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설 나향여협 (悖說 裸香女俠) 17
** 白雲俠 著/ 패설 나향여협 (悖說 裸香女俠) 17 **
제 17 장. 봉황(鳳凰), 백룡(白龍)을 만나다 2.
청성산을 벗어나 성도(成都)의 북서쪽 관현에 도착한 백룡검이 그곳의 아담한 주루앞으로 다가
가자 그를 발견한 주루의 점원이 조르르 달려 나와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공자님..! 계시던 방을 깨끗이 치워 놓았습니다.」
「오.. 고맙구나..! 여기서 며칠을 더 묵어야 할 것 같다. 나중에 음식이나 가져 오너라..!」
뒤따르며 두 사람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던 수린(秀璘)이 고개를 끄덕이며 오던 길을 되돌아 청
성을 향해 몸을 날렸다.
* * * * * * * * * *
「헉..! 대.. 대협..! 어인 일로 다시 찾아오셨소..?」
백운각의 문을 열고 들어서는 백룡검을 보며 무엇이 잘못 되었는가 흠칫 놀란 환중이 얼른 앉을
자리를 안내하며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아.. 아니오..! 한 가지 궁금증이 남아 알아보려고 다시 왔소이다.」
「대협.. 제가 드린 말에 의심스러운 점이 있습니까..? 무엇이 궁금한지요..?」
환중(喚重)은 자신이 지금껏 자신이 한 말을 백룡검이 믿지 못해 다시 찾아왔는가 가슴을 두근
거리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허허.. 그게 아닙니다. 소생이 선배를 도울 것이라 약속까지 한 마당에 더 의심할 일이 뭬가
있겠소이까..? 다만 몇가지 사실만 더 확인을 하고 돌아갈 것이오. 천산에서 그들과 행동을 할
당시 언제나 서로 떨어진 적이 없이 일곱 사람이 함께 움직였습니까..?」
환중은 백룡검이 묻는 말의 의도를 짐작할 수가 없어 한동안 그 당시를 더듬고 있다가 언뜻 생
각이 떠오른 듯 눈망울을 반짝 빛내고 있었다.
「맞습니다. 대협..! 천산을 떠나 중원으로 돌아오던 중 우리를 인솔한 사립 복면인이 천산 설
봉의 뒷마무리가 미진하다며 다시 그곳으로 간일이 있습니다. 그 당시 저의 짧은 소견에 설봉의
시신을 감추려는 것이라 가벼이 넘긴 사안이었지요..!」
「그래요..? 혹시 그 사립인의 특징이 기억나는 것은 없습니까..?」
「그들 모두가 지극히 조심스러워 단서가 될 만한 어떤 행동도 무리하게 하지를 않아 특징을 찾
아 내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렇지..! 그 사립인이 설봉으로 달려가 한동안 돌아오지 않자, 기다
리다지친 그들 중 한명이 혼자 중얼거린 말이 있습니다만..!」
「그.. 그래요..? 무슨 말을 중얼거렸습니까..?」
그 순간.. 백룡검의 어조는 자신도 모르게 날카로와졌다.
「그 말은 `형님이 왜 이리 늦으시나..? 혹시 황산(黃山)으로 먼저 가신 건 아닌지..? 하는 단
순히 기다리다 지친 그 사람들 끼리의 말이었습니다. 단지 그들이 움직이려는 다음 행선지를 말
하는 것인가 생각하여 듣고 흘려버렸던 말이었지요..!」
「황산(黃山)이라..? 그 외에 다른 말은 없었습니까..?」
「예 대협..! 그 말만 하고 입을 닫고는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으음.. 황산(黃山)이라..? 잘 알았소이다. 그런데 환중선배..! 선배님을 얼마 전 무슨 일로
강남을 다녀왔습니까..?」
「강남에는 내가 가지 않고 제자를 보내어.. 어.. 어.. 유(流)대협이 어찌 그 사실을 알고 있습
니까..?」
앗차.. 실수로구나 느낀 환중이 당황함을 감추지 못하고 더듬거리고 있는 그 순간 백룡검의 입
에서 추상같은 호통이 터져 나왔다.
