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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데모니엄>Card 1. 초대형 의뢰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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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보일드 복합장르. 


Card 1. 초대형 의뢰인 -2



AD. 2109년. 

우주세기는 오지 않았다. 인간이 수많은 우주를 누빌거라고 보던, 한때 유행했던 낙관적인 전망은 거의가 헛발질로 끝났다.
기술상 우주 항해는 이미 성공했다. 그럼에도 정말 우주선을 타고 유람하는 따위는 꿈 같은 일이다. 손 내밀수록 멀어져 가는 옛 소년들의 무지개 잡는 꿈처럼.
가장 큰 문제는 돈이었다. 우주선을 발사하고, 인간의 몸에 무리가 가지 않을 아광속워프엔진은 천문학적인 자금을 소비한다.
개발과 완성과 시험의 비용은 차제로 하더라도, 거기에 들어가는 하이퍼 플라즈마 에너지. 약어로 HPE(Hyper-Plasma-Energy)라 불리는 에너지원을 지속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민간의 투자로서는 불가능. 결국 자국 정부에서 자금 지원이 가능한 몇몇 강대국의 비밀 시설에서만 우주 식민지(Space Colony)계획을 차근차근 실천해 가고 있었다.
때문에 충분한 기술이 있음에도 인간은 지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여전히 무거운 땅. 끈끈한 중력에 묶인채 오로지 마음과 소망만을 창공으로 날려 보낼 뿐. 선택받은 몇몇 중요인물들만 그 손을 달로. 화성으로. 목성의 위성들로 보낼 수 있었다.

 

