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렉트라 (4)
= 엘렉트라 = <3>
여인 (2)
여기는 서울 근교 공원묘지.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사리자시 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스님의 독경 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김형태 사장의 장례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시우의 친척들, 오제종 사장을 비롯한 회사측 임직원들, 김사장의 친구들, 시우의 학교 친구들,
그리고 시우의 지도교수인 장신영교수와 이인혜교수도 눈에 띄었다.
한켠에는 구형사와 강형사가 서 있었으며, 그들은 참석자들을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김사장의 유해가 든 관이 땅속으로 내려지고 그 위에 한줌의 흙을 뿌릴때, 유선과 시우의 슬픔은
극에 달했다.
관위에 흙이 덮인다는 것은.. 이제는 그 유해마저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것 아닌가..
남편과 아버지와의 육신과는 영원한 이별이며.. 그가 남긴 흔적은 시간이 갈수록 퇴색되어 점차
바래져 남아있는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져 갈 것이다.
유선과 시우는 남편과 아버지의 마지막을 고하는 그 한줌의 흙을 손에 들고 오열했다.
그때 오제종 사장이 그의 부인인 김미영과 함께 천막으로 다가왔다.
오제종은 유선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며 말했다.
[뭐라고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그저 송구할 따름입니다.]
[바쁘신데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사람은 제 처 입니다]
[김미영 입니다, 얼마나 슬프시겠어요.. 그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는 말 밖에는..]
[고마워요]
[아드님이죠? 힘 내세요..]
김미영은 시우를 보며 인사했다.
[네, 이렇게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미영은 이제 30세 초반으로 밖에 안보이는 얼굴이었고 볼륨있는 몸매의상당한 미인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김미영은 오제종과는 10살이나 어렸기 때문이다.
[사모님, 슬픔이 크시죠? 뭐라고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할 지...흑흑흑]
이제 20대 초반의 귀여운 인상의 여자가 슬프게 울며 인사를 한다.
[네..감사해요.. 그런데 누구신지..?]
마치 가족같이 슬퍼하며 인사하는 그녀에게 유선은 의아한 시선으로 물었다.
[저는 돌아가신 사장님의 비서 입니다, 강혜미 라고 합니다..흑흑..]
[사장님이 생전에 너무 잘 해 주셔서 항상 존경하는 마음이었는데.. 이렇게 돌아가시다니..흑흑흑]
[그랬군요.. 진정해요, 그리고 고마워요..이렇게 와줘서..]
그들은 혹시 수사에 도움이 될만한 것이 있지 않을까 해서 온 것이다.
다들 침통한 표정 이었지만, 특히 시우 친구인 경준과 이인혜 교수는 눈이 부어 있을 정도였다.
애절하고 비통한 시우 모자의 울음에 그들도 울음을 참을수 없었던 것이다.
경준은 시우의 가장 친한 친구로서 그 슬픔이 그대로 가슴을 파고 들었고,
이인혜 교수는 평소에 아끼던 제자의 슬픔이 그녀의 기슴에 그대로 스며들어 그 아픔이 그대로
전해졌다.
[시우야, 힘내! 아버님도 좋은데 가셨을거야..]
이교수가 말했다.
[힘내라.. 어머니 좀 잘 보살펴 드리고...]
경준이 시우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그래..고맙다, 교수님 고마워요..바쁘실텐데..]
손님들이 탄 차량들이 출발을 하고 시우도 엄마를 부축하여 회사에서 제공한 승용차에 올랐다.
최반장은 구형사, 강형사와 함께 사건을 검토하고 있었다.
[지금 까지의 수사상황을 정리 해보지..]
최반장이 말했다.
[먼저 제가 말씀 드리겠습니다.]
구형사가 말했다.
김사장은 칼에 의한 상처가 여러군데 있었습니다만, 사망의 결정적 원인은 차량에 의한것입니다..
시신에 남아있는 흔적으로 보아 차량의 색은 검은 색으로 판단 됩니다.]
[그리고 시신의 손등이나 손가락 팔등에 심한 상처가 있는것으로 보아 상당한 몸싸움이 있었을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렇다면 자정부터 새벽2시 까지가 되겠군?]
[그렇습니다]
[그러면 우선 범행차량에 대한 수사는 어떤가?]
[시체가 범행현장으로 부터 옮겨져 유기가 된것이라 범행현장이 어딘지..지금으로서는 별 희망이
없어 보입니다]
[범행에 사용된 칼의 종류는?]
