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산 오솔길 옆 - 3부
깊은 산 오솔길 옆이 곳에 온지도 어느새 반년이 되었다. 불법을 배워 승려가 되겠다던 내 결정이 불가능해짐을 깨달았다. 바로 옆방의 은성 때문이었다. 그녀의 모든 점이 나를 한없이 번뇌하게 만든다. 물론 그녀가 내게 보여주는 호의는 가족과도 같았지만 나는 더 이상 그녀를 스승으로만 생각하는 것이 아닌 여자로 생각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나는 성에 대해 무지한 수준의 아이였고, 심지어 남성과 여성이 관계를 만들어가는 방법 조차 모른다. 다만 이렇게 서로 피가 섞이지도 않고, 어떠한 관계조차 없던 남녀가 한 장소에서 오랜 시간 함께 있으면 다양한 감정이 생긴다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온 몸으로 체감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내가 이런 감정과 육체의 번뇌에 휩싸인 체 방황하고 있는 것을 아는 것인지 모르는 것인지, 은성은 여전히 나에게 친절하고 따스했으며 날 버린 가족보다 소중한 스승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근래 나는 날 버리고 떠난 가족의 꿈을 많이 꾸곤 했다. 정확히는 엄마의 꿈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기억을 할 수 있는 시간부터 아빠는 사업이 바쁘다며 집에 들어오지 않기 일쑤였고, 집에 돌아오는 때마저도 술에 취해 옹알이 수준의 말만 반복하다가 잠이 드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엄마와 나에게 아빠란 존재는 없는 것과 같았다. 그래서인지 가족의 꿈을 꾸는 지금도 나타나는 것은 엄마 하나였다. 꿈 속의 엄마는 법당에 앉아있는 보살님들처럼 조용히 앉아있을 뿐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내가 “엄마!”하고 다가가면 그녀는 감고 있던 눈을 떴고, 지그시 나를 응시했다. 엄마는 평소보다 아름다워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 그녀를 품에 안으면 그녀는 행복한 듯 큰 목소리로 웃었다. 지금껏 내가 보던 엄마와는 많이 다른 모습에 놀라 내가 바라보면 그녀는 목을 두른 내 손을 푸르고 일어났는데 나는 놀라게 된다. 그녀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모습이기 때문이다. 엄마의 모습은 은성의 벗은 몸과 조금 달랐다. 가슴도 크고 유두와 유륜도 큰 은성과 달리 엄마는 가슴이 작고, 유륜도 작았다. 게다가 배에도 조금 몸 전체에 은성보다 살이 붙어 있었다. 허나 그 모습이 아름답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마치 명화 ‘비너스의 탄생’ 속 비너스와 같이 알맞게 살이 붙은 모습이었다. 나는 놀란 나머지 침을 삼키며 그녀를 볼 뿐이다. 그러면 엄마는 나를 바라보며 목젖이 보이도록 웃다가 떠나갔다. 어느새 그녀의 옆에 아빠인 듯 실루엣만 보이는 남자의 팔짱을 끼고 행복한 듯 나를 남겨둔 채 사라지고 있었다. 나는 두 번 버림받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부모님이 간 방향으로 무작정 달려본다. 땀이 온 몸을 적시도록 달리다 보면 문이 하나 있고 그곳에서 방금 전 내 곁에서 들려주었던 큰 웃음 소리가 들린다. 나는 떨면서 문을 열고 엄마를 크게 불러본다. 항상 그 장면에서 깨기 일쑤였다. 그러면 나를 깨운 은성은 “상원아 가위에 눌렸었니? – 함께 지낸 지 5개월이 지나서야 나에게 말을 놓게 되었다. 다른 이들과의 관계를 많이 불편해하는 것 같다 – “ “아…아니에요.” 은성에게는 왠지 엄마의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기에, 그리고 꿈에서마저 그녀가 또 나를 떠나가고 있음을 말하면 나 못지 않게 은성이 슬퍼할 것 같아서 나는 거짓말을 했다. 은성은 방에 불을 켜주고는 “빨리 준비하고 법당으로 오렴. 아침기도 해야지”라고 말하며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나는 옷을 갈아입고 은성과 함께 법당으로 가서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에는 나를 버린 엄마와 아빠지만 둘이 행복하길 빌었다. 나 또한 이 곳에서 행복하니까…… 암자에서 10분을 걸어 내려가면 일반 등산객들의 등산 코스에는 나오지 않는 아주 작은 폭포가 있다. 하지만 우리 암자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꼭 지나쳐야 하는 길이기에 읍내에 장을 보러 나가거나 다른 용무로 암자를 나섰다가 돌아올 때면 요즘처럼 더울 때는 가끔 들러 차가운 물에 발을 담그거나 얼굴에 물을 끼얹고는 했다. 은성은 후에 이 폭포가 우리 암자의 입구 같은 존재라 말하며 ‘안녕 폭포’라고 말했다. 그녀가 학창시절에도 그곳에서 인사를 나누고 학교를 등교했다는 말도 붙이면서. 암자에는 외부 전기가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서울 집에서의 당연시 여기던 에어컨도 선풍기도 없었다. 