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거란전쟁] 상&하권 (큰글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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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자도서] 고려거란전쟁 - 상&하- 고려의 영웅들
각권 : 45,000원
상권 : 492쪽
하권 : 448쪽
고려 역사에서 잊혔던 영웅들과 그들의 위업을 다시 한번 기리는 책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2023년 11월부터 방영되는 KBS 대하사극 <고려거란전쟁>의 원작으로 전작 <고려거란전기:겨울에 내리는 단비1,2>를 대폭 개정한 것이며, 고려와 거란 사이의 긴 전쟁을 유일하게 다루는 정통 ‘역사소설’이다.
작가 길승수는 고려거란전쟁을 다룬 에 대본 작가와 자문으로 참여했으며, KBS 대하사극 <고려거란전쟁>에도 원작자와 자문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번 작품은 ‘1010년 거란의 2차 침공’을 다루고 있으며 ‘1019년 구주대첩’으로 이어지는 그 후속 이야기도 곧 선보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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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제1장 모루와 망치
드넓은 바다를 보다! / 한기(韓杞)의 접근 / 포진(布陣)하는 거란군 / 거란군의 진군(進軍) / 흥위위 군의 노래 / 교두보(橋頭堡) / 공방전(攻防戰) / 통군사 최사위의 작전계획 / 최사위의 공격군에 합류하는 구주군 / 고려군의 우회기습 / 모루와 망치 / 출진한 구주군과 항마군 / 용만(龍灣) 남쪽의 구주 악귀군 / 도령이 왔다! / 용만(龍灣)에서 / 용만의 김숙흥 / 흥화진 남쪽에서 / 기회를 잡은 거란군 / 구주로 돌아간 최사위
제2장 삼수채 회전
강조의 검차진 / 삼수채 앞 / 거란군 작전회의 / 삼수채 회전(會戰)의 시작 / 검차(劍車) / 거란군의 대공세 / 검차진 안에 들어온 거란군 / 우피실군(右皮室軍) / 검차진(劍車陣)! / 노정(盧頲)과 백갑대(白甲隊) / 서숭(徐崧)과 노제(盧濟) / 완항령(緩項嶺) / 강조(康兆)
제3장 지키는 자와 떠나는 자
통주성 / 흥위위 초군, 흥화진을 나서다! / 흥위위 초군과 구주군 / 지키는 자와 떠나는 자
제4장 서경 공방전
애수진(隘守鎭)의 국밥 / 안주 함락 후 서경 / 노의와 유경 / 서경을 나가는 지채문 / 서경의 경치를 설명하는 조원 / 서경 안과 밖 / 지채문의 출격 / 법언(法言) / 지채문의 재출격 / 마탄에서 / 탁사정의 계획 / 야습(夜襲) / 동명왕(東明王)의 신사(神祠) / 동명왕신(東明王神)의 굿 / 서경성 공방전의 시작 / 거란군의 총공격 / 총공격 후 거란진영 / 대도수(大道秀) / 토성을 쌓는 거란군 / 서경의 항마갱(降魔坑) / 조원과 강민첨의 대화 / 능동방어전술(能動防禦戰術)
다시금 서로 간의 치열한 사격전이 펼쳐졌다. 한쪽은 결사적으로 성벽으로 붙으려고 했고 다른 한쪽은 필사적으로 붙지 못하게 막고 있었다. 잠시 후, 고려군은 항아리들을 성벽에 붙은 거란군의 공성차 위로 떨어뜨렸다. 고려군이 던진 항아리들은 쇳물을 담은 항아리였다. 펄펄 끓는 쇳물이 튀자, 화공에 대비하기 위해 수레 위에 물을 뿌려 놓
은 것도 소용이 없었다. 쇳물 항아리에 정확히 맞은 수레는 통째로 타올랐고, 쇳물이 조금이라도 튄 수레는 쇳물이 닿은 부분부터 연기를 내며 타들어갔다. (…)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수레가 아니었다. 사람이었다. 뜨거운 쇳물이 거란의 철갑 보병들 몸에 닿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극심한 고통에 몸부림쳤다. 차라리 바로 죽었으면 좋으련만 쇳물이 철갑옷과 살에 달라붙어서 천천히 피부와 근육을 태웠다. 쇳물이 묻은 철갑보병 수십 명은 고통스럽게 울부짖었다. (…) 후방에서 접근하고 있던 다른 기계들도 고려군의 화공에 맥을 못 추고 있었다. 낭군군상온 해오야가 보니, 시도된 모든 공격이 막히고 있었다. 더구나 부상자가 점점 많아지고 있는 데다가 너무 지쳐있었다. 해오야는 급히 왕계충에게 가서 말했다. “일단 한번 정비하는 것이 좋을 듯싶습니다.” 후퇴하자는 표현을 돌려 말한 것이었다. 왕계충이 전황을 한번 살핀 후, 천천히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일단 강까지 후퇴시키도록 하시오.” (…) “사망자는 오백여 명이고 부상자가 많습니다. 더는 전투에 참여할 수 없어 후송되어야 하는 인원만 천여 명 정도입니다. 기구는 공성탑 두 대, 운제 세 대, 소차 일곱 대를 잃었고, 성벽에 가까이 갔던 공성차를 많이 잃었습니다. 삼십여 대쯤 잃은 것 같습니다.” 소배압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역시 산성(山城)이라 급하게 공격하기 어렵군.”_<공방전> 중에서
