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AD SON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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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라인(RED LINE)은 솔직히 말해...손도 안댔습니다. ^^;;;;
재미가 없으니 아무래도 손이 안가더군요.
(앞으로 RED 자가 들어가는 제목을 절대 글을 쓰지 말아야겠습니다. --;;)
대신, A BAD SON을 계속 올릴테니 양해바랍니다.
흑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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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균형잡기
엄마와 외박을 한 다음 날,
아버지는 축 늘어진 어깨를 하고 출근을 했고, 엄마는 학교에 가지 않는 나를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 보았다. 하루 밤 사이에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으면, 내 품에 안겨 현실을 걱정하던 엄마의 모습은 온데 간데 없었다. 그런 변화에 대하여 엄마를 탓할 수는 없었다. 나 같이 죄의식을 국 끓여 먹은 변태 같은 놈이나 아무렇지도 않게 생활 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엄마는 돌연변이 변태 자식을 낳은 스스로의 운명이나 저주해야 했다.
“엄마…”
설거지를 하고 있는 엄마를 뒤에서 안으면서 아침의 위용이 여전히 남아 있는 내 성기를 엄마의 엉덩이에 문질렀다. 순간, 엄마의 몸이 경직되었다.
“그… 그러지마…”
“새삼스럽게…..”
“우리 이야기 하자..”
“이야기 할 시기는 다 지난 거 같은데…
난 엄마의 가슴을 만지던 한 손을 내려 치마 속으로 집어 넣어 음부를 압박했다.
“이 속에 아직 내 씨앗들이 들어 있지 않아?”
“……..”
“그래.. 받아들여 엄마.. 어쩔 수 없잖아. 엄마가 고민한 만큼, 나도 어제 밤에 많은 생각을 했어. 그런데, 아무리 많은 생각을 해보아도 결론은 하나야. 어차피 되돌릴 수 없다는 것만 확인했을 뿐이야.”
“그건 우연한 사고일 뿐이야..”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엄마의 음성에는 자신감이 없었다.
“사고라고 하기에는 엄마와 내가 몸을 섞은 회수가 너무 많다고 생각되지 않아?”
“너… 일부러 나에게 그런 거지?”
갑자기 엄마는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일부러 라니? 무슨 말이야……?”
“예전부터 나를 원한 거 아니니?”
“왜 그런 생각을 해?”
“나를 나이트로 데리고 간 것도, 나에게 양주를 먹인 것도…… 모두 의도적으로……”
직감으로 그렇게 말하는 거라면, 여자의 직감이란 무서운 것이었다. 그게 아니라 어제 밤 논리적인 생각으로 도달한 추론이라면 엄마는 머리가 상당히 좋은 것이다. 그러나, 그런 감탄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여기서 밀리면 끝이니까 말이다. 난 엄마의 몸을 힘 주어 돌려세웠다. 너무 세게 돌렸는지 엄마의 몸이 휘청거렸고, 갑작스런 변화에 엄마의 눈은 커질 대로 커져있었다. 충격 받은 사람은 세뇌하기 쉽다. 난 엄마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맞아…!! 의도적이야!! 하지만, 엄마가 거부했다면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어. 여관에 가서 누울 때까지 단 한번이라도 엄마가 거부했다면!!”
내 죄를 엄마 탓으로 돌렸다. 사회 기본 논리상 바른길로 인도하는 것은 부모이지, 자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난 그런 쪽에 참 비상하게도 발달했었다. 당당하게 내 죄를 인정하면서도 교묘하게 상대방을 공범으로 만들던가, 아니 오히려 상대방이 죄책감이 들게끔 했으니까.
“오래 전부터 엄마를 좋아했어. 내 엄마로서가 아니라, 한 여자로서 말이야. 엄마를 가지고 싶었고, 엄마와 사랑을 나누고 싶었어. 하지만, 젠장!!!!!!!! 당신은 내 엄마잖아. 도저히 넘볼 수 없는 내 엄마!! 그것 때문에 내가 얼마나 괴로워 했는지 알아!!?? 예전에 나에게 물었었지? 왜 가출을 했냐고 말이야. 좋아 지금에 와서 말해 줄게. 엄마 때문이야. 엄마가 여자로서 좋아 미치겠는데, 엄마를 좋아하면 안되니까 그랬어!! 그래서 가출했어!!”
거짓말이었다.
난 내가 생각해도 거짓말을 참 잘한다. 거짓말만 잘하는 게 아니라 거짓말이 진실인 것처럼 연기도 엄청 잘한다. 그래서, 가끔은 내 거짓말이 스스로도 진실처럼 느껴졌었다. 내 스스로도 속을 정도라면, 상대방은 오죽할까. 엄마의 시선이 심하게 흔들렸다.
“너 정말 그래서…?”
“그래… 그래서 그랬어. 지금 엄마 마음 알아.. 혼란스럽고, 답답한 그 마음.. 그건 오랜 시간 동안 나를 괴롭히던 것이야. 하지만, 엄마…! 내 말을 믿어.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져. 지금 내가 엄마보다 한결 여유가 있는 것도 그 때문이야. 엄마 보다 더 오랜 시간을 그런 괴로움에 시달렸으니까.”
난 엄마의 입에 내 입을 가져갔다. 엄마의 눈이 스스륵 감기고, 입이 살짝 벌어졌다. 감동적인 키스는 섹스 할 때만큼 격렬할 필요가 없다. 지금 엄마에게 필요한 것은 육체적인 섹스가 아니라 마음의 섹스니까. 사랑이란 것은 별것이 아니다. 강렬한 감동일 뿐이다. 그렇다고 물리적으로 강할 필요는 없다. 그냥 사람의 특성 따라서 하면 된다.
가볍게 혀의 터치를 주고받은 뒤 난 엄마의 입술을 훔치며 입을 떼었다.
역시 경험이 장땡이다. 사랑은 해 볼수록 노련해지고, 더 잘한다. 순진하다는 건 절대 자랑이 아니다. 순진한 놈은 사랑도 못한다. 똥 고집으로 시간 졸라게 잡아 처먹는 노력을 하지 않는 한 말이다. 닳고 닳은 사람은 하얀 백지에 채울 것이 많지만, 순수한 놈은 도무지 채울게 없다. 쥐뿔이나 아는 게 있어야 채우든지 말든지 할게 아닌가?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은 백지에 감동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 내 생각을 증명이나 하 듯 엄마의 시선이 촉촉히 젖어 있었다.
“엄마에게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아. 그냥 이대로 지내면 돼. 내가 그렇듯, 엄마도 나를 아들로만, 혹은 남자로만 보려 하지마. 그런 정의는 엄마 스스로를 힘들게 할 뿐이야. 나를 이성으로 느낄 때는 아들이란 존재는 잊어버리고, 그렇지 않을 때는 반대로 하면 돼. 지금의 엄마와 나에게 있어서는 그게 진실이니까.”
“응……”
엄마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그녀는 분명하게 내 말에 대답했다. 난 엄마의 허리를 한 팔로 강하게 두르며 끌어당기고, 다른 손으로 엄마의 머리를 감싸면서 다시금 키스를 했다. 이번엔 조금 강하고, 깊은 키스였다. 엄마의 얼굴은 꿈을 꾸는 듯 했고, 나에게 자신의 몸을 모두 맡기며 안겨왔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이런 장면 뒤에 거의 대부분 섹스를 한다. 그런데 예전에 막상 해보니까 뒤끝이 깔끔하지가 않았다. 그건 여자가 보수적이면 보수적일수록 그랬고, 사랑과 섹스를 별개로 생각하는 여자일수록 그랬다. 그녀들의 머리 속 메커니즘이 도무지 어떻게 구성이 되어 있는지 심히 의심스러웠지만 어떻게 하랴. 그런 그녀들은 우리나라 사회가 절실하게 바라는 아주 이상적인 여자들인 걸. 하지만, 각종 문학과 드라마에서 키스까지 가는 교육은 잘 시켜 놓아서 키스까지가 그녀들에겐 사랑이란 감정의 최고점이었다. 만약, 섹스 과정도 세세히 보여주고 절정 후 뒤처리 하는 것까지 그녀들에게 교육시켰다면, 그냥 그대로 진행하겠지만, 아쉽게도 그런 일은 1,000년 후에나 가능하지 싶다.
긴 키스를 마친 뒤,
엄마와 시선을 맞추며 엄마를 한 번 더 안은 후 내 방으로 들어갔다. 난 옷을 갈아입고, 학교로 향했다. 엄마와 나의 연애는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외박을 해가면서 까지 5번이나 가진 섹스는 엄마와 나의 전통적인 관계를 깨트리는 역할만 할 뿐이다. 지금부터 하나씩 하나씩 엄마와 나 사이에 추억을 만들어 가야 한다. 피드백을 무척이나 잘하는 여자들은 아름다운 추억에서 자신의 사랑을 더욱 공고하게 만드는 자기최면에 빠지니까 말이다.
물론, 아버지를 이기기에는 꽤 벅차다는 것은 나도 안다. 21년이 무슨 똥개이름도 아니고, 지금의 엄마 나이에 21년을 더하면 64살인데, 과연 그 때도 엄마를……?
그러나 그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대가리 허옇게 변할 때까지 함께할 꺼라 오도방정 떨며 결혼하는 잡년과 잡놈들이 2~3년도 못살고 이혼하는 세상에 말이다. 그런 병신들에 비하면 단물만 빨아먹겠다는 내 생각이 오히려 솔직담백 하지 않을까?
학교로 가는 길에 난 아버지에게 다시 퀵서비스를 보내어 2일 후로 날짜를 지정했다. 엄마와 관계를 치른 이상 아버지에게 더 이상 시간을 줄 이유가 없었다. 계좌는 1학년 여름방학을 이용해 해외여행을 하면서 호기심에 만든 중립국의 계좌를 적어주었다. 이제 날짜에 맞추어 돈이 오기만을 기다리면 되었다.
돈이 안 오면?
당연히 아버지는 파멸이다. 어째건 아버지와 나는 한 집에 살 수 없는 운명이니까 말이다. 세상에 어떤 골빈 녀석이 자신의 여자를 다른 남자와 공유를 하고 싶겠나? 하지만, 심약한 아버지는 돈을 송금할 것이었다. 따라서, 내가 준비할 것은 아버지의 불륜 상대인 그 여자를 솔로로 만드는 일이다. 그 여자의 남편인 우혁수는 지금도 내가 소개해준 여학생과 만나고 있었기에 내가 우혁수의 불륜을 그 여자에게 슬쩍 흘리는 것만으로도 이혼할 것은 뻔했다. 그 여자 스스로도 지금 한참 찔리는 게 많은데, 남편이 외도를 한다는 사실을 알면 왠 떡이냐 하고 달려들 것이었다.
