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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요정들의 오너 - 2 -

<2부>

#1.블랙 나이트 세라.

으으...춥다. 잠복이란건 이렇게 추운것이다.게다가 지금은 아예 단종되어 버린 구형 자동차 안에서 잠복하는 내
꼴이란...이게 살인사건이라면 신이라도 날텐데 말이지.흠..

사실은 이 아이들 밥도 먹이고,대충 지도를 보고 주소를 추적하는 등의 일을 하고 나니 벌써 오후가 훌쩍넘어서
버렸고,생각보다 이 장소는 사무실에서 부터 꽤나 먼거리에 있었기에,나는 해가 뉘엿뉘엿 저가는 저녁 나절이
되어서야 잠복을 시작할수 있었던 것이다.뭐..그리고 술집아가씨들은 활동시작시간이 다소 늦다는 내 날카로운
추리에 기반을 둔 행동이기도 하지만.하하하.

"주인님.언제까지 여기에 있어요?"

유나는 벌써부터 지루한지 조수석에 앉아 내 옷자락을 잡아 끌었다.세라는 뒷좌석에서 아까부터 말이 없었다.아
까 조수석에 냉큼 앉아 버리는 유나와 약간의 신경전(?)이 있었다는것 까지는 눈치 채긴 했는데...아무래도 꼬맹
이들 특유의 자존심싸움이겠지 뭐..하하하.

"음...글쎄.의뢰인의 여동생이 나올때까지겠지."

나는 품안에서 의뢰인이게 넘겨받은 사진한장을 꺼냈다.아까 그남자의 친동생이라고는 믿을수 없을 정도로 이쁘
고 청순한 얼굴이었다.하하...하기사 술집에서 일하는 데다가,조폭이 꽂힐 정도라면...보통 외모로는 어림도 없
겠지.

일단 그가 알려준 주소로 오기는 했다.평범해 보이는 연립주택이지만,연신 깍두기 아자씨들이 왔다갔다하는거 보
니 맞기는 맞는 모양이다.게다가 아슬아슬하게 차려 입으신 나가요 언니(?)들이 종종 그 집에서 나오는걸 보면,
역시 주소를 보고 찾아오는것은 철가방 이상의 능력을 지닌 나다.하하하하하.

"우씽..재미없어.얼른 쳐들어가요.네?네?"

유나는 자꾸만 내 옷자락을 붙잡고 졸라대었다.내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자,잠자코 있던 세라가 입을 열었다.

"주인님이 하시는 일이잖아.가만히 있어."

"칫..."

세라가 하는 말이 바른말이라고 생각하는건지,딱히 뭐라 대꾸할 말이 없던 건지,유나는 입을 삐죽 내밀고 은빛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빙글빙글 돌리며 시트에 몸을 묻어 버렸다.

으으..이러니 내가 안데려올수 없는거다.얘들은 만난지 얼마 안됐지만,뭔짓을 저지를지 모를것만 같다고!세라라
면 모를까 호기심 많은 유나는 절대로!게다가 또 한명의 소녀가 나올지도 모르.....어라?

"잠깐.근데 지금 집에 있는 그 한장의 카드가 또...나와버리면 어떡해?"

내 질문에 세라는 차분하게 대답을 해주었다.

"그럴리는 없습니다.페어리의 개화는 오너와의 반응에 의해 나타나기 때문에..주인님이 여기 계시니 절대 그럴리
는 없어요."

휴...그렇다면 다행이다.빈집에서 갑작스레 전라의 꼬맹이 미소녀가 튀어나와 집안을 불구덩이로 만든다거나...
뭐 그럴리는 없잖아?근데...남은 한장의 카드의 페어리는 뭐였더라?

"주인님.그 여자가 나오면 어떻게 해요?"

문득 상념에 잠겨있던 나는 유나의 질문에 몸이 굳어 버렸다.허..그러고 보니 난 작전없이 그냥 왔잖아.

