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의미 - 5
5. 평범이란 예외를 덮어 둔 것뿐이다. 맥주를 시원하게 들이킨 막내 이모는 조용하게 말을 꺼내었다. “난 내가 아주 특별한 경우라고 생각했는데, 둘째 언니 이야기를 들어 보니까, 전혀 그렇지가 않네. 차라리 난 아주 평범한 것에 속할 것 같아. 아마 내 이야기는 둘째 언니 이야기의 반의 반도 못 따라 갈 거야. 언니처럼 그룹섹스를 해본 적도 없고, 시댁사람과의 관계도 없어. 단지, 나는 순수한 스와핑만 하고 있으니까 말이야.” “상대가 누군데?” 큰이모가 물었다. “애들 아빠의 친구.” “혹시 네 아파트 바로 앞집에 산다는 친구니?” “와~ 역시 큰언니는 날카롭네.” “흰소리 하지마. 누구라도 너와 그 남자가 같이 영화 보는 것을 보면 그런 의심하니까. 아무리 네 신랑과 허물없는 친구 사이라고 하지만, 네 신랑도 없는 집에서 그 친구란 사람하고 네가 영화를 보고 있다는 게 이상하잖아.” “역시 그때 눈치 챘었구나. 그럴지도 모른다고 그 사람과도 이야기 했었는데……” 그렇게 말한 막내이모는 맥주라도 마시는 듯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었다. “언니들도 알듯이 남편과 대학 4년을 연애하고 결혼을 했는데도, 사실 남편과 나는 잘 맞지 않았어. 특별히 어딘가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자꾸만 서로에게 관심이 없어지고, 겉돌게 되더라. 애가 있으면 될까 싶어서 직장도 그만 두고 애를 가졌지만, 별로 낳아지는 것도 없었어. 그래서 예전에 말했듯이 나이트에서 우연히 만난 남자들과 즉흥적으로 외도도 하고 그랬는데, 그래 봐야 남는 것은 칙칙한 기분뿐이었지. 그러다 4년 전, 그러니까 결혼하고 5년째 되던 해에 퇴근해서 돌아온 애들 아빠가 느닷없이 ‘우리 이혼하자. 이렇게 사는 거 너에게도 나에게도 아무런 도움이 안돼’ 그러는 거야. 근데, 웃긴 것은 남편의 그 말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는 거야. 웃기지? 정말 난 조금도 놀라지 않았어. 지금 생각해도 신기할 정도로 말이야. 그래서, 그 자리에서 바로 이혼에 합의하고서 무덤덤하게 이것저것 정리했는데, 아이는 정리가 안되더라. 애들 아빠나 나나 다른 것은 다 포기할 수 있어도 아이는 서로가 포기할 수 없다고 했고, 결혼 5년 만에 처음으로 부부싸움이란 걸 해봤어. 근데, 웃긴 것은 애 때문에 싸운 건데, 애가 우리 때문에 울건 말건 남편이나 나나 신경도 안 쓰고, 집기를 집어 던지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싸웠어. 그러다, 이웃이 경찰에 신고하는 바람에 도중에 그만 두기는 했지만, 해결 된 것은 하나도 없었어. 그래서, 결국은 재판을 하기로 했는데, 그게 어디 쉬워야지. 결론적으로 말하면, 법원은 근처도 안 갔어.” “원래 이혼은 결혼보다 더 어려운 법이야.” 셋째 이모의 말이었다. “맞아. 정말 그렇더라. 어째건, 그렇게 어영부영 그냥 시간만 보내던 어느 날, 퇴근해서 들어온 남편이 이번엔 그러는 거야. ‘우리가 이혼했다고 가정하고, 당신 다른 남자와 몇 일 동안 살아 볼 생각 있어?’하고 말이야. 처음에는 무슨 말도 안 되는 농담을 하는가 싶어서 남편의 말을 무시했었는데, 그 이후로 근 일주일을 계속 똑 같은 말을 하지 뭐야. 그래서, 진짜인가 보다 하고 남편에게 구체적으로 물어보니까. ‘주영이네 부부도 이혼 직전이야. 그런데, 그 쪽도 우리처럼 아이 때문에 이혼을 못하고 있더군. 그래서, 녀석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서로 아내를 바꾸어 보자는 생각을 한 거야. 물론 당신 입장에서는 남편을 바꾸는 게 되겠지. 어째든 지금 그 쪽 부부는 모두 찬성했어. 당신만 찬성한다면 휴가를 내서 2박 3일 코스로 여행을 떠날 계획이야. 물론, 서로 배우자를 바꾸어서 말이야.’ 이러더라구.” “역시 네 신랑답다. 생긴 것도 샤프하더니만, 생각도 아주 샤프하네. 우리 신랑은 오직 좆 대가리의 흥분을 위해서 그 짓을 하자고 한 건데…… 진짜 너무 비교된다.” 둘째 이모의 말이었다. “뭐가 비교가 돼? 똑 같은 거지. 그리고, 그게 샤프한 거야? 난 솔직히 어이 없던데……” “그래서 거부했니?”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뭐 솔직히 반대할 이유가 없었어. 남편과 잠을 언제 잤는지 기억도 안 나고, 손으로 달래는 것도 한계에 부딪혔거든. 그렇다고 예전에 나이트에서 만났던 그런 지저분한 놈을 만날까봐 남자를 구한다는 것도 조심스럽고 말이야. 그래서, 기왕 바람 피울 거라면, 그런 방법도 괜찮을 것 같았어. 게다가, 남편친구도 상당히 근사한 남자이니까. 