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 애정비사 2-1,2
캠퍼스 애정비사 2-1,2
제 3화 프롤로그 - CF모델 호스테스
이게 말이나 되는 걸까. 하지만 틀림 없이 말이 되고 있었
다. 그 아가씨들에게 까르르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아마도
희창이의 지시에 자기들로서도 쑥스러운 모양이었다. 설마 진
짜일 리가….?
아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마가 아니었다. 물론 그들은 치
마를 걷지는 않았다. 아니 그럴 필요조차 없었다. 무슨 말이
냐, 정말로 그녀들은 그 초미니 스커트 아래로 쭉쭉 뻗은 각
선미를 드러내며 테이블 위에 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정녕 눈길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라 당장 우왕좌왕대는
나였다. 애초에 희창이와는 대각선에 멀찌감치 떨어진 나의
자리였으니 아가씨들은 하나씩 내 정면에서 올라오는 중이었
고, 그도 모자라 웨이터들이 막 들여오기 시작한 술상 - 외제
양주와 화려한 안주 접시 - 에도 그녀들은 아랑곳이 없었다.
심지어 아가씨들의 가랑이 사이에서 손길을 놀리는 형국인
웨이터들마저도 늘 보던 모습인 양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있
었다. 그것은 차라리 치마를 걷는 것 이상이었다. 어차피 앉
은 자세인 내 위치에서는 기껏해야 그녀들의 무릎이나 하이
힐 뒤꿈치가 코 앞이었다.
"안녕하세요, 윤혜입니다."
"첨 뵙겠어요, 효진이라고 해요."
그녀들은 심지어 테이블 위에서 공손히 고개까지 숙여보이
며 마치 패션쇼의 모델들처럼 한 바퀴 휘 돌아보이기까지 하
고 있었다. 각도만 조금 달랐지 나 역시도 완전히 그녀들의
치마 아래에서 들여다보는 셈이었다.
한 마디로 말하자. 전부 다 보이고 있었다. 그나마 안 보이
는 여자라고 해도 최소한 팬티스타킹의 어둑어둑한 가랑이
부분이었다. 거기에 색다른 몇몇은 좀 길이가 긴 치마 또는
밴드 스타킹이었지만 그나마 몽땅 발레복 마냥 밑이 훤히 트
인 플레어 스커트였다. 당연히 허벅지의 삼분의 이가 넘는 위
쪽이 드러나 짙은 색 밴드를 언뜻거리고 있었다.
"뭐해? 누가 마음에 들어?"
희창이가 물었어도 차마 내 귀에 들릴 리도 없거니와, 시선
또한 돌리지 못할 일이었다. 만약 원한다면 그 예닐곱 아가씨
각자의 팬티 색깔도 쭉 읊었을 터, 겨우 몇 시간 전만 해도
순진한 군바리였던 나로서는 이런 꿈도 못 꿔본 상황에 적절
한 대꾸를 찾을 턱이 없었다.
내가 우물쭈물거리자 종내 그가 끌끌대며 직접 나서고 있
었다. 녀석은 한 차례 더 여자들을 쭉 훑어보더니 한 사람을
골라냈다.
"거기 언니… 언니는 아까 이름이 뭐라고 했지?"
무슨 왕가의 낙점(落點) 같은 의식. 그래도 그 선택을 받은
아가씨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기꺼운 표정이었다.
"네, 저요? 현옥이, 이현옥인데요…!"
"그럼 현옥이 니가 앉아라. 거기 그 친구한테."
어라라. 그게 끝이었다. 그러자 곧바로 아쉬운 인사들을 남
기며 나머지 아가씨들은 우르르 룸 밖으로 나가버렸다. 현옥
이라 불린 그 아가씨는 그 중에서도 약간 키가 작은 편의 아
가씨였는데, 그녀는 깡총거리며 냉큼 내 옆자리에 엉덩이를
붙여오고 있었다.
"어때? 마음에 드니?"
희창이가 의사를 타진해왔어도 나는 아예 말문을 잃었다.
설사 마음에 안 들어도 어쩌랴. 만약 두 사람만 있다면 녀석
에게 이 난감한 신고식 해프닝부터 따져 물을 터였으나 그건
도저히 불가능했다.
이미 내 곁에 달라붙다시피한 제 삼자 호스테스 아가씨가
있는 까닭이었다. 다만 녀석이 이 아가씨만을 부르고 한 사람
을 더 청하지 않는 게 묘할 뿐이었다.
"근데 잠깐… 현옥이 너 공연도 하나?"
"공연요?"
"쇼 말이야. 기왕에 놀려면 화끈하게 놀아야잖아?"
쇼? 나는 영문 모를 그 단어에 희창이를 쳐다보았다.
"어머, 무슨 방석집도 아닌데 여기 오면 이사님은 꼭 그런
걸 시키시더라… 저는 쇼 못한다고 전에 말씀드렸잖아요."
"으응? 그런가? 너 언제 나랑 술 마신 적 있었니?"
"어휴, 이사님도… 저번에 거래처 사람들이랑 오실 때 오늘
처럼 신고드렸었어요. 그 때도 저한테 그렇게 물으시길래 안
배웠다고 했더니 다른 언니로 바꾸셨으면서…!"
현옥이란 아가씨의 귀여운 그 푸념에 희창이는 머쓱한 표
정을 지어보여야 했다. 얼마나 희창이가 이 술집의 단골인지
를 알게 해주는 대목이었다.
"어… 그럼 곤란한걸. 오늘 이 친구 확실하게 즐겁게 해줘
야 하는데. 그럼 너 빼고…"
이것 참, 그렇다면 희창이는 이번에도 또 바꾸겠다는 얘기
였다. 그렇지만 그럴 기미가 보이기 직전에 대뜸 끼여드는 현
옥이란 아가씨였다.
"좋아요, 알았어요. 그럼 이따가 조금 해볼게요. 하지만 잘
못한다고 뭐라 그러지는 마시기에요…!"
그래 좋아. 녀석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졸지에 그
쇼인지 뭔지에 떨떠름해진 나인데, 현옥은 투덜거리면서도 깎
듯한 자세는 결코 잃지 않았다.
"미진 언니 때문에 그러시죠? 이사님 미진 언니한테는 그런
것 안 시키시는 것 같던데… 그렇다고 너무 차별하지 마세요.
그렇게 전속만 찾으시면 저 같은 아르바이트는 맨날 찬밥이
게요."
미진이… 희창이가 기다리는 호스테스의 이름인 것 같았다.
하여간 전속은 뭐고 아르바이트는 또 뭔가. 도통 알 수 없는
단어들에 의아한 표정을 짓자 희창이가 싱긋 웃어보였다.
"창희 너 왜 그렇게 조용해? 옛날 생각이라도 하는 거야?"
"예, 옛날?"
"그래. 우리 군대 가기 전에 보영이네 가게 생각 안 나?"
보영이. 난 오랜만에 듣는 그 이름에 저절로 회상에 빠져갔
다. 단란주점 새끼 마담이었던 그녀. 그녀가 자기 단란주점에
서 내 입대 환송파티를 해준 뒤로 우리는 만난 적이 없었다.
"모르지? 걔네 가게 옮겼어. 어딘지 아니까 나중에 한 번
놀러가자."
