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설 나향여협 (悖說 裸香女俠) 12
** 白雲俠 著/ 패설 나향여협 (悖說 裸香女俠) 12 **
제 12 장. 천하(天下)의 추녀(醜女) 1.
중원제일의 거호(巨湖) 동정호(洞庭湖)가 자리하고 있는 호남성 북부의 도시 악양(岳陽)에는
동정호의 아름다운 경관을 구경하기 위해 천지사방에서 모여든 유람객, 무림명숙들이 호반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 동정호(洞庭湖) 호반 한쪽, 그래도 사람들이 덜 북적거리는 조용한 언
덕 아래에 자색경장의 여인이 홀로 앉아 말없이 호수의 물결을 바라보고 있었다.
언뜻 그녀의 뒤에서 바라본 모습은 가는 허리(細腰)에 흑단처럼 흘러내린 긴 머릿결..! 절색이
었다. 그러나 그 여인의 앞을 지나며 얼굴을 훔쳐본 행객들은 하나같이 못 볼 것이라도 보았다
는 듯 고개를 돌리며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고개를 숙여 언덕아래의 호수를 바라보고 있던 여인이 고개를 살며시 들었다.
- 헉..!
지나던 과객들이 고개를 돌려 피해갈 만도 했다. 비록 엷은 망사로 얼굴을 가리고는 있으나 부
는 바람에 살랑살랑 들어 올려 진 망사속으로 드러난 여인의 얼굴은 불에 그을린 듯 시커멓게
탄 자국과 덕지덕지 거칠게 붙은 피부의 외피(外皮)가 소름끼치듯 추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런 그 여인의 입에서 혼잣말이 흘러 나왔다.
「모용가의 가주는 이곳 강남으로 행차(行次)를 했다고 했다. 혹시 이곳을 횡행하는 하오문과
모종의 연락을 취하려는 것은 아닌지..!」
혹시나 심양에서의 행동때문에 자신의 정체가 알려져 있을까 염려하여, 역용(易容)을 해 얼굴
모습을 변하게 만든 수린이었다. 한 달여 동안 심양의 모용세가(慕容世家)를 지키며 가주의 아
들 모용경과 그의 후모(後母)인 아화부인(娥花婦人)에게서 알아낸 모용환의 행적을 뒤 쫒아 그
가 옛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나섰다는 이곳 악양(岳陽)으로 달려온 것이었다.
「그래..! 연향루(延香樓)를 찾아가 보자..!」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 수린은 호수 변 한 귀퉁이에 자리 잡은 우거진 수풀로 둘러싸인 장원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한눈에 동정호(洞庭湖)의 빼어난 경관을 바라 볼 수 있는 자리에 위치한 주루 연향루(延香樓)는
강남의 모든 미인이 집결해 있다는 소문으로 중원의 호협들은 앞 다투어 모여드는 강호제일의
기루였다.
또한 연향루의 주인은 하오문(下午門)의 하오삼패(下午三悖)라 알려져 있지 않은가..!
강호의 밑바닥을 맴돌며 자신들만의 독특한 무공으로 닥치는 대로 행패를 부리며 잠행, 경신술
에 능해 강호의 모든 소식을 가장 빠르게 습득할 수 있다는 정보망을 가진 하오문(下午門)이었
다. 방중술 또한 하오문이 자랑하는 절기가 아닌가..? 그 오묘한 방중술을 주루의 여인들에게
가르쳐 연향루(延香樓)를 찾는 강호의 호한들을 기막히게 사로잡고 있었다.
* * * * * * * * * *
「낭자.. 음식을 무얼로 올릴까요..?」
수린이 앉아있는 탁자에 다가와 주문을 받으려던 점원이 갑자기 휙.. 돌아서서 실내의 안쪽에
있는 주인의 방으로 달려 들어갔다. 망사아래로 수린의 얼굴을 얼핏 본 점원은 기겁을 할 정도
로 놀라 주인에게 아뢰러 들어간 것이었다.
조금 후..!
점원의 안내를 받아 뚜벅뚜벅 수린의 앞으로 다가온, 주루의 관리인인 듯한 훤칠한 키의 거한이
수린을 향해 낮으나 힘이 잔뜩 실린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낭자.. 이곳은 점잖은 손님들이 출입을 하는 격조 높은 집입니다. 낭자처럼 손님에게 불편을
주시는 분은 받지 않습니다.」
수린의 용모를 보고 연향루의 손님들이 놀랄까 출객(出客)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흐흐흐.. 이 주루는 객(客)을 가려가며 받는단 말인가..? 실없는 소리 말고 향주(香酒)나 한
병 가져 오시오..!」
고개를 들지도 않고 한마디를 던지는 수린을 향해 관리인인 듯한 그 거한이 언성을 높였다.
