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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백작著/ 서검연풍록 (書劍戀風錄) 수정편 제 22 부


**  낭만백작著/ 서검연풍록 (書劍戀風錄) 수정편 제 22 부  **    [수정일. 2006 년 3 월.]



제 8 장. 연인(戀人)이 되고 여인(女人)이 되다. 1.


공주를 비롯한 모두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상관명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제가 저의 정체를 밝히지 않은 것은 지금 천하의 움직임에 서문인걸(西門仁杰)이 깊숙히
관여(關與)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상관명의 말에 자혜공주(慈惠公主)가 깜짝 놀라며 긴장을 했다.


공주스스로 황실의 안위(安危)를 지키기 위해 서문인걸(西門仁杰)과 힘을 합하기를 제안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언제나 서문인걸(西門仁杰)의 재촉이 있던 그 순간 순간 마다 즉답을 피하라는 전음(傳音)을
보내준 사람이 상관명인 것으로 드러났다.
그렇다면 상관명의 말속에는 분명 서문인걸(西門仁杰)에 대해 신뢰보다는 그를 주의깊게 살피
라는 뜻이 담겨져 있었던 것이 아니었던가..!


「상관공자님..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자혜공주(慈惠公主)는 초조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다급히 물었다.


「예, 공주님..! 제가 천궁(天宮)을 나선 후 제일 먼저 찾은 곳이 화영루(華榮樓)였습니다.
그곳에서 공주님의 흔적을 찾아보고 싶었던 마음이었지요. 그런데 그 화영루(華榮樓)의 이층
에서 우연히 조정의 밀부(密部) 혈잠령(血潛領)의 영두인 유극관(劉克官)의 말을 엿듣게 되었
습니다. 그들의 움직임을 은밀히 뒤쫒다가 서문인걸(西門仁杰)과 그들이 만나는 것을 발견한
것이지요. 아마 그 상황은 광진(光振)호위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광진(光振)호위도 그 자
리에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으니까요..!」


그랬다.
광진(光振)호위가 그 들의 동정을 살핀 결과를 보고받은 자혜공주(慈惠公主)가 추밀사 조평
환(趙平換)의 준동을 더 이상 보고 있을 수 없어 서문인걸(西門仁杰)과의 연합을 결심한 계
기가 된 것이 아닌가..!


광진(光振)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상관명에게 말했다.


「잠깐.. 고.. 공자님.. 상관공자님, 방금 천궁(天宮)이라 하셨소이까..? 강호(江湖)의 전설
(傳說) 그 천궁(天宮)을 말한 것입니까..?」


놀라 고함을 지르다시피 하는 광진(光振)을 향해 구(龜)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제가 말씀 드리지요. 이천 오백년의 전설 그 천궁(天宮)이 맞습니다. 주군(主君)께서는 천
궁(天宮)의 궁주(天宮)이시며, 저와 비연선원(秘緣仙院)의 학련(鶴蓮) 그리고 완(婉)아는 천
궁의 제자들 입니다. 그리고 연환서숙(捐幻書塾)과 비연선원(秘緣仙院)은 주군(主君)을 맞이
하기 위해 천궁(天宮)의 제자가 이천 오백년을 대대로 지켜온 장소였습니다.」


「그랬구나..! 모두가 천궁(天宮)의 가족들 이었구나. 그래서 구(龜)공자와 학련(鶴蓮)낭자
가 그때 그렇게도 어리숙해 보였던 상관공자를 그리도 존경하고 있었던 것이었구나..!」


자혜공주(慈惠公主)가 이제는 그 이유를 알 것 같다는 표정으로 감탄을 하고 있었다.


