 

『푸하학..!!! 』




결국 현지는 망사에서 치우에게 항복하고 말았다. 그리고 조금 전 레스토랑에서 일어났던 작은 소란의 원인이 그대로 머리에서 그려지고 있었다. 세상에 현지가 나무랐다고 그 사이에 다른 여자에게 쪼로로 달려가서 여자들 치마를 들춰보고 있었단 말인가??



"무슨 귀신이...."



현지는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더 어이없어하는 이가 바로 현지의 앞에 앉아 있었다. 너무 놀라는 바람에 현지의 입속에 있다가 튀어나온 제대로 씹히지도 않은 스테이크 고기 조각이 하필이면 경수의 얼굴에 철썩하고 달라붙었기 때문이었다. 현지는 얼굴에 스테이크 조각을 붙이고 당황스러움에 어쩔줄 몰라하는 경수를 보고는 입이 떡 벌어져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또다시 레스토랑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한 곳으로 모아졌고 그 대상은 이제 현지가 있는 테이블이었다. 여기저기서 키득거리는 웃음 소리가 들려왔고 경수의 얼굴에 붙은 스테이크 조각이 길다랗게 소스의 흔적을 남기며 턱쪽으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죄...죄송해요!! 』

 

『아니요.. 괜찮습니다 제가 할게요.. 』


그 황당한 상황에 정신을 수습한 현지가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하며 죄송하다고 말하고 황급히 냅킨을 꺼내 경수의 얼굴을 닦아주려하자 경수가 사양하며 스스로 냅킨을 들고 얼굴을 닦아내고 있었다. 말로는 괜찮다고 하지만 경수의 얼굴은 약간 찌푸려져 있었다.




『정말.. 죄송해요.. 그 말을 듣고 너무 놀라서... 』

 


현지는 이제 소개팅이고 뭐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집으로 돌아와 버리고 싶을만큼 챙피한 마음에 가능하다면 탁~ 하고 울어버리고 싶은 심정으로 계속해서 죄송하다고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 말.. 이라니요? 전 아무말도 한 적이 없는데요.. 』

 

『아.... 그게.... 』

 

『아.. 뭐 상관 없습니다.. 』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가져온 음식 그릇이 치워지고 후식으로 커피가 나왔다. 그 난리 이후에 시무룩해져서 고개를 떨구고 있는 현지가 안되보였는지 그 이후로 치우는 딱히 사고를 치지 않고 있었지만 남자가 리드하는 대화에 조금씩 자신의 이야기도 했던 현지는 고개를 푹 숙인채 경수의 질문에 대답만 하고 있었고 그나마 경수가 무슨말을 하는지도 귀에 제대로 들리지 않는것 같았다.




『현지씨?? 』

 

『네?? 』

 

『제 말.. 들었어요?? 』

 

『아.. 네... 』

 

『그런데 왜 아무런 말씀도...? 』

 

 

 

"응???"




또다시 당황스러운 상황이 찿아왔다. 하지만 이번엔 절대적으로 치우때문이 아닌 자신의 실수였다.

물론... 현지가 이런 실수를 하도록 원인을 제공한 것은 치우였지만..



아마도 경수는 현지에게 무슨 질문을 했던것 같고 챙피한 마음에 고개를 떨구고 아무런 생각없이 "네.." 만을 반복하던 현지는 경수가 무슨 질문을 했는지 듣지 못했다. 경수는 그런 현지를 부르고 자신이 말한 것을 들었는지 확인하는 질문을 했고 이런 상황에서 현지는 차마 경수가 한 말을 못들었다고 할 수가 없어서 그냥 네.. 라고 대답했는데 아마도 그것이 현지의 대답이 필요로한 질문이었던것 같았다.