삐잇!
허공에 3d스크린이 펼쳐졌다. 박명건설의 오너. 강수만은 스크린에 나타난 사람을 보고 얼굴부터 찡그렸다.
"오랜 만이군. 아자르카트. 그곳 상황은 어떤가?"
"오랜만에 봅습니다. 강수만 회에장님. 이런 보고를 드리게 되어 죄송압니다만... 상앙이 별로 좃치가 않습니다."
까무잡잡한 얼굴. 다소 어눌한 한국어. 짜증섞인 얼굴로 강수만은 손을 내저었다. 뒤이어 그의 입에서 유창한 아랍어가 터져 나왔다.
"한국어는 그만두고 아랍어로 하게나. 그편이 보고상황을 듣기에 빠를테니."
"죄송합니다. 그럼..."
식은 땀을 흘리며 아자르카트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완전히 성사단계에 왔었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터무니 없는 가격을 제시하며 아메리크가 클레임을 걸어 왔습니다." 
"이유는?"
"아키히로쪽에서 장난질을 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억울하다는 듯 어깨까지 들먹이는 아자르카트. 그의 얼굴을 잠시 외면하고 강수만은 아키히로. 아키히로. 하며 몇번 이름을 되뇌었다.
"아키히로 공업은 그럴 여유가 없을텐데? 일본 본토가 침몰한 지 불과 10년 전일세. 대체 어디서 아메리크를 구워 삶을 자금이 났단 말인가?"
"자금이 아니라... 인맥인 듯 합니다. 우선 아메리크는 옛날 아메리카 합중국이 다섯 나라로 갈라질 당시의 대통령. 부시 가가 정계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영광을 그리워 하는 아메리크 현 정부가, 역시 본토가 침몰해서 과거의 영광을 그리워 하는 일본인들과 손을 잡은 거라고 합니다."
흐음. 강수만은 스크린에서 시선을 떼고 천정을 올려다 보았다. 뒤이어 그의 입에서 일본어로 저속한 욕설이 터져나왔다.
"동병 상련이라 이건가. 재미있군. 같은 병신들끼리 서로서로 부둥켜 안고 뒷구멍이라도 대 주는건가?"   
"무슨 말씀입니까? 회장님?"
아자르카트가 어리둥절해 하자 강수만은 다시 보고를 진행시켰다.
"됐네. 어쨌든, 그 인맥이 누구인지는 알아봤나? 아메리크정부는 일본 임시정부와 드러내고 손 잡을 형편은 아닐거야. 일본과 옛 아메리카간 전쟁이 난게 고작 15년 전인데, 국민들 무서워서라도 겉으로는 적대시 해야하지."
"맞습니다. 너무 엉뚱해서... 예상을 못했습니다. 그 인맥이란게..."
얼굴을 붉히며 아자르카트가 다소 말 끝을 흐렸다. 아직 순진한 구석이 남아 있는 중동의 남자에게 이런 보고는 다소 유화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최근 얻은 소식으로는 아메리크의 제퍼슨 통령이 두번째 처를 얻었습니다."
"그건 그냥 스캔들이라고 하게. 어차피 적이나 다름 없는데 자네들 무슬림의 계율로 상대의 명예를 지켜줄 필요도 없어."
"알겠습니다. 하여간. 그 두번째... 아니. 내연의 처가 일본인으로 상당한 미녀라고 합니다. 알아낸 이름으로는 아오이 소라. 말하자면 일본 임시정부의 사주를 받아 아키히로 공업에서 미인계를 쓴 것 같습니다."
"백년 전에 포르노 배우로 유명했던 여자군. 가명이겠지."
피식. 강수만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부드럽게 물었다.
"그래서. 대책은?"
"그. 그것이... 지금 입안 중에 있습니다만..."
아자르카트가 진땀을 뻘뻘 흘렸다. 강수만은 잔뜩 찌푸린 얼굴로 혀를 찼다.
"자네. 중동 지부로 돌아가고 싶나?"
"아. 아닙니다 회장님!"
"그럼 나에게 보고할 때는 항상 대비책도 가져 와야 한다는 걸 잊은 게로군. 정말 돌아가야 할 때가 된 모양이야. 좋아. 아메리크에서의 계획을 모두 철수하고 본사로 인원을 돌려 보내게."
"즈. 즉시 계획을 짜 보겠습니다! 잠시만 시간을 주십---!"
삐잇!
강수만의 손이 휘둘러지자 고함지르던 아자르카트의 스크린이 주르륵 접혀 버렸다. 탁탁. 책상을 두드려 다른 스크린을 작동시킨 강수만은 박명건설 인사 업무과를 호출했다. 검은 뿔테의 다소 딱딱한 인상의 남자가 꾸벅 고개 숙였다.
"인사 업무과입니다. 부르셨습니까. 회장님."
"아메리크에서의 플랜. 죄다 철회하는 걸로 알게."
강수만의 간략한 지시. 인사 업무과의 남자는 눈을 크게 떴다.
"정말로 아메리크 플랜을... 알겠습니다. 그럼 대규모 인원 이동이 있겠군요."
"말이 빨라서 좋군. 총무 기획실과 연계해서 처리하도록 하게."
강수만은 만족스레 끄덕였다.
인사과 과장은 칭찬받을만 했다. 간발의 차이로 하려던 말을 집어넣고 우선 자기 할 일부터 확인받은 것이다. 강수만에게 "그게 정말이냐"고 되물었다면, 그의 인사과장이라는 직위 앞에 <전>자가 붙게 되었을 터다.
삐잇! 스크린을 닫아버리고, 강수만은 다시 다른 스크린을 불러냈다.
"전략기획팀. 연결."
-전략기획팀으로 연결합니다. 강수만 회장 본인인지 잠시 인증절차를 거칩니다.
무기질적인 머신보이스(기계음성)이 울렸다. 피핏! 방안의 보안장치에서 잠시 극미세 레이저 레이저가 쏘아졌다. 강만수의 홍채와 성문. DNA검사까지 확인하는 데는 1초도 걸리지 않았다.  
-인증절차 완료. 전략 기획팀으로 연결됩니다.
"....당장 그 자식 엉덩이에 주먹을 쑤셔넣어... 엇? 회장님?"
스크린 앞에서 뭔가 욕설을 내뱉던 남자가 화급히 고개를 숙였다. 머리가 반들반들하게 벗겨진. 호감가게 생긴 인상의 남자다. 좀전의 저속한 욕설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얼굴. 언제 그랬냐는 듯 그는 곧 후덕한 표정으로 방글방글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죄송합니다. 직원들이 영 사태 처리에 서둘러서... 무슨 일이십니까?"
"아메리크 플랜을 철회하게 했네."
냉랭한 강만수의 말. 머리가 벗겨진 남자의 눈이 휘둥그레하게 커졌다.

