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 애정비사 2-1,5
제24화 콧등까지 묻어나는 애액
이렇게 된 바에야 아예 나의 노력에 맡기겠다는 뜻인지, 정
란이는 뒤쪽 침대로 상체를 눕혀버리고 있었다. 그녀가 발을
움츠렸고 그에 따라 내 상체는 자연스럽게 그녀 쪽으로 기울
었다.
"아까 많이 젖어서… 씻었어요."
그제야 부끄러운지 잦아드는 그녀의 속삭임이었다. 조용히
그녀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는 모습이 보였다. 역시 그렇게
나 당당했어도 결정적인 순간에 이르자 민망함을 아는 듯했
다.
"얼른 시작하세요…!"
나는 떨리는 손을 허벅지를 덮고 있던 그녀의 치마폭에 가
져갔다. 불을 끄지 않아 훤한 방안, 치마폭을 걷어올리자 그
맨살의 하복부가 몽땅 한 눈에 드러나고 있었다.
고개를 파묻기 위해 나는 그녀의 종아리를 살며시 들어야
했다. 짙은 음모에 가려진 정란의 사타구니가 불빛 속으로 떠
올랐다.
나로서는 어떻게든 합리화시키고 싶었다. 돌이켜 보면 흔들
리고 있는 내 마음이란 이미 아까부터 그런 조짐을 겪어야만
했었다. 술집 안의 유혹, 치마 속으로 더듬었던 정란이의 엉
덩이, 마지막으로 직접 목격한 그녀의 아슬아슬한 비경. 그
모두는 이제 나를 점점 흥분시키고 있었다.
꿀꺽, 침을 삼켰어도 내 마음 속에서는 탄성이 질러졌다.
결코 내 나이에 비해 경험이 많다고는 못할지라도 그 비경이
매우 색다른 경치임에는 틀림 없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 엉덩이 사이 수풀의 과다만으로 성욕을 판단하다
면 나는 그렇다고, 분명히 그것은 비례관계에 있다고, 그렇게
대답해야 할 성 싶어졌다. 물론 무성하다고 그것이 반드시 흉
할 리는 없다. 그 증거가 바로 내 코 앞에 펼쳐져 있었다.
약간은 하체 쪽이 빈약하다는 느낌인 정란이었는데, 반대로
상체 또한 그러했다. 하지만 군살이 없다 하여 그 무성한 음
모들이 아랫배까지 듬성이지도 않았다.
꼭 그 비부 주위만을 빽빽히 마름모 꼴로 덮어져 있었다.
나는 잠시 어처구니 없는 상상을 해보았다. 이 정도라면 아까
하반신을 몽땅 드러내고 업혔던 이 여자애였으니, 행여 그렇
게 잔뜩 가랑이를 벌리고 있었다면 설사 핵심부위를 팬티로
가렸을지라도 분명 그 양쪽 라인 바깥으로 이 수풀 몇 가닥
이 비어져 나왔으리란 짐작이었다.
그것이 도화선이었다. 그런 망측한 상상 - 그것만으로도 내
몸 속 깊숙히 억눌러져 있던 욕구가 바짝 고개를 들고 있었
다. 무엇보다 한 쪽이 일방적으로 돋군 흥만으로 이런 아찔한
일이 벌어질 리는 만무했다.
"정란아…!"
나즈막히 이름을 불렀어도 반응이 있을 리가 없었다. 반응
은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 그 또한 나로서는 처음 목도한 광
경이었다.
방금 전 음모의 짙음만으로 성욕을 판단하면 어떨까하는
나였지만 이번에는 그 애액의 과다로도 가능할 것 같았다. 단
지 내가 들여다보고 있다는 것만으로 이토록 흥분한다는 게
가능할까.
그녀의 홍건한 음액은 벌써 양쪽 허벅지 사이를 흘러 그
풍만한 양쪽 엉덩이 계곡까지 반짝이고 있었다. 그 습기에 수
풀은 한 올 한 올 젖어 있었던 것이다.
아핫, 그 아찔한 탄성은 저 멀리 침대 위에 등을 대고 누운
정란이의 입술에서 터져나왔다. 당연했다. 입김을 쏘인다던가
하는 준비작업도 없이 내 얼굴은 단숨에 그녀의 엉덩이 사이
에 들이대어지고 있었다.
불가항력적이었다. 만약 제 정신이라면 몰라도 나는 천만다
행스럽게 충분히 이성을 잃고 있었다. 나도 혈기왕성한 남자
였기에 이런 주어진 기회를 거스른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
했다.
"아아, 오빠… 오빠…!"
가쁘게 나를 찾아대는 그녀였어도 내 귓가에는 들리지 않
았다. 그 순간 내 귓속을 채우고 있는 것은 오로지 무언가를
빨아들이는 흡착음이 전부였으며 그것은 그녀의 비부와 내
입술, 또는 내 혀가 이루어내는 근사한 삼중주였다.
따지고 보면 이 얼마나 오랜만에 탐하는 음부인가. 선영이
누나를 떠나보낸 후 거의 수년만의 경험, 그 정도 목 마름은
차라리 당연했다.
여성의 몸은 얼마나 많은 음수를 간직하고 있을까. 그런 한
계에 도전하는 것처럼 내 얼굴이 지분대는 곳은 점점 더 밀
려나오는 액체로 넘쳐나는 중이었다.
정란이의 상체가 이리저리 젖혀지고 있었다. 내 중심 다음
으로 예민한 그곳은 흡사 애액의 늪에 빠진 느낌이었다. 아니
그 무성한 음모와 더불어 사타구니는 여지 없는 늪이었다.
"오빠, 창희 오빠 너무 잘하는 것 같아…!"
헉헉대는 정란이의 신음소리는 자칫 숨이 넘어갈 경지였다.
조여대는 그녀의 양 허벅지로 인해 나 또한 헐떡이며 숨이
가빠지고 있었다.
졸지에 듣는 찬사였을지라도 말 그대로 코 앞이 다급한 나
는 재빨리 두 손을 그녀의 상체 쪽으로 뻗어야 했다. 요동치
는 그녀의 몸뚱아리를 제지하기 위해서였다.
"아, 안돼요. 거기는… 전 가슴이 콤플렉스란 말에요."
희한한 사실은 거기에서 하나 더 발견되고 있었다. 필시 그
녀를 붙드느라 내 손길이 그녀의 젖가슴 어딘가를 더듬은 듯,
그런데 정란이는 재빨리 그 두 손을 마주잡으며 나의 접근을
막고 있었다.
짧은 순간이었어도 분명 쥐어졌던 그녀의 유방이었다. 결코
절벽은 아니었건만 그래도 상당히 민감한 반응이었다.
정란은 그런 연유로 당연히 벗었어야 할 겉옷을 벗지 않은
모양이었다. 하기야 그런 걸 신경 쓸 여력을 남길 것은 아니
었다. 이제 두 손을 그녀와 맞잡은 자세로 나는 한 곳에만 집
중을 가하고 있었다.
그럴수록 그녀의 교성은 가파르게 한 톤씩 높아가고 있었
다. 그 교성만으로도 그녀의 성욕은 증명되고 있었다. 그 때
였다. 갑자기 으스러질 듯 그녀의 손가락들이 내 손등을 파고
들고 있었다.
"아, 오빠, 나, 나… 느, 느껴!"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런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듣기 전까
지 전혀 그녀에게서 특별한 징후를 발견해내지 못했던 나였
다. 그럼에도 아주 순간적으로 그녀는 절정에 도달하고 있었
다.
부르르, 그녀의 두 다리가 내 얼굴 양 옆에서 경련하며 꼿
꼿이 뻗어져갔다. 마치 널을 뛰듯 문질러지던 그녀의 하복부
도 함께 긴장하고 있었다.
제일 놀라운 모습은 그 때부터였다. 그랬다. 진정 그로테스
크한 한 가지 비밀을 나는 그 몇 초 동안 발견해냈다. 뭐라고
표현하랴. 마치 누군가가 아주 소량 - 전체에 비해서 그렇다
는 말이다 - 의 뜨뜻한 물을 내 얼굴에 끼얹었다 해야 하나.
그 묘한 액체가 내 콧등 위로 확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
것이 피메일 이제큘레이션(female ejaculation), 즉 여성사정
(女性射精)이라는 것은 나중에나 안 일이었다.
제25화 오빠, 제가 또 했죠?
마치 남자가 사정시에 수축을 일으키듯 정란이의 음부에서
는 찔끔이는 액체가 연달아 솟아났다. 그 분수 같은 사출(射
出)은 마지막 한 방울이 그녀의 짙은 숲 주변을 적시며 흘러
내리는 것으로 막을 내리고 있었다.
한 마디로 놀라운 경험이었다. 말로만 들었지 그 열 명에
한 사람도 드물다는 명기(名器)의 소유자를 발견하다니, 나는
그 수초간 어안마저 벙벙하여 말문을 잃고 있었다.
자신의 사타구니가 경련하는 동안에도 정란이는 까무라치
기라도 한 것처럼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내게
말을 건 것 이외에는 큰 소리로 헐떡거리지조차 않던 그녀였
다.
간간이 터져나오던 아찔한 비음만이 전부, 그나마 정란이는
벌어지려는 입술도 손가락을 깨물며 간신히 참아대는 것 같
았다. 그렇게도 적나라하게 섹스를 밝히던 아가씨가 묘하게도
정작 침대 위에서는 최대한 조용해지려 애를 쓰고 있었다.
여자들은 성관계시 가장 부끄러움을 타는 측면이 각자 다
른 걸까. 이 여자아이는 자기 가랑이 사이를 남자 앞에서 벌
려대는 것보다 스스로 신음소리를 낸다는 게 더 창피하다고
여기는 모양이었다.
어쨌든 그녀는 그 마지막 몸부림을 끝으로 한동안 움직이
지 않고 있었다. 설마 까무러치기라도 한 것은 아닌지 나는
슬그머니 그녀의 허벅지를 어깨에서 내려놓으며 침대 위의
정황을 살펴보았다.
정란이는 모로 돌아누운 채 가쁜 어깨를 오르내리고 있었
다. 그 동안 참았던 숨을 한꺼번에 몰아쉬기라도 하는 듯했
다.
"이, 임정란…"
걱정스런 목소리를 낼 즈음 그제야 깨어난 그녀는 후다닥
허리를 세우며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차마 못 볼 걸 보기라
도 한 것처럼 얼굴에 민망함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오, 오빠 미안해요…! 제가 또 그랬죠?"
"그, 그러다니…?"
"제가 또 싸버렸죠? 그렇죠?"
싸버리다 - 그 어이없는 묘사에 망측함을 느낄 새도 없었
다. 정란이는 다급히 손을 뻗어 내 얼굴과 콧잔등을 문지르려
들었다.
입이 떡 벌어질 노릇이었다. 전희(前戱)인 오럴섹스만으로
그녀에게 절정감을 느끼게 했다는 뿌듯함 때문이 결코 아니
었다. 쌌다니, 그렇다면 그녀는 오르가즘을 느낄 때 스스로에
게서 어떤 얄궂은 반응이 나오는지 이미 익히 알고 있다는
얘기 아닌가.
실로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다시 말하지만 겨우 스물을
갓 넘긴 아이가 어찌 이토록 성(性)에 대해 익숙한 것일까 나
는 그 적나라함의 깊이를 도무지 헤아리기 힘들었다.
"어떡해, 나 입으로 이렇게까지 된 건 처음인데… 많이 나
왔어요?"
정란이는 성행위가 아주 일상사인 양 주워섬기기까지 하고
있었다. 나는 엉겁결에 내 얼굴에 다가오려는 그녀의 손길을
막으며 고개를 저어야 했다.
"아아, 그나저나 오빠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저 완전히
술이 깼어요. 그거 아세요? 섹스하면 취기가 가시는 거…?"
그러자 잠시 잊고 있었다는 투로 당장 상체를 일으킨 그녀
가 호들갑을 떨어댔다. 그런가. 얼핏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
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건 남자가 사정(射精)하는 순간에
혈관을 확장시키느라 그렇다는 것 같던데, 여자인 그녀도 마
찬가지란 말인가.
"어쨌든 저만 느껴서 죄송해요… 이제 오빠도 느끼게 해드
릴게요. 어떤 게 좋으세요? 입으로 해드릴까요?"
입으로? 이런 걸 기브 앤 테이크로 보아야 하나, 아니면 봉
사를 받았으니 희생을 아끼지 않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하나. 그 말을 하고 있는 정란이의 눈동자는 말똥말똥 진지한
빛을 띠고 있었다. 내가 요구하면 어떤 행위, 그것이 설사 똑
같은 오럴섹스일지라도 즉각 응하려는 기세였다.
"아, 아냐. 나는…"
나는 필요 없어, 그러니 이제 그만 해도 돼. 글쎄다. 어쩌면
나로서는 그 말을 해야 했는지도 모른다.
사실이었다. 그 기묘한 애무를 수행하느라 저으기 흥분하고
있던 나는 분명 방금 전까지 바지 속에 터질새라 팽팽한 압
박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나는 어느새 내 발기가 순식간에 헐
렁해져 있음을 깨닫고 있었다. 찰나의 분위기만 깨져도 흥분
이 사그러지는 것은 여자의 경우로나 알고 있었건만 희한하
게도 내가 그런 경우를 겪는 중이었다.
