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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정들의 오너 - 3 -

<3부>


#1.최강의 페어리?


하하하.빠르다.내가 생각해도 빠르다.나는 세번째녀석이 나오자마자 얼른 가서 옷을 입혔던 것이다.물론 윗층 아
줌마의 기증품(?)으로 인해 내 티셔츠 한장으로 온몸을 가리는 불상사는 없었다.

"어어?나혼자가 아니네.."

새로나온 아이역시 세라와 유나를 보며 고개를 갸웃한다.가만...저 아이가 최강의 페어리라고?

나는 다시 한번 찬찬히 그녀를 살펴보았다.얼른 여아용 원피스를 입혀놓은 그녀는, 유나와 세라와는 달리 머리카
락이 단발이었다.까만색 같기도 하고,푸른색 같기도 한 신비로운 색채의 머리칼.유나보다 몇배는 더 호기심이 많
아보이는 동글동글 한 눈.흠..난 그래도 다행히 미리 이 아이의 이름을 지어놓았다.

"니 이름은...노아로 하자."

"노아?"

그 아이..아니,노아는 몇번이고 자신의 이름을 되뇌인다.뭐야..맘에 들지 않는거야?나름 입에 붙고 좋은 이름이
라고 생각하고 있었거늘..

"네..주인님.제 이름은 노아입니다."

그녀역시 다시한번 내 말을 되뇌이며 베시시 웃었다.눈이 간지러운지 앙증맞은 손으로 눈을 비비는 모습이 지독
히 귀여운 모습이었다.유나와 세라가 며칠사이에 커버려서 그런가?왠지 세자매중 막내같은 저 느낌은 뭐지?

"와..와.."

노아는 싱긋 웃더니 집안을 돌아다니며 호기심어린 눈으로 이것저것을 바라보기 시작했다.흠...뭐 유나와 세라의
적응력으로 봐선...노아도 분명 몇시간 후면 아마 원래 한국에서 태어난 아이처럼 자연스러워 지겠지.

"근데...저 아이가 그렇게 대단한거야?"

나는 내 옆에 붙어 앉아 리모컨을 만지작 거리는 유나에게 조용히 속삭였다.유나는 은빛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빙
빙 돌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수많은 페어리의 종류중에서...가장 강하고 큰 힘을 가진게...정령의 여왕이에요."

"수..수많은?얼마나 더 있는데?"

"셀수 없을정도로 많아요."

컥....안돼...안돼...내 집이 이러다가는 몬테소리 놀이방으로 바뀌고 말꺼야..셋도 버겁다고 지금!난 내 식비
하나도 버겁던 놈이란 말이다!

진정하자...일단은 세라가 노아를 계속해서 바라보는거 보니,분명 강한아이는 틀림없는거 같기는 하다.단 며칠
사이에 내가 깨달은 바로는,세라는 승부욕이 엄청난 아이였다.그런 세라가 저런 표정이라면,틀림없이 노아는
강한 아이다.

"어떤 식으로...강한데?"

내 얼빠진 질문에 유나는 입술을 모으며 생각에 잠겼다.하...귀엽잖아!

"그러니까...저같은 경우는 마법이라는 개념이 쪼개진 파편중에 하나입니다.그래서 빙계속성밖에 쓰지 못하잖
아요.근데 정령은 달라요.정령의 종류마다 쪼개진 것이 아니라...정령력 하나를 다 갖고있는 거라서요."

이봐...너 유나맞아?니가 이렇게 진지하게 이야기하니까 좀 이상하잖아..평소엔 나보다 밥을 두배로 많이 먹고
맨날 장난질에 꼬마주제에 뇌쇄적인 표정까지 겸비한....아..이건 아니구나.

나는 다시한번 유나의 말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참고문헌(?)들까지 잔뜩 있으니 어려울 것은 없다.나는 곧바
로 판타지 용어 설명집을 뒤적거렸다.엄청 두꺼운 책인지라 가나다 순으로 정렬되어 있었다.물론 이 책은 판타지
를 거의 병적으로 좋아하는 메니아들을 위한 책이었기 때문에 빌릴때 살짝 쑥쓰럽기도 했지만...

-정령이란?-

이 부분은 다 똑같지만,정령들의 종류는 작가에 따라 조금씩 달랐다.

