鬼椿 오니츠바키 1-1
제1부 / "원한"이라는 글자
제1화
"잘, 잤, 어~? 카즈야"
잠이 덜 깨어 뿌연 시야에, 아니 바로 눈 앞에 유카의 얼굴이 보인다.
"자, 어서 일어나지 않으면 지각할거야"
가볍게 입을 맞추며 미소짓는다. 항상 아침마다 잠에서 깨워주는 키스. 귀엽다. 부드러운 입술의 감촉이 따뜻하게 온몸을 떠다닌다. 정말이지 너무나 귀엽다고 다시 한번 생각한다. 두 사람분의 온기와 주름이 남아있는 침대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유카의 부모님은 출장이 잦으시다. 그럴때마다 늘 "혼자선 외로우니까"라며, 유카는 옆집의 아마노의 방을 찾았다.
"조금만 있음 아침 준비 다 됩니다아~"
주방에 선 뒷모습이 보인다. 찰랑찰랑 긴 머리칼이 등을 지나 허리까지 늘어져있다. 밖에선 항상 리본으로 머리를 묶는 포니테일 스타일인 유카. 초등학교때부터 지금까지 주욱. 머리를 풀고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유카의 부모님을 제외하면 분명 아마노 뿐이었다.
"잘 잤어?"
"응, 카즈야두? 어서 세수해"
탁탁거리는 도마소리가 기분좋게 들린다. 된장국 냄새가 가득 방안을 감돈다. 유카는 아마노의 와이셔츠만 걸치고 주방에 서 있다. 적당히 햇볕에 그을린 육감적이고 날씬한 맨다리가 흰 셔츠 밑으로 쭉 뻗어나와있다. 파자마 차림이거나, 이렇게 와이셔츠 한 장 차림이거나, 티셔츠 한 장이던가. 애석하게도 알몸 에이프런같은 건 없었지만 아침에 일어났을때 유카의 저 모습은 아마노에겐 은밀한 즐거움이었다. 음, 역시 신체건강한 남자가 이대로 그냥 넘어가기엔 확실히 무리라고 할수있는 시츄에이션이다.
"꺄아~"
당연히 뒤에서 꽈악 껴안는다. 샴푸의 향기를 즐기면서 안고있는 팔의 힘을 더해간다.
"잠깐, 카즈야. 위험하잖아, 가스불 켜져있는데"
말할것도 없이 레인지의 스위치를 돌려 불을 꺼버린다.
"이러면 된거지? 유카"
"아이~안돼, 안돼, 이러다 학교 늦어"
입으로 하는 말하고는 달리 전혀 저항하는 기색은 없다. 오히려 카즈야가 두르고있는 팔을 꼭 안는다.
"유카가 나쁜거야. 아침부터 이런 모습 하고 있으니까"
"그..."
"뭐?"
"카즈야가, 좋아하니까...이런 모습"
그렇게 말하고 새빨개진 얼굴을 숙인다. 평소의 기가 센 유카가 아니다. 귀엽다. 정말로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뺨을 양손으로 잡아 뒤를 돌아보게 하고 입술을 겹친다.
"아, 응...쭙....아....하압...."
유카쪽에서 혀를 입안으로 넣어온다. 그에 맞춰 같이 혀를 얽는다.
"아...아앙...."
얇은 셔츠 위로 벌써부터 딱딱해져 두드러진 유두의 감촉을 즐긴다. 살짝 튕기면 달콤한 한숨이 터져나온다. 그런 유카의 반응 하나하나가 귀엽다.
"히...안돼~~"
유카의 신음소리가 한층 더 높아졌다. 아마노 역시 놀랐다. 허벅지를 쓰다듬고 있던 손가락이 가랑이 사이에 닿자 바로 뜨거운 꽃잎이 느껴졌다.
"유카...속옷...안 입었네"
"...바보"
이런건 처음이다. 조금씩 손가락을 안으로 넣어갔다.
"하아...아앙...카즈...야...아앙, 나 이제...하앙"
"유카...놀랐어...이렇게...굉장해, 유카의 여기..."
"부끄러...워"
어렸을때부터 뭔가 아마노의 약점을 잡고서는 짖궃게 놀려먹고 괴롭히곤 했던 유카.
하지만 이렇게 아마노의 품 안에 안겨있을때 만큼은, 형세가 역전돼서 수줍게 몸을 맡겨온다.
