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恐皇) 5부 <새로운 시대> Part 2-15편
주문을 영창하여 벽처럼 위장하고 있던 환상을 걷어내고 나서, 슈발츠는 만족스럽게 한마디 했다.
" 그래, 이런게 진짜 보물창고지. "
눈앞에 서 있는 문은 아다만틴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아마도 강력한 마법으로 철을 아다만틴으로 바꾸었을 것이다. 보통의 모험자에게라면 이 문짝 자체가 보물이고, 떼어 가는데 성공하면 인생이 바뀔 것이다. 하지만 이미 백금으로 궁전을 만들어도 될 정도의 갑부인 슈발츠는 아다만틴 문짝이라고 해도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돌파하기 약간 더 어렵다는 점만 제외한다면. 그리고 바닥으로 시선을 옮긴 그는 이 문이 최근에 열렸다는 증거를 찾아 냈다. 먼지의 흐트러짐과 발자국, 그리고 바닥에 남은 생채기가 있었던 것이다.
만약 시간이 있었다면 문을 조용히 여는 법을 고민했겠지만, 슈발츠는 지금 시간이 없다. 이럴때는 힘에 의존할 때이다. 그는 마력을 불러일으키며 주먹을 쥐었다.
쿠웅!...
지하실 전체가 울릴 정도로 강렬한 일격은, 슈발츠가 만들어 낸 역장 주먹에 의한 것이었다. 그의 손 동작 대로 움직이는 이 보이지 않는 힘의 덩어리는 무언가 힘을 써야 하는데 그의 힘을 직접 보여주고 싶지 않을때 지극히 유용했다. 처음 본다면, 누구도 슈발츠가 마음먹고 주먹을 휘두르면 지금 문을 두들기는 마력의 주먹 보다 훨씬 심각한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추론할 수 없을 테니까. 그리고 그 주먹은 굳이 아다만틴으로 된 문을 부술 만큼 강력할 필요가 없다.
쿠웅!...
대부분의 경우 보물 창고의 입구는 아다만틴이든 뭐든 단단한 문을 달 수 있지만, 그 문이 고정되어 있는 벽은 그렇지 못하다. 아주 단단한 돌이라도, 그리고 마법을 쓴다 해도 문과 벽은 서로 다른 재질이고, 여닫기 위해서는 경첩이든 도르레든 사용해야 한다. 원론적으로 따지자면, 문은 벽에서 분리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니 문을 열기 위해 그것을 부술만큼 힘을 쓰는것은, 힘 낭비다. 그저 문과 벽의 접합부가 부서질 정도의 힘만 가하면 된다.
쿠웅!...
아다만틴 문이 흔들리며 돌가루가 튀었다. 문의 [경첩]과 벽이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바로 이런 것을 기대한 슈발츠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이빨을 드러내고 빙긋이 웃었다.
쿠웅!...
드드드드....
쿠웅!!....
드드드.... 쿠웅!!!....
연속으로 두번 더 치자, 마침내 아다만틴 문짝이 뒤로 넘어갔다. 그리고 지금까지 일으킨 것 이상으로 성대한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평상시라면 지금쯤 셰이드 군대가 달려오고 있어야 하지만, 페아림들이 그들의 시선을 붙잡아 주고 있다. 슈발츠는 페아림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 정도였다.
...
이윽고 먼지가 걷혔을 때, 슈발츠의 눈에 들어온 것은 높이 솟은 진열장이 여러 열을 지어 끝도 없이 늘어선 하나의 거대한 석실이었다.
물론 슈발츠도 보물들을 선반에 정리한다. 하지만 또한 그것이 반짝이는 것을 보기 좋아한다. 아마 용의 혈통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보물창고에 있는 반짝이는 것들을 굳이 따로 상자에 넣고 꼬리표를 달지 않는다. 보기 좋게 전시하는 것이다. 하지만 셰이드들은 용이 아니다. 모든것은 튼튼하고 잠겨 있는 두꺼운 목제나 철제 상자 안에 들어 있었고, 각 상자의 자물쇠마다 파피루스 조각으로 만들어진 꼬리표가 붙어 있었다. 그리고 진열장 자체도 카테고리를 만들어 두고 있어서, 목적하는 물건을 찾는데 있어서 어디를 찾아야 하는지 몰라서 헤멜 염려는 없었다. 다만 문제는, 창고 안에 들어있는 물건이 너무 많았다는 점이다.