푸우. 한숨을 쉬며 그는 잠깐 생각을 정리하고 고개 저었다.
"2조 8천억원이 그냥 날아갔군요. 맙소사." 
"정확히는 2조 8천 5백 2억 7천 5백만일쎄. 2년간 추진한 계획이 모두 허공에 뜬 거지."
"아자르카트는 퇴사시킵니까?"
"그럴 일이면 자네를 호출할 필요도 없었지. 한달 쯤 뒤에 아메리크에 소문을 퍼뜨리는 작업을 하게. 그나라 통령이 일본 임시정부와 손을 잡았고, 아키히로 공업과 연결된 그 인맥은 아오이 소라라는 일본계 출신 미녀라고."
강만수의 말에 대머리가 잠시 손을 꼽았다. 그리고 다시 한번 한숨을 푸욱 쉬었다.

위험하고 치명적인 소문이다. 박명건설의 전략기획팀이 작업에 부채질을 하면 아메리크 전역이 뒤흔들리는 엄청난 게이트가 터진다. 문제는 그 뒤의 일이다. 사람이 봉변을 당하면 제일 먼저 의심하는 것은 그와 적대적인 사람.

이 경우에는 박명건설의 대형 플랜을 망쳐먹은 아자르카트. 그가 이 스캔들을 폭로한 것으로 추정할 터. 아메리크 정부는 괴멸적인 피해를 입을 것이다. 자칫하면 통령이 바뀌는 대형 사고로 바뀔지도 모른다. 그런 일이 일어나게 되면, 화난 아메리크는 어떻게 화를 풀려 들까.
"회장님. 아자르카트는 15년간 성실히 일한 사람입니다."
"아들도 셋이나 있고 사재를 털어 지원하는 고아원이 다섯개나 있지. 그러니 단순 퇴직금으로는 부족할 것 아닌가."
"거기까지 생각하셨습니까? 알겠습니다. 확실히 죽는게 남은 가족들에겐 낫겠군요. 카메라 로봇을 설치해서 아자르카트가 살해당하는 장면을 촬영해 둘까요?"  
"보험회사에다 돈을 뜯어내려면 그정도는 해 두어야 하지 않겠나."
"아메리크 통령에 일본 임시정부. 거기다 보험회사라. 아자르카트 한 사람을 버려서 두번 세번 물을 먹이시는 군요. 과연 회장님 다우십니다."
대머리가 무섭다는 듯 어깨를 움츠려 보였다. 회장의 복수는 무시무시 했다. 아무래도 이걸 전부 맞으면 아메리크는 확실히 통령이 갈릴지 모른다.

일차로 스캔들로 한대 먹이고, 2차로 아자르카트가 죽도록 둬서 한대 맞아주고. 3차로 살해 장면을 찍어 다시 터뜨리고, 마지막 덤으로 그 나라 보험회사의 자금과 손해배상 청구까지 뜯어내겠다는 말인 것이다.

상대가 현명한 놈들이라면 몰라도, 화나서 살인까지 자처할 놈들이라면 이미 냉정을 잃은 짐승이다. 그런 짐승은 제가 찍는 나무가 제 위로 쓰러질 것도 생각 못한다. 아자르카트의 죽음은 아메리크에 몇배에 달하는 피해를 입힐 것이다. 그것이 강수만 식의 보복이었다.

