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잠든 사이에 <1부> > 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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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잠든 사이에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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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소설을 쓰는 기분으로 쓴 글입니다.

고로....야하지 않습니다...-_-;;;

덧붙여서 소라넷에 얼마전에 연재를 했던 글임을 밝혀둡니다.

댓글에 많이 보여서 드리는 말씀인데 늘봄=소라넷 refife가 맞습니다^^


 

1부


-야야.한번만 나가봐.니가 외로워하는거 같아서 이 누나가 준비한거야 임마.-

처음엔 단지 그것하나,소꿉친구가 소개팅을 해준다길래 나갔을 뿐이다.뭐,나도 남잔데 기대하지 않았다는것 절대로 아니다.남들 슬슬 연애하고 결혼준비할 20대 끝자락에,혼자 궁상맞게 자취하는 내 모습에 대한 자위로 나갔는지도 모르겠다.하지만....하지만!

“어머!나이거 너무 좋아하는데에에에~!역시 커피는 아메리카노라니깐~~”

….그래 많이 먹어라.보아하니 철도 씹어삼킬거 같은데...많이 먹어야지 아무렴.뭐 이미지는 자판기 커핀데 아메리카노라...에휴.

“오빠 ,이름이 뭐에요?”

“박재하...입니다.”

“나는 슬기에요.이슬기!”

나는 심히 안되는 표정관리를 애써 하며,이쁜 이름이네요 라고 말해 주었다.이 여자,뭐가 좋은지 거대한 어금니를 드러내며 웃는다.

허..그래.소개팅 까지는 좋았다.진심으로 기대하고 진심으로 두근거렸으니까.하지만 문제는 소개팅에 나온 짐승....아니 여자에 있다.

바야흐로 여름이 끝나가는 이 시즌에 이여자는 얼룩말 무늬의 자켓에 호피 무늬 치마,그리고 긴 롱부츠를 신고는,마치 세렝게티 초원에서 뛰어온거 같은 야생마 차림으로 내 앞에 나타났다.나는 처음에 보고 유명한 레슬링 선수 브록 레슬러를 보는줄만 알았다.부담스런 파마머리,마치 호피를 찢고 나올듯한 저 거대한 살집.아…주변의 시선 까지 돌아버리겠다.

“재하 옵하야는 무슨일 해용?”

아..이러지 마라.나 지금 커피 마신거 토할지도 몰라.제발 부탁이야 브록 레슬…아니 슬기씨.

“네.음향기사에요.”

“엄훠!정말요오?멋찌다앙!!”

“…..아예 감사합니다.”

나는 또한번 역한 구역질이 나올뻔한것을 가까스로 참아내었다.일단 콧구멍을 찢어발길 듯한 이 부담스런 향수내음 하며,웃을때마다 보이는 저 불규칙한 치열의 치아.아아..사람 환장할 일이구나.

“돈도 많이 버시죠?그쵸오?”

“아뇨.별로 못법니다.”

“에이~못미게쪙 못미게쪙!”


…..죽는다 진짜….

“정말 얼마 못벌어요.작곡가가 아니고 엔지니어일 뿐이니까요.”

“그럼 유명한 가수도 봤어요?”

“아 뭐…그냥 몇명요.”

“어머!그럼 아이돌 그룹도 봤겠네?나 아이돌 댑따 좋아해요!”

이봐.그 아이돌들 생각도 좀 해주지 그려…나는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음향기사.그래,꼴같잖은 내 직업이다.이쁜 여자가수도 보고,유명한 가수도 보니까 좋지 않냐는 철없는 질문도 많이 받아봤다.하지만 녹음기사라는 거,일정하게 소속되어 있지 않은 나같은 애들은 그냥 아는 작곡가 형이 불러주기나 기다리는 5분대기조나 다름없다.한번 녹음하면 꽤 받지만,일정한 수입이 보장되어 있는게 아니니까.아 그나저나 이 괴물을 소개해준 인애…아니 인자 이 기지배..…진짜 때리고 싶다.

“옵화!우리 술마시러 가요 고고씽?”

“술이요?”

