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삼총사 #37 추기경의 꾀임에 넘어간 보나시외
그 무렵, 달타냥의 집주인 보나시외는 근위대원들에게 잡혀 바스티유 감옥에 갇혀 있었다.
달타냥이 곧 구해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한 치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을 만큼 깜깜한 지하 감옥에서 그는 아무런 희망을 가질 수가 없었다.
"으으으..."
보나시외씨는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조차 잊은 채, 그저 공포에 벌벌 떨었다.
그때, 갑자기 발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더니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감방의 문이 열렸다.
"따라와."
간수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오자 보나시외씨는 후들거리는 다리로 감방을 빠져나왔다.
감방의 문 앞에는 두 사람의 간수가 보나시외씨를 노려보고 있었다.
(설마....벌써 사형을 당하는건가?)
보나시외는 크게 좌절하여 그만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다리가 후들거려 도저히 제대로 서있을 수가 없었다.
간수들은 얼굴을 찡그리며 그의 엉덩이를 발로 걷어차며 소리쳤다.
그후 보나시외씨는 간수들에게 이끌려 어디론가 끌려갔다.
안뜰을 지나고, 복도를 지나, 구석에 있는 어두컴컴한 방에 떠밀려 들어가자 보나시외씨는 더욱 두려움에 떨었다.
"네 녀석이 보나시외인가?"
방 안에는 비쩍 마른 사나이 한 명이 의자에 앉아 서류를 뒤적이고 있었다.
그는 보나시외씨를 보자 매서운 눈초리로 쏘아보며 물었다.
"넌 네 아내와 함께 반란을 일으키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지?"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전 그냥 장사꾼일 뿐입니다. 음모라니요. 더군다나 제 아내는 누군가에게 납치를 당했습니다."
"거짓말 하지 마! 네 놈이 달타냥이라는 녀석과 짜고 몰래 숨겼다는 것을 다 알고 있어!"
"아닙니다. 정말 아닙니다. 아내가 사라져서 아내를 찾아달라고 달타냥님께 부탁한 것밖에 없습니다."
보나시외씨는 벌벌 떨면서도 억울하다는 듯 항변했다.
"흥! 끝까지 거짓말을 할 생각인가 보군. 안되겠다. 이봐! 다시 이 녀석을 감방에 가두도록 해라!"
조사관은 보나시외씨가 끝까지 조사에 응하지 않자 부하를 시켜서 다시 감방에 가두도록 명령했다.
다시 독방에 갇힌 보나시외씨는 점점 더 감옥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였다.
믿었던 달타냥은 소식이 없었고, 아내도 사라진데다, 홀로 감방에 갖혀 억울한 누명까지 뒤집어써야 하자 그는 절망감이 들어왔다.
결국 그는 괴로운 마음에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러다가 정말 반란죄를 뒤집어쓰고 처형 당하지 않을까 걱정되는구나.)
보나시외씨는 너무나 억울했다.
이대로 삶을 끝내기엔 억울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건 전부 아내 탓이야. 여자면 여자답게 잠자코 집에나 있을 것이지. 자기가 무슨 영웅이라도 된 줄 알고 왕비님 편에 들어 이상한 일을 꾸미니까 이렇게 된 거야.)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억울한 감정이 심해져 아내를 원망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튿날 새벽이 되자, 보나시외씨는 또 다시 간수들에게 이끌려 감방을 나오게 되었다.
그는 아직 날도 밝지 않았는데 자신을 불러내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도대체 왜 이런 꼭두새벽에 날 불러내는거지?)
그는 불안한 마음에 어디로 가는지 간수들에게 물어보았지만, 간수들은 아무런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간수들은 바스티유 감옥 밖으로 보나시외를 데리고 나와 마차에 태운 뒤, 어두운 밤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보나시외씨는 잔뜩 겁을 집어먹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헉...!"
마차가 달리는 길은 파리에서 유명한 산포르 사형장으로 가는 길이었다.
보나시외씨는 이대로 자신이 처형당하는 건 아닌가 싶어 점점 안색이 안 좋아지기 시작하더니, 곧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고 말았다.
(아이구~, 쓸데없는 아내 떄문에 결국 죄 없는 내가 죽게 생겼구나.)
보나시외씨는 아내에 대한 원망이 솟아오르기 싲가했다.
하지만 아무리 원망을 해보아도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그는 모든 것을 체념하고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런데 한참을 지나도 마차는 멈추지 않았다.
도착할 시간이 지났는데도 마차가 계속 달려가자 보나시외씨는 이상한 생각이 들어 눈을 가늘게 뜨고 밖을 내다보았다.
뒤를 돌아보니 사형장의 불빛이 점점 작아져 가고 있었다.
(아....사형작으로 가는 것이 아니었구나.)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마차는 몇 군데 길을 돌아 커다란 저택 앞에 멈추어섰다.
그리고 그 후 마차에서 끌어내려진 보나시외씨는 저택 깊숙한 곳에 있는 방으로 끌려가게 되었다.
(이곳은 어디지?)
방 안은 온갖 장식들로 화려하게 치장되어 있었다.
