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鬼椿 오니츠바키 1-4

제4화


"어? 지갑?"
발밑에 떨어진 검정색 지갑을 발견했을 때에는 이미 류지의 모습은 사라지고 있었다.
방금 전 "아르바이트 늦었어요"라며 황급히 방에서 뛰쳐나갔다.
"모리사키 선배, 오늘은 잔류연습 같이 못하겠네요, 죄송합니다"라고 하자마자 달려나갔다.
"오른쪽 무릎, 많이 좋아진것 같네"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지갑을 주워든다.
그것이 일부러 류지가, 우화에게 줍게 하려고 고의로 떨어뜨린 것이라는건 전혀 알지 못한채.
조금씩, 확실하게, 류지가 파놓은 함정에 빠져들고 있는것도 전혀 모른채 지갑을 주워 들었다.
"사카키사와 지갑이 맞겠지?"
1000엔 지폐 2매, 잔돈 조금, 꼬깃꼬깃한 슈퍼마켓 영수증 몇 장 뿐, 현금카드도 신용카드도 없다.
심지어 렌탈비디오가게 회원증같은것도.
오래되어 낡은 얄팍한 지갑 안에는 그 외엔 오직 류지의 학생증만 있었다.
"세상에..."
요즘 대학생, 하물며 동아리 여자부원들 대부분이 동경하는 세련된 미남 류지. 그런 그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낡아빠진 지갑. 예상외의 조합에 당황했다.
아르바이트에 간다고 했지.
지갑이 없으면 누구라도 곤란해질것이다.
하지만 아르바이트하는 곳도 모르고, 남자부원들에게 전해줘도 내일 저녁이나 되야 받게 될 것이다.
어쩌지. 잠시 망설이던 유카는 학생증만 꺼낸 지갑을 자신의 프라다 백에 집어넣고는 부실에 가려던 발걸음을 돌려 교문으로 향했다.
지갑만 전해주는 것 뿐이니까...
그렇게 자신을 타이르면서. 자신에게 거듭해서 말하는 유카였다.
몇 번이나 전철을 갈아탔는지 모른다.
황혼이 지는 거리에서 쇼핑봉투를 든 주부와 마주친다.
붉게 물든 하늘을 고추잠자리가 춤추며 날고 있다.
황혼의 구름이 황금빛으로 물든다.
점점 어둑어둑해지는 동네를, 학생증에 쓰여있는 주소를 의지해 걷고, 또 걷는다.
"여기...여기야?"
한적한 주택가 모퉁이를 돌아 도착한 전신주의 그림자가 늘어진 건물의 모습에 다시 한번 또 당황한다.
"그랜드 메종 센카와"라는 이름을 보고 제법 말쑥한 맨션을 상상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류지에게는 그쪽이 어울린다.
하지만 눈앞에 서있는 건물은 지은지 적어도 20년은 지나 보였다.
마치 그의 지갑처럼 낡을대로 낡은 지저분한 목조 아파트.
"정말로 이런데서 살고 있을까"
오직 이 날을 위해서 류지는 굳이 이 아파트를 선택하고 있었다.
잔뜩 녹이 슨 계단을 오르자 삐걱거리는 소리가 울린다.
반신반의, 아마 주소가 잘못 됐겠지, 하지만 혹시 모르니까 하면서 계단을 오른다.
그렇게 생각하고 앞에 선 현관문에는 "사카키사와"라는 명패가 붙어있었다.
"사카키사와...."
노크를 하자 현관문에 붙어있는 유리가 철그렁 소리를 내며 불안하게 흔들린다.
"네"
문이 열리고 류지가 고개를 내민다.
유카를 보고 깜짝 놀란 얼굴은 곧바로 의아함과 불쾌함이 뒤섞인 표정으로 바뀌었다.
"모리사키 선배, 여긴...어떻게 왔습니까"
희미하게 유카를 거절하는 목소리였다.
