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月輪 2부 5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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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흑운은, 동쪽으로 흘러가는 거대한 대하, 황하가 북쪽 면으로 내려다보이는 백마항의 한 객점에 들려 식사를 하고 있었다. 공력이 약한 자들은 결코 분명하게 판독할 수 없는 특수한 방법으로 은실로 수놓은 쌍두사(雙頭巳)의 문양이 객점의 현판의 네 귀퉁이를 장식하고 있었다. 바로 헌원의 문양이었다.


조용히 식사를 하는 흑운의 앞에 앉아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것은 이 객점의 주인인 사도(四圖) 공손승으로 헌원일족의 첩자중 한명이었다. 연주와 복양 인근을 담당하고 있는 책임자인 그로써는 너무나 눈에 띄는 존재인 흑운이 연주 인근의 중요 정보거점 중의 한곳인 이곳에서, 그것도 대낮에 당당하게 식사를 하고 있는것이 너무나 불안했다.


" 그래, 용건은? "


어느새 식사를 마친 흑운은 그때까지 속으로 몆천번은 머리를 굴리며 안절부절 하고 있던 공손승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와 눈이 마주쳤을대, 새삼 공손승은 이 [흑운]이라는 존재에 대해 형언할 수 없는 공포와 위압감을 느낄 수 있었다. 내려다보는 듯한 차분하고 오만한 눈빛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고,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풀풀 풍겨나오는 위압감은 그를 압도해 숨막히게 했다. 이런 존재와 자신의 일족들이 수천년 동안 싸워왔던 상대라는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 그것이... 여기서 말을 꺼내기엔 좀 그런... "


" 어차피 아무리 크게 소리쳐 봐야 누구도 우리 말소리를 들을 수 없으니 맘대로 얘기해보게. "


그러고보니 정보조직의 어지간한 고수들은 눈아래로 보는 공손승 자신이 주눅이 들 정도인 흑운의 압도적인 존재감에도 불구하고, 주변사람들은 공손승이 받고있는 위압감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듯이 보였다. 아니 느끼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흑운이라는 무시무시한 존재가 옆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오줌을 지리며 기절하긴 커녕 그들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그제서야 흑운이 무엇인가 특별한 방법을 써서 스스로의 기척을 지웠을 뿐더러 자신의 기척까지 함께 없애버렸음을 깨달은 공손승은 속으로 경악했다. 인공적으로 타인에게 무시되는 방법이 있다는 것은 금시초문 이었던 것이었다. 있어도 없는것과 같이 된다면, 그야말로 어떤 은신술보다 훨씬 더 효과적인 은신이 아닌가.


" 그... 그럼 말씀드리지요. 최근 저희 일족의 정보원 중 하나가 삼양표국에서 [어떤 물건]을 비밀리에 태산의 어귀까지 수송하는 사실을 알려왔습니다. "


" [어떤 물건]? "


" 무후가 즉위할때 구 황제의 유신들 중 뜻있는 자들이 빼돌린 유물이라는데, 그게 아무래도 상국(고구려)의 물건인듯 합니다. 정보원의 말로는 복색이 특이한 일단의 무리들이 화물을 수취해서 태산 속으로 향했다 하는데, 그들의 종적을 추적하는데는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그 대신 화물에서 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것을 발견해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


공손승은 도기로 된 작은 호리병을 품에서 꺼냈다. 매우 얇게 세공된 그 호리병은 그것 자체의 가치만으로도 상당히 값나가는 귀한 세공품이었지만, 보통 그보다 더욱 값나가는 약 따위를 보관하기 위해 사용되는 것들이었다. 입구는 밀랍을 이용해 주의깊게 봉인되어 있었다.


" 안에 들어있는 것은... 좁쌀만한 단환이겠지? "


공손승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 어떻게 그것을?... "


공손승은 몰랐지만, 흑운에게 그 호리병은 상당히 낮익은 물건이었다. 그 안의 내용물도.


