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설 나향여협 (悖說 裸香女俠) 13
** 白雲俠 著/ 패설 나향여협 (悖說 裸香女俠) 13 **
제 13 장. 천하(天下)의 추녀(醜女) 2.
사천성(四川省) 성도의 북서쪽이며 관현의 서남쪽에 위치한 청성산(靑城山)은 무당산, 용호산
과 더불어 도교(道敎)의 삼대성지라 불리는 명산(名山)이다.
성도의 관도를 벗어나 청성산을 오르는 계곡이 시작되는 오솔길 옆 넓은 공터에 자리하고 있는
단촐한 찻집에는 차의 향내가 향기롭게 풍겨나고 있었다.
그곳 한 귀퉁이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는 세 명의 도인들 가까이 자리한 백의청년은 마치 먼눈
을 팔고 있는듯 하면서도 도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이상하다..! 저 청년의 행동이 마치 도인들의 이야기를 엿들으려 하는 것만 같다.)
수린 자신도 도인의 뒤를 염탐하여 온 길이 아닌가..? 그런데 백의청년 역시 저 도인들의 대화
에 신경을 다해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의아해진 수련은 이제 도인들의 행적보다 오히려 백의청
년의 움직임을 더욱 경계를 하고 있었다.
* * * * * * * * * *
그곳 청성산(靑城山)의 거친 계곡의 안개속을 백영(白影)이 번개같이 날아오르고 있었다.
수린이 몸을 숨겨 뒤따르는 것은 추호도 생각치 못하고 오직 경공을 펼쳐 산길을 날아오르고만
있는 그 백의청년이었다.
「음.. 저곳이구나..!」
세 명의 도인들이 산문의 입구로 들어가 사라진 그곳에는 우거진 숲속 높은 나무들로 둘러져 웅
장함을 자랑하고 있는 상청궁, 삼청전, 영관전, 백운각등 네 곳의 높은 건물이 백영(白影)의 눈
앞에 나타났다.
「저곳 상청궁에 장문인이 거처하고 있으렸다..!」
혼잣소리를 중얼거리며 가볍게 몸을 날려 청성파(靑城派) 본산으로 들어가는 입구 돌계단 아래
에 살며시 내려앉았다.
백의청년이 계단을 향해 한발 내딛는 순간..!
우루루.. 달려나온 십여 명의 청성(靑城) 제자들이 백의청년의 앞을 막아섰다.
「누구를 찾아 오셨소이까..?」
「장문인을 만나려 하오. 안내를 해 주시오..!」
「장문인께서는 아무나 접견을 하지 않으시오. 신분을 밝히면 전해주리다.」
「하하하.. 강호의 무명소졸(無名小卒).. 밝힐 이름도 없소이다. 그냥 안내를 부탁드리오..!」
억지를 부리는 것 같은 백의청년의 모습에 청성(靑城) 제자들의 얼굴에는 슬며시 노기를 띠며
저마다 손에 검(劍)을 빼들고 줄줄이 앞을 막아서고 있었다.
「이 놈이..! 젊은 공자.. 청성(靑城)에 시비를 청하려는 것이 아니면 그냥 물러가시오..! 그렇
지 않으면 공자의 재주로 우리를 물리친 후에야 경내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외다..!」
백의청년의 얼굴에 냉소(冷笑;비웃음)가 스쳐 지나갔다.
「흐흐.. 나의 앞을 막겠다..?」
그 순간..!
- 휙.. 휘이익.. 스르릉..!
- 창.. 창.. 창.. 쨍강.. 쨍강.. 쨍강..!
- 팅.. 팅.. 팅 팅 팅.. 챙그렁..!
청성(靑城) 제자들의 눈앞에 한줄기 번개 같은 빛이 휘..익 흘러 지나가며 손에 들고 있던
검(劍)이 모두 두 동강이가 나버렸다.
