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정들의 오너 시즌 2 - 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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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부>
#1특이 체질.
“이...이게 도대체..”
준은 자신이 하고도 놀랍다는 듯이 김노인을 바라보았다.장내는 이내 웅성거리기 시작했고,이윽고 유나의 시선이 마유미쪽으로 훽하고 돌아갔다.마유미는 그저 난처한 표정으로 유나의 시선을 피할 뿐이었다.
‘설마..그때 그날 때문인가?’
준은 곰곰히 생각을 더듬었다.얼마전에 마유미와 리미와 같이 침대에 있을때에 마유미의 기운덕에 온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던 적이 있었다.그리고..
‘이거 마치..예전 유나의 한기를 받아들인 그 기분인데.’
완벽하다고는 할수 없지만,준은 유나의 한기를 어느정도 다스를수 있었다.아직까지는 음파공에 완벽히 그것을 녹아들게 하는것은 불가능했지만,어느정도 끌어내서 사용하는것은 가능했던 것이었다.하지만 마유미의 불의 기운을 다룰수 있게 될줄은 몰랐기에 그저 어안이 벙벙할 뿐이었다.
“싸부..이거 뭐에요?”
“니가 써놓고선 왜 나한테 묻냐?”
“와..보셨어요?음공으로 끌어모은 대기의 기운이 불로 화하는거..우아아..”
“준아.”
“네?”
칭찬을 해줄줄 알았던 김노인의 표정이 어두운 것을 보고는 준은 살짝 긴장하며 그를 바라보았다.김노인은 천천히 준에게로 다가와 말을 걸었다.
“너...괜찮은거냐?”
“괜찮다뇨?”
“몸이 아프거나 이상하게 혈맥이 요동치거나..이런거 없어?”
“없는데요...윽!”
준은 헛바람을 집어 삼켜 버렸다.김노인의 팔이 움직이는가 싶더니,자신의 몸의 여덟군데를 순식간에 점해버렸기 때문이었다.깜짝 놀란 세라와 수아가 벌떡 일어났지만,리미는 그녀들에게 손을 들어 저지했다.
“움직이지 말거라.뭐 움직일수도 없겠지만.”
김노인의 두 손가락이 준의 몸을 훑었다.마치 무언가가 자신의 몸속을 돌아다니는 듯한 묘한 기분에 준은 아무런 동작도 취하지 못하고는 침만 꿀꺽 삼킬 뿐이었다.
‘으응?’
그의 몸안을 탐색하던 김노인은 살짝 눈을 크게 떴다.느껴져야 할 기운들이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럴리가 있나.응당 음과 양의 기운이 느껴져야 정상이거늘.’
김노인은 연신 고개만 갸웃할 뿐이었다.이상하다는 그의 표정에 준의 얼굴은 약간 불안감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왜..왜그래요 사부.”
“조용.”
김노인은 다시한번 준의 몸을 훑으며 지나갔다.하지만 역시 헛수고.응당 느껴져야할 음양의 기운들은 마치 빈 동굴속을 뒤지는 것처럼 공허하기 그지 없었다.
‘이 녀석은 몸안에 마나를 들이지 못하는건가?’
김노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내공이 없이 음파공을 발생시킨다?그것은 음파공 외길인생을 걸어온 그에게 있어서도 금시초문인 이야기가 아닐수 없었다.
“으윽!”
준은 김노인의 손에 의해 다시금 점해졌고,그제서야 굳어진 몸을 돌릴수 있는지 푹 하고 한숨을 쉬었다.
“사부 왜그래요?”
“이상하군..이상해.”
“뭐가요?”
답답한 듯한 준의 물음에 김노인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무릇 음양의 기운은 한 그릇에 담지 못한다.물론 엄청난 특이체질이 있어 두개의 기운을 담을수 있는 경우도 있겠지.하지만 그건 정말 확률상으로 극히 낮은 이야기다.두개의 극성이 한몸에 담기면,그것들은 서로 충돌을 일으켜 그것을 담고 있는 그릇에 균열이 생기게 하거든.”
“와..그럼 제가 그 어쩌다 한번 있다는 특이체질?”
“아냐.니가 그럴리가 없어.”
“.......”