[재크 나이프가 사용 되었습니다]
[흠..그렇다면 폭력배 쪽인가? 조폭이냐.. 조무래기 우범자들이냐..]
포기 했는데, 칼에 찔린 김사장이 지나가던 차에 치이고, 그 차는 뺑소니를 쳤다..]
[그럴수도 있겠군.. 범행현장에 대한 정보가 없으니, 막연한 가능성만 생기는군..골치 아픈 사건이네..]
[조폭에 의한 사건이라면 김사장 주위에 대한 수사에서 어떤 단서가 나와야 할것 같습니다]
[그래! 우선 그렇게 하로록 하지]
[김사장 여비서 이름이..?]
[강혜미 입니다.]
[흠.. 우선 그여자에게서 김사장의 회사나 개인적인 사항들을 알아내 봐! 아무래도 비서니까,
다른사람들은 모르는것을 알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네!]
[먼저 김사장 집에서 수집한 자료에서는 이렇다 할 단서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김사장 부인에 대한 조사는 곧 시작하겠습니다 .]
[회사쪽 수사는?]
[네, 오사장을 비롯한 몇몇 중요한 인물들의 알리바이는 현재로서는 별다른 혐의점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현재는 김사장이 맡고있던 프로젝트에 관한 사항, 회사 재무상황등에 촛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좋아! 회사쪽의 자료도 조속히 검토해!]
[네, 알겠습니다!]
---------------------------------------------------------------------------
방문을 노크하는 소리와 함께 유선은 아들을 깨웠다.
[알았어요..]
시우는 부시시 눈을 뜨고 일어났다.
[오늘이 아버지 삼오제날 이잖니.. 서둘러야 차도 덜 막히고 고생 안하지..]
[네..빨리 샤워하고 나올께요]
아버지의 장례식을 마치고 오늘은 삼오제를 지내는 날 이었다.
[고모 오셨네..!]
[어, 잘잤니? 우리 조카?]
고모인 김효순이 웃으며 시우를 쳐다본다.
[네!]
[할아버지는 좀 어떠세요?]
[안 좋으셔.. 노인네가 충격이 크셔서.. 할아버지가 한 성격 하시잖니.. 그 성격에 울화가 치미는걸
어찌 할수도 없으니.. 저러시다 화병 걸리시는건 아닌지 모르겠다.]
[큰 일 이에요..고모, 휴우..]
모두들 한숨을 쉬며 준비를 마쳤다.
제사음식은 운반하기 좋게 배낭에 담아 시우가 짊어지기 좋게 하였고, 술과 꽃은 가는길에 사기로 하였다.
거실 소파에 앉아있던 시우는 방에서 나오는 엄마를 보고는 약간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검은 정장을 입은 엄마의 모습은 나이보다 앳되게 보이는 엄마의 외모와, 우수에 잠긴 엄마의 표정은 비에젖은 제비꽃을 보는듯 수수하고 햇빛 잘드는 창가에 놓여진 백합과도 같은 청초함이 서려
보였다.
- 엄마에게 저런 모습이 있었구나..-
시우는 평소에 상상도 안했던 엄마의 숨겨진 모습에 속으로 감탄의 눈길을 보내며 일어섰다.
효순 역시 새언니의 그 모습을 보고는 다소 놀라는 표정을 지었으나, 이내 사무룩한 표정으로
바뀌며 죽은 오빠의 생각에 눈시울이 젖어옴을 느낀다.
- 저렇게 예쁜 언니를 두고 오빠는..-
[휴우..]
한숨을 쉬며 효순도 일어섰다.
묘지가 가까워지자 꽃을 파는 가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시우는 한 가게앞에 차를 세우고,
[제가 사 올께요, 두분은 그냥 계세요.]
차에서 내린 시우는 꽃가게로 들어섰다.
[조금만 기다려요]
시우를 본 주인은 아는체를 하며 포장을 계속 하였다.
그 앞에는 검은옷과 모자를 쓰고 짙은 선그라스를 쓴 한 여인이 포장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옆으로 보이는 모습으로 미루어 상당한 미인으로 보였으며, 나이는 30대 초반쯤으로 보였다.
포장이 끝난 꽃이 전해지자 그여인이 돌아섰다.
시우를 본 여인이 멈칫하더니 시우를 지나쳐 가게를 나갔다.
뚱뚱한 몸과는 안 어울리게 듣기좋은 목소리의 여주인이 물었다.
