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잠든 사이에 <5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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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부
사람의 마음은 간사한 모양이다.아침에 눈을 떠 머리를 말리고 있는 인애의 모습을 보았을때 나는 어제밤 처럼 당황하지 않았다.눈앞의 상대가 인애임에도 불구하고 비현실적으로 심장이 뛰는 기묘한 그 증상역시 해소되었다.내가 부스스 눈을 뜨자,그녀는 머리를 말리며 힐끗 나를 돌아보았다.다행히도 어제와 같은 인명 살상적인 복장이 아니었다.
“뭐하다 지금 인나냐?”
푸하하.정말 뻔뻔한 아이가 아닐수 없었다.술먹고 완전히 꽐라가 되서는 우리집에서 부린 진상짓은 기억이 안나는건가?아니..기억이 안나더라도 적어도 어제 내가 얘네 집에서 왜 자게 된거지?하는 근본적이고 근원적인 고찰에는 도달해야 하는것이 사람이 아니더냐!
“너 어제 술취해서 우리집 현관앞에서 뻗은건 아냐?”
“아..그랬냐.”
흡사 ‘밖에서 살랑바람이 부네요’라는 말을 하는듯한 평온한 톤과 뉘앙스에 나는 기가 질려 버렸다.남자가 그런 경험을 해도 내가 왜이랬지..하는 자책을 하는 법인데 서인애 사전에는 그딴게 없는 모양이었다.오히려 너네 집이라 잘됐네 라는 듯한 사뭇 쏘 쿨한 그녀의 태도에 나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너네 옆집 되게 시끄럽더라.”
“뭐?”
나는 깜짝 놀라 인애를 바라보았다.그녀는 태연하게 말린 머리를 손으로 몇번 만져 정돈하며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뭐가 그렇게 우당탕 시끄러운지...대낮부터 말야.”
“옆집이?”
“응.”
나는 반사적으로 시계를 바라보았다.또다시 오후를 넘겨버린 시간. 인애는 지금에서야 출근을 하는지 완벽하게 외출복장을 갖추고 있었다. 그럼..옆방 여자가 대낮에 집에 있다는 건가?괜시리 신경이 쓰였다.
“그래?대낮부터 뭐가 그렇게 시끄럽다냐.”
“잠깐 오더니 나가버리던데?현관문도 쾅!하고 닫고.”
인애는 우리집의 방음상태를 전혀 모르는 모양이었다.굳이 현관문을 세게 닫지 않아도 옆집에서 문을 열고 닫는것은 훤히 들린다. 물론 같은 층이라도 조금 떨어진 집에서는 들리지 않을것이다.우리집과 옆집은 복도끝에 따로 붙어있는 구조였으니까.
“근데 라면없냐?”
“...니가 다 쳐먹은건 기억을 못하는 모양이구나.”
“흠...좀 사다놔라. 이 누나가 해장도 못하면 되겠니?”
나는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게 느껴졌다.역시나 인애의 얼굴엔 5센티 이상의 철판이 탑제되어 있음이 분명했다.아무리 친구라지만 저런 뻔뻔함을 보일수 있다니...내가 그녀의 화술에 혀를 내두를 찰나,그녀는 잘 빗어내린 머리를 위로 찡긋 묶어 올리더니 몸을 돌렸다.
“야.암튼 난 나간다.다음에 보자.하루 신세 잘졌다잉~”
깔끔하게 세수를 하고, 머리를 묶은 그녀의 얼굴은 너무나 하얗고 깨끗했다. 원체 선머슴이니 화장은 잘 안했으니까 그건 뭐 당연하게 느껴졌지만...청바지 한장을 입어도 맵시가 잘 사는 신체 비율은 감탄할 만했다.어라..?근데 언제부터 저 아이가 머리를 묶어 올렸었지?
“근데 너...머리 자주 묶는다?”
아무 생각없이 나온 말이었다. 어제 우리집 현관에 뻗어있을때도 머리를 묶어 올린..소위 말하는 포니테일형 머리였으니 말이다.늘 머리를 묶지 않고 두는 아이가 오늘 아침에도 묶어 올리니 자연스레 나온말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녀석의 반응이 이상했다.뭔가 움찔 하는가 싶더니 불만 가득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역시나 본능이란게 무서운건지..나는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도 모르는채 그녀의 시선 하나에 찔끔하며 뒷걸음질 쳤다.
“이 새끼가 착각하고 있어...그냥 편해서 묶은거야 임마.”
“엉?”
뭐야 저 앞뒤관계 안맞는 말은...내가 영문모를 표정을 짓자 인애는 금세 가방을 집어 들고는 훽하고 현관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냥 가려고?”
“그럼 뭐! 내가 니 밥이라도 해주리?마누라냐 내가?”
“...너쫌 예민해 보인다..”
“시끄러.”
인애는 내게 퉁명스럽게 말을 하고는 구두를 신었다.안그래도 키가 큰 그녀가 구두까지 신으니 더욱더 길어 보였다. 나는 현관으로 성큼성큼 다가가 입을 열었다.
“뭐..이해한다. 혹시 그날이라 그렇게 예민..컥!”
쾅!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눈앞으로 노란 하늘, 아니 천장이 보였다.가방으로 내 머리를 강타한 인애의 발자국소리가 복도너머 아스라히 멀어져 가고 있었다.
“아씨..저 선머슴 같은 계집애.도대체 왜저러는 거야?진짜 그날인가?”
나는 혹이 볼록 나온 머리를 잡고는 킥킥 거리며 웃었다.으응?가만..인애는 그날이 아닐텐데..적어도 어젯밤에는 그날이 아니었는데...뭐..내가 손으로..만져봤으니.
갑자기 어제 일이 생각나니 괜시리 민망해졌다.그럼 이유가 도대체 뭐지?하여간 여자란 복잡한 동물이다.저렇게 금방 예민해지니 원..아휴.
나는 뭔가가 생각나 얼른 침대쪽으로 다가가 옆방에 귀를 대었다.뭔가가 우웅하고 돌아가는 소리 이외엔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아무도 없는것이 확인되고 나서야 나는 휴우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인애가 아까 나갔었다고 말은 해주었지만 내 소심한 성격상 바로 옆에 누군가가 있다고 생각하니 영 내 집에서도 마음대로 할수 없을것 같아서 였다.
오늘은 하루종일 집에 있어야 했다.뭐 하루의 대부분을 집에서 악상을 구상하거나, 혹은 게임을 하거나 하는등...전체적인 패턴이 청년실업의 시대속에 있는 날백수의 삶과 비슷하게나마 일치했다. 전과는 다른점이 있다면 컴퓨터를 하던 뭘 하던 수시로 휴대폰의 액정을 확인하게 되었다는 것 뿐이었다.하지만 수정씨에게 먼저 연락이 오거나 하는 기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또 먼저 보내자니 이미 연애세포가 멸종을 한 내 두뇌에서 자연스럽게 문자를 보낼 센스있는 말이나 용기따윈 솟아오르지 않으니 그것도 문제였다.
‘미친척 하고 밥먹자고 해볼까?’
생각해보면 그건 정말 미친짓이었다. 이미 점심시간은 훌쩍 넘었고, 그렇다고 저녁을 기약하기엔 일전에 늦은시간까지 일을하던 그녀의 모습이 생각나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거절 당할 요인이 많다보니 더욱 망설여졌다.
‘그래,까짓거 거절당하면 어때? 전화번호 받아놓고 빌빌 거리는 남자답지 못한 모습보다 낫지 않겠어?’
기왕이면 문자보다 전화를 하는게 맞을거 같았다.없었던 용기가 되살아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전화를 한다고 굳게 마음먹으니 또 떨리기 시작했다. 아..나는 수정이라는 여자를 알고 나서 지병을 발견하고 말았다.그것은 이름하여 ‘습관성 긴장 증후군’이라는 찐따스런 병명이었다.