"뭐...가서 좋게 협상을 진행해야지."

"협상요?"

"음음.좋게좋게 말로 해야지.원래 몸싸움은 기본적으로 피하는게 상식이라고."

내말에 유나와 세라는 동글동글한 눈을 굴리며 고개를 갸웃한다.하하하.맞아.기껏해야 8살 정도밖에 보이지 않
는 애들에게는 조금 무리가 있는 설명이긴 하지...응?근데 얘들은 갑자기 카드에서 튀어나온 애들치곤 말을 잘
하는 편 아닌가?

"와와!나왔다!"

옆에서 유나가 신이나서는 엉덩이까지 들썩거리며 말했다.가만히 이 녀석들의 존재를 새삼 생각하고 있던 나는
깜짝 놀라 앞을 바라보았다.

"아...맞다."

틀림없이 사진에 있는 그 여자다.역시나 청순한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짧은 치마를 입고,몇명의 형님들에게 둘러
쌓여 자동차에 오르고 있었다.근데...벌써부터 일을 나가는 거야?

"니들은 여기에 있어."

"엥?왜요?왜요?"

"위험하니까 여기에 있어."

"칫....나도 가고 싶은데."

"세라야.여기서 잠자코 기다려.알았지?"

"네."

역시나 앙탈부리는 유나와는 달리 세라는 점잖게 고개를 끄덕인다.유나는 몇번이고 자기도 가고 싶다고 칭얼거
렸지만 이내 내가 입술위에 손가락을 올려 가만히 있으라는 신호를 주자 이내 입을 다물어 버렸다.하하.이럴땐
진짜 말이 프로즌 레이디지...아기 같구만.

"후우..."

차에서 내린 나는 한숨을 크게 한번 쉬었다.의뢰인의 여동생이라는 그녀는 어두운 얼굴로 깍두기들과 함께 큰
승합차로 오르려 하고 있었다.그래그래.진실은 통하는 법.

"저기..."

내가 조용히 그리고 소심하게 말을 걸자 험악한 삼촌들의 시선이 나를 향했고,더불어 그녀의 시선역시 내 눈을
향했다.으으..떨리잖아.난 미인에게 약하단 말이다.

"저기...이...이민희씨 되시죠?"

"넌 뭐야?"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은 험악한 삼촌에 의해 되돌아 온다.오...진짜 인상 먹어주는구나...하지만 떨순없지.난 이
래뵈도 뛰어난 탐정이란 말이다.

"오빠 되시는 분...부탁받고 왔습니다.같이 가시지 않겠어요?"

오빠...라는 말에 그녀의 눈망울이 크게 동요한다.하지만 정반대로 조폭 엉아들의 눈빛은 더더욱 험악해졌다.

"야 이새끼야.헛소리 지껄이지 말고 꺼져."

흠흠...무서워하면 안돼.설마 안경쓴 사람을 치겠어?나는 힘주어 말을 이었다.

"민희씨 오빠 되시는 분이 기다리고 계십니다.얼른 가지 않으면..."

"안가요."

"네?"

그녀의 입에서 차가운 한 단어가 울려퍼졌고,난 잠시 멍한 표정을 지어야만 했다.내가 잘못들은건 아니지?이봐
설마 그런 나가요의 삶이 좋다고 하는건 아닐거 아냐?

"전...지금이 좋아요.돈도 벌수 있고...됐나요?"

하하.웃기다. 그럼 방금 오빠란 말을 듣고 흔들렸던 눈망울은 뭔데?

"야.들었냐?그러니까 꺼져.두드려 맞기 싫으면."

"아니..잠깐만요!이봐요!민희씨!"

그녀는 내말을 듣지도 않고 냉큼 승합차에 타버렸고,나는 한명의 조폭 아저씨에 의해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리는
형상이 되어버렸다.어라?

