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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BAD SON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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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정미의 비밀

나이 많은 남자와 사랑에 빠져서 임신을 했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 낙태를 했다. 그래서, 내가 그 남자를 아는 것을 두려워하여 그녀가 나에게 화를 낸다? 얼핏 그럴 듯한 스토리였다. 하지만, 직감은 여전히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 사이 정미는 다시 한번 내게 재촉했다.
“말해! 어디까지 아는 거야!!??”
“적어도 내게 임신하지 말아야 하는 아이를 가진 것까지 알아.”
난 일단 평범하게 말했다. 아니 평범하다기 보다는 반복되는 말이었다. 혁수형의 아이이든, 그 의사의 아이이든 어째건 유부남의 아이는 가지지 말아야 하는 것이 상식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런 내 말에 정미는 크게 놀라는 듯하더니 이내 체념하듯 몸을 돌려 털썩 주저앉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 역시도 비정상적인 반응이란 건 바보라도 알았다. 즉, 뭔가 다른 큰 비밀이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내 말을 냉정하게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비밀이 말이다. 나로선 당연히 짐작도 안되었지만……

정미의 침묵은 꽤 오래 갔다. 기다림에 지친 내가 먼저 말을 꺼내었다.
“무슨 일이지 아직도 말 안 해 줄거야?”
“뭘 더 말해달라는 거니?”
“뻔하잖아. 난 네가 실수로 임신을 했다고 생각지 않아. 따라서, 네가 임신을 한 진정한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싶을 뿐이야.”
“알아서 뭐하게?”
맞는 말이었다. 내가 알아봐야 도움될 건 없다. 내 방문 목적은 단순히 아이를 잃은 정미를 위로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실컷 두들겨 맞아 준 것이고 말이다. 물론,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도 도움이 되겠지만, 상대방이 하기 싫다는 이야기까지 들어줄 필요는 없다. 또한 내가 궁금한 것이 아닌 이상 물어 필요도 없고 말이다.
하지만, 난 지금 정미의 숨겨진 이야기가 몹시 궁금했다.
“글세…… 그 부분은 미처 생각 못했는데.”
“그래. 말할게. 이미 다 안다고 하니까. 대신 그 전에 내가 사생아란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말해 줄래?”
“이수현이라고 알아?”
“이수현?”
“그래.”
“아니 잘 모르겠는데……”
“그 놈도 그렇게 말하더군. 네가 자기를 모를 거라고 말이야. 어째든, 그 놈이 예전에 너와 한 동내에 살았다면서 네 이야기를 들려주더군.”
그 말에 정미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가볍게 말했다.
“그래서 내 뒷조사라도 하고 다닌 거니?”
“네 뒷조사를 왜 해? 우연히 알게 된 거지.”
“그래……”
그렇게 짧게 대답한 정미는 무릎을 구부려 가슴 쪽으로 당겼다. 그런 후 이마를 무릎에 묻은 정미는 한참을 그대로 있었다. 정미는 생각을 정리 하는 듯도 했고, 망설이는 듯도 했다. 이전에 보아온 정미의 모습이 아니었다.
왠지 정미가 무척이나 낯설게 느껴질 무렵, 정미는 낮은 음성으로 말을 했다.
“어디서부터 이야기 해야 할까? 네가 알 듯, 맞아 난 사생아야. 내 엄마는 미혼모이지. 난 호적도 엄마 앞으로 되어 있어. 그런 미혼모인 엄마 밑에서 정말 갖은 고생 다하며 자랐지. 주변의 묘한 시선, 아이들의 놀림, 쌀이 없어 굶고, 빚쟁이들에게 쫓겨 다니기도 많이 했었어. 하지만, 엄마는 매번 오뚝이처럼 일어났지. 행상도 하고, 공사장을 나가기도 다니면서 말이야. 참 억척스러운 분이었어. 그러다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말, 엄마가 쓰러졌어. 늦게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나에게 밥을 해준다며 준비를 하다 말고 말이야. ‘퍽’ 하는 소리에 주방으로 나가보니까 엄마가 바닥에 누워있는 거야. 아무리 흔들어도 깨어나지 않았어. 거짓말처럼 그렇게 내 곁을 떠난 거야. 웃기지 않니?”
“당황스러웠겠군.”
“그래. 정말 황당하더라. 너무 황당해서 장례를 치르는 내내 난 현실감각을 잃고서 멍하니 있었어. 울지도 않고, 말도 안하고 말이야. 그냥 엄마 빈소에 멍하니 앉아 있다가 쓰러져 자고, 다시 일어나고, 다시 자고……”
“충격을 많이 받으면……”
“충격? 풋~ 그냥 믿어지지가 않았으니까. 너무 믿어지지 않아서 사람들도 못 알아 봤으니까.”
“사람들이 말이 많았겠군.”
“몰라. 말이 많았는지 어땠는지…… 그 후, 난 외삼촌 집에서 살았어. 하지만, 그리 편한 생활은 아니더라. 엄마가 힘들게 마련한 이 집을 외삼촌이 팔아서 가로챘으면서도 외삼촌은 나만 보면 돈타령을 했지. 쌀값이 얼마네, 밥 한끼에 얼마가 들어가네, 전기세가 얼마네. 심지어 내가 목욕을 조금이라도 오래하면 아예 나 들으라는 듯 밖에서 외숙모와 부부싸움까지 했지. 철면피도 정말 그런 철면피가 없었어. 예전, 엄마와 내가 빚쟁이들에게 도망을 다닌 것도, 엄마가 그렇게 억척스럽게 일한 것도 전부 다 외삼촌으로 인해 진 빚을 갚기 위해 그런 건데 말이야. 그런데, 엄마가 그렇게 갑자기 돌아가시자 외삼촌은 오히려 엄마에게 빌려준 돈이 있다고 나오더라. 그 돈이 얼마인 줄 아니? 큭~ 엄마와 내 집을 팔아서 받은 돈과 똑 같은 금액이었어. 어이가 없어서 말도 안 나오더라. 키킥~~”
“네 외삼촌이 너무 했군.”
