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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산 오솔길 옆 - 4부



깊은 산 오솔길 옆 내 반쯤 감긴 눈은 은성의 신음 소리에 빛을 내 듯 원상태로 돌아왔다. 나는 두 남자가 묵고 있는 내 방 쪽으로 조용히 몸을 밀었다. 두 방 사이의 미닫이 문에 낸 구멍에 눈을 맞댔다. 방은 어두울 뿐 어떠한 몸짓도 볼 수 없었다. 당연했다. 다리를 다친 남자만이 피곤에 지쳐 잠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다치지 않은 남자는 보이지 않았다. 불현듯 그 남자가 은성을 수상한 눈빛으로 봤다는 것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내가 사람을 볼 줄 몰랐기 때문에 은성을 위험하게 만들었단 죄책감과 동시에 은성을 찾아야 한다는 급박함까지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나는 조용히 몸을 끌어 부엌으로 내려갔다. 만약 그 남자가 은성을 괴롭게 한다면 내가 구해야 할 테니 무기가 필요한 것이다. 나는 아직 완벽한 불자가 아닌 만큼 살인을 한다고 해도 이번만큼은 부처님과 보살님들도 이해해 주실 것이라는 어줍잖은 마음으로 장작 옆에 기대어 있는 도끼를 들었다. 날이 잘 들지는 않아 큰 피해를 줄 수는 없겠지만 들고 있다는 것 만으로 위협이 될 터였다. 부엌에서 마당으로 통하는 문을 나서 고개를 양 옆으로 돌려보았지만 은성과 남자는 보이지 않았다. 분명 암자를 벗어나지는 않았으리라는 확신에 법당과 숙소 사이로 달려갔다. 그리고 발견했다. 화장실 이었다. 아주 오래 된 목조 건물인 까닭에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린 것이다. 나는 화장실 옆에 두 발을 딛고 서서 도끼를 크게 휘둘렀다. “와그작!” 하는 소리와 함께 화장실의 옆 벽을 이루고 있던 목판에 사선으로 구멍이 났다. “으악! 뭐여!” 놀란 남자의 음성이 산을 울리며 메아리 쳤다. 순간 “퍽!”하는 소리와 함께 자신이 신고 있던 양말로 입이 막힌 은성이 반라가 되어 튀어나왔다. 은성의 눈에는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나왔고, 입고 있던 상의는 벗겨지고 안에 입은 런닝셔츠가 배 위까지 올라가 있었다. 회색 바지는 양 발목에 걸쳐져 있었고, 팬티는 종아리에 걸쳐져 있었다. 나는 은성을 감싸 안았다. 그녀는 나보다 12살이나 많았지만 지금은 어린 아이처럼 내 안에서 울며 그 작은 어깨를 들썩였다. 나는 한 손으로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고는 그녀의 입에 물려진 양말을 끌어내렸다. 양말에 묻은 침이 열려진 가슴을 타고 흘러내렸고 입에서 울음소리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입고 있던 상의를 벗어 그녀에게 덮어주었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나에요. 상원이에요.” “엉엉엉……엉엉……무서워……저 남자가……엉엉” 나는 흐느끼는 어깨를 안고는 그녀가 안심하길 바랬다. “아오……저 땡중 새끼가 날 죽일라고 작정했구먼!” 열린 화장실 문으로 남자는 씩씩거리면서 나와 소리 질렀다. 큰 목소리에 한 밤의 산에는 메아리가 여기저기서 울려 퍼졌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다시 도끼를 잡아 들어올렸다. 온 몸이 공포와 분노에 휩싸여 떨렸다. 마치 겨울의 숲 속에 서있듯 떨려온다. 남자는 입고 있던 등산 바지를 배 위까지 끌어올렸다. “당장 이 암자에서 사라져, 이 병신아!”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남자에게 소리쳤다. 남자는 코웃음 치며 상의의 가슴 주머니에 있는 담배를 뽑아 물고는 라이터로 불을 붙이려 했지만 그도 놀란 마음에 손이 떨리긴 마찬가지였다. “워메…..우리 꼬맹이 스님, 내가 지금까지 위험한 꼴 많이 봤지만 이렇게 위험하긴 처음이었어” 낮에도 그가 덩치가 큰 편이었음을 알 수 있었으나 지금처럼 바짝 졸아버린 순간, 그는 성경 속 골리앗 같이 나보다 몇 곱절은 거대한 남자로 보였다. “우리 스님 위험하니까 그 도끼는 옆에 내려놓고 지랑 얘기 좀 해유” “너같이 짐승 같은 새끼랑은 할 말 없어!” 