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정들의 오너 시즌 2 - 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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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부>
#1.심연의 궁사.
“오와와!”
어느틈인지 부스스 잠에서 깨어난 노아의 정체모를 감탄사와 함께,준은 벙찐 표정이 되어버렸다.너무 간만이라서 일까?리미를 끝으로 신경조차 쓰지 않았던 카드.아직 몇장이 더 남아 있긴 하지만,그것이 개화될지 어떨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기에,준은 더이상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이다.
준은 리미로부터,유일한 페어리인 정령의 여왕 노아를 개화시켰기 때문에,아마도 당분간은 왠만큼 성장해도 다른 페어리가 개화되지 않을거라 들은적이 있었다.게다가 페어리의 개화는 오너의 강함과 비례하는것이 아니었다.아무리 강하다 해도,다룰수 있는 마나의 양이 적으면 안되는것이다.단적인 예로,버나드 라는 오너는 페어리가 단 한명 뿐이었고,사라케인 역시 그랬었다.즉, 페어리의 개화란 오너의 마나량과 비례하는 것이었다.
‘그럼 내가 더욱더 늘어난 것이라는 건가?’
준은 새로운 카드를 들고 곰곰히 생각에 잠겼다.분명 자신은 어느정도 성취가 있긴 했다.리미의 도움으로,아직 미완성이지만 광범위한 필살기역시 갖출수 있었고,낮에 일이 끝나면 김노인에게 음공의 특훈을 받기도 한다.하지만 새로운 페어리의 개화는 솔직히 생각해 본적도 없었다.
“그냥 두실거에요?”
유나가 뾰로퉁한 표정으로 물었다.준은 고개를 살짝 저었다.새로운 페어리를 받아들이기 싫은것이 아니다.다만 약간은 어리둥절했을뿐.
“근데.우리집에 이대로 괜찮으려나?좁지 않을까?”
준의 염려섞인 말에 세라는 살짝 웃어주었다.
“중요한것은 지금 카드에 투영된 페어리도,같은 일원이라는 것 아닐까요?”
준은 살짝 멍해졌다가 이내 웃음을 지었다.그랬다.비록 오너협회의 동료와,민아와,그 외 죄없는 많은 사람들을 잃었지만,이렇게 다시 생긴 인연을 고작 집안 면적때문에 고민하는것은 그답지 않은 것이었다.
“휴.좋아.간만이라 떨리는데.”
“여기.”
준은 리미가 내민것을 보고는 피식 웃었다.그것은 다름아닌 꼬마나 입을법한 아동복 원피스였다.리미가 카드에서 나왔을때에 처음 입었던 그옷.그녀다운 꼼꼼함으로 미리 챙겨둔 모양이었다.
“이름은 뭐라고 하실 건가요?”
“이름은...”
준은 세라와 유나,노아를 둘러보며 살짝 웃었다.그녀들은 귀엽게도 준의 미소를 보며 동시에 고개를 갸웃한다.
“수아.수아로 할게.”
“이쁜 이름이네요.”
세라는 빙긋 웃어주었다.오직 유나만이 뾰루퉁한 얼굴로 궁시렁대며,괜시리 옆에있는 마유미를 구박할뿐.
“시작할게.”
준의 말과 함께 모두 약속이나 한듯 그의 뒤로 물러선다.준은 카드를 테이블 위에 두고는 천천히 그것을 바라보았다.준도 어느덧 4명의 페어리를 개화시킨 오너였다.처음처럼 그렇게 허둥대지 않았다.
이윽고 눈을 감은 준의 머릿속에,카드의 이미지가 천천히 투영되기 시작했다.노란색.너무나 푸근하게 느껴지는 따뜻한 노랑이었다.노아때처럼 숲의 내음이 나기도 한다.그리고 준은 감은 눈을 천천히 떴다.
스스스스스스........
이윽고 카드의 주변은 노란 연기로 가득차기 시작한다.유나와 마유미는 침을 꼴깍 삼키며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그 페어리의 정체가 무엇인지,그들도 개화되기 전까지는 알수 없기 때문이었다.
“아..”
준은 간만에 느끼는 기분에 살짝 감탄사를 내뱉었다.천천히 빛무리가 가시고,너무나 앙증맞은 얼굴의 소녀가 준을 보며 미소짓는다.금빛 머리칼을 가졌지만,동양적인 깜찍함을 가진 소녀,갈색눈망울을 이리저리 굴리며 눈웃을 짓는 그녀는,리미가 얼른 원피스를 집어들었을 그때 조용히 입을 열었다.