그래서 다음날 바로 OK 해버렸지. 그런데, 정작 웃긴 것은 여행을 가서였어. 난 따로따로 여행을 갈 줄 알았는데, 남편 친구의 차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하고 보니까 이미 그 곳에 남편이 와있지 뭐야. 친구의 아내와 팔짱까지 끼고서……” “뭐야 그럼 같은 호텔에서 묶었다는 말이니?” 둘째 이모의 말이었다. “아니, 방갈로에서 지냈어. 그렇다고 같은 방갈로는 아니고, 나와 남편의 친구가 있는 곳 바로 옆 방갈로에서 남편과 남편친구의 아내가 묶었어. 처음에는 그게 상당히 불쾌하기 까지 했는데, 막상 그 곳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보니까 그것도 괜찮더라. 남편을 완전히 남인 것처럼 대하면서 오며, 가며 마주치는 것이 묘하게 흥분되는 게 그렇게 나쁘지 않았고 말이야. 게다가, 남편친구와 나는 속 궁합이 정말 기가 막히게 잘 맞았어. 남편이랑은 솔직히 좋다는 느낌 보다 아프다는 느낌이었는데, 그 남자는 정말 좋더라. 나 처음으로 섹스를 하면서 비명을 지를 정도의 오르가슴을 느꼈어. 그래서, 마지막 날에는 남편 친구를 꼬셔서 하루를 더 묶기도 했지.” “정말 좋았나 보네.” “그러니까 지금까지도 만나는 거지.” “그럼 차라리 이혼을 하고 그 남자와 재혼을 하지 그러니?” “처음에는 그럴까도 생각했는데, 역시 애들 때문에 쉽지는 않더라. 게다가, 우리 시댁과 그 쪽 집안도 아주 친하게 지내는 사이인 것도 걸리고 말이야.” “집안끼리 알아? 흠…… 그러면 쉽지 않았겠구나. 그래서, 그 쪽 부부가 너네 집 앞으로 이사를 온 거니?” “응. 맞아.” “애들이 눈치를 채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서 요즘 걱정이야. 작년까지만 해도 애들 걱정을 별로 안 했는데, 요즘은 애들이 눈치를 챈 것 같거든. 우린 조심한다고 했는데, 아무래도 서로의 집을 두 남자들이 너무 자주 들락거리고, 안방까지도 무의식 중에 들락거리고 하니까 애들이 눈치를 챈 것 같아. 요즘 종철이 녀석은 자기 아빠가 없을 때, 남편친구가 오면 반갑게 인사를 하고 같이 노는 척 하다가 어느 순간에 집을 빠져나가고 없다니까. 9살짜리 꼬맹이가 벌써 뭔가를 아는 것 같아서 요즘은 녀석이 징그럽기까지 해.” “애 보기가 민망한 게 아니라 애가 징그러워?” 셋째 이모가 그렇게 물었다. “처음에는 민망하고, 수치스럽고 그랬는데, 그것도 익숙해지니까 별로 그렇지도 않아. 그리고, 애가 그걸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 같지도 않고 말이야. 문제라면, 혹시나 그 녀석이 시댁 사람들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이상한 말을 하는 게 아닐까 하는 거지.” “그렇다면, 빨리 조치를 취해야 하겠다.” “그래서, 남편이랑 이야기 하고 있는데, 우리가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드는 게 아닐까 싶어서 아직 그냥 그러고 있어.” “혹시 애들이 있는 집에서 너희들 섹스하다가 들킨 거 아니니?” 큰이모의 질문이었다. “아냐. 그런 적 없어. 애들이 어렸을 때인 초창기에는 가끔 밤 늦게 남자들이 서로의 집을 오가며 잠을 자고서 다음날 새벽에 돌아가고 그랬는데, 몇 번 하다가 위험해서 그만 둔지 오래야. 애들이 학교 갔을 때에는 어쩌다가 시간이 나면 집에서도 하지만, 그것도 요즘은 잘 안하고, 주로 야외로 드라이브 나가서 러브호텔을 이용해.” “그런데 애들이 어떻게 알아?” “그러게 말이야. 어떻게 보면 모르는 것 같기도 한데, 하는 행동이나 말을 보면 다 아는 것 같단 말이야.” “무슨 말과 행동이길래?” “아까 말했던 그런 경우도 있고, 얼마 전 에는 가정통신문을 나와 지 아빠가 아닌 남편친구에게 보여주지 뭐야. 어찌나 황당하던지.” “친하게 느껴졌으니까 그렇겠지.” “그래도 그렇지. 아무튼 느낌이 별로 안 좋아. 뭔가 조치를 취하긴 취해야 될 것 같아.” 그 말에 셋째 이모가 한마디 했다. “그래. 그렇게 해. 요즘 애들 보기 보다 조숙해서 아무리 어려도 조심해야 돼. 우리 지훈이 녀석도 12살 때부터 벌써 자위행위를 했었어.” “12살에?” “응. 한날 방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글세 이 녀석이 바지를 내리고서 의자에 앉아서 컴퓨터에 떠있는 포르노 사진을 보면서 그 짓을 하지 뭐야. 그래서 혼을 내면서 알게 되었는데, 요즘 아이들은 벌써 10살만 되어도 성에 눈을 뜨나 봐.” 그 말을 큰이모가 거들었다. “맞아. 요즘은 인터넷 때문에 애들이라도 그런 거 쉽게 구하나 보더라.” “그래. 그렇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그때부터 컴퓨터를 배웠잖아. 