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설 나향여협 (悖說 裸香女俠) 15
** 白雲俠 著/ 패설 나향여협 (悖說 裸香女俠) 15 **
제 15 장. 검후(劍侯) 백룡검(白龍劍) 2.
청성의 상청궁 실내에 앉아 청성장문인의 말을 조용히 듣고 있던 백룡검(白龍劍)은 장문인
으로 부터 적하검(寂河劍)을 지키는 사람이 환중(喚重)도인 이라는 설명을 듣자 날카로운
시선으로 환중(喚重)의 표정을 훑어보았다.
「환중(喚重)도인.. 백운각에 보관된 적하검(寂河劍)을 반출 할 때는 누구의 허락을 받아야
됩니까..?」
「그야 당연히 장문인의 허락을 받아야지요.」
「그렇다면 장문인의 허락만 있으면 누구나 가지고 나갈 수가 있겠습니다..?」
「그건 아닙니다. 장문인의 허락을 득한 후 적하검(寂河劍)이 백운각 밖으로 나가려면 반드시
빈도의 손으로 허락을 득한 당사자에게 적하검(寂河劍)을 내어 줍니다. 빈도의 손을 거치지 않
으면 비록 장문인이라 할지라도 적하검(寂河劍)을 백운각 밖으로 갖고 나가지를 못합니다.」
백룡검(白龍劍)의 얼굴에 빙긋 웃음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백운각을 지키고 있는 환중(喚重)도인께서는 장문인의 허락이 없어도 아무도 몰래
적하검(寂河劍)을 쉽게 손에 넣을 수 있겠습니다..!」
환중(喚重)의 얼굴빛에는 점점 초조함이 묻어나 쉬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한 듯 호흡이 불규칙해
지며 얼굴은 점점 붉어지고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 오가는 말을 귀 기울여 듣고 있던 환공(喚空)장문인이 분노를 터뜨렸다.
「이보시오 유대협..! 강호의 모든 무림인의 존경을 받고 있는 백룡검(白龍劍)이 이렇듯 무례한
사람이었소..?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 환중(喚重)사제를 죄인 다루듯 하시오..! 대협의 눈에는
우리 청성(靑城)이 그렇게도 우습게 보이며 나 환공(喚空)이 그리도 만만해 보이시오..?」
「아니.. 아닙니다. 마음이 급하다 보니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장문인께 사죄드립니다. 그럼 소
생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백룡검(白龍劍)이 작별을 고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이 무어라 말을 할 여유도 주지 않고
상청궁의 문밖으로 신형을 날려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어어.. 이것이 아닌데..! 저리도 쉽게 끝내고 물러날 사안이 아닌데..! 더 추궁을 않고 자리를
벗어난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구나..!)
그 순간 더욱 당황한 사람은 수린(秀璘)이었다. 급히 백룡검이 사라진 방향을 향해 신형을 날려
그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 * * * * * * * * *
삼라만상이 잠든 칠흑같이 어두운 밤..!
청성에서 사라진 줄로만 알았던 백룡검(白龍劍)이 날이 어두워지기를 기다려 다시 청성으로 돌
아온 것이었다.
- 휘익.. 훌쩍..!
백운각의 누각 아래로 내려앉은 백룡검(白龍劍)은 조그만 창문의 틈사이로 실내를 들여다 보고
있었다.
「저기로구나..!」
그곳은 백운각내 환중(喚重)도인의 침소였다.
그림자처럼 소리도 없이 날아든 백룡검(白龍劍)은 백운각을 살피다 침소에 잠들어 있는 환중
(喚重)도인을 발견한 것이다.
「헛.. 누.. 누구냐..!」
그 순간..!
- 퍽.. 퍼억..!
「.............!」
고함을 지르고 있었으나 환중(喚重)의 입에서는 고함이 소리가 되어 나오지를 않았다.
순식간에 아혈(啞穴)을 점혈(點穴)당해 눈만 멀뚱멀뚱 뜨고 있는 환중(喚重)은 침소로 날아든
백룡검(白龍劍)을 쳐다보고만 있을 수 밖에 없었다.
- 탁.. 꿀꺽..!
백룡검(白龍劍)은 손을 날려 환중(喚重)도인의 아래턱을 툭 쳐서 입이 열리게 한 다음 환약 한
알을 입속으로 밀어 넣었다.
「환중(喚重)..! 너는 화골환(化骨丸)을 입속으로 삼켰다. 반나절 안에 해독약을 복용하지
않으면 뼈와 살이 모두 녹아 죽게 될 것이다. 지금 네놈의 아혈을 풀어줄 테니 내가 묻는 말
에 한 점 거짓 없이 대답을 하겠느냐..?」
벙긋벙긋 입만 열었다 닫았다 하며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아래위로 끄덕이는 환중(喚重)을 바
라본 백룡검(白龍劍)이 씨익 웃음을 흘리며 손들 휘익 내저었다.
