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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사랑 제제 3.1

내사랑 제제 3부 1-5


♥내사랑 제제♥ 제3부 그 여자의 침실 ①

◈섹스 경험이 있는 여자를 그리워 한다는 것은 오십 프로의
거짓과 오십프로의 사랑이 합류되어 있다.◈

삼층 짜리 낡은 건물이었다. 앞으로는 서울역의 뒷모습이 보였
고 차도를 가로지른 고가 때문에 늘 소음이 끊기지 않는 회색
빛 건물이었다. 일층에는 치카치카란 치킨 센터가 위치하고 있
었고, 치킨 센터 옆에 있는 문을 통해 이층으로 올라가는 시멘
트 계단은 지저분했다. 이층으로 올라가면 남녀 공용의 화장실
을 앞으로 하고, 그 옆에는 들국화 란 카페가 있었다.

선우진이 소장으로 있는 한국 범죄 연구소는 그 건물의 삼층
전 평을 차지하고 있었다. 전 평이라고 해 봤자, 십 오평 정도의
작은 사무실이었다.
입구에 삼인 치 두께의 송판에 한자로 한국 범죄 연구소(韓國
犯罪 硏究所)란 일 미터 크기의 현판이 걸려 있는 문을 열고 들
어가면 일단 사정은 틀려진다.

낡기는 하나 꽤 공을 들인 흔적을 쉽게 엿볼 수 있을 만큼 바
닥에는 모노륨이 깔려 있었고, 응접세트니, 장식장, 옷걸이, 시
계, 풍경화 등이 적절하게 배치되어 있는 천장은, 원래의 천장에
코팅된 벽지를 발라서 언뜻 보면 신축 오피스텔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 였다.
사무실 왼 편에는 조립실 패널로 칸막이를 해 놓은 소장실 이
란 팻말이 붙어 있었는데, 그 곳이 선우진의 사무실이다.

소장실 밖에는 두 명의 직원이 근무를 하고 있었다. 그 중 한
명은 올해 스물 두 살의 총무 서영란과, 선우진의 친구이자, 파
트너이면서 공식 직함은 단순히 부장이라고 만 되어 있는 구영
팔이다.

한 낮이었다.
창문 유리를 통해 들어오는 햇볕이 마냥 따사롭기만 했으나,
창밖에는 겨울의 차가운 바람이 발톱을 세우고, 길가는 행인들
의 목덜미와, 귀며 콧잔등을 마구 할퀴는 추운 날씨 였다.
"다녀올께요."
서영란은 머플러를 하고 나서 책상 위에 있는 손 지갑을 들고
일어서며 선우진을 바라보았다.
"통장 가져가야지?"
선우진은 막 소장 실에 들어가려던 참이었다. 고개를 들고 해
맑은 웃음을 던지는 서영란에게 한마디했다.
"피, 요 안에 들었어요. 제가 기억력이 아무리 없다고 해도 은
행에 가면서 통장을 놓고 가진 않아요. 안 그래요? 구부장님."
"미인은 백치미가 있어야 된다는 말이 있잖아, 소장 말은 신경
쓰지 말고 빨리 다녀오라구."
카메라 가방에서 비디오 테이프를 빼고 있던 구영팔이 건성으
로 대답했다."
"어머머 백치미가 무슨 뜻이예요?"
서영란이 선우진에게 무슨 말인가 하려는 구영팔의 시선을 다
시 움켜잡았다.
"소장 백치미가 무슨 뜻이냐?"
구영팔이 시치미를 떼고 물었다.
"바보처럼 아름답다는 뜻이라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무튼
좋은 말임은 틀림없어. 원래 바보들의 마음은 순수하잖아."
선우진은 꿈 보다 해몽이 좋다는 식으로 해석을 해 버리고 구
영팔이 건네주는 비디오 테이프를 건네 받았다.
"그거 말이 되는 거 같기도 하고, 안 되는 거 같기도 하고. 이
상하네 바보처럼 아름답다, 바보처럼......"
서영란은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사무실 문을 열었다. 아무래도
좋은 말 같지는 않은데, 선우진의 표정을 보니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김달구씨 몇 시에 오기로 했나?"
선우진은 복사 방지가 되어 있는 테이프의 앞뒤를 살펴보며 담
뱃불을 붙이고 있는 구영팔을 쳐다보았다.
"영란씨가 그러는데 다섯 시 쯤, 들리겠대."
"원래 두 시에 약속하지 않았던가?"
"맞아. 근데 오늘 장모 생일 인줄 모르고 약속 시간을 정했데,
그래서 처가가 있는 천안에 같다가 다섯 시쯤 곧장 여기로 오기
로 했어."
"낼 모래, 이혼할 여자의 장모 생일 잔치에 참석했다니, 김달구
씨 보기보다는 치밀한 남자 군."
선우진은 아내의 불륜 장면만 구해 주면 그 날 당장 가정 법원
으로 달려 가겠노라며, 초조한 얼굴로 두 손을 꼭 잡던 김달구
의 얼굴을 떠 올렸다.
"마누라 강짜가 심한 모양이지, 그 와중에 장모 생일잔치에 참
석할 정도면......"
구영팔이 선우진을 따라 소장 실로 들어오며 대꾸했다. 그는
소장 실로 들어선 순간 말을 잃어 버린 사나이가 되어 버렸다.
그렇다고 어서 비디오를 보자고 재촉도 하지 않았다. 의자에 앉
아 꿀먹은 벙어리 마냥 헛기침만 해 댔다.
"한 잔 씩 하면서 볼까?"
선우진은 시계를 봤다. 김달구가 오려면 세 시간은 있어야 했
다. 그 동안 비디오 테이프를 검증하는 것 외 별로 할 일이 없
었다. 김달구가 오면 테이프와 잔금을 교환 한 다음에 제제가
있는 그린파크 란 여관에 가 봐야 겠다고 생각했다.