삐잇. 삐잇. 스크린 저편에서 그가 뭔가를 들여다 보는 소리가 났다. 잠시후 대머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인했습니다. 예. 아자르카트가 가입한 보험은 마침 아메리크의 국가보증 생명보험입니다. 금액도 괜찮군요. 한화로 대략 450억원가량 됩니다."
"200억은 회사자금으로 회수하게. 그리고 소문을 퍼뜨리면서 넌지시 그 출처가 박명건설 아메리크 지부라고 암시하는 것을 잊지말게. 아자르카트는... 거기 혼자 남아서 다른 업무를 보게두고."
"그래야지 암살자들이 아자르카트를 처리하려 할 테죠. 살해 현장에서 잡습니까? 단순 끄나풀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화난 아메리크나 일본 임시정부가 박명건설의 지부장 살인사건에 연계 되었다는 증거를 잡으려면 시간이 좀 걸릴지도 모릅니다."
호감가는 인상의 대머리는 무시무시한 말들을 쏟아냈다.

강수만은 끄덕였다. 그는 인상과는 전혀 다른 냉랭한 뱀같은 남자.

그렇기에 박명건설의 온갖 지저분한 일을 맡는 전략기획실의 책임자인 것이다.
"알아서 하게."
"인사부와 총무부에 새 팀을 구성하라고 할 까요? 아메리크의 통령이 미인계에 당해 적국 일본과 손 잡았다는 추문이 퍼지면 통령은 고사하고 국회 전체가 휘청거릴지도 모릅니다. 기존의 인맥을 재 구성할 필요가..."
"역시 알아서 하게."
"15억 8천만원 가량 들겠습니다. 예상보다는 저렴하군요."
"20억으로 결재하지. 고생 많으니 보너스로 받게. "
"아자르카트 덕에 제 집이 늘겠군요." 
대머리가 빙그레 웃었다. 강수만도 냉랭하게 웃었다.

삐잇! 스크린 하나가 저절로 열리며 무기질적인 기계음성을 토해냈다.
-허가받지 않은 출입자입니다. 홍체검사. DNA검사 개시.
-신분 확인 완료. 따님이신 강혜정양입니다.
"스크린 아웃."
스르릉. 피잇. 강수만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허공에 펼쳐진 스크린이 사라졌다.
스르릉. 간발의 차이로 강수만 회장실의 문이 열렸다. 또각또각 높은 하이힐을 신은 백의의 여성이 들어왔다.
"정기 검진시간입니다. 회장님."
딱딱한 말투. 차가운 인상의 미녀는 하얀 가운을 입고 있었다. 강수만의 딸이자 박명건설의 위생건강부를 맡고 있는 강혜정이다.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하지 않았니."
강수만의 얼굴은 따사로웠다.  조금전에 자회사의 지부장을 살해당하도록 손을 쓴 사람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

언제나 박명건설 TV광고에 등장하는 자애로운 기업가 그 자체로 강수만은 돌아와 있었다.
"컴퓨터. 억세스. 박명건설 회장 강수만님의 24시간 데이터."
강혜정은 여전히 딱딱한 목소리로 그녀가 할 일을 시작했다. 무기질적인 기계음성이 데이터를 토해냈다.
-성문 확인. 박명건설 회장. 강 수만의 데이터에 접속합니다.
-24시간중 최고혈압 180. 최저혈압 130. 심박수. 산소 포화도. 바이탈사인. 안정적.
-바이러스 농도 희박. 면역체계 정상.
.......
-대상자의 건강도는 80% 53세 남성으로는 활동적입니다.
강수만과 연결된 건강 체크 프로그램은 한참동안 데이터를 토해낸 끝에 박명건설의 회장이 건강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강수만은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그의 딸에게 빙그레 미소지었다.
"아버지는 건강하다고 했잖니. 딱딱한 이야기는 접어두고 잠시 이야기나 나누자꾸나."
"아직 안 끝났습니다. 컴퓨터. 회장님의 취침및 기상 시간은?"
강혜정은 차갑게 고개 저었다. 강수만의 얼굴이 흐려지고 컴퓨터가 즉각 응답했다.
-오전 01시 20분 경 취침. 03시 정각 기상입니다.
"그 이후로 오침은?"
-뇌파에서 수면파동은 검출되지 않았습니다.
방 안에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 더 이상 질문이 없자 삐빗 소리와 함께 자동 인식 프로그램은 종료되었다.