희창이의 그 제안에 나는 응응대는 시늉만 해야 했다. 그
때였다. 룸의 문이 조용히 열렸고, 누군가가 살그머니 들어서
고 있었다.
"언니, 오늘은 저에요."
아마도 발랄한 게 트레이드 마크인 듯, 현옥이 먼저 그쪽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나는 귓가로 그 여자가 미진이라는 아가
씨리라는 걸 직감하고서 엉거주춤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그런데 순간적으로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그 여자는 분명
어디에선가 많이 본 얼굴이었다. 꾸벅, 아무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들어온 그 아가씨가 차분하게 희창이의 옆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나는 연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녀 역시 아까의 미녀군
단처럼 어깨끈만 달랑 달린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입기는 마
찬가지, 그러나 분명 무언가가 달랐다. 아니 도리어 어디선가
매우 익숙한 자태였다. 찰나 뻐기듯 만면에 웃음을 띄우며 내
의문을 풀어주는 희창이였다.
"뭘 그리 놀래? 미진이 몰라? 이미진."
이미진 - 성(姓)까지 들은 나는 한참이 지나 그 이름에 무
릎을 쳐야 했다. 응당 그녀를 모를 리 없었다. 아니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내 입이 떡 벌어지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알지? 요즘 뭐더라… 그 컴퓨터 광고로 텔레비젼에 나오잖
아."
그런 부가 설명 따위는 없어도 되었다. 이게 대체 뭔 얘기
일까. CF모델은 물론이요 신문이나 잡지 광고는 수십 편, 이
따금 쇼 프로그램에 게스트로도 얼굴을 비치는 모델 겸 텔런
트 이미선 - 그 준 스타급 연예인이 지금 내 앞에 있었다. 그
것도 거의 반 벌거벗은 것이나 진배없는 차림으로.
"오늘 드라마 촬영 있었니?"
"아니… 오전에 옷 피트(fit)모델 해주고 왔어."
이럴 수가. 세상에 이럴 수가. 연예계의 비사라는 생각은
안중에도 없었다. 희창이는 아주 능숙하게 그녀를 대하고 있
었다. 말을 척척 놓는 걸로 보아 그들 둘은 진작에 보통 사이
가 아니었다.
전속이라, 이제 나는 전속이란 단어가 무슨 의미인지 능히
짐작 가능했다.
제 4화 탤런트와의 간접키스
이게 정말 꿈인지 생신지. 테이블 아래로 허벅지까지 꼬집
고 싶을 정도로 아연실색하는 나였지만 그런 나에게 희창이
는 스스럼없이 노란 원피스 차림의 그녀를 소개시켰다.
"자 정식으로 인사들 해. 미진이 너도… 여기는 창희라고
내 불알친구야."
"안녕하세요, 이미진이에요."
나로서는 황송할 따름이었다. 만약 이런 자리만 아니라면
공손하게 일어나 고개를 까닥이는 그녀에게 얼른 사인이라도
받아둬야 할 입장이었으니 말이다.
"안녕하세요, 이미진입니다. 오늘 처음으로 모시게 되어 영
광입니다."
현옥도 다시 일어서서 인사를 했다. 역시나 사뭇 다른 분위
기였다. 기실 군대 시절 휴가 때마다 희창이가 몇 번 아가씨
가 나오는 단란주점에 데려간 적은 있어도 그런 곳은 이런
식이 아니었다. 이게 단란주점과 룸살롱의 차이일까? 아무튼
그녀들의 태도에는 깍듯한 예의규범이 절로 배어 있었다.
"뭐하세요?"
옆자리의 현옥이 슬그머니 팔꿈치를 건드리는 바람에 나는
비로소 얼떨떨함을 떨쳐냈다. 돌아보니 긴 스트레이트 머리를
앞이마에서부터 갈라붙인 그녀가 빈 잔 하나를 손에 들고서
말똥말똥 내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술을 달라 착각한 내
가 엉거주춤 양주병을 집어들자 문득 조그만 웃음소리가 들
려왔다.
"그게 아니구요… 제가 어떻게 해드릴까 여쭤보는 거예요.
스트레이트로 하시겠어요, 아니면 얼음 타드려요?"
"어, 얼음을…"
하지만 얼어붙은 건 통에 담긴 얼음이 아니라 나의 더듬는
말투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현옥은 공손하게 잔에 얼음을 넣
고 달가락거리며 휘저어 내밀었고, 이어 다른 잔에 아이스 티
한 잔을 더 따라 내 앞에 놓아주고 있었다.
"어… 혀, 현옥씨도…"
이윽고 자기 잔에도 술을 따르려는 그녀인지라 나는 엉겁
결에 그녀의 손에서 술병을 가로채 채워주려 들었다.
"어머, 이사님 친구 분은 자상하시다. 첫잔부터 직접 주시려
구요?"
아마도 손님 술시중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알아서 자기 술
을 챙기는 것이 이런 곳의 도리인 모양이었다. 어쨌든 나는
주춤대며 현옥이 내민 스트레이트 잔에 양주를 따라주었다.
"저기 근데요… 제가 어떻게 불러드려야 해요? 이사님 친구
분이시면 같은 이사님이세요?"
"아, 아니에요. 이사는 무슨…!"
나는 펄쩍 뛰며 희창이 쪽을 바라보았다. 헌데 녀석은 나름
대로 미진씨와의 얘기에 열중한 듯 내게는 눈길도 주지 않으
며 홀짝홀짝 술을 마시고 있었다. 어쩌구 저쩌구, 알아듣지
못할 말귀만이 간혹 들리고 있었다.
"그, 그냥 창희씨라고 불러요. 난… 나는 그게 편해요."
뭐라고 말할 소냐. 오늘 방금 제대한 군인이라고 할 수는
없는 일, 그렇다고 대학 휴학생이라는 말도 창피스럽기는 피
차 일반이었다. 현옥이 명함이라도 한 장 달랄까봐 나는 더럭
겁을 집어먹었다.
"정말요? 아이 좋아라. 굉장히 민주적이시네요?"
민주적, 그 말이 대체 이런 자리에 어울리기나 하는 걸까.
나는 현주가 내민 술잔을 재빨리 마주 부딪히고는 타는 목구
멍을 진정시키기 위해 단숨에 비워버렸다.
"근데 진짜 창희씨라고 불러도 되나요? 만약 이사님이 화라
도 내시면…"
"그럴 리가요? 그, 그런 건 걱정 마세요…!"
"후훗, 근데 아까부터 왜 자꾸 존댓말 쓰세요? 제가 어린
것 같은데 말 놓으세요. 안 그러시면 제가 불편해요."
"그, 그래도 몇 살이길래…"
"저요? 전 스물 하나밖에 안됐어요."
스물 하나라. 그렇다면 만으로 갓 스물. 그런데 이렇게 성
숙한 이미지를 지녔다니. 아닌게 아니라 미진과는 달리 현주
는 어딘가 세미 정장 같은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하얀 블라우스에 까만 스커트, 뽀얀 얼굴이 앳되 보이긴 했
어도 어디 사무실 같은 곳에 있어도 괜찮은 OL 스타일이었
다. 단 하나, 타이트한 그녀의 치마가 지나치게 짧아 엉덩이
만 간신히 가리고 있음을 뺀다면.
