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 - 9.3
세아가 대군장에게 몸을 맡기고 있는 사이 지아는 자신의 처소의 침상위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었다. 제사장이 된다는 것은 실로 엄청난 일이었고 누구나 기뻐해야할 영광스러운 일이었으나 지아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그런 지아에게 지아의 몸에 봉인되어 있는 치우가 호들갑스럽게 말하고 있었다.
『으음.... 』
말을 하던 지아가 그때의 부족회의에서의 일을 떠올리는듯 말을 끊고 생각에 잠기는듯한 표정을 지어보이고 있었다. 말이 끊어지자 궁금함에 답답했는지 치우가 지아의 대답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응?? 부족회의에서 뭐?? 아~ 그 대군장인가 뭔가 그 시커먼 놈이 씨부린걸 생각하고 있는거야?? 에이~ 신경쓰지마 그 자식 원래... 』
지아는 어머니의 생각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지아는 제사장같은것에 욕심도 없었고 당연히 친 딸인 세아가 어머니의 뒤를 이어받아야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부족회의에서 어머니의 발표는 지아에게도 놀라운 것이었다. 어째서일까..?? 왜 세아를 두고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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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아 있느냐? 』
『아.. 네.. 』
지아가 생각에 빠져 있을 때 지아의 방밖에서 지긋이 나이가 들어보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아는 그 목소리의 주인을 알아보고 재빨리 침상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허리를 숙여 예를 표했다.
『됐다.. 모자지간에.. 공식적인 자리도 아닌데 그리 예의 차릴 필요 없지 않느냐.. 』
지아의 방을 찿아온 것은 지금의 제사장인 지아의 어머니였다. 지아의 어머니는 왜 그런 발표를 하셨는지 잔뜩 궁금하다는 얼굴을 하고 어머니를 바라보고 있는 지아의 시선을 무시하고 하얀 천으로 둘둘 감겨있는 지아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치우도 잘 있었느냐? 』
제사장의 존재를 알아차린듯 불빛으로 말을 하듯 천에 감긴 지아의 손이 붉은 빛으로 깜박이듯이 물들었다 사라지며 치우의 음성이 들려왔다. 치우의 말에 지아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치우 너!! 어머니께 무슨 말버릇이야?? 』
치우의 뜻밖의 말에 제사장도 조금은 놀란 표정을 지어보였다. 치우가 말하는 위로란 의미가 무엇인지 제사장도 지아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치우의 말에 지아는 거의 패닉에 가까울 정도로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서 말까지 더듬거리면서 소리쳤다.
『치..치우 너!! 너!!! 무..무슨.. 』
『푸하하핫!! 역시 치우 답구나!! 녀석!! 좋다!! 나보다 훨씬 많은 세월을 살아오신 어른이신데 원한다면 못할것도 없지!! 』
어머니의 말에 지아가 또한번 기절할 듯이 놀라고 당황하며 어쩔줄 몰라하며 어머니에게 말을 했다.
『어..어머니 무..무슨 말씀을.. 』
아마도 제사장의 말을 누군가 들었다면 수십번은 기절하고도 남았을 일이었다. 때론 무섭고 위엄있는 그리고 때로는 한없이 자상한 제사장이 이런 농도짙은 농을 하고 있을거라고는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다. 그 딸로서 지금껏 어머니를 보아오던 지아 역시 어머니의 말에 당황하며 어쩔 줄 모를 정도였으니까...
『푸히히힛.. 나도 제사장 아줌마가 좋지만.. 그래도 몸은 지아께 훨씬 좋아요~ 그냥 없던걸로 할게요~ 』
『그럼요~~ 부드럽고~ 야들야들하고~ 게다가 얼굴까지 이쁘고 세상에 이런.. 허걱!! 』
마치 직접 눈앞에서 지아의 벌거벗은 몸을 상상이라도 하는듯이 말하던 치우가 깜짝 놀라며 말을 끊었다. 부끄러운지 얼굴이 새빨갛게 되어버린 지아가 치우의 말에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치우가 봉인되어 있는 팔을 째려보듯 내려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하핫.. 지아야.. 그거 알고 있느냐? 』
『하하하하하핫... 』
어머니의 말에 새빨갛게 얼굴을 물들이는 지아의 표정을 보며 어머니는 유쾌하게 큰 소리를 내어 웃었다. 한참을 그렇게 웃으며 이야기하던 지아의 어머니가 웃음을 거두고 두 손으로 지아의 손을 잡아주며 말했다.
『지아야.. 』
어머니의 말에 지아는 자신의 한 손을 잡고 있는 어머니의 두 손을 다른 손으로 감싸며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듯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그런 지아를 바라보며 조금은 자조섞인 말투로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아마도.. 궁금하겠지.. 내가 왜 세아가 아닌 널 선택했는지... 』
지아는 그 이유가 궁금하면서도 어머니가 말씀하실때까지 잠자코 기다리고 있었다.