보니시외씨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그곳이 높은 지위의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꿀꺽~!"
그는 자연스럽게 긴장을 바짝 하게 되었다.
잠시 후, 거대한 문이 열리며 한 남자가 들어왔다.
그 남자는 넓고 반듯한 이마에 날카로운 눈빛을 가지고 있었다. 마치 왕처럼 위엄스런 분위기를 풍기고 있어서 저도 모르게 위축이 들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보나시외는 알 도리가 없었지만 그 사람이야말로 전 유럽에 이름을 떨치고 있는 리슐리외 추기경이었다.
"흠, 자네가 바로 역모를 꾀하다 붙잡혔다는 보나시외라는 장사꾼이군?"
추기경은 커다란 책상 앞에 앉아 서류를 뒤적이며 물었다.
그는 서류를 잠시 읽어본 뒤 날카로운 눈빛으로 보나시외씨의 전신을 훑어보았다.
"그,그런..! 천만의 말씀이십니다. 저는 단지 아내에게 몇 마디 마을 들은 것 밖에는 없습니다. 역모라니요! 저 같은 놈이 어떻게 그런 큰 일을 벌이겠습니까? 그리고 제 아내는 이미 다른 사람에게 납치까지 당했습니다."
추기경은 보나시외씨의 항변에도 코웃음을 치며 되물었다.
"도대체 자네 아내가 자네에게 해준 말이 무엇인가? 그 내용에 따라서 자네의 역모죄는 확정이 될 수도 있네."
"저...그게..."
보나시외씨는 망설이듯 어쩔 줄 몰라했다.
그러나 자신을 날카롭게 노려보는 추기경의 눈빛에 겁을 집어먹고는 모든 것을 실토하기 시작했다.
"제가 아내에게 들은 바로는 리슐리외 추기경님께서 왕비님과 영국의 버킹검 공작을 해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답니다. 추기경님은 가짜 편지를 영국으로 보내 공작을 파리로 꾀어낸 다음 왕비님과 함께 없애려는 무서운 게획을 꾸미고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아니 뭐라고?"
리슐리외 추기경은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으음...자네 아내가 대체 누구이길래 그런 것까지 알고 있는거지?"
곧 침착성을 되찾은 추기경은 은밀한 목소리로 보나시외씨를 추궁했다.
"사실 제 아내는 왕비님의 총애를 받는 시녀입니다. 그래서 왕비님에 관련된 일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죠. 아내는 일주일에 두세번 집에 돌아오는데, 아무래도 집에 돌아오는 길에 그만 납치를 당하고 만 것 같습니다. 제가 직접 루브르 궁전 앞까지 아내를 마중나가곤 했는데 이번엔 그러지를 못 했으니까요."
"그랬었군. 혹시 누가 붙잡아 갔는지는 알고 있나?"
"이름은 모르지만 추기경의 부하인 것 같습니다. 분명 얼굴에 칼자국이 난 사나이라고 하는데 아내는 전부터 항상 그 사내가 자신을 노리고 있다고 불안해했습니다."
"그렇군..."
리슐리외 추기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보나시외씨는 상대가 열심히 자신의 이야기를 경청해주자 용기를 얻었다.
그래서 자신의 억울함을 열심히 피로하며 선처를 부탁했다.
"자네는 여기서 빨리 나가고 싶은가보지?"
"여부가 있겠습니까. 풀어만 주신다면 뭐든지 다 하겠습니다. 정말입니다."
보나시외씨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애원했다.
"좋아. 그럼 내가 자네의 누명을 벗겨주고 이곳에서 벗어나도록 해주지. 그다만 아까 자네는 한 달에 두세 번씩 루브르 궁전으로 아내를 마중 나간다고 했는데 혹시 그럴 때마다 곧장 집으로 돌아갔는가?"
"아닙니다. 아내는 항상 중간에 다른 가게에 들리곤 했습니다. "
"그렇군."
리슐리외는 잠시 날카롭게 눈빛을 반짝였다.
사소한 증거도 놓치지 않는 예리함이 빛났다.
"흠, 아무리 보아도 자네는 죄 없는 사람인 것 같으니 내가 선처를 해주도록 하지. 나라를 생각하는 선량한 백성을 잘못 잡아온 것 같아 미안하군. 내 사과의 표시로 자네에게 선물을 하나 하도록 하지."
추기경은 책상서랍에서 가죽으로 만든 주머니를 건네주었다.
그리고 그 주머니 안에는 금화가 가득 들어있었다.
"아니, 이건..?"
묵직한 돈주머니를 받아든 보나시외씨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추기경을 바라보았다.
"내 작은 성의라네. 그리고보니 아직 내 소개도 하지 않았구만. 내가 바로 아까 자네가 말한 리슐리외라는 사람이라네."
"네에?!"
"그리고 자네와 자네의 부인이 뭔가 오해를 하고 있는 모양인데, 나 역시 자네와 같이 국가를 생각하는 선량한 백성일 뿐이라네. 다만 내가 듣기로는 왕비님이 악독한 버킹검공작에게 속아 나랏일을 망치고 있다고 하기에 이렇게 조심하고 있는거지. 영국의 버킹검 공작은 우리나라를 전복시키려는 무서운 음모를 꾸미고 있지. 그건 프랑스 국민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 아닌가."
