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번역] 세컨드 레이디 7
그들이 서쪽으로 지고 있는 태양을 향해 비행하면서 LA를 한 시간 반 남겨 두고 있을 때, 베라 바빌로바는 대통령 특별실 소파로 가이 파아카를 불렀다.
계획은 없었지만 연설문 검토를 끝내고 졸음이 오지 않으니 책에 관한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함, 자신은 언제라도 마음을 바꿀 수 있는 권리가 있지 않느냐고 그녀는 말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지루한 비행 시간을 빨리 보낼 수 있을 것이며 게다가 그 책은 끝내지 않으면 안되었다.
가이 파아카는 기뻐하면서 포터블 테이프 레코더를 가져와 새 카셋을 넣고 테이프를 돌렸다.
“지난번 얘기는 모스크바행 비행 도중이었는데, 거기서부터 시작합시다.”
하고 그가 상기시켜 주었다.
“됐어요.”하고 베라가 말했다.
“그전에 우리가 이야기를 시작할 때, <로스엔젤레스 타임즈지>에 처음 직장을 얻은 것에 대해 약간 말씀을 하셨죠.
초기 구애시절에 남편을 해변으로 데리고 가 아버님을 만나뵙게 했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모스크바행 비행기에서 우리는 앤드류 브래드포드와의 구애 문제에 관한 얘기를 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문제를 끝내기에 앞서 <로스엔젤레스 타임즈지> 기자생활에 대한 끝맺음을 하고 싶습니다.
그 때 이야기로 되돌아가 주십시오.”
“그러지요. 나의 최초의 인터뷰 문제에 대해서는 내가 거의 허풍을 쳤다는 얘기를 이미 했지요.”
“그래서 조오지 킬데이씨가 살려 주었다고 하셨죠.
그리고, …”
“꼭 그렇기 보다는 스티브 우드였죠.
그가 내 이야기를 고쳐 써 주었다는 것 다 알고 계시죠?”
“그렇습니다.”
그는 주저했다.
“알고 계셔야 될 일이겠습니다만, 며칠 전 킬데이씨로부터 직접 들었는데요. 그 얘기는 다시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만, 원참…사실대로 아셔야지요.
하여튼 별 문제는 아닙니다만, 스티브 우드가 고쳐 쓴 게 아니라 그것은 킬데이씨였습니다.”
그녀는 딱해 보였다.
“그가 그렇게 말하던가요?”
“네, 그렇습니다.”
그녀는 머리를 흔들며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면 그 양반, 노망이 들었음에 틀림없군요.
왜냐하면 우드가 킬데이를 위해서 그 이야기를 다시 고쳐 썼다는 걸 알고 우드씨에게 가서 고맙다고 했더니 그가 그랬다고 했거든요.”
“그러면 스티브 우드가 당신의 이야기를 고쳐 썼다고 말했습니까?”
“그럼은요.”
파아카는 놀라움을 감추려 했다.
“알겠습니다.” 하고 그는 말했다.
그러나 그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일주일도 못 되어서, 킬데이가 매디슨 카페에서 그에게 말했던 것이다.
이야기를 고쳐 쓰는 스티브 같은 사람은 없었다고.
그런데 빌리 브래드포드는 스티브 우드에게로 가서 그의 도움을 대단히 감사한다고 말했다니 반박을 받기가 싫어서였든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아서였든지 좌우간 그녀답지 않은 일이었다.
“그럼 그 문제는 밝혀졌습니다. 계속하지요.” 하고 파아카도 말했다.
빌리는 유쾌하게 그의 여러 가지 질문에 대답하였다.
45분 뒤에 그녀는 그쳤다.
“이젠 그만하면 충분할 것 같군요. 피곤하니까 LA에 도착하기 전에 잠시 낮잠이라도 자야겠어요.” 하고 그녀가 말했다.
그는 테이프 레코더를 찰칵 끄고
“감사합니다.”하고 말했다.
“고마워요. 다음에 봅시다.”
파아카는 특별실을 나와 자기 자리로 천천히 복도를 걸어갔다.
분명히 그는 놀랐다.
그가 알기로는 빌리가 그에게 최초로 거짓말을 한 것이다.
그는 어떻게 된 것일까 하고 의아스럽게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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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에서는 이상한 하루였다.