잠들어 있는 제제의 입술은 밤에 봤을 때 보다 더 투명했다.
여자가 단순히 입술이 아름답다는 것 하나 만으로도 미인이 될
수 있다는 조건을 갗출수 있다는 것을 내세워도 좋을 정도 였
다.
"저녁에 만나?"
옷을 다 입을 때 까지도 제제는 께어 나지 않았다. 피곤해서
그러려니 생각하고 잠들어 있는 제제의 이마에 키스를 해주었
다.
"형 벌써 일어났어. 난 오전 내내 자야 직성이 풀려......"
제제는 잠기가 물씬 묻은 음성으로 중얼 거리고 나서 돌아 누
웠다.
"알았으니까. 푹 자고 저녁에 만나."
"모르겠어. 하지만 노력 해 볼께......"
제제는 그 말을 끝으로 잠속으로 빠져 들었다. 그 모습이 얼마
나 귀엽고 아름답던지 다시 그녀 곁에 눕고 싶은 생각이 들 정
도 였다. 하지만 일은 일이고, 사랑은 사랑이었다. 그것을 분간
하지 못한다면 영원한 낙오자 일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선우진이 비디오레코더를 조작하고 있는 동안 구영팔은 문을
열고 나가서 사무실 구석에 있는 냉장고 문을 열었다. 캔 맥주
한 개를 꺼내 들고 소장 실로 들어갔다.



♥내사랑 제제♥ 제3부 그 여자의 침실 ②

◈동물과 인간이 틀린 점이 있다면 인간은 생각할 수 있는 힘
에서 나온다. 그러나 인간에게도 발정기가 있다면, 인간도 생각
할 수 있는 힘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너는 안 마셔?"
선우진은 캔 맥주를 한 개만 들고 온 구영팔을 쳐다보며 의자
에 앉았다.
"난 이게 좋아."
구영팔은 가죽잠바 안 주머니에서 스테인레스로 된 휴대용 위
스키 병을 꺼냈다. 손바닥만한 크기 였다. 그는 목이 타는 듯 뚜
껑을 열자 마자 몇 모금 마셨다.
"너 그러다 알코올 중독 되겠다?"
선우진이 캔 맥주의 뚜껑을 따며 말했다.
"위스키는 괜찮아........또 어떠냐, 요즘 같은 불경기에 양주 먹
고 알코올 중독자가 돼 보는 것도 신문 사회면을 장식할 토픽감
아니냐."
구영팔은 위스키 병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구석에 있는 접
의자를 가져와 텔레비전과 적당한 거리에 놓고 의자를 폈다. 그
다음에 책상 위에 있던 위스키 병을 들고 와서 앉았다.
"준비됐다. 켜 봐."
"촬영이 잘 됐는지 모르겠다."
선우진은 캔 맥주를 한 모금 홀짝이고 나서 리모콘의 전원 스
위치를 눌렀다.
"만원 렌즈 성능이 끝내 주니까 잘 됐을 꺼야."
구영팔은 함숨을 쉬듯 담배 연기를 내 뿜으며 화면을 응시했
다. 화면 속에 숫자가 번뜻거리며 뒤로 밀려가고 있었다.