“페어리의 오너로써 선택되신 당신,심연의 궁사가 주인을 알현합니다.”
#2.새로운 가족.수아.
“수아..?수아..?”
리미가 얼른 원피스를 입혔을때,자신의 이름을 들은 수아는 환하게 웃더니 꺄르르 웃으며 준의 목을 끌어 안는다.그 모습을 본 유나의 동공이 당구공만큼 커졌음은 말할것도 없다.
“야야..왜..왜그래.”
준은 수아가 꼬맹이 주제에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바라보는것에 크게 당황하고 있었다.보통 자신이 아닌 다른 페어리들이 있으면 한번쯤 그녀들을 보게 마련인데,수아의 경우는 준이외에는 관심이 없다는듯 그들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리미..심연의 궁사라는게...”
리미는 목에 수아를 대롱대롱 단채로,당혹한 표정을 지으며 묻는 준을 침착한 눈으로 바라보더니,이내 말문을 열었다,
“심연의 궁사란,프로센에 있는 어느 종족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종족?그..뭐냐.싸부의 페어리인 초희같은 거?”
“비슷합니다만,초희양의 경우는 극소수가 분포해 있기 때문에 종족이라는 것보다는 존재 자체가 일반 인간과는 다른 경우지요.수아..의 경우는 다릅니다.”
“어떤..건데?”
“어찌보면 엘프와 비슷한 존재일지도 모르지요.그들은 심연의 숲이라 불리는 거대한 숲에서 그들끼리 부족을 이루고 살지요.특징이라면,모두 여성들만 모여 산다는 점입니다.”
“으잉?”
준은 문득 자신에게 딱 붙어 안겨있는 수아를 바라보았다.수아는 싱글싱글 웃고 있었고,노아는 어느새 수아에게 다가가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남성은 있습니다만,대게 남성이 태어나면 그들은 일부를 남겨놓고 제거하지요.물론 남성의 용도는 종족의 번식에만 있습니다.”
“뭣이?”
준은 경악에 가까운 눈을 뜨고 수아를 바라보았다.하지만 순간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자유롭게 숲속에 있던 그녀들도,페어리라는 이름으로 징벌되어 이 쪽세상으로 온것일 테니까.
“그런데...궁사라는건?”
“말그대로,아쳐를 의미하는 거겠지요.그들은 일반적인 사람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빠르고 유연합니다.힘도 강인하지요.그런 그들에게 필수적인것이 바로 활입니다.그들은 활 하나만으로 숲을 지배하려는 인간들과 대응했으니까요.”
“그..그럼 수아는 마나를 다루지 않는거야?”
“그건 아닙니다.그들이 활을 쓰는것을 그냥 ‘무기를 다룬다’라는 개념으로 함축시킬수 없습니다.아무래도,많은 기술들을 가지고 있겠지요.궁술과 마나를 접목시킨.”
리미의 일목요연한 설명에 준은 그제서야 아..하고 고개를 끄덕였다.멀리서 마유미를 구박하던 유나는 쪼르르 수아에게 다가온다.
“이봐.그만 주인님한테 떨어져.주인님 힘드시잖아.”
유나의 말에 싱글벙글 웃고 있던 수아는 갑자기 표정이 싹 변하며 유나를 바라보았다.그 기가막힌 장관에 준은 깜짝 놀라 수아를 바라보았다.
“너같은 돼지가 안겨있을때나 힘들지.”
수아의 말에 좌중의 입은 그야말로 쩌억 하고 벌어졌다.유나의 앙증맞은 입술이 파르르 떨려오기 시작하며,여지없이 그녀의 눈꼬리는 하늘로 치켜 올라갔다.
“뭐어어어!이게!!!”
“유..유나 참아!”
마유미가 얼른 유나의 허리를 붙잡은 덕에,수아를 쥐어박으려던 유나의 손은 허공을 허무하게 갈랐고,수아는 언제 그랬냐는듯 준을 보며 앙증맞게 웃는다.
“수..수아.”
“네엥~”
“사이좋게 지내야지.모두 같은 페어리인데.”
“전 저런 어정쩡한 애들하곤 달라요.”
“야..야..”