슈발츠가 [그외 물품]이라 분류된 선반을 찾아냈을 때, 그의 머릿속으로 다시 젤로나의 목소리가 울려 왔다.
[주인님, 매복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젤로나
[막을까요?]/두르나
[아니, 되도록 몸을 낮추고 숨어 있거라. 그리고 지금 다른 일이 없는 예쁜이들은 모두 장비를 갖추고 대기하고 있도록, 일이 험악하게 돌아갈지도 모르니까]/슈발츠
마지막 전언은 노예들 모두에게 보내어졌다. 그리고 [예쁜이]라고 불리운 것에 고무된 노예들이 출동 준비를 서두르는 동안, 슈발츠는 초인적인 속도로 각 상자의 꼬리표들을 읽어 내리면서 목표로 하는 사루크의 아티팩트 조각이 든 상자를 찾기 시작했다. 그동안 두르나가 통과시킨 적은 모두 여덟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들어온 여덟번째의 상대는 그녀를 놀래키기에 충분했다.
[주인님, 방금 제가 누굴 봤는지 믿기 힘드실 거에요.]/두르나
[세라복을 차려입고 포즈를 잡은 일곱의 아이 타이런트 소녀라도 본게냐?]/슈발츠
[...그건 또 뭔가요?]/두르나
[모르면 됐다... 그나저나 뭘 본게야?]/슈발츠
[우리가 죽은걸로 하고 장례까지 치른 아바리엘요.]/두르나
[아퀼란?]/슈발츠
[네.]/두르나
분명히 아퀼란은 위브가 흐르는 저 먼 외계에다 버리고 왔다. 아마도 아스트랄계로 흘러들었을 것이고 거기서 죽었으리라고 추측했지만, 명줄이 좀 질겼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주인님이 잘라 내신 다리랑 불타버린 손이 붙어 있네요. 원래 거랑 모양은 좀 다르지만.]
두르나는 자기가 본 것의 이미지를 설명하고 싶었지만, 적당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조금있다가 슈발츠가 직접 보면 될것이므로.
[그외엔 조금 험상궂어 보이는 어께가 일곱... 무슨 조직 같네요.]/두르나
[아퀼란이 웬도나이 말고 새 스폰서를 구한 모양이지.]/슈발츠
슈발츠는 텔레파시로 대수롭지 않게 대꾸해 주면서 또 몆개인가의 파피루스 꼬리표를 눈으로 훝으며 지나쳤다. 추적자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고 자신의 볼일은 보아야 했으니까. 싸움을 벌이는 것은 목표물이 확인된 다음의 일로 미뤄도 늦지 않은 것이다. 그의 마음을 알아주기라도 하듯이, 추적자들은 진열장 구역에 들어서자 마자 속도가 느려졌다. 그들도 역시 무엇인가 찾는 것이다.
" 여기엔 없군... 어? "
[그외 등등]진열장의 마지막을 장식한 상자를 확인한 슈발츠가 도착한 것은 창고의 입구와 반대편의 벽이었다. 진흙을 빛어 반든 벽돌을 고온에 구워 만든 흰색과 검은색과 회색의 장식 벽돌로 덮여진 그 벽의 한 면은 일종의 기록화로 채워져 있었는데, 그 부조의 일부가 상당히 낮이 익은 것이었다.
사루크만큼이나, 고대의 네서릴은 페아림들과 격렬한 전투를 치루었다. 그리고 그 전쟁이 원인의 전부는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그 중에 멸망했다. 그리고 공통의 적을 가지고 있기에, 사루크들은 네서릴을 암암리에 지원했다. 슈발츠는 거기까지는 몰랐지만, 네서릴 수뇌부는 페아림들에게 대항할 카드로 고대 사루크들의 마법에 대해서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그 증거가 바로 슈발츠의 눈앞에 펼쳐진 거대한 흑백의 부조였다. 그것은 하나의 거대한 마법진으로, 슈발츠 조차 그 진정한 실체를 깨닫기까지는 제법 시간이 걸렸을 정도였다.