어째서일까. 그 원인은 하도 적나라한 정란이의 행동 탓으
로 돌릴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당혹스러운 나머지 나의 그
곳은 잠시 어정쩡하게 풀이 죽어버렸던 것이다. 입으로 해드
릴까요, 그래서 나는 그 제안에 화들짝 손을 내저었다.
"왜요? 제가 입으로 해드리는 것 싫으세요?"
"아, 아니 난 저… 그, 그게 아니라…"
아뿔사, 허둥대는 나였으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왠만하면
이제 그치자는 의미인데도 정란이는 더욱 수치스런 시도를
벌이고 있었다.
"알았어요, 오빠… 그럼 그냥 해드릴게요."
그, 그냥 하자구? 뭘? 그녀는 그렇게 물을 겨를도 주지 않
았다. 침대 위에서 곧장 내게로 떨어지는, 아니 덮쳐오는 그
녀의 몸이었다.
"저, 정란아…!"
나의 제지에도 아랑곳없이 그녀는 아래에 있던 나를 엉덩
이로부터 무작정 내리누르기 시작했다. 얼떨결에 등을 대며
무너져버린 내 몸뚱아리 위로 그녀가 재빨리 걸터 앉아왔다.
"가만 계세요. 이번엔 제가 해드릴 차례니까…"
"야, 나, 나는…"
부시럭, 옴쭉달싹 못하는 나의 하반신에서 그런 움직임이
전해졌다. 순간 선뜻해지는 아랫도리의 느낌은 정란이가 직접
내 바지를 끌어내리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덜덜 몸을 떨면서도 제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이어 내 물건
이 틀림없이 허공을 향해 드러난 것 같았다.
"어머… 오빠…!"
작은 탄성이 들려왔다. 그 바람에 난처한 시선으로 그녀 쪽
을 내려다본 나는 기겁을 하고 말았다.
당연했다. 그녀의 그 음성은 내가 우려했던 대로 실망감에
따른 것이 전혀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서서히 일어서는 그
무엇, 어처구니없게도 내 아랫도리는 언제 그랬냐는 양 다시
금 발기해가고 있었다.
제26화 가임기간 아니니까 그냥…
차라리 그건 내 스스로 배신감을 느껴야 할 모습이었다. 조
금 전만 해도 한심스러울 정도였는데 채 일이 분도 안 지난
새 무슨 기이한 조화라도 부려진 것 같았다.
실로 아연해지는 나였다. 하지만 내 사타구니를 들여다보던
정란이는 후후거리는 미소마저 짓고 있었다.
"봐요… 오빠도 이렇게 흥분했으면서…"
개구쟁이 같은 표정으로 내 기둥을 훑고 쓰다듬는 그녀. 그
렇기에 그 손아귀 속에 쥐어진 팽창은 더욱 가속되어갈 따름
이었다. 나로서는 한참 얼굴이 붉어질 일이었다. 결국 의지나
말과는 전혀 달리 나의 분신이란 놈은 그 주인에게 엄청 당
황스러움만 안겨주는 꼴이었다.
"잠깐만요…!"
으윽, 나는 목구멍 속으로 외마디 소리마저 삼켰다. 꼼지락
거리는 정란이의 손가락들은 이내 내 기둥을 곧추세우며 어
딘가로 이끌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플레어 스커트 자락을 허리 위로 끌어올리
며 허연 아랫배를 움직여갔다. 그 의도가 무엇인지 비로소 알
아차려졌다. 정란이는 최종 삽입을 위해 자세를 취하는 중이
었다.
퍼뜩 정신을 차려야 했다. 다름 아니라 그 치마속이란 아무
것도 가려진 것 없는 노팬티 상태라는 데에 생각이 미쳤던
것이다. 하기야 아까부터 흠뻑 젖어넘칠 그녀였기에 추가된
전희는 따로 필요 없을 터였다.
"정란아! 기, 기다려봐…!"
나는 후닥닥 상체를 일으키고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
갑작스런 훼방에 동그래진 시선이 돌아왔다.
"왜 그러세요? 다르게 하고 싶으세요?"
"다, 다르게?"
"네. 제가 위에서 하지 말까요…? 오빠 원하는 대로 해드릴
게요. 앞으로 하는 게 싫으시면 엎드릴 테니까 뒤에서 하실래
요? 남자들은 그런 자세 좋아하던데."
뒤? 후배위? 이것 참. 또 한 번 기막힌 한숨소리가 흘러나
올 이야기였다.
"어휴, 그런 게 아니야. 내 얘기는…"
뭐라 말할거리를 찾아 나는 말투를 더듬었다. 골치 아픈 머
리통은 자꾸만 멍해졌다.
"이러다… 이러다가 만약… 혹시라도…"
"으응… 피임 때문에 그러세요? 신경쓰지 말고 안에다가 사
정해도 돼요. 저 가임기간 아니잖아요."
가임기간, 즉 배란기가 아니다 - 생리가 지난 지 얼마 안됐
다고 하므로 틀린 말은 아니리라. 어쨌든 그 완벽한 사전설명
에 할 말 막힌 나로서는 말리던 손길을 거두지 못하고 망설
여야 했다.
과연 어째야 하는 걸까. 지금까지도 충분하다 여겨지는데
정녕 그 선을 넘어 가장 결정적인 행위를 저질러야 하는 걸
까.
"얼른요, 창희 오빠… 여기까지 와놓고…"
정란이는 그런 내 눈치를 아는지 작은 목소리로 책망까지
해대고 있었다. 마침내 내게서 나올 다짐은 단 하나 뿐이었
다.
"아, 알았어. 정란아… 그, 근데 하나만 더 약속해줘."
"약속요?"
"그래. 너랑 나는, 아니 우리는… 정말 이번 한 번 뿐이야.
알았지?"
이번 질문에는 침묵이 없었다. 그러자 그녀의 대답소리가
곧바로 들려왔다.
"그건… 그건 잘 모르겠어요."
"왜… 왜 몰라?"
"저 아까 첫 번째 약속, 자제하도록 노력한다는 그 약속은
받아들일 수 있어요. 그건 오빠가 진심으로 저를 생각해주셔
서 한 말이니까요. 그렇지만 다시는 오빠랑 섹스하고 싶어하
면 안된다는 건 잘… 받아들이기 힘들어요."
"어, 어째서…?"
"왜냐면 그건… 오빠가 여자의 심리를 너무 모르고 계시는
것 같아요."
내가 여자의 심리를 모른다? 펄쩍 뛸 뚱딴지 같은 답변임
에도 정란이는 침착하게 설명을 계속했다.
"솔직히 저도 지금까지 원칙적으로는 한 사람에게만 빠지는
걸 거부했었어요. 그렇지만 저는요… 아니 여자는요, 아무한
테나 이렇게 섹스하자고 하지 않아요. 아무리 많이 하더라도
그건 마음이 통했을 때에요."
그게 여자의 심리란 건가. 좋다. 그런데 그게 나와 무슨 상
관인가.
"그래서 이번엔 장담 못하겠어요. 제 생각에는… 이번처럼
진실하게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그런 사람, 창희 오빠
같은 사람을 만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아서요."
그러니까 기왕이면 마음을 터놓고 자기의 그런 밝힘증도
이해하는 남자와 섹스를 하고 싶다. 아마도 그녀의 이야기는
그런 뜻인 듯했다. 어쨌든 나는 목구멍으로 마른침만 꼴깍였
다.
"그, 그건 말이 안돼. 그렇다고 정란이 니가 나와 계속 이럴
수는…"
"네, 그것도 알아요. 오빠한테는 애인도 있고… 저도 오빠에
게 그 이상 연연하지 않아요. 그러니 결국 그것도 노력한다는
말씀밖에 못 드리겠네요. 적어도 당분간은…"
적어도 당분간. 아마도 그게 정란이로서는 최선의 답변인
모양이었다. 아프게 입술을 깨물어야 했다. 행여 내가 말을
실수한 것이 아니기를 바래야 하는 까닭이었다.
"좋아. 그, 그렇다면… 최소한 네가 말한 원칙은 지키겠니?"
끄덕끄덕 그녀의 고개가 묵묵히 동의의 표현을 보였다. 원
칙, 나에게는 정란이가 한 번 이상 같은 남자와 잠자리를 하
지는 않는다는 그 말을 믿는 도리밖에 없었다.
"이제 도로 누우세요, 오빠."
좌우지간 그리하여 최후의 타이밍만이 유일하게 남아 있었
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진행되는 다음이었다.
그녀가 가슴팍을 밀어대자 이미 힘이 빠진 나는 재차 등을
대고 넘어졌다. 내 몸 위를 가로지른 무릎걸음이 위치를 조정
했다. 나는 훅, 숨을 멈추었다. 눈을 감아도 똑똑히 알 수 있
었다. 아주 끈적하게 바스락거리는 어느 부위에 내 물건이 문
질러지고 있었다.
"아…!"
삽입 전 윤활유를 바르기 위한 그 마찰에 이어 짤막한 교
성이 터져나온 것은 정란이에게서였다. 직후 내 기둥 끝은 미
지의 동굴 속으로 미끄러지며 쭉 들어서려 하고 있었다.
그 근사한 감촉은 가히 환상적이었다. 물론 나도 흥분했던
차, 실로 수년만의 그런 결합이었다.
미처 완전히 삼켜지기도 않았건만 내 몸 끝은 힘차게 뭔가
를 분출하기 일보직전이었다. 따라서 솔직한 내 심정은 차라
리 빨리 넣어달라고, 그리고 움직여달라고 애원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러나 결코 그렇게 되지 못할 현실이 찾아오고 있었다. 왜
냐, 그 현실은 내 자신의 자제력 이전에 제 3자적 요인이 외
부에서 닥쳐온 때문이었다. 순간 정란과 나는 둘 다 한꺼번에
소스라쳤다. 하마터면 심장마비라도 걸릴 노릇이었다.
쿵쿵쿵 -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불의
의 침입자가 여관방 바깥에서 다급히 외치고 있었다.
"정란아! 창희 형…! 안에 있어요?"
맙소사. 그것은 형준이의 목소리였다.
제27화 아아, 아직 들어오면 안돼!
맙소사, 그건 정말 맙소사였다. 나는 순식간에 얼어붙고 말
았다. 막 들어갔는지 아니면 몇 번쯤 들락이고 있었는지, 그
조차 분간할 겨를이 없었다.
내 놀라움은 거의 상상을 초월하고 있었다. 술집에서 정란
이를 업고 나온 지 얼추 한 시간 좀 넘게 지났다지만 아직
자정도 되지 않은 무렵이었다. 고로 아직 한창이라 해도 과언
이 아닐 2차 술자리일 텐데, 어째서 여학생도 아닌 형준이가
지금 이곳에 나타났단 말인가.
"정란아, 진짜 안에 없는 거야?"
숫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는 형준이였다. 그러느라 밖에
서는 숫제 황당무계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 소란에 화가
난 어느 방 손님이 카운터에 신고라도 했는지, 이제는 찰싹대
는 슬리퍼 소리와 함께 예의 그 여관 주인 아주머니까지 등
장하고 있었다.
"이봐, 학생! 학생 지금 뭐하는 거야? 뭔데 이렇게 온 여관
이 떠나가도록 소리를 질러?"
"아, 아주머니…! 아까 이 방에 들어온 사람들 어디 갔어
요?"
"이 방? 그 경영학과 남학생하고 여학생?"
"네. 아무리 불러도 안에서 대답이 없어요. 그 사람들 도로
나갔어요?"
"글쎄… 아닌데…?"
"정말이에요? 그럼 왜 안에서 대답이 없죠? 이상하잖아요,
나가지도 않았다는 사람들이 없다는 게…!"
"아니 그걸 낸들 어떻게 알겠수? 그래도 다른 손님도 있는
데 이러면 어떡해? 이건 영업방해라구!"
환장하고도 남을 이야기들. 하지만 더욱 당황스러운 것은
그 바깥 사정이 아니었다.
숨소리마저 멈춰질 지경의 나에 비해 그 동안에도 정란이
는 얼토당토 않은 행동을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경황없음에
아마도 정조준되었던 내 물건이 슬쩍 삐져나왔던 것 같았다.
그런데 그녀는 그 와중에도 황급히 자신의 가랑이 사이로 손
을 뻗어 그 기둥을 다시 세우는 게 아닌가.
그 애탄 부름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행동이었다. 당
황한 내 목소리는 당장 쥐 죽은 듯 낮춰져야 했다.
"야, 지, 지금 뭐하는 거야? 밖에 형준이 와 있잖아…!"
"아아… 몰라요, 찾다가 없으면 그냥 갈 거에요…!"
미치겠다. 밖에는 문 두드리는 남자후배, 위에는 벌거벗은
엉덩이를 문질러대는 여자후배 - 그 사이에 낀 나로서는 도
리어 정사장면을 몽땅 들켜버리는 쪽이 낫겠다 여겨질 상황
이었다. 게다가 여관방 문 앞에서는 한층 더 말도 안되는 목
소리들이 들려오는 중이었다.
