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언덕 (19)
소현은 꽤나 긴장을 하고 있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도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니 머리 속은 온통 딴 생각으로 가득한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걸 탓할 마음은 전혀 없었다.
다만 아빠를 만나는 일과 내일 밤 중 어느 게 더 그녀의 정신을 쏙 빼놓고 있는지가 조금 궁금할 뿐이었다.
언뜻 보면 단 한번뿐인 첫경험이 당연하게 더 큰 일 같지만, 그녀의 입장을 고려할 때 그게 그리 간단하지는 않았다.
단순히 사랑하는 사람의 부모가 아니라 그녀가 바라는 대로만 된다면 장래 시아버지가 될 분이었다.
거기다가 자신의 아빠가 저지르고 있는 만행(?)이 있으니 더더욱 심난할 수 밖에 없었다.
이미 재열이 편하게 생각하라고 했다지만 사람마음이란 게 뜻대로 되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이런 기회를 만든 게 아니던가!
엘리베이터를 내리며 그녀의 손을 다시 한번 꼭 잡아주었다.
“많이 떨려?”
“으, 응...약간...괜찮아...”
재열은 부드럽게 미소를 짓고서 안내데스크로 향했다.
“안녕~ 오랜만이에요~ 누나는 더 예뻐졌는데요? 요즘 연애해요? 헤헤헤~”
“어머~ 어서 와~ 반가워~ 호호호~”
첫만남이 인상 깊었는지 아니면 음료수 덕분인지는 몰라도 무척이나 반가워했다.
아마 소현이 아니었다면 덥석 손부터 잡을 기세였다.
“본부장님을 뵈러 온 거니?”
“네~ 아빠한테 연락 좀 해주실래요?”
“응~ 잠깐만 기다려...”
전에는 그럴 여유가 없었지만 찬찬히 보니 확실히 입구에서 손님을 맞을만한 뛰어난 미모였다.
통화를 하고 있는 누나의 몸을 자신도 모르게 훑어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손아귀를 꽉 쥐어오는 힘에 정신이 들어 소현에게 어설픈 웃음을 지었다.
표독스러울 정도는 아니지만 제법 샐쭉거리며 ‘나 삐쳤어~’ 라는 표시를 해 보이는 그녀가 아주 귀여웠다.
“한 5분만 기다리라고 하시네...그런데...여자친구?”
이야기를 전해주며 살포시 미소를 짓는 그녀의 눈에 호기심과 감탄의 기색이 서려있었다.
사실 소현이야말로 같은 여자라도 무심결에 탄성을 토해낼 만큼이나 예뻤다.
막상 그 본인은 아직도 스스로에 대해서 잘 자각하고 있지 못하는 것 같지만 말이다.
재열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하~ 맞아요...아빠한테 며느릿감을 인사시키려고요. 우리 색시 어때요? 정말 예쁘죠? 그렇죠? 누나~”
“재, 재열아~!”
“어머, 어머~? 호호호호~”
방금 전까지 토라져있던 소현은 그런 건 까맣게 잊어버리고 얼굴이 홍시처럼 새빨개져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대답에 두 눈이 동그래졌던 그 누나는 크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진짜로 예뻐~! 앞으로 네 색시를 지키려면 하루 종일 옆에 붙어있어야겠는걸? 호호~”
“걱정 마세요...울 색시는 저만 사랑하니깐요..맞지? 소현아~~ 히히히~”
재열이 뻔뻔스럽게 대답하며 어깨를 감싸 안자 소현은 땅 속으로라도 숨고 싶다는 듯이 고개를 푹 수그렸다.
목덜미까지 발개진 그녀, 하지만 부끄러움으로 숨막혀 죽을 듯하면서도 달콤한 기쁨에 잘게 떨고 있는 걸 눈치채지 못할 그가 아니었다.
이로써 조금 전에 깎아먹었던 점수는 만회하고도 남았다.
물론 약간 과장되게 행동하고 있긴 했지만 그 또한 진심이었기에 아주 떳떳했다.
“에효~ 내가 졌어..항복이야, 항복...외로운 솔로 가슴에다 비수는 그만 박고 가줄래?”
처량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는 누나의 장난에 재열은 빙긋이 웃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헤헤헤~ 고마워요, 누나~”
“호호호~ 그래...이렇게 보고 있으니까 나도 기분이 좋은걸? 너희 둘 정말로 잘 어울려...”