기본적으로, 정령은 마법과는 다른 개념이었다.마법이라 하면 마나를 다루고,그것을 재배치 함에 따라 구현하지
만,정령술사는 정령들과의 친화력만 있으면 손쉽게 힘을 발동할수 있었다.한마디로,신체혹은 정신력의 피해 없이
얼마든지 빠른 공격을 할수 있다는 뜻이 된다.허나,노아의 경우는 정령술사가 아닌 "여왕"이었다.땅,불,바람,물
의 기본 4원소를 비롯해 번개나 빛등 그 범위가 방대한 영역을 노아는 컨트롤 할수 있다는 뜻이었다.

한마디로....진짜 센 놈...아니,센 미소녀 라는 것이다....

"오아...이건 뭐에요?"

"아악!안돼!"

나는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노아는 가스렌지 스위치를 돌리고 있었다.그것까지는 좋은데,한 손은 레버를 돌리
고 있었고 다른 한손은 화구(火口)에 손을 올려놓고 있었다는 것이 문제다.

트드드드드..

가스레버는 돌아가 버렸다.나는 끔찍한 장면을 상상하며 눈을 감았다.어라...?왜 조용하지?

"크헉!"

눈을 뜬 난 또 한번 헛바람을 집어 삼켰다.잔뜩 화상을 입어 곱고 하얀 손이 시뻘겋게 변하는 것을 상상했건만,
노아는 꺄르르 거리며 웃고 있다.가스렌지에서 나온 불이 작은 새 모양으로 변해,노아의 손에서 재롱을 부리고
있는것이 아닌가.

"아....니미.....나 이렇다가 명이 줄어들겠어."



#2.수련의 필요성?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나보다.하기야,어디선가 사람은 제 먹을건 다 갖고 태어난다라는 말을 들어본적이 있긴
하지만,나는 근근히 세명의 아이들을 먹여살리고 있었다.돈이 꼭 떨어질만 하면,옛 친구녀석이 꾼돈을 갚는 다거
나,혹은 라디오이벤트로 경품이 당첨되어 그것을 팔아 생활비를 연명하는 식으로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탐정사무실 역시,매일 파리가 날렸다.출근하는것도 일이다.세 명의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나와야만 했기 때문이
다.

"주인님!싫어요!계속!계속!!"

노아는 계속해서 칭얼대었고,안고 있던 노아를 땅에 내려놓으려던 나는 한숨을 쉬며 다시 들어올려야만 했다.

최강의 페어리라는 이름이 무색하게,노아는 정말 아이처럼 어리광이 많았고,틈만 나면 안아달라고 조르곤 했다.
하지만 그녀도 엄밀히 따지면 사람으로 봐선 안되는 존재.며칠이 지났을 뿐이거늘,점점 소녀의 모습을 탈피하며
몸이 쑥쑥 자라나고 있었다.

우스운 일이지만,내 푸념은 사실이었다.원체 상식으로는 생각해선 안되는 아이들이긴 했지만,일주일이 지난 지
금,유나와 세라는 150센티가 훌쩍 넘어설 정도로 커버렸다.하...진짜 어이가 없었다.처음봤을때 꼬맹이 같았던
아이들이,이제는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소녀들로 바뀐것이다.물론 상대적으로 늦게 나온 노아는 약간 작긴 했지
만,역시나 비약적인 성장속도를 보이고 있었다.

에휴...더불어 등골이 휘는것은 나다.더이상 윗집 아줌마가 기증한 옷들은 쓸모가 없어졌고,나는 인터넷으로 아
이들의 옷을 사들여야 했다.요새는 값싼 옷들이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내 옷도 안사입던 나에게는 엄청난 부담이
아닐수 없었다!게다가 이젠 안아주기엔 노아 너도 너무 커버렸다고!

"응?넌 왜 그러고 있어?"

활발한 두 녀석과는 달리 세라는 묵묵히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하...이제 저 아이에게 꼬마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긴생머리를 틀어올린 그녀.역시나 활동적인 그녀는 유나와는 달리 바지만을 입었고,벌써부터 허리가 잘록
하게 들어가고,가슴도 조금씩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다...에헤헤헤...뭐..뭐하는거야!이런 생각을 하면 안된다고!

"그냥...답답해서요."

"으..응?뭐가?"

너도...나처럼 식량걱정을 하고 있는게로구나..흑....고맙다.역시 넌 어른스러워.나는 더 안아달라고 칭얼대는
노아를 잘달래서 바닥에 내려놓았고, 노아는 곧바로 만화책을 보는 유나의 옆에서 슬금슬금 기웃거렸다.

"이제 한달도 안되긴 했지만...너무나....불안합니다.크룬들이 들이닥친다면....."

아...내 생각과는 다른거로구나.

"설마...그..그럴일이 있겠어?있어도...너희는 특별한 존재잖아."