제발 부탁인데 커피만 마시고 헤어지면 안될까?으응?나는 마음속으로 간절하게 외치고 또 외쳤다.하지만 저 엄청난 떡대의 브록 레슬러…아니 슬기양(….)이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부담스럽게 날 바라보니 거절을 못하겠다.원래 사람한테 딱 거절못하고,싫은티 못내는 내 성격이 이렇게 원망스러울 줄이야.

“자자!얼른가요!얼른!”

뜨헉!이 여자 힘도 장사다.내 팔을 잡고 일어서는데 나는 흡사 무슨 순두부 끌려가듯이 질질 끌려가는 형상이 되었다.아 플리즈.카페안에 있는 분들 제발 절 바라보지 말아요.저 진짜 창피하단 말입니다.

늦게 시작된 소개팅 탓에,나는 브록레슬러에게 끌려 호프집까지 오고야 말았다.당연히 남자가 계산해야지!하는 듯한 저 표정때문에 커피는 내가 계산했고,그 법칙은 호프집에 와서도 불변하는 모양인지 그녀는 소주 한병에 500cc맥주 두잔을 시킨다.평일의 한산한 저녁 호프집에는 주말만큼 사람이 많지 않았고,곧이어 술은 나왔다.

그녀는 그 솥뚜껑만한 손으로 소주를 따더니 자신의 생맥주 잔에 콸콸 쏟는다.

“저는 소맥이 잘 맞아요 옵하 호호호호!”

소맥으로 쳐맞고 싶지 않으면 그냥 마셔줄수 없겠니…부탁이다.

“옵하!만난것도 인연인데 우리 건배해요.슬기랑 건배에!”

“아..아예.”

나는 그녀가 엄청난 힘으로 밀어대는 잔과 부딪히고는 마지못해 맥주를 한모금 들이켰다.아....평소에 너무나 맛있는 이 맥주가,오늘따라 왜이리 쓰디쓴것이냐.내 마음같아서는 소주에 빨대를 꽂고 먹고 싶은 심정이다.

“박재하 오빠라고 했죠?자꾸 발음하니까 반지하 같다!호호호호호!”

“………”

아…그래,반지하라고 불러도 좋고 옥탑방이라고 불러도 좋다.소원은 오직 하나.이 여자가 그냥 소맥 한잔만 먹고 집에 가주길 바랄뿐.

“오빠오빠.있잖아요.나는 느낌이란걸 믿는데요오~사실 오빠는 만난지 한시간도 안됐지만 느낌이 너무 좋은거 같아요”

“푸웁!”

나는 순식간에 사레가 들려 콜록콜록 대었다.그녀는 또 불규칙한 치열을 드러내며 마치 사자같이 표효하며 웃는다.젠장.쪽팔려.

“제가 왜요..?”

“음..오빠 삭발한 머리도 맘에 들고.음악하는 분이라 파숑 스타일도 맘에 들구여어~음 또….”

아…당장 집에가서 발모제를 쳐바르고 고시생 츄리닝을 입고 나오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머리야 아무리 늦여름이지만 더운시기라서 삭발한거고,첫 만남에 민머리 보여주면 좀 그래서 모자쓴건데,염병 그걸 패션으로 받아들이며 맘에 들어하다니.아아…하늘이시여.진정 저는 이리도 운이 없단 말입니까!!

“근데 오빠.여자친구 언제 사귀어 봤어요?”

“고등학교때요.”

“어머.오빠 스물여덟살 아니에요?”

“네..맞아요.”

“그럼 그 이후로 쭈욱 솔로에염?”

“….네.솔로에염.”

“어머어머!”

그녀가 놀랍다는 리엑션을 할때마다 테이블위가 미친듯이 흔들린다.아.간만이다.쥬라기 공원의 한장면인줄 알았네.

“왜요?이유알고 싶어요~”

…왜겠냐.인기가 없어서지.키가 큰것도 아니고,얼굴이 잘나지도 않았으며,유머감각도 없는데다가 돈이 남아도는 인간도 아니니까 그런다.왜?

“글쎄요.인연이 없었나 보죠.”

나는 속에서 나오는 오만가지 육두문자를 꾹꾹 눌러 삼키며 그녀의 말을 받아주었다.하지만 우리의 브록레스…아니 슬기양은 또 한번 나를 침통하게 만들었다.

“저두 오빠같은 운명적인 인연을 너무나 기다렸눈뒈..헤헤헤.”