부조는 미완성이었다. 그리고 슈발츠가 그 부조에 걸려 있는 마법적인 의미를 해독했을때, 그 부조는 형태를 바꾸기 시작했다. 색이 바뀌며, 흐름이 생기고, 마치 소용돌이처럼 물결친 끝에, 커다란 반원형의 금색 판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슈발츠가 익히 본 적이 있는 원반의 절반이었다.
슈발츠가 찾은 한 조각, 그리고 여기 합쳐진 두 조각, 이제 마지막 한 조각만 찾으면 그의 영혼은 위브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그가 그 금속 판에 손을 대었을 때, 마침내 추적자들의 그의 시야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 오랜만이군. "/슈발츠
" 흐흐흐흐... 놀라지 않는걸 보니 눈치 채고 있었던 모양이군. 재미있어 지겠어. "/아퀼란
화상으로 일그러진 얼굴을 제외하고서라도, 아퀼란은 확실히 변해 있었다. 그리고 슈발츠는 두르나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변화를 알아챌 수 있었다. 그의 타버린 왼손과 두 다리 뿐 아니라, 그의 왼쪽 눈도 바뀌어 있었다. 바뀐 손은 딱딱하게 굳은 송장의 그것 같았고, 눈은 붉은색으로 충혈된채 이글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두 다리는 쇠붙이였다.
" 그 발은 그럴듯한데. 사고로 수족을 잃은 사람들에게 쓸만하겠어. "/슈발츠
" 아직도 네놈이 내 다리를 잘랐을때의 감각이 남아 있어... 하지만 진짜 대단한 것은 내 새로운 손과 눈이라고 할 수 있지. "/아퀼란
대화를 하는 동안 새카만 갑옷에 싸인 일곱 전사들이 모습을 드러내어 슈발츠 주변을 포위해 왔다.
" 네놈을 천천히 포 떠준 후에, 눈 독수리의 안식처에 남아 있는 배신자 년놈들을 차근 차근 손봐 줄것이다. "/아퀼란
" 그게 가능하다면, 얼마든지. "/슈발츠
슈발츠는 눈으로 자신을 포위한 전사들의 역량을 눈어림해 보기 시작했다. 저마다 도끼, 양손검, 스파이크 체인 등등, 다양한 무기를 들었지만 얼굴까지 완전히 가리는 새카만 강철 갑옷으로 몸을 감싸서 누가 누군지 알 수 없는 상태인 일곱의 전사. 그 중의 여섯에게서는 생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가장 수상한 것은 물론 아퀼란이었다. 분명 살아 있는데 언데드의 냄새가 진하게 풍기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다시 아퀼란은 고개를 들고 중얼거렸다.
" 아, 마침내 왔군. "
스스스슷...
순간이동해 온 것은 일단의 셰이드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마치 이런 상황을 예상이라도 한 듯이 검은 갑옷의 전사들 틈으로 들어가 슈발츠에 대한 포위망을 구축했다.
" 약속한 것은 가지고 왔겠지? "
지휘관으로 보이는 셰이드 마법사가 무리들 중에서 한걸음 나섰다. 상당히 낮익은 얼굴이었기에, 슈발츠는 잠시 기억을 더듬어 보다가 속으로 무릎을 쳤다. 아나우로크 사막의, 아이올라움이 숨어 있는 고대 유적 앞에서 만났던 하드룬이었다. 둘은 모종의 계약을 한 성 싶었다.
" 물론, 여기 있다. "
아퀼란이 꺼낸 것은 슴색 원반의 1/4. 즉 사루크의 아티팩트의 나머지 한 조각이었다. 이곳에서 아티팩트 조각의 나머지를 한번에 모두 찾은 것이다. 슈발츠는 아무 말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쾌재를 불렀다.