"그리고 이러는 건 두 사람한테 방해되잖아, 학생…!""
"바, 방해가 되다뇨?"
"아이구, 척 보니 그 두 사람 애인 사이인 거 같더구만
뭘… 그러니 한창 정신 없이 재미 볼 무렵인데 밖에서 부른
다고 나와?"
정신없이 재미 볼 무렵? 입이 떡 벌어질 이야기였다. 하기
야 그 말 그대로이기는 한 정란이와 나였지만, 그렇다고 형준
이가 그 오해 아닌 오해를 하도록 만들 수도 없는 노릇이었
다.
"아니에요, 그럴 리가 없어요…!"
"아니 왜 그럴 리가 없어?"
"그, 그 여자애는…"
"아까 여학생 말이야? 아니 그 아가씨가 무슨 학생 애인이
라도 돼?"
보나마나 반쯤 비아냥거리는 주인 아줌마의 목소리였다. 그
럼에도 그 말을 되받는 형준이가 훨씬 더 놀라웠다.
"네…! 제 애인이란 말에요!"
"네? 에그머니, 그럼 그 아가씨가 진짜 학생 애인이라는 거
야?"
"그래요, 아주머니. 그러니까 열쇠로 문 좀 열어주세요…!"
세상에. 도저히 견딜 사태가 아니었다. 진짜 열쇠로 문이라
도 따고 들이닥칠까봐 와락 겁이 났다. 생각해 보니 유독 여
기 정란이에게 관심을 보이던 형준이였다. 그렇다면 혹시? 나
는 눕혔던 허리를 벌떡 일으키고 정란이의 둔부를 붙잡았다.
"아이, 왜요…?"
"안되겠어, 정란아. 저리 비켜…!"
"조금만 더요… 조금만 더…"
바깥처럼 당당하지 못할 우리에게서는 쥐 죽은 톤으로 가
쁜 대화가 오갔다. 그럼에도 정란이는 순순히 내 몸뚱아리 위
에서 물러서지 않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내가 쥔 자신의 엉
덩이에 의지하며 연신 거세게 아랫배를 내 사타구니에 마찰
해대는 그녀였다.
나는 그 어처구니 없는 모습에 아연실색해버렸다. 그런데도
기절초풍할 일은 계속되고 있었다. 정말 열쇠라도 들고 왔는
지 딸깍대기 시작한 문고리 - 실로 위기일발이었다.
의외의 일이 벌어진 것은 그 때였다. 다급해진 정란이가 먼
저 외치고 있었다.
"아아, 안돼…! 아직 들어오지 마!"
아찔한 비음이 잔뜩 섞인 탄성이었다. 나는 완전히 넋을 잃
고 말았다. 내 귀에 그것은 그 누가 들어도 방안에서 어떤 일
이 벌어지고 있는지 역력히 짐작케 하는 음색이었던 것이다.
도대체 대책 없는 아가씨였다. 결국 나는 아쉬운 콧소리를
내는 그녀를 억지로 밀쳐내고 허리춤을 추스려야 했다. 내 분
신이 반 강제로 그녀의 하복부에서 뽑아져 나왔다. 이미 애액
이 잔뜩 묻어버린 그곳이었다.
"정란아? 너 안에 있어?"
"그, 그래. 나 안에 있어…!"
"무슨 일이야? 지금 문 열고 들어 간다…!"
그제야 심각함을 깨달은 정란이가 자지러질 눈빛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반면 워낙 서두는 통에 나는 미처 혁대조차 채우
지 못하는 찰나였다.
"안돼, 기다려! 지금 들어오면 안돼…!"
발작적으로 소리지른 그녀가 흡사 문고리를 마주 잡기라도
할 요량으로 서둘렀다. 어느새 그녀는 나보다 빨리 자기의 헝
클어진 치마자락을 끌어내리고 있었다.
나도 앞 뒤 가릴 것 없이 허겁지겁 일어서서 옷매무새를
챙겼다. 에유, 학생들 안에 있네… 시큰둥한 여관 주인의 목
소리는 다행히 찰싹이는 슬리퍼 소리를 끌며 사라져갔다.
급기야 떨리는 손으로 마지막 남은 바지춤을 끌어올리자
한 발 앞서 정란이가 먼저 문으로 다가서고 있었다. 아주 짧
은 그 시간에 엄청난 시련에 직면하는 나였다.
숨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러나 함부로 서툰 짓을 벌이
기도 쉽지 않았다. 그럼 숨지 않는 한 형준이 녀석에게 뭐라
고 둘러대야 하나.
정란이는 그 해답을 찾을 여유도 주지 않았다. 교통정리를
끝낸 나를 확인한 그녀가 잠겼던 문을 즉시 벌컥 열어주고
있었다.
"정란아!"
제일 먼저 보인 것은 방 안으로 왈칵 쏟아져 들어오는 빨
강머리였다. 술냄새가 밀려드는 것과 거의 동시였다.
당연히 취중이었으므로 그런 소란을 피웠을 형준이, 하지만
녀석은 내 안중은 살피지도 않고 충혈된 눈동자로 우선 정란
이를 다그치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야? 있으면서 왜 대답 안했어?"
"그, 그게… 잠 들어서… 아, 아니 창희 오빠랑 얘기 좀 하
느라고."
"정말이야?"
녀석의 눈길이 내게 부라려졌다. 진짜 그랬던 것이냐, 내게
서 그 증거를 찾으려 든다는 걸 단박에 알아차릴 시선이었다.
제28화 여관방 한가운데의 팬티
뭐라 하랴. 나는 한참 나이 어린 후배 앞에서 몸 둘 바를
몰라야 했다. 찔리는 가슴은 뜨끔하는 정도가 아니었다. 만약
가능하기만 하다면 이 자리에서 도망이라도 치고 싶은 기분
이었다.
"그럼 내가 거짓말한다는 거야?"
그것을 구해주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정란이였
다. 앙칼지게 쏘아부치는 그녀의 목소리, 형준이는 당장 그
힐난에 허둥거리고 있었다.
"아, 아냐. 나는 그렇게 불렀는데도 네가…."
"뭐야? 내가 얘기한 것 못 들었어? 창희 오빠랑 조용히 얘
기하느라 못 들었다고 했잖아."
휘둥그래진 눈으로 나는 말싸움을 벌이는 두 사람 곁에서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말아야 했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당
당한 것은 정란이 쪽이었고 도리어 그에 쩔쩔매는 것은 형준
이였다.
어찌 저렇게 뻔뻔스러움이 가능한 걸까. 여자의 가장 강력
한 무기란 눈물이라는 얘기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내가 보기에 여자의 강력한 무기란 바로 저런 잡아떼기 같
았다. 나는 그런 여성을 단 두 명 더 알고 있었다. 그 옛날
군 입대 전 하룻밤을 보냈던 두 사람, 보영이와 최 마담 뿐이
었다.
형준이가 차마 나에게 그녀의 말이 진실이냐고 묻지 않은
것만이 다행이었다. 어째야 하는지 우왕좌왕하는 나인데도 논
쟁을 벌이던 두 사람은 잠시 후에야 진정을 하고 있었다.
"정말이죠, 창희 오빠?"
정란이가 고개를 돌려 나의 동의를 구했다. 나로서는 머쓱
하게 그렇다 거짓말할 도리밖에 없었다.
"으, 응… 그, 그게…"
"어쨌든 고마워요, 오빠."
고맙다니? 뭐가? 내가 더듬대자 그녀가 말허리를 잘라주고
있었다.
"오빠 얘기 잘 들었어요. 덕분에 저 완전히 술이 깼어요."
술이 깨게 해줘 고맙다 - 하지만 그녀가 술을 깰 수 있도
록 내가 한 일이라고는 그 아찔한 오럴 섹스가 전부였다. 그
렇다면 그 애무해 준 것이 고맙다는 얘기일까.
어쨌든 그 천연덕스런 말솜씨에 형준이의 멍청해진 시선이
나를 돌아보았다. 응당 녀석으로서는 그 빤한 위장전술을 알
턱이 없었다.
"어… 대체 무슨 얘기를 해주셨길래…"
순진하게도 궁금해 하기까지 하는 그였다. 졸지에 덩달아
어리벙벙한 시야에 정란이가 형준이의 뒤켠에서 눈짓을 찡긋
거리는 게 보였다. 내가 다시금 허둥대려들자 다시 한 번 그
녀가 나서고 있었다.
"창희 오빠가 오빠 애인 얘기해줬어. 미국에 있다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좌우지간 그 말을 얼핏 하기는 했으니,
듣고 있던 형준이도 그제야 이해가 간다는 뜻으로 마지 못해
고개를 꾸벅이고 있었다.
"그러셨어요? 저는 그것도 모르고… 죄송해요, 형. 시끄럽게
굴어서."
나로서는 아니야, 하며 스스로 가증스러운 웃음마저 곁들어
야 했다. 종내 정란이와 나는 형준이를 완벽히 속이고 있는
셈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내가 뒤통수를 긁을 무렵이었다. 무심코 나
의 시선과 정란이의 시선이 재차 마주치고 있었다.
어, 뭐지? 나는 순간적으로 그녀의 아우성치듯 흔들리는 눈
빛에 의아해졌다. 그녀가 입 모양까지 뭐라뭐라 흉내를 내며
내 시선을 급히 이끌고 있었던 것이다.
으악, 찰나 속으로 아뜩한 비명을 질러야 하는 나였다. 정
란이가 열심히 눈짓으로 가리키는 방향, 그것은 바로 방바닥
이었다.
여관방 한가운데에 뭐 그리 놀라운 것이 있을까… 절대 그
게 아니었다. 그녀의 시선을 좇은 나는 까무라쳐야 했다. 그
곳에 덩그마니 떨어져 있는 게 바로 크나 큰 문제였다.
그것은 한 뼘 남짓하게 구겨져 있는 분홍색 천조각이었다.
눈앞이 당장 캄캄해졌다. 아까 문을 열어주느라 정신 없던 그
녀와 나, 그러니 우리 두 사람 다 신경 쓰지 못했던 그 분홍
색 헝겊은 다름 아닌 정란이가 벗어놓았던 그녀의 조그만 팬
티였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형준이의 곁에서 자신의 그 짧은 스커
트자락을 추스리는 정란이 - 그렇다면 그녀는 치마 속에 아
무 것도 입은 게 없다는 이야기 아닌가.
이제 내 눈빛도 덩달아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일단 그
건 나중 일이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형준이가 지금껏 그
것을 보았느냐 보지 못했느냐, 그것이었다.
가뜩이나 미심 쩍어하는 그 후배 남자아이였으니 행여 그
벗어진 팬티를 발견했다면 우리의 거짓말은 진작에 들통이
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마 위로 진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아무런 방법이 없었다. 두 눈을 질끈 감고 최대한 빠른 동작
으로 그것을 주워올리는 이외에는.
영점 오초도 안 걸렸으리라. 나는 신속히 허리를 굽혀 그
분홍빛 팬티에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것은 마술사의 동작처
럼 순식간에 내 바지 호주머니 속으로 쑤셔넣어졌다.
"그게 뭐에요, 형…?"
아뿔사, 내 소원과는 달리 형준에게선 그런 질문이 들려왔
다. 그 때였다. 날카로와진 게 틀림 없는 어투로 정란이가 쏘
아부치고 있었다.
"나 이제 나가야겠어!"
천만다행이란 이런 경우에 쓰는 말이었다. 마치 들키던 말
던 체념하는 것 같은 그 통보에 형준이의 의문이 퍼뜩 거두
어졌던 것이다.
"어? 그냥 집에 가려구?"
"그래. 술도 깼으니까. 형준이 넌 뭐할 거야?"
"나, 나는 뭐…"
"다시 그 술집에 돌아갈 것 아니지? 그럼 나 택시나 잡아
줘. 버스는 끊겼을 테니."
그 바람에 난처하기 짝이 없던 그 순간이 넘겨지고 있었다.
나로서는 넘어갈 것 같던 숨이 다시 쉬어지는 게 가능할 정
도였다. 그런 속사정을 알 리 없는 형준이는 짐짓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내 의향을 묻고 있었다.
"창희 형, 형은 어쩌실 거예요?"
"나, 나?"
눈에 띄게 화들짝대야 하는 나는 비로소 어째야 할지 갈팡
질팡거렸다. 이제 와 술집에 되돌아가기도 그렇거니와, 그렇
다고 이 여관방에 머물러 있어야 할 이유도 만무한 까닭이었
다.
나도 그럼 집에 가야지 뭐, 아무래도 이렇게 대답해야 할
성 싶은 나인데, 시련은 거기에서 그쳐질 게 아니었다. 문득
방 안으로 들어선 형준이 녀석이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
고 있었던 것이다.
"근데요, 형… 형 콧등에 묻은 게 뭐에요?"
콧등? 영문을 모른 나는 무심결에 여관방 한켠의 거울을
돌아보고는 그만 또 한 번 온몸에 소름이 돋아야 했다. 아닌
게 아니라 내 콧등 한가운데에는 버짐 같은 허연 자국이 말
라 붙어 있었던 것이다.