[네, 백합과 국화를 섞어서 보기좋게 만들어 주세요]
[네, 알았어요]
생끗 웃으며 가게 주인이 꽃이 있는곳으로 가는동안 시우는 꽃집유리를 통해 밖을 내다보았다.
방금 나간 여인이 승용차에 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젊은 나이인데.. 누가 죽은것일까? 부모..아니면 남편?-
-남편이라면 우리 엄마만큼이나 안타까운 일을 겪는군..-
그 여인을 보며 이세상에는 불의에 죽음을 맞는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을 새삼 떠 올려본다.
[자, 다됐습니다]
주인여자가 능숙한 솜씨로 만든 꽃다발을 건네 받은 시우는 가게를 나와 차에 올랐다.
[잠깐, 나 화장실좀..]
고모가 말했다,
[네, 아가씨..갔다 오세요]
엄마가 말했다.
[조용 하네요..]
조용한 묘지 무차장에는 서너대의 차가 있을뿐 이었다.
아마도 오늘은 아직 장례를 치르는 사람들은 없는 모양이다.
시우가 차에 시동을 걸며 말했다.
[그래, 얼른 갔다 와라]
시우가 술을 사 가지고 온것은 약 20분쯤 후 였다.
[자! 올라가죠..]
시우 일행이 묘지를 향해 반 정도 올라왔을때 몇몇 사람이 내려오는것이 보였다.
시우 아버지의 묘에서 얼마 안 떨어진곳에 여러사람들이 참배를 마치고 내려가는 일행인것 같았다.
시우는 무심코 내려오는 사람들을 쳐다보다, 아까 꽃집에서 본 여인이 조금 떨어져 내려오는것을
보았다.
시우는 여인이 그 일행인가 보다 생각하며 그 여인의 아름다운 자태에 저절로 눈이갔다.
그 여인도 힐끗 시우 일행을 보더니 약간 고개를 숙이며 지나쳐 내려갔다.
그런데 무덤앞에는 싱싱한 새 꽃다발이 놓여져 있는것이 아닌가..
[언니! 누가 왔다 갔나봐요.. 꽃이 싱싱한데..?]
고모가 그 꽃다발을 보더니 말했다.
[글쎄 말이에요..누굴까요..?]
유선 역시 의아한 심정으로 말했다.
시우는 그 꽃다발을 보며 아까 그 여인을 떠 올렸다.
시우는 아래쪽으로 시선을 돌려 그 여인을 찾았으나 이미 보이지 않았다.
-누굴까..? 꽃을 보니 아까 그 꽃집에서 산것 같은데.. 도대체 누구길래 아빠 무덤에 혼자 와서 꽃을 바친단 말인가..-
시우는 마음속의 의문을 지우지 못한채 그 꽃 옆에 자신이 들고있던 꽃을 가지런히 놓았다.
모두들 만감이 교차하는 심정으로 한동안 무덤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유선은 생각했다.
-인생 참 허무하구나..죽음으로서 자신의 생에서 그렇게나 붙잡으려고 애쓰는 모든것들이 한순간에..정말 허무하게 스러지고 말지 않는가..?
당신도 일이 자신의 모든것인양 밤낮으로 모든걸 바쳤는데, 지금 남은것은 무엇인가요..?
나는 당신과 같이 살지는 않을겁니다..하루 하루를 나자신에게 충실하게 살아갈거에요.
부디 좋은데나 가세요..!
삐리리~ 삐리리리~
전화가 울렸다.
유선은 늦은 아침 준비를 하다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거기 김형태 사장님댁 인가요?]
[그렇습니다만..]
[아! 저는 백변호사라고 합니다.. 타계하신 김사장님의 고문 변호사 입니다]
[네, 그러시군요!]
[몇가지 상의드릴 일이 있는데.. 언제쯤 만나뵐 수 있을까 해서요]
[내일쯤이 좋겠는데요, 어디서 뵐까요?]
[괜찮으시다면 제가 댁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그러세요, 그럼..]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그래야죠.]
[내일 아빠 고문 변호사가 온다니까 같이 만나보고, 모레부터 나가는게 어떻겠니..?]
[네, 그럴께요]
[자! 이것 좀 먹어봐]
유선은 시우가 좋아하는 굴비를 가시를 발른다음 시우의 수저에 얹어주며 먹기를 권한다.
그렇게 든든할 수 가 없었다.