「아악.. 으으윽..!」
그리고 청성의 제자들은 검(劍)을 쥐고 있던 한쪽 팔을 축.. 늘어뜨리고 있었다.
모두들 놀라 멍청히 얼굴들..!
순식간에 날아든 검강(劍剛)이, 그들이 들고 있던 검을 모조리 동강내며 동시에 혈도를 찍어
그 자리에 꼼짝 못하게 만들어 버린 것이었다.
「후후후.. 본 공자의 앞길을 막은 댓가외다. 모두 그 자리에서 잠깐들 쉬고 계시구려..! 일각
이 지나면 저절로 혈도가 풀리리다..!」
멍하니 바라보며 눈만 껌벅이고 있는 청성도인들을 뒤로 하고 백의청년은 땅을 박차며 신형을
훌쩍 날렸다.
(생각보다 무공이 높구나..! 저 청년은 무슨 일로 이 청성을 찾아 횡포를 부리고 있는 걸까..?)
이미 백의청년을 앞질러 상청궁의 지붕위에 몸을 숨기고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던 수린은 더욱
청년의 정체에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우선은 그의 상황을 지켜보는 것이 급선무..! 백의청년이
움직이는 방향을 쫒아 눈을 부릅뜨고 살펴보고 있었다.
- 휘익.. 펄럭..!
눈 깜짝할 사이 벌써 백의청년은 백영을 번쩍이며 상청궁의 입구에 내려앉았다. 그러나 상청궁
을 들어서는 커다란 목문(木門) 앞에는 이미 청성(靑城)의 경내(境內;지역의 안쪽)를 오르는
입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그 광경를 하나도 빠짐없이 지켜보고 있던 백염(白髥;흰수염)의 도인이
천천히 상청궁의 문 앞으로 걸어 나왔다.
「허허.. 인중지룡(人中之龍)이로고.. 공자는 뉘신데 이렇게 청성(靑城)을 찾아와 소란을 피우
는 것인가..!」
백염(白髥)도인의 얼굴에 노기(怒氣)는 보이지 않았다.
다만 이 젊은 청년의 높은 무공에 경외감(敬畏感;공경스럽고 두려운 마음이 듬)이 가득한 표정
으로 청년을 바라보고 있었다.
「도인께서 청성(靑城)의 장문인이신 환공도장(喚空道長)이십니까..?」
백의청년이 흰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그 도인을 향해 퉁명스럽게 물었다.
「그렇다네..! 빈도가 청성의 장문인 환공이네..!」
「그럼 좌우의 두 분은 환건(喚健), 환중(喚重)도인이 틀림없겠습니다.」
장문인의 물음에 대답은 않고 느릿느릿 자신이 하고픈 말만 하고 있는 백의청년의 말에 환공도
장의 오른쪽에 서있던 검은 장비수염의 도인이 앞으로 나서며 고함을 질렀다.
「이 건방진 어린놈.. 네놈이 누구냐고 장문인께서 묻고 있지 않느냐..? 어찌 장문인의 물음에
대답도 하지 않고 건방지게 네놈의 말만 계속 지껄이고 있느냐..!」
그러나 환공(喚空)도장은 화를 잔뜩 내며 앞으로 나서는 환건도인(喚健道人)을 손을 흔들어 제
지 를 하며 온화한 목소리로 다시 백의청년을 향해 말했다.
「환건(喚健)사제는 나서지 말아라..! 허허허.. 공자, 맞소이다. 이 두 사람은 나의 사제인
환건(喚健)과 환중(喚重)이오. 그런데 어찌 공자는 대명을 밝히지 않으시오..?」
역시 장문인 다웠다.
그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으나 그 말속에 진기가 가득 실려 있었으며 점잖게 백의청년을 추궁하는
말이었다.