아…시바…

다 좋은데 제발 그 채팅스러운 말투좀 집어쳐줄수 없겠니?으응? 나는 그래도 소개시켜준 친구의 체면을 생각하며 참고 또 참았다.그래.참아야해.참아야 한다.오늘 이 시간만 벗어나면 난 그냥 솔로를 행복해 하며 일이나 열심히 할거야.진짜로!

“헤에에.근데요 오빠…슬기는…슬기는…”

한참동안 딴생각을 하며 그녀의 말을 듣는둥 마는둥 하다가 정신을 차려보니,이미 그녀의 옆에는 500cc맥주잔이 벌써 두개나 깔끔하게 비워져 있었고,소주역시 나는 입에도 안대었는데 벌써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그녀는 더욱더 붉어져 부담스러운 얼굴을 하며 혀꼬인 목소리를 하고 있었다.

“저..저기요.취하시면 안되거든요?”

“어머 옵빠! 나 안취했어어!끅!”

맙소사.나는 그녀의 딸꾹질로 인해,그녀의 뱃살에 맞닿아 있던 테이블이10센티는 족히 주르륵 밀려나는 대 장관을 보며 그저 입을 쩍 벌렸다.

“어머!전화왔네.반지하 옵빠야 잠마안?”

아…진심으로 도망치고 싶다.나는 정말 생전 처음으로 하는 이 소개팅이,이렇게 악몽이 될줄은 몰랐던 것이다.미칠것 같이 올라오는 짜증에 나는 앞에 놓인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켜 버렸다.

“엽떼여?오빠?왜 전화해?우린 이미 끝난사인거 몰라?여기 어디냐고?홍대 퓨즈 호프야.왜?근처라고?안돼!오지마!오빠 왜그렇게 나한테 집착해?”

아..정말 돌아버리겠다.인간 박재하.정말 내가 뭐 불우이웃 돕고 기부하는 천사같은 삶을 산것은 아니지만,그렇다고 이런 천벌을 받을 정도로 인생을 더럽게 살진 않았다고 자부한다.아…난 무슨 전생에 농민을 대 학살한 폭군쯤 되는 모양인가보다.

“아 오지말라니깐!뭐?이미 입구에 들어왔다고?어머!”

나는 그녀의 외마디 비명에 앞을 바라보지도 않았다.이젠 보기조차 싫다.빨리 이 지옥같은 시간이 끝나길 바랄뿐.

“야.너 뭔데 내 여자랑 술쳐먹냐?”

으응?이건 또 무슨 자다가 형수다리 긁는 소리야…나는 이제 힘도 없어져 버린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내 앞에는 난장이를 방불케 하는 한 명의 남자가 나를 보며 씩씩대고 있었다.노란 염색머리에 스키니 진.딱 봐도 그녀의 몸무게의 절반도 안될거 같은 왠 빈약한 중딩이 나를 보며 씩씩거린다.

“네?”

“오빠 왜이래.이 옵하야는 죄없는 옵하야야.자꾸 이러지마.”

“넌 조용히 해봐.너 시발 누가 내 여자한테 술먹이라고 했냐고!”

나는 순간 세상에서 가장 얼빠진 얼굴로 내 앞에 서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하하하하.이젠 웃음도 안나온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뭐라고 말할 힘도 없었다. 아니…가만.이거 어쩌면 좋은 기회일지도 모른다.나는 급하게 최대한 비굴한 표정으로 씨익 웃으며 벌떡 일어나면서 말했다.

“아이고 이런!죄송합니다.제가 임자가 있는줄도 모르고 그만!여기 앉으시죠.그리고 여자분 잘 부탁합니다.조금 취하신거 같아서요.그럼 전 이만!”

나는 마치 랩퍼마냥 초 스피드로 말을 내뱉고는 그대로 출입문 쪽으로 내달렸다.뒤에서 오빠 가지마!라는 우렁찬 맹수의 표효와 어이없어 하는 그 녀석의 혼잣말이 들려왔지만 상관없었다.어떻게든…어떻게든 이곳을 빠져나가야만 한다아!

‘하아…’

그 호프집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뛰어오고 나서야,나는 대로변에 멈춰서 거친 호흡을 골랐다.나는 왜이럴까.어째서 나는 이렇게 안풀리는 걸까.몇번을 말해봐도 돌아오는것은 공허한 내 마음속의 메아리일 뿐이다.