“후우..후우..”
남들이 보면 생애 첫 스카이 다이빙이라도 하는 녀석처럼 나는 몇번이고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다잡았다.전화부에서 그녀의 이름을 찾아 누르는게 이렇게 떨리는 일이던가?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용기를 내어 send버튼을 길게 눌렀다.
-고객님의 전원이 꺼져있어...-
맥이 탁하고 풀렸다.거절당하더라도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는데 그럴 기회조차 박탈되는게 허탈했다.
가만,수정씨의 목소리는 어땠었지?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미지가 딱 하고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외모에서 느껴지는 것이 너무나 강해서 목소리를 머릿속에 넣을 여유따윈 없었다고 하는것이 옳을수도 있었다.
맥이 탁 하고 풀려버리니 모니터 안에 있는 음악 프로그램의 툴들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수정이만 생각하면 뛰는 것을 보면 음악적 감성으로는 풍부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설레는 사랑노래나 축가 같은건 백개라도 만들수 있을것 같았다.문제는 감성은 사랑중이지만 현실은 혼자라는 점이 겠지만 말이다.
뚜뚜뚜뚜
그냥 체념하고 출출해진 배를 달래려 중국집 전화번호를 찾으려던 그때 내 귀가 쫑긋하고 섰다.이윽고 들리는 철컥!하는 쇳소리.틀림없었다.
‘옆방 여자가 들어왔잖아.’
반사적으로 휴대폰을 올려둔채 침대쪽으로 내 몸이 향해졌다.조심스레 벽에다가 귀를 대 보았다. 무언가를 바닥에 내려놓는 소리, 발걸음을 옮기는 소리등등이 내 귀를 통해 전달되어 졌다. 하지만 내 귀에는 다른소리가 더 또렷하게 들렸다.벽 너머라 많이 선명하지 않지만,분명 주의를 끄는 소리가.
-하아..하아..-
약간은 거친 숨소리였다.여인의 소리임을 믿어 의심치 않게 하는 고운 음색이 섞인 숨가뿐 호흡소리.물론 상상속에는 야릇한 장면들이 스쳐갔지만 정황상 내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19금의 소리는 아니었다.집에 오자마자 야릇한 신음소리를 낼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되겠어?근데 왜지?왜 집을 나간지 몇시간만에 다시와서 저런 소리를 내는거야?
-하아..하아..후우..-
냉장고에서 무언가를 꺼내는 소리.물따르는 소리가 곧바로 들려왔고 정체불명 옆방그녀의 목을 타고 물이 넘어가는 소리까지 희미하게나마 들려왔다. 그녀의 발걸음 소리가 점점 멀어진다.나는 반사적으로 벽에 귀를 댄 채로 그녀의 발걸음을 따라 걸어 나갔다.
‘어디 아픈건가?’
그녀의 발자국 소리는 굉장히 불규칙적이었고, 거친 호흡소리 역시 간헐적으로 들려왔다. 숨소리뿐이지만 누가봐도 환자의 음색이었던 것이다.
-쏴아아-
곧이어 샤워기의 물쏟아지는 소리가 들려왔다.아까 인애의 말대로라면 낮에 나갔다는 뜻인데..왜이렇게 빨리 집에 돌아왔을까?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우당탕거린게 혹시..아파서 몸을 비틀거렸다는 것일까?
온갖상념이 들어오고 있을때쯤엔, 나역시 욕실부근에서 여전히 그녀의 집쪽으로 귀를 대고 있었다. 내가 왜이러지?변탠가?하는 생각이 스물스물 올라왔지만 왠지 모르게 호기심이 샘솟았다.
찌걱..찌걱..
침이 꼴깍 하고 넘어갔다.시간이 어느정도 흐르니 비누칠하는 소리가 여과없이 들려왔다. 시각이라는 것이 제한되니 청각은 더더욱 예민하게 곤두섰고, 더불어 내 머릿속으론 오만가지 상상이 동원되며 환타지가 펼쳐지고 있었다.
-후우..어지럽네..-
그녀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아파서 그럴것이라는 내 추리는 얼추 들어맞는 모양이었다.나는 한쪽으로 치우친 자세탓에 아파오는 허리통증과 목의 통증을 국건하게 참아내며 그녀의 행동을 관찰..아니 청취하고 있었다.
-따르르릉-
그녀가 샤워를 마치고 나왔을때쯤 벨소리가 울렸다.심히 아날로그적인 사운드로 볼때 집전화가 틀림없었다.남들보다 청각이 발달해서 일까?아님 상상력이 풍부한 걸까? 눈앞에서 그녀가 전화를 받는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여보세요?응..오빠..-
나는 침을 한번더 꼴깍 삼키며 신경을 집중했다.애석하게도 상대방이 하는 말까지는 들리지 않았다.하기야 뭐..그런건 옆에 있어도 안들릴 테지만.
-응..미안..몸이 안좋아서 조퇴했어..응?아냐..괜찮아..뭘 굳이 이리로 오려구해.그냥 피곤해서 몸살난거 같은데 뭘..-
남자친구인가? 그녀의 목소리가 아픈 와중에도 굉장히 다정다감한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해서 응 이라고 대답만 하는 듯한 그녀의 목소리. 잠시후 내 귀가 쫑긋 설만한 대화가 펼쳐지자 나는 다시금 정신을 집중했다.
-뭐?이리로 온다고?아냐 오빠..나 그냥 쉴게.정말 괜찮은데..-
-에휴...감기라서 오빠도 옮으면 어쩔려구 그래?나 옮아도 책임안질거야.-
애교마져 섞인 듯한 그녀의 목소리.크으..부럽다. 뭐 옆방 그녀를 본적은 없지만, 내가 여친이 있다면 감기가 아니라 신종 인플루엔자가 걸렸다 하더라도 찾아가서 마우쓰 투 마우쓰를 하며 극진히 간호할텐데..
-지금 어딘데?뭐?10분거리?오빠가 왜 이근처에 있어?음..그럼 알았어.잠깐 보구가.-
그녀의 전화가 끝이 났다. 내용정황상 남자친구가 오는 모양이었다.그녀는 부리나케 몸을 일으키더니, 여전히 신음섞인 호흡을 하며 뭔가 분주히 움직였다.
하긴..지금 막 샤워를 끝내고 받았으니 알몸이었을테고..남자친구가 10분안에 오니까 준비하려는 거겠지.
부러우면 지는건데, 괜시리 그 오빠란 사람이 심히 부러워졌다.나는 그녀가 눈치채지 못하게 최대한 천천히 벽에서 귀를 때었고,살금살금 침대위에서 내려왔다.자세를 바꾸자마자 한껏 꺾여있던 목이 비명을 지른다.
‘아후..이거 왜이렇게 은근히 흥분되지?’
요새 내가 약을 먹었나하는 의문마저 들었다.훔쳐보는것도 아니고, 그냥 듣는것만으로도 호기심이 동했고, 그녀가 알몸으로 있다가 옷을 입기 시작한다는 상상을 하자 묘하게 지릿한 흥분감이 전해져 왔다.
나는 반쯤 미쳐있었나 보다.사실 어제 인애의 몸을 몰래 만졌을때부터 미쳐있었을 지도 모른다.나는 조용히, 그렇지만 신속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방 한구석에 놓여있는 음향장비가 눈에 들어왔다.녹음할때 쓰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름 소리에 민감한 사람이었기에 이런저런 도구들이 있었다.
내 눈에 들어온 것은 해드폰이었다.일반적으로 음향기기에 연결하는것이 아닌 조금 특이한 해드폰이라 해야 옳을 것이다.해드폰의 끝에는 기계에 꽃는 잭이 아닌 청진기 처럼 체스트 피스가 달려있었다.물론 청진기와 똑같은 것이라고는 볼수 없었다.소리에 예민한 사람들이 기계의 내부를 소리로써 판단할때 쓰는 도구였고, 전문적으로 판매되는 것이 아니었기에 나역시 재료들을 구해다가 직접 만든 물건이었다.