“..고맙..습니다...언니...”
“킥킥킥~”
“호호호~”
내내 고개만 숙이고 침묵하던 소현이 돌아서기 직전 수줍게 인사를 하자 나머지 두 사람은 웃고 말았다.
그녀는 무의식 중에 말했겠지만 그 한마디에서 속내가 완전히 드러나고 말았던 것이다.
‘수고하세요’도 아니고 ‘고맙습니다’이었으니 말이다.
또다시 빨개지기 시작하는 그녀의 손을 잡고 상담실로 향했다.
입구에 서서 둘러보는 동안 시선이 확 쏠리며 한 순간 실내가 조용해졌다.
“으, 음...저기 빈자리가 있네? 가자...”
“응...”
두 사람이 발걸음을 옮기자 얼어붙었던 실내공기가 녹으면서 술렁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재열은 또다시 한번 소현의 미모를 실감하고 있었다.
자신이야 이미 이런 시선들에서 뿌듯하고도 야릇한 흥분을 느끼고 은근히 즐기는 수준이었지만, 소현이야 어디 그럴 수가 있겠는가? 그저 부담스럽고 초조해질 뿐이었다.
때문에 일부러 제일 구석자리를 택했다.
의자에 앉고 나서 잠시 후에 그녀가 살며시 물어왔다.
“..아까 그 언니랑 굉장히 친한 것 같네?”
재열은 웃음이 흘러나오려는 걸 참고서 설명을 해주었다.
처음 아빠를 만나러 왔다가 헛걸음을 하고 돌아서는 자신이 안쓰러웠던지 다음 번에 굉장히 반갑고도 친절하게 맞아주었다는 것과 그런 고마움에 음료수를 사다 주었더니 이렇게 스스럼없이 대해준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제서야 얼굴이 밝아지며 안도를 하는듯한 소현의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그 자신이 질투라던가 집착 같은 걸 별로 느끼지 않는다고 해서, 그녀의 그런 감정을 이상하다거나 귀찮게 생각하는 건 아니었다.
그저 각자의 성격이라고 여길 뿐이었다.
그리고 저 정도의 반응은 사람을 피곤하게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귀엽게 느껴졌다.
“후후후~ 아까 내가 누나를 쳐다봐서 화가 났지?”
“아, 아니..그게 아니라...”
“괜찮아...소현아...”
정곡을 찔려 허둥거리는 그녀의 손을 꼭 잡으면서 부드럽게 말했다.
“뭐 사실인데 어때? 유니폼을 입은 누나의 모습이 꽤 예뻤거든?”
“너~?”
“하지만...”
솔직하게 털어놓는 말에 발끈하는 그녀의 모습이 재미있었다.
재열은 재빨리 뒷말을 이었다.
“..네가 저걸 입으면 더 예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
“..으, 응...고마워...”
기세가 팍 죽으면서 배시시 웃는 그녀, 역시나 착하고 귀엽다.
그래서인지 손을 조금 더 꽉 잡으면서 짓궂게 소곤거렸다.
“..그래도 몇 군데는 아직 조금 딸리는 거 같거든? 그러니까 앞으로 부지런히 키워..알았지? 특히...”
“모, 몰라~!!”
“후후후~ 나도 많이 도와줄게...자주 만져주면...아얏~”
젖가슴과 엉덩이를 눈짓하면서 엉큼스럽게 웃자 소현이 손등을 꼬집어왔다.
오늘 그녀는 짧은 시간 안에 벌써 몇 번이나 빨갛게 달아오르는지를 모르겠다.
왠지 횡단보도의 빨간색 신호등을 보는 것만 같아 자꾸 웃음이 나왔다.
“흠, 흠~”
“후와~ 뜨겁다, 뜨거워~ 여름도 아닌데 실내가 왜 이리 더울까?”
“어엇~!”
“어맛~!
노닥거리느라 너무 정신을 빼놓고 있었던 모양이다.
갑자기 들려온 소리에 두 사람은 화들짝 놀라 떨어지면서 벌떡 일어났다.
그때서야 약간 민망한 표정의 아빠와 그 뒤쪽에 서있는 두 여자의 반짝거리는 눈빛이 보였다.
“아, 아빠...혜선 누나...”
조금 전 놀리듯이 말을 던진 건 바로 혜선 누나였다.