밖은 아직 한 낮이었다. 고가 도로 밑 음지에 불법 주차된 자
동차들의 지붕에 한 낮인데도 서리꽃이 피어나고 있는 강추위
는 여전했다.
"음......"
선우진은 의자에 비스듬히 누워서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고, 구
영팔은 야외 극장에서 영화를 감상하는 소년처럼 최대한 쪼그린
자세로 모니터를 응시했다.
"창문 블라인드 좀 내려 봐."
선우진의 말에 구영팔은 거리 쪽으로 난 창문의 블라인드를 내
렸다. 일 순간 햇볕이 차단되며 화면의 농도가 한층 선명 해 졌
다.
제제가 오늘 저녁에도 있을까?
선우진은 잠깐 동안 제제를 생각하다가 담배를 꺼냈다. 재떨이
가 구영팔 쪽에 있었다. 캔 맥주를 비워 버린 다음에 그걸로 재
떨이를 사용해야 겠다는 생각으로 담배 대신 맥주를 마셨다.
"이런 테이프를 처음 보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긴장하고
있냐?"
구영팔이 담배 연기를 내 품으며 물었다.
"긴장을 하다니.....잠깐 딴 생각을 하고 있었어."
선우진은 어쩌면 제제가 오늘 밤 여관에 없을지도 모른 다는
생각을 하다가 어색하게 웃었다.
"하긴 소장도 봤겠지만 김달구 씨 아내 얼굴과 몸매는 끝내주
디 않더냐, 하니까 긴장 할 만도 하지."
구영팔은 서른 다섯의 나이가 무색하리 만큼 탄력 있는 피부에
서구적인 얼굴을 소유한 김달구 아내의 얼굴을 떠올리며 마른침
을 삼켰다.

초음파 자장처럼 흔들리던 화면이 일순간 사라지면서 나뭇가지
사이로 빨간 색 중형 승용차가 나타났다.
"젠장 저걸 찍을 때 여간 추웠냐?"
구영팔은 화면 속으로 보이는 승용차 뒷 쪽에 있는 석탑을 쳐
다보았다. 김달구의 아내를 미행할 때만 해도, 그 석탑 앞에서
남자를 만나기로 한 줄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알고 보니 남
자는 어떤 교통 수단을 이용했는지 미리 석탑 뒤에 와서 숨어
있는 중이었다.
"저 놈 나온다......."
구영팔은 석탑 뒤에서 코트 입은 사내가 불쑥 나타나는 것을
보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만원 렌즈는 사내의 얼굴을 클로즈업 했다. 제비족이라고는 볼
수 없는 평범한 회사원 처럼 보였다. 아니는 삼십 대 후반으로
보이는 사내는 하얀 입김을 토해 내며 김달구 아내의 차 속으로
파고 들었다.

김달구 아내는 사내가 차에 들어와 앉기가 무섭게 어깨를 끌어
당겨 길게 키스를 했다. 사내의 손이 김달구 아내의 허리와 어
깨 쪽을 교차하여 끌어당기며 머리가 숙여 졌다.
뒷모습으로 보이는 김달구 아내는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사이
드 브레이크를 풀고 차를 앞으로 전진시켰다. 자동차는 나뭇가
지를 스쳐 지나가더니 오미터를 안가서 정지하고 말았다. 사내
가 김달구 아내의 어느 곳인가를 자극했는지 그녀는 핸들 위에
가슴을 기대며 더 이상 운전을 하지 못했다. 그것도 잠깐 그녀
는 스스로 의자를 뒤로 눕히고 편하게 누웠다.

