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정들의 오너 - 프롤로그 -
이 글은 현재 소라넷에서 인기리에 연재되고 있는 환타지 액션 & 야설 입니다.
워낙 좋은 작품이라 인기도 하늘을 찌를 듯 한데
네이버3에는 글이 없어 작가님의 허락을 받고 퍼 왔습니다.
♡야미♡ 님이라고 소라넷에도 드문 여류작가십니다.
리플을 전부 퍼다가 보내 드리기로 했으니 좋은 리플 많이 부탁드립니다.
<프롤로그>
꿰에에에에엥!
앙칼진 고양이의 귀여운 반항에도 불구하고,나는 복실복실한 그것의 털가죽을 움켜쥐었다.
"휴...찾았다 요자식!"
에에에에엥!
이녀석은 내가 사뭇 맘에 안드는지 갸르륵 거린다.후...그래.니가 그 유명한 페르시안 고양이 인가 뭔가 하는 그
혈통있는 녀석이라 이거지.
나는 지랄발광을 하는 그녀석을 애완견용 케리어에 쑤셔넣어버렸다.녀석은 여전히 갸르르 거리며 내가 맘에 안든
다는 듯한 대사를 내뿜고 있었지만,알게뭐야.난 이게 일일 뿐이다.
일?
큭...그래.애완견 케리어에 고양이나 넣어놓고 가는 내가 한심하다.내 직업은 "탐정"이었다.
-유 준 탐정사무소-
....
그랬다. 나는 요새 세상에 열에 아홉은 콧방귀를 뀔법한 "탐정"이라는 직업을 갖고 있었다.
그것도 내 이름 석자...아니,두자를 걸고서.뭐...아이큐는 좋다고 늘상 자위했던 나니까 후회는 없지만,의뢰는
거의 들어오지 않는다.지금 이 고양이를 찾아달라는 어느 복부인 아줌마의 의뢰는 사뭇 오래간만에 들어온 것이
나 다름없다. 젠장.나는 살인사건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날카로운 추리력의 탐정이란 말이다.이런 복부인 아
줌마의 애완용 고양이 따위를 찾아주려고 비싼 돈주고 사무실 임대한게 아니라고!
하지만 현실이 별수 있으랴.사무실 임대료는 엄청나게 밀려있었다.탐정을 찾는 사람들은 생각외로 엄청 적었기
때문이었다.내가 이래뵈도 "국제 추리 협회" "한국 탐정연합회"에 당당하게 회원등록이 되어있는 사람이라고!
그치만 프라이드가 밥먹여 주겠는가.나는 흔쾌히 내 밀린 사무실 임대료를 겔러로 내건 내 제의를 들어준 그 복
부인의 의뢰를 수행할수 밖에 없었다.
"엄훠나~~~우리 스테퐈니...이 엄마가 얼마나 보고싶었는줄 알옹?"
갸르르르르르.
살이 투실투실찐 복부인 아줌마가 그 흰색 솜뭉치에다가 얼굴을 비비적 거리며 뽀뽀를 날리자 고양이는 여전히
신경질 적으로 갸르르륵 거린다.그래...그래도 니가 내 신세보다 낫지 않겠냐.적어도 밥 걱정은 안하고 살아도
되잖냐.하하하하하.그러니까 표정관리하고 애교를 부리란 말이다 이 냐옹이 새끼야.
"생각보다 솜씨가 좋으시네에??여기있어용 약속한 돈!"
그녀는 한치의 망설임없이 내 앞에 거금을 턱하니 현찰로 내려놓더니 허름한 내 사무실을 나가버린다.
"캄솨합니다 고객님!다음에 또!"
다음에 또는 무슨..썅!살인사건의뢰 할거 아니면 다시 오지마라!퉤퉤!
나는 신경질적으로 내옷에 가득 붙어있는 지랄맞은 흰색털들을 테잎으로 밀며 중얼거렸다.이로써 사무실임대료를
놓고 벌이는 건물주와의 사투는 당분간 일단락 마무리 되겠지만,이제 다시 무소득의 나날들로 돌아오는 일만 남
았겠지.흠흠!
"에이!늦었다!오늘은 퇴근이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외치며 외투를 걸쳤다.시간은 벌써 저녁 8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불우이웃을 도웁시다~여러분들의 따뜻한 손길이 필요합니다~"
바야흐로 연말이라,구세군 활동이 여전하지만,내 주머니는 그들에게 줄 동정의 여유가 없다.왜냐고? 말했다시피
난 지금 사무실 임대료를 내야해서 소득도 없고,더불어 여자친구도 없다.아..여기서 여자친구는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되었나?
나는 터벅터벅 길을 걸었다.길을 걷다가,어두운 겨울 거리,쇼윈도에 내 모습을 비춰보았다.검은색 뿔테안경,그닥
크지 않은 키에 평범한 얼굴. 추위를 잘 타서 목도리를 꽁꽁 두른 내모습이 흡사 순정만화에서 주로 여자에게 차
이는 역할로 등장하는 소년인것만 같다.쳇! 소년은 무슨...나이도 이제 스물 중반이 넘어간다고!
"으으으..추워..춰...추워..춰.."
흠흠...내가 생각해도 정신이 나간 모양이다.이렇게 중얼거리며 덜덜 떠는 한 궁상을 보며 모세의 기적마냥 사람
들이 슬글슬금 나를 피하며 길을 열기 시작했다.하하하하하.....
따뜻한 커피가 마시고 싶었다.집에가면 뭐 널린게 인스턴트 커피와 라면뿐이지만,오늘은 왠지 분위기있는 카페
에서 커피를 홀짝 거리고 싶었다.나의 궁상 세포는 궁상을 더 떨어야만 없어지는 것이라는것을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하하하하하.
