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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천년 - 5장

第 五 章 화망단정의 奇緣


한차례 기세좋게 쏟아지던 폭우,
언제였냐는 듯 거짓말처럼 비는 멎어 있었다.
그리고,
구름사이로 환한 햇살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야호!」
청명하게 비치는 햇살 사이로 하나의 인영이 낭랑한 외침과 함께 솟구쳐 올랐다.
이어,
그 인영은 곤륜의 험봉들을 타고 질풍같이 질주해 나가기 시작했다.
사자의 갈기같이 휘날리는 탐스러운 머릿결,
건강하고 탄력있는 구리빛 피부,
이검한(李劍恨) ──── !
보는 이의 가슴에 절로 따스한 사랑의 감정을 일게 만드는 소년,
바로 그였다.
그의 단아한 얼굴에는 온통 구슬같은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그는 이미 고독애 아래의 장춘곡(長春谷)에서 백여 리 이상 떨어진 곳까지 내 달리고 있었다.
적막하기 이를 데 없는 곤륜,
인적조차 찾아볼 수 없는 그곳에서 이검한의 친구가 되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비록 냉약빙과 고독마야가 그를 극진히 사랑해 주기는 하지만 이검한의 외로움을 완전히 없애주지는 못했다.
겉보기에는 그의 성격은 무척 쾌활하고 활달했다.
하나,
정작 어린 그의 마음은 늘 짙은 외로움과 고독으로 단련되어 있었다.
그런 면에서 그는 고독마야를 아주 많이 닮았다고 할 수 있었다.
친구 하나 없는 외로운 이검한,
그의 유일한 취미는 달리는 것이었다.
바람을 타고 질풍같이 달리다보면 어느덧 가슴 저미던 외로움도 함께 바람에 실려 날아가 버리곤 하기 때문이었다.
얼마나 달렸을까?
문득 이검한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이제 슬슬 돌아가야겠군!」
곤륜은 실로 광대하기 이를 데 없었다.
지금 이검한이 달리고 있는 곳은 그가 생전 처음 와보는 곳이었다.
이검한은 자신이 너무 멀리 왔음을 깨닫고 다시 고독애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끼야악!
돌연 어디선가 한소리 사나운 괴성이 들려왔다.
이검한은 그 소리에 흠칫했다.
(새의 울음소린데........!)
방금 들린 날카로운 괴성,
그것은 어떤 거조(巨鳥)가 지른 것임이 분명했다.
다음 순간,
휘익!
이검한은 본능적으로 새의 울음소리가 들린 곳으로 방향을 틀어 날아갔다.


하나의 황량한 석곡(石谷) ──── !
지금 그 석곡의 끝에서 두 마리의 짐승이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고 있었다.
거대한 독수리,
그리고,
끔찍한 모습의 구렁이였다.
독수리,
그놈의 전신은 온통 시커먼 깃털로 뒤덮여 있었다.
날개를 활짝 편 길이가 오 장에 이를 정도로 거대한 독수리.

──── 철익신응(鐵翼神鷹)!

곤륜산역을 지배하는 모든 날개 달린 짐승의 제왕(帝王)!
철익신응의 강인한 발톱은 바위를 으깨고 코끼리를 낚아챌 수 있을 정도였다.
하나,
그 곤륜의 제왕 철익신응이건만 오늘은 실로 대단한 강적과 조우한 듯했다.
보라!
카아........!
또아리를 튼 채 철익신응가 맞서 싸우고 있는 괴물,
그것은 차라리 이무기라 해야 옳을 거대한 괴망이었다.
몸통이 한아름이 넘고 그 길이가 무려 십여 장에 이르는 거대한 구렁이,
그놈의 몸통에는 체구에 비해 작기는 하지만 여섯 개의 발까지 달려 있었다.
어느 정도 수련만 더 쌓으면 용이 되어 승천할 수두 있는 영물,
그놈의 동체는 온통 번들번들 빛이 나는 붉은 비늘로 덮여 있었다.