양규는 이현운의 겉옷을 벗기게 하고 머리에 쓴 두건 역시 벗겨 민상투가 드러나게 했다. 이현운은 포박당한 채로 대장대로 끌려갔다. 차가운 겨울바람에 몸을 떨면서 어깨를 움츠리고 걸었다. 양규는 대장대에서 경계병을 제외한 흥화진의 전 병력을 소집하고 군사들에게 말했다. “나와 여러분의 처음 임무는 이곳 흥화진을 지켜내는 일이었다. 우리는 적 사십만 대군을 맞아 용맹하게 성을 지켜냈다. 우리의 첫 임무를 훌륭하게 완수한 것이다. 우리의 용맹은 고금에 찾아보기가 힘들 것이다. 나는 여러분들이 자랑스럽다.” 군사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와! 와! 와!” “고려 만세! 성상폐하 만세!” 군사들의 환호가 가라앉자 양규가 다시 말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라를 지켜내야 할 우리의 주력군은 적에게 패하고 말았다. 적들은 개경까지 혹은 그 이상 내려갈 것이다. 아니 어쩌면 우리의 국토에 눌러앉으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모든 군사가 탄식을 쏟아내었다. (…) 양규가 시름에 잠긴 군사들을 보며 다시 말했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또 다른 임무가 주어졌다. 이번 임무는 첫 임무보다 훨씬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이번에는 단순히 성을 방어하는 것이 아니라 밖의 북적들을 공격하여 그들을 우리의 땅에서 몰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군사들이 비장한 표정으로 양규를 응시했다. “흥위위 초군은 나와 같이 성을 나아가 흩어진 고려군들을 규합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새롭게 시작하는 첫 임무이다. 북적들을 우리의 영토에서 몰아낼 때까지 절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군령이다. 내가 앞장설 것이다. 그대들은 용사의 자부심으로 나라와 가족들, 친우들을 북적들로부터 반드시 구원해주길 바란다.” 양규의 말이 끝나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_<흥위위 초군 흥화진을 나서다!> 중에서
신료들은 약간 놀랐다. 강감찬의 계책에 놀란 것이 아니라 왕순의 태도 때문이었다. 작년에 즉위 후, 어린 성상은 항상 조심하였으며 무슨 일을 할 때마다 우선하여 원로대신들에게 자문했다. 스스로 의견을 먼저 내세우는 법이 없었으며 항상 원로대신들의 말을 따랐다. 좋게 말하면 조심과 신중이었고, 나쁘게 말하면 소심하고 우유부단이었으며, 자기 의견을 주장할 정도의 강단이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성상의 태도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원로대신의 의견을 묵살하고 강단 있게 결정을 내리고 있었다. 강감찬은 고개를 들어 젊은 성상을 보았다. (…) 천추태후는 이 젊은 성상을 크게 꺼리어 강제로 출가시키고 나중에는 죽이려고 혈안이 되었었다. 그 위기들을 무사히 넘기고 결국 고려의 임금이 된 것이었다. 강감찬은 이 젊은 성상이 즉위한 후, 절대로 천추태후를 용서하지 않으리라고 예상했다. 자신을 죽이려던 사람을 어떻게 용서하겠는가! 어떤 방식으로라도 천추태후에게 보복하리라고 생각했는데 이 젊은 성상은 전혀 그렇게 하지 않았다. (…) 젊은 성상은 정말 성정이 좋아 보였지만 어쩌면 나약하게도 보이는 그런 사람이었다. (…) 강감찬은 유약해 보이는 성상이 자신에게 호응해 주리라고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즉위한 이래로 지금까지 성상의 태도로 보았을 때 그러지 않을 가능성이 더 컸다. 아니 그러지 못할 가능성이 더 컸다. 그런데 성상은 원로대신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말에 호응하고 있었다. 어쩌면 젊은 성상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굳건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지도 모른다._<삼수채 패전 후-개경> 중에서