-주인의 쉼터-
응?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1년째 같은 퇴근길을 고수하고 있는 나이지만,저 커피숍은 처음보는 것이었다.새로 생긴걸까? 그건 그렇고 저
자극적인 이름은 뭐지?주인의 쉼터라니....이거...들어갔더니 채찍과 양초를 주며 마구 학대를 강요하는.....
흠흠!
나는 마음속에 들어오는 실없는 생각들을 빠르게 정리한후 걸음을 멈췄다.눈을 비비고 살펴보아도 마찬가지다.
마치 유럽의 저택을 보는것과 같은 외관.맹세코 이런 건물은 전에 본적이 없다.어라?그러고 보니 지나가는 행인
한명이 없다.방금 전 구세군 냄비가 있는곳에서는 그래도 사람들이 꽤 북적거렸는데....여긴 없다.마치 어느 한
길을 기점으로 블랙홀에 빠져버린것만 같은 착각이 든다.
"그래도 커피라고는 쓰여있잖아?"
나는 무서움을 이겨내려고 일부로 크게 혼잣말로 중얼거렸다.그랬다.분명 건물 바깥에는 coffee라고 써있다.내
영어 실력이 구리지 않다면야,저것은 사람들이 흔히 음료로 마시는 커피!라는 단어가 틀림없다.보는 이에 따라
서는 외설(?)적일 수도 있는 가게명이지만 저것은 커피숍이 틀림없다.
끼이이이익.
으힉!놀라고 말았다.내가 문앞에 들어서자 그것은 스르륵 열린다.자동문인가?라고 생각했지만 앞뒤로 열리는 자
동문은 솔직히 27년평생 본적이 없다.우연일 거야..그치?하하하하하.
"어서오세요."
컥!외국인인가?나는 나도 모르게 꾸벅 하고 맞절을 해버렸다.점원은 푸른눈을 가진 외국 중년남자였기 때문이다!
"아..아..예.한국말..잘하시네요."
나는 실없는 대사를 읊어 버리고 말았다.푸른눈,그리고 백발에 수염이 멋드러지게 난, 게다가 편해 보이는 남방
을 걸쳤을 뿐이지만 왠지 모를 중후함이 보이는 그가 안경너머로 인자하게 웃는다.
"무엇을 드시겠어요?"
"아..따뜻한거요..커피면 더욱 좋고요."
커피마시러 와놓고선.....하기야 저 아자씨의 간지넘치는 외관을 보면 누구나 이런 쓸대없는 대사를 읊을 것이다.
그는 또 한번 여유있는 미소를 나에게 던지더니만,이내 테이블 저편으로 사라진다.
"이런거..언제 생긴거야.."
정말 알수 없는 곳이다.바깥에서 보이는 건 저택인데,안에는 불과 테이블이 3개정도 밖에 되지 않았고,흡사 내부
는 산장을 보는 것처럼 목재 가구 투성이다.게다가 전기 조명따윈 없고 중세시대에나 썼을 법한 촛불이 내부를
밝히고 있었다.
"혼자 오셨나요?"
"으힉!"
나는 안그래도 으스스한 분위기에 갑작스레 그가 말을 걸자 나는 기겁을 하며 넘어갔다.그는 여전히 알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묘한 향이 풍기는 커피를 내 앞에 내려다 놓았다.깜짝 놀랐잖아!
"아...빠..빠르네요.주문한지 1분도 안된거 같은데.."
"그렇지요.현실과는 다른 곳이니까요."
"아..그렇군요......예?"
어리 둥절하며 묻는 내 질문에 그는 피식 웃더니 내 앞에 앉았다.이봐...여긴 바가 아니잖아...게다가 섹시한 아
가씨도 아니면서 그렇게 웃으며 내앞에 합석하지 말라고....
"죄송하군요.섹시한 아가씨가 아니라서.."
"푸웁!"
그가 중얼거린 말에 난 그대로 커피를 앞으로 뿜어버렸다.으으...내 생각 읽고 있는건 아니지?그치?
"많이 기다렸습니다.조금 늦게 오셨더군요."
"네에?"
나는 내 입가에 잔뜩 묻은 커피들을 냅킨으로 훑어내며 되물었다.나를...날 기다렸다고?이 아저씨 점점 왜그래..
"네.기다렸지요.혹시 이 세상과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는 생각은 해보셨나요?"
나는 진지한 그의 물음이 맥이 탁 풀려버렸다.에이...도를 아십니까? 그거 잖아...
"아예..전 기독교신자라서요."
사실 교회는 4살때 빵준데서 갔던거 빼고는 간적이 없다.하지만 도를아십니까 아저씨들을 퇴치할때는 기독교만
한게 없기 때문에 나는 자연스레 둘러대었던 것이다.
"유 준씨...맞지요?"
나는 그의 말에 또한번 커피를 아름답게 공중으로 분사할뻔했다.가만..내가 혹시 가슴에 명찰이라도 달고 있나?
"놀라실꺼 없습니다.어차피 운명이란게 그렇게 정해져있어 제가 알고 있을 뿐이지요."
"저..저기요...아저씨 저 지금 조금씩 무서워 지려고 해요."
나의 겁에질린 사슴(??)과도 같은 모습에 그는 씨익 웃었다.뭔가 편안하고 중후한 미소지만 나는 그저 소름이 더
돋을 뿐이다.
"너무 갑작스러우니...놀라실 수도 있겠지요.저는 알버트라고 합니다."
"아네...알 선생님이시군요..예예..좋은 이름입니다."
나는 허둥지둥.횡설수설 바쁘기 그지없다.그 "알 선생님"께서는 그런 나를 알수 없는 미소로 바라보실 뿐이다.