“그래도 외삼촌은 약과였어. 외숙모란 년은 내게 아버지에게서 왜 양육비가 안 오냐면서 노골적으로 나를 의심했으니까. 내가 중간에서 가로채서 챙기는 줄 알고 말이야. 그런 게 없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그년의 의심은 조금도 풀어지지 않았지. 그래서, 그년 자신이 내 아버지에게 연락을 하려고 했는지 집요하게 내게 아버지의 연락처를 물어봤어. 물론, 내게 물어만 본 게 아니라 내 소지품을 뒤지고, 내 친구들에게 전화를 해서는 물어보기까지 했었으니까. 정말 미친년도 그런 미친년이 없었지. 하지만, 뭐 어떻게 하겠어? 나도 내 아버지의 연락처를 모르는 걸. 엄마가 가진 사진을 보기만 했을 뿐, 아버지를 실제로 만난 적도, 전화통화를 한 적도 없었는데. 엄마는 늘 그런 말만 했어. ‘때가 되면, 네 아버지를 만나게 될 거다.’라고 말이야. 결국 그 때가 오기도 전에 엄마가 세상을 떠나버렸지만……”
정미는 잠시 말을 끊고 호흡을 골랐다.
“어째든, 그런 외삼촌, 외숙모로 인해서 난 고등학교 2학년이 되면서부터 몸을 팔기 시작했어. 인간 같지 않은 것들에게서 돈을 받기 싫었거든. 그런데, 내가 제일 처음으로 몸을 판 상대가 누군지 아니? 바로 내 담임이었어. 그 자식은 이유도 없이 내 손을 잡고, 내 목덜미나, 엉덩이를 만지고 그랬거든. 그런 어느 날, 그 자식이 진로를 상담한다며 나를 상담실로 부르더니 또 그러는 거야. 내 뒤로 와서는 어깨에 손을 얹고, 등을 쓰다듬고, 급기야 내 허리까지 손을 뻗치더라. 그래서, 담임에게 내가 그랬어. 매달 50만원을 주면 언제라도 몸을 주겠다고 말이야. 그랬더니 그 자식이 바로 다음날 돈을 주더라. 그것도 아주 빳빳한 현찰로 말이야. 아주 웃긴 인간이었지.”
“그래서 그 다음날부터 몸을 팔기 시작한 거야?”
“그래. 돈을 받은 그날부터 그 자식과 함께 거의 매일 여관으로 갔어. 자지도 무지 조그만 자식이 밝히기는 어찌나 밝히는지. 보약을 먹어가면서까지 내 다리 사이로 파고 들더라. 게다기 어찌나 혀를 낼름 거리는 지 온 몸에 구더기가 스멀거리는 것 같았어.”
“어느 학교에나 그런 놈이 있지.”
“그래. 맞아. 대학은 더 심하고 말이야. 어째든, 난 담임에게 그렇게 내 처녀성을 바쳤고, 매달 돈을 받으면서 몸을 열어주었어. 그렇게 3개월쯤 지나서였을 거야. 담임이 네게 제안을 하더라. 자신이 100만원 짜리 손님을 소개시켜 줄 테니까 자신은 공짜로 해달라는 거였어. 난 그러겠다고 했고, 그렇게 이 바닥에 완전히 발을 들여놓게 된 거지. 그리고, 손님은 또 다른 손님을 소개시켜주고, 그 손님은 또 다른 손님을 소개시켜 주어서 난 매달 3명의 손님을 받게 되는 창녀가 된 거야.”
“그 담임 지금도 만나?”
“아니. 내가 고등학교 졸업을 하면서 관계를 끊었어.”
“순순히 물러나던?”
“물러나지 않으면? 내가 학교와 그 자식 마누라한테 다 폭로해버리겠다고 덤비는데 지가 별 수 있겠어? 게다가 내가 직접 그 자식 집까지 찾아갔더니 아주 기겁을 하더라. 얼굴이 파랗게 질려서는 내가 무슨 말이라도 할까봐 전전긍긍하는 표정이란. 그런 자식에게 내 처녀를 바쳤다는 것에 화가 나서 미칠 뻔했지.”
“그랬군.”
“그래. 그리고, 대학에 들어오면서 다시 이 집을 샀어. 대학에 합격을 하자 제일 먼저 엄마 생각이 나더라. 그래서 엄마와 가장 행복하게 지냈던 이 집을 그냥 찾아 온 건데, 마침 주인이 이 집을 급매물로 내놓았길래 내가 바로 샀지. 돈이 조금 부족하긴 했는데, 이 집에 살던 부부가 부족한 돈은 천천히 지불해도 된다고 해서 운 좋게 샀어.”
“인복이 아주 없었던 건 아니네.”
“그래. 지금도 그 부부와는 가끔 연락을 하고 지내.”
“어째거나 네 외삼촌과 외숙모가 놀랬겠군.”
“놀란 정도가 아니었어. 내가 엄마 통장을 자신들 몰래 빼돌렸다고 생각하고서 욕설까지 퍼부어 댔으니까. 그러면서 뭐라는 줄 아니? 실제로는 엄마에게 받을 돈이 더 있는데, 나를 생각해서 그런 말을 안 했었다고 하더라.”
“그래서? 갚으래?”
“아니. 엄마 생각해서 그 정도는 참아 준다면서, 자신들이 나에게 쓴 학비와 생활비는 내 놓으라더라.”
“어이가 없네. 넌 가만히 듣기만 한 거야?”
“듣기만 한 게 아니라 그들이 요구한 돈까지 주었어.”
“바보군. 얼마나 준거야?”