후우. 한숨을 내쉬며 강혜정은 강수만을 바라보았다.

그 얼굴에는 이제야 걱정스러운 표정. 격무에 시달리는 아버지를 보는 딸의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하루에 두시간도 채 못주무시는 군요."
"잠이 없는 걸 어쩌겠니? 나이가 들면 잠깐 잠을 못자는 경우도 있단다."
강수만은 다소 유쾌하게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조금 더 찌푸리며 강혜정이 고개 저었다.
"벌써 5년째에요. 재작년에는 네시간. 작년에는 세시간. 그리고 이제는 하루에 두시간도 채 잠을 못 자고 계세요."
"기네스 북에 도전해 봐야겠구나. 한 시간도 안 자고 3년을 버틴 사람도 있다던데."
익살스럽게 농담하는 강수만. 그의 얼굴은 딸에게 걱정시키지 않으려 하는 자상한 아버지 그 자체였다.

잠시 흔들리던 강혜정은 다시 한번 고개를 저었다.
"제 전공이 정신과인걸 기억하시나요? 임상의학에서 연구발표 된 바로는 수면장애를 격는 인간은 공격성이 크게 나타나요. 감정이 격정적이고 폭력적으로 변한다고 하죠."
"그거 걱정이군. 언제 싸움 날 지 모르니 변호사라도 구해볼까?"
"장난은 그만하시지요. 회장님."
달칵. 강혜정은 손에 들고 있던 의료용 PDA를 내려 놓았다.

그녀의 어투는 조금 전의 냉랭한 회장 전속 주치의. 그저 업무에만 충실한 여인으로 돌아와 있었다.
"실제로 회장님께서는 탁월한 조절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지만 그게 언제까지 이성으로 제어가 가능한 지는 아무도 모르죠. 넘쳐나는 공격성을 업무에 집중하는 걸로 이제껏 박명건설의 발전에 박차를 가해 오신건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직원으로서."
직원으로서. 라는 말을 강조하며 딸은 아버지에게 도전적인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그 공격성의 통제에 실패하시게 되면, 회장님처럼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신 분이 어떤 일을 벌이실 지는 아무도 예측이 힘듭니다. 특히, 자기 절제에 능하고 지능이 높으며 비밀이 많으신 분은 가장 위험하게 될 가능성이 있죠."
"흠."
강수만은 짤막하게 대답했다. 언뜻 그의 얼굴에 어두운 표정이 드러났다.
"무슨 이야기라도 들은게냐?"
"안 좋은 소문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걸 굳이 제 입으로 말 해야 할까요?"
흥! 강혜정은 차갑게 강수만을 노려보았다.

그 얼굴에는 인자한 아버지가 아니라 탐욕스런 재벌을 대하는 경멸감이 가득했다.  
"더 강한 약을 써서라도 잠을 주무시든지, 아니면 다른 여가생활이라도 해 보세요. 위험한 취미는 그만 접어두시고요."
"....노력해 보마."
탁.
PDA를 집어들고 강혜정은 돌아섰다. 또각또각. 요란한 금속성을 울리며 회장의 주치의가 회장실을 나섰다.

언뜻 강수만의 얼굴에 차가운 기색이 돌아왔다. 조금전의 인간적인 고뇌를 표하던 얼굴과 전혀 다른 면모였다.
"도어 록. 안티 레디오."
스르릉. 잘칵. 타타탁.
강수만의 지시에 문이 단단히 잠겼다.

뒤이어 방음 셔터가 내려와 회장실 전체를 단단하게 둘러쌌다.

이제 이 방은 완전히 세상과 격리된 것이다.