한쪽에서 들리는 킥킥거리는 노아의 소리.준은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자신의 사부를 바라보았다.
“너...몸안에 마나를 들이지 않는거냐?”
“몸안이요?”
“그래.”
준은 곰곰히 생각하다가 말을 이었다.
“아..차우가 그러는데 저는 몸안에 받아들일수 없는 타입이라던데요?”
“뭐?그 중국꼬맹이가 무슨 김말이 당면 부는 소리하고 자빠졌어.”
“...저는 모릅니다만.”
“좋아 어쨌든.그럼 어떻게 음파공을 발생시킨다는 거냐?”
“흠..글쎄요.일단 악기를 부는거야 당연한거고,그와 동시에 대기중에 있는 마나에 이미지를 구현해서..흘리는 식으로.”
“뭐?”
김노인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준을 바라보았고,준은 자신이 무슨 실수를 했나라는 생각을 하며 머리를 긁적거릴 뿐이었다.
“그게 말이되냐?니가 마법사야?”
“근데 저는 늘 그런식으로 수련했는걸요.”
김노인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앞에 있는 준을 응시했다.
‘그럼 이녀석..그럼 내공이라는 개념하나 머릿속에 없는 상태로 여태까지 살아남은 건가?’
김노인은 기가 막히기도 하고,어이가 없기도 한듯 그저 허허허하고 웃을 뿐이었다.
“그랬군..그런 것이었어.”
“뭐가요?”
“너에게 저렇게 많은 페어리들이 있는 이유를 말이다.”
“네?”
그의 말에 반사적으로 준은 약간 떨어진 곳에 있는 도합 여섯명의 페어리들을 바라보았다.언제나 자신을 지키는 청순한 외모의 세라, 꼬맹이 시절(?)부터 남다른 섹시함이 있던 유나,그리고 사람을 설레게 할만큼 아름다우면서도 상반되는 두개의 자아를 지닌 노아.언제나 현명하고 아름다운 리미.그리고 준의 부대로 나중에 합류한 마유미와, 이제는 노아만큼 키가 커버린,페어리 역사상 최단시간 성장을 보여주는 수아까지도.
“그게 무슨?”
“마나의 양이 적은 자는 상대적으로 많은 페어리를 거느리지 못한다.페어리가 많으면 많을수록, 자신의 몸에 있는 마나는 더욱더 소비 될테니까. 즉,체내에 마나를 축적하는 체술가 타입은 더욱 불리하다는 뜻이다.”
준은 그제서야 아..하는 탄성을 질렀다.그러고 보니 체술가 타입인 J와 차우,그리고 영국오너인 버나드까지도 모두 페어리가 얼마 없다는 것이 생각이 났다.
“그런데 너는 음공을 쓰면서도 많은 페어리를 데리고 있다.그것은 어쩌면 네가 내공이라는 개념으로 음공을 하는것이 아닌,마법에 가까운 개념으로 마나를 다루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다룰수 있는 마나량 역시 높은거겠지.”
마나의 양이 많다는 말은 준도 종종 들었던 사실이었기에 준도 고개를 끄덕였다.그제서야,준은 군단 수준으로 페어리를 이끌고 다니는 윌리엄스의 생각이 났다.
“준아.니 말을 들어보니,이제 곧 큰 싸움이 일어날것 같더구나.”
“아마도 그럴겁니다.말씀드렸다시피, 한 녀석을 제거했으니까요.”
준의 말에 김노인도 씁쓸한 표정을 지어보였다.오너끼리의 다툼.그것은 김노인의 세대에서도 빈번히 일어났던 것이었기 때문이었다.그는 그 싸움에서 살아남은 최후의 1인이었고,그것이 다음세대에도 똑같이 반복되자 그는 그저 씁쓸할 뿐이었다.
“그래.분명 그 영국 오너는 너와 차우라는 아이를 제거하려 할것이다.그것을 빌미로 말이야.”
“더러운 자식이에요.세상의 유일한 오너가 되고 싶은것 하나만으로 죽이려 하다니.”
“뭐가 말이냐?”
“네?”
“뭐가 더럽다는 거냐.너는 니가 선과 악 중에 선이라고 생각하냐?”