"됐어. 더 이상 안 봐도 되겠어."
선우진은 리모콘을 들어 비디오를 껐다. 다음 장면은 그녀의
허벅지가 자동차 천장으로 치켜 올라가고, 바지를 까 내린 사내
의 들썩이는 엉덩이가 보일 뿐 별다른 내용은 없었다. 이것으로
김달구는 이혼을 청구할 것이고 잔금 오백 만원을 건네 받으면
되는 것이다.
"난 좀 더 봐야 겠어."
구영팔이 선우진 앞으로 와서 리모콘을 들었다.
"네가 찍어 놓고 뭐가 그렇게 궁굼하냐."
"모르는 소리하지마, 난 이 작품 때문에 팬티 한 장을 몽땅 버
렸다구....."
선우진은 그 말을 듣고 밖으로 나왔다. 김달구가 오려면 두 시
간쯤 남은 시간이었다. 창문 앞으로 갔다. 창유리를 파고드는 햇
볕을 받으며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냈다. 그리고 아침에 여관을
나오면서 적어 준 그린파크의 전화 번호를 눌렀다.

"두 시간 전에 나갔습니다."

여관 종업원이 제제의 외출을 말해 줬을 때 왠지 불안한 생각
이 들기 시작했다. 그녀는 저녁에 들어오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
으면서, 남은 잔금도 찾아가지 않았다고 했지만, 왠지 다시는 보
지 못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노크 소리와 함께 키 백 육십 정도에 올챙이배를 소
유한 사내가 허리 숙여 인사를 하고 들어왔다.


♥내사랑 제제♥ 제3부 그 여자의 침실 ③

◈건강한 남녀는 누구나 섹스를 한다. 그러나 건강한 남녀들
은 누구나 입 밖으로 섹스를 거론하지 않는다. 섹스 그것은 건
강의 상징이 아니고 본능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사내는 유난히 튀어나온 배를 쓰다듬으며 전화기 앞에 서 있는
선우진에게 가까이 왔다.
"우선 자리에 앉으시죠."
선우진은 사내가 찾아 온 용무를 대충 알 것 같았다. 보나마나
아내가 바람을 피웠다거나, 그게 아니면 잃어버린 애완견을 찾
아 달라는, 아니면 악성 채권을 회수해 달라는 그런 부탁을 하
러 왔을 것이다.
"네."
박명서는 선우진이 건네준 명함을 받아 들며 이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한국 범죄 연구소란 꽤 그럴듯한 상호를 봤을 때는 경
찰에서 은퇴한 남자가 대표로 있을 것이라고 짐작했었기 때문이
다. 그러나 앞에 서 있는 사내는 경찰 냄새는 근처에도 가 보지
못하고, 록 카페나 출입할 새파랗게 젊은 나이로 보였다.

"소장으로 있는 선우진이라고 합니다."

선우진은 박명서가 뭐라고 생각하고 있건 말건. 악성 채권이나,
애완견을 찾아 달라는 의뢰 건이라면 단호히 거절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박명서가 엉거주춤 한 자세로 응접 소파로 사내를 앉
기를 기다렸다가 명함을 건네주었다.

"제대로 찾아 왔군요. 전 박명서란 사람입니다. 조그만 금은방
을 하고 있지요."

박명서는 삼층까지 올라오느라 매우 숨이 찼다. 씩씩 거리던
숨을 고르면서 검정색 가죽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서 내 밀었다.
보옥당 대표, 박명서........
종로에서 보석상을 하고 있다면, 구멍가게 정도의 규모는 벗어
난, 제법 내실이 있는 보석상이란 생각이 들었다.

"날씨가 매우 춥죠.?"

선우진은 은행에 입금 확인하러 간 서영란이 올 시간이 됐을
거라고 생각하며 사내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햇볕을 보지 않
는 직업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살찐 연어 같은 얼굴에
입술을 여자처럼 얇았다. 매우 소심한 성격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 주는 증거였다. 손등은 갓난 아이처럼 통통하게 살이
쪄 있는 것을 봐서 부모의 유산을 물려 받았거나, 그 비슷한 이
유로 해서 고생을 하지 않고 현재까지 살고 있다는 것으로 짐작
할 수 있었다. 양복은 메이커로 보였고, 아랫배에 눌려 혁대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임산부 처럼 부풀어 오른 배를 보니 정력은
제로 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맞습니다. 전 추운 건 딱 질색인데 왜 이렇게 추운지 모르겠
습니다."
"하하하, 매우 건강 체질이신 것 같으신 데도 추위를 타시는
군요."