당연히 어색한 헛기침을 한 건 아빠였고.
그리고 조용히 서있는 또 한 명, 윤지 누나에게 아는 척을 하려는 순간 그녀가 스르르 다가오더니 재열의 팔짱을 끼고서 어깨에다 머리를 기대왔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동작에 어찌할 새도 없이 멍하니 당하고 말았다.
“흑흑~ 자기 너무해..우리 애는 어쩌라고~ 흑~”
그녀가 자신의 아랫배를 쓰다듬으며 내뱉는 청천벽력 같은 흐느낌에 재열은 뒤늦게 정신이 번쩍 들면서 기겁을 했다.
“으, 으악~ 누, 누나~!!! 지,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그는 후다닥 그녀를 밀쳐내고 떨어지면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소현의 눈빛은 서슬 퍼런 칼날이 되어 온몸을 갈갈이 난도질할 것처럼 매서웠다.
그리고 동시에 실내의 따가운 시선들이 한 몸에 느껴졌다.
이번에는 소현이 아니라 재열이 불러모은 것들이었다.
“풋~”
“킥~”
“크크큭~”
동시에 터져 나오는 소리들, 소현마저도 새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서 피식거렸다.
재열은 얼굴이 벌개져서는 머리를 긁적거렸다.
웬만해선 겉으로 감정의 동요를 거의 드러내지 않는 그인데도 꽤나 크게 당한 셈이었다.
조금 전의 처연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혼자서만 아주 차분한 얼굴로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는 윤지 누나에 등골로 식은 땀이 ‘쫙~’ 흘렀다.
역시나 제일로 무서운 사람이었다.
다른 두 누나에 비해 조용조용하고도 여성스러워 별로 튀지는 않지만, 방심하는 순간에 한번씩 좌중을 싸늘하게 만드는 카리스마가 있었다.
그래서인지 왈가닥인 두 누나도 은연중에 눈치를 보는 것 같았고, 아빠마저도 왠지 윤지 누나를 약간은 두려워하는 듯했었다.
그리고 지금 이순간 사람들의 그런 반응이 뼈저리게 공감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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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은 두 누나 사이에 끼어 앉은 채 쏟아지는 질문공세에 쩔쩔맸다.
그 가련한 모습에 몇 번이나 구출시도를 해봤지만, 섬광을 발하는 듯한 두 여자의 살기 어린 눈빛에 그만 포기하고 말았다.
그녀들의 우먼파워에 기가 죽은 두 남자는 테이블 구석탱이에서 소곤거리며 부자의 정을 나누고 있었다.
“예쁘지? 아빠....”
“음...인정하기는 싫지만...네 엄마보다 쬐금 더 예쁜 것 같구나...”
“큭큭...알았어...엄마한테 그대로 전해줄게...”
“요 녀석이? 그래, 뭘 원해? 협상하자...”
아빠도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웅~ 그건 나중에 보고 이야기할게...”
“좋아...근데...너 재주도 좋다? 물론 우리 아들이 잘난 건 알지만...정말로 미인이구나...”
아빠는 소현을 흘깃 쳐다보더니 진심으로 감탄했다.
“히히~ 예쁘기만 한가? 무지 착한데다 공부도 잘해...그리고 내 말은 무조건 믿을 만큼 날 좋아하고...”
“하하하~ 아주 신이 났구나~ 그래..정말로 참한 것 같구나...
우리 아들 파이팅~ 나도 저런 며느리를 꼭 얻어서 친구 놈들 기나 한번 팍팍 죽여보자...”
“오케이~ 나만 믿어, 아빠~ 소원대로 해줄게...”
“후후후~ 내 아들이지만 넌 정말로 난 녀석이다...”
“헤헤헤~”
몇 마디 나눠보지는 않았지만 아빠도 소현의 품성이 느껴진 모양이었다.
재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손길에 다정함이 가득했다.
“근데..누나들은 어떻게 알고 쳐들어온 거야?”
“요 녀석아, 네가 전화를 해서 여자친구를 데리고 가니 시간을 비워놓으라고 했다며?”
“그거야...퇴근하고 저녁때 보자는 거였지...”
“하하하~ 네가 아직 잘 몰라서 그래...원래 남의 연애에 무지 관심이 많은 게 여자들이야..”
이런 경우를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재열의 불찰이었다.