추기경은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보나시외씨를 바라보았다.
"나라를 생각하다보니 과격해질 수 밖에 없고 그러다보니 자네 같은 선량한 사람까지 무턱대고 붙잡아오게 되는구만. 미안하네."
보나시외씨는 말로만 듣던 리슐리외 추기경이 자신에게 선물을 주고 사과를 한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추기경은 보나시외와 같은 일개 백성따위는 거들떠보지 않을만큼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고, 순식간에 없애 버릴수도 있는 막강한 권력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높은 위치에 있으면서도 자신과 같은 하찮은 사람에게 직접 용서를 구하는 모습을 보게 되자 소문으로만 듣던 것과는 너무 달라, 보나시외씨는 크게 감격하고 말았다.
"추기경님, 정말 감사합니다. 풀어주신 것만을도 고마운데, 이렇게 선물까지 주시다니....결코 이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아닐세.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 뿐이야. 자네가 기쁘게 받아준다니 내가 더 기쁘군."
추기경은 그러면서 은근하게 속삭였다.
" 그런데 말이야, 혹시라도 내가 부탁할 일이 하나 있는데 들어주지 않겠나?"
"무슨 일이든 시켜만 주십시오. 목숨을 걸고 추기경님을 위해 일하겠습니다."
"그래, 내일 아침 일찍 자네를 풀어줄테니, 집으로 돌아가게 되면 부인이 하는 이야기 중 궁궐과 관련된 이야기가 있으면 내게 전해줄 수 있겠나? 뭐든지 말이야."
"네, 그런 거라면 정말 쉬운 일이죠. 부인에게 무슨 이야기를 듣게 되면 당장 추기경님께 알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추기경은 보나시외씨의 말에 만족스러운 듯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그의 손을 맞잡았다.
"다만, 한 가지 조심해야 할 것은 이 사실을 부인은 물론 어느 누구에게도 발설하면 안 되네. 이것은 자네와 나만이 알고 있는 국가의 중대한 비밀이니 말일세."
"네, 알겠습니다."
"자네는 이제 단순한 잡화 상인이 아니라, 국가를 위해 큰일을 맡은 중요한 인물이 된게야. 그러니 내 귀를 대신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고 있다는 걸 명심하고, 부디 국가를 위해 힘써주게."
"예, 추기경님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보나시외씨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추기경의 저택을 빠져나왔다. 그는 추기경의 말처럼 자신이 국가의 비밀을 맡게 된 중요한 인물이라는 생각에 절로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이 내가 추기경님의 심복이 되다니...)
방금 전까지 겁에 질려 벌벌 떩고 있던 보나시외씨는 두둑한 돈주머니를 품에 넣은 채 위풍당당하게 걸음을 옮겼다.
보나시외씨가 돌아간지 얼마 안되어 추기경의 방에는 애꾸눈의 사나이 로슈포르가 들어왔다.
"추기경님, 저런 사람을 믿고 일을 맡기셔도 되겠습니까?"
로슈포르는 인상을 찡그리며 물었다.
그는 귀가 얇아보이는 잡화 상인이 마음에 들지 않은 듯 했다.
"뭐 어떤가. 이럼으로써 우리는 상대의 깊숙한 곳에 우리의 귀가 되어줄 사람을 심어둘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일세. 이 정도면 오히려 싸게 먹힌거라네."
추기경은 그러면서 은밀한 곳에 붙잡아두었던 보나시외씨의 부인을 풀어주도록 명령하였다.
"고문을 해서도 아무런 정보도 뺴낼 수 없다면 붙잡아두었던 그 시녀를 풀어주도록 하게. 그러는 편이 오히려 함정을 파기 더 좋으니 말일세."
"음...저기, 추기경님....안 그래도 그 일때문에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어젯밤에 적들로 보이는 총사들에 의해 보나시외 부인을 뺴앗겼습니다. 아지트를 급습당해 손도 못 써보고 빼앗겼다고 하더군요. 녀석들 중엔 삼총사와 예비총사대장도 끼어있었다고 합니다."
로슈포르는 근위대 사천왕 2명이 지키고 있었음에도 지키지 못한데에 사죄를 하였다.
"후후, 괜찮네. 오히려 잘 되었군. 순순히 풀어주는 것보다 그렇게 적들로 하여금 구출하게 하는 편이 상대를 속이기 더 수월할테니 말일세."
추기경은 별거 아니라는 듯 피식 웃어넘겼다.
"분명 파리 어딘가에 버킹검 공작 녀석이 들어와 있을걸세. 그 놈을 잡아야 이 지긋 지긋한 숨박꼭질이 끝나는거야. 그러니 하루 빨리 녀석을 사로잡도록 하게."
"네. 추기경님."
로슈포르는 추기경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밖으로 나갔다.
버킹검 공작.
영국의 최고 실세이자, 조국 프랑스 걸림돌이 되는 그 자를 반드시 사로잡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