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타노마키아 - 1부(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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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가 다시 눈을 떴을때 미나의 눈에 들어온 것은 무미건조한 하얀 천장과 형광등이 아닌 구름 한점 없는 높고 푸른 하늘이었다. 마치 실제 풍경이 아닌 아주 멋진 그림이나 사진속에 있는 풍경처럼 느껴지는 푸른 하늘이 참 예쁘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때 미나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지면서 한 남자의 얼굴이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미나의 시야를 가렸다.
『누..누구..? 』
처음 보는듯한 남자의 얼굴을 보고 놀란 미나가 황급히 일어나려하자 미나를 내려다보고 있던 남자가 말했다.
『일어날 필요 없어 그대로 있어도돼.. 』
남자의 말과함께 몸을 일으키려던 미나의 몸에 무형의 압력이 전해져오면서 그 보이지않는 힘에의해 미나는 자신의 의지대로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무형의 힘은 미나의 의지에반해 강제적으로 미나를 억누르려는 느낌이 아닌 마치 병문안온 손님을 보고 일어서려는 환자를 다시 눕혀주는 손길처럼 자연스럽고 편안한 느낌이었다. 그런 느낌에 미나는 일어나려던 생각을 고치고 그 힘이 이끄는대로 다시 몸을 눕히고 자신을 내려다보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미나의 또래정도 되보였고 이목구비가 뚜렷하거나 잘 생긴 미남형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그렇게 잘 생긴것은 아님에도 시선을 떼기 어려운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누구..세요? 』
미나의 질문에 미나를 내려다보고 있던 남자의 입에서 대답대신 미소가 지어졌다. 김유식처럼 능글맞고 음흉한 웃음도 아니고 그의 부하들이 그녀를 조롱하듯이 지어보이는 그런 미소가 아닌 아주 오랜만에 보는듯한 느낌이 드는 선한 웃음이었다.
『아직도 힘을 가지는게 두려워? 』
남자는 대답대신 미나에게 다른 질문을 던졌다. 남자의 질문은 언젠가 미나가 한번 들어본 경험이 있는 질문이었고 그와함께 미나의 머리속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미카...엘? 』
『아... 』
미나는 구교사의 교실에서 기계처럼 쪽방에 있는 창녀처럼 남자에게 몸을 내어주면서 이제 그만 더이상 아무런 생각도 하고 싶지않다는 생각과 함께 이대로 눈을 감고 다시는 눈을 뜨지 못해도 좋으니까.. 쉬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던 것이 생각났다.
『그럼... 전 죽은..거에요? 』
『후훗.. 아니 뭐.. 너무 오래 이곳에 있으면 정말 죽겠지만.. 아직은 아니야 』
미나의 질문에 미카엘은 미나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재밌다는듯이 웃으며 말했다. 미카엘은 처음보는 신기한 물건을 살펴보는 어린아이와 같은 표정으로 웃으며 미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뚫어져라 쳐다보는 미카엘의 시선에 조금 무안해진 미나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정말 멋진 그림속에서나 있을듯한 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었고 미나가 누워있는 발아랫부분에는 저 멀리서부터 뻗어내려온듯한 물줄기가 이어져 있었다. 여기저기에 이름모를 꽃들이 향긋한 내음을 내뿜으며 살랑거리는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고 처음 눈을 뜰때 보았던 구름한점 없는 푸른 하늘이 그 위로 펼쳐져 있었다. 마치 동화속에서나 있을법한 그런 풍경속에서 미나는 길게뻗은 남자의 다리를 베개삼아 누워있었다. 처음보는 남자의 다리를 베고 누워있다는 생각에 수줍고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왔다.
『이렇게 있어도.. 안불편해요? 』
『응?? 별로 상관없어 』
미카엘의 말에 미나는 어린아이와 같은 표정을 하고 있는 미카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처음보는 그리고 실제로 존재하는지도 잘 모르겠는 남자의 다리를 베고 누워있음에도 미나는 동화같은 주위의 풍경에 그리고 거친 폭풍우끝에 겨우 찿아온듯한 편안함에 몸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제가.. 쉬기를 원해서 이곳으로 데려왔다고 했죠? 』
『내.. 몸...... 』
미나는 말끝을 흐리고 있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미나가 구교사로 올때부터 김유식과 그리고 지금까지 사람들이 미나를 바라보는 시선을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을것 같았다. 어쩌면 이 남자도 그런걸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꼭 그런건 아니라고 할지라도 영화같은 곳에서 보면 악마와 거래하는것처럼 자신에게 힘을 주고 그 대가로 영혼이든 무엇이든 가져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가면을 쓴남자와 김유식의 일당에게 당하고나서야 들었다.