내 말에 세라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그녀의 눈망울.꼬마일때도 그랬지만,조금 자라고 난 그녀의 눈망울은 청
순가련형의 여주인공을 보는것만 같다.

"아뇨.특별한 존재는 주인님입니다.저흰 그렇지 않아요...지금 처럼 평화가 계속된다면 좋겠지만...지금 저희들
의 힘으로는 역부족입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입을 쩌억 벌리고 말았다.다른 이도 아니고,세라가 고민할 정도라면...그 녀석들 얼마나 강하
다는 말인거냐?

"만약에 말이야...그..크룬이라는 놈들이 오면...그..그럼...난 어떻게 해야하는거야?"

약간은 찐따스러운 질문이었지만,솔직히 난 두려웠다.난 전투가 시작되면 쓸모없는 정도가 아니야.있는게 오히려
해가 될 존재란 말이다.

"자각하셔야 합니다.주인님도...마나를 익히고,그것을 다루는 연습을 하셔야 해요."

"그..그럼 나보고 마법사가 되라는 거야?"

하하..말도 안돼.제발 아니라고 말해줘!

"아뇨.그런것은 아닙니다.주인님이 어떤 능력이 특화되어 있는지는...저희도 알수 없어요.다만, 페어리의 오너역
시,마나를 다루고 그것을 통해 저희들을 지휘하셔야 해요."

차분한 그녀의 말이지만,나는 어깨에 천근짜리 짐을 진것처럼 힘이 쭈욱 빠져버렸다.나는...니들 밥먹이는것도
벌써 걱정이란 말이야.제발...그렇게 무서운 말은 하지 말아 주겠니?으응?

"그래서...수련이 필요합니다.저희도...주인님도요."

세라는 공손히 말을 하고 다시 등을 돌려 창밖을 향했지만,나는 쉽게 그리 할수 없었다.마음속은 천근만근 무거
워져 갔기 때문이다.

"수련이라...어디라도 가야 할까?"

"으응?어디간다고요?어디요?"

으힉!나는 깜짝 놀라고야 말았다.그저 혼잣말로 중얼거린 내말에 유나가 벌떡 일어나 내 허리를 끌어안으며 물어
왔기 때문이었다.으으...너도 세라처럼 어른스러워 져라...헉!

나는 나도 모르게 침을 꼴깍하고 삼켰다.세라와 함께 훌쩍 커버린 유나.여성스럽고 섹시하게 입는 걸 좋아하는
(그래봐야 아기면서!)그녀의 브라우스 골 사이로 이제 조금씩 빵빵해져 가는 가슴골이 보였기 때문이었다.게다가
이 아이들은 환타지적 존재.거기에 미소녀가 아닌가.은발과 함께 반짝이는 입술.그리고 유나는 특히 눈매가 섹시
하기 때문에 한창때의 남자인 나에게는 골반을 돌려야만 하는(????)큰 고역이 아닐수 없다.

"간다고는 말은 안했다구.하지만...필요할거 같기도 하고..."

사실...가장 걱정이 되는것은 나다.저번에 조폭들에게 둘러쌓여있을 때처럼,유나나 세라의 뒤에 숨어서 벌벌 떨
수는 없는거 아닌가?이왕 나에게 닥친 이 빌어먹을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면,나라도 어떻게든 강해져야
한다.마나라는거...솔직히 허황된거 같지만, 세라의 말을 들으니 이대로 말짱 쌩까고 있을수는 없는 일이다.

"잉잉!가요!네?주인니임~말 잘들을테니까 놀러가요..네?"

"놀러 가는거 아냐.수련이라고 했잖아."

역시나 따끔하게 한마디 하는 세라였지만 유나는 세라쪽은 바라보지도 않았다.예전부터 느끼고 있던 거지만,세라
와 유나는 특히 사이가 안좋은 편이었다.

"칫!너한테 물어봤나 뭐? 네?주인님!얼른가요..네??"

허...분명 여타의 남자들이라면,이것은 고민할 가치도 없는 일일거다.유나 정도 되는 아이가...게다가 한창 흐뭇
하게 성장을 하는중인...(흠!흠!) 저렇게 주인님 주인님하면서 졸라댄다면,바로 시동을 걸며 출발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조금은 달랐다.일단 수련은 둘째치고 어딜 움직이려면 돈이 깨지기 마련이거늘,나에겐 그런
금전적 여유가 없다.그렇다고 해서 신비의 존재인 이 아이들에게 한국의 경제상황과 나의 지갑상황과의 비례관계
그래프를 설명해 줄수도 없는 노릇이다.