난 학교에 가자마자 우혁수와 만나고 있는 정미를 찾았다.
“무슨 일이야..?”
“그냥 궁금해서…”
“뭐가 궁금해..? 혹시 내 몸이 궁금한 거야? 킥…”
정미는 학교에서는 조신한 인물로 소문이 난 여학생이지만, 사실은 고급 창녀였다. 호텔의 객실 입구에서 60대 할아버지와 키스하는 그녀와 마주쳤는데, 다음 날 그녀는 스스로 나를 찾아와서 함구해 줄 것을 요구하면서 나에게 자신의 비밀을 털어 놓았었다. 물론, 함구의 대가는 언제든 내가 원하면 그녀의 몸을 가지는 조건이었다. 그러나, 그녀 외에도 여자가 많았던 나는 그녀를 5번 정도만 가지고서는 우혁수에게 소개를 시켜주었었다.
“너 지금도 혁수 형 만나지?”
“응… 왜…?”
“사랑하냐?”
“……?”
순간적으로 그림자가 정미의 얼굴을 스쳤다.
“말해봐…… 어때?”
“놀리니? 내가 무슨 사랑이냐?”
정미는 대수롭지 않는 듯 말했지만, 느낌이 상당히 찜찜했다. 하지만, 고급창녀란 것을 알고 있고, 그녀의 단골고객 몇 명을 알고 있는 이상 그 정도 찜찜함은 무시해도 되었다.
“너 돈 벌지 않을래?”
“돈..?”
“그래… 단도직입적으로 말할 게. 너 혁수형 아내한테 걸렸어..”
“…….!!!!!”
정미의 충격을 받은 듯했지만, 금새 표정을 관리했다.
“놀랄 필요는 없다. 그 여자가 보내어서 내가 온 거니까.”
“무슨 일로……?”
“이혼을 결심하고 있나 봐.”
“그 여자가 어떻게 알게 되었는데?”
“그걸 네게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그럼 난 안 들은 걸로 하겠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정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확실히 만만찮은 애였다.
“알았어. 앉아!”
“좋아. 대신 거짓말 할 생각하지마.”
“거짓말 하려고 해도 별로 아는 거 없어. 난 어차피 중계인 일 뿐이니까.”
“그 여자랑 무슨 관계야?”
“관계 없어. 그 여자의 대리인에게서 50만원 받기로 하고 너에게 말만 전해줄 뿐이야.”
“대리인?”
정미는 의외라는 듯 반응했다.
“그래…… 네게 말을 전해주는 것만으로 50만원 받고, 네가 하겠다고 하면 추가로 50만원 받기로 했어.”
“정말이니?”
“거짓말할 이유가 없으니까.”
“말의 앞뒤가 안 맞아. 혁수 오빠를 소개시켜 준 건 너야. 그런데, 오빠 아내의 일을 도와 준다는 건 네가 생각해도 말이 안되지 않아?”
“하하하…… 내가 혁수 형에게 지켜야 될 의리라도 있다고 보는 거냐? 내가 왜?”
난 뻔뻔스럽게 말했다. 그 말이 주효했는지 정미는 더 이상 따지지 않고,
“좋아 용건이나 말해봐.”
라고 했다. 난 미리 준비한 말을 꺼내었다.
“자기를 도와 주면, 위자료에 10%를 주겠다고 하더라.. 물론, 싫으면 안 해도 돼.. 하지만, 네가 혁수 형을 사랑한다면 이번이 기회일 수도 있어.”
내 말에 정미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 사이 난 정미를 찬찬히 뜯어 보았다. 여전히 육체로만 본다면 아랫도리가 후끈하게 달아오를 만큼 매력적이었다. 흔히 말하는 쭉쭉빵빵의 대표주자였다. 그런데, 이런 매력덩어리가 학교에서는 학구파로 통했고, 실제로도 성적은 과 톱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여러 남자의 손떼가 묻은 여자에게 난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정미 역시 내가 닳고 닳은 걸 아는지라 내 몸에만 관심을 나타내었을 뿐이니 서로 피장파장이었다.
잠시 생각에 빠졌던 정미가 입을 떼었다.
“좋아 할게……”
정미는 예상대로 산뜻하게 결정을 했다.
“그래.. 그럼 이제부터 계획을 말해 줄게. 일단 계좌번호를 줘. 착수금으로 300만원이 네 계좌로 입금이 될 거니까.”
“착수금…?”
“그래.. 아무래도 네가 해야 하는 부분이 많아서 그럴 거야. 그 여자는 어느 날 갑자기 너로 인해서 가정을 잃어버리는 역할을 할거거든. 즉, 네가 철저하게 악녀가 되어야 해. 따라서 도중에 네가 의심을 하거나, 마음을 바꾸게 되면 일이 도루묵이니까. 그 여자는 최대한 유리한 입장에 서고 싶어해. 무슨 말인지 이해되니?”
“그래”
정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좋아.. 그럼 계좌번호를 적어줘..”
내 말에 정미는 내게 메모지를 요구하더니 즉석에서 자신의 계좌번호를 적어주었다. 도서관의 자신의 자리로 들어 갈 줄 알았는데, 바로 적어주자 신기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왜……?”
“자신의 계좌번호 외우고 있는 사람은 처음이라서……”
“장난치니? 내가 하는 일을 알면서……“
“현장에서 돈을 주고 받는 거 아니니?”
“그건 팁을 받을 때만…… 기본료는 계좌로만 받아.”
“손님이 총 몇 명이냐?”
“왜?”
“그냥. 말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고마워”
“풋~~ 별게 다 고맙다. 그런데, 오늘 어떠냐?”
난 정미의 몸을 요구했다.
“곧 자격증 시험이라 곤란해. 시험 때는 손님을 받지 않아.”
“난 손님이 아닌데”
“그래서? 그냥 손만 잡고 자려고?”
“애들 소꿉장난 하냐.”
“그러니까.”
“쩝…… 아쉽군.”
“하지만, 정 원한다면 입으로는 해 줄 수 있어..”
“됐어.”
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우리가 일어서자 팔짱을 끼고 캠퍼스를 거닐던 한 쌍이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정미와 난 그 연인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도서관까지 함께 걸어갔다.
“너 오늘부터 혁수 형에게 결혼하자고 해라.”
“그 정도는 알아. 하지만, 실제로 움직이는 건 5일 뒤에 있는 자격증 시험을 치른 이후니까 그렇게 전해. 착수금도 그때까지만 송금하면 돼.”
“그래 알았다. 그렇게 전하마. 그럼 공부해라. 난 강의 들어간다..”
“응….”
수인사를 하며 난 강의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때, 내 어깨를 정미가 툭 쳤다.
“왜?”
“다음 주 수요일 저녁에 시간 비워.”
“시간을?”
“다른 여자랑 약속 잡지 말라고…… 하지만 콘돔은 네가 준비해..”
그렇게 말한 정미는 혀를 내밀며 ‘메롱’하고는 뒤돌아서 재빠르게 도서관 안으로 들어갔다. 상큼하니 기분을 좋게 하는 여자애였지만, 그 머리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종잡을 수 없는 애이기도 했다. 어째든 미끼를 던졌으니 그 미끼를 무느냐 마느냐를 기다려야 한다. 종잡을 수 없는 애이니 만큼 내 말을 그대로 속아 줄 가능성도 있었다. 물론, 내 판단은 정미가 내 말을 한번 비트는 쪽이었다. 어째거나 내 제안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것이니 말이다.
강의를 모두 마친 뒤,
현재 형의 찾아 갔다. 내 계획은 키 포인트는 우혁수의 행동에 달렸다. 즉, 그가 자신의 아내에게 손이 발이 되도록 빌면서 이혼을 거부한다면 일을 다 틀어진다. 정미가 유일한 약점인데, 정미가 나서서 일을 진행하게 되면 다른 약점이 없는 우혁재로선 그런 선택을 할 여지가 충분히 있었기에 그를 적당히 손 볼 필요가 있었다.
“그러니까 그 놈을 실컷 패고 나서 ‘네가 맞은 이유는 정미 때문이야’라고만 하면 된다고?”
“그래.... 하지만, 잘 때려야 돼.. 상처가 나거나 하면 안되니까. 겉으로는 아무런 이상이 없어야 돼.”
“그런 걱정은 마. 근데, 너 요즘 이상하다..”
“뭐가……?”
“무슨 짓을 하고 다니길래 요즘은 하는 부탁마다 이상한 부탁이야..”
“하하하…… 왜 하기 싫어?”
“누가 하기 싫다고 했냐.”
현재 형은 상당히 건방져 져있었다. 이럴 땐, 한번씩 눌러주어야 했다. 난 현재 형의 멱살을 한 손에 움켜 쥐면서 강하게 끌어 당겼다.
“근데, 형 갈수록 무척 건방져지고 있습니다. 아예 나랑 맞먹으려 하는군요. 죽고 싶은가요?”
“가.. 갑자기. 왜… 왜 그래.”
“몰라서 묻는 거야?”
“내...내가 뭘 어쨌다고……”
“머리도 안되고, 주먹으로도 안되면 그냥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해. 내가 언제 형한테 피해주는 부탁 한 적 있어? 응!!?”
“어.. 없어……”
“그럼 잘해. 오늘은 특히 중요하니까. 똘마니들 시키지 말고 직접 하란 말이야. 내가 가르쳐 준 대로만 하면 돼. 만에 하나 그 놈의 몸에 기스라도 나면 형은 내 손에 죽어. 알았어?”
“아.. 알았어.. 그러니까 이 것 좀…… 수.. 숨 막혀.”
난 현재 형이 멱살을 놓고서 다시 이전처럼 친근한 어투로 말했다.
“그러니까 잘하란 말이야. 실수하지 말고……”
“그래.”
기가 푹 죽은 현재 형은 힘없이 대답했다.
언젠가 현재 형은 자신의 똘마니 7명을 데리고 나에게 도전을 한 적이 있었다. 똘마니들을 믿었는지 기세등등 했던 형은 내가 3분도 안되어 그 녀석들을 모두 한 주먹에 눕혀 버리자 나에게 완전히 질려서 그 다음부터는 나에게 아예 대들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머리가 나쁜지 내가 ‘형! 형!’하면서 친근하게 대하면 가끔씩 나랑 맞먹으려 했다. 양아치 새끼들은 이래서 싫다.
현재 형과 헤어진 난 곧장 혁수 형과 술 약속을 한 장소로 발길을 옮겼다.