인공위성에서 쏘아낸 레이저도청기라 해도 일곱겹의 방음 셔터를 뚫고 듣지는 못할 터다.
"보안회선. 7번채널."
-보안회선 작동합니다. 7번 채널로 연결합니다.
컴퓨터가 나즈막한 기계음으로 알렸다. 잠시뒤 커다란 스크린이 펼쳐지고 무표정한 얼굴의 미녀. 동양계의 가느다란 눈. 검은머리의 여인이 나타나 고개를 숙였다.
"여자는?"
"소각했습니다."
컴퓨터 기계음에 뒤지지 않는 무감정한 목소리다. 죽은 사람의 시신을 태워 없앴다는 말을 하면서도 그녀는 조금의 표정 변화도 없었다.
"흔적처리도 잊지말게. 스캔들 캐내려는 언론사가 붙으면 골치아파."
"이미 청소팀을 보냈습니다. 회장님의 사저를 모두 이온화 청소했고, 페르슈바양과 유사한 외모를 가진 팀원이 데코이를 맡았습니다. 사저 밖으로 안전하게 귀가 하는 모습까지 보였으니 의심을 사지 않을 겁니다."
"그여자 이름이 페르슈바였나? 흐음. 일 처리는 잘했군. 실종 처리야 경찰에서 알아서 하겠지. "
강수만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의 오른팔과 왼팔. 전략기획실과 7번팀-회장직속경호팀-만큼은 이제껏 그에게 실망을 안긴 적이 없었다. 이제껏 그들은 강수만 밑에서 10년을 버티고 있었다. 10년간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사고로 죽거나, 적대 기업에게 암살당하거나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하는 일이 있었어도 이 두사람만큼은 그런 일을 당할 실수는 벌인적이 없었다. 
"혜정이에게 소문이 들어가고 있나?"
"....죄송합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말해보게."
강수만의 얼굴에 고뇌가 서렸다. 이제껏 여러번 보인 고뇌의 얼굴과 달리 처음으로 보이는 진짜 고뇌였다. 요구가 떨어지자 여인. 7번팀의 팀장은 즉각 대답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아버지를 걱정하는 따님의 마음이셨습니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회장님을 관리하다보니 뭔가 이상한 흔적을 본 모양입니다."
"흔적이라."
"이따금 회장님이 사저에 여자들을 들이시는 것까지는 압니다."
"그 뒤로는?"  
"정확히는 모릅니다. 더 아는 사람과의 접근은 저희가 <배제> 했습니다. 아마. 그 때문에 의심을 더 하고 계실 겁니다. 회장님만큼은 아니라도 머리가 명석하신 분이니까요."
"내가 아니라 제 어미를 닮았지."
후우우. 강수만은 자리에 앉아 한숨을 내 쉬었다.

위험한 비밀을 들키지 않았다는 안도. 그리고 떠나간 사람에 대한 애증이다.

딸은 커가면 커 갈수록 어머니를 닮아갔다. 그 딸을 볼 때마다 느끼는 아버지로서의 감정은 복잡하기 짝이 없었다.
"한가지 부탁을 해도 될까? 마유라군?"
"말씀하시지요."
"자네가 보기엔 어떤가. 솔직히 말해보게 내게 문제가 있어 보이나?"
강수만의 말에 마유라는 잠시 침묵했다. 입술을 달싹이던 그녀는 어렵사리 한 마디만 꺼냈다.
"고용인은 오너의 필요에 따라 일하는 사람입니다. 회장님께서 거두어 주시지 않았다면 저는 일본 본토의 침몰이후 굶어 죽거나 몸이나 팔고 있겠죠."
"대답을 피하는군. 자네 말 처럼 내가 자네를 구해줬다 생각하면 자네 느낀바를 말 해주게. 아까 말햇듯 솔직하게."
마유라의 얼굴에 살짝 곤란한 표정이 깃들었다.