수아는 베시시 웃으며 준의 무릎에 앉아 준을 끌어안았다.
“주인님 지금 침대로 갈까요?”
“뭐..뭐어?”
“아직 어려서 싫어요?”
준은 도와달라는 듯한 간절한 시선을 세라에게 보냈지만,세라는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을 뿐이었다.리미는 과학자 특유의 시선으로 묵묵히 수아를 바라보았다.
‘저들은 숲속을 누비는 아쳐.그 종족의 특성을 봤을때 수아의 저런 행동도 무리는 아니지.’
리미는 잘 알고 있었다.프로센에서는 수아의 종족을 ‘트루피’라고 불렀다.프로센어로 자유로운 이라는 뜻이었다.
트루피족은 엘프와 비슷해서,모두 아름다운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하지만 특유의 호전적인 성격은 그들만의 특징이기도 했다.실제로 프로센에있는 일부 인간들사이 에서는 트루피들을 정복해서 노예시장에 팔기위해 몇번이고 심연의 숲에 대대적인 원정을 갔으나,마법사까지 동원했음에도 그들은 번번히 트루피들의 활 한자루 앞에 고배를 삼켜야만 했었다.
‘게다가...’
리미는 왠지 수아의 등장으로 앞으로의 행보가 시끌시끌 해질것만 같았다.그들은 번식이외에는 남성과 관계를 갖지 않았다.그럴수밖에 없는것이,생식의 목적이 끝나면 그 남성역시 베어버리기 때문이었다.남성을 싫어해서가 아니라,그들 특유의 본능과도 같은 문화였다.
그러니 자연스레 성욕은 클 수밖에 없다.그런 피를 갖고 태어난 수아일테니,나오자마자 꼬맹이의 몸으로 준에게 유혹이 다분히 섞인 말을 하고 있는 것일 것이다.리미는 머리를 살짝 부여잡고 한숨을 쉬었다.
‘그녀가 주인님을 잘 따를까.아무리 페어리이지만,종족 특유의 본능이 있을것인데..’
“야야!놔봐 마유미!내 저것을 그냥!”
유나의 손에는 스멀스멀 한기까지 맺혀오기 시작한다.그 모습을 바라보던 준은 푹 한숨을 쉬어버리고는 입을 열었다.
“유나 그만둬.모두 한 팀이잖아.”
“주인님도 저 꼬맹이가 하는 말을 들었잖아요!”
“수아.너도 다른 아이들과 사이좋게 지내.이건 명령이야.”
“싫어요!난 주인님만 있음 되요!”
“야..넌 말을 안듣는거냐 붙임성이 좋은거냐..”
준은 실없는 말까지 중얼거리며 한숨을 쉬었다.리미의 말을 듣고보니,이런것이 수아의 종족,아니 심연의 궁사들의 특징인 모양이었다.그런 그녀가 자신을 주인님이라고 부르는거 자체가 신기하긴 했지만,그 특유의 성격은 크게 바뀌지 않는 모양이다.
준은 자신의 앞에서 싱글거리는 수아를 바라보았다.아름다운 금빛 머리칼.뽀얀 피부위에 앙증맞은입술과 눈망울.유나를 처음봤을때도 그랬지만,꼬마주제에 섹시한 분위기를 자아내기까지 하는 그 모습에 준은 그저 허허 웃을 뿐이었다.
“응?왜 날 그렇게 빤히 봐요 주인님?그렇게 좋아요?”
“...말을 말자.”
“야!너 밖으로 나와!저게 진짜 죽을라고!”
유나는 이제 거의 마유미의 손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기까지 했다.세라역시 어떤 대처 방안이 전혀 떠오르지 않는지 그저 가만히 준을 바라볼 뿐이었다.
“뭐하는거야?”
호기심많은 노아는,무언가 부지런히 꺼내는 리미를 보며 물었다.리미는 수성싸인팬으로 방바닥에 조그마한 연성진을 그렸고,이내 집안에 넘쳐나는 그녀의 연구자료들중에 금속몇개와 알수없는 물건 몇개를 그 위에 올려놓았다.
“수아의 활을 만들어주려고.”
리미의 말에 준의 품에 안겨있던 수아도 살짝 리미를 바라보았다.
“내 활?”
“응.있어야 하지 않겠어?넌 활을 다루는 아이니까.”
“와아.너 마음에 든다.저 은색돼지와는 다른데.”