「어허.. 낭자..! 사람을 불러 들어내기 전에 빨리 나가는 게 좋을 거외다..!」
「쯧쯧.. 주인장..! 자.. 계산이오.. 어서 음식이나 가져다주시오..!」
수린의 오른손이 주인의 눈앞을 번쩍 스쳐 지나갔다. 그 순간..!
- 탁.. 탁.. 탁 탁 탁 ..!
수린의 손에서 날아간 몆개의 은화가 주루의 입구에 있는 계산대의 위에 마치 탑을 쌓듯 수직으
로 놓여 져 있었다.
「이 낭자가..? 보아하니 시비를 자초하고 있구나..! 그 정도의 무공으로 위세를 부려 자리에
눌러 앉아 있겠다..? 푸하하.. 이곳이 그리도 만만해 보이더냐..?」
관리인은 이 엉뚱한 낭자가 분명 자신의 무공을 과시하며 주루를 비웃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이제 무공을 펼쳐서라도 쫓아내려 작정을 하고는 한손을 들어 탁자를 내려찍었다.
- 우당탕.. 쿵.. 쾅.. 우지끈..!
수린이 앉아있던 탁자가 두 동강이가 나며 부서진 탁자의 파편이 이리저리 흩날리고, 그 파편을
피하려는 손님들로 연향루(延香樓)의 실내가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으악.. 아아악..!」
그러나 오히려 손으로 탁자를 내려치던 관리인이 손등을 움켜쥐고 비명을 지르며 실내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어느 사이엔가 관리인의 손바닥에는 길고 가는 젓가락이 꽂혀 관통을 해 선혈을 뿜어내고 있는
것이었다.
- 다다다닷..!
관리인이 내지르는 비명소리에 연향루(延香樓)의 내실에서 발자국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며 다급
히 뛰어나오는 세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다.
「손님들 계시는 자리에서 이 무슨 고함소리냐..! 누가 행패를 부리고 있는 것이냐..?」
달려 나와 넘어져 있는 관리인을 바라보고도 그 상처는 아랑곳도 하지 않고 눈을 부라리며 고함
을 지르는 그들을 보고는 넘어져 있는 관리인이 겁에 질려 부들부들 떨며 수린을 가리켰다.
「저.. 저년이..!」
말을 다 하기도 전에 세 사람중 가장 가까이에 있던 한사람이 넘어져 있는 관리인을 향해 호통
을 쳣다.
「이 병신 같은 놈.. 별 것 아닌 여자아이 하나 처리 못하고 이 소란이냐..!」
순간.. 철썩..!
넘어져 있는 관리인의 뺨에서 불꽃이 튀었다. 관리인의 뺨을 후려갈긴 그 사람이 고개를 돌려
수린을 향해 입을 열었다.
「하오삼패(下午三悖)가 버티고 있는 이 주루에서 감히 행패를 부리다니..! 네년은 도대체 누구
냐..?」
씩씩거리는 숨소리를 겨우 참으며 그래도 딴에는 점잖게 한마디를 한 것이었다.
「푸훗.. 이제는 별놈들이 다 날뛰고 있구나..! 음식점에 들어온 손님에게 접대만 잘 하면 될
일이지 무슨..! 하오삼패는 또 무슨 별난 음식이냐..?」
「허걱..! 이 망할 년이..!」
- 펑.. 퍼엉.. 쾅..!
수린의 놀리듯 하는 말에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오른 하오삼패의 손에서 번개 같은 장풍이 던져
져 나왔다.
- 주르르르.. 콰앙.. 털석..!
연향루(延香樓)실내에 앉아 구경을 하던 수많은 손님들은 조금 전 수린의 모습을 보고는 그래도
한가닥 높은 무공을 가져 저리도 큰소리를 치고 있구나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불현듯 뿜어낸
하오삼패의 장풍에 꼼짝없이 가슴에 장력을 맞아, 아악..! 비명을 지르며 몸이 부웅 날아 올라
뒷 구석에 쳐 박혀 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실내의 손님들은 웅성웅성 당황한 표정만 지
으며 서로 바라만 보고 있었다.
하오삼패의 패악스러운 성격을 잘 알고 있는 그들이었기에 감히 나서서 돕지는 못하고 수군거리
고만 있는 것이었다.