「예, 제가 천궁(天宮)의 궁주(宮主)입니다. 그러나 아직은 이 상관명의 정체를 나타낼 계제
가 아닙니다. 공주님과 광진(光振)호위께서도 당분간은 모른 척 해 주십시오.」


「상관공자님.. 아직도 더 밝혀야 할 일이 남아 있는지요..?」


「예.. 공주님, 서문인걸(西門仁杰)은 이미 소림도 손아귀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분명 조정
에 포섭된 기산의 숭정방(崇正邦)과 조정에 적대하고 있는 서문인걸은 서로 대립을 하고 있
는 관계입니다. 그런데 공주님을 기산으로 유인을 한 그 일에 서문인걸이 개입한 흔적이 포
착된 것입니다. 기산(箕山)에서 숭정방의 방주(邦主) 철궁패장(撤弓覇掌)이 공주님을 살해하
려던 그 일에 어찌 서문인걸이 연관되어 있는지 의문스러운 것입니다.」


공주의 얼굴에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떠 올랐다.


「아아.. 그래서 제가 서문대인에게 섣불리 대답하려는 것을 그렇게도 막아 주셨군요..! 저
를 지켜주기 위한 마음, 정말 고맙습니다.」


깊이 고개를 숙이며 감사의 마음 전하는 자혜공주(慈惠公主)였다.


「별말씀을, 공주님을 지키고 나라를 지키는 일입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다만 제가 음모를 확실히 파악할 때 까지만 저의 정체를 노출시키지 말았으면 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긴 이야기들을 나눈 후 상관명이 공주를 보며 말했다.


「공주님의 시간을 너무 뺏은 것 같습니다. 이제 몸이 괜찮으시면 자리를 뜨도록 하지요.」


그동안의 일들을 모두 자세히 설명한 상관명은 공주의 몸이 완전히 회복되었다는 것을 확인
하고는 궁(宮)으로 돌아가야 하는 공주를 더 이상 붙잡아 둘 수가 없어 작별의 인사를 했다.


자혜공주(慈惠公主)가 다급해 졌다.


「잠깐만 공자님..! 앞으로 상관공자님과는 여러 정황들을 긴밀히 의논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어디로 연락을 드리면..?」


헤어지기 아쉬운 마음의 표현이었다.


「하하하.. 천궁(天宮)은 비연선원(秘緣仙院)안에 있습니다. 저는 항상 그 곳에 있지요. 그
보다 제가 공주님을 뵈러 황궁(皇宮)을 찾겠습니다. 그리고 한가지.. 제가 모든 사실을 완벽
히 파악할 때 까지 공주님은 지금 해왔던 것처럼 서문인걸(西門仁杰)과의 관계를 유지하셨으
면 합니다.」


「명심 하겠습니다. 공자님, 그럼 저희들이 먼저 출발 하겠습니다. 광진(光振)호위, 어서 출
발하도록 하자. 아참..! 자혜궁(慈惠宮)은 황궁의 서쪽, 홍예(虹霓;무지개)석교를 지나면 눈
앞에 보이는 화정(華庭)연못 옆에 있습니다.」


* * * * * * * * * *


삼경이 조금 지나 달빛 하나 없는 깜깜한 밤..!
넓은 황궁(皇宮)에는 순검(巡檢)을 도는 병사의 발걸음 소리만 들릴 뿐 고요하기만 했다.


- 휘익..!


그 깜깜한 밤하늘에 백의인영(白衣人影)이 높은 누각위로 소리도 없이 날아들었다.


「음.. 저곳이 화정(華庭)연못 이로구나..!」


누각위에서 황궁(皇宮)의 이곳저곳을 둘러 보던 백영(白影)은 눈속에 들어오는 한곳을 유심히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서쪽 연못 옆에 아담하게 서 있는 궁전(宮殿).. 자혜궁(慈惠宮)이었다.
그 곳에는 아직도 불빛이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 휙.. 휘이익.. 펄럭..!


몸을 날린 백의인영(白衣人影)은 빨려들 듯 자혜궁(慈惠宮) 안으로 날아 들어갔다.


「어서오세요 상관공자님.. 분명 오실 것이라 짐작하여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철저한 경비를 그림자 처럼 뚫고 그중 가장 화려한 방을 찾아 소리없이 문을 열고 들어서는
상관명을 뜻밖에 자혜공주(慈惠公主)가 맞이하고 있는 것이었다.