그저 아빠만 잠시 먼저 보고 집으로 가있다가 저녁에 모두 만날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뭐, 비록 아까는 꽤나 당혹스러웠지만 이런 것도 그다지 나쁘지는 않았다.
저렇게 미리 친해놓으면 나중에 어색할 일이 줄어드니까 말이다.
“그런데..영아 누나는 안 보이네?”
“으, 응~ 영아 씨는 오늘 쉬는 날이야..나중에 보기로 했어...”
“그랬구나...아빠...그러면 우리는 집에 가있을게...끝나고 전화 줘...”
“그래, 그래라...먹고 싶은 게 있으면 냉장고에 붙어있는 걸 보고 시켜먹어...돈은 나중에 아빠가 준다고 하면 돼...”
“헤헤~ 알았어...”
재열은 수다의 바다에서 익사하기 직전인 소현을 겨우 구해낼 수가 있었다.
공경하는 진심을 담아 다소곳하게 인사하는 그녀를 너무나 마음에 들어 하는 아빠의 시선을 뒤로 하고 상담실을 나섰다.
그리고 안내데스크에 다시 들렀을 때 이번에는 소현도 제법 친숙하게 말을 붙였다.
상담실에서 두 마녀(?)에게 시달리고 나더니 아마 그 누나가 천사로 보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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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아파트로 오는 동안 세 누나들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미리 이야기를 하면 괜히 이상한 쪽으로 신경을 쓸까 싶어, 그냥 와서 만나보면 되겠지 했다가 아까와 같은 봉변(?)을 당해버렸다.
조금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소현은 누나들이 아주 마음에 든다고 그랬다.
굉장히 재미있는데다가 솔직한 사람들 같아서 좋다는 것이었다.
아빠도 자상하고 따스한 분 같다며 재열과 많이 닮아서 처음부터 너무나 친근했다는 말과 함께 얼굴을 살짝 붉힐 때는 와락 껴안아버릴 뻔했다.
집으로 들어서면 약간의 갈증(?)부터 먼저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에 아랫도리가 뻣뻣해졌다.
“좀 작지? 아빠 혼자서 지내는 곳이라 그래...답답해도 하루만 참아...”
“아니야..아담하고 좋기만 한데? 와~ 아버님이 굉장히 깔끔하신가 봐? 너도 아버님을 닮았나 보네?”
소현이 ‘아버님’ 어쩌고 그러는 말이 조금 우스우면서도 한편으론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재열 스스로 은연중에 그녀를 자신의 짝으로 인정해나가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후후~ 정말 깨끗하지? 나도 처음엔 많이 놀랐어..아빠한테 이런 면이 있으리라곤...”
재열은 그렇게 은유적으로 말하며 웃었다.
당연히 그 말에 숨은 본래의 진짜 의미를 그녀가 알아챌 리는 없었다.
오히려 전보다 더 깨끗해진 것도 같았다.
그건 아빠가 나름대로의 미안한 마음을 표현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여기저기를 둘러보는 그녀의 허리를 슬며시 껴안았다.
“왜...?”
“후후후~ 일단 요 예쁜 입술부터 한번 맛보고 싶어서...”
얼굴을 붉히면서도 눈을 사르르 감는 그녀에게 입술을 가져갔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욕실 문이 벌컥 열렸다.
“룰루~ 아~ 개운...어머?”
젖은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털면서 나오는 한 여자, 바로 영아 누나였다.
“누나....”
“일찍 왔네? 저녁 때나 올 줄 알았더니...그런데....흑흑....”
처음에 잠깐 놀라는 것 같더니 곧바로 자기 집처럼 아주 태연하게 행동하는 영아 누나가, 키스를 하려는 순간 갑자기 나타난 불청객에 기겁을 하고서 그의 뒤에 숨은 소현을 힐끔 보더니 우는 시늉을 하며 다가오려고 했다.
그러자 재열은 재빨리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잠깐...”
“흑~ 왜?”
“누나 지금...나는 어떡하냐고...책임지라고 말하려는 거지? 그렇지?”
“어? 어떻게 알았어?”
“킥~”
우는 시늉을 딱 그치고 정말로 궁금하다는 듯이 물어오는 영아 누나에 등뒤에서 소현이 킥킥대고 웃었다.
아무리 유유상종이라지만 어째 저렇게까지 비슷할 수가 있을까? 재열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에효~ 내가 말을 말아야지...소현아...영아 누나야...인사해...”