물론, 혁수 형은 그 곳에 오기 전, 현재 형의 패거리를 만나서 두들겨 맞을 터였다. 그러나 그 보다는 현재 형 패거리가 조성하는 분위기가 맞는 고통보다 더 크게 혁수 형을 괴롭힐 것이다. 실력은 쥐뿔도 없으면서 분위기만큼은 거의 조폭이니까 말이다.
예상대로 혁수 형은 약속시간보다 40분 가량 늦게 도착했다.
“왜 이제 와?”
난 짜증을 내며 혁수형을 바라보았는데, 그의 얼굴은 완전히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그는 내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술을 들이켰다. 단순에 5잔을 연속으로 맥주를 비우고서야 혁수형은 입을 열었다.
“너 사실대로 말해.”
“뭐를……?”
“정미 진짜 어떤 애야?”
“뭐가 어떤 애야? 좋은 애지.”
“정말이야?”
혁수 형의 눈은 불이라도 뿜어낼 것처럼 이글거렸다.
“정말이야. 단지……”
“단지? 단지 뭐?”
“그 애를 어떤 조폭 녀석이 좋아하나 봐. 하지만, 현지는 관심도 없어.”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혁수 형은 머리를 감싸며 팔꿈치로 탁자를 내리쳤다.
- 쾅 -
“젠장!!!!!!!!!”
일은 정말 재미 없을 정도로 잘 진행이 되어갔다. 혁수 형의 모습에서는 ‘세상은 약게 살아야 한다’며 열변을 토하던 간웅의 모습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 병신!! 조디 단속하는 법부터 배워. 넌 간웅이 아니라, 양아치야 -
혁수 형은 자기 자랑이 많은 사람이었다. 남에게 인정 받는 것을 좋아하는 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가 거의 생활 신조였다. 하지만, 어찌나 얄팍한 신조인지 스스로 다 떠벌리는 개똥만큼의 가치도 없는 것이었다. 즉, 남에게 다 들키는 수단과 방법만을 사용하는 양아치 수준이었다.
“형!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조금 전에 그 조폭이란 놈을 만났어.”
“조폭……?”
난 크게 놀라는 척을 했다.
“그래 이 새끼야. 너 왜 진작 이야기 안 했어?”
혁수 형은 갑자기 테이블을 가로질러 내 멱살을 잡았다. 두 눈은 원망과 공포로 가득했다. 그럴수록 적당한 연기가 필요한 법이다.
“나..나도 얼마 전에 안 거야.”
“거짓말 마!!! 너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지? 그렇지?!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예쁜 애를 나에게 소개시켜 줄 리가 없잖아!!!”
“오해야……”
“그래.. 처음부터 꺼림직했어. 예뻐도 너무 예뻤으니까.. 골빈 녀석이 아닌 이상 그런 애를 나에게 소개시켜 준다는 게 말이나 돼!!??”
“그만해!!!”
난 혁수 형의 손목을 잡고서 뒤로 강하게 밀었다. 너무 세게 밀었는지 털썩 주저 앉은 형의 의자가 뒤로 넘어 질 듯 밀려났다.
“오해 마!! 나도 정말 몰랐으니까. 얼마 전에 학교에서 조폭 놈이 난동을 부린 후에야 안거야. 그 전에는 그런 녀석이 있는 줄도 몰랐어.”
“미안하다. 내가 흥분했나 봐. 하지만,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걱정하게 뭐 있어? 헤어지면 되잖아. 어차피 형은 결혼한 몸이니까.”
“모르면 잠자코 있어!!!”
“왜 나한테 성질이야? 자꾸 그렇게 나오면 나 이 자리에 못 있어!!!”
난 혁수 형을 강하게 노려보았다. 어릴 때부터, 세상은 나이로 살아가는 게 아니란 것을 알았다. 상대방의 기를 꺾으면 누구라도 내 발 아래에 둘 수 있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우치고 있었다.
“알았어. 나도 모르게 그만…… 네 잘못도 아닌데 말이야.”
금새 혁수 형은 꼬리를 내렸다.
“알면 됐어! 어째든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정미랑 헤어져. 안 그래도 그 조폭 녀석의 이야기 해주려고 오늘 만나자고 한 거였어.”
“그게 문제야!!!”
“문제라니? 조폭 녀석이 형보고 정미랑 헤어지지 말래?”
“그런 게 아냐. 오늘 오후에 정미가 나를 찾아 왔었어.”
“근무 시간에도 자주 만나나 보네..”
“아냐. 처음이었어. 근무시간에 그 애가 찾아 온 건. 그런데, 갑자기 찾아와서는 결혼 이야기를 하더라. 나 보고 이혼을 하고서 자기와 결혼을 해 달래. ”
“결혼을? 말도 안돼. 나이차이가 얼마인데……”
“큭큭…… 나도 그렇게 말했지. 아니, 전부터 헤어질 결심을 했기 때문에 생각할 것도 없이 거절을 했어.”
“그런데?”
“그랬더니 자기는 그럴 수 없다는 거야. 내가 못하면 자기가 아내한테 말을 하겠다는 거야.”
“돌았군. 그런데, 정미가 왜 갑자기 그렇게 나오는 거야?”
“아이를 가졌대. 크큭~”
“아이를……?”
그 말에는 나도 놀랐다. 위험한 발상이었다. 아니 정미의 속내가 갑자기 의심스러워 졌다. 임신을 거론한 것은 혁수 형을 완전하게 코너로 몰아 붙이고, 보다 확실하게 일을 진행시키는 역할을 하겠지만, 코너에 몰린 쥐는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적을 몰아 치더라도 그가 도망칠 수 있는 퇴로 하나 정도는 열어 놓아야 하는 법인데. 지금 혁수 형의 입장에서는 완전히 사면초가였다. 정미의 임신 소식은 혁수 형에게 직장의 위협까지 느끼게 만들 것이니까 말이다. 공무원에게 있어 여자문제는 심각하다. 더구나, 상대가 한참이나 어린 애라면 더욱 말할 나위도 없다.
“아닐 거야..”
“아니긴 뭐가 아냐!!!”
“내 말 믿어. 정미의 임신은 사실이 아닐 거야. 아마 그 조폭 녀석에게서 도망치고 싶어서 그 애도 발악을 하는 걸 거야.”
“그..그럴까?”
“그래. 내 말이 맞을 거야. 정미는 꿈이 큰 애야. 그런데 벌써부터 임신을 해서 가정에 들어 앉는 짓을 할 리가 없잖아. 설령, 실수로 임신을 했다고 해도 형에게 말도 하지 않고 낙태를 해버릴 애야.”
“그렇겠지……? 그 애의 꿈은 나도 알아.”
“그래. 게다가 올해 어학연수 신청까지 했는데 갑자기 임신이라니 말이나 돼?”
“맞아. 마..말이 안돼 긴 해.”
하지만, 혁수 형의 얼굴 표정은 깔끔하지를 않았다. 아무래도 이 멍청한 새끼가 피임도 안하고 정미와 관계를 가진 것이 분명했다.
“형이 실수한 적 있어?”
“실수 라니?”
“피임 안 한 적이 있었냐고!”
“그..야 정미가 괜찮다고 하는 날에는……”
“그럼 위험하다고 한 날에는?”
“어..없어……”
“뭐야. 그 어정쩡한 대답은……?”
내 말에 혁수 형은 갑자기 자기 머리를 쥐어 뜯듯이 감쌌다.
“모르겠어!! 한 것 같기도 하고, 안 한 것 같기도 하고……”
“젠장! 그럼 정미 말이 맞을 수도 있다는 거잖아!!”
나도 기분이 나빠졌다. 낮에 보았던 정미의 얼굴을 스쳐간 그림자가 아무래도 이것을 의미하는 것 같아서 낭패감마저 들었다.
“만약 진짜 임신이면, 형은 어떻게 할 거야?”
“임신이면 안 되는데…….”
혁수 형은 연속으로 술잔을 두 번 비웠다. 나도 술 잔을 비웠다. 정미의 임신이라는 수가 어떻게 작용할지 못내 가슴에 걸렸다. 만약, 정미가 두길 보기를 하는 거라면 아주 위험했다. 혹, 혁수 형 쪽으로 붙기라도 한다면 이건 큰일이 아닐 수 없다. 흔치는 않지만, 임신한 여자는 이판사판으로 막 나가는 수도 있었으니까 말이다.
“임신이면 어떻게 할거야? 정미와 결혼을 할 거야?”
“몰라!!”
“형수에게 정미가 찾아 간다고 했다면서?”
“정말 젠장 이다. 젠장. 젠장. 젠장!!”
이래서 머리 나쁜고, 우유부단한 놈은 바람을 피우면 안 된다. 재미만 볼 줄 알았지. 재미 뒤에 찾아오는 변수에는 완전히 속수무책이니까. 혁수 형은 내 앞에서 괴로워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냥 응석을 부리는 것이다. 어린 아이가 커다란 문제에 부딪혀서 어쩔 줄 몰라 엄마에게 짜증부리 듯 말이다.
“내가 내일 정미와 이야기 해볼 게. 너무 걱정 마.”
“그래 줄래?”
“그래. 형이 정미랑 대화해봐야 언성만 높아 질 거 아냐.”
“고맙다.”
“좀 확실하게 하지 그랬어.”
“하기야 확실히……”
내 말에 혁수 형은 말 꼬리를 흐리며 고개를 숙였다.
-놀구 자빠졌네..-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혁수형이 정미에게 어떻게 했는지 이해가 될 듯 같았다. 아마도, 정미와 만나는 동안에 사랑이란 말을 끝없이 주절거렸을 것이다. 이세상이 무너진다고 해도 자신의 사랑은 변함이 없을 것이란 병신 같은 소리도 찍찍 해대며 말이다. 정미가 정말 즐기려는 사람처럼 자신을 대했기에 더욱 애착을 가지면서 더 집착을 했을 터이다. 멍청한 놈들은 잡히지 않는 여자에 대하여 더 집착하는 법이니까.