“신은 구차하게 항복 따위를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요지는 ‘서서히 이길 방법을 찾자’는 것입니다.” 왕순을 비롯하여 모든 신하가 놀라서 강감찬을 바라보았다. “양규는 흥화진에서 수천의 병력으로 수십만의 적을 받아내었습니다. 통주성의 이원구도 눈앞에서 아군이 패하는 것을 보면서도 통주를 지켜내었습니다. 우리가 이름도 몰랐던 구주의 김숙흥이라는 별장은 겨우 수십 기(騎)로 위험에 빠진 아군을 구해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고려를 가장 책임져야 할 저를 비롯한 여러 대신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강감찬은 대갈일성(大喝一聲)을 토해내며 주위의 신료들을 둘러보았다. (…) 왕순이 강감찬에게 말했다. 그 눈빛은 빛나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천천히 이길 수 있겠소?” “적에게 가서 친조하면 지금의 위협을 벗어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런 의미에서 채충순의 계책은 훌륭합니다. 친조하려고 한다면 마땅히 채충순의 계책을 써야 합니다. 그러나 거란에 친조하면 어떤 일이 발생하겠습니까? 거란이 우리 조정을 그냥 내버려둔다고 하더라도, 거란의 간섭을 받아서 조정은 온통 거란을 추종하는 무리로 뒤덮일 것입니다. 거기서 어떤 것을 꿈꾸겠습니까? 우리가 무슨 대비를 할 수 있겠습니까? 혹은 우리가 남아 있을까요? 우리는 거란이 망할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한 백 년쯤, 혹은 이백 년, 혹은 오백 년 정도는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거란은 언젠가 반드시 망할 것입니다.” (…) “친조를 하시든, 죽도록 싸우시든, 성상께서 결정하십시오! 신료들은 성상의 결정에 따를 것입니다. 친조를 하시면 거란 진중으로 호종할 것이
며, 죽도록 싸우시겠다면 목숨을 걸고 역시 거기에 따를 것입니다.” 왕순이 어깨를 펴며 말했다. “친조하려면 어떻게 하는지 알았으니, 죽도록 싸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_<서서히 이길 방법> 중에서
김숙흥은 양규의 말을 들으며 주변을 살폈다. 양쪽 길은 모두 막혔고 거란군은 단단하게 포위망을 형성하고 있었다. 여기서 빠져나갈 길은 없었다. 그렇다면 길은 오직 한 가지뿐이었다. 김숙흥이 고개를 들고 힘주어 말했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하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말하며 창을 들어 어딘가를 가리켰다. 양규와 제장들이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거기에는 거란주의 깃발이 있었다. 양규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김숙흥이 이어서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거란주의 깃발이 코앞에 있습니다. 우리는 거란주를 잡으러 진격하는 것입니다.” 진격해서 거란주를 잡는 것은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가만히 수동적으로 있는 것은 더욱 좋지 않다. 시도한다면 만에 하나라도 어떤 기회를 잡을 수 있으나, 가만히 있으면 그런 가능성은 애당초 없는 것이다. 양규가 우렁찬 목소리로 군사들에게 말했다. “우리는 북적들에 맞서 누차에 걸쳐 믿을 수 없는 승리를 거두었다. 북적들도 이제는 우리나라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이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모두 그대들의 공이다! 나는 이전에 이런 훌륭한 군사들에 대해서 들은 적이 없었고 본 적은 더욱이 없다. 그대들과 전우가 된 것이 내 생애 가장 큰 영광이다!” 이렇게 말하고 군사들을 향해 고개를 깊이 숙여 목례했다. 모두 비장한 표정을 짓는데 군사들 중 누군가가 큰 목소리로 말했다. “각하! 우리는 모두 ‘벼락같이’ 내달릴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하명만 하십시오!” 양규가 보니 이관이었다. 이관은 투구를 쓰지 않은 채였고 머리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아마도 적 병장기에 머리 부분을 얻어맞은 듯했다. 이관의 수하들도 대부분 크고 작은 부상을 입은 것 같았다. 양규는 그중 한 젊은 군사와 눈이 마주쳤는데 그의 이름이 바로 생각나지는 않았다. 그의 왼쪽 가슴에 붙어 있는 명찰을 보자, 그의 이름이 ‘선명’이라는 것이 떠올랐다. 양규는 선명에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흑낭대 낭장 원태가 병장기를 높이 들며 외쳤다. “우리는 거란주를 잡으러 간다! 내가 앞장설 것이다!” 원태의 외침에 흥위위 초군들이 병장기를 높이 들며 우렁차게 외쳤다. “흥위위가 간다!” 흥위위 초군들이 기세를 올리자 김숙흥이 구주군에게 말했다. “구주군, 나의 형제들이여! 우리 구주는 과거에 그랬듯이 오늘 또 다른 전설을 쓸 것이다. 우리는 지금 거란주를 잡는다!” 구주군 역시 힘차게 외쳤다. “구주~~~~~!” 구주군이 함성을 지르자, 이보량이 구주 도령기를 스스로 높이 들었다. 양규가 모두에게 명했다. “우리가 거란주를 잡아 이 전쟁을 끝낼 것이다! 진격하라!” 고려군들은 이제는 기다려서 방어하지 않고 전진했다. 거란군들을 밀어붙이면서 조금씩, 조금씩 계속 나아갔다. 오직 거란주의 깃발을 목표로!_<벼락같이> 중에서 접기