“안녕하세요...강 소현입니다...”
“꺅~ 너무 예뻐~ 꼭 인형 같아~~ 이 피부 좀 봐~ 정말 부드러워~”
“저, 저기...재, 재열아....힝~”
“휴~”
영아 누나와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주춤주춤 수줍게 인사하는 소현의 손을 잡아당겨 와락 껴안고서, 뺨을 쓰다듬다가 쭉 늘여도 보며 난리법석을 피우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재열도 꼭 저렇게 인형 취급을 당했었다.
울상이 되어 어쩔 줄을 몰라 하는 소현을 바라보자 두통이 오는 것만 같았다.
그녀에게는 미안했지만 이것도 일종의 신고식이라 여기자 생각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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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 중에 가장 왈가닥이라 소현과는 정반대인 성격인데도 그래서 오히려 더 잘 맞는 모양이었다.
두 여자가 금방 친해져서는 나란히 붙어 앉아 수다를 떨고 있었다.
소현의 성격상 낯선 사람과 저런다는 건 꽤나 드문 일이었다.
둘이서 야한 짓(?)을 하려고 했던 게 무산되어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어쨌던 모든 게 잘 풀려나가고 있는 듯이 보였다.
“근데...누나는 어쩐 일이야? 오늘은 쉬는 날이라던데...”
“응~ 집에 온수기가 고장 나버렸어...그래서....”
목욕탕에 갈까 하다가 재열도 온다기에 겸사 겸사해서 아예 장까지 봐서 온 거라고 했다.
아까 누나들에 대해 설명을 하면서, 아빠의 집을 아지트 삼아 걸핏하면 술판을 벌이는 대신에 수시로 반찬거리 같은 걸 챙겨주거나 살림을 도와준다고 해놨기에, 소현도 그다지 이상하게 여기는 눈치는 아니었다.
다만 재열 스스로가 의문점이 생겨 고개가 갸우뚱거렸다.
욕실에서 나오는 그녀를 보는 순간 전에 발견했던 그 머리카락이 바로 떠오른 것이었다.
문제는 그 사람이 용의선상에서 제일 멀다고 판단했던 대상이라는 점이었다.
의외로 미혼처럼 보이던 활달한 두 사람이 유부녀였고, 오히려 주부의 냄새를 많이 풍기던 윤지 누나가 오래된 애인이 있는 아가씨였다.
그래서 색기가 넘치는 탓에 처음부터 1순위로 올려놓았던 혜선 누나 대신 윤지 누나를 가장 크게 의심했었다.
그런데 유부녀에다 약간은 남성적인 성격까지 있는 영아 누나를 이런 상황에서 부닥치자, 그 모든 추리가 또다시 미궁 속으로 빠져버린 것이다.
“그런데...재열이 너...아까 뭐를 하려고 그랬던 거야? 웅~ 내 눈에는 분명히...”
“뭐긴 뭐야? 뽀뽀를 하려고 했지...눈치도 없는 누군가가 산통을 다 깨버렸지만...”
“어머? 어머? 어머나~”
재열이 퉁명스럽게 던진 그 말에 소현이 벌떡 일어나더니 후다닥 욕실로 도망을 가버렸다.
영아 누나 역시 너무 당황해서 입을 떡 벌린 채 버벅거리고만 있었다.
따지고 보면 가장 황당하고 만만찮은 인물이 바로 재열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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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명이 한데 뭉쳐 보낸 저녁시간은 떠들썩하면서도 굉장히 즐거웠다.
물론 짓궂은 세 여자의 끊임없는 음해와 모략의 공세가 이어졌다.
그러나 재열이 낯 색 하나 변하지 않고 꿋꿋이 버텨내자 이번에는 소현을 흔들어보려 했지만, 그녀도 이미 어느 정도 익숙해진데다가 세 명의 불량배들을 상대로 끝까지 자신을 지켜준 일을 들려주며 무한한 신뢰의 눈빛을 보내오는데야 그녀들도 백기를 들고 말았다.
아빠는 처음 듣는 그 사건에 굉장히 놀라는 듯하다가 나중에는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아주 자랑스러워했다.
너무나 강력한 상대가 나타나 안타깝지만 이제는 정말로 포기하겠다며, 노래방에서 재열을 꽉 끌어안고 교대로 춤을 추는 누나들의 장난에도 소현은 그저 웃기만 할 정도로 분위기가 좋았다.