" 태산에 연락을 넣어 내가 간다고 전하게. 그놈들을 치는 것은 내 일이기도 하니 이번엔 순순히 속아 주지. "


흑운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대로 객점을 나섰다. 공손승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을 타고 멀어지는 흑운의 뒤를 눈으로 쫒았다.


" 과연, 수이 볼 상대가 아니라고 하더니만... 하늘은 어찌 이다지도 불공평하시단 말씀인가... "


자신도 모르게 공손승이 한숨을 내쉬며 하는 말이었다.


사실 그 호리병 안에 든 단환은 바로 헌원 일족 자신들의 보물로 [백사단(百死團)]이라는 것이었다. 100마리의 독사의 독을 응축해 만든 극독으로, 여러가지 공능을 가지고 있지만 대표적인 효능으로는 복용한 인간의 잠재능력을 촉발시켜 한꺼번에 평소의 10배가 넘는 능력(내공포함)을 구사할 수 있게 해 주는 약이었다. 중원무림에서 그 백사단을 흉내내어 만든 증폭광마단과는 달리, 이 백사단의 부작용은 사용하고나면 열흘정도는 앓아누워야 한다는 정도 뿐이었다.


헌데 이 백사단의 제조법이 자신들도 모르게 신비세력으로 빠져나가 강시 제조에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낸 헌원일족은, 그 세력의 근거지가 태산인것까지 알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제조한 화혈강시(火血强屍)의 능력은 상상 이상. 헌원일족은 태산 탐색에 투입한 고수 중 구할을 잃고 패퇴했다.


바로 그때 흑운이 중원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헌원일족은 흑운의 목적이 중원무림과 그 배후세력에 대한 복수에 있음을 알고 제휴의 손을 내밀었고, 가장 시급한 문제인 백사단 문제부터 떠안긴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역시 흑운의 목적에도 부합하는 것이었다. 백사단이 헌원일족의 것임을 이미 알고 있는 흑운은, 공손승의 말투에서 그것의 실물 뿐 아니라 제조법이 유출되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챘다. 지금 궁색한 처지라 해도 헌원일족은 수천년간을 우리 민족의 정예와 싸워 중원을 지킨 자들이었다. 호락호락한 자들이 아닌 것이다.


중원무림의 능력으로 볼때, 헌원일족에 밀정을 넣는것은 고사하고 헌원일족의 존재를 아는자 조차 거의 없었다. 이런 실상을 알면, 헌원일족을 농락할 정도의 세력이 이 백사단을 이용해 뭔가를 꾸미고 있다는 추리가 가능하다. 그런 세력이라면 중원무림을 배후조종하고 있을 가능성이 다분한 것이다.


태산이라는 장소는 그 세력의 노출된 꼬리. 게다가 흑운의 입장에서는 지리하게 방어전 만으로 일관하게 된 중원무림 방파 깨기도 지루해지던 참이었다. 그는 일단 중원 무림의 세 쓰레기(송강/추풍신개/모용언달)를 처리하는 일은 미루기로 했다. 그동안 그들이 죽음의 공포에 떨고 있도록. 어차피 그들 목숨을 취하기는 손바닥 뒤집기만큼 쉬운 일이었으니까.



백마에서 태산으로 가기 위해서는 두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황하 하변을 따라 하류로 관도를 타고 내려가는 길이고, 또 하나는 배를 타고 가는 길이다. 보통은 물길이 빨랐지만, 흑운은 애마를 타고 관도를 따라 동쪽으로 향하는 길을 택했다. 배 위에서 싸움이 벌어지면 추적당하기 쉽기 때문이었다.


흑운은 말 잔등에 앉아 경치를 감상하며, 서토를 그렇게도 수복하고 싶어했던 생전의 연태상(주: 연개소문)을 떠올렸다. 고구려인들이 서토라 불렀던 중원은 과연 누구나 탐낼 만한 땅이었다. 그 탐나는 땅을 하급 인간에 불과한 헌원의 말종들에게 잠식당한 역사는, 그것을 아는 이들에게 이 땅이 영원한 애증의 대상이 되도록 만들었다.