하지만, 여자도 그리 똑똑한 것은 못되므로, 남자가 시간을 두고 반복을 하면 마음이 닫힌 여자라도 마음을 열게 마련이다. 그게 거짓일거란 의심을 하면서도 말이다. 정미 역시 그랬을 터이다. 그래서 ‘임신’이란 강수를 써본 것인지 모른다. 확인 차원에서 말이다. 진짜 임신인지, 확인용 가라 임신인지는 확인을 해보아야 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만약 진짜 임신이라면? 이건 생각만으로도 머리가 복잡해진다. 정미는 그렇게 쉬운 여자가 아니다. 가임 기간에 강간을 당하지 않는 한 그 애가 실수로 임신할 확률은 아주 낮다. 아니, 솔직히 난 가능성이 없다고 확신한다. 그런 애가 만약 임신을 했다면 그건 완전히 의도적인 것이다. 어떤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서 말이다. 그렇다면, 혁수형은 일단 제외다. 이 인간은 돈을 잘 쓴다는 것과 나를 제외한 정미가 만나는 사람 중에 가장 젊은 사람이란 것만 빼면 손톱만큼의 매력도 없으니까 말이다. 이건 정미 스스로가 나에게 말했던 부분이기도 했다. 그럼 누구의 아이? 아니, 그 것보다는 혁수형의 아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임신을 혁수형을 협박하는데 사용한다는 것이 더 큰 의문이었다. 목적을 가지고 임신한 거라면 그건 멍청한 짓에 해당하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임신을 기정사실화 했을 때, 남은 상황은 강간과 극히 희박한 실수 두 가지뿐. 아무래도 정미의 임신이야기는 거짓말일 것 같았다. 그렇다면, 정미가 임신 이야기를 꺼낸 것은 뭔가 낌새를 체고 혁수형과 나를 놓고 저울질을 하는 것으로 이해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즉, 미끼를 물긴 물었는데, 아차 하다간 미끼만 빼앗길지 모를 상황이었다.
2잔을 비우고서 난 화장실로 가는 척하며, 밖으로 나와 정미에게 전화를 걸렀다.
“정미냐?”
“응. 왠 일이야?”
“알면서 모르는 척 하지마. 너 무슨 심보야?”
“심보? 무슨 말을 그렇게 하니. 이상한 말 하려거든 끊어.”
“이상한 소리는 네가 먼저 했잖아.”
내 말에 정미는 잠시 말이 없다가 입을 열었다.
“임신 이야기 들었니?”
“그래”
“풋~~ 자세한 이야기는 수요일에 하자..”
확실히 정미는 무엇인가 감을 잡은 듯 했다. 이건 완전히 나와 거래를 하자는 투였다. 하지만, 뭐든 확실한 것이 좋은 법이다.
“얼마를 원해?”
“이제야 말이 통하네. 두 배로 올려 줘.”
“20%?”
“응…. 단, 착수금은 별개야.. 그렇게만 해 준다면 네 말대로 할 게. 그 여자와 협상하거나 하는 일 없이 말이야.”
“돈만 원한다?”
“그래. 내막 같은 것은 나도 궁금하지 않아.”
예상대로 정미는 확실하게 미끼를 물었다. 최악의 상황에서 혁수 형이 지불해야 하는 위자료는 5,000만원 가량으로 계산이 되었다. 물론, 재산분할은 별개이다.
“글세, 너무 과하지 않을까?”
“그럴까? 사랑을 포기하는 대가로는 싼 편 아니니?”
“어설퍼…… 차라리 임신을 했다고 해.“
“풋~~ 어째건.”
“확실히 대답해!”
“뭘?”
“너 임신이야? 아니야?”
“아닐 거라고 생각하고 있으면서 왜 물어?”
“임신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물은 거야.”
“임신이면, 네가 도와주게?”
“아니. 내가 도울 건 없지. 잔금 50만원만 포기하면 되니까.”
“만약, 내가 혁수 오빠를 선택하면 어떻게 할거야?”
정미는 확실히 두길 보기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건 떠보는 말이고 말이다. 정리가 필요했다. 협박일 지라도 말이다.
“너 바보냐?”
“바보냐고? 호호호~~ 그래 보이니?”
“그래. 그래 보여. 그 쪽에서 사람을 통해 나에게 접근했을 정도이면, 네가 어떤 여자인지 정도는 파악했을 거라 생각 안 하니? 네가 혁수형을 선택한다고 해도, 승산은 그 쪽에 있어. 너와 나, 혁수 형까지 우리가 한편이 된다고 해도 이길 수 없다는 말이야. 즉, 네가 형수 형 하나만 바라본다고 해도 그 쪽에서 그렇게 두지 않을 거란 말이야. 네 정체를 혁수 형에게 살짝 흘리는 것만으로도 너와 형수 형 사이는 끝나.”
수화기 저편의 정미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생각할 시간이라면 얼마든지 줄 수 있었다. 정미가 의심이 많은 애인 만큼 스스로 의심을 풀어버릴 만큼의 시간이라면 얼마든지 기다려 줄 수 있었고, 기다려 주어야 했다.
한 참의 시간이 흐른 뒤 정미의 음성이 들렸다.
“그 쪽에서 칼자루를 쥐고 있다면 굳이 나에게 이럴 필요가 있을까?”
당연한 의심이었다.
“역시 바보군! 칼자루를 쥐고 있다고 아무렇게나 휘두르면 자신도 다쳐. 즉, ‘이혼했다’와 ‘이혼당했다’는 틀려. 이혼했다는 독한 이미지를 주지만, 이혼당했다는 상황과 무관하게 동정을 받지. 더구나, 우리나라는 아직까지도 여자에게 인내를 요구해. 남편이 바람을 피건, 첩을 두건 간에 말이야. 따라서, 혁수형 아내의 입장으로선 이미지도 좋게 하면서, 챙길 것은 다 챙기고 싶은 건 당연한 거야.”
내 말이 끝나자 수화기 저편에서 깊은 한 숨이 들려왔다. 느낌상 두길 보기를 포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도 쐐기를 박는 것은 언제나 중요하다.
“아무튼, 난 승산 없는 싸움에 끼어들고 싶지 않아. 네가 혁수 형을 선택할 거라면, 그렇게 해. 단, 나는 전혀 도움을 주지 않을 거야.”
“알았어. 그럼 내 조건이나 그 쪽에 전해 줘.”
“내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야.”
“누가 너 보고 결정을 하라고 했니?”
“흠……”
“왜 대답이 없어?”
“20%는 많아.”
“많건 적건, 네가 상관할 문제가 아니잖아. 넌 그냥 전해주기만 하면 돼.”
정미는 완전히 내 계략에 빠진 듯 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협상뿐이었다.
“착수금 포함 15%가 그 쪽에서 제시한 금액의 마지노선이야.”
“그거 무슨 뜻이야?”
“무슨 뜻은…… 네가 생각하는 그대로지. 금액을 깎은 만큼 내가 먹기로 했었어.”
“정말이야?”
“내가 왜 거짓말 하냐.”
“처음에 거짓말 했잖아.”
“돈 욕심은 너만 있는 게 아니잖아. 그 정도쯤은 이해할 줄 알았는데.”
“좋아. 그럼 15%는 맞는 거지.”
“그래.”
“확인해 볼 수도 있어.”
계략에 빠져서 그런지, 정미는 바보 같은 소리를 연달아 했다.
“하하하…… 판을 다 깨고 싶거든 그렇게 해. 네가 녹음을 할지도 모르는데, 그 쪽에서 퍽이나 네 질문을 확인해 주겠다. 나를 만나러 온 사람도 그 여자의 대리인이었는데 말이야. 머리 좋은 애가 왜 자꾸 이상한 말을 하냐. 아마 네가 그 쪽에 연락을 취하는 낌새라도 보인다면, 그 쪽은 바로 혁수형과 너를 간통죄로 고소할 지도 몰라. 네 말대로 칼자루는 그 쪽에 있으니까. 안전한 길 놔두고 너랑 직접 협상할 이유가 없잖아.”
“지금 너를 통해 협상하고 있는 거 아니니?”
“난 말만 전해 줄 뿐이야. 그리고, 나를 걸고 넘어져도 소용없어. 난 그 대리인의 선글라스 쓴 모습만 알 뿐이니까. 연락처도 몰라. 즉, 나를 잡아다 족쳐도 내가 아는 건 네게 말한 게 전부라는 거지. 증거도 없이 말이야. 물론, 난 너와 혁수형을 도울 마음 없어. 다시 말하지만, 난 승산 없는 싸움에 끼어들지 않아. 나에게 도움 청할 생각 마.”
“계좌로 추적 가능해.”
“아 진짜…… 얌마. 나도 충분히 검토해보고 50만원을 현금으로 받고서 너에게 말하는 거야. 너 고급콜걸이란 건 나도 알고, 그 쪽도 알아. 그런데, 그 계좌로 추적을 한다고? 계좌추적은 공권력을 동원해야 하는데 검사가 ‘얼씨구나 좋다’ 하겠다. 임마. 그리고, 추적해서 뭐를 밝힐 건데? 너랑 협상한 게 무슨 대단한 힘이라도 발휘할 거라 생각하는 거냐? 게다가 그 여자가 전면에 나선 것도 아니고, 그 대리인 놈이 사라지면 너와 내 말을 누가 믿어줘. 그 대리인 놈 보니까 온전 그런 쪽을 직업적으로 하는 놈 같던데. 아무튼 귀찮다. 하든 말든 네 마음대로 해. 어찌되었든 난 50만원 받았고, 말은 전해줬으니까. 그만 끊자.”
“알았어.”
“알았으면 됐어.”
“그 대리인과는 언제 만나?”
“몰라. 오늘 네가 적어준 계좌번호 줬고, 또 언제 연락할 지는 나도 몰라.”
“그럼 연락이 오면, 착수금 포함 20%를 제의해 봐.”
“알았어.”
“그 쪽에서 그렇게 하겠다고 하면, 올라간 5% 중 네게 2%를 줄게.”
“현금으로 말해. 위자료가 얼마인 줄 알고……”
“후후~~ 얼마를 원하는데?”
“착수금 50에 성사 될 경우 300만원”
“그만 둬. 15%로 만족하지 뭐.”
아무래도 정미는 혁수형이 이혼하게 될 경우 지급해야 될 위자료 금액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무서운 년. 낯에 말을 했는데, 그 사이에 그런 것까지 알아보다니. 만나는 사람 중에 변호사가 있는 것은 알았지만, 혁수 형의 재산까지 파악해 줄 사람이 있을 줄은 미처 몰랐다.
“하하하…… 마치 너 위자료 금액을 아는 것 같다.”
“그 정도는 알지.”
“얼마인데?”
“확인해 줄 사실 없어.”
“그럼 성사금액 200만원”
“아니, 착수금 없이 성사금액은 100만원. 그 조건이 아니면 안 해.”
“풋~ 그럼 없던 이야기로 하자.”
“그래. 그러자. 그럼 그 쪽에 착수금 포함 15%로 말해.”
“알았어.”
“그럼 수고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정미는 전화를 끊었다. 지금까지 내 생에 있어서 가장 재수없게 전화를 끝내는 애를 대라고 하면 단연 정미가 독보적이다. 이상하게도 정미의 전화 끊는 소리는 상당히 신경에 거슬렸다.