거란군들은 물러갔으나 이제 시작이었다. 이후 거란군의 침공이 십 년 이상 계속되기 때문이다. 양규와 김숙흥은 이 전쟁을 스스로 끝내지는 못했지만, 거란에 막대한 피해를 줘서 거란의 그 후 침공을 늦추게 된다. 그 시간 동안 고려는 내부적 힘을 기를 수 있었다. 팔 년 후, 소배압이 다시 한번 개경까지 밀고 들어오나…. 양규는 원군도 없이 한 달 사이에 모두 일곱 번을 싸워 많은 적군의 목을 베었고, 포로가 되었던 남녀 삼만여 명을 되찾았다. 그 전공으로 양규에게 공부상서(工部尙書)가 추증되었고, 아들 양대춘(楊帶春)은 교서랑(校書郞)에 임명되었다. 현종은 손수 다음과 같은 교서를 지어 양규의 처 홍씨(洪氏)에게 내려주었다. “그대 남편은 장수로서의 지략을 갖추었고 또한 올바른 정치의 방법을 알고 있었다. 항상 올곧은 절개를 지니고 밤낮으로 직무에 충실하였다. 그리하여 끝까지 나라에 충성을 바쳤으니, 그 충정은 비할 데가 없는 것이다. 북쪽 국경에서 전쟁이 일어났을 때, 용맹을 떨치면서 군사들을 지휘하니, 그 위세는 돌과 화살을 압도했다. 적을 추격하여 생포하고 그 힘으로 국토를 안정시켰다. 한 번 칼을 뽑으면 만 명의 적군들이 다투어 달아나고, 강궁을 당기면 모든 적이 항복했다. 여러 차례 승리를 거두어 나라를 구했으나 불행히도 전사하고 말았다. 그 빼어난 전공을 항상 기억하여 이미 관직을 높였으나 다시 보답할 생각이 간절하다. 따라서 양규의 처인 그대에게 해마다 벼와 곡식 일백 석을 내려줄 것이다.” 김숙흥(金叔興)에게는 장군을 추증했으며, 또 그의 모친 이씨(李氏)에게 교서를 내렸다. 교서의 글은 다음과 같다. “추증한 장군 김숙흥은 변방의 성을 지킬 때부터 적과 용감히 싸워 파죽지세의 승리로 전공을 세웠으나, 적군이 쏜 화살에 맞아 끝내 전사하고 말았다. 그 공을 기념하여 마땅히 후한 상을 주어야 할 것이다. 이에 그의 모친에게 매년 곡식 오십 석을 종신토록 주노라.” 현종 10년(1019)에는 양규와 김숙흥에게 공신녹권(功臣錄券)이 내려지고, 15년(1024)에 다시 두 사람에게 삼한후벽상공신(三韓後壁上功臣)의 칭호를 내려주었다._<에필로그> 중에서
공영방송 50주년 특별기획 대하사극 <고려거란전쟁>의 원작소설 출간
역사를 넘어서 전설로!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영웅 서사극을 만나다!
고려 역사에서 잊혔던 영웅들과 그들의 위업을 다시 한번 기리는 책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2023년 11월부터 방영되는 KBS 대하사극 <고려거란전쟁>의 원작으로 전작 <고려거란전기:겨울에 내리는 단비1,2>를 대폭 개정한 것이며, 고려와 거란 사이의 긴 전쟁을 유일하게 다루는 정통 ‘역사소설’이다. 작가 길승수는 고려거란전쟁을 다룬 에 대본 작가와 자문으로 참여했으며, KBS 대하사극 <고려거란전쟁>에도 원작자와 자문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번 작품은 ‘1010년 거란의 2차 침공’을 다루고 있으며 ‘1019년 구주대첩’으로 이어지는 그 후속 이야기도 곧 선보일 예정이다.
10세기 초, 신라가 쇠퇴하며 왕건이 세운 고려가 한반도의 지배 세력으로 떠오른다. <고려거란전쟁: 고려의 영웅들>은 그 시절 고려와 거란의 긴밀한 대립 구도 속에서 벌어진 전란 중, 특히 거란의 두 번째 고려 침공(1010년)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당대 고려를 둘러싼 주변 상황과 주요 사건, 그리고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인물들을 충분한 고증과 연구 끝에 흥미진진한 이야기 안으로 불러냈다는 점, 서희와 강감찬 뒤에 가려졌던 고려의 명장 양규를 재조명하여 이순신 장군에 버금가는 또 한 사람의 명장을 회자하게 했다는 점은 이 소설만이 가진 커다란 매력이다. 또한 이 소설은 양규 외에도 김숙흥, 강감찬, 조원, 강민첨 등 고려의 중요 장수들은 물론 어린 나이로 보위에 오르자마자 전란을 마주한 고려 현종에 대한 살아 숨 쉬는 듯한 묘사를 통해 그들의 고뇌와 충정을 가슴으로 읽게 해준다.
작가 길승수는 조선 후기까지 거의 잊혔던 인물들의 업적과 역사적 사건을 ≪고려사(高麗史)≫, ≪요사(遼史)≫, ≪송사(宋史)≫ 등의 신뢰할 수 있는 사료를 근거로 철저히 연구하고 재구성하여 현대 독자들에게 소개했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당시의 역사적 상황, 전란의 현장, 그리고 인물들의 감정과 고민에 더 깊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주요한 이슈나 사건을 재평가하고 현대적인 관점에서 해석하는 데 특화한 이 책은 “고려 거란 전쟁에 관한 유일무이한 원천 콘텐츠”로서 앞으로 다양한 장르로 개발하는 데 있어서나 학술적 토론, 그리고 일반 독자들의 이해를 넓히는 데에도 큰 몫을 담당할 것이다.
조선에 이순신이 있다면 고려에는 양규가 있다!