「아하.. 죄송합니다. 마음이 급한 탓에 결례를 했습니다. 소생은 남해에서 온 유신웅(流愼雄)
이라 합니다.」
백의청년의 입에서 그의 이름이 흘러나오자 마주하고 있던 세 명의 도인(道人)은 얼굴은 놀라움
에 갑자기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어허.. 저 도인들이 왜 저리도 긴장을 하고 있는가..?)
상청궁 지붕위의 수린은 청성의 도인들이 백의청년의 이름을 확인한 후 갑자기 표정이 굳어지는
모습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그 사이에 환공도장의 입에서 목소리조차 떨리는 공손
한 말이 흘러나왔다.
「어엇..! 남해의 유신웅(流愼雄)이라 하셨소이까..? 그렇다면 으윽..! 검후(劍侯) 백룡검(白龍
劍)대협이 아니십니까..? 미처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사제들.. 어서 인사를 여쭈어라..!」
고개를 숙여 예를 올리고 있는, 청성파를 지주라 할 수 있는 세 도인의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있었다.
(백룡검(白龍劍)..? 호호호 백룡검이라 불리는 대협이라..! 청성의 도인들을 벌벌 떨게 만드는
저 백의청년이 그리도 대단하단 말인가..?)
수린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아니.. 알지 못하는 것이 당연했다. 부모의 품에 안겨 숨어 다니며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이
름..! 또한 이백년을 은거하고 있던 사부 삼봉아도 당연히 모를 현 무림의 인물이 아니던가..!
그러나 저 도인들은 백룡검이란 이름 한마디에 저리도 공손해져 있었다.
* * * * * * * * * *
백룡검(白龍劍) 신웅(愼雄)..!
무공(武功)은 가늠할 수조차 없으며 그 공력은 더 오를 곳이 없을 정도로 고강해 강호(江湖)의
무림인(武林人)이라면 어느 누구도 그 앞에서 무공을 논하기를 꺼려 피해간다는 당금 무림에서
검후(劍侯)로 추앙(推仰)받는 인물이었다.
또한 불의를 보면 추호도 용서없이 일검(一劍)에 도륙을 내어 버린다는 그의 냉혹함 때문에
거리의 파락호들이나 녹림의 흉한들에게는 그 이름만으로도 저승사자를 만난 것 같은 두려움
에 사시나무 떨듯 그 앞에서는 오금을 저리게 만드는 이름이었다.
그 검후(劍侯) 백룡검(白龍劍)을 앞에 두고 세 도인(道人)의 뇌리에는 언뜻 한 가지 무림의 일
화가 생각이 났다.
오래전부터 강호제일로 알려져 온 무림 최고의 검웅(劍雄) 일해낭중(一海浪仲) 천강(千剛)..!
양자강 상류 사천성 봉절의 백제성에서 호북성의 의창(宜昌)의 남진관(南津關)사이를 통과
하는 대협곡 삼협(三峽)에서의 결투를 떠올린 것이었다.
결국 청성의 장문인 환공도장(喚空道長)은 그 결투의 결과에 책임을 지고 청성파의 봉문(封門)
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치욕적인 사건이 아니었던가..!
* * * * * * * * * *
어느 날 혜성처럼 강호에 나타나 중원 무림을 눈 아래로 보고, 정사(正邪) 무림인 가릴 것 없이
맞닥뜨리기만 하면 비무를 요구해 일검 일초만에 상대를 꺼꾸러뜨리며 천하제일을 자칭하고 강
호를 횡행(橫行)하던 일해낭중(一海浪仲) 천강(千剛)이었다.
그러나 그의 오만함은 하늘을 찔러 강호 무림인들은그 앞에서 고개를 들지도 못해 무릎 꿇고 피
하듯 해야 했고 그의 명령에 불복하는 무림인은 가차 없이 그의 일검에 응징을 당해야만 했다.
강호를 내려다보고 호령을 하는 그의 전횡에 불만을 품은 청성(靑城)의 장문인 환공도장(喚空道
長)이 참다 못해 구파일방을 선동하여 대협곡 삼협(三峽)에서 벌린 일주야의 혈투..!