“1,692만원”
“뭐? 어떻게 계산했길래?”
“하루에 3만원씩 564일을 계산하면 그렇게 나와. 푸하하하하~~~~~~”
“웃음이 나오냐?”
“웃지 않으면? 울까?”
“바보군. 이 집 판돈을 네 외삼촌이 챙겼다고 하지 않았어? 도로 받아내야 되는 것 아니냐?”
“맞아. 정상적이라면 오히려 그래야겠지. 하지만, 난 그냥 눈감아 주었어. 엄마가 살아있을 때, 나 다음으로 가장 아꼈던 사람이 외삼촌이니까. 엄마에겐 가족이라곤 나 빼고는 외삼촌이 유일했거든. 엄마는 늘 나 아니면, 외삼촌 걱정뿐이었어. 그래서, 외삼촌의 억지를 받아 준거야. 다만, 난 엄마만큼 너그럽지 못하기 때문에 그 돈을 주면서 외삼촌에게 두 번 다시 내 앞에 나타나지 말하고 했어.”
그러면서 정미는 희미하게 웃었다. 무슨 의미일까? 더구나 정미의 기는 변함없이 하늘색을 띠고 있었으니 특별한 심경변화가 있어 보이진 않았다. 짧은 시간이긴 하지만, 기의 색깔 변화는 당사자의 감정상태와 관련이 있는 듯 보였으니까 말이다.
정미는 차분하게 계속 말을 이었다.
“그렇게 난 내 유일한 친척과도, 괴로웠던 고등학교 생활과도 끝을 내었어. 물론, 여전히 창녀 짓은 계속되었지만 말이야. 하지만, 창녀 짓에도 다소 변화가 있었어. 3개월 계약제로 바뀌었고, 부탁이 있을 때면, 중요한 접대자리에도 나갔으니까.”
“중요한 접대자리?”
“그래. 나야 단순히 몸으로만 접대하는 거지만…… 그래도 1회에 100만원을 받으니까 손해나는 것은 아니었어. 게다가 그렇게 만난 손님들 중 일부는 한번에 100만원을 지불하면서 나를 다시 찾았으니까 나로선 크게 남는 장사였어.”
그 말을 듣자 아무래도 내가 아는 정미의 손님 중 5명 중 3명이나 4명은 고정손님이 아니라, 정미가 단기적으로 접대한 손님 같았다.
“그렇군……”
“그러다 작년 7월경이었어. 변호사를 하는 손님이 식사에 나를 초대했었어. 엄밀히 말하면, 초대가 아니라 동반해 줄 것을 요구한 거지. 그 손님은 아내를 교통사고로 잃고서 혼자 사는 남자인데, 상대편은 부부동반으로 나온다면서 나에게 식사할 때까지만 곁에 있어 달라고 한 거야.”
“변호사라면 내가 아는 사람 아닌가?”
“맞아.”
“나이가 많잖아. 한 40대 중반으로 보였는데……”
“아니 올해 41살이 된 남자야. 물론, 나보다 20살 정도 많기는 하지만, 내 외모가 성숙해 보이기 때문에 적당히 꾸미면 그리 큰 문제는 안돼.”
“그래……”
“물론, 난 망설임 없이 나갔어. 그런 자리도 벌써 2번 정도 나가 보았기 때문에 말이야. 그런데, 그날은 달랐어. 상대편의 부부는 내가 아는 사람이었거든. 아니 정확히 말하면 상대편 부부의 남자만 알았어. 바로 어릴 때부터 보아온 사진 속의 남자였으니까. 난 한 눈에 아버지를 알아보았어. 비록 사진 속에서의 모습은 20년 전의 모습이었지만 말이야.”
“많이 놀랬겠군.”
“그래. 심장이 얼어 붙는 줄 알았으니까. 사진하고는 느낌이 완전히 달랐어. 사진을 볼 때는 그냥 ‘이 사람이 내 아버지구나’하는 정도였는데, 실제로 보니까 정신이 아득해지는 느낌이더라. 하지만, 아버지는 나를 전혀 알아보지 못했지. 변호사인 내 손님이 나를 소개할 때 혹시나 하고 기대했지만, 아버지는 내 이름을 듣고서 무감각한 표정이었어. 그냥 깍듯하게 예의만 지켰으니까 말이야. 그날 난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몰랐어. 등에서도 손에서도 식은 땀이 베였고, 긴장을 한 탓에 수시로 화장실을 가야 했으니까. 화장실에 두 세 번 가니까 콱 죽어버리고 싶더라. 아버지는 나를 못 알아보는데, 나 혼자서 이게 뭣 짓인가 하고 말이야.”
“그랬군.”
“그래. 그 뒤로도 진정이 안되더라. 뭐랄까 구름에 붕 뜬 기분이랄까? 그랬어. 그러다, 참지 못하고 난 아버지를 찾아갔어. 나를 알아보지도 못한 아버지지만, 이상하게 너무나 보고 싶었거든. 그래서 나 혼자만이라도 살짝 보려고 찾아갔는데, 큰 병원의 원장 만나기는 쉽지 않더라. 전화를 걸어도 비서실에서 커트해버리고 말이야. 하지만, 계속 전화를 하니까 결국은 아버지를 연결해주었고, 난 생떼를 쓰다시피 해서 아버지를 두 번째로 만났어. 하지만, 내가 딸이란 것을 밝히지는 못했어. 두 번째로 만났을 때, 어쩌면 내가 비슷하게 생긴 사람을 착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거든. 게다가 내가 내 입으로 밝히는 것도 어딘지 이상하고 해서 말이야.”
“그래서 어떻게 되었어? 그렇게 끝난 거야?”
난 적당한 대꾸를 한다고 했는데, 그 말에 정미는 갑자기 나를 돌아보더니 이상한 시선을 보내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돌려 말을 이었다.