하지만 내가 신기한것은 그가 어찌이렇게 한국어를 잘하냐는 것 뿐이다.방송 출현하셔도 되겠는데...설날 특집
외국인 장기자랑...이런데에 말이야.
"급작스러운건 알지만...급하니까 제 말씀부터 드릴게요."
"아..네..네.."
이제 그가 도를 아십니까건 아니건.들어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내 이름을 알고 있으니,뭔가 철저한 사전 뒷
조사를 했음에 틀림없다! 사랑의 집 원장님...저 먼저 이렇게 먼저 갑니다. 성공해서 사랑의 집에 기부하겠다는 약속 못지켜서 죄송해요...그리고..사실 원장님 지갑.. 도둑맞은게 아니라..제가 훔쳤어요...죄송해요...
"준이씨도 알고 있을지 모르지만...지금 이 세상은 여러가지 세계가 혼합되어 있습니다."
"아..예예...그렇겠지요.."
식은땀이 흐른다.난 20대 한창 꽃필나이에 사이비 종교집단에 감금되어 죽어갈 것이다...암울하기 그지없다.
"제가 있던 세계는 전혀 다른 차원이지요.이 세상에 살고 계셨던 유 준씨는 볼수가 없는...."
"아..그렇군요.다..당연히 못보겠지요...암요.."
이제 곧 본론이 들어가겠지.흑...난 이제 장기매매의 현장으로 끌려갈지도 몰라...가만...그냥 창문으로 뛰어
내려 버릴까?
"제가살고 있던 그 세계는....혼란으로 인해 종식되어 버렸습니다."
뛰어 내릴까 말까 고민하던 나는 나도 모르게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슬픔으로 가득차 있는 듯한 그의 눈빛
때문이었다.
"그래서 저희들이 생각한것은 단 하나...이계(異界)로의 기생이었습니다. 그 이계가 바로 지금 유 준씨가 살고
있는 이 세계이지요."
"저기...조금 쉽게 설명을 해주시면.."
"그런데."
내 요청은 간단히 묵살되어 버렸다.흠...그냥 들어줘야지 어쩌겠는가..흑흑...
"저희 세계를 몰살 시키려 하는 존재도 이 쪽 세계로 다량 넘어오게 되었지요.저희는 힘을 분산시켜 꽁꽁 숨겨둘
수 밖에 없었습니다.그리고...그 힘을 개방하기 위해서는 이 쪽 세계 사람들의 힘을 빌려야만 할수 있도록..."
아...가면 갈수록 차원을 넘어서는 그의 말.나는 정신이 혼란스러울 따름이었다.아냐..내가 여기 있는게 갑자기
바보 같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아..그런 슬픈 사연이 있었군요.저 가볼게요.커피 값이 얼마죠?"
"급하시군요.그렇게 두려워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알선새...아니, 알버트씨는 나를 진정시키려는 듯 인자하게 웃었다.하지만 그의 푸른 눈에는 투명한 눈물이 고여
있었다.
"거두 절미하고,말씀드리지요."
그는 품안을 뒤적거려 무언가를 꺼냈다.으응?저건 카드아냐?
"당신이 이곳을 발견한것은...그 힘을 개방시킬 주인의 자격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봐..무슨 헛소리야!라고 외치고 싶었지만,나는 그럴수 없었다.그가 내민 카드를 본순간 나도 모르게 알수 없
는 아늑한 기분에 휩쌓여 버렸기 때문이었다. 알버트가 꺼낸것은 일반 트럼프가 아니었다.뭔가 기하하적 무늬가
수놓아져 있는 카드.그리고 카드 앞쪽에는 각각 다른 모양의 소녀들이 그려져 있었다.
"어떤가요?"
"그......그게....알수 없는 무언가가..."
아...난 그의 물음에 홀리듯이 대답하고 말았다.뭐지?이 기분은?뭔가가 내 귓속에다가 대고 말을하는 것만 같은
이 구리면서도 야리꾸리한 기분은 뭐냔 말이다.
"이것들은 페어리(fairy)들의힘을 봉인한 카드입니다.그리고 준씨는 그 페어리들의 선택받은 주인중 하나지요."
페어리라....독서광인 나는 알고 있었다.서양 신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요정을 뜻하는것 아닌가?신과 인간의 중
간단계로 묘사되는...그 뭐냐 작고 파리같은 날개 달린 아이들...
"준씨가 생각하는 그 페어리와는 많이 다른 개념입니다.이들은 저희 세계에 있던 계층...아니,능력자라고 해야
옳은 거겠지요?"
이제 그가 내 마음을 읽은 듯이 말해도 놀랍지가 않다.하하하하하....나 미쳤나봐.
"많은것들이 있겠지만,일단 오늘 설명하기는 무리일것 같군요.왜냐면 오늘이 개방된 마지막 날이니까요.일단
이카드를 보시죠."
그는 내 앞에 어떤 카드 한장을 내밀었다.카드에는 까만 머리칼을 가진 아름다운 소녀가 그려져 있다.하얀색피부
에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그리고 그녀는 심판자 처럼 큰 소드(sword)를 들고 머리칼을 휘날리고 있다.
"무엇이 느껴집니까?"
"어둠의 기사....신체의 월등함으로 어둠을 심판하는 심판자..."
나는 마치 홀리듯이 중얼거린다.내 착각일까?내 말에 이끌리듯 그 카드는 희미한 불빛을 내 뿜기도 했다.알버트
는 살짝 미소를 짓더니 그것을 내 앞으로 밀어 놓았고,그는 두번째 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 카드에는 아까와는 다른 모습의 미소녀가 그려져 있다.흑발이 아닌 은발.자비란 없어 보이는 싸늘한 표정에,
망토를 휘날리고 있었고,한쪽손에는 작은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이것은요?어떤 느낌입니까?"