"야...이런 샹노무 색기가 맞을려고 환장을했나...꺼지란 소리 못들었냐?"

아..아하하...대단하십니다.역시 덩치는 그냥 크는게 아니군요. 이사람은 나를 무려 한팔로 가뿐하게 들어버린
것이다.덕택에 나는 잠시나마 중력을 무시하고 허공에 대롱대롱 떠있는 형상이 되어 있는 것이다.

"이봐요...이러지 말고 제 이야기좀 들어...끄억!"

배에 강한 통증이 올라온다.녀석은 주먹으로 내 복부를 후두려 친것이다.안경써서 얼굴을 안때릴줄은 알았지만
설마 배를 칠줄이야..당했다!

"크으으.."

나는 몇발자국 앞으로 데굴데굴 굴러 배를 움켜쥐었다.연신 고통스러운 기침이 나온다.아...난 대화로 해결하고
싶었단 말이다.

"차 출발시켜."

그는 쓰러진 나를 보더니 승합차 안을 향해서 소리를 지른다.이대로 멈출수는 없지.암..

"잠깐...기다려..."

"뭐어?"

이제는 심상치 않았는지 승합차에서 몇몇이 더 내린다.아...이봐요 민희씨.그냥 잠자코 오빠의 품으로 가면 안되
는 겁니까?아무리 이놈들에게 빚이 있다고 해도...술집에서 일하다가 생긴 빚은 영원히 깔수가 없는거라고요.

"이 자식이...진짜 돌아부렀나?"

몇몇의 조폭들이 나를 일으켜 세웠다.으으...벌써부터 복부통증에 입안이 비릿한 느낌마져 난다.추리소설에 나
오는 탐정들은 싸움못해도 이런 위기는 잘만 헤쳐 나가던데!

"적당히 혼내주고 돌려보내.오라비인지 그새끼 여전히 멍청한 새끼구만?"

나는 분명히 보았다.날 처음에 때렸던 그 자식옆에 민희씨가 있는것을.그리고 그녀의 눈은 안타까움으로 물들어
있었다.하하..그래.너도 진심은 아니었구나.그리고...니 옆에 앉아있는 그놈이 바로 니가 사귄 남자친구로구나.

"얌마.앞으론 장소가려가며 오줌눠.알았냐?"

나는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세명이 나를 잡고 있었고,한명이 주먹을 들어올렸기 때문이었다.바로 그때.내 뒤에
서 낭랑하고도 가냘픈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프리즈 에로우!"

스스스스스....

나는 깜짝 놀라 눈을 떴다.이 소리는...이 소리는 설마?

"크아아아!"

"어어억!"

다채로운 비명소리의 서라운드.나는 그대로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나를 때리려던 녀석의 팔에는 바위만한 얼음
덩어리가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녀석은 그대로 팔을 부여잡고 괴로워 했다. 내 주위를 둘러싼 녀석들도 마찬가
지였다.모두들 얼음의 화살이 발목에 관통해 버린듯 얼어붙은 발을 잡고 나뒹굴기 시작했다.어라?근데 왜 차바
퀴에도 얼음의 화살이 직격되어 있는거지?

"주인님이 가만히 있으라고 하셨잖아!"

"그럼 가만히 냅둬?주인님 다 죽어가는데!"

하하하.고맙다.내 쪽팔림을 더욱 가중시켜 주는구나.나는 그제서야 상황판단을 할수 있었다.보다못한 유나가 창
문을 열고 빙계마법을 쏴버린 것이다.근데 차바퀴를 얼려버린것은 컨트롤 미스라는 건가?

"이새끼가...도대체 무슨짓을..."

맙소사.승합차에서 세네명이 더 내렸다.그중에는 민희라는 여자의 남자친구이자,나에게 처음 복부빤치를 날렸던
그 녀석도 포함되어 있었다.그들은 믿어지지 않는다는듯,얼어붙은 신체 일부분을 움켜쥐고 데굴데굴 구르는 자신
의 동료들을 살펴본후 천천히 나에게 다가온다.나는 나도 모르게 뒤를 돌아 내 차를 바라보았다.유나는 한번더
공격을 준비하는듯 수인을 맺고 있었다.

