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인 이야기
몇 년전 이맘때 이야기 입니다.
새벽부터 비가 퍼붓더니 비행기 몇편 결항되고, 초조하게 기다리다 겨우 김포공항으로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오전 9시.
10시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부산에서 올라오는 길이었죠.
급한 마음에 택시를 탔습니다만 폭우에 올림픽대로가 막히니 괜히 택시를 탔다는 마음도 들고 속이 탔습니다.
시간은 흘러가고 차는 기어가고… 답답해 하는 제가 안되 보였는지 기사분이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80년 초, 서울에 사는 마흔 초반의 김여인은 택시기사인 남편과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을 둔 평범한 주부였습니다.
일반주택에 세를 들어살고 있었는데, 주인집엔 맞벌이 하는 부부와 군대 다녀온 아들이 하나 있었습니다. 오전에 신랑이 일하러 가고 난 후 복학하기 전까지 집에서 딩굴거리던 주인집 아들과 마루에서 화투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젊은 총각과 화투를 치며 적당히 야한 농담을 주고 받던 중 삘받은 총각이 김여인을 덮쳤고, 안되~ 하면서도 그만 일을 치르고 말았습니다.
그 후, 남편과 아들이 나가고 나면 두 사람은 뜨거븐 육정을 나누곤 했는데, 하필이면 몸이안좋아 조퇴하고 온 아들이 그만 현장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차마 그 얘기를 못했는지 그날은 그저 그렇게 넘어가나 했습니다만 다음날 김여인은 도저히 아들을 볼 낯이 없어 집을 나오고 말았습니다.
여기 저기 식당을 전전하며 생활을 하던 중 남편이 찾아오게 되고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남편은 이미 아들에게 들어 알고 있었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한 상태였습니다.
김여인은 자신을 용서해준 고마운 남편에게 눈물을 흘리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행복한 가정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습니다. 아들이 용서를 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가출을 하게 된 김여인.
식당을 전전하며 하루하루를 보내지만 희망이 없는 삶이었습니다.
김여인은 아들 앞으로 보험을 들고 어느날 아침 달리는 버스앞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아들의 대학 등록금을 보태기 위함이고 죽어서라도 아들로부터 용서를 받고 싶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다행이도 타이어가 김여인의 다리위를 지나가는 것으로 그쳐 죽음을 면했고, 보험으로 병원비를 마무리하게 될 즈음 가해자로서 미안한 마음에 버스기사는 김여인의 병실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미안하다고 하는 버스기사에게 눈물을 흘리며 그간의 이야기를 하는 김여인에게 그 사고로 인해 버스회사를 그만두게된 그는 그러나 차마 욕을 할 수도 없었습니다.
화가 나지만 도무지 욕이 나오지 않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그 버스의 기사가 지금의 택시 기사분이었던 것입니다.
이야기에 빠져 듣다보니 어느덧 시간이 흘러 사무실 근처까지 오게 되고 다행히 늦지 않게 회의에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거참, 소설같은 이야기였죠.
그 여자분 아들과 남편에게 용서를 받고 행복하게 살고 계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