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이 가난했다구?
조선이 가난했다구? - A journey into colorful Joseon
정가 : 25,000원
정보 : 536쪽
이 책의 제목은 ‘조선이 가난했다구?’로 의문문이고, 영문 부제는 ‘A Journey into Colorful Joseon’이다. 이 책의 얼개는 제목과 부제대로 조선이 정말 가난했는지에 대한 의문으로 시작해서 조선이 일반적인 인식과는 다르게 가난하지만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과정이다. 이 책은 5개의 장과 에필로그로 구성되어 있다.
들어가는 글
타인의 시각 - 조선은 가난했다
드디어, 마침내, 결국 코리아 언박싱! | 왔노라, 보았노다, 그리고 놀랐노라 | 이방인들, 조선을 만나다 | 조선은 ‘지구상에서 가장 더러운 사람들’ | 향과 취, 그리고 후 | 그들의 런던, 파리 그리고 뉴욕 이런 몸살, 조선인들 피해 갈 수 있었겠나 | 사각 프레임 속의 조선, 조선인 | 아직도 끝나지 않은 길고도 긴 - | 만들고 다듬어진 이미지 | 풍속인가, 풍속괴란인가 | 양이와 불쾌한 피사체, 조선인 | 여전히 불편한 그들의 시선 | 사각 프레임에 갇힌 조선의 미개함, 가난 | 최의 패션 아이템 - 백의 | 백색은 아녀자들의 힘든 노역에서 | 같은 흰옷, 다른 시각 | ‘온통’과 ‘백색’ | ‘온통’은 거대한 무지성의 집단 | 백(白), 백안시되다 | 분토취부 | 조선의 정부가 거대한 강도가 된 이유 | 조선인에게 가난은 차라리 체념이었다 | 프로파간다 | 그들이 찍고 쓰고, 그들끼리 공유한 조선 | 그 때 조선은 |좀 특별하게 조선인을 만난 이방인들 | 조선인은 누가인가 | 프랑스군, 조선인을 만나다 - 병인양요 | 전에 남겨진 사람들 | 포수도 보부상도 나서다 | 그들의 전쟁과는 다른 조선의 전쟁 | 이방인들이 전장에서 만난 조선인은 달랐다 | 미군, 조선인을 만나다 - 신미양요 | 화를 척한 것이 아니다 | 같은 나라, 다른 사람들 | 임금은 비록 군을 버렸을지언정 | 어떤 것이 바른 시각인가 | 타인의 시각으로 본 조선의 가난 - 우리는 어떻게 볼 것인가
조선이 본 조선의 가난
어느 하루, 정조가 본 조선의 가난 | 유민을 만나다 | 이들 직업과 신분은 무엇이었을까 | 장용영, 진휼청 | 부역과 환곡이 유민으로 내몰았을까 | 생업은 뒷전, 부르면 가야 한다 | 국가가 고리대금업자냐 | 세금과 부역 -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 | 빚의 연좌제 - 족징과 인징 | 군대 갈 거야, 세금 낼 거야 | 유민의 역사는 조선의 역사이다 | 불휘 야튼 남ㄱㆍㄴ | 임금의 바램과 ‘너희들’의 귀향
어느 하루, 정조가 꿈꾼 부[富] | 임금을 잠 못 이루게 하다 | 임금, 부를 꿈꾸다 | 조심태를 만나다 | 임금의 꿈을 이루어 가다 |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 상, 상을 말하다 | 정조는 왜 화성에 꽂혔을까 | 도대체 가난이란 무엇인가 | 어디서 오는 것일까 | 수도권 집중화와 지방 | 가난은 공평하지 않았다 | 부리고, 섬기는 것이 곧 하늘의 이치 | 골 깊은 빈부격차 | 조선의 가난은 통치의 결과였다
조선의 가난을 다시 본다.
針·羊·車 바늘(針) | 바늘은 귀한 선물이었다. | 하찮지만 기술의 집약체(集約體) | 중국은 기술도 상술도 첨단이었다. | 예나 지금이나 바늘은 Made in China, | 정말 조선은 바늘조차도 못 만들었을까.