‘애초에 소개팅에서 좋은 여자를 만날거라는 내 생각이 잘못이지.’

우울하다.소개팅에서 진상을 만나서뿐만이 아니다.그냥 뭔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꼬인것이 절대 풀어지지 않은 내 인생이 우울할 뿐이다.당찬 포부를 가지고 서울로 왔는데…현실은 이렇게 시궁창인 것이다.

-지금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승객여러분들께서는 안전선 뒤로…-

지하철.차가 없는 나의 유일한 교통수단이다.덕분에 매일 나는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지친 표정을 보며 집에가곤 하는 것이다.모두들 하나같이 지치고 힘든 표정들.하지만,오늘만큼은 나도 만만치 않게 지치고 또 너무 힘들다.

치이이이익!

지하철 문이 닫히고,나는 습관처럼 아이팟을 꺼내 플레이를 시키고 이어폰을 꽂은채로,출입문옆쪽에 기대어 섰다.앉을 자리는 없지만,오늘은 사람이 그닥 많지가 않다. 내 휴대폰을 그 레슬러에게 알려주지 않아서 천만 다행이었다.아…이런것 따위에 행복해야 하는 내 지금 상황이 너무 싫다.그래.음악이나 들어야지.내 삶에 음악마져 없었다면 아마 난 자살했을거야.틀림없이.

나는 차분해지려는 마음에 틀곤했던 재즈음악대신에,요란한 비트의 힙합음악을 플레이시켰다.그래.몇정거장만 가면 집이 나오니까.조금만 버티면 되겠지.

이어폰을 꽂으니 방송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대신 지하철이 조금씩 느려지는 느낌을 받았을 뿐이다.역시 음악을 들으니까 바로 다음역으로 도착한 느낌이 드는구나.

치이익.

또다시 출입문이 열리고,몇몇의 사람들이 탄다.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듯한,말쑥한 양복차림의 아저씨 한명,그리고 타자마자 희번득 거리는 눈으로 앉을 자리를 찾는 아주머니 한분…또 …

‘우…우와..’

순간 나는 넋을 잃고 말았다.아저씨와 아주머니 다음에 탄 한 여인 때문이었다.턱이 빠질 정도로 입이 떠억 하고 벌어진다,

그녀는 긴 생머리를 곱게 묶어 올린 포니테일 머리를 하고 있었다.거기에 하얀 브라우스와 검정색 롱스커트.단아한 복장 밑으로 하얗게 뻗은 다리.무엇보다,내 눈을 잡아끄는 것은 하얀 그녀의 목선위로 보이는 그녀의 아름다운 눈망울이었다.

그녀의 눈은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유치하지만,사람들이 왜 눈이 이쁜 여자를 밤하늘의 별같다고 하는지 나는 그제서야 알수 있었다.거기에 살짝 오똑한 콧날과 립클로즈를 바른듯 너무나 반짝이는 고운 입술까지…너무나 단정한 차림을 했지만,날씬한 몸매가 은근히 드러나는 그런 옷을 입고서,그녀는 사뿐한 걸음걸이로 내 옆을 지나가 또다른 출입문 입구에 살짝 기대어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마..맙소사.천사인가?’

나는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내또래의 남자 하나가 넋을 잃고 그녀를 보고 있었다.그래.이해가 간다.정말로…

내 귀에서 쿵쿵대며 울리는 비트가 들리지 않는다.대신 내 심장이 쿵쾅거리는 박동만이 느껴질 뿐이었다.너무나 고운 그녀의 옆모습. 포니테일 머리를 한 덕에 보이는 갸름한 그녀의 얼굴선과,콧날을 따라 입술까지 내려오는 고운 라인을,나는 한참이나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헉!’

나는 순간 깜짝 놀라 너무나 티나게 확 뒤를 돌아버리고 말았다.내가 넋을 잃고 바라보자,그녀가 내쪽으로 고개를 드는 바람에 나와 눈이 마주쳐 버린것이었다.

‘이런 등신!그렇게 티나게 보니 걸리지!아휴…’

나는 속으로 한없이 나를 자책했다.그녀는 나를 뭐라고 생각할까.변태?싸이코? 설마…그냥 한번 눈마주쳤다고 기분나빠하진 않을거야.그..그렇지?