선우진은 사내의 말이 틀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비
행기를 태웠다.
"하긴, 좀처럼 추위는 안타는 채질이긴 한데, 이 사무실을 찾느
라 차를 조 아래 유료 주차장에 파킹시켜 놓고 헤매다 보니, 여
간 추워야 지요......."
박명서는 언 몸이 조금은 풀리는 것 같은 느낌 속에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밖에서 봤을 때 보다 꽤 잘 꾸며진 사무실이었다.
이 정도라면 일을 맡겨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며 선우진을 쳐
다보았다. 한 눈에 플레이보이 기질이 다분히 엿보이는 스타일
이었다. 그러나 주먹은 다부져 보였고, 러닝 셔츠를 입지 않은
앞가슴의 탄탄한 근육이 부러울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

"어머! 손님 이 오셨군요."

서영란이 강추위에 빨갛게 언 얼굴로 문을 쓱 열고 들어와서
박명서에게 활짝 웃어 보였다. 언제봐도 아름다운 얼굴 이었다.
직원만 아니더라면 백번 도 침대에 끌고 갔을 미모를 소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밑에 부하를 침대로 끌고 간 다는 것은 사업을
말아 먹기로 작정하지 않는 이상 득이 될 것이 없기 때문에 그
림의 떡으로만 보고 있는 여자 였다.

"뜨거운 차로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커피?"

선우진은 서영란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응접 탁자 밑에 있던
상담일지를 꺼내 놓고 박명서의 얼굴을 힐끗 쳐다보았다. 소심
해 보이는 성격으로 봐서 소장 실에서 조용하게 상담을 해야겠
다고 생각하며 서영란을 불렀다.
"전, 국산 차로 하겠습니다. 의사가 카페인 성분이 있는 음식물
은 피하라고 했거든요. 허허허."
"나도 차로 줘. 여기로 주지 말고 소장실로 같다 줘. 구부장 빨
리 나오라고 하고...."
"알겠어요. 소장님."
서영란은 경쾌하게 대답하고 소장실 앞으로 갔다.

구영팔은 밖에 손님이 온 것도 모르고 비디오에 푹 빠져 있었
다. 김달구의 아내는 생각했던 대로 삼십 대 여자 치고는 아름
다운 몸매를 소유하고 있었다. 그녀의 허리는 정부의 손길이 닿
을 때 마다 석쇠위에 있는 오징어 처럼 꿈틀 거렸다.
죽여 주는군.
구영팔은 김달구의 아내가 정부의 젖꼭지를 혀로 애무하다가
조금씩 밑으로 내려 가는 것을 보고 침을 꼴각 삼켰다. 포르노
영화를 보는 보는 이유가 대리 섹스 때문이라고 했던가, 어느틈
에 청바지 밖으로 불거져 나온 남성이 나 좀 살려 달라고 애원
을 하기 시작했다.
허허, 이 놈아. 참아라. 넌 저 여자를 감상할 자격도 없어.
구영팔은 화가 나서 어쩔 줄 모르는 남성을 부여 잡고, 막 정
부의 남성을 입안으로 집어 넣는 김달구 아내의 입을 뚫어지게
쳐다 보았다.

"잠깐!"

선우진은 서영란이 막 문을 열려고 할 때 번뜻 머리속을 스쳐
가는 것이 있어 고개를 획 돌리고 그녀를 불렀다.


♥내사랑 제제♥ 제3부 그 여자의 침실④

◈건강한 남 녀는 누구나 섹스를 한다. 그러나 건강한 남녀
들은 누구나 입밖으로 섹스를 거론하지 않는다. 섹스 그것은 건
강의 상징이 아니고 본능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선우진은 생각 없이 말했다가 문을 열어 재치는 서영란을 불렀
다. 지금쯤 구영팔이 한참 김달구 아내가 정부와 카 섹스 하는
장면을 찍은 비디오를 쳐다보고 있을 것이 생각나서 였다. 그러
나 때는 늦었다. 서영란이 대답 대신 꺄오! 하는 비명 소리가 들
려 나왔다.
"왜, 그래......잠깐 실례하겠습니다."
선우진은 일이 터졌다고 생각하고 얼른 소장 실로 뛰어 들어갔
다.