그 자국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뻔했다. 그 액체는 정사의 증
거물, 즉 애액의 흔적이었다. 저기 저 신입생 여자아이 정란
이가 오르가즘 동안 내 얼굴 위로 분출시킨 바로 그 애액, 참
으로 엉뚱한 데서 드러나는 그 불미스런 증거물에 나는 허겁
지겁 코를 싸쥐었다.
제29화 노팬티로 집에 가는 여대생
"야, 너 취했어? 오빠 얼굴에 뭐가 묻었다고 그래? 그나저
나 나 늦었어. 안 나갈 거야?"
역시 그 위기에서 탈출시켜주는 것은 정란이의 기지(奇智)
였다. 그녀의 재촉성 책망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도 형준이
가 선선히 돌아서고 있었다.
"아, 아냐. 약간 취했지만… 형광등 불빛이 너무 어두워서
그런가? 알았어, 얼른 가자."
"창희 오빠도 가실 거라면 얼른 나오세요."
그래도 그의 팔을 잡아 끌며 시간까지 벌어주는 정란이였
다. 그 덕에 나는 재빨리 콧등을 문질러 닦고서 한 발짝 늦게
그들을 따라나설 수 있었다.
여관을 나온 우리 세 사람은 주저 없이 큰 길가로 향해야
했다. 앞장 선 형준이의 걸음만이 왠지 당당해 보일 뿐 정란
이와 나로서는 어색하기만한 귀가길이었다. 그렇게 우두커니
두 남녀 후배의 뒤를 따르는 동안에도 그녀는 몇 발자국마다
눈치채지 못하게 등 뒤의 나를 흘끔거리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어쩌지 못할 노릇이었다. 워낙 공주님이라도 떠
받드는 양 형준이가 그녀의 곁에 딱 붙어있는 통에 내게는
몰래 주머니 속 팬티를 되돌려줄 기회마저 좀처럼 엿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건 택시를 잡아야 할 무렵에도 여전했다.
"정란아, 니가 먼저 타."
"돼, 됐어. 형준이 너부터…"
"아냐. 창희 형이랑 나는 남자잖아."
그 말에 정란이는 뭐라 말해 달라는 시선으로 나를 돌아보
았으나 어차피 뾰족한 방도가 없기는 매한가지인 나야 그저
멈칫대는 게 고작이었다. 마침 형준이가 기사도 정신을 발휘
하기 위해 잠시 차도로 내려서자 참다 못한 그녀는 슬그머니
내게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건네고 있었다.
"오빠 정말 지금 갈 거에요?"
"지, 지금…?"
"네. 우리 다른 데 가서…"
다른 데라. 그럼 다른 여관에 가서 못 다한 섹스라도 하자
는 얘길까. 그 당혹스런 청에 얼떨떨해져버린 나는 순간적으
로 주머니 속에 쥔 그녀의 팬티 생각조차 까맣게 상기하지
못했다.
단지 그 몇 초 간이 유일한 찬스였다. 이윽고 길가에서 돌
아선 형준이가 큰 소리로 우리를 부르고 있었다.
"정란아, 얼른 와! 여기 택시 잡았어…!"
오빠… 아쉬운 빛이 가득 담긴 정란이의 눈동자를 들여다
보면서도 나는 우물쭈물거리고 말았다. 급기야 우겨대는 형준
이의 손에 의해 제일 먼저 차를 타야 하는 것은 그녀였다.
택시 안에 태워졌어도 계속 나를 쫓는 그녀의 시선이었지
만 애써 외면해야 했다. 도저히 그럴 용기가 나지는 않기 때
문이었다.
그 차가 출발하자 다음은 형준이 녀석의 차례였고, 마지막
이 나였다. 그리고 마침내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
서 나는 수 많은 상념을 거듭하느라 머리가 지끈거릴 수밖에
없었다. 비록 불발에 그쳤다고는 해도 제대 후 처음으로 치루
게 된 정사(情事)의 여파 탓이었다.
한숨이 쉬어졌다. 바지 주머니 속으로는 정란이가 벗어 준
그 팬티가 그대로 만져지고 있었다. 놀랍게도 그 조그만 천자
락은 아직도 야릇한 향의 액체에 젖어 끈적이고 있었다.
그 액체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있는 나로서는 그 귀가길
도중에도 수시로 얼굴이 붉어질 따름이었다. 그에 겹쳐 택시
에 오르기 직전까지도 안타깝게 바라보던 그녀의 표정이 눈
에 선했다.
만약 아까 형준이를 먼저 보냈다면 어찌 되었을까? 방해자
없는 다른 여관으로 장소를 옯기게 되었을까?
아니 그런 곳까지 갈 필요도 없었다. 혹시 그 아찔한 순간
에 형준이가 그녀를 찾으려 그 여관에 나타나지 않았다면 또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우리 두 사람은 그렇게 끝까지 - 최
소한 말 그대로 본격적 삽입과 사정까지 - 동침을 하게 되었
을까?
필경 그랬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스라한 고개를 흔
들었다. 따지고 보면 의문은 거기에서 멈출 것도 아니었다.
나는 형준이를 떠올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설마 그 녀석이 뭔
가 눈치챈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계속 들고 있었다.
결정적 순간에 들이닥쳤던 녀석이니 그 방음장치 부실한
여관방 문가에 귀라도 대어봤다면 당장 이야기는 달라지게
될 것이었다. 그나마 신음소리를 참았던 정란이였기에망정이
지, 그렇다 해도 안에서 그녀와 내가 두런거리며 섹스 운운하
는 소리란 사라질 리가 없으니 말이다.
게다가 그 놈의 팬티를 주울 때 그게 뭐냐 궁금해조차 하
던 그였다. 그러므로 어쩌면 형준이는 어렴풋이나마 그 방안
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충분히 알면서도 모르는 체해준
것일지도 몰랐다.
집에 돌아온 나는 그 팬티부터 서랍 속 깊숙히 감췄다. 그
런 상상들은 모두 노출증처럼 나를 자극하고 있었다. 괴로웠
다. 피곤한 몸을 뉘였어도 흠뻑 젖었던 정란이의 기억에 밤새
뒤척일 게 뻔했다.
불현 듯 그 묘한 상상에 미치자 내 아랫도리는 어이 없게
도 다시금 고개를 쳐들고 있었다. 수음이라도 하지 않는 한
잠들지 못할 밤이었다.
* * *
그렇게 하룻밤을 지샌 다음날 아침 나의 설익은 잠을 깨운
것은 신나게 삐리릭거리는 전화벨 소리였다.
아무도 그 전화를 받지 않고 있었다. 얼핏 흘낏거린 탁상시
계는 벌써 한낮, 부모님은 두 분 모두 어딘가 외출중인 모양
이셨다. 머리 맡을 더듬어 받아들자 전화기는 예상 외로 낯선
여자의 목소리를 전하고 있었다.
"여보세요?"
퍼뜩 잠이 달아났다. 나를 찾는 여자 목소리란 좀처럼 드문
까닭이었다. 그럼에도 그 기대는 잠깐이었다. 건너편은 선영
이 누나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창희니? 나야, 명희."
"어… 며, 명희 선배."
"후훗, 선영이가 아니라서 실망했지?"
"아, 아니에요. 그 쪽은 아직 한 밤중일 텐데요 뭐…"
족집게 같은 그 말에 떨떠름거리자 명희 선배에게선 핀잔
부터 꺼내지고 있었다.
"참, 너 어제 어떻게 된 거야?"
"어제요…?"
"그래. 술 취한 여자애 하나 맡겼는데도 감감무소식이었잖
아? 난 너 돌아올 줄 알고 소주집에서 한참 기다렸는데."
"그, 그게… 가려고 했지만 너무 늦은 것 같아서…"
"그래서 곧장 집에 간 거야? 그럼 그렇다고 말이라도 해줘
야지. 맞아, 정란이는 어떻게 됐니?"
"저, 정란이요?"
정란이. 원죄처럼 가슴 속이 뜨끔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
까.
"그냥… 그냥 거기서… 술 깨라고 얘기 좀 하다가 택시 태
워 보냈어요."
"어머, 그럼 여관까지 가긴 간 거야?"
"그게 그러니까… 네."
"그랬구나. 별 일은 없었지?"
별 일 - 그저 넘길 말임에도 나는 연이어 찔리는 마음 속
을 느껴야 했다. 그녀의 그 질문은 여관방 안에서 두 사람 사
이에 모종의 관계가 있었느냐 없었느냐, 마치 그런 뜻으로 들
리고 있었다.
"없었… 없었어요."
꼴깍, 마른침이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제30화 여자후배 속옷 빨기
별 일 없었다, 라는 거짓말 한 마디에 당장 간밤의 황당무
계한 기억이 되살려졌다. 이마 위에는 서늘한 식은 땀 한 방
울마저 흐르는 것 같았다.
"그래? 별 일 없었다면 다행이네."
그으래, 괜시리 길게 끌며 들리는 그녀의 혼잣말은 아마도
내 자격지심일 터였다. 어쨌건 간에 묘한 뉘앙스를 풍기는 대
답 후에야 명희 선배는 자신이 전화를 건 본래 목적을 꺼내
고 있었다.
"그건 그렇고… 창희 너 언제쯤 학교에 다시 나오니? 내가
좀 만났으면 해서 그러는데."
"하, 학교로요? 왜요?"
"왜긴 왜야. 너한테 긴히 할 말이 좀 있어서 그렇지. 사적인
얘기야."
"사적인… 사적인 얘기요? 지금 얘기하면 안되는 건가요?"
"응, 전화로는 얘기하기 곤란한 문제라서 그래."
전화로도 하지 못할 사적인 얘기라. 설마하는 감정에 사로
잡힌 나는 적잖이 긴장이 되었다.
당연했다. 나로서는 행여 이 명희 선배가 지난밤과 관련해
무언가 눈치챈 것은 아닐까 지레 겁을 집어먹어야 하는 때문
이었다. 그렇지 않은가. 설사 그녀만은 모를지라도 신입생들
- 정란이나 형준이의 동기들 - 사이에서는 어제 나와 정란이
가 여관방 안에서 단 둘이 한 시간이나 넘게 함께 있었다는
소문이 벌써 좌악 퍼져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유를 불문하고 아직은 정란이를 신뢰할 수 없었다. 아무
리 그녀가 내게 연연하지 않겠다 약속을 했다 해도 그것은
자신과 섹스해달라 요구하기 위해 꺼내놓은 공수표에 불과했
다. 따라서 일단 학교에서 들려오는 얘기란 모두 내게 부담감
을 느끼게 하는 것들뿐이었다.
"그, 그래도 무슨 얘기인지…?"
"아유… 뭘 그렇게 꼬치꼬치 캐물어? 그냥 창희 네 학교생
활에 관해서 진지하게 의논 좀 하자는 거야."
내 학교생활에 대한 의논? 그렇지만 명희 선배는 점점 더
내가 그 의중을 짐작하기 힘들게 만들고 있었다.
결국 나는 일단 핑계를 대며 주말이 지나면 학교에 들르겠
다 약속을 해야 했다. 그럼 그 날 학과 사무실로 와, 창희야
- 그렇게 전화를 끊고 났어도 남아 있는 의문은 여전했다.
그렇다면 어제 형준이가 보인 그 불시의 출현은 어떻게 된
연유일까. 설마 그 녀석이 나타난 게 지금 여기 명희 선배와
관련이 있는 건 아닐까. 물론 차마 그 사실을 묻지는 못할 일
이었다.
부디 정란이나 형준이의 문제가 아니기를, 그제야 나는 얼
핏 드는 생각에 서둘러 책상 서랍을 뒤적였다. 그리고 그 불
미스런 사건의 증거를 찾아낸 나는 절로 한심스러운 고개를
떨구어야 했다.
바로 정란이의 팬티였다. 민망했던 지난 밤의 흔적조차 어
느새 말끔히 말라붙은 그 조그만 천조각은 내게 한숨소리만
이 새어나오게 만들고 있었다.
차라리 어딘가에 버렸어야 옳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왠지
선뜻 그럴 용기가 없어진 나는 망설이던 끝에 그것을 들고
화장실을 향했다. 어처구니없게도 나는 무슨 연인에게서 건네
받은 손수건이라도 되는 양 그것을 깨끗이 빨아 돌려줄 생각
을 하고 말았던 것이다.
어쩌면 그런 노골적인 아이가 오히려 그 자유분방함 만큼
편한 스타일을 찾는다는 얘기일까. 펼쳐보았자 두 손바닥을
덮기에도 모자라는 크기에 아주 평범한, 레이스나 무늬 따위
가 달려있지 않은 순면제의 그 팬티는 적나라하던 정란이의
색광증(色狂症)과는 달리 의외로 수더분한 스타일이었다.