‘이걸로 더 잘 들리려나?’
호기심이 들어왔다.그것이 반범죄적 호기심이라는 것도 인지하지 못한 나는 해드폰 끝에 달린 몇개의 판을 벽에 대고는 조심스레 테이프를 붙였다.다행히도 해드폰 끝에 달린 판은 하나가 아닌 세개였기에, 나는 소리를 죽이고 세개의 판들을 넓게 벌려 벽에 테이프로 고정시켰다.
띵동.
-오빠야?문 열렸어.-
잠시후 소리가 들려온다.여기까지는 굳이 벽에 귀를 대거나 해드폰을 착용하지 않아도 또렷이 들리는 부분이었다.나는 침을 꼴깍 삼키고는 천천히 해드폰을 양손으로 벌려 내 귀에 가져다 대었다.
-우리 애기 많이 아팠어?너 괜찮아?-
나는 비명을 지를 뻔한 것을 참아내었다.맙소사. 귀에다 댄것과는 차원이 다른 음질(?)과 음향(?)으로 내귀에 전달되었다.남자친구인듯 보이는 그가 그녀에게 입을 맞추는 소리까지도 또렷히 들려왔다.
세상에.음향기사지만 이런 도구의 성능에 다시한번 놀랄수 밖에 없는 나였다.그제서야 왜 이것이 시중에 판매되지 않는지 짐작이 갔다. 이건 정말 도청을 즐기는 변태들이라면 환장을 할만한 물건이었다. 음..근데..지금 이렇게 편안히 누워 해드폰을 끼고 옆방의 상황을 듣는 나도 변태의 범주에 포함되는 건가?
-괜찮아?많이 아파보이네..열은 없는데.-
-괜찮아 오빠.그냥..조금 피곤한가봐.-
-숨소리가 거칠구만 뭐.이리와봐.여기 누워.-
둘의 대화만 들어도 유추는 쉽게 이루어졌다.그녀의 방, 그리고 그녀의 침대위에 둘은 나란히 누운 모양이었다.옆방의 그녀는 애교가 조금 있는 성격인 듯했다.나는 아까와는 달리 편안하게 누운채로 해드폰으로 모든 상황을 전달 받을수 있었다.처음에 어정쩡하게 서서 들었지만, 불편해 지니 아예 드러누워 버린 것이었다.
-미안해 오빠.나땜에 여기까지 오고.-
-별소리 다한다. 평소엔 장난도 잘치면서 이렇게 얌전한거 보니 또 새롭네?-
그녀는 부끄러운듯이 웃었다. 하지만 둘의 대화는 더이상 들려오지 않았다.대신 내 해드폰에서는 무언가 쫀득쫀득한 두개의 물체가 서로 비벼지는 음색이 들려왔다.
‘뭐야..키스하는건가?’
영화속 연인들의 키스는 로맨틱하지만,이렇게 쫀득이는 음색을 귀로만 들으니 키스는 정말 세상 최고로 야한 스킨쉽이었다.침대시트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귀에서 또렷하게 들리니 눈앞에 보이는것만 같았다.
심리학으로는 문외한 이지만, 난 그제서야 폰섹스라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것 같았다.시각이 아닌 음성이 주는 효과는 생각외로 컸다.아까까지만 해도 수정씨를 생각하며 청춘 로맨스같던 내 가슴은 금새 성인물로 바뀌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샤워했어?몸에서 좋은 냄새나네..-
-아이..오빠..오늘은..흑..-
-왜..가만있어봐..살살할게.-
-그치만..-
-머리 안아프게..살살..부드럽게 할게..응?-
-흑..-
무엇을 하는걸까.굳이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침대 시트가 바스락 거리는 소리는 더욱 크게 들려왔다.젠장..왜이런거지?평소같았으면 그저 부럽다..라고 치부하며 신세한탄에 돌입했을 나일텐데 지금은 달랐다.남자가 옷을 벗는 소리, 그리고 여자의 옷을 벗기는 소리가 또렷히 나진 않았지만 침대위 시트가 일그러지는 소리 만으로 내 눈앞에서 보이는 것처럼 생생하게 상상할수 있었던 것이다. 나도 모르게 심하게 흥분을 하고 있었다.
-오늘은 오빠가 입으로 해줄게.기다려.-
-아..안돼..흑..-
-쪼옥..쪽..쪽..-
점점 내 바지 앞섬은 텐트를 치는거마냥 불룩해졌다.그저 쪽.쪽 하는 소리였지만 마치 하얀 살결의 알몸을 남자가 혀로 돌리고 애무하는 듯한 그 모습이 눈에 선할 정도였다.
-흑..아앙..아..거긴 간지러워 오빠..흐응..-
그렇게 교태섞인 신음은 아니었다.애인과의 섹스라 생각했을때 지극히 평범한 정도랄까? 하지만 이 상황에서 흥분이 반감되는것은 절대 아니었다.긴긴 솔로 생활중에 점점 내 하드에 쌓여가는 무수한 야한 동영상들 중에서, 이처럼 흥분되는 것은 없다고 단언할수 있었다. 눈에 보이는 영상이 아닌, 귀에서 들리는 음성과 내 상상이 혼합된 일종의 환각이 내게 보이고 있었다.
-하아..니 가슴 너무 좋다..밑에 잔뜩 젖었어.-
-창피하게..흑..흐응..-
요란하게 쪽쪽 거리는 소리가 끝나고, 잠시간의 정적이 흘렀다.보이진 않지만 난 알수 있었다.여자의 하얀 다리를 벌리고, 녀석은 지금 결합을 시도하고 있을 것이다.천천히..막 하려하지 않고 애를 태우면서 말이다.
-흑..하앙..아퍼..오빠..-
-후..니꺼 진짜 너무 꽉 조인다..움직일게.-
-흑..하앙..흥..흐응..-
조금씩 침대가 삐걱대기 시작했다. 남자는 급한듯했다.빨리 여자의 몸을 범하고 싶어서 어쩔줄 몰라하는것도 같았다. 여자는 계속해서 살살 해달라고 애원했지만, 녀석은 거의 윽박지르듯 여자를 다루고 있었다.애초에 살살한다고 했던 그 말은 그냥 달콤한 구슬림이었던 모양이었다.
-헉..헉..야..더 조여봐..다리 오므리고..헉..헉..죽인다..-
-아퍼..오빠..흑..살살..아아앙..흑..-
젠장할.아무리 여친이라지만 아픈애 문병온답시고 와서는 저렇게 거칠게 다루다니. 근데 화가 나지 않았다.가슴속에서는 화가 난다고 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이미 내 머릿속은 흥분이 지배한 후였다.
“헉..헉..”
내 숨소리 역시 거칠어 졌다.참지 못하고 츄리닝 바지와 팬티를 내렸다.아까부터 흥분되어 있던,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어제부터 흥분되 있던 내 가운데 다리는 거대하게 발기되어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헉..헉..좋아?응?-
-살살해줘..부탁이야..흐응..흑..흑..아아앙..-
-뭔 딴소리야..좋냐고..응?-
-조..좋아 오빠..흑..-
철썩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무엇에 젖은 두개의 물체가 부딪히는 마찰음이 너무나 야릇했다.나는 참지 못하고 뜨거워진 불기둥을 움켜쥐었다.귀에 들어오는 정보를 통해 펼쳐진 상상의 나래.그녀의 움직임과 함께 내 손도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헉..헉..너도 하고 싶었지?응?밑에 흠뻑 젖은거 보니까..-
-그런말 하지마..흑..흥..흐응..-
-어우씨..진짜 너 쪼이는거 하나는 죽인다..정말이야..보지맛이 예술이야..-
-오빠 제발...왜 자꾸 그런말해..흑..-
머릿속이 새하얘진다.손을 움직이는 속도도 가속력이 붙은 것마냥 위아래로 빠르게 움직여 나갔다.한동안 잊고 살았던 수음의 쾌감이 찌릿찌릿 내 머리털까지 곤두세우고 있었다.