지훈이 녀석 컴퓨터를 거실로 내놓고 말이야.” “그런다고 그게 해결이 되니? 집에서 안보면 친구 집에 가서 보는 걸……” “그래도……” “그건 그렇고, 네 아들 물건은 어땠니? 12살이면 아직 여물지도 않았을 텐데, 자위행위가 돼? 난 그렇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도무지 믿기지가 않던데, 넌 눈으로 직접 봤으니까 한번 말해봐.” “언니는~~~ 별걸 다 궁금해하고 그래.” “뭐 어때? 말해봐.” 그 말에 다른 이모들도 호기심이 발동했는지 셋째 이모를 재촉했는데, 오직 엄마의 목소리만 안 들렸다. 어째건, 한참 만에 셋째 이모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떼었다. “상당히 크더라.” “얼마나? 다 여물었어?” 둘째 이모가 물었다. “완전히 여물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크기는 내 신랑이랑 비슷한 것 같았어. 게다가 털도 거뭇거뭇 났고 말이야. 어릴 때부터 키가 쑥쑥 자랐는데, 역시 물건도 같이 자랐나 봐. 킥~” “12살짜리랑 네 신랑이랑 크기가 비슷했다고?” “얼핏 보기에는 그래 보였어. 정확한 것은 나도 잘 몰라. 어째든 크기에 놀란 것은 사실이야. 애인 줄로 알았는데…… 그때부터 그 녀석이 어찌나 징그럽게 보이던지.” 그때, 막내 이모가 끼어들었다. “혹시 셋째 형부 물건이 작은 거 아냐?” “뭐 크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작은 건 아냐. 13cm인가 그러니까.” “그럼 중간은 되는 건데…… 와 지훈이 녀석 다시 봐야겠네.” “뭘 다시 보니? 너도 네 아들 한번 새로 봐라. 종철이 키도 상당히 큰 걸 보니까 그 놈도 꽤 실한 물건을 가지고 있을 걸.” “말도 안돼.” “뭐가 말이 안돼.” “에이 이 이야기는 그만하자. 자 다음엔 누가 이야기 할거야? 큰언니가 할래?” 막내 이모는 얼른 화재를 돌려 큰이모를 불렀다. “나? 풋~~ 난 이야기 할 것도 없는데……” “그래도 해야 돼.” “진짜 없다니까. 이미 너희들에게 다 이야기 했었던 사람들뿐이야.” “그럼 큰언니가 그 8명인가가 다란 말이야? 둘째 언니도 10명이나 되는데? 에이 숨기지 말고 이야기 해봐.” “애석하게도 없단다. 근데, 너희들 진짜 웃긴다. 예전에 내가 이야기 할 때는 무슨 바람둥이네, 변태네 하면서 온갖 소리 다하더니, 알고 보니 너희들이 나 보다 더 하잖아. 그리고 둘째 너, 내가 2대1로 경험했던 이야기 할 때는 야만이니 뭐니 그러더니 넌 뭐니?” 큰이모의 그 말에 둘째 이모가 답했다. “그 이야기는 벌써 10년 전이야기잖아. 나 그때는 그룹섹스 안 했어. 그냥 신랑하고만 놀았었어.” “그럼 나중이라도 이야기 했어야지. 지금까지 결혼 전에 만났던 남자 이야기만 계속 했었잖아. 바보같이 나만 맨날 새롭게 만난 남자 이야기나 하고 말이야.” “킥~~ 미안.” “아무튼, 이제라도 다 털어 놓았으니 용서해 줄게. 자 그럼 이제 다음에는 누가 말할 거야? 솔직하게 다 털어 놓아야 한다. 셋째 너 안 했지?” 큰이모는 셋째 이모에게 자연스럽게 배턴을 넘겼다. “나도 그저 그래. 둘째 언니하고, 막내 이야기 들어보니까. 나도 정말 아무 것도 아니네 뭐.” “그래도 머릿수 라도 이야기 해봐. 너 두 명 아니지?” “응. 나도 두 명은 아니야.” “몇 명인데?” “넷…… 두 명은 예전에 말했던 대학 다닐 때 만난 과 선배랑 후배고, 나머지 두 명은 결혼 후에 교편을 잡으면서 만난 동료 교사인데, 다른 지역으로 옮긴 후로는 안 만나.” “재미있겠다 해봐.” “누구?” “누구긴 동료교사지. 동료교사랑은 오래 동안 만난 거 맞지?” “응. 그래도 별로 재미없을 텐데……” “괜찮아 해봐.” “뭐 원한다면…… 음…… 한 명은 총각교사인데, 그 놈은 생각하기도 싫은 놈이야. 진짜 밥맛이었고, 그 놈과의 섹스는 거의 내가 강간당한 거나 다름이 없어.” “어떻게 했길래?” “뻔하지 뭐.” “술?” “응. 술! 근데, 이 자식은 술만 이용한 게 아니라 술에다 약도 탄 거 같아. 그렇지 않고서는 도저히 설명이 안되니까 말이야.” “작전에 걸려 던 거구나? 차근차근 이야기 해봐.” “그 자식 이야기 하기 싫은데…… 그냥 그런 놈이 있다는 것만 알고 넘어가면 안돼?” “해봐. 이야기 하다 보면, 가슴에 맺힌 것도 풀릴 수 있잖아.” “휴~~ 그래 할게. 그러니까 그때가 내가 27살 때였어. 교편을 잡은 해부터 연연생으로 지영이와 지훈이를 낳고, 키우느라 내가 많이 지쳐있을 때, 그 자식이 우리 학교로 전근을 온 거야. 그런데, 첫인상은 외모도 잘 생기고 아주 성실해 보였어. 그뿐만 아니라, 여자에 대한 매너도 아주 좋아서 여교사들 사이에서나 여학생 사이에서 금방 인기를 얻었지. 물론, 나도 그 인기에 한 몫을 했고 말이야. 