바로 그때 실내 구석 한쪽에서 조용히 차를 마시고 있던 백의청년이 휙.. 몸을 날려 앞으로 나
섰다.
「그만들 하시오. 주루를 찾은 손님을 핍박한 잘못은 이곳 주인이 감당을 해야 할일..! 아무 잘
못없는 이 낭자에게 왜 행패를 부리고 있소이까..? 또다시 손님에게 무례를 한다면 내 손이 용
서치 않을 것이오..!」
갑자기 앞나서 훈계하듯 말하는 백의청년을 바라보던 하오삼패가 가소롭다는 듯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크크크크.. 네놈은 또 누구냐..? 비켜라 이놈..!」
그 순간 하오삼패의 손에서 백의 청년을 향해 날카로운 장풍이 터져 나갔다.
- 휙.. 쉬이익.. 슈웅..!
하오삼패의 손에서 불시에 날아든 무시무시한 장력이 백의청년을 휩쓸어 가려는 그 순간 어찌
된 영문인지 하오삼패가 손으로 얼굴을 감사 쥐며 주르르.. 수 걸음 뒤로 밀려나고 있었다.
백의청년의 신형이 눈에 보이지도 않은 번개 같은 신법을 시전해 하오삼패의 백회혈을 슬쩍 건
드리고 사라진 것이었다.
순식간에 저 멀리 달려가고 있는 백의청년의 품에는 수린이 안겨져 있었으며, 그가 뱉어낸 호통
소리가 연향루를 향해 길게 울리고 있었다.
「하오삼패라 했느냐..? 본 공자의 손가락에 내공을 조금만이라도 주입시켰다면 네놈들의 목숨
은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다음부터는 연향루를 찾는 손님의 지위, 행색을 가리지 말고 공손
해야 할 것이다..!」
* * * * * * * * * *
수린을 품에 안고 연향루를 벗어난 백의청년은 우선 급한 대로 동정호수(洞庭湖水)변에 서있는
정자로 뛰어 들어가 수린을 바닥에 살며시 눕혔다.
「낭자.. 정신 차리시오..!」
그러나 수린의 눈은 꼭 감긴 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어허.. 남녀가 유별한데 이럴 어쩌나..! 이 낭자가 괜한 호기를 부리다 그놈들의 장(掌)을
가슴에 정통으로 맞았구나..! 그래.. 깨어나기 전에 얼른 막힌 혈도를 풀어주자. 그러면 아무도
모르게 이 낭자의 상처는 치료되고 낭자가 정신이 들기 전에 내가 사라져 버리면, 이 낭자가 깨
어 나더라도 지금의 상황을 모르니 얼굴을 붉히지 않아도 될 것이 아닌가..!」
마음을 굳힌 백의청년은 살며시 손을 가져가 수린의 가슴을 옥죄고 있는 옷자락과 빨간 젖가리
게를 풀어 헤쳤다. 그순간 옷에 눌려 꼭꼭 숨어있던 젖무덤이 부르르 떨며 풍선처럼 튕겨져 나
왔다.
「허헉..!」
백의청년의 입에서 짧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징그러울 정도로 추한 얼굴을 한 이 낭자의 속살
이 이렇듯 희며 매끄럽고 탄력이 있을 줄이야..!
얼굴과는 너무나 다른 수린의 봉긋한 유방을 보고는 가슴이 두근거리고 호흡이 가빠지는 백의청
년이었다.
그러나 그 속살을 감상하며 즐기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벌써 그녀의 가슴에는 시커멓게 번져가
는 장흔(掌痕)이 혈맥을 파고 드려 하지 않은가..?
정신을 차린 백의청년은 손을 뻗어 수린의 유방위에 가져가 손바닥을 밀착 시키고 진기를 불어
넣기 시작했다.
추궁과혈(推宮過穴)의 내공을 시전해 수린의 막힌 혈도를 풀어주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참
의 시간이 흐른 후..!
「으으응..!」
수린의 입에서 가녀린 신음소리가 흘러 나왔다. 이윽고 막힌 혈도가 풀린 수린이 혼절에서 깨어
나고 있는 것이었다.
잠깐 수린의 안색을 살피던 백의청년은 이제는 됐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신형을 공중으로 솟
구쳐 호수 위 허공을 날아 저 멀리 사라지고 있었다.
* * * * * * * * * *
살며시 눈을 뜬 수린은 혼자 뜻 모를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잘생기고 당당한 청년이다..! 남을 위할 줄 아는 마음도 가졌고 품행(品行)또한 어질고 너그럽
구나..!)