-나 싼다..헉..으윽..-
-안돼..안에다가는..-
공교롭게도 내 절정역시 동시에 찾아왔다.이십여분동안 들려오던 신음소리와 대화, 그리고 무언가가 부딪히는 그 야릇한 소리에 나는 내 손위로 정액들을 가득 쏟아내고 말았다.
-휴우..후아..봐..안에다가 안했잖아.-
-살살하기로 했잖아..-
-왜그래?우리자기 삐졌어?같이 샤워할까?-
-됐어..오빠 진짜 할때마다 너무 이상해.거칠어지고..-
-미안해.니가 너무 좋아서 그런거잖아.응?-
허탈함과 허무감에 숨을 몰아쉬는 그 상황에도 남녀의 대화는 계속해서 내 귀를 통해 전달되고 있었다. 남자녀석은 뻔뻔하게도 여자를 달랬고, 여자는 못이기는 척 토라진 것을 푸는듯했다.크리넥스가 뽑히는 소리.약간 우물쭈물 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도합 두개의 발자국 소리는 욕실로 향했다.
‘빌어먹을.’
나도 모르게 해드폰을 벗어버렸다.욕지꺼리가 밀려왔다.역시나 혼자서 달래는 외로움은 허무함의 쓰나미를 동반했다.내가 변태같이 뭐하는 짓이지?죄책감마져 들자 짜증이 났다. 얇은 벽 하나를 두고 나의 세계와 저쪽의 세계는 판이하게 달랐다. 나는 전화번호 하나 땄다고 좋아하면서 전화걸때도 설레여 하는 멍청이였고, 저쪽에 있는 녀석은 여자친구가 아플때도 구슬려서 욕정을 채우는,그것도 섹스 도중에는 거칠게 돌변하는 그런 삶을 살고 있는거다.
-쏴아아-
또다시 들리는 샤워소리.하지만 아까만큼 선명하게 들리지 않았다.해드폰의 큰 음성에 내 귀가 익어버린 탓이다.하지만 듣고 싶지 않았다.오히려 두귀를 막고 싶을 정도로 치욕스러웠다.
‘아..제길..또 반복되는건가.’
정말 싫었다.어제밤 옆방의 남녀는 서로 사랑을 속삭이는지 쉴새없이 대화를 했고, 남자 녀석은 밤이 늦어서야 돌아가는거 같았다.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에, 열등감까지 들어오자 짜증이 났고 짜증이 나니 잠이 오질 않았다.
찰칵.
하지만 여지없이 아침은 찾아오는 것이었다.나는 아주 조용하니까, 그녀는 잠이 잘왔을지도 모르겠다.다시 찾아온 아침에 그녀가 출근을 하는듯 문이 닫히는 소리와 또각 거리는 구두소리가 들려왔다.
“후우..젠장..”
옆방에 아무도 없는걸 알고나서야 나는 입을 열었다.무려 10시간이상 잠도 설치고, 혼잣말 한번 하지 못한채 나만의 공간에 찌그러져 있었던 거다. 수정이를 생각하면서 설레였던 마음을 욕정이 한때나마 덮었다는 사실에 창피했다.난 나름 내가 순수하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나도 남자라는 탈을 쓴 한마리 동물이었나 보다.
‘부러워해서 뭐해.계속 이렇게 살아서는 수정이도 짝사랑으로 끝날거야.’
나는 벌떡 일어났다.열등감이 쌓이려하니 되려 의욕에 불타올랐다.이렇게 한심한 자괴감에 빠져 산다면 수정이 역시 신기루처럼 멀어질 것이다. 갖고 싶었다.감히 그런 생각도 할수 없을것 같지만 내 마음은 그녀를 원했다. 그것이 무리라면, 친한 사이로라도 발전하여 그녀가 부담을 느끼지 않을 거리에서 지켜만이라도 보고 싶었다.
‘좋아.전화하자.’
나는 용기를 내어 휴대폰을 꺼내들었다.최근통화목록의 가장 첫줄에는 수정이의 이름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천천히 엄지손가락을 통화버튼으로 가져갔다.
쾅쾅쾅!
나는 깜짝 놀라 현관쪽을 바라보았다.발자국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우리집을 두드리는것 처럼 소리가 우렁차진 않았다.
-계세요?-
누군가가 옆집문을 두드리고 있는 것이다.나는 의구심이 들어 휴대폰을 잠시 내려놓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뭐지?방금전에 옆집사는 사람은 집을 나갔는데 말이야.
“아따..이사람은 거 아침에 와도 없고 저녁에 와도 없고..그렇다고 새벽에 올수도 없고 전화도 안받고 이거 아주 기냥 환장 하겄네잉!”
문을 열자 어떤 남자가 조그마한 박스 하나를 들고서 불평을 터트리고 있었다.그는 내가 빼꼼히 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자 살짝 놀라 나를 바라봤다.
“무슨일이죠?”
“아따..나가 잠을 깨웠나 보네요잉.어따 죄송해서 어쩐데..저기 택밴디요.여기 사시는 분 혹시 못봤다요?”
“택배요?에?아..방금 나간거 같던데.”
내 말에 그는 세상 최고 억울한 사람처럼 울상을 지었다.
“아니 무슨 고로코롬 인내력 없는 아가씨가 있다요! 여기 경비실이 있는것두 아인디 나가 지금 몇번째 이 집을 오는지 혹시 알어요?”
“아..뭐..글쎄요.”
순간 멍해진 나는 땀에 젖은 택배 아저씨의 울분섞인 한탄을 들어줘야 했다.그는 갑자기 나를 보더니 뭔가 생각이 난듯 말을 이었다.
“거..혹시 이웃사촌잉게..총각이 대신 수령해주면 안되겄소?”
“네?제가요?”
“아..이것이..그게..착불인디...쪼까 내주면 안되겄소?나 여기 지금 몇번째 오는지 감이 안잡힐 정도여요~”
“아..”
나는 잠시 망설였다.내가 생면부지의 옆집 여성의 택배를 받아둬도 되는건가? 어제야 뭐 상상속에서 만났고,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그녀가 무엇을 하는지 훤히 알수 있다지만 그건 철저히 내사정인데.
“안되겄소잉?”
택배 아저씨는 거의 울것같은 표정이었다.햇빛에 그을려서 까무잡잡한 피부가 그를 더 억울하게 보이는데 한몫했다.나는 잠시 망설이고는 지갑을 들고 나왔다.
“받아드릴게요. 얼마죠?”
“어허허! 총각이 참 착하네요잉. 이거 이천 오백원만 주시면 될꺼여요.”
그리 비싼 돈이 아니니 딱히 모른척 할 이유가 없었다.내가 돈을 내밀자 그 아저씨는 복받을 거라는 때아닌 덕담까지 해주고 나서야 총총히 복도를 뛰어 사라졌다.
“응?근데 이게 뭐지?속옷인가?”
그리 크지 않은 상자에 내용물도 가벼웠다.보내는 이가 ‘샤이닝 스타’로 되어 있는것을 보니 속옷을 파는 쇼핑몰의 상호같기도 했다.내 눈은 자연스레 수취인쪽으로 향했다.익숙한 주소,나와 호수만 다른 주소가 보였고..그리고..
“억!!!!”
나는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아니, 비명을 지르려 했는데 목소리가 목에 걸려 나오지 않았다.
‘이..이게 뭐야..’
나는 몇번이고 눈을 씻고 확인했다.송장이라 불리는 작은 표딱지가 마치 눈앞에 걸린 현수막 처럼 느껴진것은 생애 처음이었다.