이미 들었다고 대답해놓고 다시 못들었다고 할 수도 없고 또다시 찿아온 난감한 상황에 현지는 식은땀까지 흘리면서 어쩔줄 몰라하고 있던 와중에 옆에 앉아있던 치우가 눈에 들어왔다. 현지와 치우가 눈이 마주치자 또다시 치우가 씨익 하고 웃었다. 생각같아서는 당장 일어나서 넉살좋게 웃고있는 치우의 볼을 양쪽으로 쭈욱~~ 잡아당겨 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럴수도 없었고 지금 아쉬운건 현지였기에 현지는 발을 동동 구르면서 치우에게 구원의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치우는 그저 씨익 웃고만 있을 뿐 경수가 무슨 질문을 했는지에 대해 아무런 대답도 해주지 않았다. 현지가 다급한 마음에 테이블 아래에 양손을 모아 한번만 살려달라는것 처럼 두손으로 싹싹 비는 시늉까지 해보이고나서야 치우가 살짝 현지의 귀에 입을 가까이 대고 말해주었다.



『넌 세상에서 어떤 타입의 남자가 가장 싫으냐고 물어보고 있는데? 』

 

 

"휴우..."




치우의 대답을 들은 현지가 그래도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더 이상 앞에 앉아있는 경수라는 남자에게 실례를 범할 수는 없었기에 치우에게 싹싹 비는 시늉까지 해가며 알아낸 것이 조금 억울하긴 했어도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현지씨?? 』

 

『아..네.. 말씀드릴께요 잠시 생각 좀 해보느라구요.. 』

 

『아.. 네.. 조금 곤란한.. 질문이었나 보죠?』

 

『아니요!! 전혀 그렇지 않아요!! 』




현지는 당당하게 말했다. 사실 싫어하는 타입같은 것이나 이상형등을 생각해 본적은 없었다. 그냥 막연하게 이상형은 이왕이면 잘생기고 이왕이면 성실하고 이왕이면 현지만을 생각하고 뭐 이런 누구나 생각해볼만한 것정도만 생각해 봤었고 현지가 질색하거나 싫어하는 타입은 지금까지 그렇게 없었던것 같았다. 누구나 좋은 점이 있으면 안좋은 점도 있기 마련이니까... 평소에는 다소 생각을 해봐야할 질문이었겠지만 이번 질문에는 왠지 자신있게 말을 할 수 있을것만 같았다.



현지는 숨을 고르며 옆에 앉아있는 치우를 잠시 바라보고 있었다. 치우는 현지의 생각을 모르는듯 슬며시 미소짓고 있었고 현지는 치우에게 당해보라는듯이 큰 소리로 그리고 당당하게 경수에게 자신이 싫어하는 타입을 말했다.


 


『변태같은 사람이요!! 특히나 순진한 외모를 하고 머리속에는 그런 생각만 잔뜩 들어있는 변태같고 나이도 많으면서 놀아달라고 징징대는 그런 사람이요!!!!! 』


 


현지는 스스로도 자신이 이렇게 말을 잘하는 사람이었던가 싶을 정도로 줄줄이 쉬지않고 싫어하는 타입을 읊어댔고 그것은 정말 현지가 싫어하는 타입이라기보다 지금까지 현지가 보아온 치우의 모습이었다. 경수가 눈치챌 수는 없겠지만 이건 분명 경수의 말에 대답을 한게 아닌 치우에게 던진 말이나 다름없었다.



"아싸~~!!!"



현지는 엄청나게 통쾌했다. 이곳에와서 치우 이 녀석때문에 쩔쩔매고 있었는데 조금 소극적이긴 하지만 이렇게라도 복수를 할 수 있어서 너무도 속이 후련했다. 치우는 꼬맹이나 할아버지라고 말하는 것도 싫어했으니 아마도 지금쯤 똥씹은 듯한 얼굴을 하고 있을것이 분명했다.