“놀리니? 그렇게 끝났다면, 지금 내게 이런 일도 없었겠지.”
순간, 난 정신이 번쩍 났다. 정미의 이야기와 내 몸 속의 기이한 현상으로 인해 이야기의 흐름을 놓치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주 바보 같은 실수였다. 하지만, 정미는 별다른 의심 없이 이야기를 계속해서 이어갔다.
“아버지는 나를 좋게 보았는지, 헤어질 때, 내가 다음 날에도 만나 줄 것을 요청하자 흔쾌히 승낙했어.”
“네가 변호사의 파트너 인 것을 알지 않나?”
“그 점은 내가 미리 말씀 드렸어. 그 사람과는 단순히 안면만 있는 학교의 선후배 사이일 뿐이라고 말이야. 물론, 손님과도 말을 미리 맞추었지. 내가 창녀란 점만 숨기고 그럴 듯하게 이야기를 꾸며내었으니까. 조금 어색한 부분도 있었지만, 어째든 아버지는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고 다음 날에도 나를 만나주었어. 이상하게도 난 아버지를 만나면 어린아이가 되었는데, 그런 아버지는 내가 딸 같다며 아주 좋아하면서 아들만 있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더라. 내가 자신의 딸일 수도 있는데 말이야. 아무튼 우린 내가 손님이 없는 날이면 거의 매일 만났어.”
“끝내 너를 밝히지는 않은 거냐?”
“응. 아버지의 내 엄마에 대한 아픈 사랑이야기를 듣고서야 확신을 가지고 난 몇 번이나 내가 딸임을 몇 번이나 밝히려고 했지만, 그때 마다 전화가 오고, 사람들이 오는 바람에 기회를 놓쳤어. 그래서, 참다 못한 내가 고백을 하려고 조금 조용한 장소로 아버지를 데리고 가려고 하면, 아버지는 유연하게 다른 곳으로 나를 이끌고 갔어. 아마도 아버지는 내가 무슨 사랑 고백이라고 하려는 줄 생각했었던 것 같아.”
“그 분은 딸이 있는 건 아냐?”
“아니, 자식이 있다는 것만 알고 있었어. 그게 아들인지 딸인지는 모르고, 자신에게 숨겨진 자식이 있다는 것과 나이가 나와 같다는 것만 알고 있더라.”
“그럼 찾으려면 찾을 수 있는 거 아냐.”
“그래. 그런데, 아버지는 기다리고 있었어. 내 엄마로부터의 연락을 말이야. 엄마가 아버지를 떠날 때 그랬대. 연락을 할 때까지 자신을 찾지 말라고 말이야. 그래서 아버지는 옛날의 전화번호를 직통전화로 사용하고 있었고, 차도 바꾸지 않고 21년이나 타고 있었어. 아주 바보 같은 분이지.”
“글세. 왠지 멋지게 느껴지는군.”
“맞아. 멋진 분이야. 아주 멋진 분.”
“그래도 차를 21년이나 탄다는 건 좀 그렇다.”
“나도 그렇게 말했지. 그런데, 아버지가 그러더라. 그 차에 처음 태운 여자가 엄마였다고 말이야. 그 차에서 엄마와 처음으로 키스를 했고, 사랑한다는 말도 했다고 하더라. 그래서, 바꿀 수가 없었대. 엄마가 다시 자신 앞에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야. 그러면서 엄마가 선물한 거라며 오래된 만년필을 보여 주는데,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 했었어.”
“그 분이 네 엄마를 버린 것은 아니겠군.”
“그래. 엄마가 떠난 거야. 그 때 이미 아버지는 결혼한 남자였으니까. 그런 멋진 분이 자신으로 인해 인생 전체를 망치는 것을 엄마는 보고 싶지 않았을 거니까.”
그렇게 말한 정미는 알 듯 말 듯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왠지 세상을 달관한 그런 미소 같았다.
“엄마의 마음. 이제는 나도 조금 이해해. 비록 엄마에게도, 아버지에게도 씻을 수 없는 죄를 지긴 했지만, 말이야.”
“죄라면?”
“난 아버지를 사랑하게 되었어. 그래서는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아버지를 사랑할 수 밖에 없었어. 그렇게 되자 난 더욱 더 아버지에게 나를 밝힐 수가 없었지. 아버지와 뭘 어떻게 하겠다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난 그랬어.”
“그 분도 그런 거냐?”
“아니. 아버지는 끝까지 나를 딸로만 대했어. 만날 수 없는 자식에 대한 그리움을 나에게 다 쏟아 부었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그런 거 같았어.”
“흠……”
“그나마 다행이었지. 하지만, 운명은 그렇게 쉽지는 않더라.”
정미는 잠시 말을 멈추고 깊이 호흡을 하며 말을 이었다.
“작년 연말이었어. 거리엔 온통 연인들로 가득했고, 곧 다가올 크리스마스의 분위기가 한껏 달아 올라 있을 때였지. 난 아버지에게 떼를 써서 젊은이들이 넘쳐나는 유흥가로 갔어. 우린 사람들에게 줄 선물도 사고, 젊은 연인들처럼 거리에서 파는 음식도 사먹으면서 한참을 그렇게 돌아다녔어. 그러다 못 볼 것을 보고 말았어.”
“못 볼 거 라니?”