그 무렵 와하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고개를 들어
그쪽을 바라보았다. 희창이가 호방하게 웃으며 미진과 떠들고
있었다. 몇 잔 술이 돈 것 같지도 않은데 벌써 홍조가 드는
녀석의 얼굴을 보니 그녀에게 상당히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
다.
"두 분 잘 어울리죠?"
정신 없는 내 곁에서 목소리를 낮춘 현옥이 속삭여왔다. 나
는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거려야 했다.
"이사님은 여기 오면 꼭 미진 언니만 찾으세요. 두 사람 동
갑이라던데, 밖에서도 만나는 것 같더라구요."
"바, 밖에서 따로?"
"네. 원래는 여기 단골이 아니셨다는데 미진 언니가 여기만
전속으로 나오니까 이리로 오시는 거래요… 미진 언니 같은
분은 아무나 못 불러요. 아시잖아요, 소문 나면 안 되니까. 아
르바이트하는 저희들에 비하면 엄청 차이가 나걸랑요."
차이가 난다는 그 말에 나는 그녀를 흘끗 돌아보았다. 자세
히는 몰라도 그 차이라는 것이 모종의 물질적인 것과 관련이
있다는 것은 대충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렇다면 얼마나 되려
나, 하는 내 머리 속 질문에 대답이라도 해주듯 현옥의 이야
기가 이어졌다.
"저런 분은 직접 돈 안 받아요. 그냥 차지(charge)에는 계
산만 하고 따로 받으세요. 근데 뭐라더라… 이사님 회사 신문
광고에 CF모델이었대요, 저 언니가."
그런가. 그래서 저렇게 두 사람이 만나게 된 걸까. 조금씩
의문이 풀리기는 하는 중이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희창이가
하는 일이 뭔지도 아직 모르지만 신문광고까지 할 정도라면
퍽 잘 나가는 규모란 건 분명했다.
"미진아, 창희 저 친구에게도 한 잔 따라 줘."
그때 불쑥 녀석이 말을 건네고 있었다. 화들짝 놀란 나는
얼른 고개를 들었다.
"뭐하니, 잔 안 받구."
이런 황송할 데가… 희창이의 핀잔에 어쩔 줄을 모르는 나
였다. CF모델 이미진, 그녀가 손수 잔을 내밀고 있었다. 나는
그 잔을 보고는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없었다.
다름 아니라 그녀는 자신의 립스틱 자국이 선명한 온더락
잔을 내게 내밀어주고 있었던 것이다. 자기가 마시던 잔 - 과
장해서 말하면 나는 지금 이 유명 연예인과 간접 키스마저
하게 될 기회를 얻고 있었다.
팔을 뻗느라 허리마저 굽힌 미진씨. 얼음이 담긴 그 유리잔
으로 웨이브진 커트의 그녀 머리결이 흔들렸다. 그 아래로 그
녀의 원피스 자락이 살짜기 늘어진 모습이 비쳐보였다. 뚜렷
한 두 젖가슴의 계곡이 윤곽을 내보이는 그곳이었다.
제 5화 스타는 어떤 팬티를 입을까?
차마 그래도 나는 그 립스틱 자국에 입을 대는 것이 불가
능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받아든 그 잔에 절이라도 하고픈
나였다.
"얼른 드시고 저도 한 잔 주세요."
그 말에야 후닥닥 목구멍으로 술을 넘겼다. 술에서는 오묘
한 향내마저 감도는 것 같았다. 비단 최고급 외제 양주의 향
기여서만이 아니다. 내게는 그것이 분명 저 꿈결 같은 미인
이미진의 야릇한 내음으로 느껴지고 있었다.
술잔에 담긴 얼음이 달가닥거리며 서늘하게 윗입술에 닿아
왔다. 그것은 어둠 속에서 당한 도둑키스 같은 서늘함이었다.
그녀가 얼음을 더 집어넣고 술을 건네지는 않았다는 것이 상
기되었다.
그렇다면 아무리 내가 립스틱 자국이 뭍은 잔 가장자리를
피한다 해도 이 얼음 중 하나는 미진의 입술에 닿았던 것이
리라. 나는 마치 정말 키스라도 한 듯한 착각에 빠져 단숨에
잔을 비웠다.
이번엔 어지로운 머리 속을 가누며 내가 그녀에게 술을 따
를 차례였다. 하도 얌전하게 두 손을 모은 그녀이길래 나도
예의 바르게 두 손으로 술병을 모셔야 했다. 잔들이 여러 번
오갔다. 곁에서는 현옥이 따른 술을 희창이가 마시고, 다시
그 잔을 그녀가 돌려받고 있었다.
"이사님, 이제 밴드 부를까요?"
그럴까, 희창이가 동의하자 호스테스 현옥은 사뿐히 룸을
나갔다 돌아왔다. 이어서 대기하고 있던 두 사람의 악사가 들
어오고 있었다. 그들이 룸에 준비되어 있던 기타와 키보드를
이용해 조용한 경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나가시겠어요?"
현옥이 팔을 잡아끄는 바람에 어리버리한 나는 그만 룸의
홀로 이끌려나오고 말았다. 애초에 이런 호사를 바라지도 않
았던 나였다. 그저 희창이와 소주 한두 잔에 밀린 이야기나
했어도 족하련만, 그러나 분위기는 이제 영 딴판으로 흐르고
있었다.
나는 한 번 더 희창이에게 시선을 보냈다. 놀라운 광경의
연속이었다. 미진씨와 거의 안다시피 달라붙어 있는 녀석의
모습은 과연 나와 술을 마시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인지, 아니
면 저 연예인 호스테스를 만나러 온 것인지 분간이 가지 않
을 지경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자꾸만 주눅 드는 기분을 모면하려면 나로
서는 노래나 불러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
가. 마이크가 있었어도 나는 그것을 잡아볼 기회를 놓치고 있
었다.
어어… 어이없는 비음만 흘러나왔다. 어차피 현옥의 손에
붙들렸다는 생각도 잠시, 전혀 엉뚱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푹신, 또는 물컹. 나는 내 품으로 뛰어든 두 개의 질량감에
그만 호흡을 딱 멈추었다. 어느새 그녀가 능숙하게 내 등에
손을 감으며 안겨왔던 것이다.
그랬다. 현옥이 홀로 나오자고 한 것은 노래를 부르자고 한
말이 아니었다. 블루스 - 그것인 모양이었다. 나는 목구멍으
로 마른침을 삼키면서도 달리 어쩔 방도가 없었다. 당황스러
웠어도 예의없이 그녀를 뿌리치지 않을 정도의 정신은 차리
고 있었다.
귓가에 들려오는 잔잔한 라이브 음악, 가득히 달려든 늘씬
한 아가씨. 그것들이 내 의지를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었다.
"혀, 현옥씨…"
가까스로 아스라한 그녀의 이름이라도 부르려는데 그조차
어쩌지 못했다. 순간 현옥에게선 키득키득 웃음소리가 터져나
오고 있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그녀가 살짜기 몸서리를 치며
내 어깨 아래에서 바르르 몸을 떨어댔다.
"아이, 그러지 마세요… 간지러워요. 전 귀가 성감대란 말이
에요."