“뭐..그렇지 않나요?저흰 정당방어라구요.”
“그 녀석들 입장에서는 너희들이 악인거다.”
“그게 무슨..”
“잘들어라.세상에 명분없는 싸움은 없다.티비 만화영화도 아니고 단순히 선과 악을 구분지을수 없는 싸움이라는 이야기란다.그녀석도,너도 명분을 갖고 있다.결과적으로 이기는게 선이요,이기는쪽이 진리인 싸움이 되어버렸다는 거다.”
“하..하지만.”
“정신 똑바로 차리거라.죽지 않는다를 목표로 세우면..너를 비롯한 저 여섯명의 아이들은 거기서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김노인의 말에 준은 굳을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너는 약하다.그것은 변함없는 사실이고,내 밑에서 수련을 했지만 그저 니 능력을 다소 끌어낸것에 지나지 않아.하지만 너에겐 좋은 무기가 있다.”
“무기요?”
준의 되물음에 김노인은 흐뭇하게 웃으며 각각의 매력을 뽐내는 아름다운 여섯명의 페어리들을 바라보았다.
“그래 그것은 니가 갖고 있는 월등한 마나량도 아니고,니 페어리들이 강하기 때문만도 아니다.바로..니가 갖고 있는 저 아이들과의 친화력이다.”
#2 급습!
“힝..우리 언제까지 걸어요?”
“수아야..우리 이제 겨우 10분 걸었어.”
“땅도 딱딱하고 불편하단 말에요!힝.”
준은 연신 불평하는 금발의 미녀를 바라보았다.그렇다고 해서 서양여자처럼 생긴것이 아닌,동양적인 섹시미를 뿜고 있었고,그것은 또 묘하게 그런 수아의 금발과 잘 어울린다.
수련에 열중하면서,수아는 더더욱 커버렸다.이제 유나의 옷을 같이 입을 정도가 되어버린 것이다.키는 세라의 키와 같아졌고,나시티의 앞부분을 빵빵하게 부풀릴만큼 가슴이 발달되었다.자고 일어나면 마치 잭과 콩나무처럼 자라는 수아의 모습에 준은 몇번이고 놀랐지만,그것이 트루피 특유의 특징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로부터는 준 역시 수긍하게 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녀의 정신연령이었다.아무리 페어리라도,정신적 자아가 형성되는 시간이 있는 법이었다.하지만 그녀의 신체적 성장이 워낙 월등한 탓에,정신적인 성숙이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그냥 업어주면 안되요?”
“야..아마 발이 땅에 끌릴거다.그런소리하지마.”
“치!주인님 나뻐!”
잔뜩 토라진 표정을 짓는 수아의 모습에 준은 그저 픽 하고 웃어버렸다.수아는 숲이 아닌 콘크리트 바닥이 영 불편한지 계속해서 투덜거린다.하얀색 나시티에 짧은 반바지를 입은 그녀의 모습.숲을 누비던 트루피와는 약간 안어울리는 복장일지 모르지만,그녀의 싱그러운 금발머리와 하얀피부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다.게다가 임시용활이 아닌,리미가 연구한 완성형의 활을 어깨에 맨 그녀의 모습은 완벽한 현대와 판타지의 조합인듯했다.
‘이쁘긴 이쁘네..’
준은 실없는 생각을 하고는 피식 웃어버렸다.세라나 유나,노아때와는 비교도 안될정도로 엄청난 성장을 보이는 그녀.나시티사이로는 희미하게 가슴골이 보일정도로 그녀는 쭉쭉뻗은 미녀가 되어 있었다.불과 10여일 전에는 꼬맹이 모습이었다는것을 감안하면 그것은 아무리 오너짬밥좀 먹은 준이라지만 놀랄일이 아닐수 없었다.
“근데 주인님.”
“응?”
“우린 왜 이런일을 하는거죠?”
“글쎄.이게 내 직업이기도 하고,다 크룬전쟁에서 비롯된 혼란이니 나에게도 책임이 있고..”
“치!크룬인지 뭔지 별거 아닌데!나한테 걸렸으면..”
“하하하.그러게 말이야.수아 네가 있었더라면 더 빨리 끝났을 전쟁이지.”