“야아아아!!!!!!!”
순식간에 ‘은색돼지’가 되어버린 유나는 거의 빙백의 인 초기 각인 상태라고 해도 믿을수 있을 정도로 폭주하며 거품을 물었다.마유미는 혼신의 힘을다해 그녀를 막고 있어야만 했다.준은 간만에 아파오는 머리에 그저 이마를 감싸쥘 뿐이었다.
“연성조합!”
우우우우웅!
언제봐도 신비한 리미의 연금술.연성진이 영롱한 빛을 발하기 시작했고,모두들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았다.이윽고 수아의 머리빛깔과 똑같은 금빛 활 하나가 나타나며 리미가 그린 연성진이 지워졌다.
“처음 만드는거라 두서없지만.써보겠어?”
수아는 준의 품에서 내려오더니,이윽고 리미가 내민 활을 집어들었다.마치 세라가 검을 쥐었을때처럼,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달라보이는 그모습에 모두 탄성을 질렀다.단 한사람,거품을 물고 있는 우리의 프로즌 레이디를 제외하고.
“화살은 없어?”
“아직은.그건 조금더 계산하고 만들어야 할것 같아.”
“칫.없으면 이게 뭔소용이람.”
기껏 만들어줘도 불평하는 수아였지만,트루피 특유의 성격을 잘 알고있는 리미이기에 그녀는 전혀 화를 내지 않았다.
“한번 당겨보기라도 해봐.”
“흠...잘만들었는데?그거 무슨 기술이야?쓸만한데.”
“연금술.암튼 당겨봐.”
“알았어.”
수아는 활을 이리저리 살펴보더니,이내 자신의 왼손으로 활의 몸통을 쥐었다.그리고는 팽팽하게 당겨져있는 줄을 앙증맞은 오른손으로 움켜쥐고는 살짝 당기기 시작했다.
“이이이익!”
순식간에 준을 비롯한 좌중은 어리둥절해져 버렸다.수아는 낑낑거리며 줄을 당겼지만,줄은 약간 뒤로 당겨졌을뿐,거의 변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거 안되잖아아아!우쒸!”
수아의 신경질에도 리미는 아무말도 하지 않은채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아..그런거로군.”
세라의 중얼거림에 준이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뭔데 세라?짐작이 가는거라도 있어?”
“당연한 결과이지요.저 역시 개화되자마자 지금갖고 있는 소드를 들었다면,무거워서 땅에 떨구고 말았을 겁니다.수아는 이제 막 개화되었을 뿐이지요.성장이..필요하겠죠.”
더불어 2차개화역시..라는 말을 하려다가 세라는 입을 다물었다.하지만 수아는 뾰루퉁한 표정이 되어 버리며 준의 무릎위로 점프를 하듯 올라탄다.
“나 빨리 자라게 해줘요 주인님!빨리이!”
“그게 무슨소리..헙!!!”
드디어 유나양은 뒤로 넘어가고 말았다.모두가 크게 놀라 바라보는 와중에도,수아는 앙증맞은 입술을 준의 입술에 갖다대고 있었다.
#3.계속되는 추적
“유나.좌측으로.”
“오케이!”
리미의 지시에 따라 유나는 빠른 몸놀림으로 좌측으로 달려나갔다.무리지어 있던 사내들은 이내 그녀들을 무시했던 댓가를 치러야만 했다.
“프로즌 에로우!”
유나의 시동어와 함께 그들의 발은 지면과 붙으며 딱딱하게 얼어붙어 버렸다.졸지에 계절에 맞지 않는 빙판을 구경하게 된 그들은 경악에 찬 표정으로 고통스런 비명을 질렀다.
“이..이년들 뭐야!”
유나의 공격권이 미치지 않았던 이들은 하나둘씩 차로 뛰어가더니,이윽고 영화에서나 보던 총을 꺼내들었다.리미는 침착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이런 일개 조직폭력배가 저런 화기를 들고 있다니.그만큼 크룬의 습격하나가 이 세계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이로구나.’
리미는 세삼 나비효과를 실감하며,천천히 품안에서 아기 주먹만한 물체를 꺼내들었다.그녀는 그것을 망설임없이 무리지어 있는 사내들의 틈에 던져 넣었다.
콰앙!