재미가 없으니 아무래도 손이 안가더군요.
(앞으로 RED 자가 들어가는 제목을 절대 글을 쓰지 말아야겠습니다. --;;)
대신, A BAD SON을 계속 올릴테니 양해바랍니다.
흑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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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균형잡기
엄마와 외박을 한 다음 날,
아버지는 축 늘어진 어깨를 하고 출근을 했고, 엄마는 학교에 가지 않는 나를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 보았다. 하루 밤 사이에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으면, 내 품에 안겨 현실을 걱정하던 엄마의 모습은 온데 간데 없었다. 그런 변화에 대하여 엄마를 탓할 수는 없었다. 나 같이 죄의식을 국 끓여 먹은 변태 같은 놈이나 아무렇지도 않게 생활 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엄마는 돌연변이 변태 자식을 낳은 스스로의 운명이나 저주해야 했다.
“엄마…”
설거지를 하고 있는 엄마를 뒤에서 안으면서 아침의 위용이 여전히 남아 있는 내 성기를 엄마의 엉덩이에 문질렀다. 순간, 엄마의 몸이 경직되었다.
“그… 그러지마…”
“새삼스럽게…..”
“우리 이야기 하자..”
“이야기 할 시기는 다 지난 거 같은데…
난 엄마의 가슴을 만지던 한 손을 내려 치마 속으로 집어 넣어 음부를 압박했다.
“이 속에 아직 내 씨앗들이 들어 있지 않아?”
“……..”
“그래.. 받아들여 엄마.. 어쩔 수 없잖아. 엄마가 고민한 만큼, 나도 어제 밤에 많은 생각을 했어. 그런데, 아무리 많은 생각을 해보아도 결론은 하나야. 어차피 되돌릴 수 없다는 것만 확인했을 뿐이야.”
“그건 우연한 사고일 뿐이야..”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엄마의 음성에는 자신감이 없었다.
“사고라고 하기에는 엄마와 내가 몸을 섞은 회수가 너무 많다고 생각되지 않아?”
“너… 일부러 나에게 그런 거지?”
갑자기 엄마는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일부러 라니? 무슨 말이야……?”
“예전부터 나를 원한 거 아니니?”
“왜 그런 생각을 해?”
“나를 나이트로 데리고 간 것도, 나에게 양주를 먹인 것도…… 모두 의도적으로……”
직감으로 그렇게 말하는 거라면, 여자의 직감이란 무서운 것이었다. 그게 아니라 어제 밤 논리적인 생각으로 도달한 추론이라면 엄마는 머리가 상당히 좋은 것이다. 그러나, 그런 감탄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여기서 밀리면 끝이니까 말이다. 난 엄마의 몸을 힘 주어 돌려세웠다. 너무 세게 돌렸는지 엄마의 몸이 휘청거렸고, 갑작스런 변화에 엄마의 눈은 커질 대로 커져있었다. 충격 받은 사람은 세뇌하기 쉽다. 난 엄마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맞아…!! 의도적이야!! 하지만, 엄마가 거부했다면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어. 여관에 가서 누울 때까지 단 한번이라도 엄마가 거부했다면!!”
내 죄를 엄마 탓으로 돌렸다. 사회 기본 논리상 바른길로 인도하는 것은 부모이지, 자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난 그런 쪽에 참 비상하게도 발달했었다. 당당하게 내 죄를 인정하면서도 교묘하게 상대방을 공범으로 만들던가, 아니 오히려 상대방이 죄책감이 들게끔 했으니까.
“오래 전부터 엄마를 좋아했어. 내 엄마로서가 아니라, 한 여자로서 말이야. 엄마를 가지고 싶었고, 엄마와 사랑을 나누고 싶었어. 하지만, 젠장!!!!!!!! 당신은 내 엄마잖아. 도저히 넘볼 수 없는 내 엄마!! 그것 때문에 내가 얼마나 괴로워 했는지 알아!!?? 예전에 나에게 물었었지? 왜 가출을 했냐고 말이야. 좋아 지금에 와서 말해 줄게. 엄마 때문이야. 엄마가 여자로서 좋아 미치겠는데, 엄마를 좋아하면 안되니까 그랬어!! 그래서 가출했어!!”
거짓말이었다.
난 내가 생각해도 거짓말을 참 잘한다. 거짓말만 잘하는 게 아니라 거짓말이 진실인 것처럼 연기도 엄청 잘한다. 그래서, 가끔은 내 거짓말이 스스로도 진실처럼 느껴졌었다. 내 스스로도 속을 정도라면, 상대방은 오죽할까. 엄마의 시선이 심하게 흔들렸다.
“너 정말 그래서…?”
“그래… 그래서 그랬어. 지금 엄마 마음 알아.. 혼란스럽고, 답답한 그 마음.. 그건 오랜 시간 동안 나를 괴롭히던 것이야. 하지만, 엄마…! 내 말을 믿어.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져. 지금 내가 엄마보다 한결 여유가 있는 것도 그 때문이야. 엄마 보다 더 오랜 시간을 그런 괴로움에 시달렸으니까.”
난 엄마의 입에 내 입을 가져갔다. 엄마의 눈이 스스륵 감기고, 입이 살짝 벌어졌다. 감동적인 키스는 섹스 할 때만큼 격렬할 필요가 없다. 지금 엄마에게 필요한 것은 육체적인 섹스가 아니라 마음의 섹스니까. 사랑이란 것은 별것이 아니다. 강렬한 감동일 뿐이다. 그렇다고 물리적으로 강할 필요는 없다. 그냥 사람의 특성 따라서 하면 된다.
가볍게 혀의 터치를 주고받은 뒤 난 엄마의 입술을 훔치며 입을 떼었다.
역시 경험이 장땡이다. 사랑은 해 볼수록 노련해지고, 더 잘한다. 순진하다는 건 절대 자랑이 아니다. 순진한 놈은 사랑도 못한다. 똥 고집으로 시간 졸라게 잡아 처먹는 노력을 하지 않는 한 말이다. 닳고 닳은 사람은 하얀 백지에 채울 것이 많지만, 순수한 놈은 도무지 채울게 없다. 쥐뿔이나 아는 게 있어야 채우든지 말든지 할게 아닌가?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은 백지에 감동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 내 생각을 증명이나 하 듯 엄마의 시선이 촉촉히 젖어 있었다.
“엄마에게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아. 그냥 이대로 지내면 돼. 내가 그렇듯, 엄마도 나를 아들로만, 혹은 남자로만 보려 하지마. 그런 정의는 엄마 스스로를 힘들게 할 뿐이야. 나를 이성으로 느낄 때는 아들이란 존재는 잊어버리고, 그렇지 않을 때는 반대로 하면 돼. 지금의 엄마와 나에게 있어서는 그게 진실이니까.”
“응……”
엄마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그녀는 분명하게 내 말에 대답했다. 난 엄마의 허리를 한 팔로 강하게 두르며 끌어당기고, 다른 손으로 엄마의 머리를 감싸면서 다시금 키스를 했다. 이번엔 조금 강하고, 깊은 키스였다. 엄마의 얼굴은 꿈을 꾸는 듯 했고, 나에게 자신의 몸을 모두 맡기며 안겨왔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이런 장면 뒤에 거의 대부분 섹스를 한다. 그런데 예전에 막상 해보니까 뒤끝이 깔끔하지가 않았다. 그건 여자가 보수적이면 보수적일수록 그랬고, 사랑과 섹스를 별개로 생각하는 여자일수록 그랬다. 그녀들의 머리 속 메커니즘이 도무지 어떻게 구성이 되어 있는지 심히 의심스러웠지만 어떻게 하랴. 그런 그녀들은 우리나라 사회가 절실하게 바라는 아주 이상적인 여자들인 걸. 하지만, 각종 문학과 드라마에서 키스까지 가는 교육은 잘 시켜 놓아서 키스까지가 그녀들에겐 사랑이란 감정의 최고점이었다. 만약, 섹스 과정도 세세히 보여주고 절정 후 뒤처리 하는 것까지 그녀들에게 교육시켰다면, 그냥 그대로 진행하겠지만, 아쉽게도 그런 일은 1,000년 후에나 가능하지 싶다.
긴 키스를 마친 뒤,
엄마와 시선을 맞추며 엄마를 한 번 더 안은 후 내 방으로 들어갔다. 난 옷을 갈아입고, 학교로 향했다. 엄마와 나의 연애는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외박을 해가면서 까지 5번이나 가진 섹스는 엄마와 나의 전통적인 관계를 깨트리는 역할만 할 뿐이다. 지금부터 하나씩 하나씩 엄마와 나 사이에 추억을 만들어 가야 한다. 피드백을 무척이나 잘하는 여자들은 아름다운 추억에서 자신의 사랑을 더욱 공고하게 만드는 자기최면에 빠지니까 말이다.
물론, 아버지를 이기기에는 꽤 벅차다는 것은 나도 안다. 21년이 무슨 똥개이름도 아니고, 지금의 엄마 나이에 21년을 더하면 64살인데, 과연 그 때도 엄마를……?
그러나 그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대가리 허옇게 변할 때까지 함께할 꺼라 오도방정 떨며 결혼하는 잡년과 잡놈들이 2~3년도 못살고 이혼하는 세상에 말이다. 그런 병신들에 비하면 단물만 빨아먹겠다는 내 생각이 오히려 솔직담백 하지 않을까?
학교로 가는 길에 난 아버지에게 다시 퀵서비스를 보내어 2일 후로 날짜를 지정했다. 엄마와 관계를 치른 이상 아버지에게 더 이상 시간을 줄 이유가 없었다. 계좌는 1학년 여름방학을 이용해 해외여행을 하면서 호기심에 만든 중립국의 계좌를 적어주었다. 이제 날짜에 맞추어 돈이 오기만을 기다리면 되었다.
돈이 안 오면?
당연히 아버지는 파멸이다. 어째건 아버지와 나는 한 집에 살 수 없는 운명이니까 말이다. 세상에 어떤 골빈 녀석이 자신의 여자를 다른 남자와 공유를 하고 싶겠나? 하지만, 심약한 아버지는 돈을 송금할 것이었다. 따라서, 내가 준비할 것은 아버지의 불륜 상대인 그 여자를 솔로로 만드는 일이다. 그 여자의 남편인 우혁수는 지금도 내가 소개해준 여학생과 만나고 있었기에 내가 우혁수의 불륜을 그 여자에게 슬쩍 흘리는 것만으로도 이혼할 것은 뻔했다. 그 여자 스스로도 지금 한참 찔리는 게 많은데, 남편이 외도를 한다는 사실을 알면 왠 떡이냐 하고 달려들 것이었다.