"안돼!유나야.하지마!"

내 말에 그녀는 깜짝 놀란듯 손에 맺힌 한기를 없에 버렸다.내 눈은 자연스레 세라에게로 향했다.그래...차라리
니가 낫겠다.적어도 넌 초자연적인 현상은 불러일으키지는 않을거 아니냐!

덜컥.

세라는 내 눈빛에서 무언가를 읽은것처럼 차에서 내렸다.아..난 바로 내 한심함을 원망해야 했다.

내가 미쳤지.저 아이를 보라고.아무리 능력자라지만,키가 내 절반밖에 되지 않는 여자아이란 말이다.그것도 너무
나 청순한 얼굴을 한...난 그런 아이에게 나도 모르게 도움의 손길을 요청한 것이다.유 준....이 멍청한 자식.

"그만둬요."

세라의 말에 셋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래...나도 처음엔 황당했어.곧 익숙해 질거야.

"이것들 도대체 뭐야?"

야야.나도 그거 안지는 얼마 안됐어.그냥 현실을 받아들이렴.아니..아니지.어서 세라를 말려야 한다.아무리 그래
도 넌 꼬마아이잖아.유나는 마법이라도 쓰지...넌 아니잖니.

"크어어어억!"

맹세컨데.난 아마 이 아이들을 만나고 족히 20번은 이렇게 입을 쩍 벌렸을 것이다.뒤에 있던 세라는 어느새 내
앞에 있던 한 녀석의 앞으로 날아와 복부에 장력을 날려버린것이다.정말 한마리 나비를 보는듯한 아름다운...
하지만 내 눈으로는 절대 쫒을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세라의 앙증맞은 손에 복부를 강타당한 녀석은 족히 10
여미터는 뒤로 날라가쳐박혀 버렸다.

"뭐...뭐야."

나머지 둘은 주춤주춤 물러서며 세라를 바라보았다.땅바닥에 털썩주저 앉은 내 앞을 세라는 막아서듯 굳건히 서
서 남은 두명의 조폭들을 바라보았다.

"주인님의 신체에 상해를 입힌 댓가.치르게 해드리겠습니다."

오우 맙소사.이로써 나는 조폭들 앞에서 로리주인님 선언을 하고 만것이로구나.하지만 좌절할 틈이 없다.세라의
양손은 푸른빛으로 물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이 씨발 니들 도대체 뭐야아아아!"

남은 두녀석은 귀신을 본 것처럼 신경질적으로 소리지르며 품안에서 긴 나이프를 꺼내 들었다.

"아..안돼 세라야.위험....."

나는 더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세라의 몸이 희미해 지는가 싶더니 이내 사라져 버린것이다.허나 그것은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너무 빠르기 때문에,우둔하고도 평범한 내눈에는 사라진것처럼 보인것이다.

"크어어억!"

"아아악!"

세라는 어느새 두놈의 앞에 나타나 있었고,양손에 깃든 푸른 장력을 두 녀석의 복부에 한방씩 강타 시킨 것이다.
꺼내들은 나이프는 제대로 써먹어 보지도 못한채,그 둘역시 족히 몇미터는 뒤로 날아가더니만 쓰레기 분리수거
하는 전봇대 밑으로 사이좋게 쳐박혀 버린다.

"뜨..뜨어어...마...맙소사..."

나는 손발이 덜덜 떨렸다.우리집에서 두 아이의 힘을 아주 잠깐 본적은 있지만...이건 정말 꿈이라고 믿고 싶을
정도가 아닌가.저런 귀여운 꼬마 아가씨가 조폭 셋을 허공으로 날린다니....어디가서 이런 이야기를 하면 나는
바로 정신병자 취급을 받을 것이다.