- 툭..!
점혈(點穴)을 당했던 아혈이 풀리자 환중(喚重)은 휴..우 한숨을 내 쉬며 벌레가 스멀스멀 기는
듯한 자신의 몸뚱이를 만져보았다.
아직은 화골환(化骨丸)이 발동을 하지 않아 중독의 증상은 나타나지 않은 것 같았다.
「유(流)대협..! 나와 무슨 원한이 있어 광명정대하기로 이름난 대협이 어찌 기습을 하여 파렴
치 하게 독까지 쓰는 것이오..!」
환중이 내뱉는 말을 들은 백룡검(白龍劍)이 냉소를 머금고 말했다.
「후후.. 파렴치 하다..? 그래 본 공자의 행위에 염치(廉恥)가 없었구나..! 크흐흐흐.. 환중(喚
重)..! 내 그대에게 못할 짓을 했으니 묻고 싶은 것은 다음으로 미루고 그만 돌아가리다.」
발걸음을 돌리는 척 천천히 백룡검의 몸이 문 앞으로 향하자 등 뒤에서 다급한 환중(喚重)의 목소
리가 터져 나왔다.
「대협..! 내가 실언을 했소이다. 무엇이던 물어 주시오. 내 아는 대로 답해 드리리다..!」
그대로 돌아가 버리면 화골환(化骨丸)에 의해 목숨을 잃어 뼈도 남지 않을 것이 아닌가..! 환중
은 한시라도 빨리 해독약을 얻을 요량으로 얼른 태도를 달리한 공손한 어조였다.
「후후.. 본 공자가 묻는 말에 단 한마디 거짓 없이 대답할 수 있겠소이까..?」
환중(喚重)도인은 무릎걸음으로 기다시피 다가와 백룡검(白龍劍)의 바지자락을 잡으며 딱한 목
소리로 사정을 했다.
「어서 말씀하십시오. 내.. 묻는 대로 답하리다. 무엇이든 빨리 물어 보시오..!」
환중이 그렇게 사정하는 순간 백룡검(白龍劍) 신웅(愼雄)의 표정은 싸늘하게 변했다.
「환중(喚重)..! 남해를 찾았던 무림인들은 누구 누구인가..?」
환중(喚重)도인은 백룡검(白龍劍)이 자신의 행위를 묻는 것이 아니고 함께 움직인 사람의 정체
를 묻는 물음에 순간 당황한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이.. 이놈이 어디까지 알고 묻는 말인가..?)
재빨리 머릿속에서 궁리를 하던 환중(喚重)이 결심한 듯 대답을 했다.
「유대협.. 그 일곱 사람의 정체는 나도 알지 못합니다.」
「후후.. 일곱 사람이라..? 환중(喚重)이놈..! 나는 다만 남해를 찾았던 무림인들이라 말했을
따름이다. 그런데 일곱 사람이라..? 역시 그대가 보타암을 피로 물들인 일곱 놈들 중 한 놈임
은 분명한 사실이구나..!」
`앗차..! 내가 스스로 걸려들었구나..! 환중의 얼굴은 사색(死色)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 순간 백룡검의 뒤를 쫒아와 백운각의 천정안에 숨어 귀를 기울이고 있던 수린(秀璘)
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남해 보타암의 일곱 무인이라..! 그 일곱인 중에 청성의 환중이 포함되어 있다. 역시 백룡검이
란 청년은 나와 같은 목적으로 이 청성을 찾아온 것이구나..! 당장 뛰어내려 저놈의 장흔(掌痕)
을 확인해 보아야겠다.)
수린(秀璘)이 마악 몸을 날리려는 순간 환중의 다급한 목소리가 귀를 울렸다.
「그게.. 그것이.. 아닙니다 대협.. 나는 아닙니다..!」
더듬거리며 변명을 하려는 환중(喚重)도인을 향해 백룡검의 추상같은 한마디가 터져 나왔다.
「환중(喚重)..! 이 신웅(愼雄), 강호에 알려지면 받게 될 비난을 무릅쓰고 그대에게 화골환
(化骨丸)을 먹였다. 이제 불과 반나절이면 그대의 목숨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더 이상 감추
어 나를 속일 생각은 말고 사실대로 대답하라.」
「대.. 대협..! 남해에 간 것은 맞으나 진정 그들의 정체는 모릅니다.」
「그렇다면 환중.. 그대와 함께 있었던 사람이 분명 일곱 사람은 맞느냐..?」
「예, 맞습니다.」
뛰어 내리려던 수린(秀璘)이 멈칫 정신을 가다듬었다. 저들의 대화를 좀 더 들어보면 그 일곱명
의 정체가 백룡검에 의해 드러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다시 기척을 숨기기 위해 호흡을 멈추고 방안을 면밀히 살피는 수린(秀璘)의 귀에 두 사람의 이
야기가 이어져 갔다.