수아의 성격이 모두 파악된 준은 맞장구를 쳐주었고 수아는 금새 기분이 좋은지 준의 팔짱을 끼며 베시시 웃었다.
“근데 그 오너가 쳐들어오면 어떡해요?”
“그건 누구에게 들었니?”
“미인서열 2위에게서요.”
준은 풉!하고 웃을뻔한것을 겨우 참아내었다.미인서열 2위란 리미를 말하는것이었다.물론 수아 머릿속의 1위는 자기 자신이었고,리미의 경우는 활을 만들어주었기 때문에 서열이 높은 것이었다.그 외에 노아가 3위였고,세라와 마유미가 각각 4,5위였다.물론 늘 적대적인 유나는 수아에게 있어선 만년6위인 모양이다.
“그래.리미말대로 그런 위험성이 있지만,먼저 쳐들어가는것은 안할 생각이야.”
“그럼 그쪽에서 올때까지 기다리는 건가요?”
“그렇게 말하면 조금 애매하긴 하지만,우리가 먼저 가는 것은 안좋아.애석하게도 윌리엄스란 녀석은 리미만큼 머리가 좋거든.어떤 흉계를 가지고 있을지 모를 일이지.”
수아는 준의 설명을 듣더니 깜찍하게도 고개를 끄덕거리며 귀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준은 피식 웃으며 걸음을 재촉했다.곧 수아가 싫어하는 딱딱한 콘크리트 바닥이 아닌,자신의 집앞에 있는 야산길로 접어들었고,산등성이 너머로 자신의 집이 보이기 시작했다.오늘의 의뢰역시 가볍게 끝이났다.오늘도 꼭 자신과 가야한다는 고집에 수아를 데리고 나온 것이었다.
“어라?”
익숙한 산길로 들어서자 신이난 표정을 짓던 수아가 고개를 갸웃했다.준은 그녀를 돌아보며 물었다.
“왜그래?”
“뭔가..이상한 소리가 나는데요?”
“소리?”
준은 수아의 말을 듣고는 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여 보았지만,그의 귀로 들어오는 정보는 평범한 바람소리와 걸을때 나는 소리 뿐이었다.
“이상한데..”
수아는 계속해서 귀를 기울였다.준은 아무런 긴장감 없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냥 바람소리 뿐인데?”
“아니에요.누군가..맹렬하게 이리로 달려오고 있어요.”
“뭐?누가?”
“모르겠어요.마나로 상대를 감지하는건 역시 제 특기가 아니라서.”
준은 그제서야 긴장한 표정으로 허리춤에 있는 뮤즈를 만지작 거렸다.그리고는 재빨리 통신구를 매만졌다.
‘불통..’
아무런 응답신호가 없었다.이것이 의미하는것은 두가지 경우뿐이다.정말 먼곳에 있거나,혹은 전투중일때.
“수아!피해!”
준은 재빨리 소리쳤고,잠시 고개를 갸웃했던 수아는 눈앞으로 다가오는 누군가를 보고는 엄청난 속도로 자리를 피했다.
콰직!
준은 뮤즈를 움켜쥐고 눈앞을 바라보았다.누군가가 둔기로 자신의 위를 내려치려했고,준이 그것을 막아낸 것이었다.
“페..어리..”
준을 공격한것은 아름다운 용모를 지닌 검은 머리칼의 여성이었다.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준을 찍어내렸던 검에 힘을주었다. 준은 알수 있었다.누군지는 모르지만,그녀역시 죽은 오너의 페어리라는 것을.
“큭!”
그녀가 강하게 준의 복부를 걷어찼고,준은 몇미터나 주르르 밀려났다.
채채챙!
곧이어 저 멀리 숲속에서 두개의 화살이 날아들었지만,그녀의 검은 그것을 간단하게 쳐내어 버렸다.
‘블랙나이트.’
준은 본능적으로 그녀가 블랙나이트라는 것을 직감할수 있었다.검은 머리칼.그리고 그녀가 들고 있는 한자루의 검이 모든것을 설명해주고 있었다.
“윌리엄스가..보낸거냐?”
준의 물음에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검을 겨누며 자신을 바라볼뿐이었다.
‘가만..그렇다면 다른 아이들도?’