손쉬운 그 빨래감 앞에서 나는 잠시 동안 골치 아프게 고
개를 저었다. 아마도 태어나 여자 속옷 빨래를 해본 것은 그
때가 처음일 테지만 그나마 마침 집에 아무도 없는 것이 다
행이었다. 게다가 그 여자 팬티를
이렇게 된 바에야 아예 나의 노력에 맡기겠다는 뜻인지, 정
란이는 뒤쪽 침대로 상체를 눕혀버리고 있었다. 그녀가 발을
움츠렸고 그에 따라 내 상체는 자연스럽게 그녀 쪽으로 기울
었다.
"아까 많이 젖어서… 씻었어요."
그제야 부끄러운지 잦아드는 그녀의 속삭임이었다. 조용히
그녀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는 모습이 보였다. 역시 그렇게
나 당당했어도 결정적인 순간에 이르자 민망함을 아는 듯했
다.
"얼른 시작하세요…!"
나는 떨리는 손을 허벅지를 덮고 있던 그녀의 치마폭에 가
져갔다. 불을 끄지 않아 훤한 방안, 치마폭을 걷어올리자 그
맨살의 하복부가 몽땅 한 눈에 드러나고 있었다.
고개를 파묻기 위해 나는 그녀의 종아리를 살며시 들어야
했다. 짙은 음모에 가려진 정란의 사타구니가 불빛 속으로 떠
올랐다.
나로서는 어떻게든 합리화시키고 싶었다. 돌이켜 보면 흔들
리고 있는 내 마음이란 이미 아까부터 그런 조짐을 겪어야만
했었다. 술집 안의 유혹, 치마 속으로 더듬었던 정란이의 엉
덩이, 마지막으로 직접 목격한 그녀의 아슬아슬한 비경. 그
모두는 이제 나를 점점 흥분시키고 있었다.
꿀꺽, 침을 삼켰어도 내 마음 속에서는 탄성이 질러졌다.
결코 내 나이에 비해 경험이 많다고는 못할지라도 그 비경이
매우 색다른 경치임에는 틀림 없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 엉덩이 사이 수풀의 과다만으로 성욕을 판단하다
면 나는 그렇다고, 분명히 그것은 비례관계에 있다고, 그렇게
대답해야 할 성 싶어졌다. 물론 무성하다고 그것이 반드시 흉
할 리는 없다. 그 증거가 바로 내 코 앞에 펼쳐져 있었다.
약간은 하체 쪽이 빈약하다는 느낌인 정란이었는데, 반대로
상체 또한 그러했다. 하지만 군살이 없다 하여 그 무성한 음
모들이 아랫배까지 듬성이지도 않았다.
꼭 그 비부 주위만을 빽빽히 마름모 꼴로 덮어져 있었다.
나는 잠시 어처구니 없는 상상을 해보았다. 이 정도라면 아까
하반신을 몽땅 드러내고 업혔던 이 여자애였으니, 행여 그렇
게 잔뜩 가랑이를 벌리고 있었다면 설사 핵심부위를 팬티로
가렸을지라도 분명 그 양쪽 라인 바깥으로 이 수풀 몇 가닥
이 비어져 나왔으리란 짐작이었다.
그것이 도화선이었다. 그런 망측한 상상 - 그것만으로도 내
몸 속 깊숙히 억눌러져 있던 욕구가 바짝 고개를 들고 있었
다. 무엇보다 한 쪽이 일방적으로 돋군 흥만으로 이런 아찔한
일이 벌어질 리는 만무했다.
"정란아…!"
나즈막히 이름을 불렀어도 반응이 있을 리가 없었다. 반응
은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 그 또한 나로서는 처음 목도한 광
경이었다.
방금 전 음모의 짙음만으로 성욕을 판단하면 어떨까하는
나였지만 이번에는 그 애액의 과다로도 가능할 것 같았다. 단
지 내가 들여다보고 있다는 것만으로 이토록 흥분한다는 게
가능할까.
그녀의 홍건한 음액은 벌써 양쪽 허벅지 사이를 흘러 그
풍만한 양쪽 엉덩이 계곡까지 반짝이고 있었다. 그 습기에 수
풀은 한 올 한 올 젖어 있었던 것이다.
아핫, 그 아찔한 탄성은 저 멀리 침대 위에 등을 대고 누운
정란이의 입술에서 터져나왔다. 당연했다. 입김을 쏘인다던가
하는 준비작업도 없이 내 얼굴은 단숨에 그녀의 엉덩이 사이
에 들이대어지고 있었다.
불가항력적이었다. 만약 제 정신이라면 몰라도 나는 천만다
행스럽게 충분히 이성을 잃고 있었다. 나도 혈기왕성한 남자
였기에 이런 주어진 기회를 거스른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
했다.
"아아, 오빠… 오빠…!"
가쁘게 나를 찾아대는 그녀였어도 내 귓가에는 들리지 않
았다. 그 순간 내 귓속을 채우고 있는 것은 오로지 무언가를
빨아들이는 흡착음이 전부였으며 그것은 그녀의 비부와 내
입술, 또는 내 혀가 이루어내는 근사한 삼중주였다.
따지고 보면 이 얼마나 오랜만에 탐하는 음부인가. 선영이
누나를 떠나보낸 후 거의 수년만의 경험, 그 정도 목 마름은
차라리 당연했다.
여성의 몸은 얼마나 많은 음수를 간직하고 있을까. 그런 한
계에 도전하는 것처럼 내 얼굴이 지분대는 곳은 점점 더 밀
려나오는 액체로 넘쳐나는 중이었다.
정란이의 상체가 이리저리 젖혀지고 있었다. 내 중심 다음
으로 예민한 그곳은 흡사 애액의 늪에 빠진 느낌이었다. 아니
그 무성한 음모와 더불어 사타구니는 여지 없는 늪이었다.
"오빠, 창희 오빠 너무 잘하는 것 같아…!"
헉헉대는 정란이의 신음소리는 자칫 숨이 넘어갈 경지였다.
조여대는 그녀의 양 허벅지로 인해 나 또한 헐떡이며 숨이
가빠지고 있었다.
졸지에 듣는 찬사였을지라도 말 그대로 코 앞이 다급한 나
는 재빨리 두 손을 그녀의 상체 쪽으로 뻗어야 했다. 요동치
는 그녀의 몸뚱아리를 제지하기 위해서였다.
"아, 안돼요. 거기는… 전 가슴이 콤플렉스란 말에요."
희한한 사실은 거기에서 하나 더 발견되고 있었다. 필시 그
녀를 붙드느라 내 손길이 그녀의 젖가슴 어딘가를 더듬은 듯,
그런데 정란이는 재빨리 그 두 손을 마주잡으며 나의 접근을
막고 있었다.
짧은 순간이었어도 분명 쥐어졌던 그녀의 유방이었다. 결코
절벽은 아니었건만 그래도 상당히 민감한 반응이었다.
정란은 그런 연유로 당연히 벗었어야 할 겉옷을 벗지 않은
모양이었다. 하기야 그런 걸 신경 쓸 여력을 남길 것은 아니
었다. 이제 두 손을 그녀와 맞잡은 자세로 나는 한 곳에만 집
중을 가하고 있었다.
그럴수록 그녀의 교성은 가파르게 한 톤씩 높아가고 있었
다. 그 교성만으로도 그녀의 성욕은 증명되고 있었다. 그 때
였다. 갑자기 으스러질 듯 그녀의 손가락들이 내 손등을 파고
들고 있었다.
"아, 오빠, 나, 나… 느, 느껴!"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런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듣기 전까
지 전혀 그녀에게서 특별한 징후를 발견해내지 못했던 나였
다. 그럼에도 아주 순간적으로 그녀는 절정에 도달하고 있었
다.
부르르, 그녀의 두 다리가 내 얼굴 양 옆에서 경련하며 꼿
꼿이 뻗어져갔다. 마치 널을 뛰듯 문질러지던 그녀의 하복부
도 함께 긴장하고 있었다.
제일 놀라운 모습은 그 때부터였다. 그랬다. 진정 그로테스
크한 한 가지 비밀을 나는 그 몇 초 동안 발견해냈다. 뭐라고
표현하랴. 마치 누군가가 아주 소량 - 전체에 비해서 그렇다
는 말이다 - 의 뜨뜻한 물을 내 얼굴에 끼얹었다 해야 하나.
그 묘한 액체가 내 콧등 위로 확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
것이 피메일 이제큘레이션(female ejaculation), 즉 여성사정
(女性射精)이라는 것은 나중에나 안 일이었다.
제25화 오빠, 제가 또 했죠?
마치 남자가 사정시에 수축을 일으키듯 정란이의 음부에서
는 찔끔이는 액체가 연달아 솟아났다. 그 분수 같은 사출(射
出)은 마지막 한 방울이 그녀의 짙은 숲 주변을 적시며 흘러
내리는 것으로 막을 내리고 있었다.
한 마디로 놀라운 경험이었다. 말로만 들었지 그 열 명에
한 사람도 드물다는 명기(名器)의 소유자를 발견하다니, 나는
그 수초간 어안마저 벙벙하여 말문을 잃고 있었다.
자신의 사타구니가 경련하는 동안에도 정란이는 까무라치
기라도 한 것처럼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내게
말을 건 것 이외에는 큰 소리로 헐떡거리지조차 않던 그녀였
다.
간간이 터져나오던 아찔한 비음만이 전부, 그나마 정란이는
벌어지려는 입술도 손가락을 깨물며 간신히 참아대는 것 같
았다. 그렇게도 적나라하게 섹스를 밝히던 아가씨가 묘하게도
정작 침대 위에서는 최대한 조용해지려 애를 쓰고 있었다.
여자들은 성관계시 가장 부끄러움을 타는 측면이 각자 다
른 걸까. 이 여자아이는 자기 가랑이 사이를 남자 앞에서 벌
려대는 것보다 스스로 신음소리를 낸다는 게 더 창피하다고
여기는 모양이었다.
어쨌든 그녀는 그 마지막 몸부림을 끝으로 한동안 움직이
지 않고 있었다. 설마 까무러치기라도 한 것은 아닌지 나는
슬그머니 그녀의 허벅지를 어깨에서 내려놓으며 침대 위의
정황을 살펴보았다.
정란이는 모로 돌아누운 채 가쁜 어깨를 오르내리고 있었
다. 그 동안 참았던 숨을 한꺼번에 몰아쉬기라도 하는 듯했
다.
"이, 임정란…"
걱정스런 목소리를 낼 즈음 그제야 깨어난 그녀는 후다닥
허리를 세우며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차마 못 볼 걸 보기라
도 한 것처럼 얼굴에 민망함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오, 오빠 미안해요…! 제가 또 그랬죠?"
"그, 그러다니…?"
"제가 또 싸버렸죠? 그렇죠?"
싸버리다 - 그 어이없는 묘사에 망측함을 느낄 새도 없었
다. 정란이는 다급히 손을 뻗어 내 얼굴과 콧잔등을 문지르려
들었다.
입이 떡 벌어질 노릇이었다. 전희(前戱)인 오럴섹스만으로
그녀에게 절정감을 느끼게 했다는 뿌듯함 때문이 결코 아니
었다. 쌌다니, 그렇다면 그녀는 오르가즘을 느낄 때 스스로에
게서 어떤 얄궂은 반응이 나오는지 이미 익히 알고 있다는
얘기 아닌가.
실로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다시 말하지만 겨우 스물을
갓 넘긴 아이가 어찌 이토록 성(性)에 대해 익숙한 것일까 나
는 그 적나라함의 깊이를 도무지 헤아리기 힘들었다.
"어떡해, 나 입으로 이렇게까지 된 건 처음인데… 많이 나
왔어요?"
정란이는 성행위가 아주 일상사인 양 주워섬기기까지 하고
있었다. 나는 엉겁결에 내 얼굴에 다가오려는 그녀의 손길을
막으며 고개를 저어야 했다.
"아아, 그나저나 오빠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저 완전히
술이 깼어요. 그거 아세요? 섹스하면 취기가 가시는 거…?"
그러자 잠시 잊고 있었다는 투로 당장 상체를 일으킨 그녀
가 호들갑을 떨어댔다. 그런가. 얼핏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
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건 남자가 사정(射精)하는 순간에
혈관을 확장시키느라 그렇다는 것 같던데, 여자인 그녀도 마
찬가지란 말인가.
"어쨌든 저만 느껴서 죄송해요… 이제 오빠도 느끼게 해드
릴게요. 어떤 게 좋으세요? 입으로 해드릴까요?"
입으로? 이런 걸 기브 앤 테이크로 보아야 하나, 아니면 봉
사를 받았으니 희생을 아끼지 않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하나. 그 말을 하고 있는 정란이의 눈동자는 말똥말똥 진지한
빛을 띠고 있었다. 내가 요구하면 어떤 행위, 그것이 설사 똑
같은 오럴섹스일지라도 즉각 응하려는 기세였다.
"아, 아냐. 나는…"
나는 필요 없어, 그러니 이제 그만 해도 돼. 글쎄다. 어쩌면
나로서는 그 말을 해야 했는지도 모른다.
사실이었다. 그 기묘한 애무를 수행하느라 저으기 흥분하고
있던 나는 분명 방금 전까지 바지 속에 터질새라 팽팽한 압
박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나는 어느새 내 발기가 순식간에 헐
렁해져 있음을 깨닫고 있었다. 찰나의 분위기만 깨져도 흥분
이 사그러지는 것은 여자의 경우로나 알고 있었건만 희한하
게도 내가 그런 경우를 겪는 중이었다.