" 나머지 하나는 저녀석이 가지고 있지. "
아퀼란은 슈발츠를 지목했다. 하드룬은 그제사 슈발츠 쪽을 돌아보면서 그 냉막한 인상의 얼굴에 미소를 띄웠다.
" 오랜만이군요, 이방인. "/하드룬
" 아아, 그리 좋지 않은 상황에서 보게 되었네. "/슈발츠
" 저는 지금 상황이 더할나위 없이 좋군요. 순순히 아티팩트의 나머지 조각을 넘긴다면 유혈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하드룬
뭐라고 대답할까 하고 슈발츠가 고민하는 동안 두르나가 보물 진열장 위에 매복한 채로 활을 꺼내 드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두르나야, 전투가 시작된다고 해도 나서지 말거라. 대신 저 셰이드 마법사가 도망간다면, 그놈을 붙잡거라.]
[네 주인님.]
두르나가 다시 몸을 낮추는 것을 보며 슈발츠는 고개를 좌우로 까닥거리며 몸을 풀었다.
" 나는 [유혈사태]가 좋아서 말이지... "
슈발츠가 어께를 으쓱해 보이자, 하드룬은 비릿하게 웃어 보이면서 미끄러지듯이 뒷걸음으로 물러났다.
" 스스로 초래한 재앙이니, 원망하지 마시오. "
하드룬의 그 말을 시작으로, 공격이 시작되었다.
슈슈슈슉!... 우우웅...
파바박, 파박!...
제일 먼저 시작된 것은 셰이드 궁수들의 화살 공격이었다. 그리고 날아오던 화살들은 슈발츠의 몸 주변에서 일어난 결계에 닿아 푸른 광채를 발하며 반사되었다.
" 치잇! 잔재주를!... "
화살을 쏘았던 궁수들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쓰러지는 것을 보며 아퀼란은 허공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주문을 걸기 시작했다. 그리고 슈발츠의 오른손에서는 검은 빛의 칼이, 왼손에서는 하얀 빛의 칼이 각각 손 안에서 빠져나오는 듯한 느낌으로 생겨났다. 그것을 본 일곱 전사들과 나머지 셰이드들이 일제히 그의 사방에서 달려들면서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었다.
난전이었지만, 마왕도 맞상대하는 슈발츠의 수준에서는 그리 어려운 전투는 아니었다. 아퀼란의 눈과 손에서 발해 지는 주문과 저주들은 확실히 유래없이 강력했지만 그가 견뎌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고, 그에게 직접 달려든 자들은 낮게 웅웅거리는 소리와 함게 모든것을 녹이고 태우면서 잘라내버리는 무서운 빛의 칼 앞에 다진 고깃덩이가 되었을 뿐이다.
" 맙소사... 이건 차원이 다르잖아... 난 여기서 나가야겠어. "
언데드 기사 여섯과 열여섯의 셰이드를 베어 쓰러트리고 이제 나머지 하나를 남겼을 무렵, 전황의 불리함을 깨달은 하드룬이 뺑소니를 치려고 주문을 외우는 것을 두르나가 화살 한발을 날려서 중지시켰다.
" 크아악!... "
어께 우물을 뚫은 화살에 실린 힘에 의해 왼쪽으로 반바퀴를 핑그르르 회전한 후에 땅바닥으로 쓰러진 하드룬을 두르나가 진열장 아래로 뛰어내리며 밟아 누른 후, 그대로 촉수 채찍으로 한대 갈기고 나서 레이피어로 아픈곳을 또 한번 더 찔러서 완전히 반죽음을 만들어 놓았다.
두르나가 반쯤 혼백이 달아난 하드룬을 꽁꽁 묶는 동안, 슈발츠는 막 자기 앞을 가로막아서던 [살아있는]기사를 주먹으로 때려 쓰러트리고 나서, 아퀼란과 일대일로 맞서게 되었다.