"백법사...차가움의 마법으로 어둠을 심판하는 자..."
허...기막힌 일이 아닐수 없다.나는 흡사 선생님의 질문에 척척 대답하는 모범생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 않
는가?허 참...나이거 참...그 카드 마저도 살짝 은빛을 내뿜더니 사라진다.그는 아까와 마찬가지로 내 앞에 카드
를 밀어 놓았다.
"놀랍군요..준이씨는...첫날에 무려 두장이나...아...아니군요...한장이 더 있어요..이건 마치..."
그는 꿈을 꾸듯 중얼거린다.내 앞에 커피는 이미 다 식어 버렸지만,내 시선은 다음카드를 향해 있었다.
"이것은요?"
그 카드에는 역시나 아름다운 미소녀가 그려져 있었음은 말할것도 없다.그녀는 월계수로 만든 관을 쓰고,현악기
하나를 팔에 들고 아름답게 웃고 있었다.다른 두장의 카드와 다른것은 카드안의 미소녀가 약간은 어려보인다는
점이지만,난 또 망설임없이 대답하고 있었다.
"정령의 여왕.자연과 가까이서,순수함으로 어둠을 씻어내는 자."
이번엔 그 카드가 녹색빛으로 물들었다가 사라진다.정신을 차려보니 어느덧 내 앞에는 세장의 카드가 놓여져 있
었다.
"굉장하군요...첫날에 무려 세개나 자각을 시키다니...당신과도 같은 사람은 들어본적이 없어요."
나는 아무말도 할수 없었다.가만..이거 꿈맞지?그치?
알버트는 내 멍한 표정을 보더니 몇장의 카드를 내 앞에 밀어주었다.어라? 그것들에는 그림이 없었다.미소녀가
그려져 있어야 할 부분은 하얀 백지처럼 공란일 뿐이었다.
"이것들은...앞으로의 준이씨의 "가능성"이라고 말하고 싶군요.아직은 어떤 페어리가 투영될지는 모르지만,아마
도 천천히 모습을 드러낼겁니다.당신이 요정들의 오너로써의 자격이 더욱더 굳건해 지면 말이죠."
"아..저기...근데...이게..."
나는 정신이 없어 횡설수설했다.그런 나를 보며 뭐가 그리 좋은지 알버트는 웃었다.그리고는 그는 정중히 내게
꾸벅 하고 인사를 했다.
"당신은 우리의 희망입니다.멋대로 정해서 죄송하지만...시간이 다되어 제가 드릴수 있는 변명의 시간조차 없는
것....용서해 주시길.."
어라?어어?
나는 눈이 휘둥그레 졌다.아니,휘둥그레 지고 싶었다.눈앞이 엄청나게 눈이 부셔와서 눈을 뜰수가 없다.알버트에
게 무언가 더 물어보고 싶어 죽겠는데....아무소리도 들리지 않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흡사 태양이 내 눈앞
에 있는 것만 같이,내가 할수 있는 것은 양팔로 부지런히 내 눈을 감싸는 일 뿐이었다.
"불우이웃을 도웁시....."
나는 희미하게 내 귀에 들리는 소리를 듣고는 천천히 눈을 떴다.맙소사....나는 아까처럼 길거리에 서있었다!
게다가 멀리서 구세군 냄비소리마져 들린다.
"이..이런 염병할 일이..."
나는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아까 내 앞에 있던 "주인의 쉼터"라는 건물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기 때문이었
다.
"맙소사...이게...도대체.."
나는 안경을 벗고는 내 뺨을 후려쳐 보았다.아악!아프다...진짜 아프다..이건 꿈이아니다..꿈이...
"어라...."
주머니에 손을넣었던 나는 그대로 몸이 굳어버렸다.주머니 속에는 네모지고 딱딱한 것이 잡혔기 때문이었다.아까
그 카드라는 생각이 들자 나는 겁이 덜컥났다.그대로 집까지 전력질주를 해버렸다.
"크아아아아...무섭다!"
왠 미친놈이 출현했나...라는 듯한 주변의 시선 조차 무섭다.이봐..니들 아까는 없었잖아! 왜 갑자기 나타나있
는 거냐고!
이건 분명 일이 잘 안풀리는 스트레스 때문에 내가 겪고 있는 일종의 환각상태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그래...
맞아...본드불고 장풍쏘면 나간다잖아...내가 지금 그런 상태인거라고..진짜로!
쿠당탕탕탕탕!
나는 우리집 원룸현관을 부수듯이 진입해 버렸다.
"헉..허억..헉.."
저질 체력의 선두주자라 할수 있는 내가 아니던가?나는 내 방에 도착하자마자 고대로 침대에 뻗어 버렸다.
터질듯한 심장의 박동.젠장...이것은 꿈이나 환각의 세계에서 느낄수 있는 고통이 아니라고....젠장!
나는 한참이나 누워 숨을 골랐다.진정하자..진정해야만 한다.나는 이래뵈도 자칭 최고의 탐정이 아니던가!끔찍한
연쇄 살인사건도 냉정하게 해결할수 있는...아니 할수 있을것 같은 탐정이란 말이다.
"이거...현실이잖아..."
주머니를 뒤져 잡히는 것을 꺼내 내 눈앞에 펼쳐보니,아까의 그 카드가 맞다.젠장...진짜인가봐!
나는 행여나 그것들이 마구 날뛰어 나를 난도질 할것만 같아 조심스레 그것들을 책상위에 놓았다.심장이 뛰고 온
몸에 땀이 질질 흐른다.하지만 무섭다.일어나서 샤워를 하고,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컴퓨터를 키고 놀다가 잠이
들 자신이 없다.