「엇.. 공주님, 깨어있었구려..!」


소리없이 침입한 상관명이 오히려 놀라 급히 차음공(遮音功)을 펼쳐 말소리가 새어나가는 것
부터 막았다.


「모두 물리치고 마음 조이며 언제쯤 찾아드실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무작정 상관명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자신의 고백에 스스로 부끄러운 듯 공주는 고개를 숙여
발끝만 바라보고 있었다.


「저 또한 보고싶은 마음을 참을 수가 없어 도둑처럼 황궁(皇宮)의 담을 넘었습니다. 용서하
십시오 공주님..!」


「무슨 말씀을..! 공자님을 기다린다는 그 마음 만으로도 저는 더 기뻤는걸요..! 우선 이리
로 앉으세요.」


향차(香茶)와 미주(美酒)를 이미 준비해 두고 있었다.


자리에 앉아 섬섭옥수(纖纖玉手)로 차를 따르는 공주의 모습은 진정 폐월수화(蔽月羞花)..!
달도 얼굴을 가리고 꽃도 부끄러워 고개를 숙일 만큼 아름다운 자태였다.


「공주님.. 제가 공주님을 찾은 이유는 강호(江湖)의 정세가..!」


상관명의 말을 중도에 막으며 자혜공주(慈惠公主)의 붉은 입술이 열리고 옥(玉)을 굴리는 듯
맑고 조그만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공자님.. 그 같은 말들은 날이 밝은 후 천천히 말씀하시면 안될까요..?」 


차를 마시고 술을 한잔씩 나누며 미주(美酒)에 취해 분홍빛으로 물든 얼굴로 상관명을 바라
보던 공주가 살며시 상관명의 손을 잡았다.


「고.. 공주님..!」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할 여유도 없이 오히려 더 당황해 하는 상관명을 보며 잡은 손을 살며
시 당겨 그 품속에 안겨드는 자혜공주(慈惠公主)였다.


「공자님.. 그 때부터 오늘 같은 날이 있을 것이라 기다려 왔습니다. 어릴때 부터 저의 마음
속에 깊이 새겨져 온 공자님을 이제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아름답게 흐르는 목소리에 묻어나는 청순(淸純)한 여인의 향기..!
상관명은 끓어 오르는 격정(激情)을 참을 수 없어 공주의 입술을 덮쳐갔다.


「흐흡..!」


공주의 입에서 숨막힌 호흡소리가 터져 나왔다. 입술을 피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공주의 맑은
눈동자는 오히려 더욱 둥글게 커져 상관명의 얼굴을 똑바로 주시하고 있었다.  


「공주.. 여진객잔(餘鎭客棧)을 떠난지 겨우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이렇게 보고픈 마음을 참
지 못하고 여기를 찾았습니다. 이제는 됐습니다. 더 늦기 전에 돌아가리다.」


「예..? 가신다고요..? 공자님.. 밤새 저와 야야기를 나누면 좋으련만..!」


「하하, 공주.. 가슴이 터질 것 같아 더는 이자리를 지키고 있지 못하겠습니다. 마음을 진정
시키고 다시 찾아 뵙지요.」


성큼 일어나 자혜궁(慈惠宮)의 창문을 넘어 유성처럼 밤하늘을 날아 사라져 갔다.


「휴우.. 가슴은 오히려 내가 더욱 터질 나갈 것만 같은데, 이 마음을 알고 가셨을까..!」


붙들지 못한 아쉬움에 공주는 길게 목을 빼고 상관명이 사라진 먼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 * * * * * * * * *


전신(全身)을 가리고 정체를 숨긴 흑의 복면인이 조평환(趙平換)의 저택 후원에 있는 내실을
향해 긴 복도를 천천히 걸어서 들어가고 있었다.