『이히히히히... 』



치우의 표정을 상상하던 현지는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치우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똥씹은 얼굴로 현지에게 바락바락 대들줄 알았던 치우의 상태가 조금 이상해보였다. 손으로 입을 막고 온 몸을 비틀면서 웃음을 참는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뭐..뭐야? 왜그러지??"



뭔가 이상함을 감지한 현지가 치우에게서 경수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현지는 당황스러웠다. 막상 잔뜩 찌푸리고 있어야할 치우는 옆에서 못참겠다는듯이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킥킥거리고 있었고 오히려 현지의 앞에있는 경수가 똥씹은 표정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현지는 도무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현지씨.. 현지씨 상당히 잔인한 사람이군요? 』

 

『네?? 그..그게 무슨.. 』

 

『처음부터 현지씨가 절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는건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내가 진심으로 대하면 조금은 마음을 열어주지 않을까 싶어서 전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어요.. 차라리 싫으면 싫다고 말을 해주시던지요.. 이렇게 하실것까진 없잖습니까? 』

 

『시..싫다니요.. 전 그런 생각.. 』

 

『그렇게 변명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스테이크 조각을 내뱉으신것까진 그래도 애써 참았지만 이건 도저히 참을 수 없이 불쾌하군요.. 』

 

『그...그건 정말 죄송하지만..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건지 저는 잘... 』

 

『전 현지씨가 마음에 들었고 솔직한 현지씨의 마음을 듣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제가 마음에 안들어도 그렇지 저를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변태라구요?? 그리고 노인네에다가 애처럼 징징대는 사람이라구요?? 최소한 저는 현지씨에게 그런 소리를 들을만큼 잘못한것은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

 

『네?? 아..아니 그..그게 아니라 저..저는.. 』

 

『정말.. 기분같아서는 현지씨 뺨이라도 힘껏 내리쳐주고 싶지만... 그래도 잠시나마 제 마음에 들어왔던 분이기에 참고 갑니다.. 현지씨 같은 분에게는 건방지게 들리실지 모르겠지만 충고한마디 하죠.. 앞으로 어떤 남자들을 만나실지 모르겠지만 이런 행동은 상당히 상대의 마음을 다치게 한다는거.. 그리고 그건 결국 자신에게 돌아온다는거.. 그건 꼭 명심하세요.. 그럼 이만.. 』




남자는 굴욕적이란 생각때문인지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 하면서도 말솜씨가 좋아서인지 조목조목 할 말을 다해버리고 그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섰다. 돌아서 나가는 남자의 뒤로 들릴듯말듯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현지는 그 소리를 분명히 들었다.



『괜찮은 건수하나 올리는가 했더니 씨발... 기분 좃같네... 』



일부러 현지에게 들으라고 한 소리인지 아니면 스스로 한 혼잣말을 현지가 들은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너무나 미안하고 너무나 챙피하고 마지막에 그런 소리까지 들려오자 현지의 눈에 금방이라도 떨어질듯이 눈물이 모여들었다.



『그것 봐.. 그런 놈이라고 했잖아.. 내 눈은 못속인다니... 』



마지막 말을 들은 치우가 자신의 생각이 맞았다고 말을하며 의기양양하게 현지를 돌아보다가는 말끝을 흐렸다. 애써 소리가 나지않게 참고는 있는듯 했지만 현지의 어깨가 조금씩 들썩이고 있었고 눈에서는 눈물이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현지도 왜 이렇게 눈물이 쉴새없이 흐르는지 잘 알지 못했다. 당황스럽고 황당한 상황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눈물이 흘러내릴 정도는 아니었다. 마치 은경이의 일로부터 지금까지 애써 꾹꾹 참아왔던 눈물들이 불붙은 기름창고에 불이번지듯 한꺼번에 밀려들어오기 시작했다. 눈물속에 엄마와 아빠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엄마도... 아빠도...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동안 그렇게 애써 잊으려했던 은경이도 너무나 보고싶었다. 그런 생각은 또다시 현지의 눈을 눈물로 가득 채워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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