해적질이나 일삼던 신라의 개들에게 배신당한 것도 생각났다. 연태상은 신라와 손을 잡기를 원했다. 연태상이 사신으로 온 김춘추인가 하는 인간 말종을 붙잡아두고 신라와 고구려가 같이 손을 잡고 서토로 가자고 통사정을 한 일도 떠올랐다. 하지만 김춘추가 왕이 된 신라는 오히려 당 태종의 엉덩이에 입술을 갖다 대고 스스로 개노릇을 했다. 그 결과 고구려는 멸망했다. 하지만 민족의 의리와 자존심을 팔아 넘긴 댓가는 고작 한수 이남의 땅뙈기 약간이었다.


드넓은 서토의 꿈이 깨어져 날아간 평양성의 함락은 아마도 이 민족이 저물어가는 것을 상징하는 사건일 것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일어선 문명을 가진 민족, 신의 혈통을 이었다는 긍지와 영예를 가졌던 제국의 마지막 모습은 같은 혈통을 가진 자들의 배신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이젠 더이상 같은 민족이라고 부르기도 부끄러운 개들이 평양성 앞에서 짖던 모습을, 흑운은 잘 기억하고 있었다. 그 개들은 평양성을 차지하지도 못하고 도로 한수 이남으로 쫒겨갔다.


흑운 자신은 일평생 정치라는 것에 관심을 가져보지 않았지만, 그와는 별개로 그와 10인대는 수많은 정치적인 사건에 휘말려 들어야만 했다. 그리고 정치적인 사건에 말려들어간 끝에 10인대끼리 서로 싸우고, 그때문에 재때 평양성을 구원하지 못했던 사실은 변명할 여지가 없는 인생의 오점이었다.


그런저런 생각을 하던 중에, 문득 눈을 들어보자 마치 붉게 타오르는 듯한 하변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백마로 향하는 관도 위에도, 평양성의 성루에서 바라보던 그것과 같은 노을이 지고 있었다.


객점에 도착한 것은 해가 완전히 떨어진 다음이었다. 흑운은 말에게 보리를 충분히 먹인 뒤 객점에 딸린 마굿간에 맡기고, 자신은 객점 2층에 있는 방을 빌렸다. 천하의 주인이 남자에서 여자로 바뀌었고, 계속된 가뭄에 하북의 민심은 흉흉했지만, 가뭄과 관계 없는 하남에서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 계속되고 있었다. 저녁으로 시킨 소면을 먹으며, 흑운은 주변의 식사 중인 여행객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정보를 수집하는데는 여기만한 곳이 없었다.


흑운이 현역일때도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대수롭지 않은 일도 크게 부풀려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는 중원인들의 특성 덕에 특별히 밀정의 도움을 받지 않더라도 여행자들의 대화를 주의 깊게 듣는 것만으로도 중원의 정세는 상당히 상세하게 파악 가능했다.


" 아니 글쎄 그 혈마라는 자가 소림사를 몰살시키고 홀연히 사라진 이후로, 종적이 묘연한가봐. 무림성의 추적대가 사방으로 보내어 졌지만 다들 허탕으로 끝났다더구만. "


" 듣자니 무림성주 단천검의 제자인 일초진천수 정화가 그 [대정수호금검대]를 이끌고 돌아왔다더군. 108나한은 사해에 널리 알려져 있지만 대정수호금검대는 오랑캐들이 잘 모를 것이니 이번엔 승산이 있는 모양이야. "


" 섬서에 있는 방파들은 다 성숙파랑 곤륜파 주변에 모여 연합방어선을 펴기로 했다는군. 혈마가 다음에 갈 곳은 그곳이라는 거야. "


갖가지 추측과 소문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흑운은 믿을만한 정보와 그렇지 않은 정보를 추스려 내고 있었다.


.
.
.


태산은 중원에서 가장 거대한 산 중 하나이다. 그래봐야 천축의 산들에 비하면 언덕배기 수준밖에 안돼지만. 십인대가 되기 전의 한때 흑운은 이 태산 인근에서 밀정으로 활약한 적도 있었다. 그래서 이 인근의 지리라면 다른곳보다 소상히 파악하고 있었다.