작가 길승수의 펜 아래 고려의 숨겨진 영웅들이 다시 태어난다! 세계 전쟁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용맹함과 지략으로 고려를 구한 양규와 그를 따르는 장병들의 가슴 뜨거운 전투를 만난다!!
한때 찬란했던 신라는 그 영광을 잃어가고, 새로운 힘, 왕건에 의해 세워진 고려가 부상한다. 왕건의 꿈, 그리고 그의 북진정책 아래, 고구려의 후예들은 자신들의 영토를 되찾고자 한다. 그러나 북쪽의 거대한 제국 거란은 계속 세력을 불려 나가면서 만리장성을 넘어 ‘연운16주’라는 지금의 중국 북경을 포함하는 지역을 차지하고 제국으로 성장한다. 고려와 거란 사이에 팽팽한 전운이 감돌던 중 993년, 거란의 소손녕이 고려를 침공하는데 이것이 ‘거란의 1차 침공’이다. 고려는 선봉대가 거란군에 패하는 바람에 어려움을 겪지만, 서희의 활약으로 거란군을 막아내고 협상을 통해 압록강 남쪽의 땅인 ‘강동6주’를 개척한다. 그로부터 17년 후 벌어지는 ‘거란의 2차 침공(1010)’을 다룬 것이 바로 소설 ≪고려거란전쟁: 고려의 영웅들≫이다. 당시 고려에서는 강조(康兆)가 고려 왕 목종(穆宗)을 폐위하고 현종(顯宗)을 옹립했는데, 거란 황제 야율융서는 이를 구실로 4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공한다. 고려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게 되나 고려 현종이 강감찬의 건의를 받아들여 항전을 결심하고, 서북면도순검사 양규, 구주별장 김숙흥, 통군녹사 조원, 애수진장 강민첨 등의 활약으로 위기를 벗어나게 된다. 거란의 2차 침공 시 꼭 기억해야 할 인물은 누가 뭐라 해도 서북면도순검사 양규다. 그가 없었다면 고려는 어떻게 되었을까? 사실 양규는 고려시대에 나라를 구한 명장으로 모두에게 기억되었으나 조선이 건국되면서 잊힌 인물이 된다. 양규와 김숙흥이 고작 2천여 명의 병력으로 40만의 거란군을 상대하는 모습이라든지, 양규가 7백 명의 결사대로 이루어낸 곽주탈환작전은 이 소설의 백미이다. 양규를 비롯한 용장들의 분전으로 거란군은 수만 명의 사상자를 내고, 압록강을 건너 퇴각할 때 말과 낙타, 무기를 모두 잃어버리고 빈 몸으로 돌아간다. 사실상 패전과 다름없었다.
양규 외에 김숙흥, 현종, 강감찬, 조원, 강민첨 등도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중심인물이다. 특히, 조원과 강민첨 같은 중하급 관료가 특별한 역할을 한다. 서경(평양) 지휘부가 붕괴될 위기에 놓였을 때 그들은 용감하게 앞장서 전략을 세우고 도시를 방어하는데, 만약 그들이 서경을 방어하지 못했다면 고려는 이후 10년간의 전쟁에서 더 큰 피해를 봤을 것이다. 그들은 이후 계속되는 거란의 침공에서도 빛나는 공로를 세운다. 고려는 천천히 국력을 기르면서 강감찬의 조언대로 “서서히 이길 방법”을 찾게 되고, 이렇게 모인 힘은 9년 후 구주대첩의 승리로 열매를 맺는다.
소설 ≪고려거란전쟁: 고려의 영웅들≫은 작가가 ≪고려사≫, ≪요사≫, ≪송사≫ 등의 역사서를 깊이 파고들며 연구하여 정확하게 재구성한 것으로 오랜 세월 잊혔던 가슴 아픈 전란의 장면을, 그리고 눈시울 붉어지는 역사의 명장면을 소설이라는 그릇에 담아냈다. 항전과 국력의 회복,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한 수많은 영웅의 희생과 노력을 바탕으로 소설은 고려와 거란의 전쟁이라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엄하게 마감하며, 이 시대의 위대한 영웅을 기리는 결말로 마무리된다. 작가는 역사적 사료를 근거로 사실과 픽션을 절묘하게 엮어냄으로써 독자들에게 그 시대의 생생한 현장을 전했는데, 이 점에서 작가의 노고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살아있는 역사 속으로 독자 여러분을 초대한다. 고려의 영웅들과 그들의 눈물겨운 승리를 직접 경험해보자. 이 소설은 단순한 역사 이야기를 넘어 인간의 용기, 희생, 그리고 사랑에 대한 대 서사시라고 해야 할 것이다.