──── 적린화염신망!
전설적인 괴물,
지심(地心)의 화기(火氣)를 먹고 산다는 그 놈은 몸 속에 태양같은 열독을 지니고 있었다.
그놈이 내뿜는 열독은 너무 지독하여 무쇠라도 녹일 지경이었다.
또한,
적린화염신망의 껍질은 단단하기 이를 데 없어 도검(刀劍)이 불침한다.
해서,
달리 그놈은 불사화망이라 불리기도 한다.
카아.........!
적린화염신망은 사나운 괴성을 내지르며 허고에 뜬 철익신응을 향해 커다란 입을 쩍 벌렸다.
화 ──── 악!
그때마다 불그스럼한 노을빛 독기가 허공으로 충천했다.
바로 그놈이 지닌 강렬한 열독이었다.
그것에 스치면 아무리 곤륜의 제왕이라 불리는 철익신응이라 해도 단번에 숯덩이로 변하고 말 것이다.
카 ──── 아!
도리없이 철익신응은 급급히 날개짓을 하며 적린화염신망의 독기를 피해냈다.
철익신응의 깃털은 이미 상당 분량이 열독에 그슬러져 있었다.
곤륜의 제왕으로서 실로 낭패한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하나,
그 지경이 되고도 철익신응은 호시탐탐 적린화염신망을 노리며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한편 ──── !
계곡 옆의 바위 위,
이검한,
그가 눈을 휘둥그렇게 뜬 채 장내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저런 괴물들을 실제로 보게 되다니.......!)
그는 아연함을 금치못하며 두 눈 가득 경악의 빛을 띠었다.
그는 냉약빙이 구해다준 많은 고서들 둥 적린화염신망에 대한 내용을 읽은 적이 있었다.
또한,
곤륜의 뭇 짐승들을 지배하는 철익신응도 간간이 멀리 날아가는 모습을 본적이있었다.
한데,
지금 그 두 영물이 바로 이검한의 눈 아래서 치열한 쟁투를 벌이고 있지 않은가?
장내를 일별한 이검한,
그는 철익신응이 불리한 싸움을 하면서도 이 계곡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석곡의 한쪽,
깎아지른 듯한 가파른 절벽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절벽 가운데,
하나의 거대한 둥지가 만들어져 있었다.
그 둥지 안,
보라.
솜털에 싸인 어린 신응 한 마리가 앉아 두 눈을 동그랗게 치뜬 채 장내를 주시하고 있지 않은가?
어리다고는 하지만 체격이 작은 송아지만한 새끼 독수리.
바로 철익신응의 새끼였다.
적린화염신망은 바로 그 철익신응의 새끼를 노리고 둥지로 접근해 들어왔다.
그 때문에,
어미 철익신응은 필사적으로 적린화염신망을 저지했다.
하나,
싸움은 적린화염신망 쪽이 유리했다.
그놈은 열독으로 철익신응을 위협하며 슬금슬금 둥지가 있는 석벽을 향해 접근 해들고 있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이검한.
그는 분노했다.
(나쁜 놈이로군! 남의 자식을 해치려 들다니.......!)
비록 약육강식의 짐승의 세계라 해도 철익신응의 어린 새끼를 노리는 적린화염신망의 행위에 그는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와주자!)
이검한은 내심 결심했다.
하나,
상대는 적린화염신망이었다.
그놈은 전신이 도검불침의 괴물이 아닌가?
오죽하면 그놈에게 불사화망이라는 이름이 붙었겠는가?
이검한은 장내를 주시하며 염두를 굴렸다.
(일단 주의를 분산시키면 철익신응이 그 틈에 공격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근 지혜로운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그는 주위에 흩어져 있는 몇 개의 돌을 집어들었다.
다음 순간,
쐐액!