-받으시는 분: 윤수정-
사람의 마음은 간사한 모양이다.아침에 눈을 떠 머리를 말리고 있는 인애의 모습을 보았을때 나는 어제밤 처럼 당황하지 않았다.눈앞의 상대가 인애임에도 불구하고 비현실적으로 심장이 뛰는 기묘한 그 증상역시 해소되었다.내가 부스스 눈을 뜨자,그녀는 머리를 말리며 힐끗 나를 돌아보았다.다행히도 어제와 같은 인명 살상적인 복장이 아니었다.
“뭐하다 지금 인나냐?”
푸하하.정말 뻔뻔한 아이가 아닐수 없었다.술먹고 완전히 꽐라가 되서는 우리집에서 부린 진상짓은 기억이 안나는건가?아니..기억이 안나더라도 적어도 어제 내가 얘네 집에서 왜 자게 된거지?하는 근본적이고 근원적인 고찰에는 도달해야 하는것이 사람이 아니더냐!
“너 어제 술취해서 우리집 현관앞에서 뻗은건 아냐?”
“아..그랬냐.”
흡사 ‘밖에서 살랑바람이 부네요’라는 말을 하는듯한 평온한 톤과 뉘앙스에 나는 기가 질려 버렸다.남자가 그런 경험을 해도 내가 왜이랬지..하는 자책을 하는 법인데 서인애 사전에는 그딴게 없는 모양이었다.오히려 너네 집이라 잘됐네 라는 듯한 사뭇 쏘 쿨한 그녀의 태도에 나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너네 옆집 되게 시끄럽더라.”
“뭐?”
나는 깜짝 놀라 인애를 바라보았다.그녀는 태연하게 말린 머리를 손으로 몇번 만져 정돈하며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뭐가 그렇게 우당탕 시끄러운지...대낮부터 말야.”
“옆집이?”
“응.”
나는 반사적으로 시계를 바라보았다.또다시 오후를 넘겨버린 시간. 인애는 지금에서야 출근을 하는지 완벽하게 외출복장을 갖추고 있었다. 그럼..옆방 여자가 대낮에 집에 있다는 건가?괜시리 신경이 쓰였다.
“그래?대낮부터 뭐가 그렇게 시끄럽다냐.”
“잠깐 오더니 나가버리던데?현관문도 쾅!하고 닫고.”
인애는 우리집의 방음상태를 전혀 모르는 모양이었다.굳이 현관문을 세게 닫지 않아도 옆집에서 문을 열고 닫는것은 훤히 들린다. 물론 같은 층이라도 조금 떨어진 집에서는 들리지 않을것이다.우리집과 옆집은 복도끝에 따로 붙어있는 구조였으니까.
“근데 라면없냐?”
“...니가 다 쳐먹은건 기억을 못하는 모양이구나.”
“흠...좀 사다놔라. 이 누나가 해장도 못하면 되겠니?”
나는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게 느껴졌다.역시나 인애의 얼굴엔 5센티 이상의 철판이 탑제되어 있음이 분명했다.아무리 친구라지만 저런 뻔뻔함을 보일수 있다니...내가 그녀의 화술에 혀를 내두를 찰나,그녀는 잘 빗어내린 머리를 위로 찡긋 묶어 올리더니 몸을 돌렸다.
“야.암튼 난 나간다.다음에 보자.하루 신세 잘졌다잉~”
깔끔하게 세수를 하고, 머리를 묶은 그녀의 얼굴은 너무나 하얗고 깨끗했다. 원체 선머슴이니 화장은 잘 안했으니까 그건 뭐 당연하게 느껴졌지만...청바지 한장을 입어도 맵시가 잘 사는 신체 비율은 감탄할 만했다.어라..?근데 언제부터 저 아이가 머리를 묶어 올렸었지?
“근데 너...머리 자주 묶는다?”
아무 생각없이 나온 말이었다. 어제 우리집 현관에 뻗어있을때도 머리를 묶어 올린..소위 말하는 포니테일형 머리였으니 말이다.늘 머리를 묶지 않고 두는 아이가 오늘 아침에도 묶어 올리니 자연스레 나온말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녀석의 반응이 이상했다.뭔가 움찔 하는가 싶더니 불만 가득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역시나 본능이란게 무서운건지..나는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도 모르는채 그녀의 시선 하나에 찔끔하며 뒷걸음질 쳤다.
“이 새끼가 착각하고 있어...그냥 편해서 묶은거야 임마.”
“엉?”
뭐야 저 앞뒤관계 안맞는 말은...내가 영문모를 표정을 짓자 인애는 금세 가방을 집어 들고는 훽하고 현관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냥 가려고?”
“그럼 뭐! 내가 니 밥이라도 해주리?마누라냐 내가?”
“...너쫌 예민해 보인다..”
“시끄러.”
인애는 내게 퉁명스럽게 말을 하고는 구두를 신었다.안그래도 키가 큰 그녀가 구두까지 신으니 더욱더 길어 보였다. 나는 현관으로 성큼성큼 다가가 입을 열었다.
“뭐..이해한다. 혹시 그날이라 그렇게 예민..컥!”
쾅!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눈앞으로 노란 하늘, 아니 천장이 보였다.가방으로 내 머리를 강타한 인애의 발자국소리가 복도너머 아스라히 멀어져 가고 있었다.
“아씨..저 선머슴 같은 계집애.도대체 왜저러는 거야?진짜 그날인가?”
나는 혹이 볼록 나온 머리를 잡고는 킥킥 거리며 웃었다.으응?가만..인애는 그날이 아닐텐데..적어도 어젯밤에는 그날이 아니었는데...뭐..내가 손으로..만져봤으니.
갑자기 어제 일이 생각나니 괜시리 민망해졌다.그럼 이유가 도대체 뭐지?하여간 여자란 복잡한 동물이다.저렇게 금방 예민해지니 원..아휴.
나는 뭔가가 생각나 얼른 침대쪽으로 다가가 옆방에 귀를 대었다.뭔가가 우웅하고 돌아가는 소리 이외엔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아무도 없는것이 확인되고 나서야 나는 휴우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인애가 아까 나갔었다고 말은 해주었지만 내 소심한 성격상 바로 옆에 누군가가 있다고 생각하니 영 내 집에서도 마음대로 할수 없을것 같아서 였다.
오늘은 하루종일 집에 있어야 했다.뭐 하루의 대부분을 집에서 악상을 구상하거나, 혹은 게임을 하거나 하는등...전체적인 패턴이 청년실업의 시대속에 있는 날백수의 삶과 비슷하게나마 일치했다. 전과는 다른점이 있다면 컴퓨터를 하던 뭘 하던 수시로 휴대폰의 액정을 확인하게 되었다는 것 뿐이었다.하지만 수정씨에게 먼저 연락이 오거나 하는 기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또 먼저 보내자니 이미 연애세포가 멸종을 한 내 두뇌에서 자연스럽게 문자를 보낼 센스있는 말이나 용기따윈 솟아오르지 않으니 그것도 문제였다.
‘미친척 하고 밥먹자고 해볼까?’
생각해보면 그건 정말 미친짓이었다. 이미 점심시간은 훌쩍 넘었고, 그렇다고 저녁을 기약하기엔 일전에 늦은시간까지 일을하던 그녀의 모습이 생각나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거절 당할 요인이 많다보니 더욱 망설여졌다.
‘그래,까짓거 거절당하면 어때? 전화번호 받아놓고 빌빌 거리는 남자답지 못한 모습보다 낫지 않겠어?’
기왕이면 문자보다 전화를 하는게 맞을거 같았다.없었던 용기가 되살아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전화를 한다고 굳게 마음먹으니 또 떨리기 시작했다. 아..나는 수정이라는 여자를 알고 나서 지병을 발견하고 말았다.그것은 이름하여 ‘습관성 긴장 증후군’이라는 찐따스런 병명이었다.