『하하하핫... 』
미나의 말을들은 미카엘이 갑자기 소리내어 웃기 시작하자 미나는 갑작스레 웃어대는 미카엘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내게 이름을 줄때 천사를 떠올리고 내게 미카엘이라는 이름을 준게 아니었어? 』
미카엘은 더이상 질문도 대답도 하지 않았고 미나 역시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처음 대화했을때나 그리고 이렇게 미카엘의 다리를 베고 누워있는 지금도 미카엘이 무슨 꿍꿍이가 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그리고 나쁜 존재도 아닌것 같았다. 단지, 김유식에게 붙잡혀 있으면서 미나가 생각했던 사람들과는 너무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보았기에 세상 전체가 그런 모습으로 가득 차 있는것만 같기에 미카엘이 자신에게 잘해주는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그런 불안한 마음이 떠올랐던 것이었다.
『미안해요.... 어쩌면 미카엘 말이 맞는지도 몰라요.. 』
『후후훗.. 그래서 잠시 그런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그런 생각이 진심은 아니다? 』
미나는 잠시 미카엘을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미카엘은 더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않고 그런 미나의 모습을 빤히 쳐다보기만 하고 있었다. 그렇게 미나를 빤히 바라보던 미카엘이 손을 들어 미나의 얼굴쪽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미나의 얼굴 바로 앞에서 잠시 멈칫하는듯 하더니 미나의 머릿결을 쓸어넘겨주고는 장님이 사람을 확인하기위해 얼굴을 어루만지듯이 미나의 얼굴을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미나는 미카엘의 손길에서 따뜻하고 부드러운 그리고 설레이는 느낌까지 느껴지는듯 했다. 그와함께이런 느낌을 가진 사람이 악마같은 존재는 아닐거라는 생각하고 있었다.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나 역시 내게 원하는 것이 생겼어.... 』
전혀 뜻밖의 말에 미나는 조금 놀라고 있었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쓰는 사람에따라 여러가지 의미로 쓰이는 단어였다. 미나의 생각처럼 순수하고 아름다운 그런 사랑을 사랑이라 부르는 사람도 있었고 한 사람에게 집착하고 괴롭히면서도 그걸 사랑이라 부르는 사람도 있었고 단지 육체적인 관계를 사랑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내게 줬으면 좋겠는데..?? 』
『사랑받고 사랑을 주는것.. 단지 그렇게 표현을 하고 있을뿐이에요.. 사랑이라는 것은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거에요.. 하지만 다른 감정들과는 달리 절대로 혼자서는 느낄 수 없는것이에요.. 』
『흐음.. 이해가 안된다니까 더 어렵게 이야기하는군.. 』
어린아이처럼 웃고있던 미카엘이 미간을 조금 찡그리며 갸웃거리며 미나의 말뜻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재밌으면서도 귀엽다는 생각이 들자 미나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번졌다.
『그게 정상인거에요.. 』
『네.. 사랑은 이해할 수 없는거거든요.. 』
이해가 안간다는 표정을 하고 있는 미카엘을 바라보던 미나가 웃으며 미카엘의 손을 잡았다.
『사랑은..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
미나는 말을 하면서 잡고있던 미카엘의 손을 자신의 가슴위로 살포시 얹어놓듯이 가져다 놓고 말을 이었다.
『이렇게.. 가슴으로.. 그리고 마음으로 느끼는 거니까요.. 』
『흐으으음.... 』
미카엘의 양미간 사이가 더욱 좁아지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말이야.. 넌 조금전에 너무도 혼란스러워서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다고 하지 않았어? 뭘해야할지도 뭐가 옳은지도 모르겠다고 그러지 않았어? 』
미카엘은 이번엔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미나를 바라보았다. 그런 미카엘의 모습이 알고싶은 것이 너무도 많은 순진하고 어린 아이의 모습처럼 보였다. 미나는 다시 미카엘에게 미소지어보이며 두 팔을 들어 자신의 가슴위에 있는 미카엘의 손을 살포시 덮으며 말했다.
『이 안에.. 사랑이 있으니까요.. 내 사랑이... 』
미나는 그렇게 말하며 눈을 감았다. 주위의 풍경때문인지 아니면 미카엘이 주는 편안함 때문인지 이곳에 오기전까지 절망감과 비참함으로 가득차있던 미나의 얼굴에는 너무도 다른 평온하고 따스한 그리고 그런 표정을 지으려고 연습하고 연습해도 도저히 쉽게 지어지지 않을 그런 표정이 미나의 얼굴에서 스며나오고 있었다. 미카엘은 멍한 표정으로 그런 미나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 나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낄 수 없다는 말이야? 』
『따뜻하고 부드러운.. 내가 느끼는 사랑이라는 느낌과 비슷한 느낌이.. 미카엘의 손에서도 느껴지는거 같으니까요.. 』
미카엘은 그렇게 미나의 가슴에 손을 얹은채 아무말도 하지 않았고 미나 역시 눈을 감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미카엘... 』
사랑을 이야기할때 웃음을 띄우고 있던 미나의 얼굴에 조금은 어두운 빛이 드리워졌다.