태산 아래에는 무림성 휘하의 문파 중에서도 5악파(五岳派) 에 속하는 태산파가 있었다. 태산파는 흑운이 처음 소림을 향한 여정에 있었을때 그의 진행경로인 관도에서 상당히 빗겨나가 있었기 때문에 무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운도 끝이었다. 흑운의 목적지가 태산파인 이상, 황국의 무림 문파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말살시킬 이유는 충분했다.


태산파의 장문인인 천문판관(天問判官) 무불상(无不上)은 한쌍의 판관필을 독문병기로 사용하는 무림의 원로 중 한명이었다. 그는 화산파의 문하에서 독립해 일가를 이루었을 정도로 독보적인 무예를 지닌 전대고수였다. 작년에 환갑을 넘긴 나이인 그는 단순히 무공수위로만 따진다면 당금 무림에서 열손가락 안에 들어갈만한 실력을 갖고 있었고,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약관이후 40년이 넘게 무림에서 단련된 실전경험이었다. 10여년전의 정사대회전에서도 그의 노련함은 정도인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었다.


하지만 나이가 나이인지라, 젊고 날쌘 제자들을 무림성에 지원하러 보내고 자신은 식솔들을 거느리고 반쯤 봉문상태인 태산파에 남아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비극의 시작이었다.


흑운이 태산파를 찾아온 것은 새벽 어스름이 막 걷힐 무렵이었다. 그는 산을 오를때부터 기척을 숨기지 않기 시작했기 때문에, 주변은 그야말로 개미새끼 한마리 접근할 수 없는 상태였다. 조금 민감한 사람이라면 지금 마상(馬上)에서 흑운이 뿜어내는 기운에 압도당해 졸도할 정도었다. 당연히 무불상도 그가 산허리에 이를때부터 기척을 눈치채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가솔들의 우두머리인 집사를 불렀다. 집사는 그와 함께 화산파에 들어가 같이 수십년간 무림을 주유한 동년배이자 유일한 지기였다.


" 부르셨습니까. "


" 식솔들을 이끌고 장원의 뒷길로 내려가라. 소란스러워서는 안된다. "


" ... 혼자 적을 맞으실 생각이십니까? "


무불상은 고개를 끄덕였다.


" 소란스럽지 않도록, 그리고 신속히. 자네에게 뒷일을 맏기는 내 심중을 읽어주길 바라네. "


" ... 알겠습니다. "


태산파의 식솔들이 거의 빠져나갔을 무렵, 흑운은 태산파의 산문에 도착해 있었다. 문은 열려 있었고, 지키는 자는 없었다. 흑운은 말에서 내렸다. 그의 한쪽 손에서는 언제나처럼 자루부터 날까지 온통 은빛을 발하는 창이 들려져 있었다.


파앙!... 츠츠츠...


창을 크게 한번 휘두르자, 족히 수십장은 떨어져 있는 본전의 문이 공성 망치라도 얻어맞은듯한 소리가 나며 열렸다. 열려진 본전 한가운데엔 무불상이 두자루의 판관필을 들고 서 있었다.


" 왔는가... "


투욱.


흑운은 무불상 앞에 무엇인가 던져놓았다. 공손공에게 받은 자기 병이었다. 그것을 본 순간, 무불상의 안색이 미미한 변화를 보였다가 다시 회복되었다.


" 보통의 자기 병이 아닌가? "


" 말해라. "


흑운은 창을 앞으로 세웠다. 무불상과의 거리는 약 10여장(30m 정도). 중원의 무림인이라면 안전권이었지만, 흑운에게는 순간의 일격으로 결판이 나는 거리였다. 하지만 흑운의 공격자세에도 무불상은 당황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 눈치였다.


" 내가 당신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알지만... 이건 어떤가? "


쿠웅!