『네게 그 이유를 말하기전에.. 네게 고백하고 사죄해야할게 있단다.. 』
『지아야.. 오늘 부족회의에서 대군장 그자의 막말때문에 마음 많이 상했지? 』
지아의 손을 잡고 있던 어머니의 손에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
지아 역시 그런 어머니의 손을 힘있게 꼭 쥐며 대답했다.
『누가 뭐라하든.. 설사.. 어머니가 절 버리신다해도.. 어머니는 제 어머니이십니다.. 』
『그래.. 고맙구나.. 그렇게 생각해주니 너무도 고맙구나.. 세아가 네 반만 되었어도 좋으련만...』
지아의 손을 잡고 있는 어머니의 눈에서 물방울이 맺혀들기 시작했다.
『아까 부족회의에서도 말했듯이.. 비록 네가 내 배로 낳은 아이는 아니라하나.. 난 지금까지 너를 내 딸이 아니라고 생각해본적이 한번도 없었다... 』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분명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어머니의 말은 제사장이 아닌 어머니의 입장에서 당신의 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불안하고 초조해하는 어머니의 입장에서 딸을 보호하기위해 지아를... 친 딸이 아닌 지아를 그들의 창을 막아줄 아니.. 그들의 창을 대신 받아줄 방패로 내세웠다는 이야기였다. 그 뜻을 알아들은 지아였지만 배신감보다는 어머니의 눈물에서 지아는 세아 못지않게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미..미안하구나.. 미안하구나 지아야.. 못난... 미련한 어미가.... 』
지아는 어머니를 안아주었다. 분명.. 어머니는 세아를 더 사랑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까지 삶을 살 수 있게 도와준것도 어머니였고 그녀를 대하는 어머니에게서 사랑이 부족하다 느껴본 적도 없었다. 분명한 것은.. 그 크기를 떠나서 어머니는 지아를 딸로서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었고 지아 역시 그런 어머니를 사랑했다. 끝내 울음을 참지 못하고 흐느끼는 어머니를 안아주며 지아가 말했다.
『지켜줄게요.. 제 힘이 닿는 한... 제사장이 아니라... 어머니의 딸로서... 세아의 언니로서.. 그렇게 세아를 지켜줄게요.. 』
그렇게 두 모녀는 서로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며 한없이 울고 있었다. 친 딸인 세아가 대군장의 품에 안겨 어머니를 떠올리며 원망하고 있을 그 때.. 수양딸인 지아도 어머니의 품에 안겨 어머니를.. 어머니의 사랑을 떠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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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컥...
현지의 방문이 갑작스럽게 열리고 현지가 방안으로 들어왔다. 현지의 침대위에 벌렁드러누워 옛 생각에 잠겨있던 치우가 문쪽을 돌아보았다. 방으로 들어온 현지는 들고있던 가방과 겉옷을 한쪽으로 던져놓고는 침대쪽으로 다가왔다.
『현지야.. 아까는 내가... 커헉!! 』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고 방으로 들어온 현지에게 오늘 낮의 일을 사과하려던 치우는 말을 제대로 꺼내지도 못하고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터벅터벅 침대쪽으로 걸어온 현지가 말을 꺼내던 치우를 보지못한듯이 그대로 침대위로 쓰러져버렸고 그 덕분에 치우는 자신의 얼굴에 드리워지는 거대한 그림자와 함께 그대로 현지에게 깔려버리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공교롭게도 치우의 얼굴은 엎어지듯이 그대로 침대위로 몸을 던진 현지의 가슴에 깔려 얼굴을 가슴에 파묻고 있는 꼴이 되어버렸다. 치우의 얼굴에 현지의 부드러운 가슴이 물컹거리며 느껴지고 있었다.
"으아아.. 이게 왠 떡이냐!!"
치우는 현지에게 사과하려는 것도 잊은 채 질식시킬듯이 치우의 얼굴을 눌러오는 풍성하고 말랑말랑한 현지의 가슴에 부비부비 얼굴을 부벼대고 있었다. 자신의 밑에 무엇이 깔려있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현지가 상체를 일으켰다.
『앗흐흥~ 행복해~~ 』
눈을 감고 현지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황홀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허우적거리던 치우가 포근하고 물컹한 감촉이 얼굴에서 멀어지자 눈을 떴다. 치우를 깔고 앉은채 무표정하게 치우를 내려다보고있는 현지의 얼굴이 눈에 들어오자 치우가 화들짝 놀란 얼굴을 하며 현지에게 변명을 하기 시작했다.
『드헉..!! 혀..현지야.. 나.. 난.. 그..그냥 네..네가 아무말없이.. 그러니까.. 』
안그래도 낮에 일로 기분이 좋지 않은 현지가 무표정하게 자신을 보고 있는 모습에 치우는 버벅거리며 말까지 더듬으면서 현지에게 자신이 일부러 그러려고 했던 것이 아님을 애써 설명하려 했지만 치우의 말을 듣고있기나 한건지 현지의 표정은 무표정한채 변하지 않았다.