"칫....말릴때는 언제고 자기가 다 해버리다니.."

어느새 유나마져 차에서 내려,입을 삐죽 내밀고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난 무얼 해야하지?뻔한거 아니겠는가.
승합차안에서 우리를 보며 벌벌 떨고 있는 저 아가씨를 얼른 데려가야지 뭐...쩝.



#2.가족의 의미.


"미안해요...아까는..."

"괜찮습니다.저도 뭐...오빠되시는 분께서 부탁해서 온거니까요."

그녀는 조수석에서 연신 눈물을 보였다.짧은 치마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젠장.세상은 참 아이러니한거야.여자
란 이유로 이런 수모를 당해야 한다는거 말이다.

민희는 연신 뒤에 나란히 타있는 인형같이 생긴 미소녀들을 룸밀러로 힐끔거렸다.그래..놀랍기도 하겠지.저런 무
서운 꼬맹이들 처음 볼 겁니다.하기야..저도 아직 적응이 안되거든요.

"민희씨."

"네?"

"그럼..아까는 왜 오기싫다고 한거죠?"

내 질문에 그녀는 눈물로 번져버린 마스카라를 손으로 문지르며 말을 이었다.

"무서워서 그랬어요...저...저사람은 정말 무서운 사람이에요...그래서..제가 그렇게 하면 오빠한테도 위험이 미
치지 않을거 같아서..."

뜨거울 정도로 감명깊은 남녀간의 우애로구나.하기야...고아로 자란 내가 이런 것들을 보면 더욱 부아가 치미는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지. 아가씨.감사하게 생각하라고.난 부모님 얼굴조차 모르고 여태까지 살아온 사람이
라니까.

"한가지만 약속해 줄래요?"

"네?"

"오늘 본일....못본걸로 해줘요."

"아..."

내 말뜻은 "얼음과 장풍을 날리는 신비의 미소녀들"을 잊어 달라는 의미였고 그녀는 두려움이 가득한 눈으로 연
신 고개를 끄덕인다.

"주인님! 나 배고파요!"

뒤에서 큰 소리로 외치는 유나때문에 난 급정거를 할뻔했고,민희의 눈은 크게 떠졌다.

"아하하하!아..아닙니다 민희씨!제가 회사에서 주임을 맡고 있거든요.주임님!이라고 부른겁니다 오해마세요.아
하하하하하!"

나는 식은땀을 질질 흘려가며 차를 세웠다.이봐..너 여기 오기전에 밥먹었잖아!

허나 별수 있으랴.나는 얼른 내려서 계란빵을 몇개 사와서는 유나와 세라의 입에 하나씩 물려주었다.금새 얌전해
지는 유나.이럴땐 정말 영락없는 꼬맹이라니깐... 그렇게 입막음 작업을 하자,나는 훨씬 수월하게 내 사무실까지
운전해서 도착할수 있었다.

트드드드드 푸르릉...

크윽...쪽팔린다.제발 늙은 당나귀가 방귀뀌는 소리내면서 시동을 멈추진 말아줘 나의 애마여.넌 아직 족히 10년
은 더 탈수 있잖니...안그래?

"미...민희야!"

"오빠!"

급하기도 하셔라.나의 의뢰인은 뭐가 걱정인지 사무실앞에 미리 찾아와 기다리고 있었고,그녀는 아까보다 족히
세배나 되는 눈물을 흘려대며 오빠의 품에 안긴다. 감동적인 상봉의 모습이지만 나는 씁쓸해져서 보고 싶지가 않
다.가족애는 나에게 엄청난 핸디캡이란 말이다!난 보지 않겠다는 듯 등을 돌려 담배를 피워 물었다.

"야...맛있냐?"

"...."