하지만 뒤를 돌아볼 용기가 없다.이미 훽 하고 고개를 돌렸으니,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아아.박재하.이것은 분명 아까의 그 레슬러에 버린 내눈을 정화하라고 하늘이 내려준 천사임에 틀림없다.그런데 그 천사를 볼수 있는 기회를 이렇게 쉽게 수포로 돌리다니!

나는 슬쩍 용기를 내어 뒤를 돌아보기로 마음먹었다.에잇!그래그래!뭐 고개만 살짝 돌리고 안보는척 하면 되잖아!그럼 조금 덜 수상하지 않겠어?

결심을 굳힌 나는 흡사 고장난 로보트 마냥 천천히 몸을 돌렸다.

"어…어라..’

없다.응당 천사가 있어야 할 자리에 천사가 없다.하늘로 승천했나?그런 얼빠진 상상을 하는것도 무리는 아니었다.그제서야,나는 지하철 문이 열려있음을 직감하게 되었다.그녀..그녀가 내린것이다!

“끄억!”

나는 급히 내리는 바람에 천천히 닫혀가는 지하철 출입구에 머리를 박고는 겨우겨우 빠져나왔다.쿡쿡 거리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려왔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주변을 황급히 둘러본 나는,이곳이 너무나 익숙한 곳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우...우리동네잖아.”

하…이거 웃기는 인연일까,아니면 별볼일 없는 우연일까.그녀가 내린것 같아 따라내린곳은 바로 늘 내가 내리는 지하철 역이었다.덧붙여서 여기서 10분정도만 걸어가면 나의 집이 나오는 것이다.

‘저…저깄다.’

알수 있었다.비록 저 멀리 있었지만 나는 충분히 그녀임을 알수 있었다.검정색 치마위에,가냘픈 허리라인을 보여주는 저 옷차림.잠깐이지만,내 가슴을 뒤흔든 아가씨.

나는 저 멀리 보이는 그녀에게 미친듯이 달려갔다.지금 생각해 보면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모르겠다.아무튼,처음에 들었던 생각은 그녀를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다는 다소 단순한 마음에서 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어디가는 걸까.’

그녀와 어느정도 거리를 좁힌 나는 온갖 궁금증과 의문이 스멀스멀 피어 올랐다. 지금 누구를 만나러 가는 걸까.남자친구일까?등등등.

‘우리집하고 정 반대 방향이네.’

하지만 뭐 우리동네가 그리 큰것도 아니니 상관없었다.나는 침을 꼴깍 하고 삼키고는 천천히 그녀를 따라갔다.그리 더운 날씨도 아닌데 땀이 난다.나는 살짝 모자를 벗어들고는 천천히 그녀를 뒤따랐다.

번화가가 나오고,큰 길이 나왔다.그녀는 계속해서 걷고 있었다. 뒤에서 그녀의 가냘픈 다리를 보는 것만 으로도 후들후들 떨린다. 단지 이렇게 뒤에서 그녀를 따라가는 것 하나 만으로도,낮에 만난 괴물에게 받은 정신적 내상은 싸그리 치유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어..어!’

나는 화들짝 놀라 속도를 붙였다.그녀가 작은 골목으로 쏙 하고 들어가 버렸기 때문이었다. 만약 골목에서 또 다른 골목으로 들어간다면 그녀를 놓칠테니까.나는 얼른 후다닥 뛰어가 그녀가 들어간 골목으로 코너를 돌았다.

“헉!”

나는 마치 혼령을 본 사람마냥 헛바람을 집어 삼키고는 뒷걸음질 쳤다.코너를 돌자마자,그녀가 내쪽을 바라보고 서있었기 때문이었다.

“왜 자꾸 따라오죠?”

“어..어버버..”

그녀는 혼자 팔짱을 낀채,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나는 마치 언어장애가 걸린 아이마냥 아무말도 못하고 시선을 요리저리 굴리며 그녀를 바라보지 못하고 있었다.

“왜 따라오는거에요?”

하..목소리도 이쁘다.정말 저런 얼굴에 딱 어울리는,마구 하이톤도 아니면서도 여성스러움이 잔뜩 묻어나는 저 목소리.이렇게 감탄할때가 아니다.무슨 말이라도 해야한다.무슨 말이라도!