"그냥 자자..이게 꿈이면 깨어나면 현실이겠지..자자...나무아미타불..."
오늘만해도 두가지의 종교를 갖게 된 나는,두꺼운 목도리와 자켓을 걸친 그대로 눈을 꼭 감아버렸다.
꿰에에에에엥!
앙칼진 고양이의 귀여운 반항에도 불구하고,나는 복실복실한 그것의 털가죽을 움켜쥐었다.
"휴...찾았다 요자식!"
에에에에엥!
이녀석은 내가 사뭇 맘에 안드는지 갸르륵 거린다.후...그래.니가 그 유명한 페르시안 고양이 인가 뭔가 하는 그
혈통있는 녀석이라 이거지.
나는 지랄발광을 하는 그녀석을 애완견용 케리어에 쑤셔넣어버렸다.녀석은 여전히 갸르르 거리며 내가 맘에 안든
다는 듯한 대사를 내뿜고 있었지만,알게뭐야.난 이게 일일 뿐이다.
일?
큭...그래.애완견 케리어에 고양이나 넣어놓고 가는 내가 한심하다.내 직업은 "탐정"이었다.
-유 준 탐정사무소-
....
그랬다. 나는 요새 세상에 열에 아홉은 콧방귀를 뀔법한 "탐정"이라는 직업을 갖고 있었다.
그것도 내 이름 석자...아니,두자를 걸고서.뭐...아이큐는 좋다고 늘상 자위했던 나니까 후회는 없지만,의뢰는
거의 들어오지 않는다.지금 이 고양이를 찾아달라는 어느 복부인 아줌마의 의뢰는 사뭇 오래간만에 들어온 것이
나 다름없다. 젠장.나는 살인사건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날카로운 추리력의 탐정이란 말이다.이런 복부인 아
줌마의 애완용 고양이 따위를 찾아주려고 비싼 돈주고 사무실 임대한게 아니라고!
하지만 현실이 별수 있으랴.사무실 임대료는 엄청나게 밀려있었다.탐정을 찾는 사람들은 생각외로 엄청 적었기
때문이었다.내가 이래뵈도 "국제 추리 협회" "한국 탐정연합회"에 당당하게 회원등록이 되어있는 사람이라고!
그치만 프라이드가 밥먹여 주겠는가.나는 흔쾌히 내 밀린 사무실 임대료를 겔러로 내건 내 제의를 들어준 그 복
부인의 의뢰를 수행할수 밖에 없었다.
"엄훠나~~~우리 스테퐈니...이 엄마가 얼마나 보고싶었는줄 알옹?"
갸르르르르르.
살이 투실투실찐 복부인 아줌마가 그 흰색 솜뭉치에다가 얼굴을 비비적 거리며 뽀뽀를 날리자 고양이는 여전히
신경질 적으로 갸르르륵 거린다.그래...그래도 니가 내 신세보다 낫지 않겠냐.적어도 밥 걱정은 안하고 살아도
되잖냐.하하하하하.그러니까 표정관리하고 애교를 부리란 말이다 이 냐옹이 새끼야.
"생각보다 솜씨가 좋으시네에??여기있어용 약속한 돈!"
그녀는 한치의 망설임없이 내 앞에 거금을 턱하니 현찰로 내려놓더니 허름한 내 사무실을 나가버린다.
"캄솨합니다 고객님!다음에 또!"
다음에 또는 무슨..썅!살인사건의뢰 할거 아니면 다시 오지마라!퉤퉤!
나는 신경질적으로 내옷에 가득 붙어있는 지랄맞은 흰색털들을 테잎으로 밀며 중얼거렸다.이로써 사무실임대료를
놓고 벌이는 건물주와의 사투는 당분간 일단락 마무리 되겠지만,이제 다시 무소득의 나날들로 돌아오는 일만 남
았겠지.흠흠!
"에이!늦었다!오늘은 퇴근이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외치며 외투를 걸쳤다.시간은 벌써 저녁 8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불우이웃을 도웁시다~여러분들의 따뜻한 손길이 필요합니다~"
바야흐로 연말이라,구세군 활동이 여전하지만,내 주머니는 그들에게 줄 동정의 여유가 없다.왜냐고? 말했다시피
난 지금 사무실 임대료를 내야해서 소득도 없고,더불어 여자친구도 없다.아..여기서 여자친구는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되었나?
나는 터벅터벅 길을 걸었다.길을 걷다가,어두운 겨울 거리,쇼윈도에 내 모습을 비춰보았다.검은색 뿔테안경,그닥
크지 않은 키에 평범한 얼굴. 추위를 잘 타서 목도리를 꽁꽁 두른 내모습이 흡사 순정만화에서 주로 여자에게 차
이는 역할로 등장하는 소년인것만 같다.쳇! 소년은 무슨...나이도 이제 스물 중반이 넘어간다고!
"으으으..추워..춰...추워..춰.."
흠흠...내가 생각해도 정신이 나간 모양이다.이렇게 중얼거리며 덜덜 떠는 한 궁상을 보며 모세의 기적마냥 사람
들이 슬글슬금 나를 피하며 길을 열기 시작했다.하하하하하.....
따뜻한 커피가 마시고 싶었다.집에가면 뭐 널린게 인스턴트 커피와 라면뿐이지만,오늘은 왠지 분위기있는 카페
에서 커피를 홀짝 거리고 싶었다.나의 궁상 세포는 궁상을 더 떨어야만 없어지는 것이라는것을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하하하하하.
-주인의 쉼터-
응?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1년째 같은 퇴근길을 고수하고 있는 나이지만,저 커피숍은 처음보는 것이었다.새로 생긴걸까? 그건 그렇고 저
자극적인 이름은 뭐지?주인의 쉼터라니....이거...들어갔더니 채찍과 양초를 주며 마구 학대를 강요하는.....