폭음과 함께, 흑운이 서 있던 곳을 중심으로 전후좌우에서 흙과 돌이 치솟아 올랐다. 흙먼지가 걷히자 나타난 것은 피부가 온통 피빛처럼 붉은 무시무시한 인상의 남녀4명이었다.


" 혈강시(血强屍)! 역시 이거였군. "


스윽


피잉!


소리도 기척도 없이 혈강시들은 일사불란하게 공격해 오기 시작했다. 흑운의 창이 휘둘러지고, 은빛의 고리가 허공을 갈랐다.


콰앙!... 우르르르...


공기가 울릴 정도의 격렬한 충격. 바윗덩이도 순식간에 가루로 만들 수 있는 흑운의 일격을 맞고도, 붉은 강시들은 약간 뒤로 물러난 후 다시 달려들 뿐이었다. 창의 날이 훝고 지나간 자리의 옷은 베여져 나갔지만, 정작 그 피부를 찌르거나 베어도 불꽂을 튀길 뿐이었다.


" 후후후후... 그 강시는 일반의 혈강시가 아니지. 화혈강시는 가장 강력한 극독들로 제련되어 만들어진 천고의 마물이다. 감히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존재지. "


카카캉!!!


다시 은빛의 광채가 빚나며, 화혈강시중 하나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흑운을 향해 직립자세로 날아오며 팔을 휘둘렀다. 날아오는 속도 또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빨랐다.


콰쾅!


그그그극!...


어느틈엔가 흑운은 두자루의 단창을 들고 있었다. 그 자세는 108 나한을 전멸시킬때와 같은 태세였다. 그의 주변에는 빛을 완전히 반사해 은빛으로 빛나는 창의 원형 궤적이 어지럽게 흐르고,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공격해 오는 화혈강시 4구도 그 은빛의 궤적을 통과하지 못하고 불꽂과 굉음을 내며 튕겨나갈 뿐이었다.


" 후후... 아무리 무적의 무인이라도 인간은 인간. 지치지 않는 강시들을 상대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


무불상의 얼굴에는 득의로운 웃음이 떠올랐다. 흑운의 공격은 강시들에게 어떤 타격도 주지 못하고 있었고, 그의 속도로는 강시들의 속도를 따라잡는 것이 고작이었기 때문이었다.


" 후후... 인간이라? "


순간, 흑운의 눈이 붉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눈을 본 순간, 무불상은 갑자기 주변이 어두워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 어둠 쪽으로 몸이 쏠리는 듯한 느낌도. 정신을 차리고 보니 흑운도 화혈강시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퍼버벅!


여전히 화혈강시들에게 둘러싸여 있던 흑운을 중심으로, 아까와는 명백히 다른 폭음이 연이어 터져나왔다.


" 뭐...무슨 짓을? "


" 키이이이...!!! "


" 케에에에에에...!!! "


화혈강시가 일제히 비명을 질렀다. 살아있는 존재가 아닌, 죽어있는 존재 마저도 고통으로 비명을 지르게 할 정도의 [무엇인가]가 그들을 직격한 것이었다. 순식간에 무불상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 나는 증오다.


내 혈관은 불타는 증오로 채워져 있다. "


흑운은 그대로 선 채 말하기 시작했다. 그 목소리엔 내공이 실리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듣는이를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 너희들이 저지른 [악]그리고 그 [악]의 소행으로 생겨난 [슬픔]이 내 힘의 원천이다.


그 [슬픔]을 원천으로 만들어진 증오가...  "


" 키에에에....!!! "


화혈강시들의 찢어지는 비명소리들 속에서, 기묘하게도 흑운의 목소리 만이 또렷하게 들리고 있었다.


" 너희가 악하면 악할수록, 나는 더욱 강해진다.


그리고 너희를 말살할때 까지, 나는 결코 쉬지 않을 것이다. "


그때, 무불상의 눈에 화혈강시들의 발등이 보였다. 보통때라면 강력한 도약으로 인해 허공에 떠 있는 일이 대부분일 그 발이, 지금 무엇인가에 관통된 채로 부글부글 끓는 피를 흘리며 땅에 붙박혀 있었다. 그때야 비로소, 무불상은 화혈강시가 비명을 지르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공포가 그의 마음을 채웠다. 도망가기 위해, 무불상은 발을 움직이려 했다.