이검한의 그림자가 흐릿하게 변하는가 싶더니 그대로 장내로 날아들었다.
「이거나 먹어라!」
그는 질풍같이 적린화염신망의 옆을 스치며 그놈의 머리통을 노리고 돌을 던졌다.
텅 ──── !
크 ──── 아!
한소리 쇳소리와 함께 이검한이 던진 돌은 적린화염신망의 머리통을 격중시켰다.
그것은 적린화염신망에게 큰 타격은 주지 못했다.
하나,
그 놈의 주의를 끌기는 충분했다.
크 ──── 아........!
화악!
분노한 적린화염신망은 스쳐 지나가는 이검한의 뒤를 향해 무서운 열독을 토해냈다.
하나,
그것에 휩쓸릴 이검한이 아니었다.
「핫하! 여기다!」
텅!
이검한은 유령같이 움직이며 재차 돌로 적린화염신망의 머리통을 맞추었다.
두 번 연달아 이검한에게 우롱당한 적린화염신망.
크아아.......
그놈은 사나운 괴성을 토하며 발광했다.
그와 함께,
마침내 그놈은 공격 대상을 철익신응에게서 이검한으로 완전히 바꾸었다.
스르릉.......
화 ──── 악!
그놈은 거구를 끌고 이검한을 뒤쫓으며 무서운 열독을 토해냈다.
하나,
그것이 치명적인 실수였다.
잠시 영문을 몰라하던 철익신응,
그놈은 이내 이검한이 자신을 도와주려는 것을 깨달았다.
다음 순간,
쐐 ──── 액!
적린화염신망이 이검한을 쫓아가느라 주의가 분산된 사이,
철익신응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벼락처럼 적린화염신망을 향해 내리꽂혔다.
적린화염신망이 움찔했을 때는 늦은 후였다.
콰드득!
철익신응의 강철같은 발톱은 그대로 적린화염신망의 머리통을 움켜쥐었다.
크아아아.........!
철익신응의 발톱에 두 눈이 으깨진 적린화염신망은 처절한 비명을 내지르며 거구를 버둥거렸다.
그러나,
저항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그때,
카아!
적린화염신망의 머리통을 움켜쥔 철익신응은 사납게 울부짖으며 그대로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머리통을 잡힌 이상 적린화염신망의 열독도 더 이상 철익신응을 위협하지는 못했다.
순식간에,
철익신응은 적린화염신망의 거대한 몸뚱이를 움켜쥐고 수백장 상공으로 날아 올랐다.
그리고,
까마득한 허공으로 솟구쳐 오른 철익신응,
그놈은 그대로 적린화염신망의 머리통을 움켜쥐고 있던 발톱을 풀어 버리는 것이 아닌가?
꽝 ──── !
거대한 굉음과 함께 적린화염신망의 거구는 마치 바위가 떨어지듯 그대로 계곡의 바닥으로 팽개쳐졌다.
그 충격은 가히 엄청났다.
지축이 뒤흔들리고 바위로 이루어진 계곡의 바닥에 삽시에 커다란 웅덩이가 생겨났다.
끄르륵......
수백 장 높이에서 떨어진 적린화염신망,
그놈은 벌린 입으로 선혈을 꾸역꾸역 토하며 죽어갔다.
제아무리 그놈의 몸뚱이가 도검불침이라 해도 그 까마득한 허공에서 떨어진 충격은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겉은 멀쩡했으나 적린화염신망의 내장과 척추는 무참하게 박살나 버렸다.
이윽고,
「휴....... 정말 끔찍한 놈이로군!」
이검한은 숨이 끊어진 적린화염신망의 시체 옆으로 다가서며 혀를 내둘렀다.
죽어 자빠진 적린화염신망의 몸뚱이는 무려 십여 장에 달했다.
그것은 마치 작은 둔덕이 하나 새로 생겨난 듯했다.
한데,
(저것은.......!)
죽은 적린화염신망의 시체를 살피던 이검한,
그는 문득 두 눈을 번뜩 빛냈다.
내장과 피를 토하고 죽은 적린화염신망,
그놈의 아가리 부분,
핏속에 무엇인가 섞여 불그스름한 화광(火光)을 토하고 있지 않은가?
자세히 보니 그것은 메추리 알만한 구슬이었다.
전체가 타는 듯 붉은 구슬,
그것에서는 은은한 주황빛 화기가 번져나오고 있었다.
문득,
「내단(內丹)이다!」
이검한은 나직한 환호성을 발했다.