미칠 노릇이었다. 다른 것 때문이 아니었다. 그 키득거림에
따라 흔들리는 현옥의 몸뚱아리 - 그녀가 입은 얄팍한 블라
우스는 아무것도 입지 않은 맨살보다 더 간드러진다. 그런데
그럴수록 그녀는 찰싹 붙고 있었으니, 그에 따라 리드미컬한
출렁임이 직접적으로 내 가슴팍에 전달되고 있었다.
그게 어찌 그녀의 성감대를 자극하는 것이랴. 거꾸로 내 성
감대가 자극되는 판국이었다. 그건 꼭 간지러운 곳이 자신의
젖가슴인 양 이 아가씨 쪽에서 내게 마구 비벼대는 꼴이었다.
천천히 밴드 앞을 도는 우리의 춤동작에 따라 나는 현옥의
앞가슴 중량감을 확실히 느끼고 있었다.
크다. 그것도 상당히. 나보다 고개 하나 아래이기에 썩 큰
키가 아닌 그녀임에도 그 부피는 상상을 넘고도 남는 부피였
다. 통통한 편이었어도 살찐 몸매는 아닌지라 순전히 그녀 유
방의 풍만함만이 전부였다.
이렇게 말하면 어떻게 들릴지 모르지만 실상 3년 가까이
여자를 겪지 못한 내 몸뚱아리였다. 휴가 때마다 내내 아가씨
를 붙여줬던 희창이였으나 나는 한사코 그 마지막 단계만큼
은 삼가해왔었다.
그러므로 이런 당혹스러운 상황은 거의 결정적인 치명타였
다. 굳이 변명조차 불필요했다. 궁지에 몰린 내 몸은 금방 그
허기졌던 시절에 반기를 들며 터질 듯한 즉각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왜 그러세요? 어디 불편해요…?"
아이구, 현옥의 귓가가 아니라 내 귓가가 성감대로 변하기
일보직전이었다. 그 질문보다도 그녀의 뜨거운 숨결이 더 나
를 혼미하게 만들었다.
그녀로서는 그런 질문이 나오는 게 마땅했다. 내 허리는 이
미 십 센티 이상 현옥의 하체에서 떼어지려 엉거주춤한 자세
가 되고 있었다. 나는 재빨리 시선을 이리저리 옮기며 다른
생각을 해보려 애썼다. 음악을 연주하는 밴드 아저씨들이라도
쳐다봐야 할 성싶었다.
"후후, 분위기 딱 좋구만…! 현옥이 몸매가 창희 너한테는
아주 딱인데?"
맙소사, 그렇지만 주변은 악화일로에 있었다. 그 야릇한 목
소리와 함께 내 시야에는 한 가지 더 엄청난 광경이 등장하
고 있었다. 우리 곁에서 막 블루스를 추기 시작하는 커플, 그
들이 누구이겠는가. 다름 아닌 희창이와 미녀 모델 미진씨였
다.
그제야 제대로 미진의 전신을 볼 수 있었다. 하이힐을 빼고
도 거의 희창이 녀석의 눈썹 밑에 다다를 정도의 훤칠한 키,
게다가 그 야들거리는 원피스는 금방 끈이라도 풀어져서 바
닥에 흘러내릴 것 같았다.
그 찰랑이는 노란 원피스는 살랑 바람이라도 불면 휑하니
엉덩이를 드러낼 정도로 아슬아슬했다. 그 아래에는 늘씬하게
뻗은 허벅지와 종아리가 그림같이 이어지고 있었다.
달리 반쯤 벗은 것 같다는 표현을 쓰는 것이 아니다. 그녀
의 브래지어 선까지, 그녀의 일직선으로 쭉 훑어내린 탄탄한
등의 윤곽선까지 그 한 장짜리 옷은 모두 드러내주고 있었다.
차라리 나로서는 아찔한 눈을 감아버려야만 했다. 하지만
다음 찰라 미처 예기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잠시 조용한가
싶더니만 불현듯 귓가에 속삭이는, 이런 직업에 있는 아가씨
다운 현옥의 질문. 그것이 나를 와락 갑자기 긴장시키고 있었
다.
"근데요… 창희씨. 창희씨 머리는 되게 짧네요? 온몸도 울
퉁불퉁하구… 혹시 운동선수세요? 아님 군인인가?"
하지만 그 긴장은 결코 내게 도움이 못되는 것이었다. 뭐라
대꾸도 제대로 못하고 얼버무리는 그런 차에 화들짝 뜬 내
시야 - 본의 아니게 그곳에 닥쳐온 하나의 아득한 경치 탓이
었다.
아차차. 그 은밀한 모습에 억누르고 있던 나의 신경은 순식
간에 그 자리에서 무장해제해 당하고 있었다. 기절초풍할 일
이 벌어지는 중이었다.
텔레비전에도 나온 스타가 어떤 팬티를 입는지 본 사람이
있는가. 그렇게 누가 묻는다면 나는 그 때부터 본 적이 있다,
라고 대답해야만 할 것이다. 맞다. 나는 똑똑히 보고 있었다.
이미진, 그 아가씨의 속옷이 지금 그 야들야들한 치마 속에
서 반쯤 엿보이고 있었다. 왜냐. 희창이의 두 손이 그녀의 허
리와 엉덩이 중간쯤에 얹어져 있는 까닭이었다.
그들 둘은 여자는 남자의 어깨에, 남자는 여자의 둔부에,
다름 아닌 그런 자세로 천천히 블루스를 추고 있었다. 그런
연유로 그 가뜩이나 짧은 미진의 원피스 자락이 절반 가량
춤동작에 맞춰 끌어올려졌다 내려갔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제 6화 연예인용 끈 팬티
- 아따, 순진한 군바리 맘에 불을 댕기네요, 잉.
이 말은, 바로 오늘 오전에 헤어진 박 병장이 즐겨 쓰는 말
이었다. 훈련을 나갔다가 어쩌다 사제(私製) 여자를 마주치기
라도 하는 경우에는, 그것이 아줌마건 꽃띠 아가씨이건 그는
덕지덕지 위장크림을 바른 얼굴로 그렇게 침을 튀기고는 했
었다.
지금 나는 그 말을 떠올리고 있었다. 이건 모닥불 정도가
아니었다. 펄펄 붙은 산불, 정말 산불이라도 질러진 것처럼
내 머리통과 얼굴은 확 달아오르고 있었다.
신입생 시절 나이트 클럽에 떴다하면 그 깔끔한 춤 솜씨만
으로도 날라리 아가씨들의 눈길과 부킹을 한 몸에 받던 희창
이었다. 그런데 그 동안 얼마나 일취월장을 했는지 녀석은 마
치 사교 댄스라도 배운 듯한 능숙함으로 미진을 부드럽게 리
드하고 있었고, 그녀 역시 그에 맞춰 홍조 띤 얼굴을 절반쯤
희창이의 고개 아래에 묻고 있었다.
아예 양팔로 매달린 자세나 마찬가지, 그래서 희창이의 두
손길은 천천히 미진의 등뒤를 오르내리며 더듬는 중이었다.