지금까지 류지가 유카에게 이런 얼굴을 보였던 적은 없었다.
언제나 유카에게만은 친밀함을 가득 담고 있었다.
그런만큼 유카는 류지의 반응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이거...사카키사와군이, 떨어뜨린것 같아서...."
가방에서 꺼낸 검정색 지갑.
"내..." 문을 번쩍 열고 나와 지갑을 낚아챈 류지가 복도에 쭈그리고 앉아 중얼거린다.
"다행이다...."
쭈그리고 앉은 류지와 눈을 맞춘 유카가 "다행이네..."라고 한마디.
류지는 몇번이나 크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모리사키 선배, 정말이지 선배 덕에 살았습니다"
일어났을 때에는 이미 평소의 웃는 얼굴로 돌아오고 있었다.
"응, 주운게 나여서 다행이었지?"
"선배, 고마와요, 일부러 전해주러 찾아와준것도, 전부 감사해요"
긴장이 풀린 유카가 무심코 중얼거린다.
"하지만, 놀랐어. 사카키사와군이 이런곳에 살고 있어서"
바로 류지의 얼굴이 흐려진다.
"이런 곳이지만, 괜찮으시다면 들어오실래요?
답례, 아무것도 못하지만, 커피정도는 있으니까"
"아...그럼 실례할께..."
아무래도 토라졌는지 휙 돌아서는 류지를 쫒아 집안으로 들어간다.
"설탕, 넣으세요?"
유카 앞에 커피잔을 놓고 앉은뱅이탁자를 사이에 두고 앉는다.
아무 생각없이 던진 말 한마디가 깊이 상처를 준 것 같다. 뭐라고 말하면 좋을지.
"음, 밀크는 없나..."
"없습니다"
류지는 계속해서 굳은 표정으로 딱딱하게 내뱉는다.
"사카키사와군, 조금 전엔 미안했어,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아니요, 저야말로 미안해요. 애써 지갑도 찾아주셨는데..."
소리를 내 훌쩍거린다.
"미안"
"저, 모리사키 선배"
"응? 뭐?"
"제가 이런 곳에 살고 있는거 알고, 무슨 생각 드셨어요?"
"무슨?"
"선배에겐 알려지고 싶지 않았어요. 후지지 않습니까? 이런 낡아빠진 아파트.
싫어하게 되는 것도 당연해요. 이런 곳에 살고있는 나같은 거하고 선배는 조금도 어울리지 않으니까"
"그렇지 않아"
조그만 목소리로 기가 죽어 이야기하는 류지쪽으로 유카가 몸을 숙여왔다.
"정말...입니까"
"정말로. 그러니까 사카키사와, 고개 들어"
"다행이네요..."
류지의 안심해하는 얼굴을 보자 어께에서 힘이 쭉 빠진다.
침대, 텔레비전, 지금 앞에 놓인 앉은뱅이 탁자, 노트북, 그리고 다다미 위에 흩어진 잡지책 몇 권과 법학서적.
이제 방을 둘러 볼 여유도 생긴다.
무채색의 무미건조한 방에 유일하게 눈에 띄는 것이 하나 보였다.
창가에 놓인 조그만 화분 하나.
"아, 꽃이네"
"아아, 저거요?"
류지가 화분을 들고 와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이거 동백꽃? 꽃봉오리가 났네. 동백꽃은 이런 조그만 화분에서도 피는구나"
"글쎄요, 가끔 물만 주고 있을 뿐이라서. 아직까지 꽃이 핀건 못봤네요"
"흐~음, 아! 맞다, 사카키사와군, 아르바이트는 가지않아도 돼?"
"조금전에 빠진다고 전화했습니다.
지갑 잃어버려서 돈이 하나도 없었으니까, 거기까지 갈 차비도 없고.
그렇다고 돈을 빌릴 친구같은것도 없고요.
뭐 이젠 모리사키 선배한테니까 솔직하게 말할께요.
