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관방의 추억
1.
그날은 매우 추운 날이었습니다.
추운 날엔 하는 일없이 돌아다는 게 아니라 일찍 일찍 들어가야 하는 것이
이 시대의 진정한 선수의 모습인데도 화류계의 거장 Y형은
술이나 한잔 하자고 전화를 했습니다.
어차피 서로 바쁘게 지내다 보니 자주 만나지도 못하는데
오랜만에 술이나 하자는 부탁을 거절할 수도 없었습니다.
“어디 갈까?”
가면 가고 말면 말라는 식의 싸가지 없는 질문을 던졌는데도
Y형은 뭐가 그리 신이 나는지 목소리엔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거기 있지? 지난번 간데”
“에구. 그 나이트클럽?”
“왜? 싸고 좋자나....”
일산 가기전 서울 끝자락에 있는 성인나이트 클럽이 있는데 예전에 한번 간적이 있습니다.
룸싸롱이나 단란주점에 비해서 술값도 훨씬 싸고, 플로어에 나가 춤은 안추지만
룸에서 가끔 부킹도 이루어지니 그럭저럭 재미있는 곳이긴 했습니다.
하지만 그날은 왠지 그곳에 가기 싫었고 거기가 아니라 다른데라도 가기 싫었습니다.
일단 춥기도 했지만 말 못할 이유가 또 하나 있었습니다.
2.
나이트 클럽의 한 룸에 자리잡고 Y형과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는데 웨이터가 여자 두명을 데리고
룸으로 들어왔습니다. 나이트 클럽에서 부킹한 여자의 미모, 성격, 혈액형, 아이큐,
최종학력, 출신 지역의 풍토병 등 이런저런 상태를 가릴 거 있나요?
그냥 앉으라고 했습니다.
분위기 잘 만들고 매너있고 인상 좋은 Y형이 우리 룸으로 들어온 두 여자를
구원의 길로 잘 이끌었고 덩달아 나도 잘 되어가는 중이었습니다.
그 다음에 어떻게 되었냐구요?
그런 질문하면 글 쓰는 사람 삐집니다.
나이트클럽에서 만나면 뭐 합니까? 당연히 나가서 2차로 술 한잔하고
시간이 늦었느니 조금 더 같이 있자는 둥 이러쿵저러쿵하면서
떡을 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당연히 떡을 치러 가기로 했습니다.
나이트클럽에 가서 술 먹다가 부킹하고, 부킹한 여자와 여관가서 떡 친 일이
어찌 보면 얘기거리이긴 하지만 지금 이런 사이트에서 얘기하기에는 매우 부족합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니 여기서 그런 얘기를 하면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겁니다.
“야 이 씹새야. 누가 너 떡친거 몰라? 어떻게 쳤냐고?”
맞습니다.
이런데서 그런 극히 정상적인 생활의 단면을 얘기하면 안됩니다.
3.
그날은 정말 이상한 날이었습니다.
아무 계획도 없이 Y형을 만나 술을 마시게 된 것도 그렇고
평소와는 달리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여자가 생기고 떡을 치게 되는 상황이 또한 그랬습니다.
Y형이 먼저 한 여자와 택시를 타고 사라지고, 나도 택시를 타던가
근처 여관으로 향해야 하는 순간에도 별로 내키지 않았습니다.
딱히 떡을 치고 싶지 않은 것도 아니었고 상대가 떡을 못칠 정도로 폭탄이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내가 선뜻 여관에 들어가지 못하고 머뭇거리게 된데는
말못할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날은 몹시 추웠습니다.
그래서 아침에 옷을 주섬주섬 챙기다가 문득 내복을 입으면
따듯할 거라는 앙증맞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옷장 어딘가를 찾아보니 오래전에 사두고 가끔 겨울에 한두번씩 입던 내복이
나타났습니다. 막상 입으니 따듯해서 좋았는데
문제는 무릎 부분이 심하게 나왔고 엉덩이 부분이 낡아서 커다란 빵꾸가 나 있었습니다.
그러나 속에 입는 옷을 누가 볼까 하는 생각에 자신있게 입고 나왔고
내몸 따듯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갑자기 아침에 있었던 그일이 떠오르니 옆에 있는 이 여인(이하 부킹녀)과 함께
여관에 들어가 못볼 꼴을 보여줄 생각이 들어 왠지 발걸음이 무거워졌습니다.