슬픔의 앙금이야 단시일내에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갑작스러운 남편의 죽음이 가져다 준 절망감을
아들로 인해 그나마 잘 견뎌낼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한사람이 빠진 두사람만의 식사를 준비하는것이 매우 낯설게 느껴지고 마음 한구석이 허전함은
어쩔수 없지만, 그래도 시우가 있다는것이 이러한것들을 조금이나마 희석시켜 준다는 생각에 새삼
아들의 존재에 대해 감사함을 느꼈다.
그래서 유선은 아들이 식사하는동안 간간히 반찬도 얹어주고. 맛있게 먹는 아들을 보면서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두사람은 서재를 정리했다.
형사들이 수사 참고자료를 챙긴다고 뒤지는 바람에 심하게 어질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유선과 시우는 만감이 교차하는 심정으로 하나하나 제자리를 찾아 물건들을 정리했다.
이방에 남아있는 남편과 아버지의 체취도 시간의 흐름속에 점차 엷어져 갈것이다.
번호를 보니 경준이었다.
[뭐하냐? 집에만 있지말고 오늘 좀 보자! 나 알바 쉬는날인데]
[집에 엄마만 혼자 있는것도 좀 그렇고..]
[그건 아는데..]
[알았다, 좀 있다보자]
경준과 시간과 장소를 정한 시우는 전화를 끊고 엄마를 보았다.
[나갔다 오렴.. 난 할아버지께나 가봐야겠다.]
[벌써 와 있었냐?]
시우는 경준과 악수하며 자리에 앉았다.
[오늘 강의도 없고 알바도 쉬고, 뭐 딱히 할것도 없고..이런참에 너보고 싶어서 불렀다]
[그래, 고맙다]
[경찰에서는 뭐 연락없냐?]
[아직..]
[큰일 이구나..범인을 빨리 잡아야 할텐데..]
이런 저런 이야기로 시간을 보낸후 점심때가 되었다.
[야! 오늘 점심 내가 쏠테니 일단 나가자]
경준이 말했다.
[아니..그럴것이 아니라, 여기까지 나온김에 교수님께 인사드리고 점심먹자. 지난번에 장례식에도
와 주셨는데..]
[그래 그럼, 너 좋을대로 해라]
카페를 나온 시우와 경준은 학교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교수실이 있는곳으로 걸어가는데 저앞에 이인혜 교수가 걸어가는것이 보였다.
시우는 이교수를 향해 뛰어갔다.
[교수님!]
[어! 시우아냐? 경준이도 있네]
이인혜 교수는 환한 웃음과 함께 반색을 하며 말했다.
[제가 이놈 불러냈죠, 하하]
경준이 웃으며 말했다.
[지난번 장례식에 와 주신것 감사 드립니다]
시우는 꾸벅 인사하며 말했다.
[감사는 무슨..당연한 거지..]
[교수님 지금 시간 되시면 저희와 점심이라도 하시죠.]
[그럴까? 나도 오늘 강의는 없는데 별로 할 일도 없고 해서 논문 준비나 할까해서 나왔는데..
잘됐다! 내가 오늘 점심 살께.]
[아니에요, 제가 모셔야죠]
시우가 정색을 하며 말했다.
[장교수님께도 말씀드려야 하는데.. 좀 기다리실래요? 제가 갔다 올께요]
[아냐, 내가 전화번호 알고 있으니까 전화해 보지 뭐..]
이인혜 교수는 핸드폰으로 장교수에게 전화를 했다.
[네..알겠어요.]
전화를 끊은 이교수는
[오늘 선약이 있으시다는데..]
[그럼 할 수 없죠.. 나중에 모시죠]
[내 차로 가자]
이인혜 교수는 시우와 경준을 데리고 주차장으로 갔다.
[오늘은 내가 살테니까 시우는 가만히 있어, 네 마음은 알겠는데.. 너무 인사성 바른것도 가끔은
상대방을 섭섭하게 한다는것만 알아둬]
[이놈이야 바른생활 사나이 아닙니까? 교수님 히히히히]
짖궂은 웃음을 흘리며 경준이 한마디 거든다.
[알았어요, 그럼 교수님이 사 주세요, 하하]
[멋진 미남들과 같이 식사하는데, 멋진 레스토랑에서 칼질 하는건 어떨까?]
차에 오르며 이교수가 말했다.
[오! 칼..질..오우!, 원님덕에 나팔 분다고 시우덕에 내 입이 호강하는구나..]