유일하게 그자리에 나타나지 않은 개방을 제외한 아홉 명의 무림 최고수인 각파의 장문인이 한
사람 한사람 나서며 차륜전(車輪戰)을 펼치고 있었다.
한명의 진기가 소진이 되면 또 한명이 나서 대전을 하고, 그의 힘이 떨져졌다 생각이 되면 얼른
뒤로 물러서 진기가 가득한 또 한사람이 일해낭중의 앞을 막아서고 있었다. 그렇게 구파의 장문
인들은 서로 도와가며 기력을 보충하고 대전하기를 밤낮없이 계속하였으나 일해낭중 천강은 혼
자 일주야를 버티면서도 전혀 내공이 소진되어가는 모습이 보이지를 않았다. 아니.. 날이 지나
면 지날 수록 점점 더 공력이 충만되어 가는 듯 했다.
단 한명 일해낭중(一海浪仲) 천강(千剛)과의 대결에서, 이제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아홉 장문인
이 연합을 하여 달려들기로 작정을 했다. 아홉사람의 공력을 한군데 모아 일거에 상대를 제압하
려 서로 동조를 한 것이었다. 그러나..!
필승의 염원을 가지고 펼친 그 연합공격조차 일해낭중이 펼친 검초를 단 몇합도 받아내지 못하
고 한 순간 당하고 만 것이었다. 그 후 일해낭중(一海浪仲) 천강(千剛)은 강호에서 스스로 검웅
(劍雄)이라 자처하며 무림을 지배하려 했던 것이었다.
당금 무림의 최고의 검수(劍手)라 불리며 모든 무림인(武林人)들을 벌벌 떨게 만들고 있던 그
일해낭중(一海浪仲) 천강(千剛)이 우연히 백룡검(白龍劍)의 소문을 듣고는 불같은 호승심이 일
어, 자웅을 겨루어 보려고 백룡검(白龍劍)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그러나 백룡검이란 인물은 누구도 그 그림자조차 본적이 없는 소문속의 인물일 뿐이었다. 어느
누구는 하얀 백발을 한 신선과 같은 용모라 말하고 있었고, 또 한편으로는 아직 약관인 철부지
청년이라는 소문이 떠돌고도 있었다.
그러나 강호에 두개의 태양이 있을 수 있는가..? 소문의 백룡검이 거처하고 있다는 장소를 알아
낸 일해낭중(一海浪仲) 천강(千剛)이 강호무림인들에게 큰 소리를 치고는, 그를 만나 겨루기 위
해 백룡검의 은신처를 찾아 나섰다.
천신만고 끝에 백룡검을 만난 일해낭중(一海浪仲) 천강(千剛)은 극구 비무를 사양을 하는 백룡
검(白龍劍)을 몇날 며칠을 어루어 보며 자극을 해 일검(一劍)을 겨룬 것이었다. 그러나 그날 이
후 일해낭중(一海浪仲) 천강(千剛)을 강호에서 다시 본 무림인은 한사람도 없었다.
그 일이 있은 후.. 강호인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오는 소문은 일해낭중(一海浪仲)이 백룡검
(白龍劍)의 단 삼초도 받아내지 못하고 패한 후, 부끄러워 얼굴을 들지 못하고 그 즉시 심산유
곡에 은거를 해 버렸다는 소문만 전해질 뿐이었던 것이다.
* * * * * * * * * *
「환공(喚空)장문인.. 제가 이곳에 온 것은 장문인에게 여쭈어 한 가지 사실을 학인해 보고자
청성을 찾은 것입니다..!」
지난날의 생각에 젖어있던 환공도장(喚空道長)은 갑자기 들려오는 백룡검(白龍劍)의 말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예..? 아 예..! 대협.. 빈도의 집무실로 가서 차 한잔 나누며 말씀 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