“후우..후우..”
남들이 보면 생애 첫 스카이 다이빙이라도 하는 녀석처럼 나는 몇번이고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다잡았다.전화부에서 그녀의 이름을 찾아 누르는게 이렇게 떨리는 일이던가?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용기를 내어 send버튼을 길게 눌렀다.
-고객님의 전원이 꺼져있어...-
맥이 탁하고 풀렸다.거절당하더라도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는데 그럴 기회조차 박탈되는게 허탈했다.
가만,수정씨의 목소리는 어땠었지?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미지가 딱 하고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외모에서 느껴지는 것이 너무나 강해서 목소리를 머릿속에 넣을 여유따윈 없었다고 하는것이 옳을수도 있었다.
맥이 탁 하고 풀려버리니 모니터 안에 있는 음악 프로그램의 툴들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수정이만 생각하면 뛰는 것을 보면 음악적 감성으로는 풍부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설레는 사랑노래나 축가 같은건 백개라도 만들수 있을것 같았다.문제는 감성은 사랑중이지만 현실은 혼자라는 점이 겠지만 말이다.
뚜뚜뚜뚜
그냥 체념하고 출출해진 배를 달래려 중국집 전화번호를 찾으려던 그때 내 귀가 쫑긋하고 섰다.이윽고 들리는 철컥!하는 쇳소리.틀림없었다.
‘옆방 여자가 들어왔잖아.’
반사적으로 휴대폰을 올려둔채 침대쪽으로 내 몸이 향해졌다.조심스레 벽에다가 귀를 대 보았다. 무언가를 바닥에 내려놓는 소리, 발걸음을 옮기는 소리등등이 내 귀를 통해 전달되어 졌다. 하지만 내 귀에는 다른소리가 더 또렷하게 들렸다.벽 너머라 많이 선명하지 않지만,분명 주의를 끄는 소리가.
-하아..하아..-
약간은 거친 숨소리였다.여인의 소리임을 믿어 의심치 않게 하는 고운 음색이 섞인 숨가뿐 호흡소리.물론 상상속에는 야릇한 장면들이 스쳐갔지만 정황상 내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19금의 소리는 아니었다.집에 오자마자 야릇한 신음소리를 낼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되겠어?근데 왜지?왜 집을 나간지 몇시간만에 다시와서 저런 소리를 내는거야?
-하아..하아..후우..-
냉장고에서 무언가를 꺼내는 소리.물따르는 소리가 곧바로 들려왔고 정체불명 옆방그녀의 목을 타고 물이 넘어가는 소리까지 희미하게나마 들려왔다. 그녀의 발걸음 소리가 점점 멀어진다.나는 반사적으로 벽에 귀를 댄 채로 그녀의 발걸음을 따라 걸어 나갔다.
‘어디 아픈건가?’
그녀의 발자국 소리는 굉장히 불규칙적이었고, 거친 호흡소리 역시 간헐적으로 들려왔다. 숨소리뿐이지만 누가봐도 환자의 음색이었던 것이다.
-쏴아아-
곧이어 샤워기의 물쏟아지는 소리가 들려왔다.아까 인애의 말대로라면 낮에 나갔다는 뜻인데..왜이렇게 빨리 집에 돌아왔을까?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우당탕거린게 혹시..아파서 몸을 비틀거렸다는 것일까?
온갖상념이 들어오고 있을때쯤엔, 나역시 욕실부근에서 여전히 그녀의 집쪽으로 귀를 대고 있었다. 내가 왜이러지?변탠가?하는 생각이 스물스물 올라왔지만 왠지 모르게 호기심이 샘솟았다.
찌걱..찌걱..
침이 꼴깍 하고 넘어갔다.시간이 어느정도 흐르니 비누칠하는 소리가 여과없이 들려왔다. 시각이라는 것이 제한되니 청각은 더더욱 예민하게 곤두섰고, 더불어 내 머릿속으론 오만가지 상상이 동원되며 환타지가 펼쳐지고 있었다.
-후우..어지럽네..-
그녀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아파서 그럴것이라는 내 추리는 얼추 들어맞는 모양이었다.나는 한쪽으로 치우친 자세탓에 아파오는 허리통증과 목의 통증을 국건하게 참아내며 그녀의 행동을 관찰..아니 청취하고 있었다.
-따르르릉-
그녀가 샤워를 마치고 나왔을때쯤 벨소리가 울렸다.심히 아날로그적인 사운드로 볼때 집전화가 틀림없었다.남들보다 청각이 발달해서 일까?아님 상상력이 풍부한 걸까? 눈앞에서 그녀가 전화를 받는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여보세요?응..오빠..-
나는 침을 한번더 꼴깍 삼키며 신경을 집중했다.애석하게도 상대방이 하는 말까지는 들리지 않았다.하기야 뭐..그런건 옆에 있어도 안들릴 테지만.
-응..미안..몸이 안좋아서 조퇴했어..응?아냐..괜찮아..뭘 굳이 이리로 오려구해.그냥 피곤해서 몸살난거 같은데 뭘..-
남자친구인가? 그녀의 목소리가 아픈 와중에도 굉장히 다정다감한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해서 응 이라고 대답만 하는 듯한 그녀의 목소리. 잠시후 내 귀가 쫑긋 설만한 대화가 펼쳐지자 나는 다시금 정신을 집중했다.
-뭐?이리로 온다고?아냐 오빠..나 그냥 쉴게.정말 괜찮은데..-
-에휴...감기라서 오빠도 옮으면 어쩔려구 그래?나 옮아도 책임안질거야.-
애교마져 섞인 듯한 그녀의 목소리.크으..부럽다. 뭐 옆방 그녀를 본적은 없지만, 내가 여친이 있다면 감기가 아니라 신종 인플루엔자가 걸렸다 하더라도 찾아가서 마우쓰 투 마우쓰를 하며 극진히 간호할텐데..
-지금 어딘데?뭐?10분거리?오빠가 왜 이근처에 있어?음..그럼 알았어.잠깐 보구가.-
그녀의 전화가 끝이 났다. 내용정황상 남자친구가 오는 모양이었다.그녀는 부리나케 몸을 일으키더니, 여전히 신음섞인 호흡을 하며 뭔가 분주히 움직였다.
하긴..지금 막 샤워를 끝내고 받았으니 알몸이었을테고..남자친구가 10분안에 오니까 준비하려는 거겠지.
부러우면 지는건데, 괜시리 그 오빠란 사람이 심히 부러워졌다.나는 그녀가 눈치채지 못하게 최대한 천천히 벽에서 귀를 때었고,살금살금 침대위에서 내려왔다.자세를 바꾸자마자 한껏 꺾여있던 목이 비명을 지른다.
‘아후..이거 왜이렇게 은근히 흥분되지?’
요새 내가 약을 먹었나하는 의문마저 들었다.훔쳐보는것도 아니고, 그냥 듣는것만으로도 호기심이 동했고, 그녀가 알몸으로 있다가 옷을 입기 시작한다는 상상을 하자 묘하게 지릿한 흥분감이 전해져 왔다.
나는 반쯤 미쳐있었나 보다.사실 어제 인애의 몸을 몰래 만졌을때부터 미쳐있었을 지도 모른다.나는 조용히, 그렇지만 신속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방 한구석에 놓여있는 음향장비가 눈에 들어왔다.녹음할때 쓰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름 소리에 민감한 사람이었기에 이런저런 도구들이 있었다.
내 눈에 들어온 것은 해드폰이었다.일반적으로 음향기기에 연결하는것이 아닌 조금 특이한 해드폰이라 해야 옳을 것이다.해드폰의 끝에는 기계에 꽃는 잭이 아닌 청진기 처럼 체스트 피스가 달려있었다.물론 청진기와 똑같은 것이라고는 볼수 없었다.소리에 예민한 사람들이 기계의 내부를 소리로써 판단할때 쓰는 도구였고, 전문적으로 판매되는 것이 아니었기에 나역시 재료들을 구해다가 직접 만든 물건이었다.