작은 굉음과 함께 리미가 던져넣은 것이 폭발하며,자욱한 자색연기를 자아냈고,유나는 재빨리 뒤로 물러서서 얇은 얼음의 장벽을 둘러쳐 그들을 포위해 버렸다.
“근데 리미.저거 뭐야?”
“강력한 수면탄이야.이번에 특별히 고안했어.”
“휴우.멋진데.다들 잠드는 건가?”
“응.조금은 일하기 수월하겠지.”
“근데 도대체 언제까지 이런일을 해야 하는거람.”
유나의 투덜거림에 리미는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한명은 패셔너블한,하지만 너무나 섹시하게 몸매를 드러내는 나시티를 입고,다른 한명은 활동적인 청바지에 얇은외투를 입은 두명의 미녀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하나만으로 모두가 홀릴만한 광경이겠지만,애석하게도 단 한명의 관객도 없었다.이곳은 조직폭력배들의 아지트로 보이는 교외의 널찍한 창고였기 때문이었다.
“주인님의 명령이야.게다가 이들은 닥치는 대로 여자들을 잡아들이고 있어.우리의 책임도 있는데다가,이것도 주인님이 받은 의뢰중 하나니까 해결해야지.”
“그것도 좋지만,언제 윌리엄스가 올지 알고?우릴 감시할수도 있잖아.이사부터 가야하는거 아냐?”
귀엽게 입술을 삐죽 내미는 유나의 질문에 리미는 고개를 저었다.
“윌리엄스는 우릴 감시하지 못해.그동안 그가 우릴 감시했던것은 소환수를 이용한 것이었지만,저번 크룬과의 전쟁에서 소환을 하는 페어리를 잃었어.”
“그치만,다시 개화 시킬거 아니야?그럼 또 우리에게 소환수를 보낼텐데?”
“아니.다시 개화시킨다 하더라도,그때는 소환수를 보내지 않겠지.그때쯤이면 직접 치면 될테니까.우릴 일부러 감시할 필요따윈없어.게다가 한국에는 윌리엄스의 충실한 심복이 있잖아.우리가 그토록 찾고 있는.”
유나는 리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불만가득한 표정을 지어보였다.어쩌면 유나는 윌리엄스와 붙을 날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몰랐다.무인도에서 급습당했던 기억,물론 정령의 여왕으로 각성한 노아에 의해 한방에 진압되었지만,유나는 아직 그때의 일을 빚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이쪽은 해결되었는데..주인님은 어디로 갔어?”
“수아와 함께 다른곳으로.의뢰보다는 J의 흔적을 찾고 계신듯해.”
수아의 말이 나오자 유나의 표정이 또한번 찡그려진다.앙증맞은 입술을 샐쭉 거리며,괜시리 흥!하고 콧방귀를 뀌였다.
“두고보자 그 건방진 트루피!”
“마유미!마유미!저거 어떻게 해?”
“그..글쎄.”
마유미는 울상을 지으며 천진난만하게 묻는 노아를 바라보았다.그들에게 내려진 미션은 ‘동물탐색’이었다.뜬금없긴 하지만,J의 페어리인 유리가 동물들을 대동하기 때문에,그를 추적할수 있다고 생각을 한 리미가 제안한 일이었다.
문제는 이미 유명한 동물원은 싸그리 털렸다는 점이었다.위협적인 동물이건 아니건,그 안에는 동물들이 단 한마리도 없는 듯했다.덕분에 동물원은 이미 폐허로 변해 출입이 봉쇄되어 있었다.
“힝...주인님한테 혼나겠다.”
노아의 중얼거림에 마유미는 살짝 웃으며 귀엽다는듯 노아를 쓰다듬었다.
‘이렇게 말괄량이 같아도,주인님은 무서운 모양이네.’
하지만 거의 울상이 되어서 중얼거리는 노아의 다음말에,마유미는 맥이 탁 하고 풀려버린다.
“그럼 딸기우유 못마시는데.”
‘우..우유때문이었군.’
오늘은 준의 명령에 따라,세라를 제외하고는 모두 페어를 이뤄 움직이고 있었다.당연히 개화한지 얼마 안된수아는 준이 데리고 나갔다.물론,수아가 준의 목에 대롱대롱 매달려 안떨어진 탓도 있긴 했지만 말이다.그리고 요새 부쩍 노아가 마유미를 따르고 있었기에,그녀와 노아가 한팀이 된 것이었다.
“독자적으로 움직여서 야산이라도 조사해볼까?”
