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이건 불행이건 눈치없는 기철이 녀석은 나와 엄마사이의 묘한 기류를 눈치채지 못하고 음식들만 꾸역꾸역 입으로 닥치는 대로 넣고 있었다.
"우물우물, 우와 이거 끝내주는 데? 우물우물, 부러운 자식, 매일아침 이런걸 먹고있었다니......"
아니다. 우리집은 매일아침 이렇게 먹고있지 않았다. 이것은 도대체 무슨의미일까. 어젯밤 17년간이나 자애로운 모성을 내게 보여주었던 엄마는 그 이성의 굴레를 벗어버리고 한마리 짐승으로 존재했었다. 그 근엄한 모상속에 숨겨진 진실을 보는 아들의 마음을 엄마는 짐작이나 할수 있을까? 또다시 어젯밤 생각에 얼굴이 달아오르고 감정이 격해진다.
탁!
"안먹고 뭐해 이 자식아?"
따끔하는 충격에 고개를 드니 한없이 너스레를 떨던 기철이 녀석이 의뭉스러운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젯밤에 피자먹었잖아. 넌 뱃속에 귀신이라도 들었냐?
"
"그건 어제의 것이지. 오늘의 것은 오늘의 것으로 취급해 줘야지."
"알았어 임마. 나도 잘먹고 있어"
가능한 자연스럽게 해야 한다. 물론 저녀석이 둔한 녀석이라 크게 신경쓸지도 모르지만.........
젓가락을 깨작거리며 흘끗 엄마를 쳐다보았다. 엄마는 앞치마를 두른채 싱크대에서 반찬을 준비에 이따끔씩 접시에 담아 올려주기만 할뿐이었다. 뒷모습 뿐이었지만 엄마의 쳐진모습을 느낄수가 있었다. 그렇게나 탱탱한 육체를 가지고 있었던 엄마가 이제는 한층더 늙어보이기 까지 했다. 식탁에 차려진 반찬들을 보자 엄마의 정성을 새삼스럽게 느낄수 있었다. 어젯밤 자괴감에 빠져 절망에서 허우적거리는 대신 엄마는 아들과의 관계회복을 위해 다시 한번 용기를 낸것이리라. 벼랑끝에 몰려 타락해 가는 상황에서도 엄마는 다시한번 이성과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신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나에게 있었다. 받아들일수 없었다. 익숙하던것이 낯설게 되는 충격감과 도덕과 윤리가 붕괴되는 현상을 두눈으로 목격하고 직접경험하기까지한 난, 내 그 어린마음으로는 도저히 용서하고 받아들일수 없었다. 차라리 알지못했더라면......... 모든걸 모르거나 아니면 그상황을 판단할수 없을 정도로 더욱 미숙하고 어리석었더라면 하는 자조가 또한번 끓어 오른다.
일단 지금상황에서 판단하자면 모든건 되돌릴수 없으며 이 사건의 끝도 알수 없다.
딱
더이상 억지로 음식을 넘기는 것이 힘겨워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때의 엄마의 모습도 선명하다. 마치 젓가락이 엄마의 어깨륵 몇만근이 되어 두드리듯 엄마는 흠칫거렸다.
"그만 일어나자. 오늘 애들이랑 농구한판 더 뛰어야지?"
"왜? 더 안먹고?"
"이 자식아, 모든 사람이 너처럼다 뱃속에다 돼지농장이라도 차리고 있는줄 아냐?"
"알았어. 이거만 먹고 가자"
녀석은 그릇을 씹어먹는게 아닌가 할정도로 빠른속도로 밥을 비우고는 나머지 반찬도 함께 가능할수 있는 한 입에 집어넣었다.
"끄억~ . 잘먹었습니다~"
넉살좋은 소리와 함께 자리를 일어섰고 나는
"다녀올께요"
라는 한마디와 현관으로 먼저나섰다.