양(羊) | 왜 하필 양인가 | 약에 쓰려 해도 구하기 힘든 양 | 어찌하여 이 땅에는 양이 -
수레(車) | 조선에 수레는 정말 필요한 것이었다. | 아무려면 조선에 수레가 없었겠나. | 제일 큰 수레 - 대거 | 세종이 만들었지만 - 강주 | 세조도 밀어붙였지만 끝내 - 편차 | 거량·차량 | 윤거 | 거자 | 화성성역의궤의 수레들 | 수레가 다닐 수 있는 도로가 애초부터 없었나. | 백성에게 도로란 그저 비어 있는 땅이었다. | 도대체 조선은 그동안 뭘 했나? | 안타까운 고언 - 바늘·양·수레 | 조선의 가난을 다시 보자.
컬러풀 조선[Colorful Joseon], 그 속으로
성(盛)하면 금(禁)한다 | 요사스러운 집 - 목요(木妖) | 가대규제 | 가사제한 | 부와 권의의 상징, 기와집 | 무시로 벌어지는 영조·와요 | 그 울창하던 숲은 어디로 갔을까 | 소나무만은 지키자, 송금 | 붉어서 단, 푸르러서 청 | 연석·숙석 | 천인들조차 수입 벽지를 | 짜임의 미학, 문살무늬 | 능화지 정도는 약과지, 사호창 | 화려함의 독점, 화공·초공 | 겹처마와 초각능화지보다 한술 더 뜬 사호창 | 화려함의 독점, 화공·초공 | 겹처마와 초각
반(飯)과 찬(饌) | 이상은 검소하고 분수에 맞게 | 이상과 현실은 늘 다른 법 | 쌀 - 빛깔도, 이름도, 맛도 제각각 | 밥의 종류가 무려 90여종 | 임금도 마음대로 못한 갱미 | 정곡과 잡곡 | 음식지유사치 | 소고기는 못 참지 | 하루에 도살되는 소가 1,000마리 | 어찌 저절로 죽은 소가 이리 많았는고 | 양반들의 소고기 파티 난로회 | 서민들, 좀 섭하지만 국밥으로 탕으로 | 소고기만 고기냐 | 요즘과는 달랐던 돼지고기의 위상 | 500년 내내 금하고, 내내 마시고 | 술 먹기, 술로 먹고 살기 | 동네마다 술 빚는 집이 2, 3개 | 집마다의 온갖 비법이 | 문헌에 남겨진 술 종류만 600종 | 상차림, 소찬과 성찬 | 임금은 소선을 실천하는데
장례(葬禮) · 상례(喪禮) | 죽은 자를 위한 산자의 파산 | 장례 ?음식 장만과 접대 | 국법으로 금한 음식, 유밀과 | 곡소리 전문가, 곡비 | 상여군, 천인이라도 이날만은 상전 | 지관이 골라주고, 매장꾼이 묻어주고 | 죽어서도 차별받을 수는 없다, 관곽 | 임금의 유언에야 자리 잡힌 회격 | 장인의 조각 작품, 석물 | 이 많은 비용을 어떻게 감당했을까 국가라도 나서서 장례를 돕다, 구황
혼례(婚禮) | 재물은 오랑캐들이나 논하는 것 | 혼수만 중인 열 집 재산 | 혼수는 곧 금제 목록 | 혼수는 수입품이어야 제격 | 혼인은 온갖 사치의 파티 | 혼인 준비는 렌털 서비스로 | 지킬 것 많은 시집가는 날 | 시집가는 날은 나도 최상류층 | 박하면 뒷담화가 두렵다, 후사 | 수모, 이모저모 다 알아서 척척 | 온 나라의 근심 덩어리 | 시집못간 처녀가 한을 품으면 | 측은지심 | 6~7억! 어마어마한 국혼
복식금제(服飾禁制) | 사치의 길고 긴 역사 | 조선의 경제적 풍요, 그리고 사치
사(紗)·라(羅)·능(綾)·단(緞) | 억사숭검 | 사치의 극치, 사라능단 | 문금을 문금하다 | 큰 돈 되는 백사 | 조선 비단은 왜 힘을 못 썼을까 | 밀무역, 사행무역의 단골 메뉴
모피(毛皮) | 모피는 이렇게 쓰였다 | 중국에의 조공과 사신들의 강탈 | 아다개 | 갓옷 | 이엄·휘항) | 초피, 모두를 설레게 하던 | 핫한 아이템 초피, 대체 왜 | 나라살림거덜 날라 | 야인에게 농경을 일깨워주다 | 적들을 강적으로 만들다 | 예전에는 팔러 오던 것 | 아무나 쓴 아무나 못 쓰는 것 | 족제비 털가죽 서피
가채(加?) | 이름부터 알아보자 | 왜 남자들이 난리였을까 | 누군가 올리려면 누군간 잘라야 한다 | 집안이 거덜 나도 혼례 때는 | 가체 값이나 금값이나 | 머리카락 구하기부터 판매까지 | 실패가 예정된 대안들, 족두리·화관 | 왜 기를 쓰고 금지시키려 했나 | 가체신금사목
염색(染色) | 복색의 금제 | 자염 | 홍염 | 심염과 중염, 복합염 | 쪽염과 아청 | 쪽염과 심염초록
승(升) | 왔다갔다 좀처럼 종잡을 수 없는 | 초립의 죽수
요사스러운 옷 - 복요(服妖) | 무엇을 복요라 하는가 | 복요는 곧 사치이자 경고이다 | 시체와 사치 | 조선의 대표적인 복요 | 여착남장, 장의 | 또 다른 여착남장, 원삼 | 같지만 다른 남녀 단령 | 점점 짧아지고, 점점 야해지고 | 시체를 선도한 기녀 | 창의, 주의도 복요 | 남성들의 귀고리를 허하다.