그녀와 거리를 벌리고 서서,뮤즈를 길게 뽑아든 준은 다른 다섯명의 페어리들의 안위가 신경이 쓰였다.게다가 이 야산은 집 근처.자신의 집 역시 무사하다는 보장이 없었다.하지만 멀리서 보이는 자신의 아파트는 어떠한 공격의 흔적도 없었다.그렇다면 그녀들이 안전하거나,혹은 다른곳에서 전투를 하고 있다는 뜻이 되었다.
부우웅!
블랙나이트의 검이 빠른 속도로 준의 몸을 덮치기 시작했다.준은 이를 악물고 봉처럼 변한 뮤즈를 휘둘러 그녀의 공격을 막아내었다.세라만큼은 강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녀는 프로센에서 기사의 자격을 가진 검사.애초에 준이 체술로 상대하는것은 엄청난 무리가 있었다.
부우우우!
뮤즈의 공명음이 울리며 지면이 솟구쳤다.블랙나이트는 유연하게 앞뒤로 움직이며 자신을 향해 노리고 들어오는 준의 공격을 모두 흘려내었다.물이 흐르듯 자연스러운 회피.그리고 그녀의 검은 이내 푸른 기운이 겉돌기 시작했다.
‘저건 좀 위험한데..’
준은 잘 알고 있었다.검을 감싸는 저 푸른 기운은 보통의 검보다 훨씬 위험하다는 사실을. 하지만 그녀는 섣불리 준에게 접근을 하지 못했다.공기의 칼날이 매섭게 그녀의 몸을 공격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라 만큼은 아니다.검기를 날리지 못해.’
다행히 검기를 상대를 향해 날릴 정도의 고위레벨은 아닌 모양이었다.하지만 준에게도 있어서 상당한 소모전이었다.접근전을 피하기 위해 계속해서 뮤즈를 불어대야 했기 때문이었다.아마도 김노인과의 수련이 아니었다면 그는 벌써 지쳐 헉헉대었을지도 모르는 일이겠지만,블랙나이트에게는 어떤 상처도 입힐수 없었다.
‘가..가만 그런데..’
준은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오로지 자신만 겨누고 있는 블랙나이트의 검.그녀는 수아의 존재는 전혀 의식하지 않고 준만을 노리고 있었다.게다가 아까 한번을 끝으로 더이상 오지 않는 수아의 지원사격.준은 이를 악물어 버렸다.
‘한명이...더있는 거로구나.’
#3 위기일발!수아.
“모습을 보여라 트루피.”
상대의 말에 수아는 나무가지 사이에 몸을 숨긴채로 입술을 삐죽 내밀어 버렸다.준을 도우려는 찰나,자신에게도 기이한 표창 수십개가 날아든 것이었다.물론 빠른 발 덕에 꼬치가 되는것은 면했지만,수아는 저 멀리 보이는 페어리가 보통이상의 레벨임은 쉽게 유추할수 있었다.
‘저게 뭐지?’
그녀가 들고 있는 기이한 모양의 검.마치 삼지창 같기도 한 작은 단검 두 자루.페어리에 대해 많이 알지 못하는 수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오지 않겠다는 건가..”
그녀는 피식 웃더니 이내 기이한 모양의 단검을 땅속에 찔러 넣었다.
“으힉!”
수아는 갑자기 흔들리는 지면에 놀라며 얼른 자리를 피했고,그녀가 있었던 자리에는 똑같이 표창이 날아들어 나무에 박혔다.
“역시나 최속의 페어리.스피드로는 당할 길이 없군.”
그녀는 수아와 똑같은 금발머리를 하고 있었다.다른점이 있다면,입을 가린 복면 차림이라는 점이었다.그녀는 바로 무인도에 있을때 준 일행을 습격했던 윌리엄스의 페어리이자,어둠의 어쎄신인 미라였다.
“너희 오너도 많은 발전이 있었던 모양이군.”
미라는 조용히 중얼거렸고,이윽고 그녀의 몸으로 화살이 쏟아져 내렸다.
파파파파..
단검을 들고 있는 그녀의 손이 궤적을 그리며 은빛 광채를 띄우기 시작했고,수아가 쏘아낸 활은 그녀의 완벽한 방어에 모두 튕겨져 나갔다.