"순....저.......저질......."

서영란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텔레비전 화면을 손짓했다. 그
안에는 김달구의 아내가 그의 정부 남성을 열심히 애무하고 있
는 중이었다.
"노크를 했어야 될꺼 아냐?"
구영팔은 곤두 선 남성을 감추느라 발을 배배 꼬며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고 소리를 질렀다.

"야, 빨리 끄고 조용히 해. 그리고 미스 서 저건 일 때문에 찍
은 거라구."

선우진은 손을 뒤로 돌려 소장 실 문을 잠그는 한편 벌레 씹은
얼굴로 구영팔을 노려 보고 있는 서양란의 어깨를 다독 거려 주
었다.
"그래도 그렇죠. 대낮부터 저게 뭐예요?"
화면에서는 아직까지 김달구의 아내가 정부 남성을 목구멍 깊
숙이 까지 집어넣고 애무를 하고 있었다.
"왜, 미스 서는 저런 거 안해?"
구영팔은 느닷없이 나타난 서영란이 도끼눈을 뜨는 것을 보고
엉겁결에 변명한다는 것이 오히려 불을 질러 버린 결과가 되어
버렸다.

"어머머, 나.....나를....."

서영란은 선우진에게 밀려서 밖으로 나가려다 너무 기가 막힌
나머지 할 말을 잃어버리고 선우진을 쳐다보았다.
"난 미스서의 순결을 믿어. 저 자식 원래 입 따로 혀 따로 잖
어."
난처한 사람은 선우진이었다. 밖에 손님이 와 있는데 식구들끼
리 왈가불가 할 틈이 없었다. 서영란을 귀에다 대고 그 특유의
뜨거운 숨소리를 불어넣었다.

"어머! 정말이죠. 소장님."

서영란은 선우진이 귓전에 대고 속삭이는 그 한마디에 화가 봄
눈 녹듯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렇지 않아도 선우진을 볼
때마다 뜨거운 눈길을 보내던 그녀 였기 때문이다.
"그럼, 이따 만나서 이야기하자구."
"어......저......정말 이죠. 소장님?"
서영란이 뜻하지 않은 횡재에 몸 들 바 모르고 있을 때, 비디
오를 끈 구영팔은 두 눈을 멀뚱히 뜨고 웬일이냐 는 시선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선우진 저 놈이 마지막 남은 보루인 서영란까
지 침대로 끌고 가기 위한 모략을 꾸미고 있다는 생각에서 였
다.

"하하하. 들어오시죠. 사장님 잠깐 혼선이 있었습니다."
사무실 문이 열리며 세 명이 앞을 다투어 나오는게 보였다.
"아.....그래요."
박명서는 복권이 당첨된 얼굴로 나오는 서영란과, 벌레 씹은
얼굴로 나오는 구영팔, 아이들 싸움을 간신히 뜯어말린 후의 유
치원 선생 표정 같은 선우진을 번갈아 쳐다보며 소장 실 안으로
들어갔다.

"사모님이 문제를 일으키고 있으신 겁니까?"