어째서일까. 그 원인은 하도 적나라한 정란이의 행동 탓으
로 돌릴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당혹스러운 나머지 나의 그
곳은 잠시 어정쩡하게 풀이 죽어버렸던 것이다. 입으로 해드
릴까요, 그래서 나는 그 제안에 화들짝 손을 내저었다.
"왜요? 제가 입으로 해드리는 것 싫으세요?"
"아, 아니 난 저… 그, 그게 아니라…"
아뿔사, 허둥대는 나였으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왠만하면
이제 그치자는 의미인데도 정란이는 더욱 수치스런 시도를
벌이고 있었다.
"알았어요, 오빠… 그럼 그냥 해드릴게요."
그, 그냥 하자구? 뭘? 그녀는 그렇게 물을 겨를도 주지 않
았다. 침대 위에서 곧장 내게로 떨어지는, 아니 덮쳐오는 그
녀의 몸이었다.
"저, 정란아…!"
나의 제지에도 아랑곳없이 그녀는 아래에 있던 나를 엉덩
이로부터 무작정 내리누르기 시작했다. 얼떨결에 등을 대며
무너져버린 내 몸뚱아리 위로 그녀가 재빨리 걸터 앉아왔다.
"가만 계세요. 이번엔 제가 해드릴 차례니까…"
"야, 나, 나는…"
부시럭, 옴쭉달싹 못하는 나의 하반신에서 그런 움직임이
전해졌다. 순간 선뜻해지는 아랫도리의 느낌은 정란이가 직접
내 바지를 끌어내리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덜덜 몸을 떨면서도 제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이어 내 물건
이 틀림없이 허공을 향해 드러난 것 같았다.
"어머… 오빠…!"
작은 탄성이 들려왔다. 그 바람에 난처한 시선으로 그녀 쪽
을 내려다본 나는 기겁을 하고 말았다.
당연했다. 그녀의 그 음성은 내가 우려했던 대로 실망감에
따른 것이 전혀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서서히 일어서는 그
무엇, 어처구니없게도 내 아랫도리는 언제 그랬냐는 양 다시
금 발기해가고 있었다.
제26화 가임기간 아니니까 그냥…
차라리 그건 내 스스로 배신감을 느껴야 할 모습이었다. 조
금 전만 해도 한심스러울 정도였는데 채 일이 분도 안 지난
새 무슨 기이한 조화라도 부려진 것 같았다.
실로 아연해지는 나였다. 하지만 내 사타구니를 들여다보던
정란이는 후후거리는 미소마저 짓고 있었다.
"봐요… 오빠도 이렇게 흥분했으면서…"
개구쟁이 같은 표정으로 내 기둥을 훑고 쓰다듬는 그녀. 그
렇기에 그 손아귀 속에 쥐어진 팽창은 더욱 가속되어갈 따름
이었다. 나로서는 한참 얼굴이 붉어질 일이었다. 결국 의지나
말과는 전혀 달리 나의 분신이란 놈은 그 주인에게 엄청 당
황스러움만 안겨주는 꼴이었다.
"잠깐만요…!"
으윽, 나는 목구멍 속으로 외마디 소리마저 삼켰다. 꼼지락
거리는 정란이의 손가락들은 이내 내 기둥을 곧추세우며 어
딘가로 이끌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플레어 스커트 자락을 허리 위로 끌어올리
며 허연 아랫배를 움직여갔다. 그 의도가 무엇인지 비로소 알
아차려졌다. 정란이는 최종 삽입을 위해 자세를 취하는 중이
었다.
퍼뜩 정신을 차려야 했다. 다름 아니라 그 치마속이란 아무
것도 가려진 것 없는 노팬티 상태라는 데에 생각이 미쳤던
것이다. 하기야 아까부터 흠뻑 젖어넘칠 그녀였기에 추가된
전희는 따로 필요 없을 터였다.
"정란아! 기, 기다려봐…!"
나는 후닥닥 상체를 일으키고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
갑작스런 훼방에 동그래진 시선이 돌아왔다.
"왜 그러세요? 다르게 하고 싶으세요?"
"다, 다르게?"
"네. 제가 위에서 하지 말까요…? 오빠 원하는 대로 해드릴
게요. 앞으로 하는 게 싫으시면 엎드릴 테니까 뒤에서 하실래
요? 남자들은 그런 자세 좋아하던데."
뒤? 후배위? 이것 참. 또 한 번 기막힌 한숨소리가 흘러나
올 이야기였다.
"어휴, 그런 게 아니야. 내 얘기는…"
뭐라 말할거리를 찾아 나는 말투를 더듬었다. 골치 아픈 머
리통은 자꾸만 멍해졌다.
"이러다… 이러다가 만약… 혹시라도…"
"으응… 피임 때문에 그러세요? 신경쓰지 말고 안에다가 사
정해도 돼요. 저 가임기간 아니잖아요."
가임기간, 즉 배란기가 아니다 - 생리가 지난 지 얼마 안됐
다고 하므로 틀린 말은 아니리라. 어쨌든 그 완벽한 사전설명
에 할 말 막힌 나로서는 말리던 손길을 거두지 못하고 망설
여야 했다.
과연 어째야 하는 걸까. 지금까지도 충분하다 여겨지는데
정녕 그 선을 넘어 가장 결정적인 행위를 저질러야 하는 걸
까.
"얼른요, 창희 오빠… 여기까지 와놓고…"
정란이는 그런 내 눈치를 아는지 작은 목소리로 책망까지
해대고 있었다. 마침내 내게서 나올 다짐은 단 하나 뿐이었
다.
"아, 알았어. 정란아… 그, 근데 하나만 더 약속해줘."
"약속요?"
"그래. 너랑 나는, 아니 우리는… 정말 이번 한 번 뿐이야.
알았지?"
이번 질문에는 침묵이 없었다. 그러자 그녀의 대답소리가
곧바로 들려왔다.
"그건… 그건 잘 모르겠어요."
"왜… 왜 몰라?"
"저 아까 첫 번째 약속, 자제하도록 노력한다는 그 약속은
받아들일 수 있어요. 그건 오빠가 진심으로 저를 생각해주셔
서 한 말이니까요. 그렇지만 다시는 오빠랑 섹스하고 싶어하
면 안된다는 건 잘… 받아들이기 힘들어요."
"어, 어째서…?"
"왜냐면 그건… 오빠가 여자의 심리를 너무 모르고 계시는
것 같아요."
내가 여자의 심리를 모른다? 펄쩍 뛸 뚱딴지 같은 답변임
에도 정란이는 침착하게 설명을 계속했다.
"솔직히 저도 지금까지 원칙적으로는 한 사람에게만 빠지는
걸 거부했었어요. 그렇지만 저는요… 아니 여자는요, 아무한
테나 이렇게 섹스하자고 하지 않아요. 아무리 많이 하더라도
그건 마음이 통했을 때에요."
그게 여자의 심리란 건가. 좋다. 그런데 그게 나와 무슨 상
관인가.
"그래서 이번엔 장담 못하겠어요. 제 생각에는… 이번처럼
진실하게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그런 사람, 창희 오빠
같은 사람을 만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아서요."
그러니까 기왕이면 마음을 터놓고 자기의 그런 밝힘증도
이해하는 남자와 섹스를 하고 싶다. 아마도 그녀의 이야기는
그런 뜻인 듯했다. 어쨌든 나는 목구멍으로 마른침만 꼴깍였
다.
"그, 그건 말이 안돼. 그렇다고 정란이 니가 나와 계속 이럴
수는…"
"네, 그것도 알아요. 오빠한테는 애인도 있고… 저도 오빠에
게 그 이상 연연하지 않아요. 그러니 결국 그것도 노력한다는
말씀밖에 못 드리겠네요. 적어도 당분간은…"
적어도 당분간. 아마도 그게 정란이로서는 최선의 답변인
모양이었다. 아프게 입술을 깨물어야 했다. 행여 내가 말을
실수한 것이 아니기를 바래야 하는 까닭이었다.
"좋아. 그, 그렇다면… 최소한 네가 말한 원칙은 지키겠니?"
끄덕끄덕 그녀의 고개가 묵묵히 동의의 표현을 보였다. 원
칙, 나에게는 정란이가 한 번 이상 같은 남자와 잠자리를 하
지는 않는다는 그 말을 믿는 도리밖에 없었다.
"이제 도로 누우세요, 오빠."
좌우지간 그리하여 최후의 타이밍만이 유일하게 남아 있었
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진행되는 다음이었다.
그녀가 가슴팍을 밀어대자 이미 힘이 빠진 나는 재차 등을
대고 넘어졌다. 내 몸 위를 가로지른 무릎걸음이 위치를 조정
했다. 나는 훅, 숨을 멈추었다. 눈을 감아도 똑똑히 알 수 있
었다. 아주 끈적하게 바스락거리는 어느 부위에 내 물건이 문
질러지고 있었다.
"아…!"
삽입 전 윤활유를 바르기 위한 그 마찰에 이어 짤막한 교
성이 터져나온 것은 정란이에게서였다. 직후 내 기둥 끝은 미
지의 동굴 속으로 미끄러지며 쭉 들어서려 하고 있었다.
그 근사한 감촉은 가히 환상적이었다. 물론 나도 흥분했던
차, 실로 수년만의 그런 결합이었다.
미처 완전히 삼켜지기도 않았건만 내 몸 끝은 힘차게 뭔가
를 분출하기 일보직전이었다. 따라서 솔직한 내 심정은 차라
리 빨리 넣어달라고, 그리고 움직여달라고 애원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러나 결코 그렇게 되지 못할 현실이 찾아오고 있었다. 왜
냐, 그 현실은 내 자신의 자제력 이전에 제 3자적 요인이 외
부에서 닥쳐온 때문이었다. 순간 정란과 나는 둘 다 한꺼번에
소스라쳤다. 하마터면 심장마비라도 걸릴 노릇이었다.
쿵쿵쿵 -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불의
의 침입자가 여관방 바깥에서 다급히 외치고 있었다.
"정란아! 창희 형…! 안에 있어요?"
맙소사. 그것은 형준이의 목소리였다.
제27화 아아, 아직 들어오면 안돼!
맙소사, 그건 정말 맙소사였다. 나는 순식간에 얼어붙고 말
았다. 막 들어갔는지 아니면 몇 번쯤 들락이고 있었는지, 그
조차 분간할 겨를이 없었다.
내 놀라움은 거의 상상을 초월하고 있었다. 술집에서 정란
이를 업고 나온 지 얼추 한 시간 좀 넘게 지났다지만 아직
자정도 되지 않은 무렵이었다. 고로 아직 한창이라 해도 과언
이 아닐 2차 술자리일 텐데, 어째서 여학생도 아닌 형준이가
지금 이곳에 나타났단 말인가.
"정란아, 진짜 안에 없는 거야?"
숫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는 형준이였다. 그러느라 밖에
서는 숫제 황당무계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 소란에 화가
난 어느 방 손님이 카운터에 신고라도 했는지, 이제는 찰싹대
는 슬리퍼 소리와 함께 예의 그 여관 주인 아주머니까지 등
장하고 있었다.
"이봐, 학생! 학생 지금 뭐하는 거야? 뭔데 이렇게 온 여관
이 떠나가도록 소리를 질러?"
"아, 아주머니…! 아까 이 방에 들어온 사람들 어디 갔어
요?"
"이 방? 그 경영학과 남학생하고 여학생?"
"네. 아무리 불러도 안에서 대답이 없어요. 그 사람들 도로
나갔어요?"
"글쎄… 아닌데…?"
"정말이에요? 그럼 왜 안에서 대답이 없죠? 이상하잖아요,
나가지도 않았다는 사람들이 없다는 게…!"
"아니 그걸 낸들 어떻게 알겠수? 그래도 다른 손님도 있는
데 이러면 어떡해? 이건 영업방해라구!"
환장하고도 남을 이야기들. 하지만 더욱 당황스러운 것은
그 바깥 사정이 아니었다.
숨소리마저 멈춰질 지경의 나에 비해 그 동안에도 정란이
는 얼토당토 않은 행동을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경황없음에
아마도 정조준되었던 내 물건이 슬쩍 삐져나왔던 것 같았다.
그런데 그녀는 그 와중에도 황급히 자신의 가랑이 사이로 손
을 뻗어 그 기둥을 다시 세우는 게 아닌가.
그 애탄 부름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행동이었다. 당
황한 내 목소리는 당장 쥐 죽은 듯 낮춰져야 했다.
"야, 지, 지금 뭐하는 거야? 밖에 형준이 와 있잖아…!"
"아아… 몰라요, 찾다가 없으면 그냥 갈 거에요…!"
미치겠다. 밖에는 문 두드리는 남자후배, 위에는 벌거벗은
엉덩이를 문질러대는 여자후배 - 그 사이에 낀 나로서는 도
리어 정사장면을 몽땅 들켜버리는 쪽이 낫겠다 여겨질 상황
이었다. 게다가 여관방 문 앞에서는 한층 더 말도 안되는 목
소리들이 들려오는 중이었다.