『저기.. 그러니까... 미안..해... 』
치우가 한껏 불쌍해보이는 표정을 하고 현지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하지만 현지는 치우의 사과에도 기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여전히 무표정한 모습으로 치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정말 미안해.. 그러니까 화 풀어.. 응?? 화가 안풀리면 풀릴때까지 때려도 좋... 』
『응?? 』
애써 현지의 마음을 풀어주려고 불쌍한 표정도 지어보이고 사과하면서 애써 노력하고 있는 치우의 허리위에 올라타고 무표정하게 치우를 내려다보던 현지가 치우의 말을 끊고 짧게 한마디 던졌다. 그런데 그 말은 치우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미워도 아니고.. 뜬금없이 덥다니..??
"잘못..들었나??"
치우가 자신의 귀를 의심하고 있을 때 갑자기 현지가 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그것을 본 치우는 깜짝 놀라며 얼굴을 가리며 생각했다.
세상에 무슨 계집애가 아무리 때려도 좋다고 했기로서니 곧바로 손을 번쩍 치켜드느냔 말이다!!!
들어올린 손이 곧바로 치우에게 떨어져내릴거라 생각하고 얼굴을 가리고 있던 치우에게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자 살짝 눈을 뜨고 얼굴을 가린 두 팔 사이의 틈으로 현지를 바라보았다.
『더헉!!!! 』
치우는 또다시 깜짝 놀랐다. 자신을 때리려고 손을 들어올린줄 알았던 현지가 입고있던 하얀 티셔츠를 벗어던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치우 스스로가 원하지 않는 이상 다른 사람들 눈에 이런 광경이 보일리는 없겠지만 만약 누군가 이 광경을 봤다면 분명 현지가 치우를 덮치고 있는거라 생각해도 아무런 무리가 없는 광경이었다. 평소같으면 감사합니다~~ 하고 달려들었을 치우였지만 지금은 상황이 좀 달랐다. 조금 전 치우의 생각대로 치우를 죽도록 패도 시원치 않을 판에 치우위에 올라타고 스스로 옷을 벗어던지는 것은 아무래도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야!!! 너..!! 너..!! 왜..!! 왜그래!!! 』
치우가 더듬거리며 소리치자 티를 벗어던지고 하얀 브라로 가슴을 감싸고 있는 모습을 한 현지가 치우를 다시 내려다 보았다.
『어라?? 치우네..? 너 거기서 뭐하는고야?? 』
갑자기 현지가 치우의 얼굴쪽으로 두 손을 쑤욱 내밀었다. 당황한 치우가 두 눈을 크게 뜨고 현지를 바라보자 현지는 씨익 웃더니 치우의 볼을 양쪽으로 주욱~~ 잡아당겼다. 치우의 볼이 고무줄처럼 길게 양쪽으로 늘어지면서 볼록거울에 비치는 사람의 얼굴처럼 치우의 모습이 우스꽝스럽게 변해갔다.
찰싹~~!!!
『으아악!!! 』
고무줄처럼 힘껏 양쪽으로 잡아당긴 치우의 양 볼을 놓아주자 정말로 고무줄처럼 치우의 얼굴이 찰싹 소리를 내며 원래대로 돌아왔다.
『이히~!! 복수했다~~ 변태도깨비~~!! 』
치우는 멍한 눈으로 현지를 바라보았다.
현지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고 눈동자는 이미 풀려있었다.
『너.. 술먹었냐?? 』
『허헛.. 이거 참.. 계집애가 술먹고 자알~~하는 짓이다!! 』
치우는 기가막힌듯이 현지를 올려다보았다. 현지는 양 볼이 붉게 상기된 채 히죽 웃으며 치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치우를 바라보던 현지의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졌다.
『불쌍..하잖아... 』
그 말을 끝낸 현지가 또다시 그대로 치우쪽으로 쓰러져버렸다. 또다시 치우의 얼굴이 이번엔 브라차림의 현지의 가슴에 파묻혔지만 치우는 그대로 현지의 몸위를 뚫고 일어서서는 현지를 내려다보았다. 잠꼬대라도 하는듯 현지가 중얼거렸다.
『미안해서... 은경이한테... 너무 미안해서... 나 어떡해... 』
중얼거리던 현지의 말소리가 잦아들면서 금방 잠이 들어버렸는지 낮은 숨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치우가 현지의 옆으로 누워 현지의 머리를 들고 자신의 팔을 베어주면서 현지의 얼굴을 살짝 안아주고 등을 토닥여주자 현지가 잠결에 치우에게로 살며시 안겨왔다. 치우 역시 그런 현지를 살짝 안아주었다. 현지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치우는 안됐다는 생각과 자는 모습이 참 예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잠들어있는 현지의 등을 천천히 토닥거려주면서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해... 정말... 』
그렇게 현지는 치우의 품에 안겨 쌔근거리며 잠이 들었고 치우는 한참동안이나 잠이들어있는 현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현지를 바라보던 치우가 피식 웃으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마도.. 술먹고 귀신한테 꼬장 피운 애는 역사상 네가 처음일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