경준의 넉살에 세사람은 유쾌하게 웃었다.
[햐! 교수님 덕에 이런 멋진곳도 와보고, 고맙습니다 교수님]
경준이 또 넉살을 떤다.
시우는 이런 경준의 성격이 좋았다.
신중하고 말이 적은편인 자신과는 달리 지나치리만치 명랑한 성격이 좋았다.
아마 그래서 단짝 됐는지도 몰랐다.
아침부터 흐리고 꾸물거리던 날씨였다.
[이런 날씨에는 술 한잔..이 좋은데..히~]
경준이 운전을 하고있는 이교수 눈치를 슬쩍 보며 중얼 거린다.
[이왕 쏜 김에 풀코스로 쏴 봐..?]
이교수가 웃으며 경준의 말을 받는다.
[시우는 어때? 슬 한잔 할까?]
이교수가 시우를 보며 묻는다.
[야! 오케이 해라, 이런 기회 아니면 언제 교수님 술 얻어 먹냐? 하하하]
경준의 그 넉살에 시우도 웃음을 지으며,
[엄마에게 전화좀 해 보고요]
시우가 전화를 하자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여보세요?]
[엄마 저에요, 오늘 좀 늦을것 같아서 전화했어요]
[그래? 나도 할아버지 댁에서 자고 내일 갈거니까 그렇게 알고, 너무 늦지는 마]
[네 알았어요, 참..할아버지는 좀 어떠세요?]
[많이 좋아지셨어]
[할아버지께 죄송하다고 말씀 드려 주세요]
[그래, 알았다]
길에서 좀 들어간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거기서도 약간 걸어들어가면 나무로 만든 집이 있는데
그곳이 카페였다.
안으로 들어가면 탁자나 의자 모두가 통나무를 잘라 만든것이고 메뉴는 소주에서부터 칵테일까지
다양하게 있었고,
손님들은 대부분 젊은 데이트족이나 친구들끼리 온 사람들이었다.
세련된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이런 소박한 카페에서 술을 한잔 하게 된것이다.
[분위기 좋은데요.]
[정말 죽이네요]
시우와 경준이 한마디씩 하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래..좋지?]
[네]
[술은 뭘로 할까?]
이교수가 묻자
[동동주 있네요, 이거 먹죠? 이곳 분위기도 이 술이 어울릴것 같은데요]
경준이 대답하자
[그래 그러면 그거 시키고, 시우는 칵테일 한잔 마셔. 난 술 마실거니까 운전은 시우가 해, 알았지?]
[그러세요]
경준이 물었다.
[교수님은 결혼 안하세요?]
[결혼? 음... 아직 마땅한 사람이 없어서..]
[어떤 사람을 원하시는데요?]
[잘 생기고, 돈 많고, 집안좋고, 마음씨 좋고, 재미있고, 키도 크고, 뭐 이정도?]
[나 죽기전엔 우리 이교수님 시집가는거는 못보겠구나...엉엉엉]
[호호호! 내가 욕심이 좀 과한건가..?]
[교수님! 얼마 안있으면 우리나라도 일반인이 우주여행을 할수 있다는데요.. 돈 부지런히 모으셔서 그때가 되면 제일 먼저 그 우주선을 타세요]
[아니 그건 왜?]
[교수님이 찾는 남자는 이 지구에는 없거든요..히히히히히]
[하하하하하!]
[호호호호호! 그런가..?]
[그래? 그럼.. 경준이의 이상형은 어떤 여자?]
이교수가 물었다.
[음.. 외모는 밉지 않으면 되고요, 성격은 적극적이고 밝은 여자.. 뭐 이정도죠]
[매우 현실적이네.]
[시우는?]
이교수는 한손을 턱에 괸채 시우를 쳐다보며 묻는다.
[글쎄요.. 아직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적이 없어서..]
[시우는 과묵한 편이니까..음.. 여자가 쾌활하고 애교가 많은 여자가 좋지 않을까? 그런 여자가
있는데.. 내가 소개시켜 줄까? 호호호]
[나중에요, 하하하]
[호오! 싫다는 소리는 안하네? 호호호.. 나 잠깐 실례]
이교수가 웃으며 말한후 핸드백을 집어들고 화장실로 향했다.
[야! 걱정마라, 이정도로 맛이 갈 이 형님이 아니다]
[짜슥, 큰 소리는..]
[너 재미 없겠다. 술도 못 마시고..어쩌냐?]