뭐, 그런 다음에 그녀들이 아빠에게 우르르 몰려갔으니 안심이 된 탓도 있을 거다.
어쨌던 결국 오늘도 아빠 집까지 쳐들어와 마지막 술판을 벌리다가 새벽녘에야 돌아갔다.
취한 와중에도 전처럼 깨끗하게 뒷마무리를 하는 모습은 다시 봐도 대단했다.
그리고 영아 누나의 비중이 조금 더 커지긴 했지만 진짜 범인(?)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피곤하지?”
“아니야~ 언니들한테 미안한데...”
“후후후~ 괜찮아...사람이 많아 봐야 부대끼기만 하는데 뭘?”
치우고 나서 설거지하는 걸 거들려고 했다가 밀려난 게 약간은 마음에 걸렸던가 보았다.
어쩌면 시아버지를 봉양하는 기분을 느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재열은 욕실에서 씻고 있는 아빠가 나오는가를 확인하면서 부드럽게 키스했다.
온종일 벼르다가 겨우 기회를 잡은 탓인지 너무나 달콤했다.
“어때? 내 말이 맞지? 아빠는 잘 지내고 계신 것 같지 않아?”
“으, 응...아주 좋아 보이시더라?”
그녀는 마음의 짐이 많이 가벼워진 것 같았다.
오기 전보다 한결 밝아진 목소리였다.
소현의 손을 잡고 손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나중에 아빠가 올라오면 엄마랑 해서 같이 보자...그러면 더 안심이 될 거야, 서로를 정말 사랑하거든...”
“응...알았어...”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 그때 욕실 문이 열리며 아빠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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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이 씻고 있는 사이 안방에서 잘 준비를 하는 아빠에게 말했다.
“아빠...”
“응? 왜?”
“나...오늘밤 저 방에서 잘게...”
“재, 재열아?”
잠옷 단추를 채우던 아빠가 깜짝 놀라 놓칠 정도였다.
저쪽 방은 소현이 자기로 하고서 아까 잠자리를 미리 봐놨었다.
“에이~ 걱정 하지마...이상한 짓을 하려는 건 아니니까...”
양심에 약간 찔리긴 했지만 최소한 거짓말은 아니라고 자위했다.
물론 재열이 말하는 이상한 짓이란 게 섹스를 뜻한다면 아빠는 스킨십까지 포함한 포괄적인 의미로 받아들일 거다.
하지만 그건 그저 의사소통에 있어서 약간의 오해(?)가 있는 것뿐이다.
그리고 이상한 짓(?)을 하는 건 정작 내일이지 오늘밤은 결코 아니었다.
그렇게 속으로 되뇌었다.
“그냥 둘이서 이야기나 하다가 잘 거야...그러고 싶어...응? 아빠...”
“음...그래...우리 아들이라면 믿어...하지만 소현이가 불안해하지 않겠니?”
“헤헤헤~ 아빠도 참? 오히려 무척이나 반가워할걸? 걔가 낯을 많이 가려...겁도 많고...”
“하..하하...오냐..알았다..하고 싶은 대로 해...난 모른 척해줄 테니까...”
미성년자인 아이들을 떠맡은 성인으로서의 책임을 생각하면 꽤나 큰 부담일 텐데도 아빠의 고민은 예상보다 그리 길지는 않았다.
그만큼이나 아들을 믿는다는 뜻일 게다.
거기다가 소현이 마음에 쏙 든 것도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어쩌면 소현의 부모가 둘이서 사고(?)라도 쳐주기를 은근히 바라는 심정과 비슷한 것도 같았다.
재열은 아빠의 마음이 편해지라고 나오기 직전에 넌지시 한마디를 덧붙였다.
“아빠, 그거 알아?”
“뭘?”
“내가 대학생이 되면...아니..소현이가 대학생만 되도 걔네 부모님이 약혼을 하자고 그럴지도 몰라...”
“응?”
“히히히~ 지금이라도 당장 데려가라는 눈치거든? 어쩌면 아빤 아주 일찍 할아버지가 될 거야..”
“푸하하하~ 오냐~ 머리 밑이 새카만 할아버지가 되도 좋으니...너희들 닮은 예쁜 손주만 빨리 안겨주렴~~”
“잘자, 아빠~”
“그래..너희도 푹 자거라...”