흠흠!
나는 마음속에 들어오는 실없는 생각들을 빠르게 정리한후 걸음을 멈췄다.눈을 비비고 살펴보아도 마찬가지다.
마치 유럽의 저택을 보는것과 같은 외관.맹세코 이런 건물은 전에 본적이 없다.어라?그러고 보니 지나가는 행인
한명이 없다.방금 전 구세군 냄비가 있는곳에서는 그래도 사람들이 꽤 북적거렸는데....여긴 없다.마치 어느 한
길을 기점으로 블랙홀에 빠져버린것만 같은 착각이 든다.
"그래도 커피라고는 쓰여있잖아?"
나는 무서움을 이겨내려고 일부로 크게 혼잣말로 중얼거렸다.그랬다.분명 건물 바깥에는 coffee라고 써있다.내
영어 실력이 구리지 않다면야,저것은 사람들이 흔히 음료로 마시는 커피!라는 단어가 틀림없다.보는 이에 따라
서는 외설(?)적일 수도 있는 가게명이지만 저것은 커피숍이 틀림없다.
끼이이이익.
으힉!놀라고 말았다.내가 문앞에 들어서자 그것은 스르륵 열린다.자동문인가?라고 생각했지만 앞뒤로 열리는 자
동문은 솔직히 27년평생 본적이 없다.우연일 거야..그치?하하하하하.
"어서오세요."
컥!외국인인가?나는 나도 모르게 꾸벅 하고 맞절을 해버렸다.점원은 푸른눈을 가진 외국 중년남자였기 때문이다!
"아..아..예.한국말..잘하시네요."
나는 실없는 대사를 읊어 버리고 말았다.푸른눈,그리고 백발에 수염이 멋드러지게 난, 게다가 편해 보이는 남방
을 걸쳤을 뿐이지만 왠지 모를 중후함이 보이는 그가 안경너머로 인자하게 웃는다.
"무엇을 드시겠어요?"
"아..따뜻한거요..커피면 더욱 좋고요."
커피마시러 와놓고선.....하기야 저 아자씨의 간지넘치는 외관을 보면 누구나 이런 쓸대없는 대사를 읊을 것이다.
그는 또 한번 여유있는 미소를 나에게 던지더니만,이내 테이블 저편으로 사라진다.
"이런거..언제 생긴거야.."
정말 알수 없는 곳이다.바깥에서 보이는 건 저택인데,안에는 불과 테이블이 3개정도 밖에 되지 않았고,흡사 내부
는 산장을 보는 것처럼 목재 가구 투성이다.게다가 전기 조명따윈 없고 중세시대에나 썼을 법한 촛불이 내부를
밝히고 있었다.
"혼자 오셨나요?"
"으힉!"
나는 안그래도 으스스한 분위기에 갑작스레 그가 말을 걸자 나는 기겁을 하며 넘어갔다.그는 여전히 알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묘한 향이 풍기는 커피를 내 앞에 내려다 놓았다.깜짝 놀랐잖아!
"아...빠..빠르네요.주문한지 1분도 안된거 같은데.."
"그렇지요.현실과는 다른 곳이니까요."
"아..그렇군요......예?"
어리 둥절하며 묻는 내 질문에 그는 피식 웃더니 내 앞에 앉았다.이봐...여긴 바가 아니잖아...게다가 섹시한 아
가씨도 아니면서 그렇게 웃으며 내앞에 합석하지 말라고....
"죄송하군요.섹시한 아가씨가 아니라서.."
"푸웁!"
그가 중얼거린 말에 난 그대로 커피를 앞으로 뿜어버렸다.으으...내 생각 읽고 있는건 아니지?그치?
"많이 기다렸습니다.조금 늦게 오셨더군요."
"네에?"
나는 내 입가에 잔뜩 묻은 커피들을 냅킨으로 훑어내며 되물었다.나를...날 기다렸다고?이 아저씨 점점 왜그래..
"네.기다렸지요.혹시 이 세상과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는 생각은 해보셨나요?"
나는 진지한 그의 물음이 맥이 탁 풀려버렸다.에이...도를 아십니까? 그거 잖아...
"아예..전 기독교신자라서요."
사실 교회는 4살때 빵준데서 갔던거 빼고는 간적이 없다.하지만 도를아십니까 아저씨들을 퇴치할때는 기독교만
한게 없기 때문에 나는 자연스레 둘러대었던 것이다.
"유 준씨...맞지요?"
나는 그의 말에 또한번 커피를 아름답게 공중으로 분사할뻔했다.가만..내가 혹시 가슴에 명찰이라도 달고 있나?
"놀라실꺼 없습니다.어차피 운명이란게 그렇게 정해져있어 제가 알고 있을 뿐이지요."
"저..저기요...아저씨 저 지금 조금씩 무서워 지려고 해요."
나의 겁에질린 사슴(??)과도 같은 모습에 그는 씨익 웃었다.뭔가 편안하고 중후한 미소지만 나는 그저 소름이 더
돋을 뿐이다.
"너무 갑작스러우니...놀라실 수도 있겠지요.저는 알버트라고 합니다."
"아네...알 선생님이시군요..예예..좋은 이름입니다."
나는 허둥지둥.횡설수설 바쁘기 그지없다.그 "알 선생님"께서는 그런 나를 알수 없는 미소로 바라보실 뿐이다.
하지만 내가 신기한것은 그가 어찌이렇게 한국어를 잘하냐는 것 뿐이다.방송 출현하셔도 되겠는데...설날 특집
외국인 장기자랑...이런데에 말이야.
"급작스러운건 알지만...급하니까 제 말씀부터 드릴게요."