[두 사람 보는것으로도 재미있다, 됐냐?]
[그래, 됐다! 히히히]
[너 실실 웃는걸 보니 맛이 간것 같은데..? 하하하]
시우와 경준이 웃고 떠드는 사이 이교수가 왔다.
[이 술만 마시고 그만 가자]
밖으로 나오자 아까는 조금씩 오던 비가 지금은 거의 폭우 수준으로 쏟아지고 있었다.
[와우! 이거 웬 비가 이렇게 쏟아진다냐]
[주차장 까지 가기도 전에 다 젖겠다]
이 교수는 난감한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 봤다.
[다시 들어가서 좀 기다려 볼까요?]
시우가 걱정스런 얼굴로 묻자
[그칠 비가 아닌데..]
시우는 점퍼를 벗어 이교수에게 입혀주며
[일단 주차장 까지만 뛰죠?]
일행은 뛰어서 주차장 까지 갔다.
달라 붙었고 얼굴도 다 젖었다.
시우와 경준은 말할것도 없이 비 맞은 생쥐 꼴이었다.
[에이! 비싸게 먹은 술 다 깨네..]
[하하하! 아까워서 어쩌냐..?]
이교수가 화장을 고치는 동안 비가 조금 약해진것 같아 차를 출발 시켰다.
[여기서 내려줘, 버스타고 가게]
[그럴래?]
[교수님 안녕히 가세요! 그리고 오늘 즐거웠습니다]
[조심해서 가]
[너도 교수님 잘 모셔다 드리고..그럼 간다!]
차에서 내린 경준은 정류장을 향해 정신없이 뛰어간다.
[그래도 될까요? 저는 모레나 학교에 나갈텐데..]
[왜?]
[내일 아버지 고문 변호사가 오기로 했거든요.. 아무래도 엄마와 둘이서 만나봐야 할것 같아서요]
[그래? 그럼 내일 하루만 택시타지 뭐]
[고맙습니다]
굵은 비가 계속 되는 바람에 시우는 운전에 상당한 조심을 해야만 했다.
한동안 조용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무심코 옆을 돌아다본 시우는, 시트에 기댄채 자신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이교수를 보았다.
갑자기 머쓱함을 느낀 시우는
[제 얼굴에 뭐 묻었어요?]
[아니.. 그냥..]
[..................]
대문 앞에 차를 세우자 이교수는 차에서 내려 대문으로 뛰어갔다.
시우는 그런 이교수를 차창을 통해 내다 보았다.
이교수가 집에 들어가는것을 보고 출발하려고 잠시 기다렸다.
그런데 이교수가 갑자기 창문쪽으로 걸어왔다.
의아한 얼굴로 쳐다보는 시우에게 이교수는 손으로 창문을 내리라고 했다.
시우가 운전석 창문을 내리자 잠시 쳐다보던 이교수는 창문으로 얼굴을 디밀어 시우의 입에 키스를
하는것이 아닌가.
[일단 차에 타세요! 다 젖었어요!]
이 교수는 시우를 쳐다보며 그대로 서 있었다.
[빨리요!]
시우가 큰 소리로 재촉을 하자 이교수는 천천히 걸어 차에 올랐다.
짧은 시간 이었지만 워낙 거센 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이교수는 홀딱 다 젖었다.
시우는 앞 창문에 쏟아져 내라는 비를 보며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시우야..]
시우가 옆으로 돌아보자 거기에는 이교수의 얼굴이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시우도 갑작스런 상황이었으나 젊은 혈기를 가진 청년의 앞에 비에 흠뻑젖어 빗물이 줄줄 흐르는
얼굴로 자신의 얼굴을 쳐다보는 여인을 보자 정신이 없었다.
열에 들뜬 이교수의 눈동자와 바알간 입술을 보자 시우가 그입술을 점령하며 왼손으로는 이교수의
머리를 붙잡았다.
이교수의 입술을 점령한 시우는 혀를 내밀어 입을 열려했고, 여인은 자그만 입을 벌려 남자의
혀를 힘차게 빨아 들였다.
두 사람의 입술은 한치의 틈도 없이 달라 붙은채 그 안에서는 서로의 타액을 삼키기에 바빴다.
두눈을 꼬옥 감은채 두 사람의 숨소리가 점차 고조되며 격정적인 키스를 계속했다.
창문은 두사람이 내뿜는 열기로 인해 희뿌옇게 안개가 서려갔다.
[하아.. 차좀 저 앞으로 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