“아버지의 아내. 즉, 내가 처음 아버지를 만났을 때 곁에 있던 그 여자를 본거야. 그 것도 어두컴컴한 골목에서 젊은 남자와 뜨겁게 키스하는 모습을 말이야. 그걸 보자 이상하게도 난 화가 확 치밀었는데, 아버지는 오히려 담담하게 나를 조용히 이끌고서 다른 곳으로 가면서 마치 그런 장면을 본 적도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거야. 난 그런 아버지가 이해가 되지 않았지. 그래서 아버지를 이끌고 공원으로 데리고 가서 따졌어. 내가 따질 것도 아닌데, 난 막 화를 내면서 아버지에게 따졌어. 그러자 아버지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조용하게 말했어. 그 여자도 사랑을 이루지 못한 불쌍한 여자이니 용서하라고 말이야. 물론, 난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기에 계속해서 화를 냈었지. 그랬더니 이번엔 아버지가 그러는 거야. 자신은 옛 사랑, 즉 내 엄마와 헤어진 이후에 아내와 잠자리를 한 적이 없다 하더라. 그 말에 난 뭔가 한대 쾅 하고 얻어맞은 기분이었어.
“대단한 분이군.”
“대단하다기 보다는 터무니 없는 분이지. 하지만, 난 순간적으로 마법에 걸렸어. 홀린 듯 아버지 품에 달려들며 입을 맞추었으니까. 아버지는 처음에는 입을 다물고 강하게 내 키스를 거부했지만, 오래지 않아 입을 열고 내 혀를 받아들였어. 그리고, 그날 아버지와 난 하나가 되었어.”
그 곳에서 정미는 잠시 말을 끊고서 고개를 돌려 내 눈치를 살피는 듯 빤히 바라보았다. 난 이해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가볍게 끄덕여 주었다. 여자란 원래 이성이나 도덕보다는 감성이 우선이니까. 그런 것쯤 이해하는 거야 어렵지도 않다. 게다가 난 엄마를 의도적으로 내 여자를 만들고 있는 중인데, 그런 게 뭐 그리 충격적이랴.

내 고개 끄덕임을 본 정미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다음 날, 아버지는 전 날의 일을 무척이나 후회를 했지만, 책임을 회피하려고 하지는 않더라.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 난 더욱 사랑스러웠고, 그 날 이후 우린 만날 때마다 사랑을 나누었고, 내가 손님을 받지 않는 가임 기간 5일 동안은 오로지 아버지와 나만의 시간이었어. 우린 정말 미친 듯이 성을 탐하며 사랑을 불태웠어. 아니 우린 정말 미쳤었어. 약속은 아예 처음부터 호텔로 잡았었고, 만나자 마자 알몸이 되어 대화도 나누지 않고 서로의 몸을 탐했지. 아버지의 눈 앞에 내 다리를 벌려주었고, 난 아버지의 성지를 손으로 잡고 모든 정성을 다해 빨아주었어. 그리고 헤어지는 그 시간까지 내 몸 속에서 아버지의 성기를 놓지 않으려 발버둥을 쳤어. 영원히 붙어 있으려는 듯 말이야.”
“그렇게 임신을 했군.”
“맞아. 그러다 임신을 한 거야.”
그러면서 정미는 힘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병원에서 임신이란 사실을 최종 확인 했을 때, 그제서야 난 내가 얼마나 큰 죄를 저질렀는지 알았어. 내 죄가 용서 받을 수 없다는 것도, 엄마에게 씻을 수 없는 잘 못을 저질렀다는 것도 그때서야 제대로 느꼈다고 할까. 그렇게 절망감에 빠져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순간적으로 역겨움이 몰려와 하마터면 난 토할 뻔 했어. 정말 이상한 기분이 되더라. 전날까지만 해도 미친 듯이 사랑을 속삭였던 사람인데 말이야.”
“흠……”
“난 몸이 안 좋다는 핑계를 대고 그날은 그렇게 전화를 끊었지만, 아버지의 전화는 그 이후로도 계속 왔고, 난 그때마다 거절했어. 물론, 손님도 한동안은 받지 않았어. 하지만, 낙태를 결심하기가 보통 어려운 게 아니더라. 논리적으로는 낙태를 해야 된다고 결정을 했지만, 마음은 그게 아니었거든. 그렇게 난 한동안 갈팡질팡 하다가 문득 내가 창녀란 생각이 떠올랐어. 그래서, 다시 손님을 받으면서 네 말대로 난 나름대로 낙태를 해야만 하는 이유를 점점 부풀려 간 거야. 물론, 그 보다 더 바란 것은 자연유산이지만…… 그렇게 손님과, 아버지와, 나를 눈독 들이고 있던 남학생까지 만나가면서 난 차곡차곡 낙태의 명분을 쌓아갔지만, 그래도 난 결정을 할 수가 없었어.”
“그러다 혁수형의 일이 걸린 거군.”
“그래. 그때 네가 나타난 거야.”
“그랬군.”
그러면서 난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건 정미를 이해한다는 뜻으로 끄덕인 것이 아니라, 그런 상황에서도 내 제의를 의심하고, 자신의 이익을 최대한으로 챙기려 한 정미의 모습에 감탄한 끄덕임이었다.
“그런데, 아이를 지우지 말 걸 그랬나 봐. 가슴이 이렇게 아플 줄은 미처 몰랐어.”
“내가 많이 미웠겠군.”
“그래. 많이 밉더라. 너만 아니었으면, 그 아이 어쩌면 세상을 볼 수 있었을 테니까.”
“이제 미움 풀어라. 아까 실컷 맞아 주었잖아.”
정미는 대답대신 희미하게 웃었다. 난 소파에서 바닥으로 내려가 앉으며 정미를 내게로 당겨 내 다리를 베고 눕게 했다. 정미는 별 저항 없이 누웠고, 내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조용히 눈을 감았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정미는 고른 숨소리를 내며 잠이 들었다. 새근새근…… 정미의 자는 모습과 엄마의 자는 모습은 참 많이 닮았다. 눕자마자 깊은 잠에 빠져드는 것이나, 아기처럼 새근대는 것이나, 잠자는 표정이 아주 행복해 보이는 것까지 정말 많이 닮았다.