"아..네..네.."
이제 그가 도를 아십니까건 아니건.들어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내 이름을 알고 있으니,뭔가 철저한 사전 뒷
조사를 했음에 틀림없다! 사랑의 집 원장님...저 먼저 이렇게 먼저 갑니다. 성공해서 사랑의 집에 기부하겠다는 약속 못지켜서 죄송해요...그리고..사실 원장님 지갑.. 도둑맞은게 아니라..제가 훔쳤어요...죄송해요...
"준이씨도 알고 있을지 모르지만...지금 이 세상은 여러가지 세계가 혼합되어 있습니다."
"아..예예...그렇겠지요.."
식은땀이 흐른다.난 20대 한창 꽃필나이에 사이비 종교집단에 감금되어 죽어갈 것이다...암울하기 그지없다.
"제가 있던 세계는 전혀 다른 차원이지요.이 세상에 살고 계셨던 유 준씨는 볼수가 없는...."
"아..그렇군요.다..당연히 못보겠지요...암요.."
이제 곧 본론이 들어가겠지.흑...난 이제 장기매매의 현장으로 끌려갈지도 몰라...가만...그냥 창문으로 뛰어
내려 버릴까?
"제가살고 있던 그 세계는....혼란으로 인해 종식되어 버렸습니다."
뛰어 내릴까 말까 고민하던 나는 나도 모르게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슬픔으로 가득차 있는 듯한 그의 눈빛
때문이었다.
"그래서 저희들이 생각한것은 단 하나...이계(異界)로의 기생이었습니다. 그 이계가 바로 지금 유 준씨가 살고
있는 이 세계이지요."
"저기...조금 쉽게 설명을 해주시면.."
"그런데."
내 요청은 간단히 묵살되어 버렸다.흠...그냥 들어줘야지 어쩌겠는가..흑흑...
"저희 세계를 몰살 시키려 하는 존재도 이 쪽 세계로 다량 넘어오게 되었지요.저희는 힘을 분산시켜 꽁꽁 숨겨둘
수 밖에 없었습니다.그리고...그 힘을 개방하기 위해서는 이 쪽 세계 사람들의 힘을 빌려야만 할수 있도록..."
아...가면 갈수록 차원을 넘어서는 그의 말.나는 정신이 혼란스러울 따름이었다.아냐..내가 여기 있는게 갑자기
바보 같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아..그런 슬픈 사연이 있었군요.저 가볼게요.커피 값이 얼마죠?"
"급하시군요.그렇게 두려워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알선새...아니, 알버트씨는 나를 진정시키려는 듯 인자하게 웃었다.하지만 그의 푸른 눈에는 투명한 눈물이 고여
있었다.
"거두 절미하고,말씀드리지요."
그는 품안을 뒤적거려 무언가를 꺼냈다.으응?저건 카드아냐?
"당신이 이곳을 발견한것은...그 힘을 개방시킬 주인의 자격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봐..무슨 헛소리야!라고 외치고 싶었지만,나는 그럴수 없었다.그가 내민 카드를 본순간 나도 모르게 알수 없
는 아늑한 기분에 휩쌓여 버렸기 때문이었다. 알버트가 꺼낸것은 일반 트럼프가 아니었다.뭔가 기하하적 무늬가
수놓아져 있는 카드.그리고 카드 앞쪽에는 각각 다른 모양의 소녀들이 그려져 있었다.
"어떤가요?"
"그......그게....알수 없는 무언가가..."
아...난 그의 물음에 홀리듯이 대답하고 말았다.뭐지?이 기분은?뭔가가 내 귓속에다가 대고 말을하는 것만 같은
이 구리면서도 야리꾸리한 기분은 뭐냔 말이다.
"이것들은 페어리(fairy)들의힘을 봉인한 카드입니다.그리고 준씨는 그 페어리들의 선택받은 주인중 하나지요."
페어리라....독서광인 나는 알고 있었다.서양 신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요정을 뜻하는것 아닌가?신과 인간의 중
간단계로 묘사되는...그 뭐냐 작고 파리같은 날개 달린 아이들...
"준씨가 생각하는 그 페어리와는 많이 다른 개념입니다.이들은 저희 세계에 있던 계층...아니,능력자라고 해야
옳은 거겠지요?"
이제 그가 내 마음을 읽은 듯이 말해도 놀랍지가 않다.하하하하하....나 미쳤나봐.
"많은것들이 있겠지만,일단 오늘 설명하기는 무리일것 같군요.왜냐면 오늘이 개방된 마지막 날이니까요.일단
이카드를 보시죠."
그는 내 앞에 어떤 카드 한장을 내밀었다.카드에는 까만 머리칼을 가진 아름다운 소녀가 그려져 있다.하얀색피부
에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그리고 그녀는 심판자 처럼 큰 소드(sword)를 들고 머리칼을 휘날리고 있다.
"무엇이 느껴집니까?"
"어둠의 기사....신체의 월등함으로 어둠을 심판하는 심판자..."
나는 마치 홀리듯이 중얼거린다.내 착각일까?내 말에 이끌리듯 그 카드는 희미한 불빛을 내 뿜기도 했다.알버트
는 살짝 미소를 짓더니 그것을 내 앞으로 밀어 놓았고,그는 두번째 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 카드에는 아까와는 다른 모습의 미소녀가 그려져 있다.흑발이 아닌 은발.자비란 없어 보이는 싸늘한 표정에,
망토를 휘날리고 있었고,한쪽손에는 작은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이것은요?어떤 느낌입니까?"
"백법사...차가움의 마법으로 어둠을 심판하는 자..."