"주인님.누군가 옵니다."

한숨만 푹푹 쉬고 있을 그때.세라의 입이 조용히 열렸다.




#3.거액의 의뢰.


세라의 오감은 엄청 뛰어났고,따라서 내 사무실로 걸어오는 희미한 발자국 소리도 알아맞춘 것이다.나는 세명의
아이들에게 의뢰인이 있을시엔 주인님이라는 칭호는 쓰지말아달라고 당부하며 조용히 문을 바라보았다.제발...잡
상인 아니라 의뢰인이 와주기를!

끼이이익.

문이 열리고,정장을 입은 중후한 중년 사내가 들어온다.한껏 찌푸린 얼굴이 마치 못올곳에 와버렸다는 표정이었
고,그 뒤를 그의 부하직원으로 보이는 젊은 사내가 따랐다.

"여기가...탐정사무소가 맞습니까?"

말투는 일단 차분하다.하지만 표정은 한껏 짜증이 밀려온다는 듯한 모습이었다.쳇...그래..딱봐도 고결한 몸이신
거 같긴 하구려.하지만 뭐....사회생활이라는게 이런거 아니겠어?나는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네!맞습니다 고객님!여기 앉으시죠.하하하!"

세라는 굽신굽신하는 내모습에 살짝 표정이 굳어졌다.이봐..이해 안되지?니들도 가장이 되어봐..흑흑.

중년의 남성은 살짝 머뭇거리며 내 의자에 앉더니만 연이어 세라와 유나,그리고 노아를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본
다.허름한 사무실에, 허름한 탐정에,미소녀 셋이 있으니 웃기기도 하겠지.푸하하.

"어떤...의뢰라도 상관없습니까?"

"어떤..의뢰라...뭐.살인이나 범죄가 아니면,상관없습니다."

내 대답에 그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보인다.그리고는 뒤에 서있는 비서격인 듯한 청년에게 무언가 손짓을
했고,그는 안주머니에서 작은 봉투를 꺼내 내밀었다.

"이거...우선 받으시죠."

"이게 뭡니...헉!"

내 동공이 흡사 학교 운동장 만하게 커져버렸다.그것은 엄청나게 두둑한 돈뭉치 였던 것이다!크윽!금전에 약한
내 손은 눈치없이 벌벌 떨린다.

"우선...이 돈은 의뢰전 착수금이라고 해두죠."

무..무슨일이길래 착수금이 돈 한보따리냐.유나는 눈이 동그래 져서는 내 손에 들린 두툼한 돈봉투만 연신 바라
보고 있었다.아....그래도 하늘은 날 버리지 않으시는 구나.

"전...화랑을 운영하고 있습니다.이번에...유명한 해외의 그림들의 경매를 맡게 되었지요."

흠..요컨데.그림겔러리를 운영하고 있다는 말이로군.오...돈좀 벌겠구나.사실 그런 그림옥션에 대한 일을 하는거
자체가,큰 돈을 만진다는 의미였다.

"제 개인 창고에 그림들이 보관되어 있긴 합니다만...문제는...제가 협박편지를 하나 받았습니다."

"협박...편지요?"

"네.J라고 하는....유명한 방화범."

"아..."

나도 그 정도는 안다.안다 뿐인가.탐정이라면 시사와 사회동향에 밝아야 하거든.J라 하는 녀석은 아직도 꼬리가
잡히지 않는 유명한 방화범이었다.녀석의 특징이라면,여타 방화범들처럼 우발적으로 불을 지르는게 아니라,목표
를 정해서 협박장을 보내고, 그렇게 찍은 목표는 반드시 불태워 버리는 그런 녀석이었다.

"그러니까...그 J라는 녀석이....지금 선생님의 화랑을 노리고있다...이겁니까?"

"정확히 말하자면,화랑이라기 보다 이번 경매에 쓰일 명화들이지요."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명화라고 하면서 "쓰이다"라는 동사를 쓰다니.우습다.이 사람에게는 예술이 아닌,그저 장
사의 수단일 뿐인 모양이로군.하기야 그러니 돈부터 보여주며 내게 살짝 입질이 오게 만들었겠지만 말이야.

"그렇다면,그런 큰 사건은 경찰에 의뢰해야 할 부분이 아닌가요?"

"저도 그생각은 했습니다만,경찰에 의뢰해서는 안되는 부분도 있거든요."

"그게..무슨말씀이신지요?"

"그 이상 말씀드리는 것은 저도 조금 곤란합니다."