「환중(喚重)..! 그렇다 해도 그대 역시 보련신니(菩蓮神尼)에게 공격을 가해 그분의 목숨을 앗
은 것은 분명하렸다..?」
「아니오.. 나는 손을 쓰지 않았습니다. 보련신니(菩蓮神尼)에게 장(掌)을 날린 사람은 나를
제외한 나머지 다섯 명이었습니다. 그것도 신니(神尼)가 불당에 앉아 삼매경에 들어 있는 그
순간 암암리 암경(暗勁)을 가해 공격을 한 것이오. 삼매경에 들지 않았다면 우리 중 어느 누구
도 보련신니(菩蓮神尼)의 신형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다섯이라..? 그대를 제외 한다고 해도 여섯 명이다. 그런데 다섯이라..! 어서 그 자세한 내막
을 말하지 못할까..?」
「그.. 그것이..! 예, 말하지요. 그 당시의 일곱 사람중에 나와 비슷한 처지의 무림인이 또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도 우연히 꼬임에 빠져 합세를 하게 된 인물입니다..!」
「그래..? 좋소, 그대의 말을 인정하리다. 그렇다면 우선 그자의 정체부터 밝히시오..! 그리고
나머지 다섯 명의 신상을 하나하나 말해 보시오..?」
「모릅니다. 우리들 모두가 모습을 숨기고 복면을 해 서로 알아 볼 수가 없었으며 또한 그들이
사용하는 무공은 한번도 본적이 없는 특이한 것이라 그 무공으로도 정체를 파악 낼 수가 없었습
니다.」
「어허.. 이놈 환중..! 조금전 너의 입으로 한사람은 안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지금은
모두 모른다니 진정 화골환(化骨丸)의 독기(毒氣)로 네놈의 몸이 모두 녹아 없어지기를 바란단
말인가..?」
「아니오.. 제발 살려주시오..! 그 무림인도 당연히 복면을 하여 정체는 알 수 없었으나 모두
보련신니(菩蓮神尼)에게 장(掌)을 뿌려대는 그 순간 내가 머뭇거리며 손을 쓰지 않는 것을 보고
슬며시 나의 소매를 잡아끌더이다. 그리고 내 귀에 속삭였지요. 함께 한발 물러나 장력을 펼치
지 말자고 말하면서..!」
「후후후.. 그것 참 이상한 일이로구나..! 패악(悖惡)에 발을 담구어 갖은 음행을 저지르는 상
황에서도 목숨은 소중히 여기고 있었다는 말인가..? 그 무슨 말도 되지 않는 소리를..! 그래..
함께 행동을 했으면서 두 사람은 어찌하여 손을 쓰지 않은 것이오..?」
의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백룡검(白龍劍)에게 환중(喚重)도인이 황망히 대답을 했다.
「나는 단지 그들의 꼬임에 빠져 혹시나 무공비급의 한자락이라도 볼 수 있을까 하여 그들을
따라갔던 것 뿐입니다. 그 한사람도 비급이 탐이 났다 하더이다.」
「득도한 청성의 도인(道人)이 그렇게 쉬 꼬임에 빠졌다..? 그렇다면 봉문을 한 청성에 그들
이 찾아왔더란 말인가..?」
「아니오.. 아니외다.」
「그렇다면 청성산을 벗어나지도 않은 그대가 어떻게 그들을 만날 수 있었다는 말이오..?」
「그건, 음.. 빈도가 책임지고 있는 백운각은 청성의 살림을 맡고 있기도 하는 곳입니다. 때문
에 봉문중이라 하더라도 꼭 필요한 생필품을 구하기 위해 몇몇 제자를 데리고 한번씩은 하산을
해야 하지요.」
「그대의 장문인께서는 봉문중 한사람도 하산을 하지 않았다고 했지 않소이까..?」
「그것은 강호의 활동을 얘기한 것이겠지요. 진정 그동안 강호에 나서서 활동을 한 본문의
제자는 없었습니다. 나와 백운각 소속의 몇 명의 제자들도 장문인의 엄격한 통제 하에 생필품의
수급만을 행하고 있었습니다.」
「그 엄격한 상황에서 어떻게 하여 함께 하산한 백운각 제자들의 눈을 피해 그들과의 접촉이
가능 했소이까..?」
점점 조여드는 백룡검(白龍劍)의 질문에 당황한 환중(喚重)의 등에는 진땀이 흘렀다.
「그건.. 허허참..! 말씀 드리지요. 어느 날.. 하산을 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잠시 쉬기 위해
객잔에 들렸던 날이었지요. 그 때 나와 만났던 무림인은 오직 한사람 이었습니다. 내 귀에
구석자리로 옮겨 오라는 전음이 조그맣게 들려왔습니다. 전음의 방향으로 힐끗 바라 보니 사립
을 눌러 쓴 무림인이 한사람 앉아 손짓을 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환중은 어쩔 수 없이 백룡검에게 그때의 상황을 소상히 털어놓기 시작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