허...기막힌 일이 아닐수 없다.나는 흡사 선생님의 질문에 척척 대답하는 모범생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 않
는가?허 참...나이거 참...그 카드 마저도 살짝 은빛을 내뿜더니 사라진다.그는 아까와 마찬가지로 내 앞에 카드
를 밀어 놓았다.
"놀랍군요..준이씨는...첫날에 무려 두장이나...아...아니군요...한장이 더 있어요..이건 마치..."
그는 꿈을 꾸듯 중얼거린다.내 앞에 커피는 이미 다 식어 버렸지만,내 시선은 다음카드를 향해 있었다.
"이것은요?"
그 카드에는 역시나 아름다운 미소녀가 그려져 있었음은 말할것도 없다.그녀는 월계수로 만든 관을 쓰고,현악기
하나를 팔에 들고 아름답게 웃고 있었다.다른 두장의 카드와 다른것은 카드안의 미소녀가 약간은 어려보인다는
점이지만,난 또 망설임없이 대답하고 있었다.
"정령의 여왕.자연과 가까이서,순수함으로 어둠을 씻어내는 자."
이번엔 그 카드가 녹색빛으로 물들었다가 사라진다.정신을 차려보니 어느덧 내 앞에는 세장의 카드가 놓여져 있
었다.
"굉장하군요...첫날에 무려 세개나 자각을 시키다니...당신과도 같은 사람은 들어본적이 없어요."
나는 아무말도 할수 없었다.가만..이거 꿈맞지?그치?
알버트는 내 멍한 표정을 보더니 몇장의 카드를 내 앞에 밀어주었다.어라? 그것들에는 그림이 없었다.미소녀가
그려져 있어야 할 부분은 하얀 백지처럼 공란일 뿐이었다.
"이것들은...앞으로의 준이씨의 "가능성"이라고 말하고 싶군요.아직은 어떤 페어리가 투영될지는 모르지만,아마
도 천천히 모습을 드러낼겁니다.당신이 요정들의 오너로써의 자격이 더욱더 굳건해 지면 말이죠."
"아..저기...근데...이게..."
나는 정신이 없어 횡설수설했다.그런 나를 보며 뭐가 그리 좋은지 알버트는 웃었다.그리고는 그는 정중히 내게
꾸벅 하고 인사를 했다.
"당신은 우리의 희망입니다.멋대로 정해서 죄송하지만...시간이 다되어 제가 드릴수 있는 변명의 시간조차 없는
것....용서해 주시길.."
어라?어어?
나는 눈이 휘둥그레 졌다.아니,휘둥그레 지고 싶었다.눈앞이 엄청나게 눈이 부셔와서 눈을 뜰수가 없다.알버트에
게 무언가 더 물어보고 싶어 죽겠는데....아무소리도 들리지 않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흡사 태양이 내 눈앞
에 있는 것만 같이,내가 할수 있는 것은 양팔로 부지런히 내 눈을 감싸는 일 뿐이었다.
"불우이웃을 도웁시....."
나는 희미하게 내 귀에 들리는 소리를 듣고는 천천히 눈을 떴다.맙소사....나는 아까처럼 길거리에 서있었다!
게다가 멀리서 구세군 냄비소리마져 들린다.
"이..이런 염병할 일이..."
나는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아까 내 앞에 있던 "주인의 쉼터"라는 건물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기 때문이었
다.
"맙소사...이게...도대체.."
나는 안경을 벗고는 내 뺨을 후려쳐 보았다.아악!아프다...진짜 아프다..이건 꿈이아니다..꿈이...
"어라...."
주머니에 손을넣었던 나는 그대로 몸이 굳어버렸다.주머니 속에는 네모지고 딱딱한 것이 잡혔기 때문이었다.아까
그 카드라는 생각이 들자 나는 겁이 덜컥났다.그대로 집까지 전력질주를 해버렸다.
"크아아아아...무섭다!"
왠 미친놈이 출현했나...라는 듯한 주변의 시선 조차 무섭다.이봐..니들 아까는 없었잖아! 왜 갑자기 나타나있
는 거냐고!
이건 분명 일이 잘 안풀리는 스트레스 때문에 내가 겪고 있는 일종의 환각상태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그래...
맞아...본드불고 장풍쏘면 나간다잖아...내가 지금 그런 상태인거라고..진짜로!
쿠당탕탕탕탕!
나는 우리집 원룸현관을 부수듯이 진입해 버렸다.
"헉..허억..헉.."
저질 체력의 선두주자라 할수 있는 내가 아니던가?나는 내 방에 도착하자마자 고대로 침대에 뻗어 버렸다.
터질듯한 심장의 박동.젠장...이것은 꿈이나 환각의 세계에서 느낄수 있는 고통이 아니라고....젠장!
나는 한참이나 누워 숨을 골랐다.진정하자..진정해야만 한다.나는 이래뵈도 자칭 최고의 탐정이 아니던가!끔찍한
연쇄 살인사건도 냉정하게 해결할수 있는...아니 할수 있을것 같은 탐정이란 말이다.
"이거...현실이잖아..."
주머니를 뒤져 잡히는 것을 꺼내 내 눈앞에 펼쳐보니,아까의 그 카드가 맞다.젠장...진짜인가봐!
나는 행여나 그것들이 마구 날뛰어 나를 난도질 할것만 같아 조심스레 그것들을 책상위에 놓았다.심장이 뛰고 온
몸에 땀이 질질 흐른다.하지만 무섭다.일어나서 샤워를 하고,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컴퓨터를 키고 놀다가 잠이
들 자신이 없다.
"그냥 자자..이게 꿈이면 깨어나면 현실이겠지..자자...나무아미타불..."
오늘만해도 두가지의 종교를 갖게 된 나는,두꺼운 목도리와 자켓을 걸친 그대로 눈을 꼭 감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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