약간은 심기 불편한 표정을 짓는 그 남자.하지만 불행히도 나는 어렴풋이 알거 같았다.사람이 경찰을 기피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뭔가 법적으로 꿀리는게 있기 때문이다.분명히 정상적인 루트로 들어온 그림들이 아님이 분
명하다.그리고 다음은 뻔하다.그 경매역시,뭔가 불법적인 내용일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면...경비 시스템이나 이런것들도 되어 있지 않나요?"

"아뇨.경비시스템은 걸려 있습니다.하지만...J라는 녀석의 지난 행각들을 보자면,그런 경비시스템이나 소방시스
템은 전혀 소용이 없었지요."

"죄송하지만.저 역시 소방쪽은 자신이 없군요."

멍청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내말은 사실이다.나는 탐정이지 소방관이 아니기 때문이었다.그는 내말에 조용히 미소
를 지었다.아까는 중후하게 보였지만,뒤가 캥기는 부분이 있는 녀석이라고 생각하자 음흉해 보이기 그지없다.

"그런걸 맡기려는 것이 아닙니다.제가 그에게서 온 협박장을 드릴테니,그가 불을 지르기 전에 신원을 파악해 주
시거나,혹은 잡아주십사 하는 겁니다."

나는 또한번 생각에 잠겨야 했다.내가 할 수 있을까?뭐...평소에 내가 꿈꿔왔던 탐정의 업무와 거의 비슷해서 좋
다만...너무나 큰 건이기도 하고,더불어 약간은 뒤가 구려 보이기 때문에 솔직히 좀 찝찝하기도 하다.

"보수는 착수금을 빼고도 두둑히 드리죠.만일 그를 잡는다면 큰거 두장. 방화를 막는다면 한장 챙겨 드리겠
습니다."

"두장이라면.,..이천이요??"

내 말에 그는 피식 웃더니만 고개를 젓는다.

"아뇨.조금 더 쓰세요."

"어....억?"

억...정말 억소리난다.내 평생 억을 만져볼 기회따윈 없을거라는 생각으로 살아왔는데...잡지 못하고 방화만 막
아도 억이라고?

아...이래서 난 안된다니까."억"이라는 말에 나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여 버렸다.그는 그럴줄 알았다는 듯
씨익 웃더니만 작은 서류봉투를 내밀었다.

"이건..."

"J의 협박장.그리고 제 그림들이 보관되어 있는 장소입니다.지금은 제 개인 보안업체가 건물을 지키고 있습니다
만, 일이 착수하실때는 외부경비가 방해 되실수도 있으니 실내에서 경비를 서도록 조치해 두겠습니다."

"아...예."

나는 나도 모르게 서류봉투를 받아 들었다.이로써 의뢰는 성립되어 버린것이다.하하.

하지만 망설일 여유?선택의 여지 따윈 내게 없었다.무엇보다,난 세명의 페어리들을 데리고있는 오너이기 때문에
이들을 먹여살릴 일종의 책임을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그렇다고 이 아이들을 나가서 알바시킬수도...으응?

"그럼...연락 기다리겠습니다.연락처는 동봉된 메모지에 적어두었습니다.그럼.."

그는 살짝 목례를 하고는,대동인을 데리고 나가버렸다.하하.보통 명함을 넣는 법인데...메모지라...뭔가 찔리는
게 있긴 하나보구만.

나는 끝까지 고민이 되었다.왜?저런 인물이 뭐가 아쉬워서 탐정을 찾는단 말인가?설마 기껏 발에 땀띠 나도록 뛰
었더니 나를 방화범을 몰아 뭐....현상금을 챙긴다거나 하지는 않겠지? 그래...그런거다.그냥 밑져야 본전이니
나를 찾은 걸거야.기대치가 낮으니,실패해도 그만,성공하면 좋은...하하하.

"와와!주인님 우리 모험하러 가는 거에요?"

노아가 쪼르르 뛰어와 내 목을 끌어 안았다.아이쿠! 이 녀석도 며칠지나면 유나나 세라만큼 커 버리겠다.

"모험이라니...일이야 일."

노아는 꺄르르 웃으며 내 목을 끌어안는다.하아...페어리라는 애들은 원래 이렇게 붙임성이 좋은건가?아...세라
는 점잖으니까 빼고.

나는 한숨을 푹쉬었다.내 품에 안긴 노아와,세라,그리고 유나까지 나를 빤히 바라보며 내 결정을 기다리고 있
었다.그래...착수금도 받았겠다,수련이라고 생각하지뭐.그래야 편한거 아니겠어?

"얘들아.출발할 준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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