파악!...


하지만 화혈강시를 멈추게 한 그 [무엇인가]는 그도 예외로 두지 않았다. 땅 속에서 튀어나온 날카로운 창 같은 것이 그의 발을 찔러 땅바닥에 붙박아버린 것은 그가 생각을 실행에 옮기기 직전이었다.


" 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


공포가 섞인 굉장한 비명이 산을 울렸다. 비명소리의 주인은 물론 무불상 그 자신이었다. 하지만 그 비명은 시작에 불과한 것이었다.


" 우... 우와아아아... "


치이...


공포와 고통으로 인해 눈물에 콧물, 바지에는 똥오줌까지 지리고 있는 무불상의 눈 앞에서, 승리를 자신했던 네 구의 화혈강시가 천천히 흐물거리며 녹아 내리기 시작했다. 무엇에 어떻게 당한 것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 키... 키이이이... 끼이이... 이이... "


화혈강시의 비명소리가 점점 약해져 갔다. 그리고 마침내, 땅 속으로 녹아든 검은 진물의 흔적만을 남긴 채, 화혈강시는 깡그리 녹아 없어져 버렸다.


콰드드득!...


" 아으윽!... 우와와... "


화혈강시가 완전히 사라져 버리자, 땅 속에서 솟아 나왔던 시커먼 창 같은 것들이 다시 땅 속으로 돌아가면서, 다시 격렬한 아픔이 무불상의 다리를 타고 올라왔다. 끔찍한 공포로 인해, 정신이 거의 나가버린 무불상은 그자리에 주저 앉아버렸다.


" 아... 아와아아아... "


이미 주변은 완전히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음에도, 흑운을 중심으로 한 사방은 완전히 암흑 천지처럼 빛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흑운이 내 뿜는듯한 어두운 빛, 그것을 쬔 사물들이 만들고 있는 밝은 그림자. 그것은 흡사 인간 세상 밖의, 지옥의 한 구석 풍경 같았다. 그리고 그 영역 안에 살아있는 존재는 단 둘 뿐이었다. 하나는 그 어둠 속에서도 두개의 붉은 광점을 떠올리고 있는 흑운, 다른 하나는 똥오줌을 지리며 주저앉은 무불상이었다.


" 말해라. "


" 나... 나는... 마... 많은건 몰라... 그...그자들로부터 화혈강시를 숨겨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뿐... "


그리고 솔직한 자백이 이어졌다. 무림에서 잔뼈가 굵은 태산파의 장문인, 이름높은 무림 명숙의 모습은 거기에 없었다. 남은것은 공포에 질린 초라한 인간 말종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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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운의 전투 방식은 무림이라기보다는 군인입니다. 사전에 적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수집한 정보를 통해 적의 약점을 찾아 내며, 그 약점을 공략하는 함정을 파고 기다리는 스타일이지요. 글에서는 나오지 않지만, 1부 마지막에서 소림의 108나한이 그렇게 허무하게 무너져 내린 것은 흑운이 108나한을 [알고]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방식은 비슷하거나 조금 더 낮은 능력을 가진 다수의 상대에게 극히 효과적입니다. 그럼에도 이 글에서 그가 정면대결을 하는 일이 많은 이유는 그만큼 실력이 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가 공격자이기 때문입니다.

 

복수를 위한 공격자. 그것이 지금의 흑운인 겁니다.

 

화혈강시는 사실, 흑운을 비롯한 10인대와 육체적인 능력이 거의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흑운의 특수한 능력들이 아니라면 4대 1은 무리인 상대죠. 앞으로도 몆구가 더 흑운과 대결하게 될것입니다.

 

-_-)v-~ 그럼, 댓글을 [강요]하는 멘트 한마디로 끝을 맺지요.

 

댓글 수가 부족할 경우 삐질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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