넋이 나가 허둥대면서도 자꾸 그쪽으로 쏠리는 시선을 어쩌
지 못하는 나인데, 그런 귓가에 또 한 번 은근한 목소리가 들
려왔다.
"미진 언니 몸매 예쁘죠?"
머리카락 속으로 주르륵 진땀이 흘러내렸다. 현옥이었다.
어느 틈에 나의 낌새를 알아차린 그녀가 소리 죽인 웃음마저
짓고 있었다.
"킥킥… 모두들 저 언니만 나오면 난리라니까."
"아, 아니야…!"
무안해져 다급히 대꾸를 둘러댔지만 마치 속내를 들킨 양
저으기 창피스러웠다. 그래도 익숙한 만큼 별로 신경 쓸 일이
아니라는지 그녀는 반 미소로 푸념할 따름이었다.
"아이… 그만 쳐다보세요. 저 계속 섭섭하게 하실 거예요?"
나는 후닥닥 정신을 차렸다. 그런 대화를 나누면서도 여지
껏 희창이 커플을 향해 현옥의 등을 돌려세우고 있었으니 예
의상으로라도 그들 쪽을 외면해야 했던 것이다.
기실 이런 모든 일이 일어나기까지는 블루스 음악 한 곡도
채 흐르지 않은 시간이었다. 재빨리 위치를 바꾸자 현옥은 아
양을 떨 듯 좀 더 찰싹 내 몸에 달라붙어왔다. 그녀의 만만치
않은 젖가슴이 한층 밀착되었다.
"저도 알건 알아요. 미진 언니 원래 프로덕션 영화 때부터
날리던 몸매였으니까요."
"프, 프로덕션 영화?"
"으응… 국산 에로 비디오 말예요."
국산 에로물? 나는 그 이야기에 다시금 눈이 휘둥그래졌다.
그럼 TV출연도 심심찮은 저 인기 스타 이미진이 군바리 시
절 우리가 히히덕거리며 돌려보던, 한낱 그렇고 그런 비디오
영화배우 출신이란 걸까?
"어차피 몸매로 뜬 언니잖아요. 아마도 얼굴은 좀 고쳤는지
몰라도."
"저, 정말이야?"
"어머, 창희씨도. 제가 거짓말하겠어요? 그렇지만 몇 편 안
될 걸요…? 워낙 오래 전 일이구, 저렇게 뜬 후엔 아예 매니
저들이 원판을 회수한대요."
작게 낮췄어도 묘한 질투기가 배어나는 현옥의 속삭임이었
으나 나는 그저 멍청히 혀만 내둘러야 했다. 엄청난 연예계의
비화(秘話)이건만 무슨 일상인 것처럼 그녀는 스스럼없는 말
투였다.
어안이 벙벙했다. 텔레비전이나 화려한 잡지상에서 뭇 남성
의 이상형으로 떠오르는 유명 모델, 그런 스타급 연예인의 사
적인 은밀함을 훔쳐본다는 게 고작 스물 몇 해 살아온 내게
가당키나 한 일이었나. 그것도 엉덩짝 어디에 얼마만한 점이
있으며 사타구니 구석에 어떤 터럭이 있는지조차 속속들이
아는 나의 불알친구 희창이가 그 주인공이라니.
믿지 못할 일. 그러나 나는 그 실체를 방금 곁에서 보고 있
었다. 누구누구는 어디에 술 따르러 나오고, 누구는 얼마얼마
에 같이 놀 수 있고 - 그런 얘기란 지금껏 소문과 가십 기사
에서나 존재하는 줄 알고 있던 나란 놈이었기에 이 상황은
실로 대단한 충격이었다.
"근데 창희씨 춤 되게 못추시네요."
"어, 나… 나?"
"네. 무슨 막대기 같아요. 이게 뭐예요. 팔로 내 목이라도
조르는 것처럼."
어쨌든 화제를 돌리는 현옥에 나는 엉거주춤 당황했다. 아
까부터 엉거주춤 하체를 떼고 있건만 그도 모자라 줄창 내
품안을 파고드는 그녀였고, 그에 따라 팔꿈치마저 들고서 꽤
나 어색한 모습을 취해야 나였으므로 당연한 핀잔이었다. 안
그러면 호응이랍시고 마주 그녀를 얼싸 안을 수도 없는 까닭
이었다.
"긴장 좀 푸세요. 무슨 군인이 차렷한 것도 아니구… 안되
겠네, 이렇게 해봐요."
군인, 나로서야 찔끔거릴 단어인데 이어지는 상황은 그에
비해 차라리 약과였다. 호스테스 현옥은 슬그머니 능숙한 솜
씨를 보이고 있었다. 그녀가 팔을 약간 추스르니 후들대는 나
의 팔목은 금세 그녀의 어깨 위를 감싸는 몸짓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녀는 곧장 내 겨드랑이 사이로 깊숙이 팔을 끼워
넣고 있었다.
으으… 나는 그 황당해진 체위에 질겁을 하고 말았다. 자신
의 스스로 남자에게 파고드는 그녀, 그러니 왕창 다가선 그녀
의 두 유방은 이제 문제도 아니었다.
내 등뒤에서 대롱거리는 현옥의 손. 가뜩이나 나보다 한 뼘
이상 작은 몸집인 그녀의 손이 어디에 위치하겠는가. 자기 딴
에는 허리춤 어디라 생각할지 몰라도 현실은 결코 그렇지 않
았다. 자연스레 늘어뜨린 그녀의 두 손은 내 허리 아래, 쉽게
말해 내 엉덩이 위에 놓이고 있었다.
이젠 하체를 빼고 어쩌고도 불가능했다. 이건 꼭 그녀가 나
의 하체를 도망 못 가게 쥐고 있는 형국이었다. 그 상태로 완
전히 내 몸 전면에 자기 온 몸뚱이를 비비적거리며 현옥은
리드미컬하게 블루스 박자에 몸을 맞추고 있었다.
나는 아찔함만을 느끼며 그녀에게 끌려 다니듯 춤을 추어
야 했다. 천천히 우리는 한 바퀴 홀을 돌았다. 그 때였다.
엉? 나는 입속에서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빙글거리며 돌아
선 현옥과 영 어색함을 주체하지 못하는 나는 서로 이리저리
둘 곳 없는 시선을 굴리고 있었는데, 때 맞춰 희창이와 미진
의 커플도 그렇게 흔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곳에 가슴이 두방망이질 칠만한 경치가 존재했다. 저게
대체 뭐냐 - 나는 그것이 착시이기만을 바랬다.
어느 샌가 숫제 반 이상 끌어올려져 있는 미진의 원피스
자락이었다. 하도 철석같이 미진의 허리를 안은 그 희창이인
지라 그녀의 치마 뒤는 한참 위로 당겨져 있었고 그 아래에
는 내가 상상도 못했던 부분이 드러나 있었다. 그럼에도 녀석
은 미진의 긴 머리채에 코를 박고 있는 통에 자신이 어떤 짓
을 하고 있는지 짐작도 못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고작 그녀의 팬티 따위를 말하는 게 아니다. 아니아니, 다
름 아닌 그 팬티 이야기가 맞기는 맞다. 중요한 것은 내가 태
어나 처음 보는 속옷을 마주한다는 점이었다.