내 얼빠진 질문에도 세라와 유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작은 입술을 오물거리며 열심히 계란빵을 드시고 계신다.
하하.귀엽긴 진짜 귀엽구나....

"감사합니다..감사합니다.정말 잊지 않겠습니다.."

"아..예."

나는 나도 모르게 퉁명스럽게 대답해 버렸다.참 웃기는 사회가 아닐수가 없구나.술집에서 일하는거 까지는 좋은
데,조폭에게 잡혀서 가족도 만나지 못하는 삶이 존재하다니...가족이 있다는 건 축복이다 이 멍청이 들아.그 축
복을 스스로 발로 차지 말란 말이야.나처럼 의지할곳이라고는 나 자신밖에 없는 사람도 있단 말이다.

"어..?"

갑자기 손이 따뜻해져 옆을 돌아보니,세라가 내 손을 잡아오고 있었다.흑단 같은 머리칼에 반짝거리는 눈망울과
앙증맞은 입술을 보이며...세라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읽은걸까?내 생각과 외로움을?그렇게 밖에 생각이 들지 않는다.세라는 마치 자신이 나의 가족이라는 듯 따뜻하게
나의 손을 잡아주고 있었다.

"보..보수는...얼마나 드리면 될런지요.지금은 큰 돈이 없지만..제가 어떤짓을 해서라도.."

"됐습니다."

"네에?"

그와 민희의 눈이 크게 흡떠진다.나는 씁쓸한 마음에 담배꽁초를 던져버렸다.

"됐어요.보수는 됐고...되도록 멀리 도망쳐서 사시는걸 권장합니다.별로 받고 싶지 않은 의뢰였어요."

"아닙니다!보수는 제가 꼭.."

"됐다니까요."

딱 잘라 버리는 나의 말에 세라는 더욱 세게 내 손을 잡아주었고,유나는 베시시 웃으며 안아 달라고 자꾸만 팔
을 뻗으며 졸라 대었다.

"잠시만요!"

사무실로 들어가버리려는 나를 누군가가 불렀다.뒤를 돌아보니,민희가 내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의아하다는 표
정의 나를 보며 그녀는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난 별로 해줄 말이 없다.고개를 끄덕여 주는거 밖에는....폼잡으려고 해서가 아니다.자꾸만 보면 저 둘이 부러워
질것만 같아서였다.

"주인님!벌써 밤이에요."

"그러네..."

나는 자꾸 팔을 벌려대는 유나를 못이긴척 안아들었다.세라는 여전히 내 손을 꼭 잡아주고 있었다.

"오늘은...이만 퇴근하자."



#3.정령의 여왕.


그 후 며칠이 지났다.

나는 한동안 탐정 사무실에 나가지 않은채로,동네 책방에서 잔뜩 판타지 소설을 빌려와서 정독하는 나날들을 보
내고 있었다.뭐...어차피 국내에서 사립탐정은 불법이니...어느정도 몸을 사리려는 의도도 있다고나 할까?하하.

무엇보다도 이제는 이 아이들과 함께 있는 현실을 인정해야 하는 만큼,내 스스로 준비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으힉...뭐가 이렇게 많아..."

어지러워 지는 것이 느껴졌다.비록 환타지는 어느 정도 보았지만,용어 설명집에 나와있는 마법이나 각각의 종족
들은 정말 방대할 정도로 많았다.게다가 작가가 가진 세계관에 따라 그것들은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프리즈 에로우-

아..기억난다.이건 분명 유나가 차에서 날렸던 그 마법이다.빙계속성의 가장 기초적인 마법....

"꺄하하하하!"

유나는 티비에서 나오는 코메디 프로그램을 보며 배꼽을 잡고 웃어대었다.세라는 뭘 하고 있냐고?허허허.내가
빌려다준 무협만화를 정독중이다.역시나 블랙 나이트이라서 그런지,그런쪽에 관심이 많은것 같았다.