그렇게 1학기를 거의 다 마쳐갈 무렵 그 자식과 우연히 길에서 만나게 되었는데, 그 자식은 마치 내 마음을 읽고 있기라도 한 듯 대뜸 그러는 거야. ‘민 선생님. 맥주 한잔 할래요?’ 하고 말이야. 난 거부할 이유가 없었어. 당시에 애들 아빠가 일주일 동안 해외로 출장을 간 탓에 부모님 집에서 지내면서 모처럼 만에 자유를 얻었거든. 하지만, 제대로 누리지도 못하고 있어서, 사실 좀 우울해하고 있는 차에 그 자식이 그렇게 말하니까 오히려 고맙기까지 하더라.” “우연히 만난 게 아니라, 그 남자의 작전 아닌가?” 큰이모가 그렇게 물었다. “그 자식의 작전이 맞을 거야. 근데, 당시에는 그런 것을 알 수가 없었지. 오히려 그 자식에게 좋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같이 술을 마시면서 오히려 그 자식이 30살이 되도록 결혼을 못한 것을 걱정까지 하며 내 후배를 소개시켜 주겠다고까지 했었어. 그렇게 한 참을 술을 마시고서 내가 잠시 화장실을 다녀왔었는데, 그때 그 자식이 아마 내 술잔에 약을 탔나 봐. 화장실에서 돌아와 술을 한잔 마신 이후로 기억이 없으니까. 그 전까지의 기억은 다 나는데, 그 이후로만 기억이 완전히 없어. 당시에 술을 그렇게 많이 마신 것도 아닌데……” “약 탄 거 맞네.” “그지? 큰언니 생각도 그렇지?” “그래. 그러니까 남자랑 마실 때, 자리를 비운 사이에 채워진 술은 가급적 버리는 습관을 가지라고 옛날부터 내가 말했었잖아.” “맞아. 그래야 하는데, 당시에는 그런 생각을 전혀 못했어. 같은 교사인 그 자식이 그럴 줄은 진짜 몰랐으니까. 다음 날 눈을 떴을 때, 그 자식의 아파트에서 내가 그 자식이랑 벌거벗고 누워있는 것을 알았을 때, 난 정말 기절할 뻔 했다니까. 근데, 더 기막힌 것은 그 자식의 태도였어. 이전까지 보여주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180도 바뀐 모습으로 나를 협박을 하는 거야. 내가 정신을 잃은 사이에 찍은 내 나체사진을 가지고 말이야.” “진짜 나쁜 놈이네.” 둘째 이모의 말이었다. “그 뿐만이 아냐. 나 말고도 그 추잡한 수법에 걸려든 우리학교 동료 여교사들이 3명이나 더 있었어. 그 것도 전부 아줌마들로만 말이야. 뭐 처녀는 아무리 예뻐도 흥미가 없다나. 하여간 완전 미친놈이었다니까.” “돈을 요구하지는 않았니?” “그 변태 자식은 돈이 목적이 아니었어. 그리고, 그 자식은 돈도 많아. 부모님이 상당한 갑부였거든.” “그럼 오로지 그 짓거리만 하려고 그랬단 말이야?” “그래. 그 짓거리만 하려고 그런 거였어. 매달 초에는 나와 다른 여교사 셋을 자신의 아파트에 함께 불러들여서는 4대 1로 했으니까. 그때는 정말 사람을 이래서 죽일 수도 있겠구나 할 정도로 역겹고, 수치스러웠어.” “4대 1로? 정력도 좋은 놈이네……” “정력? 모르는 소리 마. 그 자식은 우리들을 발가벗겨 놓고 여자들끼리 하게 하면서 구경을 하다가 맨 나중에 우리들이 지쳐서 쓰러지면 그때 마음에 드는 여자에게 자지를 밀어 넣기만 했을 뿐이야.” “그럼 레즈비언?” “그래! 정말 그 자식을 죽이고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어.” “그래서 어떻게 했어?” “어떻게 하긴. 그 녀석에게 우리 사진과 비디오가 있어서 꼼짝도 못하고 계속 당했지. 그 자식은 매달 초에 우리들 네 명의 생리일자를 고려한 한달 스케줄을 주었는데, 평균 2주에 한번씩 그 자식과 잠자리를 해야 했어.” “경찰에 고발이라도 하지 그랬어?!” 결국, 흥분을 참지 못한 큰이모는 그렇게 소리쳤다. “어떻게 그래? 다들 자식과 남편이 있고, 수 많은 제자들까지 있는 몸인데…… 그냥 지독한 생리를 하는 셈치고 한 달에 3번 눈 질끈 감고 말지. 그리고, 그 놈도 우리들 가정이 깨지는 것은 원치 않았기 때문에 외박을 강요한다거나, 우리들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무리한 요구는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럭저럭 참을 수 있었어. 진짜 말 그대로 두 눈 감고 몇 시간만 다리 벌려주면 되는 일이었어. 근데, 진짜 힘 든 것은 그게 아냐. 그 자식은 자기 집에다 카메라를 설치해서는 우리들과 섹스 하는 장면을 찍어서 강제로 그 것을 보게 한다는 거야. 그러다 나중에는 아예 지가 카메라 들고 연출을 하더라. 각본까지 우리한테 주면서 말이야. 덕분에 코스프레라는 것까지 다해보고 정말……” “완전 또라이구나. 그 자식 그거 찍어서 팔아먹은 거 아냐?” “그건 아냐. 처음에는 우리들 네 명도 그걸 무척이나 걱정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더라구. 그 자식은 웃기게도 자기가 교사라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정말 대단했거든. 