선우진은 박명서가 돌아간 후에, 구영팔과 서영란에게 단단히
교육을 시켜야 갰다는 생각을 감춘체 한껏 웃어 보였다.
"네, 그.....그게 말입니다.:"
박명서는 담배를 끊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선우진의 앞에 있
는 담뱃갑을 끌어 당겼다. 마누라를 생각하면 도저히 담배를 피
우지 않고는 말이 나오지 않을 것 같아서 였다.
"불 여기 있습니다."
선우진은 박명서의 지금 속이 말이 아니겠군, 이라고 생각하며
담배 불을 붙여 주었다. 담배 불을 같다 되는 박명서의 손이 부
들부들 떨리고 있는 것을 보고 나서 였다.
"마누라가 단순히 바람만 피우고 있다면, 여기까지 찾아오지
않았을 지도 모릅니다."
박명서는 담배 연기를 길게 내 뿜고 나서 마침내 결심했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참, 우리 사무실은 어떻게 찾아 오셨습니까?"
선우진이 생각났다는 얼굴로 물었다.
"네, 우연히 친구로부터 유능한 사립 탐정이 있다는 것을 소개
받고 물어 물어 찾아 온 겁니다. 기억나실 지 모르겠습니다. 유
명찬 이라고 종로에서 유명한 설렁탕 집을 하는 친구가 제 친구
입니다. 아참, 저도 한가지 묻겠습니다. 그 친구도 선생님한테
일을 맡겼었습니까? 제가 알기로는 이 사무실을 소문에 들어 알
고 있는 것처럼은 아 보여서 묻고 있는 겁니다."
박명서가 두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하하하, 제 고객은 아닌 것 같습니다. 기억이 나지 않는 군
요."
이 사업을 할려면 고객의 비밀을 무엇 보다 존중해 주어야 한
다. 선우진은 꽃제비에게 걸렸다가, 꽃제비의 정체를 알아 달라
는 주문을 했던 유명찬 의 파랗게 질렸던 얼굴을 떠올리며 시치
미를 뗐다.
"하긴 그 친구는 교회 집사니까. 바람이나 피울 그런 위인은
못되지요. 그럼 제 이야기부터 하겠습니다. 제가 조그만 보석상
을 하고 있다는 말은 처음에 말씀 드린 것과 같습니다. 에......그
러니까. 말입니다. 그게 어떻게 된거냐면 말입니다."


♥내사랑 제제♥ 제3부 그 여자의 침실 ⑤

◈여자와 보석은 닦을수록 빛이 난다, 그 둘의 공통점은 다
같이 아름답다는 것이나, 닦을수록 닳는 다는 것이다.◈

박명서의 더듬거리면서 찾아온 용건을 말하기 시작했다. 요즘에
는 담배를 피우지 않고 있었으나, 예전에는 꽤 골초 였는 듯 줄
담배를 피우면서 였다.

박명서에게는 다섯 살이나 연하인 올해 스물 아홉의 아내가 있
었다. 슬하에는 초등 학교 일 학년에 다니는 딸이 있는 단출한
가정으로 지금까지는 이웃들의 부러움을 안고 살았다. 그러던
것이 딸이 초등 학교 입학 하고부터 부쩍 아내의 외출이 잦아졌
다.

"집에서 뭘해요. 괜히 잡생각 만 나고, 몸 만 분다구요. 그래서
영어 학원에 다니기로 했어요."

집에 전화를 할 때마다 외출중 임을 알리는 매세지를 받고 나
서 닦달을 했더니 아내의 변명이 그럴 듯 했다. 그때까지만 해
도 설마 아내가 밖에서 다른 놈팡이 품에 안겨 세월을 보내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오전 수업 만 받는 딸이 집에 들어오
기 전에는 착실히 귀가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이다. 아내가 무슨 맘을 먹고 그
랬는지 모르지만, 아니면 나름대로는 조심을 한다고 했놓고 아
차 실수를 했는지 모르지만, 은행 훼미리 카드를 이용해서 놈팡
이에게 양복을 사 주었다. 그것이 빌미가 되어 아내와 대판 싸
움을 했다. 아내는 그후로 근신을 하는 것 같다더니, 움츠린 개
구리가 멀리 띄는 꼴이 되어 버렸다. 그 발단은 일주일 전에 터
졌다.

그날 따라 아내가 가게에 나와서 가진 애교를 떨 데부터 왠지
기분이 떨떠름했다. 평소에 바쁜 일이 있을 때 대신 가게 좀 봐
달라는 부탁을 하면 가진 핑계를 대서 빠져나가는 아내였기 때
문이다.

"다이아몬드 감정 좀 해 주십쇼. 내 감정료는 두둑이 내리다."

삼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사내 였다. 꽤 고가인 듯한 양복을
입은 모습이나, 광이 나도록 닦여진 구두를 보니까, 그런 대로
잘 나가는 집안의 장남 정도로 보였다.
"호오! 이걸 어디서 구하셨습니까? 이거 이십 삼 캐럿 짜리 진
품입니다."
다이아몬드를 감정해 본 결과 진품이었다. 보나마나 밀수품이
겠지만 탐이 나서 슬쩍 구입처를 물었다.
"흠......가격은 얼마나 합니까?"
사내는 구입처를 언급하지 않은 체 대수롭지 않다는 얼굴로 물
었다.
"어디 봐요, 어머머 이게 진품이에요. 제 눈에는 아닌 것 같은
데요."
그날 따라 가게에 나온 마누라쟁이가 신문을 들척이고 있다가
옆으로 와서 호들갑을 떨었다.