“아..안녕하세요.”

“….”

그녀는 어이가 없다는 듯 팔짱을 낀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아..이븅신. 안녕하세요라니..무슨 동네 반상회도 아니고..

“안녕은 한데요.왜 쫒아오시냐구요.소리 지르려다 참았어요.”

“아..그게..그게 말이죠..제가..”

나는 28년 평생 없던,내가 앓고 있는 지병을 오늘에서야 발견하는 쾌거를 누린거다. 그 병은 바로 ‘미인앞 말더듬기증’이라는 것이다.

“지..지하철에서..제가 보고서..너무 이쁘셔서..”

그녀는 여전히 냉랭한 얼굴로 나를 보고 있더니,이윽고 손으로 입을 가리고 쿡쿡 거리며 웃는다.내..내가 웃긴건가?나는 한동안 멍한 표정으로,그녀가 웃는 아름다운 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스님이 그렇게 여자 좋아해도 되요?”

“에?”

큭..창피하다.그제서야 나는 더워서 빡빡 밀어버린 내 헤어스타일에 손이 갔다.아무리 그래도 스님이라니..뭐 물론 그녀는 농담삼아 한 말이겠지만.

“아..그게..사실 스님은 아닌데요…”

“알고 있어요.”

그녀는 여전히 입을 가리고 쿡쿡 거린다.내가 변태적인 치한이 아니라 안심해서 일까?아니면..그냥 내가 웃기게 생겨서? 그건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요?”

“네,,네?”

“제가 이뻐서…그 다음은 뭔데요?”

그녀의 말에 나는 말문이 턱 하고 막혀 버렸다.그…그다음엔 뭐지? 선칭찬 후꼬심? 그럼 어떻게 꼬셔?하..말도 안돼.내가 저 여자를 어떻게 꼬신단 말인가.연예인이라해도 믿을거 같은 이런 아름다운 여자를…

“저..저기 그러니까..”

그녀는 자신의 잘록한 허리에 손을 올리고는 나를 바라보았다.반짝이는 그녀의 눈망울.나는 왠지 똑바로 바라볼 자신이 없어 연신 내 빠박머리를 긁적거릴 뿐이었다.

“에휴..답답해.그러니까 뭐요?”

“저기..전화번호좀..아…알수 있나요?”

문득 그녀가 들고 있는 작은 핸드백이 보인다.꽤나 비싸보이는 물건.그녀는 다소 케쥬얼스러운 내 옷차림을 보고 뭐라고 생각할까?하지만 다행이도 그녀는 나를 깔보는 눈빛이 아닌,무엇인가 재밌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알았어요 스님.쿡쿡.”

나는 얼굴이 시뻘개진채로,손을 덜덜 떨며 내 휴대폰을 꺼내들었다.그런 내모습을 보더니 그녀는 뭐가 재밌는지 연신 쿡쿡 거리며 웃었고,보다 못했는지 내 휴대폰을 싹 하고 빼앗아 들었다.

“자..이게 제 번호에요.”

“아..가..가,,감사합니다.”

“저..일해야 하니까.이만 가볼게요.다음에 봐요 스님!하하하.”

나는 그녀가 사라질때까지,멍하니 골목만 바라보았다.이..있다.저여자가의 전화번호가 내 폰 안에있다.이름도,나이도 모르지만,그리고 내가 무슨용기로 전번을 물어봤는지는 모르지만,하늘은 나에게 모든 불행을 다 주는것이 아님이 틀림없다.

“우워워!”

나는 미친듯이 골목을 빠져나와 집쪽으로 내달렸다.왠 빠박이 하나가 포효하며 달리는 모습에,선량한 서울시민들은 공포에 떨었겠지만,아무래도 상관없다.

‘성격도…진짜 짱좋은 여자잖아.’

날보고 웃을때의 그 미소는 마치 내 머리를 목판삼아 조각을 해넣은 것처럼 지워지지 않고 선명하다.게다가…그녀가 일을 한다는것은..우리동네에 그녀의 일터가 있다는 것이잖아!

“끄어어어어!”

달빛은 밝고 또 밝았다.나는 우리집이 보일때까지,숨이 찰것같은것도 잊은채 미소를 잔뜩 머금으며 그렇게 달리고 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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