그 것만은 확실했어.” “웃기는 놈이네. 그럼 오히려 네가 협박을 할 수 있는 거 아니니? 그 놈이 그 정도로 교사라는 거에 자부심이 대단하다면 말이야.” “당연히 그 자식의 그런 면을 알고 나서는 그렇게 했었지. 그런데, 그 미친 자식이 그 날 밤 12시에 술을 잔뜩 처먹고 비디오 테이프를 손에 들고서 우리 집에 찾아왔지 뭐야. 내가 기절하는 줄 알았다니까. 애들 아빠가 이 술에 취해서 잠들었길래 망정이지 정말 큰일 날 뻔했었어.” “쇼한 거 아냐?” 둘째 이모의 말이었다. “아냐. 눈 빛이 완전히 이성을 잃은 눈빛이었어.” “혹시 무슨 사연이……?” “작은 언니도 예리하네. 맞아. 그 자식 사연이 있었어. 첫사랑을 고등학교 1학년 때 했는데, 대학교를 졸업하고 갓 부임한 24살의 여교사였나 봐. 그 여교사에게 첫눈에 반한 그 자식은 3년 내내 그 여교사에 대한 사랑을 혼자서 키우다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날, 그 여교사에게 사랑을 고백했는데, 이미 그 여교사는 결혼 날짜가 잡혀있었던 것 같아. 그래서, 그 이후로는 자신이 짝사랑한 여교사와 비슷한 이미지를 가진 결혼한 여교사를 보면 성욕과 정복 욕을 느끼는 것 같고.” “본인이 직접 그렇게 말해?” “아니. 그 자식이 우리 집을 그렇게 찾아온 이후, 그 자식에게 당하는 여교사들이 뭉쳐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찾아낸 거야. 그 놈은 자신의 이야기를 거의 안 해. 특히나 자신이 사랑한 여자 이야기는 아예 함구야. 그런데, 한창 섹스에 열을 올릴 때는 뜻 모를 소리를 어쩌다 툭툭 내뱉는데, 우리들이 모여서 이야기 하다 보니까 아까 내가 말한 것처럼 그렇게 이야기가 연결이 되더라. 그래서, 그 놈을 정신병자라고 결론을 낸 우리들은 그냥 미친개에게 물렸다고 생각했고, 그 다음부터는 아예 대들 생각도 안 했어. 오히려, 우리들이 자발적으로 매달 초마다 그 자식 집에서 다 함께 모여서 한 달 스케줄도 짰고, 다른 여교사에게 개인적인 사정이 있으면 대신 한탕 더 뛰어 주기도 하고 그랬어. 그런데, 그렇게 아예 포기를 해 버리니까 마음은 한결 편하더라. 웃기게도 우리들 4명에게 공주파라는 별칭도 생기게 되었고 말이야. ” “신세 처량하네.” 큰이모의 말이었다. “그래. 처량했지. 화대만 안받는다 뿐이지 창녀로 전락한 거나 마찬가지니까.” “그럼 지금도 계속 되고 있는 거니?” “아니. 그렇게 생활 한지 한 1년 반정도 지났을 때, 그 녀석이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갑자기 결혼을 하겠다고 선언을 하더니, 앞으로 만나지 말자고 하더라구.” “결혼?” “응. 우리랑 그런 짓을 하면서, 계속 여자를 만났었나 봐. 근데, 그 여자가 누군지 알아?” “누구? 혹시 그 녀석의 첫사랑이란 여자?” “맞아. 기막히지?” “정말 웃긴 놈이네.” “맞아. 나중에 안 사실인데, 그 여자가 지방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는데, 결혼한지 3년 만에 남편이 죽어버렸나 봐. 그것을 어떻게 알고 그 자식이 계속 그 여자 주변을 맴돌았는데, 그 여자는 그래도 한때 자기 제자였던 그 자식을 받아들이지 않고, 계속 냉정하게 대했나 봐. 그런데, 여자란 게 그렇잖아. 남자가 포기하지 않고 계속 사랑과 정성을 보이면 결국은 넘어가잖아. 그 여자도 그렇게 된 거지.” “진짜 웃겨서 말도 안 나오는 황당한 놈이네. 그럼 그 필름과 비디오는 어떻게 했니?” “우리가 보는 앞에서 그 자식이 직접 다 태웠어. 그리고 돈도 주더라.” “돈?” “그래. 한 명당 천 만원씩 주면서, 무릎을 꿇고 사과를 하더라구.” “너희 들이 자기 결혼을 깰까봐 미리 작전을 쓴 거군.” “맞아. 그런 거였어. 우리들에게 돈을 주면, 혹여 우리들이 그 자식과 결혼하는 여자를 찾아가서 훼방을 놓는다고 해도, 자기가 오히려 돈을 뜯긴 거라면서 우길 수가 있으니까 말이야.” “그래서 받았니?” “응. 우리가 돈을 받고 조건으로 사진과 테이프를 태운다고 했거든.” “주도 면밀한 놈이군. 어째건 테이프와 사진을 태워버린 건 다행이네.” “그래. 그건 잘된 일인데, 그 자식이 우리들에게 한 짓을 생각하면 아직도 소름이 끼쳐. 언니는 그 심정 모를 꺼야. 같이 근무하는 동료 여교사가 그 자식과 섹스 하는 모습을 억지로 봐야 하는 그 심정. 게다가 레즈비언까지…… 그 중에는 내가 아직 고등학생일 때 교생으로 나왔던 분도 있었는데, 정말 그 분과 파트너가 되어서 레즈비언 행위를 할 때는 온 몸에 닭살이 돋았다니까. 정말이지 그 놈은 생각하기도 싫어.” 셋째 이모는 진저리를 치는 듯 목소리가 떨렸다. 그러자 큰이모가 화재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래. 