책을 읽기 전에 / 일러두기
제5장 곽주 공방전
큰 바랑 작전 / 통주성으로 / 통주성에서의 작전회의 / 뇌공(雷公) / 다시 통주로 / 노전과 최충 / 곽주탈환작전-첫 번째 / 곽주탈환작전-두 번째 / 곽주탈환작전-세 번째 / 곽주탈환작전-네 번째 / 곽주탈환작전-다섯 번째 / 서경 밖 거란진영
제6장 회오리바람
신녀와 조원의 대화 / 신녀의 회상 / 서경 신사의 회오리바람
제7장 개경에서
나평으로 향하는 지채문 / 나평의 노파 / 나평에서 / 삼수채 패전 후-개경 / 김종현 개경에 오다! / 서서히 이길 방법 / 삼거리에 나타난 거란군 / 바람을 부르는 남자
제8장 나주를 향해
개경을 떠나는 왕순 / 삼각산에서의 회상 / 하공진(河拱辰) / 다시 나주로! / 양성현에서 / 미래의 세 황후 / 여양현에서 / 노령(蘆嶺) 앞에서 / 돌아오는 길
제9장 다시 삼수채에서
얼음이 풀리고 있다! / 회군 시작 / 다시 완항령에서 / 완항령을 넘어 삼수채로 / 녹슬지 않는 칼
제10장 벼락같이
내원성으로 가는 길 / 인내심 / 운명 / 반격 / 다시 서경 남쪽에서 / 배나무 고개에서 / 여리참(余里站)에서 / 쑥밭에서 / 벼락같이 / 압록강으로
에필로그
다시금 서로 간의 치열한 사격전이 펼쳐졌다. 한쪽은 결사적으로 성벽으로 붙으려고 했고 다른 한쪽은 필사적으로 붙지 못하게 막고 있었다. 잠시 후, 고려군은 항아리들을 성벽에 붙은 거란군의 공성차 위로 떨어뜨렸다. 고려군이 던진 항아리들은 쇳물을 담은 항아리였다. 펄펄 끓는 쇳물이 튀자, 화공에 대비하기 위해 수레 위에 물을 뿌려 놓
은 것도 소용이 없었다. 쇳물 항아리에 정확히 맞은 수레는 통째로 타올랐고, 쇳물이 조금이라도 튄 수레는 쇳물이 닿은 부분부터 연기를 내며 타들어갔다. (…)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수레가 아니었다. 사람이었다. 뜨거운 쇳물이 거란의 철갑 보병들 몸에 닿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극심한 고통에 몸부림쳤다. 차라리 바로 죽었으면 좋으련만 쇳물이 철갑옷과 살에 달라붙어서 천천히 피부와 근육을 태웠다. 쇳물이 묻은 철갑보병 수십 명은 고통스럽게 울부짖었다. (…) 후방에서 접근하고 있던 다른 기계들도 고려군의 화공에 맥을 못 추고 있었다. 낭군군상온 해오야가 보니, 시도된 모든 공격이 막히고 있었다. 더구나 부상자가 점점 많아지고 있는 데다가 너무 지쳐있었다. 해오야는 급히 왕계충에게 가서 말했다. “일단 한번 정비하는 것이 좋을 듯싶습니다.” 후퇴하자는 표현을 돌려 말한 것이었다. 왕계충이 전황을 한번 살핀 후, 천천히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일단 강까지 후퇴시키도록 하시오.” (…) “사망자는 오백여 명이고 부상자가 많습니다. 더는 전투에 참여할 수 없어 후송되어야 하는 인원만 천여 명 정도입니다. 기구는 공성탑 두 대, 운제 세 대, 소차 일곱 대를 잃었고, 성벽에 가까이 갔던 공성차를 많이 잃었습니다. 삼십여 대쯤 잃은 것 같습니다.” 소배압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역시 산성(山城)이라 급하게 공격하기 어렵군.”_<공방전> 중에서 접기
양규는 이현운의 겉옷을 벗기게 하고 머리에 쓴 두건 역시 벗겨 민상투가 드러나게 했다. 이현운은 포박당한 채로 대장대로 끌려갔다. 차가운 겨울바람에 몸을 떨면서 어깨를 움츠리고 걸었다. 양규는 대장대에서 경계병을 제외한 흥화진의 전 병력을 소집하고 군사들에게 말했다. “나와 여러분의 처음 임무는 이곳 흥화진을 지켜내는 일이었다. 우리는 적 사십만 대군을 맞아 용맹하게 성을 지켜냈다. 우리의 첫 임무를 훌륭하게 완수한 것이다. 우리의 용맹은 고금에 찾아보기가 힘들 것이다. 나는 여러분들이 자랑스럽다.” 군사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와! 와! 와!” “고려 만세! 성상폐하 만세!” 군사들의 환호가 가라앉자 양규가 다시 말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라를 지켜내야 할 우리의 주력군은 적에게 패하고 말았다. 적들은 개경까지 혹은 그 이상 내려갈 것이다. 아니 어쩌면 우리의 국토에 눌러앉으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모든 군사가 탄식을 쏟아내었다. (…) 양규가 시름에 잠긴 군사들을 보며 다시 말했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또 다른 임무가 주어졌다. 이번 임무는 첫 임무보다 훨씬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이번에는 단순히 성을 방어하는 것이 아니라 밖의 북적들을 공격하여 그들을 우리의 땅에서 몰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군사들이 비장한 표정으로 양규를 응시했다. “흥위위 초군은 나와 같이 성을 나아가 흩어진 고려군들을 규합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새롭게 시작하는 첫 임무이다. 북적들을 우리의 영토에서 몰아낼 때까지 절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군령이다. 내가 앞장설 것이다. 그대들은 용사의 자부심으로 나라와 가족들, 친우들을 북적들로부터 반드시 구원해주길 바란다.” 양규의 말이 끝나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_<흥위위 초군 흥화진을 나서다!> 중에서