자체 발전기를 돌린다고는 해도 이는 전등 만을 위한 전기이므로 냉방기기를 추가시킬 여분의 전력 따위는 기대할 수 없었다. 하지만 워낙 산골짜기에 위치한 암자인지라 더위를 느낄 여유는 그다지 없었다. 더울 때면 ‘안녕 폭포’에서 발을 담그고 책을 읽으면 그만인 것이다. 하지만 그런 우리의 사정과는 달리 암사 밑은 매우 더운 건지, 사람이 두 사람보다 많아지면 더위를 더 잘 느끼는 것인지 산에 사람 목소리가 더 많이 들리기 시작했다. “요즘 왜 이렇게 산에 사람이 많을까요?” “여름이니 계곡에 휴가를 온 것 같구나. 안녕 폭포가 흘러서 산 중턱에서는 꽤나 큰 계곡에 합류하거든.” “아 그럼 우리 암사에도 사람이 드나요?” 나는 오랜만에 은성과 주변 마을 노인들 외에도 다양한 사람을 만나게 될 수 있을지 궁금했다. “가끔 오곤 하지. 길을 잃어 오는 이들도 있고, 수원을 따라 올라오는 이들도 있단다. 상원이가 사람 정이 그리운가 보구나?” “아니요. 그건 아닙니다.” 나는 얼굴을 붉히며 자리를 떴으나 아마 나의 마음은 이미 은성에게 들킨 듯 했다. 주말이 되었으나 산 속 내 생활에 변화는 없었다. 여느 때와 같이 방 안에서 공부 하던 중 너무 더워서 안녕 폭포에 발을 담그러 나섰다. 한참을 앉아서 책을 읽고 있자니 걸음 소리가 들려온다. 허나 은성의 고무신과 달리 너무 무거운 발소리여서 나는 깜짝 놀래 암사 방향을 바라보았으나 아무도 없었다. “스님?” 두꺼운 남성의 목소리였다. 나는 반대쪽으로 얼굴을 돌리자 오르막길에 두 남자가 부축을 한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 한 남자가 다리를 삔 모양이다. 나는 신을 신고 달려가 반대쪽에서 부축하는 것을 도왔다. 그리고 함께 암자로 향했다. “산행 중에 다리를 다치셨나요?” “네, 이 친구가 평소와 달리 분별 없이 속도를 내더니 하행 중에 발을 잘못 밟아 다쳤습니다.” 산을 탈 때는 내려갈 때 더 조심해야 한다더니 그 말이 사실인가 보다. 평소 때 산을 돌아다니면 은성이 내려오는 나를 보며 “조심하세요 조심하세요” 하고는 했던 것이 생각났다. “저희 암자가 바로 앞에 있으니 그 곳으로 가시죠” 나는 최대한 어린 아이처럼 보이지 않도록 낮은 목소리로 조용히 이야기했다. “감사합니다. 이런 깊은 산에 암자가 있는 줄 몰랐는데 다행이군요.” 돌계단을 지나 암자의 마당에 다다르니 청소를 하던 은성이 놀라 달려오기에 내가 설명해 주었다. “저희 암자가 워낙 깊은 곳에 있다 보니 이 곳에서 구급차를 기다릴 수는 없어요. 게다가 곧 있으면 해가 질 테니 부른다고 해도 헤맬 것입니다. 차라리 오늘은 저희 암자에서 하룻밤을 보내시며 찜질이라도 하며 붓기를 가라앉히시고, 이곳에서 1시간 정도 내려가면 큰 절이 있으니 그 곳으로 가셔서 하산하시지요.” 두 남자는 어쩔 수 없단 표정으로 잠깐 상의하더니 다리를 다치지 않은 이가 “알겠습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스님”이라고 대답하며 은성에게 합장했다. “상원아, 오늘은 네 방을 저 분들께 양보하고 나와 함께 방을 써야 할 것 같구나. 네 방을 정리해 놓을 테니 저 분들께 식사 대접할 준비 좀 하렴” 나는 놀랐지만 은성과 함께 보낼 수 있다는 것에 좋아서 “네? 네? 알겠습니다!” 힘주어 대답했다. 은성이 방으로 사라지자 둘 중 다치지 않은 이가 나에게 물었다. “이 절에는 두 분만 계시나 보죠?” “네, 은성스님께서 이 절을 관리하고 계십니다.” “여자 스님이 매우 젊어 보이는데 나이가 어떻게 되시죠?” “네 스님은 올해로 스물 일곱 이라고 들었습니다.” 질문을 하는 남자의 눈매가 바뀌는 것이 보였다. 허나 이런 눈빛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었다. 다친 남자에게 물을 주기 위해 부엌으로 달려갈 뿐이었다. 그리고는 부엌 지하에 땅을 파서 만든 냉장고에서 얼음을 가져다 젖은 행주에 싸서 그에게 냉 찜질을 해주었다. 은성이 방을 준비하고, 난 김치와 채소를 다듬어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성인 두 명이 왔으니 그에 맞게 양을 많이 준비했는데 그들은 하루 종일 배가 많이 고팠는지 순식간에 한 그릇을 먹어 치우고 한 그릇씩 더 먹었다. 식사를 마친 뒤 나와 은성은 법당에서 책을 읽었고, 그들은 뭘 하는 지 방은 조용하기만 했다. 해가 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평소처럼 잠을 청하기 위해 정리를 하고 있었는데 다리가 성한 이가 우리를 찾았다. “저 스님, 저희가 궁금한 것이 있는데……” “뭘 찾으십니까?” 내가 일어서 대답하자 “아니 어린 스님 말고 여자 스님이 좀 알려주셨음 해서요” 그는 능글맞게 웃으며 은성을 불렀다. 은성은 “상원아 법당 정리 끝나면 문 단속 하고 방에 가서 기다리렴.” 이라고 말한 뒤, “무슨 일이신지요?”라고 물으며 그를 따라 나의 방으로 갔다. 나는 아무 것도 모른 채 은성의 방의 이불을 핀 뒤 이불에 밴 그녀의 향을 맡으며 밀려오는 잠을 참았다. 그리고 내가 잠과의 승부에서 지려는 찰나 “읍!”하는 은성의 짧고 가련한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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