조선 남자가 꾸민다는 것 | 화혜 | 안장 | 금은주옥 | 풍잠·관자 | 갓 | 갓끈 | 부채
조선의 부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농민(農民) | 조선에게 농업이란 | 땅, 그 의미를 어찌 말로 - | 세금 걷을 권리를 내리노라 - 과전법 | 과전법의 폐지와 직전법 | 토지 소유의 기회가 열리다. | 농업기술의 발달 | 옛것이 좋은 것이여 - 직파법 | 노동은 절반, 소출은 두 배 - 모내기 | 이앙법의 빛과 그림자 힘없는 땅에 시비를 걸다 - 시비 | 시비의 힘 | 물이란 놈을 잡아 가두라 - 보의 확대 | 한 뼘의 땅이라도 더 | 서민, 나도 지주다. | 농민, 시장과 돈에 눈뜨다. - 상품 작물 | 소작료, 절반에서 삼분의 일로 | 노농의 노하우를 공유하라 - 농서 발간 | 더 넓게, 더 많이 - 광작 | 조선에서 부농 - 가능했다, 그리고 존재했다.
공장(工匠) | 있기는 했나 - 조선의 공업 | 공장을 알아야 공업이 보인다. | 관공장 | 사공장 | 비상연락망 - 공장안 | 공장의 삶을 짓누른 삼중고 | 피하면 경친다 - 관역 | 일해도 내고, 안 해도 내고 - 장세 | 이놈저놈 막 부려먹다 - 사역 | 기술은 천한 것, 기술이 있으면 천한 무리 | 어떻게 되고, 어떻게 살았나. | 공장에 대한 처우 | 그만, 다시 원위치. | 달갑잖은 특혜. 까닥하면 70세 정년 | 무엇을 위해 일했나. | 헐값의 최상품을, 조공 | 설상가상, 세폐까지 | 강요된 충성 - 공납·진상 | 모르면 배워서라도, 없으면 사서라도 | 관공장 체제의 붕괴 | 대동법이 몰고 온 변화 | 공장들의 새로운 파트너, 공인 | 또 다른 파트너, 선대제 | 족쇄가 풀리다 - 납포장 | 공장을 위한, 공장에 의한, 공장의 공장 - 점촌 | 조선에게 공장이란, 공장에게 조선이란
상인(商人) | 그럼에도 왜 상인인가 | 같은 말, 다른 뜻 - 상과 고 | 장사로 장사를 억제한다. - 시전 | 특혜 속에 거듭되는 확장 | 옥상옥 - 육의전 | 완장까지 채워주다. - 금란전권 | 완장, 압수하다. - 신해통공 | 사상의 등장 | 민심을 이기는 권력은 없다. - 장시의 전성시대 | 그녀들의 반란, 거리로 나서다 | 무역 | 믿가는 줄 알면서 받아주는 - 사행 무역 | 고된 연행 끝에 온 낙 - 연행무역 | 결국은 사무역의 장이 된 - 개시| 불법 같기도 하고 - 후시 | 차라리 눈감아 주는 편이 - 사무역 | 상위 1%, 그들만을 위하여 - 잠무 | 국경 저 너머에서 황금빛이 - 잠상 | 까딱하면 교수형 - 잠매 | 걸리지만 않으면 대박 - 잠재 | 내 것 네 것 따로 없다, 손쉬운 도적질 - 잠채 | 누가 조선의 상인인가
조선이 정말 가난했다고
부패를 방지 노력, 조선 519년을 지탱했다 | 연례적 보릿고개는 일제강점기부터 | 곳간에서 인심난다 | 세계 최고의 곡물 비축량 | 이밥에 고깃국은 조선시대 일상이었다 | 인구는 2.5배 증가, 경작지는 4배 증가 | 조선인 1인당 쇠고기 섭취량 40kg | 조선은 정말 가난했을까.