며칠일 뿐이지만,나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이 녀석들의 성장속도는 보통 아이들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다
단 며칠사이에 유나와 세라의 키는 5센티 이상 훌쩍 커버렸다.뭐..얼음과 장풍을 쏘는 아이들인데..그런걸로 놀
라면 내 간덩이에 미안한 일이겠지.허허허.

다시금 책으로 눈길을 돌린 나는.빙계/화염계 등등으로 무수히 나뉘어진 마법목록들을 바라보았다.

"유나야.잠깐만 이리로."

티비를 보며 웃던 유나는 내가 부르자 부리나케 내 옆으로 달려왔다.아..이아이..며칠사이에 진짜 많이 컸구나.

"이것들....다 실제로 있는 마법들이니?"

유나는 눈을 동글동글 굴리며 마법들을 살펴보았다.한글을 모르면 어쩌지...하는 내 실없는 걱정을 무시한채 유
나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있는것도 있고,없는것도 있어요.여기에 써있지 않은것들도 있고"

"그럼..넌 빙계의 마법들을 다 시전할수 있는거야?"

"아뇨.아직은..."

유나는 자뭇 시무룩해 지기까지 했다.요컨데...이 아이들에게도 여타 환타지 게임처럼 렙업 이라는 개념이 존재
한다는 걸까?

"그럼..어떻게 하면 쓸수 있는데?"

"몸이 좀더 자라야 해요.더 많은 마나를 다룰수 있도록...그리고 수련도 필요하고..."

"수련?"

유나는 은발을 찰랑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나는 침을 꼴깍 삼키며 다음질문을 물어보았다.

"그럼..화염계나 여타의 마법들은?"

"전 쓸수 없어요.화염계는 적법사의 몫이니까.."

아...이제야 나는 알수 있었다.마법이라는 광대한 개념은 여러 분야별로 쪼개져 다량의 페어리들에게 분산이 된
것이다.그중에 유나는 빙계마법만을 쓸수 있도록 특화된 것이었고...아..진짜 얘네들 X맨 맞구나..

"그럼...니들은..이런 성장속도로 계속 자라나는 거야?"

유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어라?근데 왜 갑자기 이 녀석의 얼굴이 빨개 지는거지?

"그리고...남은 카드는...어째서 며칠째 저대로인거야?"

내 물음에 유나와 세라가 동시에 고개를 들어 책상위에 놓인 마지막 한장의 카드를 바라본다.알버트가 나에게
줬던 카드들 중에서,그림이 그려진 카드들은 이제 단 한장이 남아있을 뿐이다.

"주인님이...개화를 시켜주셔야죠."

"어..어떻게 하는건데."

"그건 저희들도 모릅니다."

세라의 차분한 대답에 나는 머리를 긁적일수 밖에 없었다.이봐...난 그거 어떻게 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다구.

"어차피...주인님의 마나와 반응해서 개화하는 거니까 한번 시도해 보시는게.."

세라의 말도 일리가 있다.어차피 이 아이들과 지내는것은 운명이다 라며 받아들인 이상.마지막 한장이 언제 나
올까 전전긍긍하느니, 지금이라도 시도해 봄이 옳다고 봐야 할것이다.

게다가 세라의 말을 빌리자면,그 운명은 정말 평화롭게 살던 나에게 있어서 정말이지 빌어먹을 일이 아닐수 없
을 정도로 잔혹한것이다. 크룬이라 불린 이종족 녀석들이 이 쪽으로 건너온다면,난 이런 말도 안되는 판타지 전
쟁에 참여해야만 하는 운명인것이다.하하..설마...그럴리는 없겠지?

"좋아..해보자.."

나는 책상앞에 놓인 침대에 앉아,개화되지 않은 마지막 한장의 카드를 바라보았다.월계수관을 쓰고 악기를 갖고
있는 미소녀가 그려진 마지막 카드.