"당신이 몰라서 그래. 이래봬도 내가 이 장사를 한지가 이십 년
이야. 이게 이래봬도 물방울 다이아몬드만큼은 안 되지만 대단
한 가치가 있는거라구."

아내가 보석에 대한 상식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
에 그때까지만 해도 아내가 자신의 말에 확증을 주기 위해 그러
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럼 값은 얼마나 합니까, 이왕이면 가격까지 정해 보죠, 값만
좋으면 팔 용의도 있으니까?"
사내가 넌지시 팔 의사가 있음을 나타냈다.
이게 왠 돼지꿈이란 말인가, 잘 만 하면 돈 몇 백 정도는 수월
하게 떨어질 것이란 생각을 하니 어깨춤이 저절로 났다.
"이런 물건은, 여기서 취급 못하고 반도 아케이드나 압구정 도
갤러리 백화점 같은 곳으로 가야 제 임자를 만나는 법이지만,
원하신다면 제가 알선을 해 드릴 수도 있습니다. 해해해."
"좋소. 그럼 물건을 맡겨 두고 갈 테니까, 언제 오면 좋겠습니
까?"
이게 웬 떡이란 말인가. 흥정은 자고로 쉬워야 하는 법이다. 어
려운 흥정일수록 뒤끝이 안 좋아서 장물이나, 세관 압류품이 시
중에서 나돌기 일쑤 였다. 사내에게 두 말 할 것도 없이 보관증
을 써 주고 일주일 후에 만나기로 했다.

박명서는 여기까지는 엉킨 실타래를 풀 듯 줄줄 토해 냈다. 그
러나 그 다음부터는 억장이 무너지는 듯 말을 잇지 못하고, 돼
지처럼 살찐 얼굴로 두꺼비처럼 눈만 끔벅거렸다.
"다이아몬드가 증발이라도 했다는 겁니까?"
선우진은 대충 짐작이 간다는 얼굴로 천천히 물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제가 그 다이아몬드를 감정했을 때는 분
명히 진품이었습니다. 헌데 반도 아케이드에 있는 친구로부터
살 작자가 나왔다는 말을 듣고 물건을 들고 약속 장소인 소공동
커피숍으로 갔지 않았습니까. 근데 귀신이 곡할 노릇이지......"
박명서는 생각만 해도 울화통이 터진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을
끊고 담배 불을 붙였다.

"가서 보니 유리 조각으로 변해 버렸다는 말이군요. 심증이 가
는 사람은 아내밖에 없고, 사내는 보관증과 그 날 있었던 상황
을 되풀이하면서 변상을 요구했고, 뭐 문제가 이렇게 꼬여 나가
는 거 아니겠습니까?"

선우진은 박명서의 다음 말을 기다릴 필요도 없이, 척척 말해
버리고 나서 담배꽁초를 눌러 껐다.
"아이고? 역시 유명하신 분이라 척하면 삼척이군요. 이날 이때
까지 족집게 점쟁이는 있다는 말을 들어 봤어도, 선생님처럼 똑
소리 나는 탐정 님은 처음 봤습니다. 제 말이 바로 그 말입니다.
마누라쟁이가 다이아몬드를 유리 조각하고 바꿔치기를 하지 않
는 이상 제 눈이 잠시 동태눈이 됐던지 둘 중에 하나 일 겁니
다. 하지만 제 눈은 아직까지 안경이 필요 없을 정도로 아주 좋
은 편입니다."
박명서는 구세주를 만났다는 표정으로 감격에 떨며 어쩔 줄 몰
라 했다.
"그럼 그런 다이아몬드를 어디 가면 구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똑 같은 거야 있을 수 없겠지만, 그 비슷한 크기라도 말입니다."
선우진은 대충 문제의 핵심을 집어 나간후 에야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외로 문제는 간단하게 풀릴 확률이 클 것 같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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