‘잘리지 않는 활이라..대단한데.그 연금술사의 솜씨인가.’
미라는 피식 웃었다.상대는 활을 다루는 숲의 마스터 트루피.그리고 자신은 암살에 최적화된 어쎄신이었다.둘 다 상대가 모르게 공격하는것에 특화된 종족.재밌는 싸움이 아닐수 없었다.
‘치..이거 좀 위험한데.’
수아는 등에 달려있는 화살통을 바라보았다.열개가 약간 넘는듯한 수량.아직 트루피가 다룰수 있는 수많은 궁술을 다 구현할수 없는 그녀로써는 약간은 구합이 맞지 않는 상대였다.
‘칫!2차개화만 했어도 파이어 샷 정도는 쏠수 있는데!’
수아는 혹시나 해서 마나를 끌어모아 보았지만,여전히 화살에 불의 속성을 매겨 쏘는것은 약간은 무리였다.
“힉!”
수아는 눈을 크게 뜨고는 엄청난 속도로 나무에서 벗어났다.미라의 얼굴의 자신의 바로앞에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오지마아아!”
수아는 나무사이를 날아들며 공중에서 뒤를 돌아 자신을 추격하는 미라에게 화살을 날렸지만,미라는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자신을 추격했다. 숲에서의 그녀는 더더욱 빠르니 미라가 자신을 따라잡을리는 없지만,문제는 미라는 꽤 상위레벨의 어쎄신이라는 사실이었다.
화르르르!
수아는 주변의 나무들이 갑자기 불이 붙는 것을 보고는 살짝 입술을 깨물며 궤도를 변경했다.수없이 날아드는 표창과 원거리 공격들.수아는 살짝 고개를 틀었고,그런 그녀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응?’
그녀를 추격하던 미라는 깜짝놀라 몸을 비틀었다.갑자기 수아쪽에서 기이한것이 날아들었기 때문이었다.그것은 활이 아닌듯 불규칙한 궤적을 그리며 미라에게 날아들었고,미라는 가까스로 피하고 나서야 그것의 정체를 확인할수 있었다.
‘제법이잖아..’
미라는 피식 웃었다.수아는 나무와 나무사이를 날아들다가,황급히 지면에 있는 뱀을 활에 먹여 자신에게 쏘아낸 것이었다.그것은 나무등걸에 박혀 최후를 맞이했고,시간을 번 수아는 다시금 미라의 시선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렇군.숲에서 트루피를 상대하는것은..조금 어려울수도 있지.”
미라의 단검이 기이한 음성을 내며 빛을 발했고,그녀는 두개의 단검을 강하게 집어 던졌다.놀랍게도 두개의 단검은 마나를 머금은채로 미라를 중심으로 회전을 하며 둥글게 퍼져나갔고,곧이어 나무들은 하나둘씩 잘려나가기 시작했다.
콰콰콰콰..
하나는 넓고 천천히,하나는 좁고 빠르게 원을 그리며 나무를 베어나가는 두개의 단검.그리고 미라는 자신의 정수리로 날아드는 활을 가볍게 피해내었다.
쿠지지직!
근방의 나무들을 모두 베어버리고 나서야,그녀의 단검은 미라의 손에 사이좋게 안착했다.미라의 시선에,지면에 착지한채로 자신을 바라보는 수아의 모습이 보였다.그녀의 당혹스런 표정을 보며,미라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자..도망갈곳이 없는데..어쩔래 트루피?”
# 3 윌리엄스의 도발.
“큭!”
준은 한쪽팔에 시큰한 통증을 느끼며 뒤로 물러섰다.블랙나이트의 검이 자신의 팔쪽을 살짝 훑고 지나갔기 때문이었다.뜨끈한 피의 감촉이 느껴졌고,뒤에서는 어찌된 일인지 나무들이 쓰러지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준은 그곳에 조금도 신경쓸 여력이 없었다.
‘윌리엄스가 선제 공격을 하다니.’
말이 씨가 된다는 것인지,수아가 오늘 질문을 하자마자 윌리엄스의 암수가 뻗쳐오기 시작한 것이었다.준은 뮤즈를 고쳐 잡았고,역시 그와 마찬가지로 자잘한 상처가 난 블랙나이트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응시했다.