철저한 충성. 상명하복을 본성에 간직한 일본인의 후예. 일본이라는 나라는 지도상에서 사라져도 그들의 피는 쉬이 변하지 않는다. 고용주의 명령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지 나름 갈등을 하고 있는 것이리라.
"....아가씨의 말씀대로 통제에 문제가 생기고 계십니다."
"그런가?"
"횟수가 잦아지셨습니다. 격무에 시달리는 높은 분들이 위험한 유흥거리를 찾으시는 경우는 많습니다. 회장님 또한 그 범주에 넣을 수 있으나 그 주기가 점차 짧아진다는 건..." 
"내가 내 폭력성을 통제하지 못하게 된다는 거로군."
"아가씨 말 처럼 약을 써서라도 잠을 주무시는게 필요할 듯 합니다."
강수만의 씁쓸한 말에 마유라는 고개를 숙였다.

면목 없다는 얼굴. 주인의 안위를 이대로 지켜보는 게 송구하다는 표정이다.
"확실히. 피를 보기 시작하게 된 건 수면 부족탓도 있지. 하지만 말이네. 마유라. 자네. 내 다른 문제는 아는가?"
"어떤 문제를 말씀이신지?"
"대개의 연쇄살인범은 공통적으로 한가지 문제가 있네."
강수만의 말에 마유라의 얼굴에 살짝 홍조가 어렸다.

무표정하던 그녀의 얼굴에 부끄러움이 돌자 화사한 아름다움으로 변했다.

강수만은 눈살을 찌푸리며 손을 내저었다.
"자네를 내 다음 유흥거리로 삼고 싶지 않으니 그런 표정은 짓지말게."
"죄송합니다. 저는... 회장님의 신체에 대해서는 알아도 아는 것이 아닙니다."
마유라가 고개를 숙였다.
"알지만 관여하지 않는다. 일본인 다운 생각이로군. 그래. 어쨌든 이것도 문제야. 사는 낙이고 스트레스고 도무지 풀데가 없으니 가면 갈수록 괴물이 되어가는군."
강수만은 조용히 끄덕였다.
성적 스트레스. 극심한 심인성 임포텐츠(발기불능)이 그의 문제거리였다.

불면증도, 바쁜업무의 스트레스도 그를 갉아먹었지만, 한창 나이때에, 더군다나 신체적 건강은 완벽한 몸인데도 중요한 때에 힘이 빠져버리는 그의 남성은 이상한 방향으로 정신을 이끌고 있었다.

성욕은 인간의 가장 큰 에너지다. 그게 고스란히 남아 있는 상태에서 배출을 못 하는 것은 사람을 생으로 말려죽이는 거나 다름 없다.
처음에는 강간이었다. 그다음에는 폭행이었다. 그것이 점차 발전해서 이제는 살인으로 까지 변질되어 가는 것이다.
"내 취향까지 알고 있는가?"
"하드한 SM이셨던걸로 알고 있습니다. 선택하는 유흥상대는 프라이드가 높고 도도한 여성.... 작고한 사모님과 같은 타입... 죄송합니다."
마유라의 말에 강수만은 잠깐 신음을 흘렸다. 가늘게 뜬 눈. 언뜻 그의 눈에 냉혹한 잔광이 서렸다 사라졌다.

뒤이어 남은 눈은 대단히 허망한. 죽은 생선의 그것과 같은 눈이었다.
"돈. 권세. 지위. 모든걸 가진듯 보이지만, 정작 원하는 건 하나도 가지지 못한게 날세. 아마 그 때문에 이리 발악을 하는 거겠지. 자네 말대로... 내가 변하기 시작한건 민정이가 죽은 후 부터일세."
마유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지금 그녀의 고용인은 강수만. 그가 내밀한 사정을 털어 놓는 것은 듣고도 잊어버릴 수 있는 것이다. 위험하면서 강인한 그의 고용인의 비밀. 이걸 오래도록 가지고 있어서는 그녀 또한 안전하지 못하니까.
"가장 걱정되는건 혜정일쎄. 가면 갈수록 제 어미를 닮아가니... 후우..."
강수만이 얼굴을 쓸어내렸다. 조용히 고개 숙이고 있던 마유라는 언뜻 설마. 하고 입안에서 중얼거렸다.