양쪽은 벽으로 막혀 내실로 향하는 긴 통로를 이루고 있으며, 그 복도의 통로를 지나고 있던
흑의 복면인(覆面人)의 눈동자가 순간.. 번쩍 빛을 발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놈.. 무공(武功)의 고수(高手)들 이구나..! 흐흐흐, 조평환
(趙平換)..! 이놈이 단단히 준비를 하고 있구나..!」
 
그 통로의 벽속에서 절정 고인(高人)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아주 미미한 살기(殺氣)가 흘러
나오고 있는 것을 검은 복면인은 감지한 것이었다.


왈칵.. 내실의 문을 열어 젖히고 들어서자 추밀사(樞密使) 조평환(趙平換)이 당황한 모습을
보이며 달려 나왔다.


「대인어른.. 어서 오십시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조평환(趙平換)은 복면인을 맞이해 공손히 배견(拜見)의 예를 올리며 상좌(上座)로 급히 안
내를 했다.


「허허허.. 왜 그리 허둥대는가..? 조대인.. 무엇을 숨기기라도 한 것이오..?」


조평환(趙平換)의 표정이 순간 굳어졌다가 알 수 없는 웃음을 슬며시 흘리며 말했다.


「허허 대인어른.. 어른이 오신다는 전갈을 받고 급히 마중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무슨 일 때문에 또다시 저를 찾으셨는지..?」


흑의 복면인이 고개를 돌려 실내를 한바퀴 빙 둘러본 후 말문을 열었다.


「조대인.. 전에 그대를 방문했을 시 노한 군중들이 궐기를 하기 전에 분명히 특단의 조치를
취하라고 내가 경고를 했을 것이오. 욕심을 부려 시기를 놓지면 그대를 엄중히 문책을 할 것
이라고 한 말을 기억하고 있는가..?」


「허허.. 대인어른, 제가 소홀히 한점이 무엇인지 말씀 해 주십시오..!」


분명 조평환(趙平換)의 태도는 무언가 믿는 구석이 있는 것 처럼 전날과는 달라져 있었다.
  
「이 어리석은놈..! 진정 모른단 말인가..? 한림학사원을 불태울 만큼 노한 군중들의 궐기가
그 한번으로 끝날 줄 알았던가..? 그들은 다시 기회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가..?」


복면인의 목소리는 점점 노기를 띠어가고 있었다.


「대인어른..! 저도 그곳에 급히 혈잠령(血潛領)의 밀령들을 보내 조사를 하였으나 아직 그
원인이 밝혀지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방화의 원인이 밝혀질 때 까지 암암리 밀령들을 그곳
에 주둔시켜 감시를 하고 있습니다.」


복면인의 입에서 참고 있던 노호(怒號)가 터져 나왔다.


「이놈 조평환(趙平換)..!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점을 아직도 깨닫지 못하는가..? 군중들
은 혈잠령(血潛領)의 군사들이 자신들을 감시하고 있다고 격분하여 그들과 대치를 하고 있는
것을..!」


「어허.. 대인어른, 그정도는 저도 파악하고 있습니다.」


「이놈이.. 그렇다면 미리 대처를 했어야 옳은 것이 아닌가..? 즉시 연환서숙(捐幻書塾)을
이용하여 군중들을 위무(慰撫;어루만져 달램)하도록 하라..!」


「왜 연환서숙(捐幻書塾)이어야 합니까..?」


「어헛..! 네놈이 언제부터 내 말에 토(吐)를 달 만큼 용감해 졌느냐..?」


조평환(趙平換)의 얼굴에 짧은 분노가 스쳐지나다 금방 사라졌다.


「대인어른.. 연환서숙을 이용하면 봉기가 없어질 것이라는 이유라도 설명을 하신 후 저에게
명(命)을 하셔야 옳은 순서이지요..!」


말은 이치에 맞았다.