아뿔싸. 내가 아까 언뜻언뜻 팬티라 착각했던 것은 진짜 그
녀의 팬티가 아니었다. 그랬다. 그건 미진의 허연 속살이었다.
즉 그녀의 허벅지와 둔부는 틀림없이 다른 살결색을 띄고 있
었던 것이다.
그게 팬티라인이었다. 필경 피치 못할 사정에 의해 - 나는
그녀가 수영복 모델로 나온 광고 사진을 기억한다 - 그렇게
되었을 터였다. 정확히 말해 팬티쯤으로 가리워졌을 그 부위
가 완전히 뽀얀 색으로 드러나 있었다.
내가 무얼 보았단 말일까. 노 팬티? 노(No). 끈 팬티였다.
뭐라더라, 영어로 T백 스타일(T-Back Style)이라던가. 아무
튼 그녀는 그런 속옷을 입고 있었다.
쫙 올라붙은 엉덩이, 폭이 삼사 센티도 안 되는 그 까만 색
천조각이 탤런트 겸 모델 이미진의 엉덩이 사이에 한 줄로
끼어 있었다.
제 7화 유두주와 둔덕주
나는 오늘 오전에 피트(fit) 모델 일을 하고 왔다는 그녀의
이야기를 상기해냈다. 그렇다면 유명 브랜드 또는 디자이너의
옷을 시착(試着)하고 사진촬영을 했거나 패션쇼 리허설 따위
를 했다는 얘기이리라.
그제야 미진이 왜 그런 팬티를 입고 있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겉옷에 팬티라인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여자들이 가
끔씩 그런 속옷을 입는다는 정도는 나로서도 익히 아는 상식
이었다. 설마 속옷 모델 촬영을 한 건 아니었을 테니 보나마
나 그녀는 그 때 입고 있던 속옷 그대로 여기에 나타난 모양
이었다.
이유야 어쨌든 실로 굉장한 비경을 관찰하는 셈이었다. 어
느 누가 감히 연예인의 엉덩이를 훔쳐봤으리요, 그것도 한 몸
매 한다는 섹시 스타 이미진의 속살을.
물론 그것은 순간이었다. 그 무렵 뭐라 그녀와 대화를 나눈
희창이가 손을 들어 밴드의 음악을 중지시켰던 것이다. 아마
도 술 한 잔을 더 마실 차례가 된 듯 녀석은 미진의 손을 잡
고 다시 테이블로 돌아가고 있었다.
재빠르게 옆에 앉은 현옥이 내 잔에 얼음과 술을 따랐다.
미진 역시 희창이의 잔을 채웠다. 그러자 생각난 듯 야릇한
농을 건네 오는 희창이였다.
"참, 이럴 게 아니라 창희 너 미진이랑 블루스 한 곡 춰볼
래?"
푸하, 나는 그만 술잔에 코를 빠뜨릴 뻔했다. 한 곡 춰보라
니 그럼 나랑 미진이와 블루스를 추라는 건가.
"시, 싫어. 임마…!"
"싫어? 얼레, 미진이 삐지겠는걸. 자기랑 춤도 안 추려는 남
자를 만나다니."
내 얼굴이 취기 아닌 취기로 붉어졌다. 어찌 그런 뜻으로
말했을까. 나는 서둘러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그, 그래. 그럼 여기 현옥씨가 싫
어하잖아."
핫핫. 그 바람에 나는 실없는 웃음마저 웃어 보여야 했다.
정말로 그런 척 돌아보자 내 말에 감격했다는 듯 배시시 미
소로 마주보는 현옥이었다.
"정말이냐? 너 현옥이가 되게 마음에 드나 보구나?"
뭐라고 대꾸할 말이 없다. 나는 비질거리는 표정만 지어 보
였다. 희창이도 오케이, 감 잡았어 - 라는 말과 함께 고개만
끄덕거렸다.
"그건 그렇고 너 어쩔 거냐?"
"어… 어쩌다니?"
"다음 학기 말야. 그냥 복학할 거니?"
글쎄다. 결국 학생 신분이 탄로난 판국이기에 나는 머쓱한
표정으로 현옥의 얼굴만 흘끔거렸다. 응당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마도 먼저 말을 시키지 않는 한 손님들이 대
화를 나누는 동안에는 함부로 끼여들지 않는 것이 그녀들의
예절인 듯했다.
"한 학기는… 쉴까 생각해."
"맞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선영이 누나 귀국이 아직 좀 남
았다고 했지?"
선영이 누나의 귀국. 맞는 말이었다. 원래 예정대로라면 그
녀는 몇 달 후 여름에나 돌아오기로 되어 있었다.
희창이는 자기가 말을 꺼내놓고도 뭔가 생각에 빠진 표정
으로 묵묵히 술잔만을 기울여댔다. 우리는 한참을 그렇게 사
소한 이야기를 이으며 술을 마셨다. 학교 얘기, 장래 얘기…
거기에 미진과 친하다는 몇몇 연예인이나 가수 이야기까지.
비로소 밀린 이야기를 나누는 우리였다. 그 사이 중간치 양
주 한두 병이 말끔히 비워졌고 곧바로 다음 병이 오픈 되었
다. 서로의 얼굴이 술기운에 불콰하게 달아올랐고 그것은 그
간 옆에서 한 잔 두 잔 홀짝이는 아가씨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들의 뺨 또한 발그레하게 홍조를 머금고 있었다.
"야, 근데 이거 너무 심심하잖아?"
불쑥 희창이의 투덜대는 음성이 튀어나왔다. 약간은 의외였
다. 이 정도면 적지는 않아도 전성기의 녀석이나 나의 한 절
반 가량의 음주량일 뿐인데, 갑갑한 듯 그는 자기 목에 맨 고
급스런 넥타이까지 풀어헤치고 있었다.
오늘이야 모르겠으나 내 짐작으로 요즘 이곳저곳 술자리가
많았던 모양인 녀석이었다. 하기사 학교생활도 접어두고 이사
라는 명함까지 달고 다니는 그이다 보면 능히 그럴 만도 한
일이었다. 그가 갑자기 이색적인 제안을 하고 있었다.
"어때? 우리 현옥 언니 공연 한 번 할래?"
공연. 그 놈의 공연이 무엇인지 미리 알고 있었다면 나는
직후 벌어질 일을 한사코 말렸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차마
그러지 못했다. 그 순간 너무나도 당당히 현옥이 자리에서 일
어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좋아요, 까짓 것 한 번 해보죠 뭐. 대신 재미없다고 뭐라
그러지 마세요…!"
하핫, 안 그러겠다는 뜻으로 희창이는 웃어 보였다.
"뭐부터 보여드릴까요, 그럼?"
"음… 미진이도 있으니까 간단한 걸로 해. 그거 있지? 유두
주."
유두주? 나는 그 의미를 알지 못해 멀뚱한 시선만 굴렸다.
그런데 그 지시에 착실히 따르는 현옥은 무언가 황당한 짓을
저지르고 있었다. 그녀가 자신의 앞섶에 손을 가져가더니 휙
휙 무언가 날렵한 동작을 보였다.
이윽고 나는 그녀의 모습에 입이 떡 벌어지고 말았다. 허연
천 한자락이 저만큼 날아갔다. 그리고 두 개의 반원이 기다렸
다는 듯 허공에 불쑥 돌출되고 있었다. 현옥이 단숨에 블라우
스를 벗어던진 것이었다.