그럼 그 이야기는 그만 하고, 다른 교사는 어땠어?” “다른 교사?” “아니 네가 만난 다른 남자 교사 말이야.” “아…… 그 남자는 좋은 사람이었어.” 셋째 이모의 목소리는 금새 바뀌었다. 그리고, 그렇게 말하고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었다. “정말 좋은 사람이야. 한때, 내가 남편과 결혼을 한 것을 후회했을 정도니까. 그 남자는 내가 결혼한지 횟수로 7년째가 되던 해의 가을에 만났는데, 묘하게도 나보다 7살이 많은 남자였어. 그 남자가 다른 학교에서 전근을 오면서 우리가 만나게 된 건데, 나랑 같은 과학과목 교사여서 그런지 나이차이가 꽤 됨에도 우린 거의 친구나 다름이 없을 정도로 금방 친해졌어. 그 남자는 자상하고, 여자의 기분을 아주 잘 알고, 그에 적절히 대응해 주는 그런 남자였거든. 완전히 우리 신랑이랑 반대가 되는 그런 타입의 남자야. 그래서인지 나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그 남자에게 깊이 빠져들었는데, 정말 나 자신을 제어하지를 못하겠더라.” “사랑에 빠진 거구나.” 모처럼 엄마가 이해하겠다는 듯한 투로 말했다. “맞아. 사랑에 빠진 거야. 같은 학교에서 근무를 하는 데에도 계속 그 남자만 생각하게 되고, 집에 와서는 학교에 다시 가고 싶어서 미칠 지경이었어. 그래서, 교육정책 때문에 우리 과학과목이 시범교육을 하게 되어서 업무량이 폭주했는데도 하나도 힘들지 않더라. 그래서, 다른 과학교사의 업무를 대신 떠맡으면서까지 학교에 남아서 그 남자와 일도 하고, 대화도 하고 그랬어. 덕분에 우리 신랑의 불평은 대단했지만, 뭐 어떻게 하겠어? 일 때문에 학교에서 늦게 오는 건데 말이야.” “아주 영악하네.” 큰이모의 말이었다. “뭐가 영악해? 님도 보고 뽕도 따는 것뿐인데. 뭐 어째건 그렇게 계속 시간을 보내다가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더 이상 학교에서는 추워서 일을 못하겠더라. 그래서, 그 남자가 자취하고 있는 원룸으로 작업공간을 옮겼어. 당시에 남편이 1년 기한으로 해외 파견을 떠 났을 때라서 남편이 데리러 오지 않는 학교에서 굳이 추위에 몸을 떨어가며 일할 필요가 없었거든.” “원룸?” 둘째 이모가 확인하듯 물었다. “응. 그 남자의 아내와 아이들은 다른 지역에서 살았어. 학교를 옳기게 되어서 어쩔 수 없이 떨어져 살게 된 거야. 게다가, 그 남자의 아내가 그 지역의 공무원이었으니까 가족이 함께 이사할 수는 없었던 거지.” “바람 피울 여건은 다 갖추었군.” “훗~ 맞아 그런 셈이야.” “그럼 역사는 그 원룸에서 이루어 졌겠구나? 좁은 공간에 남녀 단 둘이 있었으니까.” “맞아. 그 곳에서 첫 관계를 가졌어. 그것도 나와 신랑의 결혼기념일에……” 그 말에 거실에서 야유인지 부러움인지 모를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 그런 소리들 사이로 막내이모의 목소리가 들렸다. “언니 나에게 고마워 해야 돼. 그때 내가 형부 전화를 얼마나 진땀 빼며 받았는지 알아?” “너는 알고 있었니?” 엄마가 놀란 듯 그렇게 물었다. “뭐 자세히 알았다기 보다는 느낌으로 안거지. 아침에 갑자기 셋째 언니가 전화를 해서는 다짜고짜 자기 시부모님이나 신랑에게 전화가 오면 그 곳에서 잔다고 말해달라고 했거든. ” “그래 막내야 고마워.” 셋째 이모가 고맙다는 표시를 했고, 뒤 이어 둘째 이모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 결혼기념일에 다른 남자와 한 기분은 어땠어?” “뭐 죽이는 기분이었지. 작정하고 간 거였으니까. 그렇다고, 오래 전부터 준비를 한 것은 아냐. 그 전날, 그 남자의 집에서 일을 마치고 나오는데, 그 남자가 다른 때와 달리 자신의 차로 나를 데려다 주겠다면서 부득부득 우기는 거야. 그 전까지만 해도 아는 사람들의 눈에 뜨일까 싶어서 서로가 조심했었거든. 그런데, 하도 그 남자가 우기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집 근처까지만 태워달라고 하고 타고 갔어. 그리고, 집 근처에서 내가 막 내리려고 하는데, 그 남자가 선물을 주더라. 집에 가서 혼자만 풀어보라면서 말이야. 어떨 결에 선물을 받고 집에 가서 풀어보았는데, 편지와 함께 백 만원은 넘을 것 같은 아주 고급스러운 옷이 들어있지 뭐야. 그리고,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어.” 기억을 더듬는 듯 셋째 이모는 잠시 말을 끊었다. 순간, 거실에서는 정적이 감돌았는데, 괜히 나까지 숨을 멈추었다. 이내 입을 연 셋째 이모는 마치 시라도 낭송하는 듯한 어조로 또박또박 편지의 내용을 말했다. “ ‘민 선생님. 결혼 기념일 축하합니다. 