난 학교에 가자마자 우혁수와 만나고 있는 정미를 찾았다.
“무슨 일이야..?”
“그냥 궁금해서…”
“뭐가 궁금해..? 혹시 내 몸이 궁금한 거야? 킥…”
정미는 학교에서는 조신한 인물로 소문이 난 여학생이지만, 사실은 고급 창녀였다. 호텔의 객실 입구에서 60대 할아버지와 키스하는 그녀와 마주쳤는데, 다음 날 그녀는 스스로 나를 찾아와서 함구해 줄 것을 요구하면서 나에게 자신의 비밀을 털어 놓았었다. 물론, 함구의 대가는 언제든 내가 원하면 그녀의 몸을 가지는 조건이었다. 그러나, 그녀 외에도 여자가 많았던 나는 그녀를 5번 정도만 가지고서는 우혁수에게 소개를 시켜주었었다.
“너 지금도 혁수 형 만나지?”
“응… 왜…?”
“사랑하냐?”
“……?”
순간적으로 그림자가 정미의 얼굴을 스쳤다.
“말해봐…… 어때?”
“놀리니? 내가 무슨 사랑이냐?”
정미는 대수롭지 않는 듯 말했지만, 느낌이 상당히 찜찜했다. 하지만, 고급창녀란 것을 알고 있고, 그녀의 단골고객 몇 명을 알고 있는 이상 그 정도 찜찜함은 무시해도 되었다.
“너 돈 벌지 않을래?”
“돈..?”
“그래… 단도직입적으로 말할 게. 너 혁수형 아내한테 걸렸어..”
“…….!!!!!”
정미의 충격을 받은 듯했지만, 금새 표정을 관리했다.
“놀랄 필요는 없다. 그 여자가 보내어서 내가 온 거니까.”
“무슨 일로……?”
“이혼을 결심하고 있나 봐.”
“그 여자가 어떻게 알게 되었는데?”
“그걸 네게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그럼 난 안 들은 걸로 하겠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정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확실히 만만찮은 애였다.
“알았어. 앉아!”
“좋아. 대신 거짓말 할 생각하지마.”
“거짓말 하려고 해도 별로 아는 거 없어. 난 어차피 중계인 일 뿐이니까.”
“그 여자랑 무슨 관계야?”
“관계 없어. 그 여자의 대리인에게서 50만원 받기로 하고 너에게 말만 전해줄 뿐이야.”
“대리인?”
정미는 의외라는 듯 반응했다.
“그래…… 네게 말을 전해주는 것만으로 50만원 받고, 네가 하겠다고 하면 추가로 50만원 받기로 했어.”
“정말이니?”
“거짓말할 이유가 없으니까.”
“말의 앞뒤가 안 맞아. 혁수 오빠를 소개시켜 준 건 너야. 그런데, 오빠 아내의 일을 도와 준다는 건 네가 생각해도 말이 안되지 않아?”
“하하하…… 내가 혁수 형에게 지켜야 될 의리라도 있다고 보는 거냐? 내가 왜?”
난 뻔뻔스럽게 말했다. 그 말이 주효했는지 정미는 더 이상 따지지 않고,
“좋아 용건이나 말해봐.”
라고 했다. 난 미리 준비한 말을 꺼내었다.
“자기를 도와 주면, 위자료에 10%를 주겠다고 하더라.. 물론, 싫으면 안 해도 돼.. 하지만, 네가 혁수 형을 사랑한다면 이번이 기회일 수도 있어.”
내 말에 정미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 사이 난 정미를 찬찬히 뜯어 보았다. 여전히 육체로만 본다면 아랫도리가 후끈하게 달아오를 만큼 매력적이었다. 흔히 말하는 쭉쭉빵빵의 대표주자였다. 그런데, 이런 매력덩어리가 학교에서는 학구파로 통했고, 실제로도 성적은 과 톱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여러 남자의 손떼가 묻은 여자에게 난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정미 역시 내가 닳고 닳은 걸 아는지라 내 몸에만 관심을 나타내었을 뿐이니 서로 피장파장이었다.
잠시 생각에 빠졌던 정미가 입을 떼었다.
“좋아 할게……”
정미는 예상대로 산뜻하게 결정을 했다.
“그래.. 그럼 이제부터 계획을 말해 줄게. 일단 계좌번호를 줘. 착수금으로 300만원이 네 계좌로 입금이 될 거니까.”
“착수금…?”
“그래.. 아무래도 네가 해야 하는 부분이 많아서 그럴 거야. 그 여자는 어느 날 갑자기 너로 인해서 가정을 잃어버리는 역할을 할거거든. 즉, 네가 철저하게 악녀가 되어야 해. 따라서 도중에 네가 의심을 하거나, 마음을 바꾸게 되면 일이 도루묵이니까. 그 여자는 최대한 유리한 입장에 서고 싶어해. 무슨 말인지 이해되니?”
“그래”
정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좋아.. 그럼 계좌번호를 적어줘..”
내 말에 정미는 내게 메모지를 요구하더니 즉석에서 자신의 계좌번호를 적어주었다. 도서관의 자신의 자리로 들어 갈 줄 알았는데, 바로 적어주자 신기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왜……?”
“자신의 계좌번호 외우고 있는 사람은 처음이라서……”
“장난치니? 내가 하는 일을 알면서……“
“현장에서 돈을 주고 받는 거 아니니?”
“그건 팁을 받을 때만…… 기본료는 계좌로만 받아.”
“손님이 총 몇 명이냐?”
“왜?”
“그냥. 말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고마워”
“풋~~ 별게 다 고맙다. 그런데, 오늘 어떠냐?”
난 정미의 몸을 요구했다.
“곧 자격증 시험이라 곤란해. 시험 때는 손님을 받지 않아.”
“난 손님이 아닌데”
“그래서? 그냥 손만 잡고 자려고?”
“애들 소꿉장난 하냐.”
“그러니까.”
“쩝…… 아쉽군.”
“하지만, 정 원한다면 입으로는 해 줄 수 있어..”
“됐어.”
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우리가 일어서자 팔짱을 끼고 캠퍼스를 거닐던 한 쌍이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정미와 난 그 연인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도서관까지 함께 걸어갔다.
“너 오늘부터 혁수 형에게 결혼하자고 해라.”
“그 정도는 알아. 하지만, 실제로 움직이는 건 5일 뒤에 있는 자격증 시험을 치른 이후니까 그렇게 전해. 착수금도 그때까지만 송금하면 돼.”
“그래 알았다. 그렇게 전하마. 그럼 공부해라. 난 강의 들어간다..”
“응….”
수인사를 하며 난 강의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때, 내 어깨를 정미가 툭 쳤다.
“왜?”
“다음 주 수요일 저녁에 시간 비워.”
“시간을?”
“다른 여자랑 약속 잡지 말라고…… 하지만 콘돔은 네가 준비해..”
그렇게 말한 정미는 혀를 내밀며 ‘메롱’하고는 뒤돌아서 재빠르게 도서관 안으로 들어갔다. 상큼하니 기분을 좋게 하는 여자애였지만, 그 머리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종잡을 수 없는 애이기도 했다. 어째든 미끼를 던졌으니 그 미끼를 무느냐 마느냐를 기다려야 한다. 종잡을 수 없는 애이니 만큼 내 말을 그대로 속아 줄 가능성도 있었다. 물론, 내 판단은 정미가 내 말을 한번 비트는 쪽이었다. 어째거나 내 제안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것이니 말이다.
강의를 모두 마친 뒤,
현재 형의 찾아 갔다. 내 계획은 키 포인트는 우혁수의 행동에 달렸다. 즉, 그가 자신의 아내에게 손이 발이 되도록 빌면서 이혼을 거부한다면 일을 다 틀어진다. 정미가 유일한 약점인데, 정미가 나서서 일을 진행하게 되면 다른 약점이 없는 우혁재로선 그런 선택을 할 여지가 충분히 있었기에 그를 적당히 손 볼 필요가 있었다.
“그러니까 그 놈을 실컷 패고 나서 ‘네가 맞은 이유는 정미 때문이야’라고만 하면 된다고?”
“그래.... 하지만, 잘 때려야 돼.. 상처가 나거나 하면 안되니까. 겉으로는 아무런 이상이 없어야 돼.”
“그런 걱정은 마. 근데, 너 요즘 이상하다..”
“뭐가……?”
“무슨 짓을 하고 다니길래 요즘은 하는 부탁마다 이상한 부탁이야..”
“하하하…… 왜 하기 싫어?”
“누가 하기 싫다고 했냐.”
현재 형은 상당히 건방져 져있었다. 이럴 땐, 한번씩 눌러주어야 했다. 난 현재 형의 멱살을 한 손에 움켜 쥐면서 강하게 끌어 당겼다.
“근데, 형 갈수록 무척 건방져지고 있습니다. 아예 나랑 맞먹으려 하는군요. 죽고 싶은가요?”
“가.. 갑자기. 왜… 왜 그래.”
“몰라서 묻는 거야?”
“내...내가 뭘 어쨌다고……”
“머리도 안되고, 주먹으로도 안되면 그냥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해. 내가 언제 형한테 피해주는 부탁 한 적 있어? 응!!?”
“어.. 없어……”
“그럼 잘해. 오늘은 특히 중요하니까. 똘마니들 시키지 말고 직접 하란 말이야. 내가 가르쳐 준 대로만 하면 돼. 만에 하나 그 놈의 몸에 기스라도 나면 형은 내 손에 죽어. 알았어?”
“아.. 알았어.. 그러니까 이 것 좀…… 수.. 숨 막혀.”
난 현재 형이 멱살을 놓고서 다시 이전처럼 친근한 어투로 말했다.
“그러니까 잘하란 말이야. 실수하지 말고……”
“그래.”
기가 푹 죽은 현재 형은 힘없이 대답했다.
언젠가 현재 형은 자신의 똘마니 7명을 데리고 나에게 도전을 한 적이 있었다. 똘마니들을 믿었는지 기세등등 했던 형은 내가 3분도 안되어 그 녀석들을 모두 한 주먹에 눕혀 버리자 나에게 완전히 질려서 그 다음부터는 나에게 아예 대들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머리가 나쁜지 내가 ‘형! 형!’하면서 친근하게 대하면 가끔씩 나랑 맞먹으려 했다. 양아치 새끼들은 이래서 싫다.
현재 형과 헤어진 난 곧장 혁수 형과 술 약속을 한 장소로 발길을 옮겼다.