난 정미가 완전히 잠들자 정미를 살며시 안고서 방의 침대에 눕히고, 나도 그 옆에 누워 정미를 살며시 껴안고서 잠을 청했지만, 좀처럼 잠에 빠져들지 못했다. 막연하게 온 몸을 감싸고 있는 기 때문이라 생각을 했지만, 엄밀히 말하면 딱히 그 이유 때문도 아니었다. 기가 온 몸에 충만함을 느끼기는 하지만, 달리 불편함을 느끼는 것도, 뻗치는 힘을 느끼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그렇다고 정미의 이야기가 충격적이어서 그런 것도 아니었다. 그 보다 더 충격적인 일을 내가 하고 있으면서도 그 동안 잠만 잘았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난 이유 없는 불면증을 느끼며 그날 밤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세웠다.


다음날,
깜빡 잠이 든 나는 얼굴을 터치하는 손길에 눈을 떴다. 내가 눈을 뜨자, 황급히 손이 거두어 졌고, 정미의 고개가 반대편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난 뻣뻣하게 굳은 몸을 쭉 펴며 말했다.
“임마. 자는 사람 깨워놓고 왜 고개를 돌려?”
“미안해……”
“일어나. 아침 먹자.”
“응…… 조금만 기다려.”
핑계거리를 찾은 듯 정미는 내 말에 재빠르게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 주방에는 어제 밤, 정미가 잠든 사이에 내가 미리 준비해 둔 미역국과 밥이 있었다. 시계를 보니 전기밥솥이 고장만 나지 않았다면 지금쯤 아주 뜸이 잘 들어있을 것 같았다. 그때 문득, 어제 밤에 느껴지던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음을 깨달았다. 잠시 눈을 붙였을 뿐인데 이렇게 완전하게 사라져 버리다니 다소 허무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화를 낼 일도 아니었다. 갑자기 찾아왔다가 갑자기 사라져 버렸을 뿐이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어기적어기적 나도 주방을 향했다.
“어머……”
밥 솥을 열어본 정미는 놀란 듯 나를 돌아보았다.
“설치지 말고 이리 와서 앉아……”
“네..네가 한 거야?”
“그럼 이 집에 너와 나 외에 또 있니?”
“언제……?”
“어제 밤에 너 잠들었을 때. 자 가서 앉아……”
정미에게서 밥 솥을 뺐으며 밀었다. 아이까지 지워가며 나를 도와 준 정미에게 그 정도 보답은 해 주어도 손해 볼 게 없다. 더구나, 힘들고 지쳐있을 때의 작은 정성이 잘 나갈 때의 20캐럿 다이아몬드 반지 보다 더 감동적인 법이다. 정미는 여러모로 쓸모가 많은 아이다. 친해두어 손해 볼 일은 없었다. 단지, 영악함 때문에 조심은 해야 하겠지만..
“미역국?”
“그래. 어서 먹어라. 내가 할 줄 아는 게 그거 밖에 없어서 말이야..”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미역국을 떠먹는 정미의 볼이 발그레해졌다.
“맛있다.”
정미의 소감은 그것이 전부였다. 바보가 아닌 이상 어제의 중절 수술 때문에 내가 미역국을 끓였을 거란 건 정미도 알 터였다.



정미의 아파트를 빠져 나온 나는 곧장 집으로 향했다. 밤을 거의 뜬 눈으로 세웠음에도 피곤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피곤해야 하는 게 정상이라는 고정관념적 생각은 엄마에 대한 생각과 결부되면서 내 발길을 재촉했다. 잠시 잠깐 눈을 붙인 사이에 거짓말처럼 사라져버린 기운이지만, 뭔가 노력을 하면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 노인처럼 성공만 한다면, 엄마에게도 수련을 시켜서 15년 정도 젊어지게 하여 완전하게 내 여자로 취할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사람은 세월이 흐름에 따라 변한다. 어릴 때에는 성장하면서 변하고, 성년이 되어서는 쇠퇴하면서 변한다. 엄마 역시 젊은 시절과 지금의 모습은 다소 차이가 있었다. 엄마가 20대에 찍은 다소 촌스런 비키니 수영복 차림의 모습은 흑백 사진임에도 불구하고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터질 듯 뛰었다. 어깨도 지금 보다 조금 넓었고, 키도 조금 더 커 보였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것은 지금의 미소와 달리 그 때의 미소에는 싱그러움이 진하게 풍겼다. 미소하나 만으로 남자의 영혼을 빼앗을 만큼 사진 속의 엄마는 강렬한 인상을 주었던 것이다. 그런 여자가 어떻게 아버지와 결혼을 하게 되었을까? 참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째든 만약, 그때의 엄마로 되돌려 놓을 수 있다면……?
그렇다면 엄마와의 결혼도 가능했다. 시간을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은 세상의 진리였으니까. 엄마가 20대의 젊음을 되찾는다면 누구도 젊어진 엄마를 내 엄마로 보지 않을 것이다. 설령 아버지라 할 지라도 엄마를 몰라 볼 것이었다. 분명, 그의 기억 속에 있는 엄마의 모습일지라도 젊어진 엄마를 그저 몹시 닮은 여자라 생각할게 뻔했다. 그렇게 된다면, 당당하게 아버지에게 엄마를 며느리로써 인사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아버지에게 엄마를 며느리로서 인사를 시킨다? 생각만으로도 꽤나 재미있을 것 같았다.