주제 넘은 짓이란 것을 알면서도, 민 선생님의 결혼기념일을 무심히 넘길 수가 없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민 선생님의 행복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어 이렇게 선물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지금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제 양심은 제게 아무런 표현도 하지 않는 것이 민 선생님을 행복하게 하는 길이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민 선생님을 처음 본 그 순간부터 뛰기 시작한 제 가슴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옳은 일인지 저 자신도 모르겠습니다. 민 선생님! 내일 이 옷을 입고 오신다면, 저는 제 가슴을 외면하고, 민 선생님에게 진심으로 박수를 보내겠습니다. 그러나, 이 옷을 버리고 오신다면, 저는 제 양심을 버리고, 민 선생님과 저를 위한 와인을 준비하겠습니다.’ “ “와아~~” 무슨 합창이라도 하듯 거실에는 탄성이 울렸다. 뒤이어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감동적이다……” “그래. 나도 그랬어. 그래서, 그날 밤, 편지를 수 십 번도 더 읽었어. 하마터면 잠을 못 자서 다음날 토끼 눈이 될 뻔 했으니까.” “그래서 어떻게 했어?” “어떻게 하긴. 오지도 않는 잠을 억지로 잤지. 그리고, 다음 날 새벽에 일어나서 정성을 다해 목욕을 하고서 내가 가진 것 중에 가장 좋은 속옷과 겉옷을 입고서 출근을 했어. 그 남자는 그런 나를 보고서 그냥 빙긋 웃어 주었는데,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 그때 처음으로 텔레파시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리고는 하루 종일 공중에 붕 떠서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게 하루를 보냈지. 그리고, 저녁이 되었을 때, 난 그 남자의 집에서 와인을 마시고서 그를 받아들였어.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관계는 새벽 2시까지 장장 6시간 동안이나 계속되었는데, 지금까지도 그 기록이 내가 가진 최고의 기록이야. 얼마나 힘을 뺐는지 5번째로 오르가슴을 느꼈을 때는 그 사람이나 나나 자세도 못 풀고 그대로 잠들어 버렸을 정도야.” “6시간? 세상에나…… 자지와 보지가 다 헐었겠다.” 큰이모의 말이었다. “키킥~~ 맞아. 다음날 일어나니까 상당히 아프더라. 그 남자도 고통스러워 했고 말이야. 아무튼, 그 날 이후로, 나는 그 남자의 집을 내 집처럼 드나들면서, 거의 아내처럼 굴었는데, 그 기분은 정말 아무도 모를 거야. 완전 새로 시집간 것 같은 그런 기분이었으니까.” “애가 정말 그 남자에게 미쳤었구나. 그래 얼마나 오래 그런 거야?” “작년까지 7년! 기막히지 않아? 횟수로 따져서 내 결혼 생활 7년째에 나보다 7살 많은 남자를 만나서, 만 7년이 되는 결혼기념일에 관계를 가지고, 7년 동안 동거 아닌 동거를 하다가 헤어졌으니까 말이야.” “퍽이나 좋기도 하겠다. 네 신랑이 왠지 불쌍하다. 바람을 핀 게 아니라 아예 살림을 차린 거잖아.” 큰이모가 빈정거리듯 말했다. “그런 셈이지. 그렇다고 내 집에 소홀 한 것은 아냐. 사랑과 현실은 별개니까.” “사랑과 현실? 너도 그런 말을 하니? 그거 경진이 전매 특허인데……” “칫~ 말꼬리 잡지마.” “알았어. 근데, 그 남자 양심을 버린다고 했잖아. 그거 이혼한다는 뜻 아니었니?” “맞아. 그런 뜻이었어. 나도 그럴 생각으로 그 남자가 준 와인을 마신 거고 말이야. 하지만, 해외출장을 간 애들 아빠에게 이혼 이야기를 차마 할 수가 없어서 1년을 미루었어. 그런데, 애들 아빠가 돌아온 1년 뒤에는 그 남자의 장모가 암 선고를 받았지 뭐야. 그래서, 다시 또 미루었는데, 그 뒤로는 계속 그런 식이 되었어. 그 남자와 내가 합치려고만 하면 계속 그 때마다 사고가 터졌으니까. 남편의 교통사고, 지영이 맹장 수술, 지훈이 식중독, 그 남자 부모님의 사고, 병원신세를 지던 그 남자 아버지의 사망, 암에 걸렸던 그 남자 장모의 사망, 남편의 반복된 해외 파견, 그 남자의 큰 딸의 고3 수험생 돌입 등등 뭐 일일이 열거를 하자면 진짜 말로 다 못해.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그 남자와 내가 합치려고만 하면 별별 이상한 일이 다 생겼어.” “운명의 장난이구나.” “맞아. 지금 생각해도 진짜 운명의 장난이야. 아니 어쩌면, 우리들은 처음부터 만나서는 안 되는 거였는지도 몰라. 하지만, 우린 포기하지 않았어. 그러다, 작년 1월에 우린 더 이상 결혼을 뒤로 미룰 수가 없는 상황에 부딪혔어. 