月輪 2부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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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돌려보니 흑운이 피워놓은 모닥불가에 앉아서 육포를 굽고 있었다.
" ... 추적자는?... "
언제나 그렇듯이, 흑운에게서는 아무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몽화는 알 수 있었다. 자신이 패배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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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병기인 황금조는 위지량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이몽화의 검이 그의 가슴을 노리며 찔러들어오는 것을 황금수의 한쪽 팔을 들어 막고, 남은 한쪽으로는 일격필살의 태세를 갖추어 방어상의 허점을 많이 노출하고 있는 이몽화의 전신의 요혈들을 공격했다.
이몽화는 급히 진기를 끌어올린채 몸을 회전시키며 잔월검을 떨쳐 막으려 했지만 상대는 전설적인 황금수였다. 어지간한 무기나 암기로는 생채기 하나 낼 수 없엇던 이몽화의 반탄강기를 종이 긁어내듯이 훝어낸 황금조는 그 기세 그대로 그녀의 전신 요혈을 찔러들었다.
콰직!, 츄아악!...
뼈가 부러지는듯한 둔탁한 음향과 함께, 이몽화가 피분수를 뿜으며 날아가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서리서리 냉기를 발하는 잔월검은 그녀의 손에서 풀려나 허공에서 대회전을 하다가 땅바닥에 꽂혔다.
찰나의 헛점을 잡은 노련한 추적자(라지만 사실 잔월문주보다 더 무서운 암살자), 위지량의 승리였다. 하지만 그도 마무리를 할수는 없었다.
[그]가 거기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위지량이 그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전투가 끝난 직후였다. 이몽화가 쓰러진 관도의 건너편 허공에 두개의 붉은 광점이 떠올라 있었다. 그 두개의 붉은 광점을 중심으로, 달빛조차도 들지 않는 어두운 영역이 형성되어 있었고, 그 영역 속에서는 빛을 빨아들이는 [무엇인가]가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평생을 피비린내 나는 무림에서, 그리고 모략이 난무하기로는 그보다 더한 관부에서 첩자로 잔뼈가 굵은 위지량이었지만, 인간의 이해범위를 초월한 그 광경에 등골에 한기가 달리며 절로 침을 삼킬 수 밖에 없었다.
그 붉은 광점은 말할것도 없이 걸어다니는 죽음. 흑운 자신이었다. 그 [죽음]을 의미하는 붉은 눈이 지금 전설의 황금수를 가진 위지량에게 향해 있었다. 앞서 소림사에서 흑운의 무위를 직접 본 위지량이었지만, 이렇게 가까운 거리, 인적이 드문 밤의 관도 위에서 1:1로 대면하니 느껴지는 박력의 차원이 달랐다. 완전히 공포로 얼어붙은 위지량은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 없었다. 움직였다간 바로 죽임을 당할것 같았다.
위지량이 주춤하는 사이, 흑운은 성큼성큼 다가와 땅바닥에 쓰러진 이몽화를 들어서 옆구리에 끼고, 허공을 격하고 잔월검을 끌어당겨 챙겼다. 그리고 위지량이 우물쭈물하고 있는 사이, 다시 뒤돌아서 밤의 안개 속으로 사라져 갔다.
위지량은 그제서 정신을 차리고 흑운이 있었던 자리를 볼 수 있었다. 땅바닥은 얼마전에 내린 비로 인해 부드러웠다. 사방이 그와 이몽화의 발자국으로 어지러웠지만, 이몽화와 잔월검까지 챙긴 흑운의 발자국은 찾을 수가 없었다.
" 발소리나 낌새 하나 없이...우리의 싸움이 끝날 때 까지 보고 있다는 사실조차 느끼지 못했다... 그냥 관도 저편에 서 있었을 뿐인데도... 대체 어떤 자가 저런 괴물의 원한을 사서 중원으로 오게 만든 것인가... "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위지량의 어께는 조금식 잔떨림이 일고 있었다. 아직도 흑운에게 압도당한 방금의 공포가 사라지지 않은 탓이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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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의 추풍신개는 무림성의 막사에서 빠져나와 잠시 제자들과 앞으로의 일들을 논하고 있었다.
" 10년전의 정사대회전에서 가장 막대한 피해를 입은것은 우리 개방이었다. 개방은 천하의 수많은 거지들이 모여 만든 방파라 그 숫자만으로는 무림 제일일지 모르지만 절정고수의 양과 질은 여타 방파에 비해 절대적으로 떨어지기 때문이지. 거기에 가리고 가려서 뽑아 보낸 정사대회전에서 18명의 장로중 12명을 포함한 전체 고수자의 구할 가까이를 잃은 지금은 명목만 무림에 속해있다 뿐이지 무림성의 정보조직의 말단의 역할 밖에 할 수 없는 것이다. "
개방 유일의 절정고수라 할 수 있는 추풍신개의 냉정한 판단에는 틀린 점이 없었다. 새로 임명된 장로들 중에서 고수라고 할만한 자들이래봐야 여기 모인 정사 양도 무림의 정예의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는 이류인 것이었다.
" 그런데... 지금 우리 개방의 유일한 자존심인 정보망조차 유린하고 다니는 자가 나타났다. 바로 혈마(血魔)지. "
흑운에게는 이미 무림의 공적으로 혈마라는 별명이 붙어 있었다. 추풍신개는 흑운이라는 [이름]을 알고 있었지만 일부러 모른척 하고 있었다.
" 이것은 우리 개방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좋다. 한달 안으로 혈마의 소재를 파악해야 한다. "
제각기 제멋대로지만 한결같이 초라한 차림의 개방의 고수들. 하지만 그들의 눈에는 한결같이 비장한 신색이 감돌고 있었다. [주원무림수호]라는 대의에 불타는 마음이.