모든걸 아마노에게 맡긴채로 그렇게 얌전해질 수가 없다.
커다란 눈을 촉촉히 적시고 아마노의 품안으로 자꾸만 파고 들어올 뿐이다.
그건 연인인 아마노만이 알고 있다. 이게 진짜 유카의 본모습이라는 사실을.
"아앙...부탁이야...제발...카즈야...아앙, 이제 넣어 줘..."
온몸을 온통 자극하는 아마노의 입술과 손가락 애무에 무릎 힘이 풀려 주저앉을 것 같은 유카를 뒤돌려 세우고 싱크대를 붙잡게 하면, 곧바로 트렁크를 내리고 뒤에서 삽입한다.
"앗, 아아~~~~앙, 좋아....앙"
어떻게 이 안에 내장이 다 들어가있는지 불가사의할 정도로 가느다란 허리를 꽉 붙잡고 격렬하게 부딪힌다.
찰박거리는 물소리가 튀어오른다.
"아, 하아...대단해...아앙...느껴져...이제...안돼 안돼....아앙, 카즈야아...아, 아, 아, 나...가, 가 버...려"
"그렇게 큰 소리 내면 밖에 다 들려"
당황해서 얼른 자신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는다. 집 앞의 복도, 주방의 유리창 너머로 사람의 그림자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지나간다.
"응, 응, 음, 그윽..."
등을 활처럼 크게 젖히고 긴 머리카락을 흩트리면서 절정에 올라 무너지는 유카의 몸을 아마노는 가슴에 꼬옥 안았다.
생선구이 반찬에 차분한 아침식사.
스키니 진에 핑크색 반소매 블라우스를 차려입고 붉은 리본으로 묶은 포니테일 머리를 하고 있는 유카에게서 조금전까지의 추잡하게 흐트러진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평상시의 청초한 분위기만 감돌고 있었다.
"아마 괜찮을거라고 생각해"
"진짜? 네 식구가 외식하는거 오랜만이잖아! 기쁘긴 한데, 정말 괜찮은 거야? 연구, 바빠질거라고 했잖아"
"응, 이제 거의 끝났으니까. 새로 프로젝트 들어가면 한동안 또 정신 없을거야. 자, 한 그릇 더!"
유카가 수북하게 밥을 공기에 담으면서 묻는다.
"이번엔 또 어떤 연구야?"
"발병률은 낮지만 아직까지 치료법이 없는 그런 유전병에 관련된 단백질 구조, 그러니까 유전자를 찾는거야. 타카쿠라 선생님이 목표로 하시는 연구지."
"헤에, 뭔가 대단하네. 그럼 그걸 찾으면 어떻게 되는거야?"
"지금까지는 살 수 없었던 사람이 살 수 있게 돼."
식사도 잠시 멈추고 열정을 가득 담아 이야기하는 아마노의 얼굴을 유카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왜?"
"사랑해"
"뭐야, 갑자기"
"카즈야, 지금 진짜 멋져"
비행기 사고로 부모님을 여의고 나서 아마노는 사람을 돕는 일을 하고 싶다고 언제나 유카에게 이야기해왔다.
학비문제로 결국 단념한 의학부 대신 선택한 것은, 바이오신약으로 연결되는 생명과학 분야.
그다지 특징없는 얼굴, 굳이 좋게 말해 상냥한 얼굴, 거리를 걷고 있으면 거의 항상 헌팅당하는 유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외모라며 스스로 웃곤 하는 아마노.
하지만 그런 아마노 내면에 숨겨진 굳은 의지와 강한 목표의식을 유카는 잘 알고 있다.
앞으로 몇달 후면 곧 본격적으로 시작될 취직활동을 코앞에 두고도, 아직까지 장래를 막연해 하고 있는 유카에게는 눈부실 만큼 멋지게 빛나는 그이였다.
"이거 맛있는데, 유카 요리솜씨 정말 좋아"
"3일전에 산 연어. 냉동. 그저 구웠을뿐"
"아..그.."
수줍게 밥공기를 엄폐물 삼아 시선을 피하는 아마노를 가만히 응시하는 유카.
"그럼, 갈까?"
현관 손잡이를 잡고 있는 아마노의 손을 유카가 가만히 잡는다.