하지만 이제는 다 지나고 그들은 워싱턴 DC로 향하여 날아가고 있었다.
가이 파아카는 의자를 뒤로 비스듬히 젖히고 앉아 창 밖 어두운 밤하늘을 내다보았다.
통로 건너편에는 노라와 다른 사람들이 잠을 청하고 있었다.
곁에는 빌리 브래드포드의 자서전을 함께 쓰기로 한 이후 계속하고 있는 자신의 일기장이 펼쳐 있었다.
무엇 때문에 쓰기 시작했는지는 모르지만 매일같이 잠자기 전에 그 날 있었던 일들을 적는다는 것은 귀찮은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하루 중에 보고 생각하고 행하였던 일들을 충실히 적으며 자기 나름대로의 관찰과 논평을 덧붙여 그 책에 대한 참고 자료를 보충하기도 하고 있었다.
15분 전에 써 놓은 그 날의 일기에는 아침 일찍부터 저녁 LA를 떠날 때까지 있었던 일들이 요약되어 있었다.
그 날 일어났던 사건들은 그의 호기심을 끌었던 것으로 그것을 집어 들고 다시 읽어보기 시작했다.
<어렸을 적 뛰어 놀던 고향 LA에선 빌리에게는 정말 이상한 하루였다.
오늘 아침 9시, 그녀는 센츄리 프라자 호텔 특별실에서 세 개의 별도 기자회견이 있었다.
회견 내용은 모스크바 방문과 LA에 돌아온 소감, 그리고 다음 주에 있을 런던 정상회담에 관한 것이었다.
빌리가 테이블에 앉을 때 약간의 혼란이 일어나 어색하였다.
노라가 빌리에게 설명한 바로는 그녀는 미국 여성 클럽 회장과 LA의 옛 친구 아그네스 사이에 앉게 되어 있었다.
빌리가 참석할 때 이 두 부인 중 한 사람이 이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빌리가 즉시 그녀의 팔을 붙들며
“이봐, 아그네스!”하고 인사말을 했다.
그 부인은 당황하여 자기는 아그네스가 아니라 여성 클럽 회장이라고 말했다.
그 순간 노라가 딴 부인을 데려오며 빌리에게 말했다.
“이 분이 당신의 옛 친구 아그네스예요.”
그러자 빌리는 회장에게
“죄송합니다. 너무나도 많은 일이 진행되다 보니 제가 혼동을 했는가 봅니다.”하고 정중히 사과했다.
나는 노라 옆에 좌석 배치를 받았었다.
점심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그녀가 약간 언짢은 소리를 하는 것을 들었다.
그녀는 말했다.
“내가 좀 바보 짓을 했지. 깜박 잊고 말하지 않았군.
빌리는 굴을 먹지 않을 텐데.
첫 코스부터 굴이 나오고 있군. 원참, 굴은 손 대지도 않을 건데 말이야.”
나는 가만히 빌리를 춤쳐보았다.
그랬더니 그녀는 굴을 꿀꺽꿀꺽 삼키고 있지 않은가.
노라는 믿을 수 없어 했다.
“아마 예의를 지키고 있는 거겠지.”하고 나도 말했다.
그녀는 머리를 살레살레 저으면서 말했다.
“전에는 그런 일이 없었는데, 참 재미있군요.”
이처럼 빌리와 노라의 그 두 가지 작은 실수가 있고 나서부터는 모든게 순조로왔다.
빌리의 아버지 클라렌스 레인의 집은 이층이었다.
두 대의 리무진과 경찰 에스코트와 신문 기자들이 탄 버스가 멈추고 우리가 차에서 내리자 현관문이 열리고 빌리의 여동생 키트가 달려와 그녀의 품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들은 계속 서로 붙들고 활기있게 이야기를 나누며 사진사들에게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포즈를 취했다.
곧 우리는 방으로 들어갔다.
빌리가 소련에서 사온 선물을 나눠주고 나서 우리는 테이블 주위에 둘러앉았다.
빌리의 여행과 소련인들 이야기, 그리고 런던과 이제까지 본 영화, 읽은 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초인종이 울리고 키트와 그녀의 남편과 아들이 들어왔다.