" 후후후후... "/아퀼란
" 뭐가 그리 기분이 좋은거냐, 니 부하들은 모두 다 누웠다구. "/슈발츠
" 사실 그놈들은 장식일 뿐이지. 높으신 분은 그걸 모르더라고. "/아퀼란
잠깐 사이에 아퀼란의 깡마른 신체가 우람한 근육질로 바뀌고, 키가 거의 두배로 늘었다. 그리고 슈발츠가 이제 더 뭘 할라나 싶어서 구경하는 동안, 아퀼란의 전신은 칠흑같이 검은 영기로 물들고 그 눈은 붉게 변하며 마치 지옥의 악마들 같은 붉은 광채를 발하기 시작했다.
" 내 새로운 힘을 맛봐라!... "
퍼엉!!!
다음 순간, 슈발츠는 아퀼란이 거의 자신과 비슷할 정도의 순간 가속으로 달려들어오는 것을 보고 손을 들어 방어를 했고, 공성 망치와 정면 충돌한 듯한 느낌을 받으며 몆걸음이나 뒤로 물러나야 했다.
" 오오 대단하군... "
물러서며 찍힌 돌바닥의 발자국을 보며 슈발츠는 감탄을 했다. 이 정도면 그와 맞먹는 힘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미처 감탄을 다 끝내기 전에 공중으로부터 다시 아퀼란이 덮쳐 왔다. 슈발츠는 이번에는 맞서지 않고 몸을 슬쩍 돌려 피했다.
쿠아앙!!! 콰드드득!...
돌조각들이 사방으로 흩날리고, 아퀼란은 거의 허리까지 돌바닥에 파고 들어갔다. 문득 슈발츠는 그의 주변에 일렁이는 검은 영기가 상당히 낮이 익다고 느꼈다. 그리고 다시 아퀼란이 자신이 만든 돌구정이에서 빠져 나왔을 때, 슈발츠는 그의 뒤에 흐릿하게 맺힌 영기가 일종의 드래곤과 비슷하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아니 그것은 마치 그림자로 이뤄진 드래곤 같았다.
우우웅... 파츠츳!...
다시 아퀼란이 달려들어왔을때, 슈발츠는 지체없이 빛의 칼을 뽑아들고 맞섰다. 놀랍게도 아퀼란의 몸 주변을 감싼 영기는 슈발츠의 빛의 칼에도 베어지지 않고 성대하고 이질적인 색의 불꽃만 튀겨 올렸을 뿐이다. 하지만 효과는 있었다. 최초로 아퀼란이 훌쩍 뒤어 뒤로 물러섰기 떄문이다.
" 좋은 무기를 가지고 있군. "/아퀼란
"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 설마 이걸 쓴다고 비겁하다 어떻다 할 생각은 아니겠지? "/슈발츠
" 천만에, 마침 나도 비슷한게 두개 있는데... 비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좋겠군. "/아퀼란
말을 끝마치자 마자 아퀼란의 양손에서 시커먼 영기가 솟아올랐다. 그것은 슈발츠의 빛의 칼과 무척 닮았지만, 보다 더 그림자처럼 흐릿한 것이었다. 그제사 슈발츠는 아퀼란이 지금 뭘 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그는 슈발츠의 능력을 카피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승부를 질질 끌면서 자기 밑천을 다 드러내 보일 필요가 없다. 다시 아퀼란이 달려들기 시작했을 때, 슈발츠는 지체없이 왼손의 하얀 칼을 떨쳐내듯이 휘둘렀다.
파츠츳!...
쭉 뻗은 하얀 섬광이 횡으로 휘둘러지며, 지나가는 모든 것을 태우고 베어넘겼다. 달려오던 아퀼란이 그것을 방어하느라 두손의 검은 영기의 칼을 X자로 교차했을 때, 슈발츠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 나는, 누가 내 흉내를 내는걸 무척 싫어해. "
다음 순간, 아퀼란의 두 팔은 허공을 날고 있었다. 그가 돌아섰을 때, 슈발츠의 두번째 일격 중 왼손의 하얀 칼은 그의 허리를 가르고 있었고, 오른손의 검은 칼은 그의 목줄기를 향해 휘둘러지고 있었다.
비명조차 없었다.
머리, 몸통, 팔 두개, 그리고 허리 아래 부분으로 분해된 아퀼란. 그의 목이 허공에 떠 있는 잠깐의 시간 동안 그의 두 팔을 잃은 상반신이 먼저 땅으로 떨어졌고, 그 다음 한동안 피를 흘려내며 버치고 서 있던 하반신이 무릎을 꿇었다.