‘이걸로 더 잘 들리려나?’
호기심이 들어왔다.그것이 반범죄적 호기심이라는 것도 인지하지 못한 나는 해드폰 끝에 달린 몇개의 판을 벽에 대고는 조심스레 테이프를 붙였다.다행히도 해드폰 끝에 달린 판은 하나가 아닌 세개였기에, 나는 소리를 죽이고 세개의 판들을 넓게 벌려 벽에 테이프로 고정시켰다.
띵동.
-오빠야?문 열렸어.-
잠시후 소리가 들려온다.여기까지는 굳이 벽에 귀를 대거나 해드폰을 착용하지 않아도 또렷이 들리는 부분이었다.나는 침을 꼴깍 삼키고는 천천히 해드폰을 양손으로 벌려 내 귀에 가져다 대었다.
-우리 애기 많이 아팠어?너 괜찮아?-
나는 비명을 지를 뻔한 것을 참아내었다.맙소사. 귀에다 댄것과는 차원이 다른 음질(?)과 음향(?)으로 내귀에 전달되었다.남자친구인듯 보이는 그가 그녀에게 입을 맞추는 소리까지도 또렷히 들려왔다.
세상에.음향기사지만 이런 도구의 성능에 다시한번 놀랄수 밖에 없는 나였다.그제서야 왜 이것이 시중에 판매되지 않는지 짐작이 갔다. 이건 정말 도청을 즐기는 변태들이라면 환장을 할만한 물건이었다. 음..근데..지금 이렇게 편안히 누워 해드폰을 끼고 옆방의 상황을 듣는 나도 변태의 범주에 포함되는 건가?
-괜찮아?많이 아파보이네..열은 없는데.-
-괜찮아 오빠.그냥..조금 피곤한가봐.-
-숨소리가 거칠구만 뭐.이리와봐.여기 누워.-
둘의 대화만 들어도 유추는 쉽게 이루어졌다.그녀의 방, 그리고 그녀의 침대위에 둘은 나란히 누운 모양이었다.옆방의 그녀는 애교가 조금 있는 성격인 듯했다.나는 아까와는 달리 편안하게 누운채로 해드폰으로 모든 상황을 전달 받을수 있었다.처음에 어정쩡하게 서서 들었지만, 불편해 지니 아예 드러누워 버린 것이었다.
-미안해 오빠.나땜에 여기까지 오고.-
-별소리 다한다. 평소엔 장난도 잘치면서 이렇게 얌전한거 보니 또 새롭네?-
그녀는 부끄러운듯이 웃었다. 하지만 둘의 대화는 더이상 들려오지 않았다.대신 내 해드폰에서는 무언가 쫀득쫀득한 두개의 물체가 서로 비벼지는 음색이 들려왔다.
‘뭐야..키스하는건가?’
영화속 연인들의 키스는 로맨틱하지만,이렇게 쫀득이는 음색을 귀로만 들으니 키스는 정말 세상 최고로 야한 스킨쉽이었다.침대시트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귀에서 또렷하게 들리니 눈앞에 보이는것만 같았다.
심리학으로는 문외한 이지만, 난 그제서야 폰섹스라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것 같았다.시각이 아닌 음성이 주는 효과는 생각외로 컸다.아까까지만 해도 수정씨를 생각하며 청춘 로맨스같던 내 가슴은 금새 성인물로 바뀌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샤워했어?몸에서 좋은 냄새나네..-
-아이..오빠..오늘은..흑..-
-왜..가만있어봐..살살할게.-
-그치만..-
-머리 안아프게..살살..부드럽게 할게..응?-
-흑..-
무엇을 하는걸까.굳이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침대 시트가 바스락 거리는 소리는 더욱 크게 들려왔다.젠장..왜이런거지?평소같았으면 그저 부럽다..라고 치부하며 신세한탄에 돌입했을 나일텐데 지금은 달랐다.남자가 옷을 벗는 소리, 그리고 여자의 옷을 벗기는 소리가 또렷히 나진 않았지만 침대위 시트가 일그러지는 소리 만으로 내 눈앞에서 보이는 것처럼 생생하게 상상할수 있었던 것이다. 나도 모르게 심하게 흥분을 하고 있었다.
-오늘은 오빠가 입으로 해줄게.기다려.-
-아..안돼..흑..-
-쪼옥..쪽..쪽..-
점점 내 바지 앞섬은 텐트를 치는거마냥 불룩해졌다.그저 쪽.쪽 하는 소리였지만 마치 하얀 살결의 알몸을 남자가 혀로 돌리고 애무하는 듯한 그 모습이 눈에 선할 정도였다.
-흑..아앙..아..거긴 간지러워 오빠..흐응..-
그렇게 교태섞인 신음은 아니었다.애인과의 섹스라 생각했을때 지극히 평범한 정도랄까? 하지만 이 상황에서 흥분이 반감되는것은 절대 아니었다.긴긴 솔로 생활중에 점점 내 하드에 쌓여가는 무수한 야한 동영상들 중에서, 이처럼 흥분되는 것은 없다고 단언할수 있었다. 눈에 보이는 영상이 아닌, 귀에서 들리는 음성과 내 상상이 혼합된 일종의 환각이 내게 보이고 있었다.
-하아..니 가슴 너무 좋다..밑에 잔뜩 젖었어.-
-창피하게..흑..흐응..-
요란하게 쪽쪽 거리는 소리가 끝나고, 잠시간의 정적이 흘렀다.보이진 않지만 난 알수 있었다.여자의 하얀 다리를 벌리고, 녀석은 지금 결합을 시도하고 있을 것이다.천천히..막 하려하지 않고 애를 태우면서 말이다.
-흑..하앙..아퍼..오빠..-
-후..니꺼 진짜 너무 꽉 조인다..움직일게.-
-흑..하앙..흥..흐응..-
조금씩 침대가 삐걱대기 시작했다. 남자는 급한듯했다.빨리 여자의 몸을 범하고 싶어서 어쩔줄 몰라하는것도 같았다. 여자는 계속해서 살살 해달라고 애원했지만, 녀석은 거의 윽박지르듯 여자를 다루고 있었다.애초에 살살한다고 했던 그 말은 그냥 달콤한 구슬림이었던 모양이었다.
-헉..헉..야..더 조여봐..다리 오므리고..헉..헉..죽인다..-
-아퍼..오빠..흑..살살..아아앙..흑..-
젠장할.아무리 여친이라지만 아픈애 문병온답시고 와서는 저렇게 거칠게 다루다니. 근데 화가 나지 않았다.가슴속에서는 화가 난다고 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이미 내 머릿속은 흥분이 지배한 후였다.
“헉..헉..”
내 숨소리 역시 거칠어 졌다.참지 못하고 츄리닝 바지와 팬티를 내렸다.아까부터 흥분되어 있던,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어제부터 흥분되 있던 내 가운데 다리는 거대하게 발기되어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헉..헉..좋아?응?-
-살살해줘..부탁이야..흐응..흑..흑..아아앙..-
-뭔 딴소리야..좋냐고..응?-
-조..좋아 오빠..흑..-
철썩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무엇에 젖은 두개의 물체가 부딪히는 마찰음이 너무나 야릇했다.나는 참지 못하고 뜨거워진 불기둥을 움켜쥐었다.귀에 들어오는 정보를 통해 펼쳐진 상상의 나래.그녀의 움직임과 함께 내 손도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헉..헉..너도 하고 싶었지?응?밑에 흠뻑 젖은거 보니까..-
-그런말 하지마..흑..흥..흐응..-
-어우씨..진짜 너 쪼이는거 하나는 죽인다..정말이야..보지맛이 예술이야..-
-오빠 제발...왜 자꾸 그런말해..흑..-
머릿속이 새하얘진다.손을 움직이는 속도도 가속력이 붙은 것마냥 위아래로 빠르게 움직여 나갔다.한동안 잊고 살았던 수음의 쾌감이 찌릿찌릿 내 머리털까지 곤두세우고 있었다.