"어… 어, 현옥씨…"
미처 말릴 틈도 없었다. 두 말할 필요 없이 그곳은 실오라
기 하나 존재하지 않는 노브래지어였다. 내가 여자였다면 엄
마야, 라고 비명이라도 지를 모습이었다.
그래도 미진 쪽은 단순히 흥미로운 웃음만을 띄고 있었다.
마치 그녀도 이 순간에 익숙하다는 얼굴이었다.
"어느 분 해드릴까요?"
현옥의 그 말은 분명 어느 분 해드릴까아요오, 라는 장난기
가 다분한 어투였다. 나는 완전히 아연해져야만 했다. 그녀는
시키는 대로 해드리겠다는 철저한 봉사의 뉘앙스였다.
"아… 나도 하고 싶지만 미진이가 있으니 됐구, 거기 언니
파트너한테나 해드려."
하고 싶지만, 이란 대목에서 미진의 팔꿈치는 슬쩍 추근대
듯 희창이의 옆구리를 찔러대고 있었다. 그나저나 나부터라는
말에 나로서는 바싹 긴장을 해야만 했다. 아냐, 나도 됐어 -
라고 말했어야 옳았으나 불가능했다. 그럴 기회도 주지 않고
내 시야에 가득 뭔가가 들이닥친 때문이었다.
뭐, 뭐야 이것은? 그것은 현옥의 아찔하게 거대한 두 유방
이었다. 허연 그 속살들에 내 얼굴은 바싹 점령당하고 있었
다.
"자, 그럼… 제 파트너님 받으시와요…"
그녀의 한 손이 가득찬 스트레이트 잔을 들고 있었다. 그
손이 그녀의 목덜미를 향해 움직였다. 뭘하는 걸까. 자기가
마시려는 걸까. 아니었다.
살살, 마치 자기의 젖가슴에 술을 먹이듯 현옥은 그 잔을
자신의 두 계곡 중앙에 붓고 있었다. 급기야 유두주의 의미가
무엇인지 눈치챌 수 있었다.
"뭐해 임마, 술 안 마셔?"
술을 마셔라. 그렇다면 내가 이 술을 마시라는 것이냐. 머
리통이 백짓장 마냥 하얘졌다.
그 몇 방울의 술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 술이 담긴, 아니
흘러내리는 장소가 문제였다. 그 술을 받아 마시려면 꼼짝없
이 현옥의 젖가슴에 내 입술을 들이대어야 한다는 이야기였
다. 그나마 완전히 마시기 위해서는 아예 그녀의 유두를 정말
빨기라도 해야 했다.
내 흐릿한 의식 속에 그녀의 가슴을 타고 천천히 한두 방
울씩 흘러내리는 양주의 갈색 액체가 선명하게 보였다. 기막
힌 광경이었다. 정중앙에 부어져 흘러내리는 술자국은 이제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분홍빛 젖꽂지로부터 시작한 술방
울들이 계곡을 따라 한 줄기를 이루며 현옥의 작은 배꼽 우
물로 담겨가고 있었다.
"어머머… 뭐하세요? 제 스커트 젖는단 말이에요."
환장할 노릇이었다. 현옥의 재촉에도 꼼짝할 수가 없었다.
아이 안되겠네, 하고 아양을 떠는 듯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다음 찰라 더욱 어마어마한 일이 감행되는 중이었다. 그 자
리에서 갑작스레 다가서는 현옥. 그녀가 짧은 스커트 속에서
서슴없이 허벅지를 벌리며 내 무릎을 타고 올라왔다. 미끈한
밴드 스타킹에 싸인 두 다리가 드러나는 것도 잠시, 이내 그
녀의 손길이 내 뒤통수를 붙들며 끌어당기고 있었다.
제 8화 팬티를 적시는 위스키
어쩌란 것인가. 술방울을 핥으란 것인가 아니면 그 젖무덤
을 핥으란 것인가. 뒤로 물러나지도 못한 채 엉겁결에 붙잡혀
안긴 내 고개는 현옥의 뽀얀 살결만 마주 보아야 할 따름이
었다.
실타래가 뒤엉키듯 갈팡질팡대는 머리 속임에도 귓가에는
무어 그리 즐거운지 까르르 웃음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남
자 것만이 아닌 걸로 보아 미진도 함께 웃는 게 분명했고, 그
것은 저 연예인 아가씨도 이런 상황을 한두 번 겪은 게 아님
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이 진퇴양난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것인지 도통 떠오르
지 않는다. 아니 떠올릴 새도 없었다. 이미 나의 입술과 코는
그녀에 의해 지분거려지고 있었던 것이다. 스스로 입을 대지
않아도 이미 닿아 있는 나의 입술이었다.
"아이 뭐예요, 정말 유두주 안 받으실 거예요?"
미칠 것 같다. 흡사 아이처럼 보채기까지 하는 현옥이었다.
아양의 목소리로 그녀가 몸을 흔들자 나는 넓적다리 쪽에 묵
직한 중량감마저 느끼고 있었다.
비록 커다란 두 개의 출렁이는 살모음에 의해 제대로 내려
다 볼 수는 없어도 그것이 무엇일지는 뻔했다. 나의 몸뚱이
위로 기어올라온 현옥은 자연스레 사타구니를 벌려야 했고,
하여 타이트한 미니 스커트는 이미 그녀의 둔부 위로 잔뜩
말려 올라가 있었다.
외형상으로는 얇디얇은 속옷만이 그녀의 엉덩이를 가린 채
널을 뛰듯 내 허벅다리를 내리누르며 흔들고 있었다. 좌위(座
位). 그것은 섹스시 체위 중 하나라는 그 자세와 거의 동일했
다. 심지어 동작마저도 그것과 다름없었다.
고마워해야 할지 어쩔지, 그마나 아련한 나를 구해주는 것
은 그녀의 등뒤에서 들려오는 희창이의 투덜거림이었다.
"이봐, 그 친구 그게 아닌 것 같은데."
무슨 소릴까. 어쨌든 그제서야 들이댔던 젖꼭지를 내 얼굴
에서 떼어주는 현옥이었다. 그 덕분에 나는 무언가에서 풀려
난 듯 참고 있던 숨을 몰아쉴 수 있었다.
"그럼 어떻게요?"
"으응, 그거 말구 다른 걸 해봐. 아마 그 녀석 그 정도로는
안 넘어갈 거야."
"다른 거요? 어떤 거요?"
"아 왜, 그거 있잖아… 둔덕주."
둔덕주? 그건 또 뭐람.
"어머머, 전 그런 거 못해요, 이사님…!"
"못하는 게 어딨어. 전에 다른 아가씨는 하던걸?"
"아잉, 그거야 그런 게 특기인 언니였으니까 그렇죠!"
위는 위대로 함지박 만한 반구 둘, 아래는 아래대로 수박
만한 반구 둘. 그런 무기 아닌 무기로 사람을 짓눌러대면서
대체 이 사람들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다. 이것은 차라
리 고문보다 더 심한 고문이었다.