「환중.. 아직도 거짓말을 하며 나를 능멸(陵蔑)하려 하느냐..? 너는 분명 너와 비슷한 처지를
당한 또 한사람을 만나러 간 것이다. 그리고 그 인물은 심양(沈陽) 모용세가의 장주 모용환(慕
容煥)이 틀림없을 것이다..!」
「대.. 대협..! 그 사실을 어찌 알았습니까..? 맞습니다. 그 사람은 모용환이 맞습니다.」
그 순간 백룡검의 오른손이 휘익.. 바람소리를 가르며 장심(掌心)에서 한줄기 기공(氣攻)이 뻗
어가 환중도인이 앉아있는 등 뒤의 벽에 둥근 원의 흔적을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는 온몸을 사
시나무 떨듯 벌벌 떨고 있는 환중은 향해 다그쳤다.
「환중..! 저 벽의 동그라미 속에 청성의 일장을 뿌려라..! 최상의 공력(功力)을 장심에 모아
펼쳐야 할 것이다..!」
백룡검의 노기 가득한 기백에 벌벌 떨며 영문도 모르고 일장(一掌)을 내지르는 환중을 측은한
눈으로 바라보던 백룡검이 장력(掌力)을 뿌려내고 돌아서는 환중을 향해 조용히 말했다.
「쯧쯧 이 장흔(掌痕)도 아니구나..! 백룡검과 대화를 나눌 때 미리 그 사실을 밝혔으면 내가
다시 선배를 찾을 일이 없었을 것을..! 환중선배님.. 솔직히 말해주어 고맙습니다.. 그럼..!」
뒤돌아 보지도 않고 청성의 하늘위로 날아올라 그 신형은 허공 저 멀리 사라지고 있었다.
「이.. 이게 무슨 말이냐..? 백룡검이 백룡검과 대화를 나눌 때라니..? 그렇다. 저 사람의 체구
는 먼저 이곳에 왔던 백룡검의 신체보다는 왜소(矮小)하다. 어허.. 내가 무엇에 홀렸구나..! 어
엇.. 장흔이라 했다. 그렇다면 저 사람이 모용장주가 말하던 그 사람..? 일곱 개의 장흔을 확인
하고 다닌다는 그 낭자란 말인가..?」
이제는 진정 혼이 빠진 듯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환공도인의 모습이었다.
환공도인이 지금껏 백룡검으로 알고 대화를 나눈 상대는 환형대법(換形大法)을 이용하여 진면목
을 바꾼 수린(秀璘)이었던 것이었다.
* * * * * * * * * *
먼동이 트려 동녘하늘이 뿌옇게 밝아오는 시각..!
자색 그림자가 관현의 아담한 주루 아앵루(娥鶯樓)의 담장을 뛰어넘고 있었다. 청성을 떠나 다
시 백룡검이 머물고 있는 주루를 찾아온 수린(秀璘)이었다.
「잠이 들었을까..?」
소리없이 객방의 창문곁으로 다가서던 수린이 멈칫 걸음을 멈추었다. 객방의 실내에서 사람의
움직이는 기척이 공기의 흐름을 타고 희미하게 느껴져 오는 것이었다.
「문은 열려 있으니 나를 찾는 손님이면 들어오시고 아니면 조용히 물러가시오..!」
뒤이어 방안에서 육중한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호호호.. 검후(劍侯)라 강호무림의 존경을 받고 있는 백룡검(白龍劍)이 청성의 도인과 장문인
의 자리를 놓고 야합(野合)을 하다니..! 과연 대단하시구려..!」
「헉.. 누.. 누구냐..?」
「호호호.. 말한마디에 청성의 제자를 꼼짝 못하게 하는 재주.. 과연 인걸(人傑)이시오..!」
이미 일어나 긴장한 모습으로 자리에 앉아 있던 백룡검이 비웃듯 놀리며 들어서는 수린(秀璘)을
바라보고 깜짝 놀랐다.