물론, 혁수 형은 그 곳에 오기 전, 현재 형의 패거리를 만나서 두들겨 맞을 터였다. 그러나 그 보다는 현재 형 패거리가 조성하는 분위기가 맞는 고통보다 더 크게 혁수 형을 괴롭힐 것이다. 실력은 쥐뿔도 없으면서 분위기만큼은 거의 조폭이니까 말이다.
예상대로 혁수 형은 약속시간보다 40분 가량 늦게 도착했다.
“왜 이제 와?”
난 짜증을 내며 혁수형을 바라보았는데, 그의 얼굴은 완전히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그는 내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술을 들이켰다. 단순에 5잔을 연속으로 맥주를 비우고서야 혁수형은 입을 열었다.
“너 사실대로 말해.”
“뭐를……?”
“정미 진짜 어떤 애야?”
“뭐가 어떤 애야? 좋은 애지.”
“정말이야?”
혁수 형의 눈은 불이라도 뿜어낼 것처럼 이글거렸다.
“정말이야. 단지……”
“단지? 단지 뭐?”
“그 애를 어떤 조폭 녀석이 좋아하나 봐. 하지만, 현지는 관심도 없어.”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혁수 형은 머리를 감싸며 팔꿈치로 탁자를 내리쳤다.
- 쾅 -
“젠장!!!!!!!!!”
일은 정말 재미 없을 정도로 잘 진행이 되어갔다. 혁수 형의 모습에서는 ‘세상은 약게 살아야 한다’며 열변을 토하던 간웅의 모습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 병신!! 조디 단속하는 법부터 배워. 넌 간웅이 아니라, 양아치야 -
혁수 형은 자기 자랑이 많은 사람이었다. 남에게 인정 받는 것을 좋아하는 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가 거의 생활 신조였다. 하지만, 어찌나 얄팍한 신조인지 스스로 다 떠벌리는 개똥만큼의 가치도 없는 것이었다. 즉, 남에게 다 들키는 수단과 방법만을 사용하는 양아치 수준이었다.
“형!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조금 전에 그 조폭이란 놈을 만났어.”
“조폭……?”
난 크게 놀라는 척을 했다.
“그래 이 새끼야. 너 왜 진작 이야기 안 했어?”
혁수 형은 갑자기 테이블을 가로질러 내 멱살을 잡았다. 두 눈은 원망과 공포로 가득했다. 그럴수록 적당한 연기가 필요한 법이다.
“나..나도 얼마 전에 안 거야.”
“거짓말 마!!! 너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지? 그렇지?!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예쁜 애를 나에게 소개시켜 줄 리가 없잖아!!!”
“오해야……”
“그래.. 처음부터 꺼림직했어. 예뻐도 너무 예뻤으니까.. 골빈 녀석이 아닌 이상 그런 애를 나에게 소개시켜 준다는 게 말이나 돼!!??”
“그만해!!!”
난 혁수 형의 손목을 잡고서 뒤로 강하게 밀었다. 너무 세게 밀었는지 털썩 주저 앉은 형의 의자가 뒤로 넘어 질 듯 밀려났다.
“오해 마!! 나도 정말 몰랐으니까. 얼마 전에 학교에서 조폭 놈이 난동을 부린 후에야 안거야. 그 전에는 그런 녀석이 있는 줄도 몰랐어.”
“미안하다. 내가 흥분했나 봐. 하지만,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걱정하게 뭐 있어? 헤어지면 되잖아. 어차피 형은 결혼한 몸이니까.”
“모르면 잠자코 있어!!!”
“왜 나한테 성질이야? 자꾸 그렇게 나오면 나 이 자리에 못 있어!!!”
난 혁수 형을 강하게 노려보았다. 어릴 때부터, 세상은 나이로 살아가는 게 아니란 것을 알았다. 상대방의 기를 꺾으면 누구라도 내 발 아래에 둘 수 있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우치고 있었다.
“알았어. 나도 모르게 그만…… 네 잘못도 아닌데 말이야.”
금새 혁수 형은 꼬리를 내렸다.
“알면 됐어! 어째든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정미랑 헤어져. 안 그래도 그 조폭 녀석의 이야기 해주려고 오늘 만나자고 한 거였어.”
“그게 문제야!!!”
“문제라니? 조폭 녀석이 형보고 정미랑 헤어지지 말래?”
“그런 게 아냐. 오늘 오후에 정미가 나를 찾아 왔었어.”
“근무 시간에도 자주 만나나 보네..”
“아냐. 처음이었어. 근무시간에 그 애가 찾아 온 건. 그런데, 갑자기 찾아와서는 결혼 이야기를 하더라. 나 보고 이혼을 하고서 자기와 결혼을 해 달래. ”
“결혼을? 말도 안돼. 나이차이가 얼마인데……”
“큭큭…… 나도 그렇게 말했지. 아니, 전부터 헤어질 결심을 했기 때문에 생각할 것도 없이 거절을 했어.”
“그런데?”
“그랬더니 자기는 그럴 수 없다는 거야. 내가 못하면 자기가 아내한테 말을 하겠다는 거야.”
“돌았군. 그런데, 정미가 왜 갑자기 그렇게 나오는 거야?”
“아이를 가졌대. 크큭~”
“아이를……?”
그 말에는 나도 놀랐다. 위험한 발상이었다. 아니 정미의 속내가 갑자기 의심스러워 졌다. 임신을 거론한 것은 혁수 형을 완전하게 코너로 몰아 붙이고, 보다 확실하게 일을 진행시키는 역할을 하겠지만, 코너에 몰린 쥐는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적을 몰아 치더라도 그가 도망칠 수 있는 퇴로 하나 정도는 열어 놓아야 하는 법인데. 지금 혁수 형의 입장에서는 완전히 사면초가였다. 정미의 임신 소식은 혁수 형에게 직장의 위협까지 느끼게 만들 것이니까 말이다. 공무원에게 있어 여자문제는 심각하다. 더구나, 상대가 한참이나 어린 애라면 더욱 말할 나위도 없다.
“아닐 거야..”
“아니긴 뭐가 아냐!!!”
“내 말 믿어. 정미의 임신은 사실이 아닐 거야. 아마 그 조폭 녀석에게서 도망치고 싶어서 그 애도 발악을 하는 걸 거야.”
“그..그럴까?”
“그래. 내 말이 맞을 거야. 정미는 꿈이 큰 애야. 그런데 벌써부터 임신을 해서 가정에 들어 앉는 짓을 할 리가 없잖아. 설령, 실수로 임신을 했다고 해도 형에게 말도 하지 않고 낙태를 해버릴 애야.”
“그렇겠지……? 그 애의 꿈은 나도 알아.”
“그래. 게다가 올해 어학연수 신청까지 했는데 갑자기 임신이라니 말이나 돼?”
“맞아. 마..말이 안돼 긴 해.”
하지만, 혁수 형의 얼굴 표정은 깔끔하지를 않았다. 아무래도 이 멍청한 새끼가 피임도 안하고 정미와 관계를 가진 것이 분명했다.
“형이 실수한 적 있어?”
“실수 라니?”
“피임 안 한 적이 있었냐고!”
“그..야 정미가 괜찮다고 하는 날에는……”
“그럼 위험하다고 한 날에는?”
“어..없어……”
“뭐야. 그 어정쩡한 대답은……?”
내 말에 혁수 형은 갑자기 자기 머리를 쥐어 뜯듯이 감쌌다.
“모르겠어!! 한 것 같기도 하고, 안 한 것 같기도 하고……”
“젠장! 그럼 정미 말이 맞을 수도 있다는 거잖아!!”
나도 기분이 나빠졌다. 낮에 보았던 정미의 얼굴을 스쳐간 그림자가 아무래도 이것을 의미하는 것 같아서 낭패감마저 들었다.
“만약 진짜 임신이면, 형은 어떻게 할 거야?”
“임신이면 안 되는데…….”
혁수 형은 연속으로 술잔을 두 번 비웠다. 나도 술 잔을 비웠다. 정미의 임신이라는 수가 어떻게 작용할지 못내 가슴에 걸렸다. 만약, 정미가 두길 보기를 하는 거라면 아주 위험했다. 혹, 혁수 형 쪽으로 붙기라도 한다면 이건 큰일이 아닐 수 없다. 흔치는 않지만, 임신한 여자는 이판사판으로 막 나가는 수도 있었으니까 말이다.
“임신이면 어떻게 할거야? 정미와 결혼을 할 거야?”
“몰라!!”
“형수에게 정미가 찾아 간다고 했다면서?”
“정말 젠장 이다. 젠장. 젠장. 젠장!!”
이래서 머리 나쁜고, 우유부단한 놈은 바람을 피우면 안 된다. 재미만 볼 줄 알았지. 재미 뒤에 찾아오는 변수에는 완전히 속수무책이니까. 혁수 형은 내 앞에서 괴로워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냥 응석을 부리는 것이다. 어린 아이가 커다란 문제에 부딪혀서 어쩔 줄 몰라 엄마에게 짜증부리 듯 말이다.
“내가 내일 정미와 이야기 해볼 게. 너무 걱정 마.”
“그래 줄래?”
“그래. 형이 정미랑 대화해봐야 언성만 높아 질 거 아냐.”
“고맙다.”
“좀 확실하게 하지 그랬어.”
“하기야 확실히……”
내 말에 혁수 형은 말 꼬리를 흐리며 고개를 숙였다.
-놀구 자빠졌네..-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혁수형이 정미에게 어떻게 했는지 이해가 될 듯 같았다. 아마도, 정미와 만나는 동안에 사랑이란 말을 끝없이 주절거렸을 것이다. 이세상이 무너진다고 해도 자신의 사랑은 변함이 없을 것이란 병신 같은 소리도 찍찍 해대며 말이다. 정미가 정말 즐기려는 사람처럼 자신을 대했기에 더욱 애착을 가지면서 더 집착을 했을 터이다. 멍청한 놈들은 잡히지 않는 여자에 대하여 더 집착하는 법이니까.