그녀의 남편 노리스 와인스타인은 치과 의사였고, 빌리의 조카 리치는 열 네살이었다.
그녀는 노리스 와인스타인에게 키스를 하고 몸을 굽혀 조카에게 키스를 했다.
그녀는 그의 어깨를 쥐고 잡시 살펴보더니
“리치, 몰라보겠는걸. 지난번 만나본 뒤로 일 년 사이에 정말 굉장히 자랐군.”하고 말했다.
키트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언니, 무슨 말씀이세요. 일년이라니?
리치를 만난 건 한 달도 못 되는데요, 잊으셨나요?”
빌리는 깜짝 놀라는 기색이었다.
“한 달도 채 못되지 않았어요, 기억나지 않으세요?
예비학교를 둘러보러 동부에 데리고 갔다가 예고 없이 백악관에 들러 뵈지 않았어요.”하고 키트가 계속 말하였다.
빌리는 손으로 머리를 찰싹 치고는
“그래 내 정신 좀 봐.”하고 말했다.
“리치 용서해요. 내 나이가 되면 뇌 세포가 빨리 쇠퇴하게 되거든.”
그녀는 리치를 끌어안고 다시 키스했다.
“기억하고말고.”
노리스 와인스타인이 문쪽으로 가며 소리쳤다.
“당신을 기다리는 손님이 또 한 분 계십니다. 잠깐만요.”
하고 그는 그의 차로 달려가 까만 털뭉치를 안고 돌아왔다.
나는 그것이 빌리가 전에 얘기했던 작은 검은 스코트산 테리아임을 알았다.
그 개는 관절염을 앓고 있어 캘리포니아의 따뜻한 햇볕이 필요했기 때문에 와인스타인씨 집안에 맡겨 두었던 것이다.
그 개의 이름은 햄릿이었다.
그도 이 개를 타일 바닥에 내려놓았다.
빌리는 기쁨의 환성을 울리며 무릎을 굽히고 양팔을 벌리며
“햄릿, 어서 와. 인사해야지.” 하고 소리쳤다.
개는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서서 킁킁거리더니 뒷걸음질치며 사납게 짖어댔다.
빌리는 개를 얼러서 다가오게 하려 애썼으나 계속 짖기만 했다.
빌리는 난처해서
“그놈을 강아지 때부터 길렀는데.” 하고 막연하게 중얼거렸다.
“늘 내 품 속에 뛰어와 내게 키스를 하곤 했는데, 왜 이러지?”
그녀는 개에게 손가락을 흔들어대며 말했다.
“햄릿, 거만스럽기는. 좀더 상냥스럽게 굴지 않으면 다시는 너를 보러 오지 않을테야.”
그녀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한바탕 웃고는 화제를 돌렸다.
우리는 30분 가량 더 이야기하다가 그 곳을 떠났다.
별 의미는 없겠지만, 오늘 있었던 일 가운데 개가 반겨 주지 않던 그 일이 무엇보다도 마음속에 생생하게 떠오른다.
나는 <오딧세이아>를 생각하고 있었다.
오딧세우스가 이타카를 떠나 19년이란 오랜 세월이 흐르고 난 후 거지로 변장하여 돌아왔을 때 그의 충실한 예 친구였던 개는 즉시 알아보고 반기지 않았던가?
개란 아무리 오랫동안 떨어져 있어도 주인이 돌아오면 반드시 알아보는 법니다.>
우리들이 LA 국제 공항에 도착하여 워싱턴행 비행기를 탈 때 나는 잠시 노라와 단둘이 있게 되었다.
“모든 일이 아주 순조로왔죠?”
내가 말했다.
“더 이상 좋을 수가 없었죠.”
그녀가 말했다.
“단 한가지, 빌리의 애견이 으르렁대던 모습은 이상하지 않았어요?”
하고 내가 말했다.
“무슨 말씀이에요?”
“이상했단 말이오.”
“쓸데없는 소리, 개는 소화 불량이었을 뿐이예요.” 그녀가 말했다.
“그래, 그 뿐이었을까.” 내가 말했다.
과연 세컨드 레이디 베라 바빌로바는 앞으로 의심받는 일 없이 미국의 퍼스트 레이디인 빌리 브래드포드의 역할을 무사히 할 수 있을지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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