나는 정신을 집중하고 그 카드만을 묵묵히 바라보았다.유나와 세라도 관심어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지
만,애초에 마나라는 걸 느껴 본적이 없는 내가 뭘 하겠는가.의미없는 노려봄일 뿐이다.

"이이익!"

나는 이를 악물고 괜시리 머리에 힘을 집중해 보았지만,개화는 커녕 카드가 찔금 움직이는 일조차 일어나지 않
았다.이씨...이거 뭐야...마지막 시련이야 뭐야.

나는 10여분간 낑낑거리며 용쓰기를 반복했다.관심어린 눈으로 지켜보던 세라도 무협지쪽으로 다시 시선을 돌렸
고,유나는 다시 티비를 켜고는 깔깔대기 시작했다.이..이것들이!

무관심속에서 열심히 느껴지지도 않는 마나와의 사투를 벌이던 나는 금새 맥이 빠져 버렸다.두명은 개화시켰는데
어째서 저녀석은 나오지 않는거냐?가만...저 둘이 나올때는 어떤 느낌이었지?

분명히 무언가 연관성이 있을것이다.유나와 세라가 깨어났을때의 공통점이 뭐지? 확실한건 나는 카드를 보았다는
것이다.하지만 그것만으론 뭔가가 부족하다.뭔가..분명 뭔가가 있다.나는 눈을 감아버렸다.그때의 느낌을 기억해
내기 위해서였다.

생각하자...생각해 내야 한다.무언가 공통점이 있을것이다.그래!

나는 번쩍 눈을 떴다.세라와 유나가 깨어날때의 공통점.그것은 은연중에 내가 그 카드를 머리에 이미지화 시켰다
는 점이다.비록 정신도,경황도 없었지만,난 분명 카드를 볼때에 회상하듯 알버트가 처음 내밀었던 그 카드를 이
미지화 시켰다는 거다.

그래.바로 그거다.나는 다시금 잠자코 마지막 카드를 들여다 보았다.머릿속에는 어느덧 커피숍에서 처음 카드를
봤을때의 그때로 돌아가 있었다.

스스스스스...

느껴진다.유나와 세라가 동시에 고개를 번쩍 드는 것을.카드에서는 녹색기운이 슬금슬금 나오기 시작한다.보통
녹색연기라 하면 독가스를 생각하게 되기 마련이지만,전혀 그렇지 않았다.오히려 보는 사람을 편안하게 하고
약간은 릴렉스 시켜주는 것같은 착각마져 들었다.

"저...정령의 여왕."

유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린다.왜?그게...그렇게 대단한 사실인거야?이봐..니들도 놀라움의 대상이라고 엄
밀히 말하면!오히려 침착한 내가 이상한 사람같잖아.게다가...니들 원래 저 카드가 정령술사의 카드라는 거 모르
고 있었던 거야?

진짜 이상한 일이긴 하다.세라마져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믿을수 없다는 듯이.이상스럽다.지금 나올
이 녀석이 그렇게 대단한 녀석이란 말이야?

연기가 사라져간다.이제는 꽤나 익숙해졌다.하하하.그래서 한국인은 삼세번!이라고 했던 것이란 말인가.

스스스스스....

놀라서 아무말도 하지 못하는 세라와 유나.나는 그녀들이 왜 놀라는지 알수가 없었다.하지만,연기가 사라질때에
나는 유나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분명히 들을수 있었다.

"최강의 페어리.....정령의 여왕..."

연기는 완전히 사라졌다.그리고 너무나 깜찍해 보이는,블루블랙의 윤기나는 머리칼을 찰랑거리며,또한명의 미소
녀가 귀엽게 미소짓는다.호기심에 가득차있는 듯한 동그란 눈과 앙증맞은 입술.연신 나를 바라보며 귀엽게 웃는
그녀의 입술이 조용히 열렸다.

"페어리의 오너로써 선택받으신 당신.정령의 여왕이 주인을 알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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