“하나만 묻자.”
준이 입을 열었지만 그녀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너..어떻게 다시 태어난거냐?넌 분명 죽은 오너의....”
준은 말을 다 잇지 못하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앞에 서 있는 블랙나이트의 볼위로 두줄기 눈물이 흘러내렸기 때문이었다.
“페어리와 오너의 맹약은 후천적 탄생에 있어서도 적용되는 것.”
“뭐?”
준은 알수 없는 그녀의 말에 눈을 크게 떴지만,더이상 질문을 할수가 없었다.앞에 있는 블랙나이트가 검을 고쳐쥐고 맹렬하게 자신에게 달려왔기 때문이었다.
파파파파팟!
준의 뮤즈의 공명과 동시에,대기가 얼어붙는 한기가 발동되며 블랙나이트의 시야에는 엄청난 크기의 얼음 장벽들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콰지지직!
그녀는 자신에게 날아드는 크고 작은 얼음덩어리들을 계속해서 쳐내었다.다시금 준의 원거리 공격과,그녀의 방어태세로 이루어진 공수의 형태가 재현된 것이었다.
‘이대로 라면 위험한데.나는 계속해서 마나를 쓰지만 상대는 몸만 쓸 뿐이야.그렇다면..’
준은 살짝 이를 악물었다.어차피 적을 제거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아닌가.망설이다간 블랙나이트의 검에 자신의 목이 날아갈 판이었다.아무리 많은 성장을 이뤘다지만,상대는 페어리였기 때문이었다.
부우우우!
뮤즈의 음색이 거세지며,더욱 큰 얼음알갱이들이 그녀의 주변을 덮어 나갔다.방어하는 속도보다 공격하는 양이 일순간 더 커지며,그녀의 행동이 무뎌지기 시작했다.
‘이때다!’
준은 망설임없이 바닥에 뮤즈를 꽂아 넣었다.이윽고 크게 울리는 대지의 흐름.준은 있는 힘껏 뮤즈를 불어버렸다.
콰콰콰콰콰!
이윽고 준의 마나로 인해 흐름을 잃은 대지는 역방향으로 폭주하기 시작했다.순간 당황하는 블랙나이트의 얼굴.하지만 준은 볼수 있었다.그녀의 표정은 찰나의 순간 너무나 평온해졌다는 것을.그리고 그녀는 대지의 기운에 묻히며 가루처럼 부서져 내렸다.
스스스스..
엄청난 후폭풍이 불어닥치며 흙먼지는 그대로 준의 온몸을 때렸고,그는 지친 숨을 몰아쉬며 털썩 주저 앉았다.
‘빨라..너무 빠르다.이렇게 빨리 윌리엄스가 손을 뻗칠 줄이야.’
적어도 재정비에는 시간이 걸릴것이라 생각했었다.하지만 윌리엄스는 그것을 무시하듯 페어리를 보낸 것이다.그것도...죽은 오너의 페어리를.
“주인님!”
멀리서 달려오는 마유미의 모습이 보였다.그녀역시 격전을 뚫고 온듯,옷가지가 군데군데 엉망이었지만,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수 있었다.
“마유미..”
“괜찮으세요?”
힘이 풀린 준은 마유미의 품에 안겨버리며 거친숨을 내쉬었다.그녀는 그런 준을 힘을주어 껴안아 주었다.
“다른..아이들은?”
“모두..무사해요.아시겠지만..모두 기습을 당했어요.”
“수아..수아가 위험해.”
“네?”
준의 말에 마유미는 살짝 놀란 목소리로 되물었다.준은 있는 힘을 짜내어 뮤즈로 수아가 있던 곳을 가리켰다.
“저쪽..저쪽에 수아가 다른 적이랑 겨루고 있어.”
마유미는 살짝 준이 가리킨 곳을 응시하더니,이내 그를 꼭 껴안아 주며 말했다.타오르는 듯한 적발.하지만 그녀의 얼굴엔 너무나 아름다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걱정마세요.최강의 페어리가...수아를 도우러 갔답니다.조금만 쉬세요 주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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