연향루(延香樓)가 하오문의 소굴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그들을 앙분(昻奮;매우 흥분함)시켜 출수
(出手)를 하게 만들어 스스로 그들의 절정 장력을 몸으로 받아본 수린이었다.
그러나 수린은 혼절한 것이 아니었다.
다만 하오삼패가 뿌린 장풍이 자신의 가슴에 닿는 순간 귀식대법(龜息大法)을 운용해 호흡을 멈
추고 심장의 박동까지 정지시켜 마치 목숨을 잃었거나 심하게 기절한 것처럼 보여 주어 그들의
동정을 살피려 한 것 뿐이었다. 그 순간 연향루의 한 귀퉁이에 앉아있던 백의청년은 수린이 그
들의 장력에 치명상을 당하지는 않았는가 염려한 나머지 순식간에 수린을 품에 안고 그 자리를
벗어나, 얼떨결에 남정네의 품에 안기게 된 수린은 어쩔 수 없이 혼절한 척 눈을 뜰 수가 없었
던 것이었다.
(아니다. 이 장흔(掌痕)도 아니었다.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스스로 자신의 몸으로 받아본 하오문의 장흔도 아버지의 시신에 찍혀있던 장흔과는 달랐다. 모
용가가 자랑하는 그 구첩파정(九疊破鼎)의 장흔도, 오늘 확인한 하오문의 장흔도 아니다..! 그
렇다면 그 설산의 눈위에 적혀있던 문파의 이름은..? 오히려 의문만 더욱 고조된 수린의 머릿속
은 혼란만 가중되어 갔다.
(그래.. 연향루 실내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던 한 무리 군웅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지 않
았던가..! 청성이 있는 성도로 가보아야 겠다.)
소문을 접하기 위해 찾아든 연환루의 자리에 앉아 있던 잠깐의 시간에, 실내의 군웅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던 잡다한 말 속에, 이곳 동정호반의 난간위 조용한 장소에서 모용가의 가주 모용
환이 머리에 두건을 쓴 도인과 은밀히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는 소리를 언뜻 들은 듯 했
던 그 광경을 떠올린 것이었다.
* * * * * * * * * *
무후사(武侯祠)를 지나 성도(成都)의 대로로 접어들면 반듯하게 닦여진 관도의 양옆으로 푸른
수목이 높이 늘어서 있고, 바삐 오가는 수많은 과객들은 즐비하게 이어져 있는 상점들에 쌓여져
있는 기기묘묘한 물건들을 구경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 많은 과객들 중에 유독 눈에 띠는 무림인들..! 머리에 검은 두건을 쓴 세명의 도인들이 길을
지나고 있었다.
그 세 명의 도인들이 지나고 있는 길의 뒷쪽에는 몸을 숨겨 가며 그들의 뒤를 따르고 있는 자색
(紫色) 경장(輕裝)의 여인..! 강남을 떠나 이곳으로 달려온, 얼굴을 검은 망사로 가리고 고개를
숙여 살금살금 움직이고 있는 수린이었다.
(분명 모용환은 어느 도인(道人)을 만났다 했다. 머리에 검을 두건을 쓰고 강호를 활보하는 도
인의 집단(集團)은 청성의 도인들 뿐..! 그들을 주시하면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수린은 슬쩍 슬쩍 스치듯 도인들의 곁을 지났다 되돌아오곤 하며 귀를 쫑긋 세워 도인들이 서
로 나누고 있는 말을 엿들으려 애쓰고 있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러나 길을 오가는 어느 누구도
수린의 행동을 알아차리는 행객(行客)은 없었다.
느긋한 걸음걸이로 관도를 지나던 청성의 도인들이 관도를 벗어나 수풀이 우거진 산길로 접어
들자 피로한 몸을 쉬어가려는 듯 산길의 입구에 있는 아담한 찻집을 찾아 들었다.
그 찻집에는 고개를 넘으려는 많은 무림인들과 여행객들이 자리를 해 술과 차를 들며 담소를 나
누고 있었다.
「어어.. 저 백의청년은..? 어찌 이곳에서 또다시 저 청년을 만나게 되는가..?」
동정호반의 정자에서 자신을 위해 추궁과혈을 시전해주고 사라진 백의청년을 이 찻집에서 또다
시 보게 된 수린은 이번에는 자신이 그의 눈길을 피해 찻집의 구석진 장소를 찾아 들키지 않게
몸을 숨기고 자리해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