"그리고 이러는 건 두 사람한테 방해되잖아, 학생…!""
"바, 방해가 되다뇨?"
"아이구, 척 보니 그 두 사람 애인 사이인 거 같더구만
뭘… 그러니 한창 정신 없이 재미 볼 무렵인데 밖에서 부른
다고 나와?"
정신없이 재미 볼 무렵? 입이 떡 벌어질 이야기였다. 하기
야 그 말 그대로이기는 한 정란이와 나였지만, 그렇다고 형준
이가 그 오해 아닌 오해를 하도록 만들 수도 없는 노릇이었
다.
"아니에요, 그럴 리가 없어요…!"
"아니 왜 그럴 리가 없어?"
"그, 그 여자애는…"
"아까 여학생 말이야? 아니 그 아가씨가 무슨 학생 애인이
라도 돼?"
보나마나 반쯤 비아냥거리는 주인 아줌마의 목소리였다. 그
럼에도 그 말을 되받는 형준이가 훨씬 더 놀라웠다.
"네…! 제 애인이란 말에요!"
"네? 에그머니, 그럼 그 아가씨가 진짜 학생 애인이라는 거
야?"
"그래요, 아주머니. 그러니까 열쇠로 문 좀 열어주세요…!"
세상에. 도저히 견딜 사태가 아니었다. 진짜 열쇠로 문이라
도 따고 들이닥칠까봐 와락 겁이 났다. 생각해 보니 유독 여
기 정란이에게 관심을 보이던 형준이였다. 그렇다면 혹시? 나
는 눕혔던 허리를 벌떡 일으키고 정란이의 둔부를 붙잡았다.
"아이, 왜요…?"
"안되겠어, 정란아. 저리 비켜…!"
"조금만 더요… 조금만 더…"
바깥처럼 당당하지 못할 우리에게서는 쥐 죽은 톤으로 가
쁜 대화가 오갔다. 그럼에도 정란이는 순순히 내 몸뚱아리 위
에서 물러서지 않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내가 쥔 자신의 엉
덩이에 의지하며 연신 거세게 아랫배를 내 사타구니에 마찰
해대는 그녀였다.
나는 그 어처구니 없는 모습에 아연실색해버렸다. 그런데도
기절초풍할 일은 계속되고 있었다. 정말 열쇠라도 들고 왔는
지 딸깍대기 시작한 문고리 - 실로 위기일발이었다.
의외의 일이 벌어진 것은 그 때였다. 다급해진 정란이가 먼
저 외치고 있었다.
"아아, 안돼…! 아직 들어오지 마!"
아찔한 비음이 잔뜩 섞인 탄성이었다. 나는 완전히 넋을 잃
고 말았다. 내 귀에 그것은 그 누가 들어도 방안에서 어떤 일
이 벌어지고 있는지 역력히 짐작케 하는 음색이었던 것이다.
도대체 대책 없는 아가씨였다. 결국 나는 아쉬운 콧소리를
내는 그녀를 억지로 밀쳐내고 허리춤을 추스려야 했다. 내 분
신이 반 강제로 그녀의 하복부에서 뽑아져 나왔다. 이미 애액
이 잔뜩 묻어버린 그곳이었다.
"정란아? 너 안에 있어?"
"그, 그래. 나 안에 있어…!"
"무슨 일이야? 지금 문 열고 들어 간다…!"
그제야 심각함을 깨달은 정란이가 자지러질 눈빛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반면 워낙 서두는 통에 나는 미처 혁대조차 채우
지 못하는 찰나였다.
"안돼, 기다려! 지금 들어오면 안돼…!"
발작적으로 소리지른 그녀가 흡사 문고리를 마주 잡기라도
할 요량으로 서둘렀다. 어느새 그녀는 나보다 빨리 자기의 헝
클어진 치마자락을 끌어내리고 있었다.
나도 앞 뒤 가릴 것 없이 허겁지겁 일어서서 옷매무새를
챙겼다. 에유, 학생들 안에 있네… 시큰둥한 여관 주인의 목
소리는 다행히 찰싹이는 슬리퍼 소리를 끌며 사라져갔다.
급기야 떨리는 손으로 마지막 남은 바지춤을 끌어올리자
한 발 앞서 정란이가 먼저 문으로 다가서고 있었다. 아주 짧
은 그 시간에 엄청난 시련에 직면하는 나였다.
숨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러나 함부로 서툰 짓을 벌이
기도 쉽지 않았다. 그럼 숨지 않는 한 형준이 녀석에게 뭐라
고 둘러대야 하나.
정란이는 그 해답을 찾을 여유도 주지 않았다. 교통정리를
끝낸 나를 확인한 그녀가 잠겼던 문을 즉시 벌컥 열어주고
있었다.
"정란아!"
제일 먼저 보인 것은 방 안으로 왈칵 쏟아져 들어오는 빨
강머리였다. 술냄새가 밀려드는 것과 거의 동시였다.
당연히 취중이었으므로 그런 소란을 피웠을 형준이, 하지만
녀석은 내 안중은 살피지도 않고 충혈된 눈동자로 우선 정란
이를 다그치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야? 있으면서 왜 대답 안했어?"
"그, 그게… 잠 들어서… 아, 아니 창희 오빠랑 얘기 좀 하
느라고."
"정말이야?"
녀석의 눈길이 내게 부라려졌다. 진짜 그랬던 것이냐, 내게
서 그 증거를 찾으려 든다는 걸 단박에 알아차릴 시선이었다.
제28화 여관방 한가운데의 팬티
뭐라 하랴. 나는 한참 나이 어린 후배 앞에서 몸 둘 바를
몰라야 했다. 찔리는 가슴은 뜨끔하는 정도가 아니었다. 만약
가능하기만 하다면 이 자리에서 도망이라도 치고 싶은 기분
이었다.
"그럼 내가 거짓말한다는 거야?"
그것을 구해주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정란이였
다. 앙칼지게 쏘아부치는 그녀의 목소리, 형준이는 당장 그
힐난에 허둥거리고 있었다.
"아, 아냐. 나는 그렇게 불렀는데도 네가…."
"뭐야? 내가 얘기한 것 못 들었어? 창희 오빠랑 조용히 얘
기하느라 못 들었다고 했잖아."
휘둥그래진 눈으로 나는 말싸움을 벌이는 두 사람 곁에서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말아야 했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당
당한 것은 정란이 쪽이었고 도리어 그에 쩔쩔매는 것은 형준
이였다.
어찌 저렇게 뻔뻔스러움이 가능한 걸까. 여자의 가장 강력
한 무기란 눈물이라는 얘기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내가 보기에 여자의 강력한 무기란 바로 저런 잡아떼기 같
았다. 나는 그런 여성을 단 두 명 더 알고 있었다. 그 옛날
군 입대 전 하룻밤을 보냈던 두 사람, 보영이와 최 마담 뿐이
었다.
형준이가 차마 나에게 그녀의 말이 진실이냐고 묻지 않은
것만이 다행이었다. 어째야 하는지 우왕좌왕하는 나인데도 논
쟁을 벌이던 두 사람은 잠시 후에야 진정을 하고 있었다.
"정말이죠, 창희 오빠?"
정란이가 고개를 돌려 나의 동의를 구했다. 나로서는 머쓱
하게 그렇다 거짓말할 도리밖에 없었다.
"으, 응… 그, 그게…"
"어쨌든 고마워요, 오빠."
고맙다니? 뭐가? 내가 더듬대자 그녀가 말허리를 잘라주고
있었다.
"오빠 얘기 잘 들었어요. 덕분에 저 완전히 술이 깼어요."
술이 깨게 해줘 고맙다 - 하지만 그녀가 술을 깰 수 있도
록 내가 한 일이라고는 그 아찔한 오럴 섹스가 전부였다. 그
렇다면 그 애무해 준 것이 고맙다는 얘기일까.
어쨌든 그 천연덕스런 말솜씨에 형준이의 멍청해진 시선이
나를 돌아보았다. 응당 녀석으로서는 그 빤한 위장전술을 알
턱이 없었다.
"어… 대체 무슨 얘기를 해주셨길래…"
순진하게도 궁금해 하기까지 하는 그였다. 졸지에 덩달아
어리벙벙한 시야에 정란이가 형준이의 뒤켠에서 눈짓을 찡긋
거리는 게 보였다. 내가 다시금 허둥대려들자 다시 한 번 그
녀가 나서고 있었다.
"창희 오빠가 오빠 애인 얘기해줬어. 미국에 있다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좌우지간 그 말을 얼핏 하기는 했으니,
듣고 있던 형준이도 그제야 이해가 간다는 뜻으로 마지 못해
고개를 꾸벅이고 있었다.
"그러셨어요? 저는 그것도 모르고… 죄송해요, 형. 시끄럽게
굴어서."
나로서는 아니야, 하며 스스로 가증스러운 웃음마저 곁들어
야 했다. 종내 정란이와 나는 형준이를 완벽히 속이고 있는
셈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내가 뒤통수를 긁을 무렵이었다. 무심코 나
의 시선과 정란이의 시선이 재차 마주치고 있었다.
어, 뭐지? 나는 순간적으로 그녀의 아우성치듯 흔들리는 눈
빛에 의아해졌다. 그녀가 입 모양까지 뭐라뭐라 흉내를 내며
내 시선을 급히 이끌고 있었던 것이다.
으악, 찰나 속으로 아뜩한 비명을 질러야 하는 나였다. 정
란이가 열심히 눈짓으로 가리키는 방향, 그것은 바로 방바닥
이었다.
여관방 한가운데에 뭐 그리 놀라운 것이 있을까… 절대 그
게 아니었다. 그녀의 시선을 좇은 나는 까무라쳐야 했다. 그
곳에 덩그마니 떨어져 있는 게 바로 크나 큰 문제였다.
그것은 한 뼘 남짓하게 구겨져 있는 분홍색 천조각이었다.
눈앞이 당장 캄캄해졌다. 아까 문을 열어주느라 정신 없던 그
녀와 나, 그러니 우리 두 사람 다 신경 쓰지 못했던 그 분홍
색 헝겊은 다름 아닌 정란이가 벗어놓았던 그녀의 조그만 팬
티였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형준이의 곁에서 자신의 그 짧은 스커
트자락을 추스리는 정란이 - 그렇다면 그녀는 치마 속에 아
무 것도 입은 게 없다는 이야기 아닌가.
이제 내 눈빛도 덩달아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일단 그
건 나중 일이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형준이가 지금껏 그
것을 보았느냐 보지 못했느냐, 그것이었다.
가뜩이나 미심 쩍어하는 그 후배 남자아이였으니 행여 그
벗어진 팬티를 발견했다면 우리의 거짓말은 진작에 들통이
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마 위로 진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아무런 방법이 없었다. 두 눈을 질끈 감고 최대한 빠른 동작
으로 그것을 주워올리는 이외에는.
영점 오초도 안 걸렸으리라. 나는 신속히 허리를 굽혀 그
분홍빛 팬티에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것은 마술사의 동작처
럼 순식간에 내 바지 호주머니 속으로 쑤셔넣어졌다.
"그게 뭐에요, 형…?"
아뿔사, 내 소원과는 달리 형준에게선 그런 질문이 들려왔
다. 그 때였다. 날카로와진 게 틀림 없는 어투로 정란이가 쏘
아부치고 있었다.
"나 이제 나가야겠어!"
천만다행이란 이런 경우에 쓰는 말이었다. 마치 들키던 말
던 체념하는 것 같은 그 통보에 형준이의 의문이 퍼뜩 거두
어졌던 것이다.
"어? 그냥 집에 가려구?"
"그래. 술도 깼으니까. 형준이 넌 뭐할 거야?"
"나, 나는 뭐…"
"다시 그 술집에 돌아갈 것 아니지? 그럼 나 택시나 잡아
줘. 버스는 끊겼을 테니."
그 바람에 난처하기 짝이 없던 그 순간이 넘겨지고 있었다.
나로서는 넘어갈 것 같던 숨이 다시 쉬어지는 게 가능할 정
도였다. 그런 속사정을 알 리 없는 형준이는 짐짓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내 의향을 묻고 있었다.
"창희 형, 형은 어쩌실 거예요?"
"나, 나?"
눈에 띄게 화들짝대야 하는 나는 비로소 어째야 할지 갈팡
질팡거렸다. 이제 와 술집에 되돌아가기도 그렇거니와, 그렇
다고 이 여관방에 머물러 있어야 할 이유도 만무한 까닭이었
다.
나도 그럼 집에 가야지 뭐, 아무래도 이렇게 대답해야 할
성 싶은 나인데, 시련은 거기에서 그쳐질 게 아니었다. 문득
방 안으로 들어선 형준이 녀석이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
고 있었던 것이다.
"근데요, 형… 형 콧등에 묻은 게 뭐에요?"
콧등? 영문을 모른 나는 무심결에 여관방 한켠의 거울을
돌아보고는 그만 또 한 번 온몸에 소름이 돋아야 했다. 아닌
게 아니라 내 콧등 한가운데에는 버짐 같은 허연 자국이 말
라 붙어 있었던 것이다.