신료들은 약간 놀랐다. 강감찬의 계책에 놀란 것이 아니라 왕순의 태도 때문이었다. 작년에 즉위 후, 어린 성상은 항상 조심하였으며 무슨 일을 할 때마다 우선하여 원로대신들에게 자문했다. 스스로 의견을 먼저 내세우는 법이 없었으며 항상 원로대신들의 말을 따랐다. 좋게 말하면 조심과 신중이었고, 나쁘게 말하면 소심하고 우유부단이었으며, 자기 의견을 주장할 정도의 강단이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성상의 태도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원로대신의 의견을 묵살하고 강단 있게 결정을 내리고 있었다. 강감찬은 고개를 들어 젊은 성상을 보았다. (…) 천추태후는 이 젊은 성상을 크게 꺼리어 강제로 출가시키고 나중에는 죽이려고 혈안이 되었었다. 그 위기들을 무사히 넘기고 결국 고려의 임금이 된 것이었다. 강감찬은 이 젊은 성상이 즉위한 후, 절대로 천추태후를 용서하지 않으리라고 예상했다. 자신을 죽이려던 사람을 어떻게 용서하겠는가! 어떤 방식으로라도 천추태후에게 보복하리라고 생각했는데 이 젊은 성상은 전혀 그렇게 하지 않았다. (…) 젊은 성상은 정말 성정이 좋아 보였지만 어쩌면 나약하게도 보이는 그런 사람이었다. (…) 강감찬은 유약해 보이는 성상이 자신에게 호응해 주리라고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즉위한 이래로 지금까지 성상의 태도로 보았을 때 그러지 않을 가능성이 더 컸다. 아니 그러지 못할 가능성이 더 컸다. 그런데 성상은 원로대신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말에 호응하고 있었다. 어쩌면 젊은 성상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굳건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지도 모른다._<삼수채 패전 후-개경> 중에서
“신은 구차하게 항복 따위를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요지는 ‘서서히 이길 방법을 찾자’는 것입니다.” 왕순을 비롯하여 모든 신하가 놀라서 강감찬을 바라보았다. “양규는 흥화진에서 수천의 병력으로 수십만의 적을 받아내었습니다. 통주성의 이원구도 눈앞에서 아군이 패하는 것을 보면서도 통주를 지켜내었습니다. 우리가 이름도 몰랐던 구주의 김숙흥이라는 별장은 겨우 수십 기(騎)로 위험에 빠진 아군을 구해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고려를 가장 책임져야 할 저를 비롯한 여러 대신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강감찬은 대갈일성(大喝一聲)을 토해내며 주위의 신료들을 둘러보았다. (…) 왕순이 강감찬에게 말했다. 그 눈빛은 빛나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천천히 이길 수 있겠소?” “적에게 가서 친조하면 지금의 위협을 벗어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런 의미에서 채충순의 계책은 훌륭합니다. 친조하려고 한다면 마땅히 채충순의 계책을 써야 합니다. 그러나 거란에 친조하면 어떤 일이 발생하겠습니까? 거란이 우리 조정을 그냥 내버려둔다고 하더라도, 거란의 간섭을 받아서 조정은 온통 거란을 추종하는 무리로 뒤덮일 것입니다. 거기서 어떤 것을 꿈꾸겠습니까? 우리가 무슨 대비를 할 수 있겠습니까? 혹은 우리가 남아 있을까요? 우리는 거란이 망할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한 백 년쯤, 혹은 이백 년, 혹은 오백 년 정도는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거란은 언젠가 반드시 망할 것입니다.” (…) “친조를 하시든, 죽도록 싸우시든, 성상께서 결정하십시오! 신료들은 성상의 결정에 따를 것입니다. 친조를 하시면 거란 진중으로 호종할 것이
며, 죽도록 싸우시겠다면 목숨을 걸고 역시 거기에 따를 것입니다.” 왕순이 어깨를 펴며 말했다. “친조하려면 어떻게 하는지 알았으니, 죽도록 싸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_<서서히 이길 방법> 중에서