『신이 너를 미워한다고?? 』
『못생기고 가난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사람이 출세하고 잘되서 행복한 삶을 살게 된다면 자신이 노력했기때문이고.. 그저 그런 초라하고 비참한 인생을 살아간다면 신이 그 사람을 미워하기 때문인건가? 』
미나는 미카엘의 말에 할 말을 잃었다. 미카엘의 말이 틀리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너무나도 힘든 상황이 피하고 싶어서 그렇게 자신의 힘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그 힘을 줘서 자신을 고민하게 만들고 힘들게 만든 것은 신이고 그 신은 분명 자신을 미워하거나 싫어하기때문이라고 생각했어다.
『미카엘 말이.. 맞아요.. 어쩌면 그냥 피하고 싶어서.. 그래서 신의 탓이라고 그 책임을 떠넘기고 싶었는지도 몰라요.. 하지만... 』
『뭐..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네가 사랑이라는게 어떤건지 가르쳐줬으니 그 대가로 나도 무언가를 보여주지.. 』
미카엘이 손을 들어 미카엘의 앞쪽에 있는 바위를 향해 손을 뻗어내자 바위는 쩌저적 소리를 내며 양쪽으로 갈라져버렸다.
『단단한 바위지.. 작은 돌같은 걸로는 꿈쩍도 하지않을뿐더러 작은 상처조차 내기 어려운.. 그렇게 당당하고 강한 바위야.. 하지만 더 큰 바위로 내리치거나 바위가 가진 단단함보다 더 강한 단단함으로 내리치면 저렇게 쉽게 부셔져내리지.. 하지만.. 』
미카엘이 이번에는 미카엘이 앉아있는 옆쪽으로 손을 내밀고는 조금전 바위를 부셔버린것과 같은 무형의 힘을 가하자 땅이 흔들리는듯한 느낌과 함께 미카엘의 손바닥만한 면적이 밑으로 꺼져있었다. 하지만 미카엘은 몇번 더 땅을향해 그 무형의 힘을 날리더니 그곳에서 무엇인가를 집어들고 미나에게 보여줬다.
미카엘의 손에는 작은 풀이 뿌리까지 뽑힌채 들려져 있었다.
『아까 바위에 가한 힘과 똑같은 힘을 몇번인가 더 가했는데도 이 풀은 이렇게 살아있어.. 잎이 찢기고 줄기도 꺾여져 버렸어... 』
미카엘이 들고 있던 풀을 들판 저 먼쪽으로 던져버렸다.
그리고 그렇게 풀을 던져버린 방향을 바라보며 말했다.
『하지만.. 저렇게 흙이 있는곳에만 대충 던져놔도 저 풀은 살아날거야.. 커다랗고 단단해 보이는 바위에 비하면 허약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저 풀이 바위도 부셔버린 힘을 버티고 살아났다는 거지.. 』
『강하다는건.. 어떤 존재에 붙여지는 그런 호칭따위는 아니라고 난 생각해.. 어떤 사람이든 어떤 존재든 짓밟히고 부셔지고 꺾이더라도 다시 일어나는 것.. 그 자체가 강한거야.. 강한 사람이나 어떤 존재들이 그런 위기를 극복하는게 아니라 그렇게 무너질듯 부셔질듯 꺾여질듯해도 다시 일어서는 그런 존재가 강한거야.. 』
미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조금은 어색한 침묵이 둘 사이에 흘렀다.
『천사가.. 맞는거 같아요.. 미카엘은.. 』
미나가 미카엘의 말에 살짝 웃어보였다. 천사나 악마같은 것이 진짜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미카엘은 아마도 천사일거라고 미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냥 미카엘 자신이 스스로 느끼지 못할뿐 미나를 지켜주는 천사같은 존재같다고 미나는 생각했다.
『그 남자.. 사랑해? 』
『네?? 』
잠시의 침묵을 깨고 미카엘이 미나에게 질문을 했다.
『여기에 있다는 그 남자.. 정말 사랑하냐고 묻는거야.. 』
『흐음... 』
미카엘이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지울 수 없다면 어쩔 수 없지.. 최소한 사랑에 대해서는 나보다 네가 더 잘 아는것 같으니까... 』
『그것말고도 네가 지금 가야할 이유가 또 있어.. 』
그 말과함께 미나의 모습이 조금씩 흐려지며 미카엘의 무릎에서 사라져가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후 미나가 미카엘의 말에 대답할 사이도 없이 미나의 몸은 애초에 그곳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 형체를 감춰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미나의 모습이 사라지자 미카엘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니 사랑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