집에 도착했을 때,
엄마는 정원에서 빨래를 널고 있었다. 무릎 아래로 살짝 내려오는 밤색 스커트 위에 하얀 앞치마를 두르고, 자주색 블라우스를 팔꿈치까지 걷어 올린 채, 우리 가족의 세탁된 옷을 널었다. 어릴 적, 악동이었던 난 장난감을 엄마가 사주지 않는다던가 하면, 애써 널어놓은 세탁물을 바닥으로 끄집어 내렸었다. 그러면, 곧 엄마와 나의 술래 잡기가 시작이 되었었다. 정원을 빙빙 돌며 아슬아슬하게 엄마의 손을 피했고, 나를 잡으려던 엄마는 정원을 몇 번 돌고 나면 가쁜 숨을 몰아 쉬었다. 그러다 완전히 토라져서 집안으로 들어가버렸었다. 물론, 그렇게 토라져도 내가 앞에서 몇 번만 재롱 부리면 금새 깔깔거리며 웃었다. 매 같은 것은 들지도 않은 엄마였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시절은 무척이나 행복했었던 것 같다. 할아버지, 할머니도 이 집에 살았었고, 결혼하지 않은 고모와 삼촌도 있었다. 고모는 할머니가 주선한 맞선자리를 언제나 거부했는데, 그런 탓에 늘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핀잔들 들어야 했고, 결혼할 여자가 있음에도 결혼을 하지 못하는 삼촌도 고모에게 투덜댔었다. 하지만, 고모는 꿋꿋했고, 늘 나에게는 엄마 다음으로 자상하게 대해 주었었다. 너무 자상해서인지, 내가 6살 때, 여자의 그 곳을 보고 싶다고 떼를 쓰자 나를 데리고 목욕하는 척하면서 자신의 그 곳을 보여주기까지 했으니까. 그럴 정도로 그 시절의 난 이 집의 왕자였다.
하지만, 이제 다 지나가버린 어린 시절일 뿐이다.
그리고, 난 지금의 이대로가 좋다. 엄마를 품을 수 있는 지금이 말이다.

“무슨 빨래가 이렇게 많아?”
“어머!”
엄마는 내가 다가오는 기척도 못 느꼈었는지 깜짝 놀랐다.
“언제 왔니?”
“지금. 무슨 생각에 빠졌길래 내가 대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도 몰라..?”
“생각은 무슨……”
엄마의 어투는 마치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듯한 투였다.
“내가 어제 외박을 해서 화난 거야?”
“아냐. 그런 거.”
“그래? 나에게 관심도 없구나?!!”
나는 짐짓 아주 피곤한 듯 하품을 하면 기지개를 피곤 걸어가며 말했다.
“아~함. 피곤하다. 들어가서 자야겠다.”
“어..어제 왜 핸드폰 꺼 놓았니?
그 말에 뒤를 돌아보니 엄마가 손에 빨래를 들고서 나를 향해 있었다.
“궁금하지 않다며?”
“내가 언제……?”
“아까 그 뜻 아니었어?”
“화나지 않았다고만 했어.”
“그런 뜻이었구나. 알았어. 그럼 난 이만 들어가 볼게.”
“너 내 말에 대답 안 했어!”
“응……? 그런가? 무슨 질문이었지? 피곤해서 그런가 금방 잊어버렸다.”
“왜 핸드폰 꺼 놓았냐고……
“아.. 그거……?”
“그래.”
“뭐 엄마가 짐작하고 있을 이유 때문이야.”
그렇게 말한 나는 정미에게서 보였던 그런 기운이 보일까 싶어 엄마를 주의 깊게 응시했다. 단전에서는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말이다. 하지만, 역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럼 친구 집에 있었던 거니?”
“친구? 그렇지 친구 집에…… 그럼 된 거지? 나 들어갈게.”
“남자야? 여자야?”
엄마의 음성이 다소 떨렸다. 정미와 달리 엄마는 굳이 기운이 보이지 않아도 그 속내가 다 들여다 보였다.
“풋~~ 엄마 생각에는 어느 쪽 같아?”
“나야 모르지……”
“한번 찍어 봐. 확률은 50%인데…… 맞추면 오늘 점심은 내가 할게.”
내 말에 엄마는 한 동안 말이 없었다. 자신의 말을 장난으로 받아들이는 나에게 화가 난 듯도 했지만, 그래도 불안한 시선은 감추지 못했다.
“남자니?”
“쩝…… 내가 점심 할 게. 그럼 나 들어간다.”
“여자지..!?”
“내가 점심 한다니까.”
난 앞으로 걸어가며 엄마에게 손을 들어 흔들고는 이내 집안으로 들어갔다. 거실을 지날 때 정원에 서서 엄마가 거실 창을 통해 나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난 그냥 싱긋 웃고서 곧장 주방으로 들어가 물을 마시고서 내 방으로 들어갔다.


전날, 정미가 잠이 들었을 때부터 내 몸 속을 흐르는 기운을 이해하려, 아니 통제하려 무진 애를 썼었다. 하지만, 새벽이 밝아 올 때까지 기운은 통제가 될 듯, 말 듯 애만 태울 뿐이었다. 그러다 갑작스럽게 몰려온 피로감을 이지지 못하고 그래도 잠이 들었었다. 그게 내가 기억하는 전부다.

내 방에 들어온 나는 자세를 잡고서 단전의 기운을 느끼려 했다.
주식의 상종가를 기대하는 것처럼 잔뜩 기대를 하고서 말이다. 우선 내 몸을 먼저 느꼈다. 팔과 다리의 존재, 몸통과 머리의 존재 및 작은 털까지 하나, 하나 느끼며 확인하려 했고, 다음으로 내 몸을 흐르는 피를 감지하려 했다. 어제 밤, 그것까지는 몇 번이나 되었었다. 그리고, 그 다음 단계는 쉽게 진행이 된다. 규칙적으로 뛰는 심장이 느껴지고, 산소를 빨아당기는 폐가 느껴지며, 영양소를 흡수하는 내장이 느껴진다. 모든 독을 해독하는 간의 움직임도, 외부의 소리에 민감하게 떨리는 고막까지도 모두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였다.
거대한 기계 같은 내 몸을 확연하게 느끼기는 하지만, 단전에서의 기운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전날 밤에 내 몸을 휘감아 도는 기운과 내 의지가 별개인 것처럼 느끼던 것과 비슷했다. 막연한 생각에 이 단계만 넘어서면 뭔가 될 듯한데 말이다.