「어어.. 낭자는..? 동정호(洞庭湖)옆의 그 연향루(延香樓)에서 하오삼패(下午三悖)에게 큰 부
상을 당했던 그 낭자가 아니오..?」
추하디 추한 얼굴을 가졌으나 그녀에게 추궁과혈(推宮過穴)의 내공을 시전할 때 그 뽀얀 속살을
신기한 듯 바라보았던 그 여인이 아닌가..! 백룡검은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호호호.. 구명의 인사라도 드리려 찾아 왔습니다..!」
「어허.. 낭자는 분명 혼절을 해 분간이 없었을 텐데, 낭자를 구한 사람이 소생이라는 사실은
어찌 알았소..?」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천하의 백룡검이 무공이 높음을 빙자하여 청성을 어지럽히려 한
다는 그 사실이 강호의 웃음거리가 될 뿐..!」
「아.. 아니오.. 낭자 오해 마시오..! 청성에서의 일은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소이다.」
속시원히 설명을 하여 사정을 밝히려 해도 사문의 명예가 걸린 중요한 사안인 만큼 자세히 알리
지도 못하고 마음만 답답해하는 백룡검에게 다시 속을 긁어놓는 수린이었다.
「호호호.. 백룡검..! 무슨 말 못할 사정이라 환중도인에게 화골환(化骨丸)이라 거짓말까지 해
가며 그를 핍박하고 있었던 것이오..? 혹시 무림을 그 손아귀에 넣으려 청성부터 장악하려는 것
은 아니오..?」 」
「이것 참.. 아니라는데..! 자.. 잠깐.. 낭자가 어찌 내가 환중에게 한 말을 그리도 자세히 알
고 있는 것이오..? 그러고 보니 연향루(延香樓)에서의 그 일도 나에게 접근을 하기위해 부상을
당한 척 한 것이로구나..! 낭자..! 어서 낭자의 정체를 바른대로 밝히시오..!」
아무도 모르게 환중도인과 단둘이서만 이루어진 말과 행동..! 그 모든 일들을 정제모를 이 낭자
가 마치 함께 있었던 것처럼 모조리 알고 있다. 은밀히 자신의 뒤를 추적하지 않고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일들 이었다.
백룡검의 머릿속에는 남해의 그 처절한 음행과 살육이 불현듯 떠오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혹시 내가 보타암의 사건을 파헤치고 다닌다는 사실을 알고 그놈들이 나의 행동을 감시하는 것
은 아닐까..?)
백룡검은 상대가 자신의 행동을 경계하기 위해 감시를 하는 인물이라면 더없이 좋은 기회라 여
겨 이 낭자를 단단히 추궁을 하기로 작정을 하며 온몸의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내 정체라..? 그 보다 대협이 저지른 그 사행(邪行)의 이유를 먼저 밝히시오. 아니면 백룡검
이 청성에 저지른 그 사악한 행위를 내가 강호 무림에 모두 알릴 것이외다..!」
「이.. 이.. 내가 아니라고 했건만..! 낭자.. 어서 정체를 밝히지 않으면 내 손이 낭자를 가만
두지 않을 것이오..!」
「말문이 막히니 무력이라..? 검후 백룡검의 진면목이 겨우 이것이었던가..? 쯧쯧..! 그만 두시
오. 나는 돌아가리다. 호호호호.. 앞으로 강호 무림이 검후를 무엇이라 칭(稱)할 것인가..?」
상대를 할만 한 인물이 아니라는 듯 혀까지 차며 돌아서는 수린(秀璘)을 향해 번개같이 몸을 날
려 앞을 막아서는 백룡검의 눈빛은 분노에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여인의 몸이라 생각해 많은 양보를 하여 정체만 밝히면 나의 뒤를 파헤친 그 행위도 용서하려
했건만 않돼겠구나..! 낭자.. 정체를 밝히지 않으면 이 방을 나갈 수 없을 것이오..!」
말과 동시에 백룡검의 손이 수린(秀璘)의 손목으로 순식간에 날아오며 손목의 혈도 완맥(腕脈)
낚아채려 했다.