「그래.. 내 설명하지, 한림학사원이 불타기 전에도 그 연환서숙(捐幻書塾)은 민심(民心)을
얻고 있었다. 지금도 학사원의 원생, 문사들이 서숙(書塾)으로 몰려들고 있다. 이럴 때 조정
에서 학사원의 부패를 인정하고 물심 양면으로 서숙(書塾)을 지원하면 조정이 스스로 잘못을
깨닫고 개혁의 앞장을 서는 구나.. 모두가 조정의 그러한 변화를 지지하며 분노가 사라지고
후속의 조치를 조용히 기다릴 것이 아닌가..!」


「안됩니다. 그 이유라면 절대로 안됩니다. 그 연환서숙을 움직이는 주인이 조정에 반기를
들고 있다는 첩보를 받았으며 또한 낙양 서문가의 서문인걸이 깊이 관여하고 있다는 소문이
있고 그 서문인걸(西門仁杰)조차도 조정을 적대하는 사람입니다.」


단호하게 거부하는 조평환(趙平換)을 보는 흑의인의 눈빛이 기이하게 변했다.


「안된다..? 이놈, 내말을 거역 할 작정이냐..?」


「예, 대인어른..! 이일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입니다.」


흑의 복면인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조평환(趙平換)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렇다면 우선 네 놈부터 손을 볼 수 밖에..!」


그 순간 조평환(趙平換)은 얼굴에 비웃음을 머금고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나며 소리쳤다.


「크흐흐.. 대인, 이 조평환(趙平換)이 그리도 만만히 보였소..! 그대 또한 오늘 이방을 순
순히 벗어나지 못할 것이오. 여봐라..!」


- 우르릉.. 휙.. 휙.. 휘익..!


조평환(趙平換)의 고함소리에 복도의 벽이 옆으로 갈라지며 여섯명의 무사가 번개처럼 방안
으로 날아들어 흑의 복면인을 가운데 두고 포위를 했다.


「흐흐흐.. 그 동안은 내가 많이 참았다. 이 조평환(趙平換)의 힘이 어느정도 인가 단단히 경
험을 해보아라..! 여봐라.. 이놈을 살려두어서는 안된다. 쳐라..!」


- 크르릉.. 펑.. 펑.. 크앙..!


여섯명의 무사들은 한마디 말도 없이 흑의 복면인을 향해 장(掌)을 날렸다.
산(山)을 허물고 집채 만한 바위도 산산조각 낼 것 같은 무시무시한 장력(掌力)..!
조평환(趙平換)의 내실 조차도 한 순간에 무너뜨려 흔적도 남기지 않을 것만 같은 빠르고
강맹한 장력이 여섯 갈래로 나뉘어 흑의 복면인의 전신 요혈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조평환(趙平換)의 눈에는 흑의 복면인이 자신의 앞에서 산산조각이 나는 모습이 보였다.


「크흐흐.. 이놈, 그 동안 이 조평환(趙平換)을 무시하고 수모를 준 벌이다. 크하하하..!」


회심(會心)의 미소를 지으며 쓰러져 뒹굴고 있는 흑의 복면인을 살피려 다가갔다.
그러나 그 순간..!


「어어.. 어찌된 일이냐..?」


눈앞에 보이는 것은 어리둥절 하고 서있는 여섯명의 무사들 뿐..! 복면인의 신형이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져 버리고 실내 어디에 흔적 조차도 없었다.


복면인은 부동명왕보(不動明王步;이정제동의 묘리를 담고 있는 보법으로 몸을 움직이지 않으
면서 가장 빨리 위치를 변환시키는 불문의 절세 보법)을 시전해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진 것이
었다.


「크하하하하하하..!」


형제는 보이지 않고 허공에서 복면인의 웃음소리만 울려 나왔다.


「하하하하.. 조평환(趙平換)..! 나를 압습해 제거를 하겠다..? 으하하하.. 내 장(掌)을 받아
보아라..!」


- 휘익.. 펄럭..!


흑의 복면인이 내뿜는 소매바람 소리가 들렸다.


- 휘이이잉.. 스르르르릉..!


큰소리도 울리지 않았다.
다만 조평환(趙平換)과 여섯무인의 귀에는 윙..윙.. 거리는 바람소리만 들렸을 뿐이었다.