그렇게 된다면 큰일이다.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까지 스스로 파괴하고 만다면 그녀의 주인은 정말 괴물이 되어 버릴지도 모른다. 그건 마유라를 통해 박명건설이 지원 하는 일본인 구조 NGO에 대한 원조도 얼마후에 끝나버린다는 말이기도 했다.
막아야 해. 그녀는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후지산의 화산 활동으로 인해 완전히 바다속으로 가라앉은 일본.

땅 자체가 사라져 버린 일본의 실향민들은 임시정부에게서도 버림 받았다.

정작 사회지도층이라는 이유로 재산과 가족을 고스란히 가지고 이민에 성공한 일본 임시정부.

그들은 재산도 없고 가진건 몸뚱이 밖에 없는 쓸모 없는 일본인을 돌보지 않는다.

마유라와 몇몇 안되는 NGO들. 주로 위험하고 더러운일에 종사하는 사회적 쓰레기들만이 가련한 일본인들의 유일한 목숨줄이다. 결국. 그녀는 예전에 닿았던 옛 끈 하나를 떠올렸다.
"사모님께는 비견할 수 없겠습니다만... 혹여 <대용품>을 찾을 수 있다면 어찌 하시겠습니까?"
"대용품이라?"
마유라의 엉뚱한 말에 강수만은 갸웃거렸다. 그리고 피식 웃었다.
"자네는 SM을 모르는군. 완전한 복종과 지배. 그건 외모가 닮은 사람으로 채워지는게 아닐세. 가히 영혼과 영혼의 만남. 완전한 링크가 아니면 내 욕망은 채워지지 않아. 괜히 시체만 하나 늘일 뿐이지."
강수만은 고개저었다. 그러나 마유라는 거기에 다시 고개 저었다.
"확실히 저는 모릅니다만... 제가 아는 사람이라면 어쩌면 회장님께 적절한 서브(SUB)를 찾아 드릴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회장님께서는 더 이상 스스로도 원하지 않는 위험한 유흥을 그만두실 수도 있습니다."
"흐음."
강수만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리고 잊었던 것 하나를 떠올렸다.
2100년도의 일본. 그곳은 극도의 성문란이 국가 전체에 퍼져있었던 곳이다.

일본인 중에서도 위험한 일. 권력자들의 청소일을 맡아해오던 마유라라면 어쩌면 그런 쪽에 대해서도 알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목장... 이라고 해야할지.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서브들을 공급하는 곳이 있습니다. 친분은 없지만 업무상의 연결이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목장이라. 어울리는 단어로군. 일본인인가?"
"일본인이긴 하지만... 한국계입니다. 일본이 침몰하며 생긴 혼슈쪽의 섬. 그중하나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부자인가 보군."
"회장님 같은 분이 고객이니까요. 물론, 정말 박명건설의 회장같은 초대형 의뢰인은 그도 얼떨떨 해 할 겁니다."
스윽. 강수만의 얼굴에 열기가 오르기 시작했다.

미미하지만 호흡도 가빠졌다. 강렬한 기대. 흥분. 그것이 이 냉혈의 사내를 흔들고 있었다.
"그곳의 이름은?"
"판데모니엄이라 합니다.  그러니까... 음란하고 방탕한 자들의 지옥이라는 뜻이죠." 

마유라의 고운 얼굴에 다시금 살짝 홍조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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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컨셉 : SF  에피소드형.  (이것저것 막 집어넣으려면)

현재 컨셉 : 하드 SM + 범죄 심리학 + 정치등 기타. (초반이니까 설정이 들어감)

향후 컨셉 : 로맨스. 일반. 일대다수. 로리. 쇼타. 레즈비언. 트랜스젠더. (한마디로 그날 작가 꼴리는 대로)

참고로 현재까지가 프롤로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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