낮에는 서울말로 존대하던 그가 늘어지는 충청도 사투리와 함께 입에 문 담배를 힘을 주어 태우며 내 뒤에 있는 은성을 낚아채려는 듯 빠르게 손을 뻗어왔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내 손에 잡힌 도끼를 그의 방향으로 휘둘렀다. 도끼가 그의 팔에 걸렸으나 워낙 날이 죽어서인지 “툭” 치는 소리만 내며 떨어졌다. “으아아아아악!” 남자가 타격이 되었는지 소리를 질렀다. 나는 용기를 얻고 다시 도끼를 휘두르려 팔을 들어올렸다. "이번에는 진짜 죽인다!" 내 목소리가 산에 울리자마자 남자는 다친 팔을 잡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달빛에 비친 그의 얼굴에 두려움이란 단어와 함께 일그러졌다. “알았어!! 나갈께! 나간다고!! 간만에 재미 좀 볼까 싶었더니 이런 씨발!” 남자는 궁시렁 거리며 신발을 신은 채 내 방에서 자신의 등산 가방을 짊어지고는 빠르게 사라졌다. 사라지는 그의 오른쪽 팔에 피가 흐르는 것이 보였다. 아마 조금은 상처를 낸 듯 하다. 그리고 내 방에서 “야 임마! 뭔 일이야! 어디가!” 하며 다친 친구가 그를 부르는 소리가 났다. 어두운 산 속에서 남자와 함께 목소리도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은성은 여전히 땅에 주저 앉은 채로 목 놓아 울고 있었고, 나는 그녀의 어깨를 안아주고는 “스님, 들어가요. 옷 갈아입으셔야죠.” 그녀의 울음소리가 얕아졌고, 나는 어깨를 붙잡고 방으로 그녀를 데려갔다. 그리고는 다시금 도끼를 들고 다친 남자가 누운 내 방으로 들어갔다. 도끼를 든 내 모습을 보고 남자는 놀랬는지 몸이 굳어 있었다. 적막이 한 순간 둘 사이를 감돌고 나는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당신 친구가 우리 스님을 범하려 했어.” 내 말에 놀라 다친 남자가 토끼눈을 뜬 채 말도 하지 못한 채 침을 삼켰다. “만약....정말 만약...... 당신도 같은 생각으로 우리 스님을 건들려고 한다면 내가 당신의 다리를 잘라버릴 거야. 몸 성히 돌아가고 싶으면 아무 생각 말고 잠이나 자. 내일 큰 절에 스님들께 연락해서 당신을 데리고 갈 거니까……”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알았어. 조용히 있다 갈 테니까 이 얼음 좀 갈아주면 안될까? 벌써 다 녹았어” 나는 한 손에는 도끼를 든 채 그의 얼음을 새로 갈아 주었다. 그리고 은성에게 돌아가려다가 다시 와서는 그가 매고 있던 가방에 묶인 손수건을 매듭 지어 양팔을 묶었다. 남자는 연신 욕을 해대며 내 행동을 추궁했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는다면 내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나는 은성의 방으로 갔다. 은성은 새로 옷을 갈아 입었지만 입고 있던 옷들은 방바닥에 어질러져 있었다. 나는 옷을 잘 포개어 쓰레기봉투에 넣으며 은성에게 말했다. “스님, 아픈 남자는 같이 쫓아낼 수가 없어서 움직이지 못하게 묶어두었습니다. 내일 다른 스님들이 올 때까지 그는 아무것도 못할 거에요. 그러니 걱정 마세요.” 은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상원아 내 옆으로 와줘.” 나는 그녀 옆으로 가 도끼를 내려놓고 붙어 앉았다. “너무 무서웠어. 법당을 정리하고 화장실이 급해 들어갔는데 그 남자가 벽 뒤에서 튀어 나와서는 내 옷을 벗겼어. 그리고 발로 짓밟고 내가 소리를 지르려 하자 신고 있는 내 양말 하나를 돌돌 말아 입 속에 집어넣고 반대쪽 양말로 묶었어. 그리고는 하의를 몽땅 내리고는 음부에 손가락을 집어넣고 마구 휘저었어. 그리고 가슴도 만지고 자신의 내 팬티를 막 내리더니 자기 성기를 넣으려고 했어. 너도 어리지만은 않으니까 이게 어떤 상황인지 다 알고 있지? 난 너무 두려워서 반항할 수 없었어.” 눈물이 얼마나 흘렀는지 붉게 충열된 눈을 깜빡이는 그녀가 딱했다. “앞으로 제가 항상 스님 곁에서 지켜 드릴께요.” 그녀는 나를 꼬옥 안아주고는 “상원아 고마워”하고 말했다. 나는 내 삶을 구원해주었던 그녀에게 더 크게 감사하고 있는 내 마음을 전하지 않은 채, 그녀가 잠들 때까지 어깨를 빌려주었다. 긴 밤, 나는 뜬 눈으로 밤을 지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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