「호호호.. 어림없는 일..!」
그 순간 눈앞의 수린은 온데간데없고 완맥을 향해 날아가던 백룡검의 손목이 오히려 점혈을
당한 듯 따끔..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앗차..! 내가 상대를 너무 얕보았구나..!)
백룡검은 재빨리 한발 뒤로 물러서며 순식간에 위로 날아올라 백룡검이 뿌려낸 장(掌)을 피하고
가벼이 내려앉는 수린을 향해 또다시 양손을 휘둘렀다. 백룡검의 양손에서 뻗어나간 장력은 눈
에 보이지도 않는 빠르기로 섬광처럼 온 방안으로 펼쳐져 날아가며 한쪽은 수린의 왼쪽 팔 천정
(天井)과 곡지(曲地)의 두 혈도를 향하고 다른 손에서 펼쳐진 장풍은 뒤이어 오추(五樞)와 유도
(由道)두 혈도를 찍으려 날아들었다.
전신의 다섯 군데의 혈도를 한순간에 노리며 수린을 꼼짝 못하게 가두어 버린 것이었다.
그 순간..!
빙글.. 자색의 그림자가 백룡검의 시야를 흐리며 그의 주변을 빙빙 돌고 있었다. 그 원의 움직
임에 온 방안은 자색의 그림자가 가득해지며 그 그림자속에서 옥(玉)을 구르는 듯한 웃음소리가
흘러 나왔다.
「호호호호호.. 그만.. 공자님.. 그만 됐습니다. 손을 거두세요..! 제가 공자께 호기를 좀 부려
보았습니다.」
웃음소리와 동시에 백룡검이 뿌려낸 장력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그의 앞에는 덕지덕지
딱지가 않는 그 추한 얼굴의 여인이 아닌 청아세요(靑蛾細腰)의 가인(佳人)이 푸른 향기를 풍기
며 우뚝 서 있었다.
「어어어어어..!」
이런 놀라운 변화가 있을 수 있는가..? 백룡검은 입이 다물어 지지를 않았다. 자신이 펼쳐낸 무
공을 장난처럼 벗어난 것만으로도 놀라 정신이 혼미할 상황이건만 환골탈태(換骨脫胎)를 한 듯
절색의 미인이 다감한 미소를 머금고 자신의 앞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진정 놀라 혼이 나갈
지경이었다.
「호호호.. 대협..! 아니 신웅 공자님..! 용서 하십시오. 제가 불경(不敬)스럽게도 공자의 뒤를
미행해 백운각의 천정에 숨어 있었습니다.」
「어어.. 정말이외까..? 나에게 기척을 숨기고 내 뒤를 미행했다는 말입니까..?」
당금 강호에 자신에게 들키지 않고 뒤를 따를 수 있는 무림인이 과연 누가 있겠는가..? 그런데
이 여인은 청성까지 자신을 뒤 쫒아 백운각의 천정에 숨어들었다고 한다. 또한 환중과 그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천정위의 존재를 추호도 눈치 채지를 못했다. 과연 대단한 은신공력
이 아닌가..!
「예.. 공자..! 부득이 한 사정으로 뒤를 미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기 이곳 주루까지 뒤를
쫒아 공자께서 이곳에 묵고 있다는 사실을 획인한 후, 다시 청성으로 달려가 환중의 입에서 새
로운 사실도 밝혀내고 왔습니다.」
「뭐.. 뭐라 하셨소.. 새로운 사실이라니..?」
수린(秀璘)의 한마디 한마디에 갈수록 백룡검의 머리는 더욱 혼란속에 빠져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