하지만, 엄마가 점심을 먹으라며 내 방의 문을 두드릴 때까지 난 그 단계를 넘어서지 못했다.


식사 준비를 내가 한다고 했지만, 내 방문을 두드렸을 때 엄마는 이미 식탁에 음식을 차려놓을 뒤였다.
“아까 무슨 빨래를 그렇게 많이 했어?”
“입지 않는 옷을 보육원에 주려고……”
“으응……”
“그런데, 너 정말 말 안 할 거니?”
“뭘……?”
“어제 밤 누구와 있었는지 말이야.”
그렇게 말하는 엄마는 아침과 달리 엄마는 차분해 보였다. 그저, 단순한 호기심인 양. 내가 말을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것처럼 말이다.
“말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고마워……”
내 말에 엄마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식사를 했다. 그런 엄마의 반응이 뭔지 모르게 아쉬웠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엄마의 반응에 은근히 재미를 느꼈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넘어가는 것이 거짓말을 하는 것보다는 좋았다. 애매모호함은 확실한 것보다는 사람에게 여유를 주니까 말이다.

그러다 문득, 아버지가 집에 계신 날, 섹스를 했을 때, 절정에 도달했을 무렵 강렬하게 찾아온 단전의 기운을 엄마도 느꼈는지 궁금했다. 비명까지 질렀던 엄마 역시 어쩌면 그런 기운을 느꼈을지도 몰랐다.
“엄마.. 아버지가 집에 있었던 날, 엄마도 혹시 단전의 기운을 느꼈어?”
“무슨 엉뚱한 말이야?”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엄마는 다소 심통 난 듯 했다.
“중용한 거야. 말해봐. 단전. 아니 아랫배에서 어떤 기운 같은 것을 느꼈었어?”
“몰라……”
“중요한 거라니까! 말해봐. 느꼈어!? 안 느꼈어?!!”
다소 커진 내 음성에 엄마는 나를 빤히 쳐다 보았다.
“그런 게 뭐가 중요하니?”
“느꼈구나!! 그렇지?”
“그렇다고 해두자.”
“그렇다고 해두자는 무슨 말이야! 확실히 말해. 느꼈어!? 못 느꼈어!?”
“그게 왜 궁금한 거니?!!”
“엄마와 내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거니까 그렇지!!!”
“뭐?”
“어서 말해봐. 어땠어?”
내 말에 엄마는 어이 없어 했지만, 답변을 재촉하자 체념하는 듯 답했다.
“그래. 느꼈어.”
“어떤 폭발할 것 같은 그런 기운이었어? 순식간에 전심으로 그 기운이 쭉 퍼지고?”
“그래.”
“됐어!!! 바로 그거였어!!!”
난 나도 모르게 식탁을 손으로 내리쳤고, 엄마는 황당한 표정으로 그런 나를 바라보았다. 엄마 역시 단전의 기운을 느낀 이상, 나 혼자 굳이 수련할 필요가 없었다. 물론, 엄마는 내가 아무리 충분하게 설명을 해주어도 미심쩍어 하겠지만, 행위자체를 거부할 리는 없었다. 더구나, 이틀 전, 아버지가 계신 날, 가진 섹스 방법으로 엄마는 비명을 지를 정도의 쾌감을 느꼈으니 엄마로선 반대할 이유가 없을 것이었다.

난 식사를 중지하고서 엄마에게 노인의 이야기를 했다. 가능한 사실대로 노인의 말까지 전해 주었지만, 기운이 손상되느니, 영원히 소멸되느니 하는 이야기들은 모두 빼버렸다. 그 중에서 가장 강조한 것은 기운을 역으로 돌려서 젊음을 되찾는 것으로, 나이가 든 사람이면 누구라도 젊음에 대한 향수가 있는 법이었으니까 말이다.
“정말이니?”
엄마는 의심을 하는 게 아니라, 아예 안 믿는 표정이었다.
“그럼! 직접 내 눈으로 목격한 일인 걸.”
“믿기 어려운데. 사람이 812년을 산다는 것도 그렇고…… 그렇게 오래 산 사람이라면 사람들이 알 텐데.”
“숨기면 모르지.”
“경찰한테 불심검문이라도 걸리면?”
“경찰?”
그 부분은 미처 나도 생각하지 못했다. 조선시대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지문까지 찍는 개인신분등록 제도를 가진 대한민국의 역사도 50년이 넘지 않던가. 짧은 역사지만, 전 국토를 군대처럼 통제한 군부통치 시절까지 경험 했었다. 더구나 현 세상은 개인신분정보를 바탕으로 한 신용시대이다.
“그렇군. 그 점은 조금 이상하네. 달동네라고는 하지만, 그 어르신이 세상을 등진 체 숨어사는 건 아닌 것 같았으니까..”
“혹시.. 노인에게 속은 거 아니니?”
“의심은 가지만 속은 건 아니야. 어제 밤, 분명히 여자친구의 기를 보았으니까. 이야기를 하는 중에 갑자기 단전에서 기운이 느껴지더니 보였어.”
순간, 엄마의 안색이 하얗게 변하며 굳어졌다.
“여자친구였구나.”
낭패였다.
“하지만, 아무 일도 없었어. 믿어줘.”
난 내 성격에 어울리지 않게 변명을 했지만, 이미 엎지른 물이었다. 아침부터 나를 따라다닌 뭔지 모를 불길함이 이런 거였구나 하는 생각이 뒤를 이었지만, 그 모든 것들은 때늦은 후회일 뿐이었다.
엄마는 말없이 나를 가만히 응시하다가 멈추었던 식사를 다시 시작했다. 내 이야기가 길었던 탓에 음식들이 눈에 보일정도로 식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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