아빠는 아주 편안해진 얼굴로 침대에 누웠다.
재열은 방의 전등을 꺼주고서 조용히 문을 닫았다.
까치걸음으로 불 꺼진 거실을 지나 조심스레 방문을 두드렸다.
“누, 누구세요? 재열이?”
“응...나야...”
“열렸어...”
놀란 듯한 음성이었지만 문을 잠그지 않은 걸 보니 하다못해 자기 전에라도 한번은 들릴 거라고 기대했던 모양이다.
안으로 들어서 방문을 닫고 쳐다보자 그녀는 이부자리 위에 앉은 채 목까지 이불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옆으로 다가가 주저앉으면서 물었다.
“뭐하고 있었어?”
“으, 응..그냥...잘 준비...”
막 씻고 나온 건지 가뜩이나 투명한 살결이 촉촉해 보여 굉장히 아름다웠다.
얼굴이 발그레하게 달아올라 고개를 살짝 숙인 그녀에게서 향긋한 냄새가 났다.
이불을 끌어당기며 재열도 그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자, 잠깐...”
“응?”
갑자기 물에라도 빠진 것처럼 허우적거리며 당황해 하는 그녀에 무심결에 쳐다보다가 눈이 휘둥그래졌다.
이제 봤더니 속옷만 입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 잠옷으로 막 갈아입으려 하던 중이었나 보았다.
보지를 애무해 절정을 느끼게까지 만들었어도 이런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가슴이 마구 뛰어서 꽉 끌어안으며 바닥에다 눕혔다.
“재, 재열아...”
“후후후~ 괜찮아...아빠한테는 여기서 잔다고 그랬어...”
“흡~”
깜짝 놀라 어쩔 줄을 몰라 하는 그녀에게 키스를 했다.
그러면서 브래지어 속의 봉긋한 젖가슴을 부드럽게 어루만지자 목을 껴안아왔다.
“아빠는 네가 굉장히 마음에 드나 봐...”
“하지만..그래도...”
“후후후~ 괜찮아...날 믿기도 하지만 혹시 무슨 일이 있더라도 무조건 내 편에서 도와줄 거야...우리 가족은 원래부터 서로에게 그래...”
“..대단해...정말로 부러워.......”
소현은 진심으로 그렇게 느끼는 모양이었다.
지금은 서로의 관계가 굉장히 좋아졌다지만 어쨌던 그녀에게 그런 가족은 절대로 불가능하지 않은가? 어쩌면 그녀가 꿈꾸는 가장 이상적인 모델이 재열의 가족일지도 몰랐다.
비록 엄마의 불륜을 알고 있다고는 해도 말이다.
브래지어를 밀어 올리는데도 미처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그녀는 깊은 생각에 빠져있었다.
재열은 젖꼭지를 살짝 비비며 속삭였다.
“후후후~ 아빠가 그러던데? 새파랗게 젊은 할아버지가 되도 좋으니까...하루 빨리 예쁜 손주나 안겨달라고...”
“어, 어머~ 나 몰라~ 창피해서 어떻게 봬?”
“응? 뭐야? 그러면 우리 애기를 낳기 싫다는 거야?
“아, 아니...그런 게 아니라....”
또다시 당황해서 허둥대는 그녀의 입술을 덮어버렸다.
그리고는 팬티 안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재열의 손에 의해 이제는 완전히 길들여진 보지가 촉촉하고 따스하게 맞아주었다.
그녀를 알몸으로 만들고 싶은 걸 애써 참아야만 했다.
자칫 내일까지 기다리지 못하게 될까 싶어서였다.
그런데 브래지어를 밀어 올려놓은 채 팬티 속을 더듬는 게 어째 더더욱 흥분이 되는 것만 같았다.
‘많이 용감해졌네?’
혀를 뜨겁게 빨면서 가랑이를 벌려 만지기 편하게 해주는 건 물론 재열의 팬티 속으로 손을 넣어오는 그녀였다.
재열이 전해준 아빠의 말과 더불어 이제 하루만 지나면 그에게 안기게 된다는 사실이 그런 대담함을 불러일으킨 지도 모른다.
허리를 흔들어 제법 요분질을 치는 그녀의 보지가 자꾸만 질척해지며 물소리를 내고 있었다.
어쩌면 소현은 다른 날보다 훨씬 더 짧은 시간 안에 절정에 오를 것도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