분명 뒤쪽에서 엄마가 무언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그냥 걸어나갔다. 이것이 엄마의 가슴을 더욱 헐뜯는 일이란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렇지 않고서는 나를 조율하기 힘든상황에 놓여있다. 아니, 이미 나를 통제하는 일따위는 할수 없다. 이길로 나가는 순간이 앞으로 엄마를 볼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건 왜 일까? 기철이녀석이 큰소리로 엄마에게 인사를 하고 헐레벌떡 뛰쳐나오기 까지, 나는 아직은 선선한 여름아침의 햇살을 쬐었다.
아침부터 매미소리가 심하게 울려퍼진다. 젠장, 저 새끼도 섹스하고 싶어 안달이 난거구나.
어젯밤 사건이후로 나는 모든것을 "섹스"와 연관시키고 있다. 그 망할 충격감이라는 것이 쉽사리 사그라 들지 않았고 시간이 점점 지남에 따라 미래에대한 끝없는 불안감만이 계속해서 커져만 가고 있다. 난생 피우지도 않았던 담배맛이 궁금해 지
기 시작하고 있다.
"젠장 할....... 뭐가 어떻게 된거지........"
어리속을 헤집는 수많은 생각들이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그리고 그 회전의 속도가 빠르면 빨라질수록 머리는 혼란 그 자체로 가득찬다.
빠악-
난데없는 타격음과 강한 통증에 혼란이 꺠어지고 분노와 아픔만이 남는다.
"으, 으앗!"
너무 아파서 화도 낼 겨를이 없이 놀란채 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거기엔 예상했던 대로 기철이의 얼굴이 있었다. 다만 그녀석의 표정이 너무나 오묘해서 뭐라고 판단할 수가 없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화난 표정에 가깝다고 해야할까?
"뭐, 뭐야 이 자식아?"
화를 내기에는 늦은 타이밍이었지만 그래도 화가 났다. 통증에 머리를 움켜 쥐면서도 녀석의 난데없는 행위에 의문을 제기했고, 만약 녀석이 내가 원하는 적절한 변명을 제시하지 못할때는 대비해서 주먹을 움켜쥐었다. 아니, 주먹을 이미 쥔채 나가고 있었다.
"말 해"
쥔주먹이 채 올라가기도 전에 떨어진 기철이의 입이 떨어졌다. "뭘?"이라는 말이 나오기전에 기철이의 입은 한번더 떨어졌다.
"너희엄마와 무슨일이라도 있었던거야?"
무슨말을 해야 하는것인가. 말문이 막혔다. 방금까지만해도 머릿속을 가득채웠던 분노가 한순간에 불꺼지듯 사라져버렸다.
이녀석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녀석을 너무나 과소평가했다. 그저 야한잡지와 포르노비디오나 좋아하는 생각없는 녀석으로 치부해버렸었는데......
말해야 하나? 어젯밤 모든 그 얼토당토않는 그 더러운 패악의 현장을?
나는 고개를 들어 그 녀석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매일 장난기와 음담패설로 음흉한 눈길만 쏘아대던 그 눈길은 오늘따라 이상하게 침착했다.
"가끔 모난데도 있지만, 네가 상당히 좋은 녀석이라는 것은 친구들중 누구나가 인정하는 사실이야."
무슨말을 하려는 걸까.
"오늘 아침, 넌 유난히도 조용했어. 맨날 왁자지껄 떠들며 밥풀튀어가며 점심시간을 할애했던 네 녀석이 비정상적으로 무뚝뚝하고 어색했지. 그리고 평소 효자소리는 안들어도 패륜아나 불량아 취급은 당하지 않았잖아? 그런데 왜 오늘 따라 어머니께 그렇게 쌀쌀맞게 굴었던거지?"
네말은 틀렸어 기철아. 난 패륜아야. 난......난....... 저 음식물쓰레기 보다 더 고약하고 비열한 인간쓰레기라고.......