그 자국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뻔했다. 그 액체는 정사의 증
거물, 즉 애액의 흔적이었다. 저기 저 신입생 여자아이 정란
이가 오르가즘 동안 내 얼굴 위로 분출시킨 바로 그 애액, 참
으로 엉뚱한 데서 드러나는 그 불미스런 증거물에 나는 허겁
지겁 코를 싸쥐었다.
제29화 노팬티로 집에 가는 여대생
"야, 너 취했어? 오빠 얼굴에 뭐가 묻었다고 그래? 그나저
나 나 늦었어. 안 나갈 거야?"
역시 그 위기에서 탈출시켜주는 것은 정란이의 기지(奇智)
였다. 그녀의 재촉성 책망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도 형준이
가 선선히 돌아서고 있었다.
"아, 아냐. 약간 취했지만… 형광등 불빛이 너무 어두워서
그런가? 알았어, 얼른 가자."
"창희 오빠도 가실 거라면 얼른 나오세요."
그래도 그의 팔을 잡아 끌며 시간까지 벌어주는 정란이였
다. 그 덕에 나는 재빨리 콧등을 문질러 닦고서 한 발짝 늦게
그들을 따라나설 수 있었다.
여관을 나온 우리 세 사람은 주저 없이 큰 길가로 향해야
했다. 앞장 선 형준이의 걸음만이 왠지 당당해 보일 뿐 정란
이와 나로서는 어색하기만한 귀가길이었다. 그렇게 우두커니
두 남녀 후배의 뒤를 따르는 동안에도 그녀는 몇 발자국마다
눈치채지 못하게 등 뒤의 나를 흘끔거리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어쩌지 못할 노릇이었다. 워낙 공주님이라도 떠
받드는 양 형준이가 그녀의 곁에 딱 붙어있는 통에 내게는
몰래 주머니 속 팬티를 되돌려줄 기회마저 좀처럼 엿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건 택시를 잡아야 할 무렵에도 여전했다.
"정란아, 니가 먼저 타."
"돼, 됐어. 형준이 너부터…"
"아냐. 창희 형이랑 나는 남자잖아."
그 말에 정란이는 뭐라 말해 달라는 시선으로 나를 돌아보
았으나 어차피 뾰족한 방도가 없기는 매한가지인 나야 그저
멈칫대는 게 고작이었다. 마침 형준이가 기사도 정신을 발휘
하기 위해 잠시 차도로 내려서자 참다 못한 그녀는 슬그머니
내게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건네고 있었다.
"오빠 정말 지금 갈 거에요?"
"지, 지금…?"
"네. 우리 다른 데 가서…"
다른 데라. 그럼 다른 여관에 가서 못 다한 섹스라도 하자
는 얘길까. 그 당혹스런 청에 얼떨떨해져버린 나는 순간적으
로 주머니 속에 쥔 그녀의 팬티 생각조차 까맣게 상기하지
못했다.
단지 그 몇 초 간이 유일한 찬스였다. 이윽고 길가에서 돌
아선 형준이가 큰 소리로 우리를 부르고 있었다.
"정란아, 얼른 와! 여기 택시 잡았어…!"
오빠… 아쉬운 빛이 가득 담긴 정란이의 눈동자를 들여다
보면서도 나는 우물쭈물거리고 말았다. 급기야 우겨대는 형준
이의 손에 의해 제일 먼저 차를 타야 하는 것은 그녀였다.
택시 안에 태워졌어도 계속 나를 쫓는 그녀의 시선이었지
만 애써 외면해야 했다. 도저히 그럴 용기가 나지는 않기 때
문이었다.
그 차가 출발하자 다음은 형준이 녀석의 차례였고, 마지막
이 나였다. 그리고 마침내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
서 나는 수 많은 상념을 거듭하느라 머리가 지끈거릴 수밖에
없었다. 비록 불발에 그쳤다고는 해도 제대 후 처음으로 치루
게 된 정사(情事)의 여파 탓이었다.
한숨이 쉬어졌다. 바지 주머니 속으로는 정란이가 벗어 준
그 팬티가 그대로 만져지고 있었다. 놀랍게도 그 조그만 천자
락은 아직도 야릇한 향의 액체에 젖어 끈적이고 있었다.
그 액체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있는 나로서는 그 귀가길
도중에도 수시로 얼굴이 붉어질 따름이었다. 그에 겹쳐 택시
에 오르기 직전까지도 안타깝게 바라보던 그녀의 표정이 눈
에 선했다.
만약 아까 형준이를 먼저 보냈다면 어찌 되었을까? 방해자
없는 다른 여관으로 장소를 옯기게 되었을까?
아니 그런 곳까지 갈 필요도 없었다. 혹시 그 아찔한 순간
에 형준이가 그녀를 찾으려 그 여관에 나타나지 않았다면 또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우리 두 사람은 그렇게 끝까지 - 최
소한 말 그대로 본격적 삽입과 사정까지 - 동침을 하게 되었
을까?
필경 그랬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스라한 고개를 흔
들었다. 따지고 보면 의문은 거기에서 멈출 것도 아니었다.
나는 형준이를 떠올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설마 그 녀석이 뭔
가 눈치챈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계속 들고 있었다.
결정적 순간에 들이닥쳤던 녀석이니 그 방음장치 부실한
여관방 문가에 귀라도 대어봤다면 당장 이야기는 달라지게
될 것이었다. 그나마 신음소리를 참았던 정란이였기에망정이
지, 그렇다 해도 안에서 그녀와 내가 두런거리며 섹스 운운하
는 소리란 사라질 리가 없으니 말이다.
게다가 그 놈의 팬티를 주울 때 그게 뭐냐 궁금해조차 하
던 그였다. 그러므로 어쩌면 형준이는 어렴풋이나마 그 방안
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충분히 알면서도 모르는 체해준
것일지도 몰랐다.
집에 돌아온 나는 그 팬티부터 서랍 속 깊숙히 감췄다. 그
런 상상들은 모두 노출증처럼 나를 자극하고 있었다. 괴로웠
다. 피곤한 몸을 뉘였어도 흠뻑 젖었던 정란이의 기억에 밤새
뒤척일 게 뻔했다.
불현 듯 그 묘한 상상에 미치자 내 아랫도리는 어이 없게
도 다시금 고개를 쳐들고 있었다. 수음이라도 하지 않는 한
잠들지 못할 밤이었다.
* * *
그렇게 하룻밤을 지샌 다음날 아침 나의 설익은 잠을 깨운
것은 신나게 삐리릭거리는 전화벨 소리였다.
아무도 그 전화를 받지 않고 있었다. 얼핏 흘낏거린 탁상시
계는 벌써 한낮, 부모님은 두 분 모두 어딘가 외출중인 모양
이셨다. 머리 맡을 더듬어 받아들자 전화기는 예상 외로 낯선
여자의 목소리를 전하고 있었다.
"여보세요?"
퍼뜩 잠이 달아났다. 나를 찾는 여자 목소리란 좀처럼 드문
까닭이었다. 그럼에도 그 기대는 잠깐이었다. 건너편은 선영
이 누나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창희니? 나야, 명희."
"어… 며, 명희 선배."
"후훗, 선영이가 아니라서 실망했지?"
"아, 아니에요. 그 쪽은 아직 한 밤중일 텐데요 뭐…"
족집게 같은 그 말에 떨떠름거리자 명희 선배에게선 핀잔
부터 꺼내지고 있었다.
"참, 너 어제 어떻게 된 거야?"
"어제요…?"
"그래. 술 취한 여자애 하나 맡겼는데도 감감무소식이었잖
아? 난 너 돌아올 줄 알고 소주집에서 한참 기다렸는데."
"그, 그게… 가려고 했지만 너무 늦은 것 같아서…"
"그래서 곧장 집에 간 거야? 그럼 그렇다고 말이라도 해줘
야지. 맞아, 정란이는 어떻게 됐니?"
"저, 정란이요?"
정란이. 원죄처럼 가슴 속이 뜨끔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
까.
"그냥… 그냥 거기서… 술 깨라고 얘기 좀 하다가 택시 태
워 보냈어요."
"어머, 그럼 여관까지 가긴 간 거야?"
"그게 그러니까… 네."
"그랬구나. 별 일은 없었지?"
별 일 - 그저 넘길 말임에도 나는 연이어 찔리는 마음 속
을 느껴야 했다. 그녀의 그 질문은 여관방 안에서 두 사람 사
이에 모종의 관계가 있었느냐 없었느냐, 마치 그런 뜻으로 들
리고 있었다.
"없었… 없었어요."
꼴깍, 마른침이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제30화 여자후배 속옷 빨기
별 일 없었다, 라는 거짓말 한 마디에 당장 간밤의 황당무
계한 기억이 되살려졌다. 이마 위에는 서늘한 식은 땀 한 방
울마저 흐르는 것 같았다.
"그래? 별 일 없었다면 다행이네."
그으래, 괜시리 길게 끌며 들리는 그녀의 혼잣말은 아마도
내 자격지심일 터였다. 어쨌건 간에 묘한 뉘앙스를 풍기는 대
답 후에야 명희 선배는 자신이 전화를 건 본래 목적을 꺼내
고 있었다.
"그건 그렇고… 창희 너 언제쯤 학교에 다시 나오니? 내가
좀 만났으면 해서 그러는데."
"하, 학교로요? 왜요?"
"왜긴 왜야. 너한테 긴히 할 말이 좀 있어서 그렇지. 사적인
얘기야."
"사적인… 사적인 얘기요? 지금 얘기하면 안되는 건가요?"
"응, 전화로는 얘기하기 곤란한 문제라서 그래."
전화로도 하지 못할 사적인 얘기라. 설마하는 감정에 사로
잡힌 나는 적잖이 긴장이 되었다.
당연했다. 나로서는 행여 이 명희 선배가 지난밤과 관련해
무언가 눈치챈 것은 아닐까 지레 겁을 집어먹어야 하는 때문
이었다. 그렇지 않은가. 설사 그녀만은 모를지라도 신입생들
- 정란이나 형준이의 동기들 - 사이에서는 어제 나와 정란이
가 여관방 안에서 단 둘이 한 시간이나 넘게 함께 있었다는
소문이 벌써 좌악 퍼져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유를 불문하고 아직은 정란이를 신뢰할 수 없었다. 아무
리 그녀가 내게 연연하지 않겠다 약속을 했다 해도 그것은
자신과 섹스해달라 요구하기 위해 꺼내놓은 공수표에 불과했
다. 따라서 일단 학교에서 들려오는 얘기란 모두 내게 부담감
을 느끼게 하는 것들뿐이었다.
"그, 그래도 무슨 얘기인지…?"
"아유… 뭘 그렇게 꼬치꼬치 캐물어? 그냥 창희 네 학교생
활에 관해서 진지하게 의논 좀 하자는 거야."
내 학교생활에 대한 의논? 그렇지만 명희 선배는 점점 더
내가 그 의중을 짐작하기 힘들게 만들고 있었다.
결국 나는 일단 핑계를 대며 주말이 지나면 학교에 들르겠
다 약속을 해야 했다. 그럼 그 날 학과 사무실로 와, 창희야
- 그렇게 전화를 끊고 났어도 남아 있는 의문은 여전했다.
그렇다면 어제 형준이가 보인 그 불시의 출현은 어떻게 된
연유일까. 설마 그 녀석이 나타난 게 지금 여기 명희 선배와
관련이 있는 건 아닐까. 물론 차마 그 사실을 묻지는 못할 일
이었다.
부디 정란이나 형준이의 문제가 아니기를, 그제야 나는 얼
핏 드는 생각에 서둘러 책상 서랍을 뒤적였다. 그리고 그 불
미스런 사건의 증거를 찾아낸 나는 절로 한심스러운 고개를
떨구어야 했다.
바로 정란이의 팬티였다. 민망했던 지난 밤의 흔적조차 어
느새 말끔히 말라붙은 그 조그만 천조각은 내게 한숨소리만
이 새어나오게 만들고 있었다.
차라리 어딘가에 버렸어야 옳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왠지
선뜻 그럴 용기가 없어진 나는 망설이던 끝에 그것을 들고
화장실을 향했다. 어처구니없게도 나는 무슨 연인에게서 건네
받은 손수건이라도 되는 양 그것을 깨끗이 빨아 돌려줄 생각
을 하고 말았던 것이다.
어쩌면 그런 노골적인 아이가 오히려 그 자유분방함 만큼
편한 스타일을 찾는다는 얘기일까. 펼쳐보았자 두 손바닥을
덮기에도 모자라는 크기에 아주 평범한, 레이스나 무늬 따위
가 달려있지 않은 순면제의 그 팬티는 적나라하던 정란이의
색광증(色狂症)과는 달리 의외로 수더분한 스타일이었다.
손쉬운 그 빨래감 앞에서 나는 잠시 동안 골치 아프게 고
개를 저었다. 아마도 태어나 여자 속옷 빨래를 해본 것은 그
때가 처음일 테지만 그나마 마침 집에 아무도 없는 것이 다
행이었다. 게다가 그 여자 팬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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