툭! 툭 떼구르르르...
아퀼란의 목이 땅바닥에 떨어졋을 때, 그의 몸은 이미 원래대로 쪼그라들어 있었다.
슈발츠는 한바탕 휩쓸어버린 현장을 다시 돌아보았다. 그리고 완전히 처리하지 않은 놈이 하나 남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방금 자신의 앞을 막아섰던 검은 갑옷의 전사가 땅바닥에 쓰러진 채 비틀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여섯과 달리 언데드가 아니었기 때문에, 문득 슈발츠는 그 정체가 무엇일지 궁금해졌다.
" 어디, 등짝을...아니 얼굴을 좀 볼까. "
움직이지 못하도록 배를 밟아 누른 후, 슈발츠는 손을 뻗어 그 투구를 벗기려 했다. 하지만 그것이 갑옷에 고정되어 있어서 잠시 동안 투구의 잠금쇠와 씨름을 한 끝에, 그것을 손끝으로 부숴 버리고 투구를 떼어 놓는데 성공했다.
" ?!... "
드러난 것은 피에 젖은 풍성한 금발이었다. 너무 풍성한 머리카락이 산발이 된 채 얼굴을 가리고 있어서, 얼굴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그 머리카락을 정돈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그리고 또 잠깐 섬세하지 못한 자신의 손가락에 대해(어쩄든 크고 굵었기 때문에, 손끝으로 하는 섬세한 작업은 도구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 불편하다) 불평한 후에, 슈발츠는 혀를 찻다.
" ... 쯧... "
드러난 것은 [슈발츠와 사이가 좋은 아바리엘 자매]중 장녀인 헬레네의 얼굴이었다. 턱뼈를 포함한 얼굴 절반이 골절되어 피투성이가 된 얼굴이 보기 흉하게 부어올라 있긴 했지만, 나머지 얼굴 절반으로 미루어보건데 분명히 그녀가 분명했다. 급히 그녀의 얼굴 상처를 손보고 회복 물약을 먹였지만, 슈발츠의 손에 실린 엄청난 힘 때문에 받은 타격 때문에 그녀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 어머, 이건?... "
하드룬을 질질 끌고 슈발츠 옆으로 다가온 두르나가 그제사 헬레네를 알아보았다.
" 어떻게 된 일일까요? "/두르나
" 아마도 전에 이놈과 맞섰던 여자니까... 나쁜 마법에 홀리거나 했겠지. 날개는 잘린건가? "/슈발츠
다시 상의를 차근차근히 벗겨 보자, 한층 더한 광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갑옷 안이 피투성이였기 때문이다. 갑옷의 안쪽으로 촘촘하게 작은 스파이크들이 드러나 있어, 맨살을 뚫고 긁어서 끊임없이 상처가 나도록 만들고 있었다. 게다가 그 스파이크로 인한 상처 이외에도 채찍 자국이 흉하게 남은 등짝에는 날개가 잘린 자국이 아직 완연하게 남아 있었다.
" 꽤 험한 꼴을 당했나 보네요. "/두르나
" 일단 데리고 가자. 여기 오래 있을 필요는 없겠지. "/슈발츠
아티팩트의 모든 조각을 챙긴 슈발츠는 알루데시아가 돌아오는 것을 기다려서 두르나와 두명의 포로와 함께 순간이동을 했다.
-후기-
어떤 수단을 써도(물론 아오의 개입이 있다면 이야기가 다르지만), 슈발츠 자체는 복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와 비슷한 효고를 [흉내 낼수는 ]있습니다. 아퀼란이 보여준 것은 바로 그것입니다. 한번 본 적의 능력을 흉내내는 것. 물론 당연히 복사본은 원본의 능력을 완전히 카피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만약 원본이 손해를 입고 있는 상황에서 팔팔한 복사본이 덤벼든다면, 승부의 무게추는 반대로 기울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슈발츠는 몆십명쯤 베어넘겨도 팔팔하잖아. 안될거야, 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