"설사 네가 패륜 또는 반인륜적인 행동을 버금가는 일을 했다고쳐. 그렇다면 바꾸어야지.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안들어? 어젯밤 네가 네 어머니와 어떤사건이 있었는지 몰라. 하지만, 적어도 너희 어머니가 저렇게나 노력하시는데 아들입장으로서 그 이상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대등하게 응수는 해드려야 하지않겠냐? 솔직히 내가 상황판단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너에게 이런말을 하는게 정말 우습고 너로써는 화딱지 나는 일일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거 하나는 기억해둬. 그분은.... 네 어머니야."
어머니.... 왜이렇게 멀리만 느껴지는 걸까. 매일 엄마라고 불러서 그런걸까. 모성과 자애만이 존재하는 단어. 어머니. 도대체 어머니란 내게 어떤 존재일까?
"나머진 너의 몫이야. 여기서 더이상 간섭하진 않을께....... 그리고 아까 너희어머니가 일찍들어올건가 물어보시더라."
그렇게 내뱉은 기철이는 농구공을 어깨에 걸치고는 훌렁훌렁 먼저 걸어가버렸다.
머리가 멍했다. 항상 어줍짢은 음담패설에 킬킬거리고 포르노잡지와 야동이야기로 침을 튀기던 저 녀석이 그런말을 하다니......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내가 기철이에게 느끼는 감정은 고마움 이었다. 솔직히 기철이의 한마디로 내가 좀더 긍정적으로 변화한다던가 하는것은 아니었다. 어쨌든 모든일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변화"이고, 나는 방금 변화의 단초를 마련한거 같다.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 가능한한 엄마의 입장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해보겠다는 의지가 생겼다. 그리고 벼랑끝으로 몰린 엄마와 나의 관계로 어떻게 해서든지 돌파구를 마련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결심은 순간이었고, 난 희미해서 가는 기철이의 모습을 보고 전속력으로 달려가........
빠-악!
"우갸갹!"
머리에 펀치를 있는 힘껏 꽂아주고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야이 자식아, 그렇다고 머리를 그딴식으로 때려? 그렇게 멋있는 말만 하고 가버리면 봐줄줄 알았냐?"
"웁, 우윽. 야, 일단 좀 놓고 말해. 이런 미친놈이!"
한참을 그렇게 기철이와 나는 서로를 질식사의 상태 바로 직전까지 이끌었고 지나가던 아저씨의 중재로 서로에게서 떨어졌다. 떨어져나온 순간 기철이와 나는 서로 눈을 마주쳤고 서로의 눈속에 담긴 웃음을 깨닫고 다시 한번 달려들었다. 이 미묘한 상황을 알지못한 아저씨는 거의 돌아버릴듯한 표정으로 지나가던 건장한 청년까지 가세하여 우리를 말리기 시작했고, 우리는 간신히 떨어졌다. 더위때문에 기진맥진 한데다 우리둘을 떼어놓느라 탈진상태에 이른 아저씨는 숨을 헐떡이며 진지한 태도로 우리에게 우정을 권고하며 훈계를 했고, 우리가 마지못해 화해하는척 하자. 난폭하고 예민한 고등학생들을 진정한 우애의 길로 이끌었다는 자신감에 충만하여 흡족한 표정으로 다시 가던길을 떠났다.
중재자가 가버린탓에 머쓱해진 우리는 조금 떨어져서 걸었다. 아직도 뙤약볕이 한창이었다. 구름한점없이 태양이 하늘위에서 내리찌는 가운데, 문득 뒤에서 기철이가 말을 걸어왔다.
"야"
아직은 어색한지 약간은 퉁명스러운 목소리였다.
"뭐"
"농구한판 어때?"
"지금?"
"어, 너무덥나?"
"좀 그런데, 이따가 애들 불러서 하면 안돼냐?"
"지금 하고 한판 한번 더하면 돼지. 왜 힘들어?"