연연생인 그 남자의 아들이 또 다시 고3인 되긴 했지만, 내가 그 남자의 아이를 가졌기 때문에 더 이상은 주변을 살필 수가 없었거든. 정말 무슨 일이 있어도 합쳐야겠다고 했는데, 어이 없게도 그 남자의 아내가 딸을 구하다가 그만 다리가 잘리는 사고를 당했지 뭐야.” “저런……” “그때, 그 남자 병원을 다녀 와서는 정말 많이 울더라. 정말 몇 시간을 아무런 말도 없이 계속 울었어. 그때서야 난 우리의 만남이 그 사람과 나에게 불행만 가져 온다는 것을 깨달았어. 그건 그 남자도 마찬가지였을 거야. 비록, 서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건 가슴으로 알 수 있는 거였으니까. 그래서, 작년 1학기를 끝으로 그 남자를 보내 줄 때에도 우린 아무런 말도 안하고, 그냥 한 번 안아 주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어.” 그 말을 끝으로 거실에서는 더 이상의 이야기가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한 동안 깊은 침묵이 흘렀는데, 느낌 상으로 셋째 이모가 울고 있는 듯 했다. 그리고, 그런 내 예상을 확인이라도 시켜주는 듯 큰 이모가 말했다. “그만 그쳐……” 하지만, 그뿐이었다. 그 후로도 거실에서는 침묵이 한 동안 더 계속 되었고, 내가 조금 지루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쯤에서야 비로서 거실에서 큰이모의 말소리가 다시 들렸다. “기집애도 참. 대수롭지 않은 평범한 이야기라더니, 이게 뭐가 평범하니? 눈물이나 줄줄 흘려서 술판 다 깨고 말이야.” “킥~ 미안해. 이젠 괜찮은 줄 알았는데, 헤어질 때 생각하니까 갑자기 그렇게 되네.” 그때, 둘째 이모가 말했다. “에이…… 진실게임이고 뭐고 다 그만 두고 술이나 마시자. 기분 뭐 할 때 술이 최고야. 자 자들 술잔 들어봐.” 그 말에 난 가슴을 쓸어 내렸다. 이제 남은 것은 엄마뿐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막내 이모가 그런 내 마음에 태클을 걸었다. “그런데 어디 있어? 이야기는 마저 다 들어야지. 이제 막내 언니만 하면 되는데……” “야 됐어. 경진이는 포기해. 쟤는 어차피 입만 살았기 때문에 별 볼일 없어. 말할 때 보면, 아버지하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으면서, 실속은 하나도 없는 애가 쟤잖아.” 그러자 큰이모가 맞장구를 쳤다. “그래, 경진이는 그냥 넘어가자. 저번에 호스트빠 사건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쟤한테 물어봐야 어차피 나올 것도 없어.” “그래도, 물어는 봐야지.” 하지만, 그런 막내 이모의 마지막 항거는 둘째 이모의 수다스런 선동에 묻혀 버렸다. “자자…… 모두 잔 들어. 언니 뭐해? 야! 민경미 눈물 그만 흘리고 빨랑 잔 들어! 이럴 땐 마시는 게 최고라니까. 어서 잔 들어봐. 자 모두 잔을 든거지. 그럼 지금부터 연속으로 3잔을 완샷하는 거야 알았지?” “3잔이나? 야 나 목 따가워서 맥주 못 마셔. 양주라면 모를까.” “시끄러워 언니! 무조건 3잔 완샷이야! 다른 사람들도 다 알아 들었지? 자, 그럼 이번 잔은 우리의 비련의 여주인공 민경미를 위한 거니까. ‘위하여’를 힘껏 외쳐. 자…… 민경미를~~~” - 위하여~~! - 거실에서 여자들의 목소리가 강하게 울렸다. 그 뒤로도 둘째 이모의 화려한 언변은 멈추지 않았다. 그에 따라 점차 거실에서는 다시금 웃음 꽃이 피어났고, 나중에는 언제 침울했냐는 식으로 자연스럽게 이전 분위기로 돌아가 있었는데, 그때의 이야기 주제는 자식들 자랑과 남편 자랑이었다. 자식 자랑이 으레 그렇듯이 처음에는 자식과 남편을 욕하는 듯 하지만, 조금만 지나면 그건 자랑으로 바뀌었다. 또한 그런 자식자랑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것이라 시시각각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었고, 때론 먼 미래를 달리기도 했다. 당연히 나는 그때부터 거실에서 들려오는 이야기에 흥미를 잃었고, 얼마 뒤 나는 깊은 수면 상태로 빠져들었다. 이로써, 평범해 보이기만 하던 이모들의 충격적인 고백을 들은 그날은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 그렇게 마무리가 되었다. 그리고, 그 날의 일은 나에게 사람을 보는 시각을 바꾸어 주었는데, 절대로 위장된 평범을 신뢰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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