하지만, 여자도 그리 똑똑한 것은 못되므로, 남자가 시간을 두고 반복을 하면 마음이 닫힌 여자라도 마음을 열게 마련이다. 그게 거짓일거란 의심을 하면서도 말이다. 정미 역시 그랬을 터이다. 그래서 ‘임신’이란 강수를 써본 것인지 모른다. 확인 차원에서 말이다. 진짜 임신인지, 확인용 가라 임신인지는 확인을 해보아야 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만약 진짜 임신이라면? 이건 생각만으로도 머리가 복잡해진다. 정미는 그렇게 쉬운 여자가 아니다. 가임 기간에 강간을 당하지 않는 한 그 애가 실수로 임신할 확률은 아주 낮다. 아니, 솔직히 난 가능성이 없다고 확신한다. 그런 애가 만약 임신을 했다면 그건 완전히 의도적인 것이다. 어떤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서 말이다. 그렇다면, 혁수형은 일단 제외다. 이 인간은 돈을 잘 쓴다는 것과 나를 제외한 정미가 만나는 사람 중에 가장 젊은 사람이란 것만 빼면 손톱만큼의 매력도 없으니까 말이다. 이건 정미 스스로가 나에게 말했던 부분이기도 했다. 그럼 누구의 아이? 아니, 그 것보다는 혁수형의 아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임신을 혁수형을 협박하는데 사용한다는 것이 더 큰 의문이었다. 목적을 가지고 임신한 거라면 그건 멍청한 짓에 해당하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임신을 기정사실화 했을 때, 남은 상황은 강간과 극히 희박한 실수 두 가지뿐. 아무래도 정미의 임신이야기는 거짓말일 것 같았다. 그렇다면, 정미가 임신 이야기를 꺼낸 것은 뭔가 낌새를 체고 혁수형과 나를 놓고 저울질을 하는 것으로 이해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즉, 미끼를 물긴 물었는데, 아차 하다간 미끼만 빼앗길지 모를 상황이었다.
2잔을 비우고서 난 화장실로 가는 척하며, 밖으로 나와 정미에게 전화를 걸렀다.
“정미냐?”
“응. 왠 일이야?”
“알면서 모르는 척 하지마. 너 무슨 심보야?”
“심보? 무슨 말을 그렇게 하니. 이상한 말 하려거든 끊어.”
“이상한 소리는 네가 먼저 했잖아.”
내 말에 정미는 잠시 말이 없다가 입을 열었다.
“임신 이야기 들었니?”
“그래”
“풋~~ 자세한 이야기는 수요일에 하자..”
확실히 정미는 무엇인가 감을 잡은 듯 했다. 이건 완전히 나와 거래를 하자는 투였다. 하지만, 뭐든 확실한 것이 좋은 법이다.
“얼마를 원해?”
“이제야 말이 통하네. 두 배로 올려 줘.”
“20%?”
“응…. 단, 착수금은 별개야.. 그렇게만 해 준다면 네 말대로 할 게. 그 여자와 협상하거나 하는 일 없이 말이야.”
“돈만 원한다?”
“그래. 내막 같은 것은 나도 궁금하지 않아.”
예상대로 정미는 확실하게 미끼를 물었다. 최악의 상황에서 혁수 형이 지불해야 하는 위자료는 5,000만원 가량으로 계산이 되었다. 물론, 재산분할은 별개이다.
“글세, 너무 과하지 않을까?”
“그럴까? 사랑을 포기하는 대가로는 싼 편 아니니?”
“어설퍼…… 차라리 임신을 했다고 해.“
“풋~~ 어째건.”
“확실히 대답해!”
“뭘?”
“너 임신이야? 아니야?”
“아닐 거라고 생각하고 있으면서 왜 물어?”
“임신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물은 거야.”
“임신이면, 네가 도와주게?”
“아니. 내가 도울 건 없지. 잔금 50만원만 포기하면 되니까.”
“만약, 내가 혁수 오빠를 선택하면 어떻게 할거야?”
정미는 확실히 두길 보기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건 떠보는 말이고 말이다. 정리가 필요했다. 협박일 지라도 말이다.
“너 바보냐?”
“바보냐고? 호호호~~ 그래 보이니?”
“그래. 그래 보여. 그 쪽에서 사람을 통해 나에게 접근했을 정도이면, 네가 어떤 여자인지 정도는 파악했을 거라 생각 안 하니? 네가 혁수형을 선택한다고 해도, 승산은 그 쪽에 있어. 너와 나, 혁수 형까지 우리가 한편이 된다고 해도 이길 수 없다는 말이야. 즉, 네가 형수 형 하나만 바라본다고 해도 그 쪽에서 그렇게 두지 않을 거란 말이야. 네 정체를 혁수 형에게 살짝 흘리는 것만으로도 너와 형수 형 사이는 끝나.”
수화기 저편의 정미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생각할 시간이라면 얼마든지 줄 수 있었다. 정미가 의심이 많은 애인 만큼 스스로 의심을 풀어버릴 만큼의 시간이라면 얼마든지 기다려 줄 수 있었고, 기다려 주어야 했다.
한 참의 시간이 흐른 뒤 정미의 음성이 들렸다.
“그 쪽에서 칼자루를 쥐고 있다면 굳이 나에게 이럴 필요가 있을까?”
당연한 의심이었다.
“역시 바보군! 칼자루를 쥐고 있다고 아무렇게나 휘두르면 자신도 다쳐. 즉, ‘이혼했다’와 ‘이혼당했다’는 틀려. 이혼했다는 독한 이미지를 주지만, 이혼당했다는 상황과 무관하게 동정을 받지. 더구나, 우리나라는 아직까지도 여자에게 인내를 요구해. 남편이 바람을 피건, 첩을 두건 간에 말이야. 따라서, 혁수형 아내의 입장으로선 이미지도 좋게 하면서, 챙길 것은 다 챙기고 싶은 건 당연한 거야.”
내 말이 끝나자 수화기 저편에서 깊은 한 숨이 들려왔다. 느낌상 두길 보기를 포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도 쐐기를 박는 것은 언제나 중요하다.
“아무튼, 난 승산 없는 싸움에 끼어들고 싶지 않아. 네가 혁수 형을 선택할 거라면, 그렇게 해. 단, 나는 전혀 도움을 주지 않을 거야.”
“알았어. 그럼 내 조건이나 그 쪽에 전해 줘.”
“내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야.”
“누가 너 보고 결정을 하라고 했니?”
“흠……”
“왜 대답이 없어?”
“20%는 많아.”
“많건 적건, 네가 상관할 문제가 아니잖아. 넌 그냥 전해주기만 하면 돼.”
정미는 완전히 내 계략에 빠진 듯 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협상뿐이었다.
“착수금 포함 15%가 그 쪽에서 제시한 금액의 마지노선이야.”
“그거 무슨 뜻이야?”
“무슨 뜻은…… 네가 생각하는 그대로지. 금액을 깎은 만큼 내가 먹기로 했었어.”
“정말이야?”
“내가 왜 거짓말 하냐.”
“처음에 거짓말 했잖아.”
“돈 욕심은 너만 있는 게 아니잖아. 그 정도쯤은 이해할 줄 알았는데.”
“좋아. 그럼 15%는 맞는 거지.”
“그래.”
“확인해 볼 수도 있어.”
계략에 빠져서 그런지, 정미는 바보 같은 소리를 연달아 했다.
“하하하…… 판을 다 깨고 싶거든 그렇게 해. 네가 녹음을 할지도 모르는데, 그 쪽에서 퍽이나 네 질문을 확인해 주겠다. 나를 만나러 온 사람도 그 여자의 대리인이었는데 말이야. 머리 좋은 애가 왜 자꾸 이상한 말을 하냐. 아마 네가 그 쪽에 연락을 취하는 낌새라도 보인다면, 그 쪽은 바로 혁수형과 너를 간통죄로 고소할 지도 몰라. 네 말대로 칼자루는 그 쪽에 있으니까. 안전한 길 놔두고 너랑 직접 협상할 이유가 없잖아.”
“지금 너를 통해 협상하고 있는 거 아니니?”
“난 말만 전해 줄 뿐이야. 그리고, 나를 걸고 넘어져도 소용없어. 난 그 대리인의 선글라스 쓴 모습만 알 뿐이니까. 연락처도 몰라. 즉, 나를 잡아다 족쳐도 내가 아는 건 네게 말한 게 전부라는 거지. 증거도 없이 말이야. 물론, 난 너와 혁수형을 도울 마음 없어. 다시 말하지만, 난 승산 없는 싸움에 끼어들지 않아. 나에게 도움 청할 생각 마.”
“계좌로 추적 가능해.”
“아 진짜…… 얌마. 나도 충분히 검토해보고 50만원을 현금으로 받고서 너에게 말하는 거야. 너 고급콜걸이란 건 나도 알고, 그 쪽도 알아. 그런데, 그 계좌로 추적을 한다고? 계좌추적은 공권력을 동원해야 하는데 검사가 ‘얼씨구나 좋다’ 하겠다. 임마. 그리고, 추적해서 뭐를 밝힐 건데? 너랑 협상한 게 무슨 대단한 힘이라도 발휘할 거라 생각하는 거냐? 게다가 그 여자가 전면에 나선 것도 아니고, 그 대리인 놈이 사라지면 너와 내 말을 누가 믿어줘. 그 대리인 놈 보니까 온전 그런 쪽을 직업적으로 하는 놈 같던데. 아무튼 귀찮다. 하든 말든 네 마음대로 해. 어찌되었든 난 50만원 받았고, 말은 전해줬으니까. 그만 끊자.”
“알았어.”
“알았으면 됐어.”
“그 대리인과는 언제 만나?”
“몰라. 오늘 네가 적어준 계좌번호 줬고, 또 언제 연락할 지는 나도 몰라.”
“그럼 연락이 오면, 착수금 포함 20%를 제의해 봐.”
“알았어.”
“그 쪽에서 그렇게 하겠다고 하면, 올라간 5% 중 네게 2%를 줄게.”
“현금으로 말해. 위자료가 얼마인 줄 알고……”
“후후~~ 얼마를 원하는데?”
“착수금 50에 성사 될 경우 300만원”
“그만 둬. 15%로 만족하지 뭐.”
아무래도 정미는 혁수형이 이혼하게 될 경우 지급해야 될 위자료 금액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무서운 년. 낯에 말을 했는데, 그 사이에 그런 것까지 알아보다니. 만나는 사람 중에 변호사가 있는 것은 알았지만, 혁수 형의 재산까지 파악해 줄 사람이 있을 줄은 미처 몰랐다.
“하하하…… 마치 너 위자료 금액을 아는 것 같다.”
“그 정도는 알지.”
“얼마인데?”
“확인해 줄 사실 없어.”
“그럼 성사금액 200만원”
“아니, 착수금 없이 성사금액은 100만원. 그 조건이 아니면 안 해.”
“풋~ 그럼 없던 이야기로 하자.”
“그래. 그러자. 그럼 그 쪽에 착수금 포함 15%로 말해.”
“알았어.”
“그럼 수고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정미는 전화를 끊었다. 지금까지 내 생에 있어서 가장 재수없게 전화를 끝내는 애를 대라고 하면 단연 정미가 독보적이다. 이상하게도 정미의 전화 끊는 소리는 상당히 신경에 거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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