상대방을 도발하는 기술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그중 가장기본적인 것은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이지. 남자는 유독 힘으로 대변되는 남성성에 대한 자부심과 자존심이 강하다. 이런 부질없는 것에 목숨을 거는 남자라는 족속들은 항상 허세와 잘난척을 무기로 삼는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나도 고추달린 남자였고, 또 자존심이 세었기 때문에 그 같잖은 도발에 넘어가고 만 것이다. 안 그래도 아까 노상레슬링을 한탓에 체력이 급저하 되었었는데, 이제는 난데없이 뙤약볕아래의 농구 때문에 이제는 정말로 실신할 것 같았다. 드리블 하는 공구공의 잔상이 계속 눈에 남질 않나, 달구어진 농구공이 너무뜨거워 손에서 놓친적도 있었다. 심하게 보면 자살소동이라도 하는듯 격렬했고, 몸에서 빠진땀과 체력 때문에 현기증 까지 났다. 그렇게 2시간여를 정오의 시민공원에서 미친듯이 날뛴탓에 누가 뭐라고 할것없이 우리는 동시에 농구장에 쓰러졌고, 달구어진 우레탄이 너무 뜨거워 후다닥 일어나 그늘진 벤츠까지 달려가 쓰러졌다.
"하악~ 하악. 이런..... 미친놈 같으니...... 지치지도 않냐?"
"헤엑, 헤엑, 너야말로 헤엑, 발정난 암말새끼처럼 하악, 하악, 잘뛰던데"
"후아, 후아 누가 보면 황소가 한마리뛰노는줄 알았겠어. 큭큭큭 쿨럭,쿨럭"
"쿨럭, 하악 한마리가 아니라 두마리였겠지. 쿨럭. 카악 퉤엣!"
각양각색의 숨소리를 차용해가며 기철이와 나는 쉴새없이 폐를 놀리며 떠들어댔고, 더 이상 떠들수 없을때 이번에는 정말로 기진맥진해서 쓰러졌다. 그렇게 죽은 듯이 그늘밑에서 쉬고 있는데 녀석이 또 다시 말을 걸어왔다.
"야."
"닥쳐, 미친놈아 농구안해."
"아니 그게 아니고 저녁될때까지 시간남았으니 어디 오락실이나 피시방이나 안갈래?"
"아..... 그래....... 일단 좀 쉬자. 이 미친놈아."
그렇게 30분을 쥐죽은 듯이 조용히 숨만쉬다 우리는 일어섰고 탈진됬던 수분을 보충하기 위해 먼저 편의점에 들러 음료수를 사먹었다.
"꿀꺽, 꿀꺽 야. 민구랑 수만이는 수련회에 갔으니까... 병철이랑 영진이는 어떻게 됬냐?"
"아, 걔네들 지금쯤 학원에 있을거야. 이따가 내가 저녁에 불러 내 볼께. 우진이는 아마 집에 있을거야 지금 한번 불러볼까?"
"아아 그래. 피시방으로 오라고 그래"
"오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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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량이라 불리기에도 참 쪽팔린 분량이네요; 오늘 이렇게 적게 썼다는 것은 미안해서라도 내일 또 연재가 가능하리라는 말이 겠지요? 사실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을리가;;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2년전에 엄마의 연인 패러디랍시고 어설픈 글쪼가리를 2개 남겨놓고 종적을 감추어버린 인간입니다; 왜 안썼냐고 물어보면 저는 할말이 없습니다; 돌을 던지면 그냥 맞지요; 앞으로 연재가 끊이지 않을수 있냐고 물어보면; 거기에도 답을 할수가 없네요; 참 게으르고 무책임함으로 가득한 인간입니다. 아무튼 한번 달려보죠;
전편은 "엄마의 연인" 검색하시면 15.16편이 나옵니다.
수정은 여기까지;; 흠, 시간이 많지 않다보니 분량이얼마 안됍니다; 다음편은 18편으로 올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