하지만 그[대의]가 터무니없는 비열함과 거짓 위에 세워진 사상누각이라는 것을, 추풍신개 한명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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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를 옮겨 상경 용천부 내의 대궐 안, 아들에게 황제의 자리를 물려주고 상황으로 물러난 대조영이 기거하는 상황궁의 내실에서는 적랑과 대조영의 독대(군주와 신하가 1:1로 대면해 의중을 털어놓는것)가 이뤄지고 있었다.
" 적 대형. 대형의 힘 만으로도 능히 10만 군사에 필적하는 힘을 가졌을진데, 나머지 다른 분들... 특히 그 흑운이라는 분을 모셔와야할 필요가 있소이까? "
대조영의 질문에 적랑의 입에 미소가 걸렸다.
" 폐하, 물론 저 혼자 만으로도 능히 천국(고구려를 말함)의 실지 회복이라는 대업을 이룸에 모자람이 없을지 모릅니다. 허나... 저 [흑운]이라 이름지워진 사내만은 절대 아군으로 만드셔야 합니다. "
" 그건 왜?... "
적랑은 차근차근히 설명을 이어갔다.
" 과거, 대막리지께서 생존해 계실적에 저를 비롯한 8명은 모두 일군의 군대를 지휘할 자격이 부여된 지휘관급의 [대장인(大將印)]에 의해 통제 받았습니다. 장수 휘하의 특수 군졸이랄까요. 하지만 단 한명, 흑운만은 그 한사람 만으로 하나의 군대로, 대장인이 아닌 막리지 자신의 관인의 통제를 받았습니다.
이는 흑운이라는 존재 자체가 우리 나머지 9명과는 달리 진짜 전쟁만을 위해 [만들어진] 존재이기 때문이며, 그 무예보다 더 무서운 일개의 군대를 상대할 만한 지략과 전투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
" ...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었다니. "
" 신이 허언을 하지 않는 것을 잘 아실 것입니다 폐하. 흑운은 실로 개인으로써는 인간 중에 가장 강력한 존재이며, 홀로 1개 국가의 무력에 맞먹는 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적으로 돌리면 가장 위험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아군으로 만들어 두자는 것입니다. "
" 우리는 어찌 하면 되겠소이까? "
" 일단 제가 운을 띄워 놓았습니다. 그도 원래 대막리지를 위해 충성하던 고구려의 무인. 폐하의 웅대한 목표를 안다면 거부하지만은 못할 것이옵니다. 그러니 그가 중원에서 돌아오자마자 폐하께서 친히 그를 초빙해 보시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
" 알겠소. 내 그리 해보지. 적 대형께서 그리 높게 치는 인물이라면 직접 찾아가지 못할 것도 없지. "
" 오히려 그보다 부족한 제가 송구할 따름입니다. 폐하. "
" 짐에게는 적 대형보다 믿음직스러운 신하는 없소. 그런말 마시구려. "
" 황송합니다. 그럼 전 이만. "
적랑은 깊숙히 군례를 취해 보이고는 천천히 뒷걸음으로 내실을 물러나왔다.
대궐을 막 나오려는데 온통 푸른 비단 장포 차림의 장발 미청년이 서 있었다.
" 나 왔수. "
그는 십인대의 남은 생존자 중 한명인 청해(靑海)였다. 그는 원래 적랑보다는 흑운과 더 가까운 사이지만, 중원으로 들어간 흑운이 소식 두절인 틈을 타서 적랑이 발해의 기반을 공고히 다지는 작업에 그를 끌어들인 것이었다.
" 왔는가? 그래 남해에 다녀온 일은 어찌 되었는가. "
" 그거야 두번 대답하기도 입아프지, 탐라와 대마도를 위협하던 신라구(신라 해적)들은 깨끗히 정리 했수. 탐라(지금의 제주도)국왕이 기꺼이 새 황실에 입공(조공을 바치고 외교 관계를 트는 것)하겠다는 말을 전합디다. 그쪽도 은근히 반가워하는 눈치던데. 암튼 3사(발해의 내각)에 보고는 해 두었수. "
청해는 으쓱거리며 자신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었다. 찰랑거리는 그의 긴 머릿결에서는 금방이라도 물이 뚝뚝 흘러내릴 것 같아 보였다.
" 그나저나 흑 대형(청해는 흑운을 이렇게 부른다)께 다녀왔다고 들었수. "
" 아아. "
" 적형이 아시다 시피, 나도 백아(白兒)의 보복전을 위해 서토(중원을 말함)로 갈 계획이었지만, 흑형이 남으라고 명령한 것도 있고, 적형의 제안도 있고 해서 일부러 남해까지 내려가서 힘을 쓴거니 흑 대형의 일은 적형이 좀 도와줘야 되지 않겠수? 서토인들은 하나 하나는 별거 아니라도 모이면 위협적이니 말이우. "
적랑은 고개를 끄덕였다.
" 최근에 키운 몆몆을 서토로 들여보내 정보를 모으는 중이다. 듣자니 헌구의 일족과도 접촉한 모양이더군. 그 성격에 전멸시키지 않는 것이 이상하지만 암튼 모종의 거래가 있었던거 같아. 자세한 내막은 나중에 봐야 알겠지만, 내 생각엔 서토의 무림인들의 뒤에 누군가가 있어. "
" 나도 서토에 가서 한번 크게 분탕질을치고 싶은데... "
" 아서라. 그랬다간 정말 흑운 그 친구에게 맞아죽을걸. 며칠 쉬고 특무대(적랑이 만든 조직, 선황제인 대조영 직속의 정보조직이다)로 나와. 다음 일거리가 와 있으니. "
" 으음... 아무래도 난 적형 손에서 놀아나는거 같구만... 알았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