이 책의 제목은 ‘조선이 가난했다구?’로 의문문이고, 영문 부제는 ‘A Journey into Colorful Joseon’이다. 이 책의 얼개는 제목과 부제대로 조선이 정말 가난했는지에 대한 의문으로 시작해서 조선이 일반적인 인식과는 다르게 가난하지만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과정이다. 이 책은 5개의 장과 에필로그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장, 타인이 본 조선의 가난.
조선이 망국으로 치닫던 시기에 들어왔던 이방인들에게는 조선은 신비하기도, 미개하기도 한 동양에서도 변방으로 비쳐졌다. 이들이 기록한 조선, 조선인은 온갖 악취와 불결함이 가득한 거리를 메운 ‘온통’ ‘하얀 옷’의 무지성의 집단이었다. 같은 시기 작지만 큰 의미의 전장에서의 조선인은 그들의 눈에도 달리 비쳐졌다. 이방인들의 오만한 시각의 조선인이 진정 조선인인가를 물었다.
두 번째 장, 조선이 본 조선의 가난
정조의 어느 하루를 기록한 두 개의 기사는 마치 조선 전체의 요약과 같다. 기사 하나는 유민이 되어 떠도는 백성을 만난 것, 다른 하나는 비참한 백성들의 움막과 삶을 보게 된 것이다. 임금이 그들에게 고향으로 돌아 갈 수 있도록 한 짧은 말 속에 담겨있는 양민들과 천인들의 가난과 고단함을, 임금이 백성들의 비참함을 해결하기 위한 조치와 그 결과를 통해 정조의 부를 꿈꾸고 이루어 가는 과정을 들여다보았다.
세 번째 장, 조선의 가난을 다시 본다.
실학자들은 바늘조차 만들지 못해 중국에서 수입해야 했고, 장점이 많은 양을 사육하지 않는 , 먹지 않는 소와 같으며, 7, 8명의 인력과 맘먹는 수단인 수레를 사용하지 않는 조선의 가난과 낙후된 산업으로 조선의 후진성을 지적하였다. 실학자들의 이러한 주장은 같은 시기 조선의 역사와 상황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에서 나온 것이라기에는 무리가 있음을 밝혔다. 이는 우리가 조선의 가난을 논하는 것과 그들의 주장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네 번째 장, 컬러풀 조선 [Colorful Joseon], 그 속으로
조선이 가난했는지를 조선 백성들의 의(衣), 식(食), 주(住), 상·장례, 시체(時體) 등을 통해 확인하고자 하였고, 또한 이를 『조선왕조실록』의 기사에서 찾고자 하였다. 유난히 검소함이 강조되었던 조선에서 부와 부에 따르는 소비는 곧 사치(奢侈)로 금기시하였기에 인용된 기사들은 사치에 대한 치자(治者)들의 금제·금령 기록이다. 실록에 기록되었다는 것은 이미 소비는 사치가 되었고 손쓰지 않으면 안 되는 단계로 당장이라도 금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안들이었을 것이다. 조선의 부는 늘 그곳에 놓여 있었다
다섯 번째 장, 그들은 어떻게 부를 축적하였을까.
컬러풀 조선은 경제력, 즉 부(富)가 수반되어야 가능하다. 부의 축적을 직업별로 기술하였다. 조선에서는 사농공상(士農工商)으로 백성들의 신분과 직업을 나누었다. 이 중 ‘사’는 제외하고 농민, 장인, 상인들이 과연 컬러풀 조선을 이룰 수 있을 만큼의 부의 축적이 가능했었는지에 대해 고찰하였다.
조선은 정말 가난했을까? 조선은 정말 가난하기만 했을까? 결론은 ‘꼭’ 그렇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아직 ‘조선은 정말 가난하지 않았다’고 하기에는 이 책 하나로는 완벽하게 입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어떤 경로를 통해서건 알고 있었던 조선과 ‘Journey’를 통해 본 조선은 달랐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