-나 싼다..헉..으윽..-
-안돼..안에다가는..-
공교롭게도 내 절정역시 동시에 찾아왔다.이십여분동안 들려오던 신음소리와 대화, 그리고 무언가가 부딪히는 그 야릇한 소리에 나는 내 손위로 정액들을 가득 쏟아내고 말았다.
-휴우..후아..봐..안에다가 안했잖아.-
-살살하기로 했잖아..-
-왜그래?우리자기 삐졌어?같이 샤워할까?-
-됐어..오빠 진짜 할때마다 너무 이상해.거칠어지고..-
-미안해.니가 너무 좋아서 그런거잖아.응?-
허탈함과 허무감에 숨을 몰아쉬는 그 상황에도 남녀의 대화는 계속해서 내 귀를 통해 전달되고 있었다. 남자녀석은 뻔뻔하게도 여자를 달랬고, 여자는 못이기는 척 토라진 것을 푸는듯했다.크리넥스가 뽑히는 소리.약간 우물쭈물 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도합 두개의 발자국 소리는 욕실로 향했다.
‘빌어먹을.’
나도 모르게 해드폰을 벗어버렸다.욕지꺼리가 밀려왔다.역시나 혼자서 달래는 외로움은 허무함의 쓰나미를 동반했다.내가 변태같이 뭐하는 짓이지?죄책감마져 들자 짜증이 났다. 얇은 벽 하나를 두고 나의 세계와 저쪽의 세계는 판이하게 달랐다. 나는 전화번호 하나 땄다고 좋아하면서 전화걸때도 설레여 하는 멍청이였고, 저쪽에 있는 녀석은 여자친구가 아플때도 구슬려서 욕정을 채우는,그것도 섹스 도중에는 거칠게 돌변하는 그런 삶을 살고 있는거다.
-쏴아아-
또다시 들리는 샤워소리.하지만 아까만큼 선명하게 들리지 않았다.해드폰의 큰 음성에 내 귀가 익어버린 탓이다.하지만 듣고 싶지 않았다.오히려 두귀를 막고 싶을 정도로 치욕스러웠다.
‘아..제길..또 반복되는건가.’
정말 싫었다.어제밤 옆방의 남녀는 서로 사랑을 속삭이는지 쉴새없이 대화를 했고, 남자 녀석은 밤이 늦어서야 돌아가는거 같았다.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에, 열등감까지 들어오자 짜증이 났고 짜증이 나니 잠이 오질 않았다.
찰칵.
하지만 여지없이 아침은 찾아오는 것이었다.나는 아주 조용하니까, 그녀는 잠이 잘왔을지도 모르겠다.다시 찾아온 아침에 그녀가 출근을 하는듯 문이 닫히는 소리와 또각 거리는 구두소리가 들려왔다.
“후우..젠장..”
옆방에 아무도 없는걸 알고나서야 나는 입을 열었다.무려 10시간이상 잠도 설치고, 혼잣말 한번 하지 못한채 나만의 공간에 찌그러져 있었던 거다. 수정이를 생각하면서 설레였던 마음을 욕정이 한때나마 덮었다는 사실에 창피했다.난 나름 내가 순수하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나도 남자라는 탈을 쓴 한마리 동물이었나 보다.
‘부러워해서 뭐해.계속 이렇게 살아서는 수정이도 짝사랑으로 끝날거야.’
나는 벌떡 일어났다.열등감이 쌓이려하니 되려 의욕에 불타올랐다.이렇게 한심한 자괴감에 빠져 산다면 수정이 역시 신기루처럼 멀어질 것이다. 갖고 싶었다.감히 그런 생각도 할수 없을것 같지만 내 마음은 그녀를 원했다. 그것이 무리라면, 친한 사이로라도 발전하여 그녀가 부담을 느끼지 않을 거리에서 지켜만이라도 보고 싶었다.
‘좋아.전화하자.’
나는 용기를 내어 휴대폰을 꺼내들었다.최근통화목록의 가장 첫줄에는 수정이의 이름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천천히 엄지손가락을 통화버튼으로 가져갔다.
쾅쾅쾅!
나는 깜짝 놀라 현관쪽을 바라보았다.발자국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우리집을 두드리는것 처럼 소리가 우렁차진 않았다.
-계세요?-
누군가가 옆집문을 두드리고 있는 것이다.나는 의구심이 들어 휴대폰을 잠시 내려놓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뭐지?방금전에 옆집사는 사람은 집을 나갔는데 말이야.
“아따..이사람은 거 아침에 와도 없고 저녁에 와도 없고..그렇다고 새벽에 올수도 없고 전화도 안받고 이거 아주 기냥 환장 하겄네잉!”
문을 열자 어떤 남자가 조그마한 박스 하나를 들고서 불평을 터트리고 있었다.그는 내가 빼꼼히 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자 살짝 놀라 나를 바라봤다.
“무슨일이죠?”
“아따..나가 잠을 깨웠나 보네요잉.어따 죄송해서 어쩐데..저기 택밴디요.여기 사시는 분 혹시 못봤다요?”
“택배요?에?아..방금 나간거 같던데.”
내 말에 그는 세상 최고 억울한 사람처럼 울상을 지었다.
“아니 무슨 고로코롬 인내력 없는 아가씨가 있다요! 여기 경비실이 있는것두 아인디 나가 지금 몇번째 이 집을 오는지 혹시 알어요?”
“아..뭐..글쎄요.”
순간 멍해진 나는 땀에 젖은 택배 아저씨의 울분섞인 한탄을 들어줘야 했다.그는 갑자기 나를 보더니 뭔가 생각이 난듯 말을 이었다.
“거..혹시 이웃사촌잉게..총각이 대신 수령해주면 안되겄소?”
“네?제가요?”
“아..이것이..그게..착불인디...쪼까 내주면 안되겄소?나 여기 지금 몇번째 오는지 감이 안잡힐 정도여요~”
“아..”
나는 잠시 망설였다.내가 생면부지의 옆집 여성의 택배를 받아둬도 되는건가? 어제야 뭐 상상속에서 만났고,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그녀가 무엇을 하는지 훤히 알수 있다지만 그건 철저히 내사정인데.
“안되겄소잉?”
택배 아저씨는 거의 울것같은 표정이었다.햇빛에 그을려서 까무잡잡한 피부가 그를 더 억울하게 보이는데 한몫했다.나는 잠시 망설이고는 지갑을 들고 나왔다.
“받아드릴게요. 얼마죠?”
“어허허! 총각이 참 착하네요잉. 이거 이천 오백원만 주시면 될꺼여요.”
그리 비싼 돈이 아니니 딱히 모른척 할 이유가 없었다.내가 돈을 내밀자 그 아저씨는 복받을 거라는 때아닌 덕담까지 해주고 나서야 총총히 복도를 뛰어 사라졌다.
“응?근데 이게 뭐지?속옷인가?”
그리 크지 않은 상자에 내용물도 가벼웠다.보내는 이가 ‘샤이닝 스타’로 되어 있는것을 보니 속옷을 파는 쇼핑몰의 상호같기도 했다.내 눈은 자연스레 수취인쪽으로 향했다.익숙한 주소,나와 호수만 다른 주소가 보였고..그리고..
“억!!!!”
나는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아니, 비명을 지르려 했는데 목소리가 목에 걸려 나오지 않았다.
‘이..이게 뭐야..’
나는 몇번이고 눈을 씻고 확인했다.송장이라 불리는 작은 표딱지가 마치 눈앞에 걸린 현수막 처럼 느껴진것은 생애 처음이었다.
-받으시는 분: 윤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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