“오빠? 왜 그러는데?”
잠시 생각에 잠기니 옆에 있는 부킹녀가 물었습니다.
“응.... 가야지....”
굴러들어온 떡이니 먹긴 먹어야겠고 막상 여관방에 가자니
코디네이션이 맘에 안들었습니다.
하긴 그것도 그렇습니다.
내복이란 단어에서부터 성욕이 떨어지는데 거기에 커다란 빵꾸까지 있으니
이 얼마나 쪽팔리는 일정입니까?
빠르지 않은 발걸음으로 여관으로 향하는 순간에도 나름대로 대책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보니 아주 간단한 방법이 있었습니다.
4.
“먼저 씻고 와!”
“싫어, 오빠가 먼저 씻어!”
“그래도 여자가 먼저 씻는게 좋지”
겨우 설득시켜 부킹녀를 욕실로 들여보냈습니다.
그리고 혹시 불쑥 나올 때를 대비해서 샤워하는 것을 확인하고 얼른 옷을 벗었습니다.
신속하게 벗었습니다.
그리고 벗어둔 내복을 침대밑으로 집어 던지듯 처박아 두었습니다.
나중에 입을 찬스가 오면 입고 가지만 그런 상황이 아니면 그냥 버리고 가도
아무 미련이 없는 옷이었으니 탁월한 선택이었던 셈이었습니다.
이 와중에 그런 대책을 마련한 자신이 대견했습니다.
나중에 이 시대 최고의 변태인 친구 빛나리에게 자랑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나도 샤워를 마치니 모든 고민들이 해결되었습니다.
고민이 해결되니 갑자기 없던 힘이 솟았습니다.
기분도 좋아져 몸놀림도 유연해졌습니다.
그래서 평소에 안하던 ‘뒤돌려 몸 꼬아 넣기’, ‘위치 바꿔 몸 구조 확인하기’,
‘온몸 이용 막고 넣기’ 등 최신형 총검술 연속동작을 뛰어넘는
고난도 기술이 자연스럽게 발휘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뜨겁고 야시시한 밤은 지나가는 듯했습니다.
5.
열기가 지나가고 잠시 실신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기분이 들떠 조금 무리한 것 같았습니다. 부킹녀가 샤워한다며 욕실로 향했습니다.
혼자 침대에 누워 내 얘기 듣기 좋아하는 이 시대 최고의 변태 빛나리에게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지 매우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욕실에서 나온 부킹녀에게 한번 더 해주겠다며 사악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이미 씻고 나온 여자가 다시 하겠습니까? 그냥 해본 소리지요.
만약 그러자고 했으면 난 아마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피식 웃는 부킹녀를 보고 혹시라도 맘이 변해 옷벗고 달려들까봐
얼른 욕실로 들어가 대충 샤워를 마쳤습니다. 매우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그런데 욕실을 나오니 화장이나 하고 있을줄 알았던 부킹녀가
허리를 잔뜩 숙여 침대밑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나는 긴장했습니다.
현란한 테크닉에 스스로 감동하여 오늘의 핵심사항을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오빠, 여기 뭐 있어. 여기 좀 지저분한덴가봐?”
갑자기 눈앞이 깜깜했습니다.
TV도 있고 화장대도 있고 볼 것도 많은데 하필이면 침대밑을 들여다 볼게 뭔지
몹시 당황했습니다.
아침부터 고민하던 부분이라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당황한 나머지 나는 이성을 잃고 말았습니다.
“응....이거?”
나는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침대 밑에 손을 넣어 아까 던져두었던 내복을 꺼냈습니다.
그리고 아주 여유있는 모습으로 내복을 반듯하게 접으며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내 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이거? 걸레야~”
그리고 얼른 무릎 꿇고 엎드려 여관 방바닥을 부지런히 닦았습니다.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는 부킹녀의 눈길을 등뒤로 느끼면서도 열심히 닦았습니다.
뭘 닦는지도 모르고 부지런히 닦았습니다.
행복할 것 같았던 하루는 이렇게 마무리되고 있었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
여관에 들어가 걸레질 해본 사람 있나요?
글을 마치는 일산마루의 한마디.
“걸레는 처음부터 걸레가 아니다”
- 일산마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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