김숙흥은 양규의 말을 들으며 주변을 살폈다. 양쪽 길은 모두 막혔고 거란군은 단단하게 포위망을 형성하고 있었다. 여기서 빠져나갈 길은 없었다. 그렇다면 길은 오직 한 가지뿐이었다. 김숙흥이 고개를 들고 힘주어 말했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하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말하며 창을 들어 어딘가를 가리켰다. 양규와 제장들이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거기에는 거란주의 깃발이 있었다. 양규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김숙흥이 이어서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거란주의 깃발이 코앞에 있습니다. 우리는 거란주를 잡으러 진격하는 것입니다.” 진격해서 거란주를 잡는 것은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가만히 수동적으로 있는 것은 더욱 좋지 않다. 시도한다면 만에 하나라도 어떤 기회를 잡을 수 있으나, 가만히 있으면 그런 가능성은 애당초 없는 것이다. 양규가 우렁찬 목소리로 군사들에게 말했다. “우리는 북적들에 맞서 누차에 걸쳐 믿을 수 없는 승리를 거두었다. 북적들도 이제는 우리나라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이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모두 그대들의 공이다! 나는 이전에 이런 훌륭한 군사들에 대해서 들은 적이 없었고 본 적은 더욱이 없다. 그대들과 전우가 된 것이 내 생애 가장 큰 영광이다!” 이렇게 말하고 군사들을 향해 고개를 깊이 숙여 목례했다. 모두 비장한 표정을 짓는데 군사들 중 누군가가 큰 목소리로 말했다. “각하! 우리는 모두 ‘벼락같이’ 내달릴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하명만 하십시오!” 양규가 보니 이관이었다. 이관은 투구를 쓰지 않은 채였고 머리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아마도 적 병장기에 머리 부분을 얻어맞은 듯했다. 이관의 수하들도 대부분 크고 작은 부상을 입은 것 같았다. 양규는 그중 한 젊은 군사와 눈이 마주쳤는데 그의 이름이 바로 생각나지는 않았다. 그의 왼쪽 가슴에 붙어 있는 명찰을 보자, 그의 이름이 ‘선명’이라는 것이 떠올랐다. 양규는 선명에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흑낭대 낭장 원태가 병장기를 높이 들며 외쳤다. “우리는 거란주를 잡으러 간다! 내가 앞장설 것이다!” 원태의 외침에 흥위위 초군들이 병장기를 높이 들며 우렁차게 외쳤다. “흥위위가 간다!” 흥위위 초군들이 기세를 올리자 김숙흥이 구주군에게 말했다. “구주군, 나의 형제들이여! 우리 구주는 과거에 그랬듯이 오늘 또 다른 전설을 쓸 것이다. 우리는 지금 거란주를 잡는다!” 구주군 역시 힘차게 외쳤다. “구주~~~~~!” 구주군이 함성을 지르자, 이보량이 구주 도령기를 스스로 높이 들었다. 양규가 모두에게 명했다. “우리가 거란주를 잡아 이 전쟁을 끝낼 것이다! 진격하라!” 고려군들은 이제는 기다려서 방어하지 않고 전진했다. 거란군들을 밀어붙이면서 조금씩, 조금씩 계속 나아갔다. 오직 거란주의 깃발을 목표로!_<벼락같이> 중에서 접기
거란군들은 물러갔으나 이제 시작이었다. 이후 거란군의 침공이 십 년 이상 계속되기 때문이다. 양규와 김숙흥은 이 전쟁을 스스로 끝내지는 못했지만, 거란에 막대한 피해를 줘서 거란의 그 후 침공을 늦추게 된다. 그 시간 동안 고려는 내부적 힘을 기를 수 있었다. 팔 년 후, 소배압이 다시 한번 개경까지 밀고 들어오나…. 양규는 원군도 없이 한 달 사이에 모두 일곱 번을 싸워 많은 적군의 목을 베었고, 포로가 되었던 남녀 삼만여 명을 되찾았다. 그 전공으로 양규에게 공부상서(工部尙書)가 추증되었고, 아들 양대춘(楊帶春)은 교서랑(校書郞)에 임명되었다. 현종은 손수 다음과 같은 교서를 지어 양규의 처 홍씨(洪氏)에게 내려주었다. “그대 남편은 장수로서의 지략을 갖추었고 또한 올바른 정치의 방법을 알고 있었다. 항상 올곧은 절개를 지니고 밤낮으로 직무에 충실하였다. 그리하여 끝까지 나라에 충성을 바쳤으니, 그 충정은 비할 데가 없는 것이다. 북쪽 국경에서 전쟁이 일어났을 때, 용맹을 떨치면서 군사들을 지휘하니, 그 위세는 돌과 화살을 압도했다. 적을 추격하여 생포하고 그 힘으로 국토를 안정시켰다. 한 번 칼을 뽑으면 만 명의 적군들이 다투어 달아나고, 강궁을 당기면 모든 적이 항복했다. 여러 차례 승리를 거두어 나라를 구했으나 불행히도 전사하고 말았다. 그 빼어난 전공을 항상 기억하여 이미 관직을 높였으나 다시 보답할 생각이 간절하다. 따라서 양규의 처인 그대에게 해마다 벼와 곡식 일백 석을 내려줄 것이다.” 김숙흥(金叔興)에게는 장군을 추증했으며, 또 그의 모친 이씨(李氏)에게 교서를 내렸다. 교서의 글은 다음과 같다. “추증한 장군 김숙흥은 변방의 성을 지킬 때부터 적과 용감히 싸워 파죽지세의 승리로 전공을 세웠으나, 적군이 쏜 화살에 맞아 끝내 전사하고 말았다. 그 공을 기념하여 마땅히 후한 상을 주어야 할 것이다. 이에 그의 모친에게 매년 곡식 오십 석을 종신토록 주노라.” 현종 10년(1019)에는 양규와 김숙흥에게 공신녹권(功臣錄券)이 내려지고, 15년(1024)에 다시 두 사람에게 삼한후벽상공신(三韓後壁上功臣)의 칭호를 내려주었다._<에필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