- 퍽.. 퍽.. 퍼퍽!.. 쿵.. 쿵쾅.. 쾅..!」


어디를 어떻게 격타 당했는지도 모르는 순간에 모두 혈도를 제압 당해 방바닥에 뒹굴고 있는
일곱개의 몸둥이..! 불문 최고의 무공(武功)인 보리신공(菩提神功)이었다.


일곱 몸둥이는 그러나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이 전신만 마비되어 꿈틀거리며 가쁜 숨만
몰아 쉬고 있었다.
흑의복면인은 보리신공(菩提神功)을 시전하며 그래도 사혈(死血)을 피해 손에 조그만 인정을
남겨두었던 것이었다.


「대.. 대인어른,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대인어른의 명을 거역하지 않겠습니다. 제발 목숨만
은 살려 주십시오..!」


조평환(趙平換)의 그 당당했던 모습은 이미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오직 힘 앞에 목숨을
구걸하는 늙은 노인에 불과한 모습으로 두손을 싹싹 빌고 있는 꼴 사나운 짓만 계속하고 있는
것이었다.


「조평환(趙平換).. 너는 네 자신의 헛된 욕망이 얼마나 큰 결과를 초래하는가 몸소 느껴야만
한다.」


흑의 복면인은 손가락 하나를 들어 조평환(趙平換)의 미룡혈(尾龍穴)을 슬쩍 건드렸다.


「윽.. 으윽..!」


갑자기 조평환(趙平換)은 머리를 두손으로 감싸며 밀려오는 통증의 괴로움으로 방안을 때굴
때굴 굴렀다.
척추의 말단에 자리하고 있는 미룡혈(尾龍穴)을 점혈 당하면 그 영향이 뇌로 올라가 뇌의 기
능을 마비시키고 통증을 참을 수 없어 혼절에 이르는 훈혈(暈穴)인 것이다.


「이놈.. 조평환(趙平換)..! 일각이 지나면 너의 머릿속 통증은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한달
에 한번씩 점혈을 풀어 순환을 도와주지 않으면 혈은 어혈(瘀血)을 이루어 네놈의 목숨은 살
아 남지를 못할 것이다. 그때마다 나를 찾아 정중히 도움을 청하도록 하라.」


그 순간에도 조평환(趙平換)은 방안을 딩굴며 스스로 점혈을 풀어보려 미룡혈(尾龍穴)을 만
지작거렸다. 그러나 손에 힘을 가하면 가할수록 머리는 더욱 흔들리며 통증이 깊어만 갔다.


「알겠습니다. 대인어른..! 무엇이든 어른이 시키는 대로 다 하겠습니다. 제발 이 통증만 좀
완화(緩和)시켜 주십시오.」


흑의 복면인은 곧 죽을 것 같은 괴로움을 참지못해 눈물까지 흘려가며 빌고 있는 조평환(趙
平換)을 바라보며 눈가에 득의의 웃음을 담고 있었다.


「이제 나의 명(命)을 거역하며 어찌되는지 똑똑히 알았으리라..! 그리고 너희들 여섯 놈은
나와 함께 가주어야겠다.」


호통을 내뱉으며 손을 들어 조평환(趙平換)의 가슴을 툭 쳐 점혈을 풀어주고 여섯 무인들 에
게는 자신의 뒤를 따르게 했다.
오늘밤의 상황이 비밀을 유지하려면 여섯무인의 목숨을 거두어야 하나 그들의 무공이 아까워
부하로 삼으려 자신을 따르게 한 흑의 복면인이었다. 


「조평환(趙平換).. 한달에 한번 때를 놓지지 말고 나를 찾아 점혈을 풀도록 하라. 그렇지
않으면 그 즉시 너의 뇌의 혈관이 터져 죽음에 이르리라..! 너희들은 나의 뒤를 따르라..!」


- 휙.. 휘익....!


말을 끝내자 마자 흑의 복면인은 몸을 날려 깜깜한 밤하늘 속으로 사라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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