내단(內丹)!
그렇다.
그 붉은 구슬은 다름아닌 적린화염신망의 내단이었다.
적린화염신망은 천 년의 세월 동안 지저(地底)에 흐르는 용암의 기운을 흡수한다.
그 용암의 화기가 응결된 것이 바로 내단이었다.

──── 화망단정!

열독(熱毒)의 정화(精華),
사내가 그것을 복용하면 십처백첩(十妻百妾)을 거느릴 수 있는 절륜무쌍의 양정을 지닐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만일 무공을 연마한 자가 복용하면 극강의 화염강살을 얻을 수 있다.


이검한,
그는 흥분된 표정으로 적린화염신망의 시체에서 화망단정을 집어들었다.
그때,
구우........
화르르!
철익신응이 허공에서 선풍같이 몸을 휘돌려 서서히 이검한의 옆으로 날아내렸다.
실로 엄청난 거구,
그놈은 앉은 키만 해도 무려 이 장 이상이었다.
철익신응이 날아내리자 이검한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미안! 이것은 네것이었지!」
그는 고소를 지으며 들고있던 화망단정을 철익신응에게 내밀었다.
어쨌던,
적린화염신망을 죽인 것은 철익신응이니 화망단정도 철익신응의 것인 것이다.
하나,
구우.......
철익신응은 낮게 울며 고개를 살래살래 저어 보였다.
그 모습에 이검한은 흠칫하며 물었다.
「이것을 내게 양보하겠다는 말이냐?」
구우.......
철익신응은 이번에는 고개를 끄덕이며 낮은 울음을 발했다.
그 모습에 이검한은 표정이 활짝 밝아졌다.
「고맙다, 신응!」
그는 기쁨을 금치못했다
(잘 되었다. 근래 고독 할아버지의 건강이 안좋아지신 듯했는데...... 이 화망단정을 드시면 다시 정정해지실 것이다!)
그는 화망단정을 고독마야에게 갖다줄 작정을 한것이었다.
사실,
고독마야는 중환자였다.
십이 년 전 ──── !
고독마야는 독천존(毒天尊) 서래음이 살포한 무형지독에 중독당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무형지독에 중독당하면 반나절 내 전신이 녹아 죽고 만다.
하나,
고독마야는 달랐다.
그는 내공이 신화경에 이른 덕분에 무형지독에 중독되고도 무사할 수 있었다.
그는 무형지독의 독기를 내공의 힘으로 한곳의 혈도로 몰아넣은 상태였다.
하나,
무형지독은 워낙 극랄한 극독인지라 그 독기가 조금씩 내장을 썩혀 들어가고 있었다.
그 때문에,
고독마야는 매일매일 내장이 녹는 듯한 지독한 고통에 시달려야만 했다.
하나,
그는 한 번도 자신의 고통을 내색한 적이 없었다.
그것은 본래 고독한 고독마야의 성격때문이었다.
이검한은 그런 고독마야를 위해 화망단정을 갖다줄 작정이었다.
한데,
이검한이 기쁨에 들떠 있을 때,
구우......
철익신응이 갑자기 낮게 울며 이검한을 향해 등을 보이며 주저앉았다.
이검한은 그 모습에 흠칫했다.
「나를 태워주겠다는 말이냐?」
그는 의아한 표정으로 철익신응에게 물었다.
그러자,
구우.......
철익신응은 낮게 울부짖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아닌가?
「하하! 좋다! 나도 한 번쯤 곤륜의 산역을 허공에서 관람했으면 했으니까!」
이검한은 흔쾌히 웃으며 말했다.
이어,
그는 훌쩍 철익신응의 등 위로 올라탔다.
「기왕이면 해가 뜨는 쪽으로 가다오! 그곳이 내집이거든!」
그는 고독애가 있는 쪽을 가리키며 철익신응의 등위에 걸터앉았다.
다음 순간,
구워 ──── !
철익신응은 웅혼한 울음을 토하며 날개를 퍼뜩였다.
이어,
콰아아......!
그놈은 이검한을 등 위에 태운 채 선풍같이 휘돌며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그러자,
「우와! 앗!」
이검한의 입에서 절로 환성이 터져나왔다.
순식간에 곤륜의 웅장한 산봉들이 이검한의 발 아래로 멀어졌다.
「하하, 정말 장관이다!」
이검한은 발 아래로 휙휙 지나가는 산역을 내려다보며 흥분된 음성으로 외쳤다.
그러다,
그는 흠칫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 이봐! 방향이 틀리잖아!」
그는 철익신응을 향해 급히 외쳤다.
그렇다.
지금 철익신응은 고독애가 있는 동쪽이 아니라 북서쪽으로 날아가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이검한이 다급히 소리쳤으나 철익신응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북서쪽을 향해 질풍같이 날아갔다.
이검한은 당황을 금치 못했다.
「안돼! 저녁 때까지 돌아가지 않으면 이모님한테 혼난단 말이야!」
그는 철익신응의 등을 두드리며 외쳤다.
하나,
철익신응은 방향을 틀기는커녕 점점 더 빨리 북쪽으로 날아갔다.
이검한은 낭패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에이! 나도 모르겠다!」
그는 자포자기하며 뒤로 벌렁 드러누웠다.
이미 엎질러진 물인 것이다.
철익신응의 등판은 몹시 넓어 마치 푹신한 침상과도 같았다.
(쩝! 이모님이 꽤나 걱정하시겠군!)
이검한은 철익신응의 넓은 등위에 드러누운 채 지나가는 흰 구름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나 그것도 잠시,
그는 더할 수 없이 안락한 기분에 싸이며 자신도 모르게 깜빡 잠이 들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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