가난합니다, 나. 만약 이 지갑 못 찾았으면 주말까지 한끼도 못 먹었을거에요."
그렇게 말하고 수줍게 미소를 짓는다.
앞으로 3일간 겨우 2000엔으로...
유카가 류지에게 가지는 이미지가 조금씩 변해간다. 제대로 몰랐던 류지의 본모습을 조금씩...알아 나간다.
"사카키사와군, 송금같은거 받지 않는거야? 장한걸"
"네, 보내줄 사람도 없으니까요.
어머니는 내가 철들기도 전에 남자하고 눈맞아서 도망가버리고, 아버지는 중2때 술취해 길거리에서 얼어죽어버렸으니까"
"어머..."
저렇게 무거운 이야기를 마치 남의 일처럼 담담하게 말하는 류지.
다음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저 물끄러미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 죄송합니다. 이상한 이야기를 해버려서..."
카즈야하고 같다, 사카키사와도. 외톨이였던거야.
"많이 힘들었겠네..."
"하지만 동정은 딱 질색이에요"
밝게 대꾸한다.
"아니, 달라. 동정같은게 아니구, 그렇게 힘들었는데, 스스로 힘으로 돈벌어서 학교도 다니고.
사카키사와군 참 훌륭하다고 생각했어. 난 항상 응석만 부려왔는데"
"그건 그거대로 괜찮지 않아요?
별로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하진 않으니까.
혼자 있는거 이미 익숙해졌고, 마음도 편하고, 누구한테 간섭받는 일도 없고."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류지마음속의 강한 심지가 느껴졌다.
유카 마음속에서 뭔가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자 이제 아르바이트 갈까, 지갑도 찾았고"
류지가 그렇게 말하며 일어선다.
"어? 아르바이트 아까 쉰다고..."
"아, 그건 저녁시간 패밀리 레스토랑 접시닦이요"
"대체 아르바이트를 몇개나..."
"패밀리 레스토랑하고, 심야 경비원, 주말은 편의점. 우리 대학, 학비가 꽤나 비싸서요"
"내일도 강의 있지않아? 동아리연습도 있고, 괜찮아?"
"아침에 잠깐 자고 나갑니다. 이젠 익숙해졌어요. 괜찮아요"
옷자락이 헤진 점퍼를 입고 현관에서 안전화 끈을 묶는 류지의 넓은 등을 가만히 바라본다.
"정말 대단하다, 사카키사와..."
"나에겐 꼭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 있으니까요"
그래, 카즈야하고 같아, 제대로 목표를 세우고 있어, 유카는 자기만 목표도 없이 넋놓고 사는것만 같은 느낌에 먹먹해진다.
"커피 잘 먹었어"라고 말하고 유카도 가방을 손에 든다.
류지가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 그게 복수라는 것을 알지도 못한채...
"사카키사와..."
"선배도 더 늦어지기 전에 돌아가야죠. 애인이 걱정하고 있는거 아니에요?"
이상하게도 아마노의 얼굴은 떠오르지 않는다.
"언제 한번 밥 해주러 올께"
일순간 침묵.
"진짜요?"
신발끈을 묶다말고 훽 벗어 차 던지고는 방으로 뛰어들어오다가 미끄러 넘어져 한바퀴 뒹구는 류지를 놀라 쳐다본다.
"괜찮아?"
"행복합니다. 진짜 무지 기뻐요. 모리사키 선배가 해주는 요리라니.
저 너무 기뻐서 울어버릴거 같애요"
넘어졌을때 부딪혔는지 빨개진 이마에 손을 대며 올려다 본 류지의 얼굴은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이래뵈도 요리는 자신있어"
류지는 깔깔대고 웃음을 터뜨리고 싶은걸 간신히 참고 있었다.
뱃속에서부터 저절로 웃음이 터져나온다.
지나치리만큼 자신의 계획대로, 아니 그 이상으로 일이 너무 잘 굴러가서, 바닥을 떼굴떼굴 구르며 웃고 싶을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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