"잠깐만"
그렇게 말하며 또 입을 맞춘다.
"연구, 열심히 해. 자주 만날순 없게 되겠지만, 응원할께"
"고마워"
"타카쿠라 선생님도 참 예쁘지?"
"응, ...응?"
앗, 실수다. 이걸로 또 한 달은 너끈히 갈굼당할것이다. 생각없이 대답한 자신이 원망스러워진다.
유카가 개구장이처럼 짖궃은 표정으로 웃고 있다.
그 날 저녁, PC앞에서 작업에 열중하고 있던 아마노의 등 뒤에서 누군가 "저, 선배님, 잠깐 시간 괜찮으세요"라고 물어왔다.
"응? 너는..."
"사츠키입니다. 1학년에..."
"아, 사츠키. 무슨 일이야?"
이학부 신입생. 유전자 관련 연구에 흥미가 있다고 하는, 최근 종종 연구실에 들리는, 유카와 같은 테니스 동아리의 여자아이다.
연습하러 가는 길인지 나이키 브랜드의 검정색 저지를 상하복으로 차려입고 있었다.
유카와는 조금 다른 의미로 남의 눈을 끄는 귀여운 여자아이지만 아직은 외형적으로나 정신적으로도 그저 어린 아이같다는 느낌이다. 아무튼 간신히 기억해 냈을 정도로, 특별히 관심을 가지지는 않고 있었다.
"저..."
"응, 왜?"
"저기..."
말을 꺼내기가 어려운지 손가락만 만지작거리고 있다.
"저기 말야, 나, 지금 좀 바쁘거든"
그렇찮아도 세 개의 계산방식에 따른 각각의 커다란 결과 차이로 머리가 지끈거리던 중이다.
"앗, 죄송합니다. 저, 선배님, 저...모리사키 선배와 사귀고 계신건가요?"
"그래, 그런데 그게 왜?"
뭘 말하고 싶은거야.
"모리사키 선배, 요사이 좀 이상한 점, 없었나요?"
"글쎄, 별로 잘 모르겠는데"
"그래요?....."
조그만 얼굴을 숙이는 사츠키.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거야?
"뭐야? 대체 왜 그런 얘길 하는거지?"
아마노가 점점 초조해지게 잠시 뜸을 들이다 말을 잇는다.
"얼마전에, 역앞의 스타벅스에서 모리사키 선배하고, 같은 동아리의 남자애가, 저기 사카키사와군이라고 하는 아이인데요, 그 둘이서 데이트하고 있는 걸 목격해버렸어요."
"하, 같은 동아리니까 어쩌다 차 한잔 정도는 같이 마실수도 있겠지. 그게 무슨 데이트야."
오늘 아침의 유카가 떠오른다. 아무리봐도 만들어낸 얘기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무심코 헛웃음이 터져나온다.
"하지만, 빨대도 하나만 사용하기도 했고..."
"뭐야, 잘못 봤겠지. 그런 일이 있을리가 없잖아"
시시한 얘기는 이제 그만, 이라고 생각하며 다시 PC쪽으로 몸을 돌린다.
"제가 하는 말, 믿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만, 그래도 주의하시는게 좋아요. 사카키사와군, 꽤 유명하거든요. 여자도 금방 꼬여내고 또 금새 바꿔댄다고. 어쩐지 모리사키 선배도 동아리 연습때라든지, 그리 싫어하는 눈치도 아니고요"
"응응"
흘려들을 가치도 없는 시시한 이야기다.
생각없이 대꾸하는 아마노의 등 뒤로 갑자기 사츠키가 다가오는 느낌이 들었다.
"엇"
앉아있는 아마노의 어깨를 넘어 온 사츠키의 입술이 아마노의 입술을 덮친다.
"뭐하는거야"
당황해서 뿌리치는 아마노를 뒤로 하고 연구실을 달려나가며 맹랑한 여자후배가 외친다.
"저, 아마노 선배를 좋아합니다. 모리사키 선배하고는 헤어졌으면 좋겠어요"
아직은 모른다. 소중한 사람을 지킬수 없는 아픔을.
몸과 마음이 찢기워지는 그녀의 아픔을.
여태껏 꼭 안고 지내온, 녀석의 상처와 아픔을.
나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오니츠바키. 사람의 마음을 미쳐버리게 만드는 꽃.
이별의 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