“독자적이 뭔데?”
천진난만한 노아의 되물음에 마유미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난처해했다.아무래도,마유미역시 누굴 리드하는 성격이 아닌지라 당황하고 있었다.타는 듯한 붉은 머리칼속에서 아름다운 눈망울을 빛내며,마유미는 살짝 입술을 깨물고는 노아를 이끌었다.
‘독자적으로 수색했다간 늦어질거야.일단은 돌아가서 리미나 주인님께 보고해야겠어.’
“주인니임~한번더하면 안되요?”
“하긴뭘해.니가 일방적으로 해놓고.”
준의 말에 수아는 꺄르르 웃으며 또 한번 준의 입술에 입을 맞춘다.준은 그저 어안이 벙벙할 뿐이었다.좋은데 내숭떠는게 아니다.자신의 입술에 입을 맞추고 황급히 뒤로 빠지는 수아의 속도가 엄청나게 빠른탓이다.준의 시선엔 아예 보이지도 않을 정도였다.
‘이거..화났을때의 세라보다 더 빠른것 같은데.’
게다가 수아는 속옷을 입지 않았다.자신의 종족은 그런 거추장 스러운것은 입지 않는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아무리 꼬맹이의 몸을 했지만,원피스를 입은 탓에 준은 본인이 더 조마조마 할 정도였다.
“와와 단둘이 있으니까 좋다.그쵸?”
“...”
준은 수아와 같이 있으니 정신이 없었다.처음부터 준을 지나치게 따르며 집착했던 유나보다도,수아가 한수 위인거 같았다.J의 흔적을 찾던 준은 이내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너무 시간이 늦어지고 있을 뿐더러,J가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도 모르는데 정보를 수집하는것은 어느정도 한계가 있었다.
“주인님 나 언제 2차개화 시켜줄거에요?”
“푸읍!”
목을 축이려 물을 마시려 했던 준은 허공으로 무지개를 생성하며 고대로 물을 뿜어 버렸다.금빛 머리칼을 위로 묶어올려 깜찍한 얼굴을 하고 있는 수아는 준의 허벅지에 매달리다 시피 하고 있었다.
“수아.우선 니가 커야지..”
“근데,저희 종족은 원래 빨리 자라요.게다가 주인님에게서 부터 전달되는 마나역시 엄청 많은걸요?”
“그래도 아직 넌 어제 개화했잖아.나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구.”
“칫!두고봐요!일주일있음 세라만큼 클거에요!”
“휴..그래그래 알았다.”
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도 피식 웃어버렸다.물론 조금은 특이하긴 했지만,수아역시 이제 자신의 소중한 존재가 될 것이었다.준은 자꾸 보채는 수아를 안아들었다.페어리와 오너의 관계이니 맹목적으로 자신은 잘 따르는 그녀지만,언젠가 다른 아이들과도 더 친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이건...’
윤기나는 검정색 머리칼.청순하게 빛나는 두 눈동자가 땅바닥에 패어있는 발자국을 향한다.물론 산길이라 흙으로 되어 있어 발자국이 잘 나긴 하겠지만,그것은 사람의 발자국이 아니었다.
세라의 뒷편으로는,그녀에게 한방씩 먹은 모양인지 십수명의 사내들이 거품을 물고 기절해 있었다.사연인즉 간단했다.너무나 아름다운 그녀가,이런 위험한 시국에 혼자 돌아다니니,성욕에 눈이 먼 자들이 괜시리 덤볐다가 그녀가 어떻게 한지도 알지 못한채 땅바닥과 키스하며 기절해 버린 것이다.
샤르르릉!
청명한 금속음이 울리며,세라의 검이 그녀의 손으로 소환되었다.점점 더 산쪽으로 들어갈수록,동물의 발자국이 수십개나 나있었기 때문이었다.세라는 직감적으로 알수 있었다.그것은 J의 페어리인 비스트 마스터,유리가 동물들을 조종해서 이 산을 넘었다는 뜻이었다.
치지지직.
세라는 귀걸이의 형태를 띄고있는,리미가 연성해준 통신구를 만지작거렸지만,워낙 멀리온탓에 그것은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세라는 검을 살짝 거꾸로 쥐고,발자국이 끊임없이 펼쳐져 있는 전방을 바라보았다.
‘어떻게든,혼자서라도 잡고 말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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