말 그대로 육탄공세였다. 그럼에도 그 실행자인 현옥으로서
는 그리 크게 반발하지는 않는 눈치였다. 드디어 합의점을 찾
아낸 듯 그녀에게선 이런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좋아요. 하지만 미진 언니도 있으니까 팬티는 안 벗을 거
예요."
이 아가씨 방금 뭐라 그랬지? 팬티만은 안 벗는다? 이제
커질 대로 커진 눈으로 나는 숨가쁘게 현옥을 쳐다보았다. 순
식간에 썰물 빠지듯 내 하체 위에서 물러서는 그녀였다. 그리
고 나는 그녀가 과감히 시행하는 그 행동에 훅, 숨을 멈췄다.
내 몸 위에 오르기 전에 이미 상체는 전라가 되어 있던 그
녀였건만 이번엔 그 아슬아슬한 하체마저도 숨 넘어갈 모습
을 보이고 있었다. 처음에 나는 그녀가 허리춤까지 걷어올렸
던 치맛자락을 다시 끌어내리는 줄만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순전히 내 바램이었다.
현옥은 자신의 미니스커트를 보듬으려는 게 아니었다. 그녀
의 허리가 굽혀졌다. 그녀의 손도 거침없이 움직였다. 마지막
으로 그 손길에 의해 그녀의 하복부에서 검은 색 무언가가
쑥 끌어내려지고 있었다.
그것이 바닥까지 흘러내린 것을 확인하고서야 실체를 파악
가능했다. 이럴 수가. 그것은 그녀의 달랑 하나 남은 제대로
된 겉옷가지, 그 미니스커트였다. 그녀는 그 폭보다도 길이가
짧은 원형의 고리에서 한쪽 발목씩 차례로 빼내고 있었다.
그 천조각 또한 어디론가 날아갔다. 내 신경도 어디론가 날
아갔다. 뽀얗기는 매한가지인 허벅지였으나 그녀가 그 짧디
짧은 미니 스커트 안에도 겨우 밴드스타킹 한 켤레만 신고
있음을 목격한 나는 거의 졸도할 지경이었다. 그나마 그것이
유일하게 조금 전까지 그녀가 갖춰진 옷을 입고 있다는 걸
증명해주고 있었다.
결국 저런 까닭에 그래도 같은 여자인 미진씨 앞에서 부끄
러움이라도 탄다는 얘기였나. 하여간 그녀는 그 검은 색 치마
와는 달리 하얀 백색의 팬티를 입고 있었다. 약속대로 그것마
저 벗지는 않았지만 육체적 유혹이 실로 철철 넘치는 몸매였
다.
"후훗, 너무 불결하다 생각하지는 마세요. 저 이것 입고서
아직 화장실도 한 번 가지 않았으니까…!"
그 말은 현옥이 내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며 건네는 통보였
다. 듣고도 도무지 영문을 짐작 못할 나로서는 멍하니 처분만
기다려야 했다.
"자, 그럼 둔덕주에요."
마침내 그 결정적 순간이 도래한 모양이었다. 그렇지만 그
말과 함께 전혀 엉뚱하게 행동하는 그녀였다. 한 잔 술을 든
그녀가 한 번 더 내 몸 위를 가로지르며 오르기는 오르는 것
같았는데, 다만 다른 것은 아까와의 자세였다.
넓게 다리 들고 올라앉기 - 그 장소는 내 허벅지 위가 아
니었다. 굳이 말한다면 내 자리 옆에 가까이 놓인 푹신한 소
파였다. 그녀는 꼿꼿이 그곳에 서고 있었다. 즉 그녀는 쭉 뻗
은 다리를 굽히지 않고 두 발로 양쪽 곁의 소파를 밟은 채
내 정면에서 들어선 형국이었다.
똑같이 하얀 부분이 내 코앞으로 다가온다. 저번에는 뽀얗
게 맨 속살이었는데 지금은 허연 색 레이스가 달린 천조각이
었다. 그게 무엇인지는 따로 말하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다름 아닌 현옥의 팬티였다. 그녀의 배꼽 아래 가장 비밀스
런 부분이 그 얇디얇은 천에 가려진 채 내 시선 15도 위, 십
제 3화 프롤로그 - CF모델 호스테스
이게 말이나 되는 걸까. 하지만 틀림 없이 말이 되고 있었
다. 그 아가씨들에게 까르르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아마도
희창이의 지시에 자기들로서도 쑥스러운 모양이었다. 설마 진
짜일 리가….?
아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마가 아니었다. 물론 그들은 치
마를 걷지는 않았다. 아니 그럴 필요조차 없었다. 무슨 말이
냐, 정말로 그녀들은 그 초미니 스커트 아래로 쭉쭉 뻗은 각
선미를 드러내며 테이블 위에 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정녕 눈길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라 당장 우왕좌왕대는
나였다. 애초에 희창이와는 대각선에 멀찌감치 떨어진 나의
자리였으니 아가씨들은 하나씩 내 정면에서 올라오는 중이었
고, 그도 모자라 웨이터들이 막 들여오기 시작한 술상 - 외제
양주와 화려한 안주 접시 - 에도 그녀들은 아랑곳이 없었다.
심지어 아가씨들의 가랑이 사이에서 손길을 놀리는 형국인
웨이터들마저도 늘 보던 모습인 양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있
었다. 그것은 차라리 치마를 걷는 것 이상이었다. 어차피 앉
은 자세인 내 위치에서는 기껏해야 그녀들의 무릎이나 하이
힐 뒤꿈치가 코 앞이었다.
"안녕하세요, 윤혜입니다."
"첨 뵙겠어요, 효진이라고 해요."
그녀들은 심지어 테이블 위에서 공손히 고개까지 숙여보이
며 마치 패션쇼의 모델들처럼 한 바퀴 휘 돌아보이기까지 하
고 있었다. 각도만 조금 달랐지 나 역시도 완전히 그녀들의
치마 아래에서 들여다보는 셈이었다.
한 마디로 말하자. 전부 다 보이고 있었다. 그나마 안 보이
는 여자라고 해도 최소한 팬티스타킹의 어둑어둑한 가랑이
부분이었다. 거기에 색다른 몇몇은 좀 길이가 긴 치마 또는
밴드 스타킹이었지만 그나마 몽땅 발레복 마냥 밑이 훤히 트
인 플레어 스커트였다. 당연히 허벅지의 삼분의 이가 넘는 위
쪽이 드러나 짙은 색 밴드를 언뜻거리고 있었다.
"뭐해? 누가 마음에 들어?"
희창이가 물었어도 차마 내 귀에 들릴 리도 없거니와, 시선
또한 돌리지 못할 일이었다. 만약 원한다면 그 예닐곱 아가씨
각자의 팬티 색깔도 쭉 읊었을 터, 겨우 몇 시간 전만 해도
순진한 군바리였던 나로서는 이런 꿈도 못 꿔본 상황에 적절
한 대꾸를 찾을 턱이 없었다.
내가 우물쭈물거리자 종내 그가 끌끌대며 직접 나서고 있
었다. 녀석은 한 차례 더 여자들을 쭉 훑어보더니 한 사람을
골라냈다.
"거기 언니… 언니는 아까 이름이 뭐라고 했지?"
무슨 왕가의 낙점(落點) 같은 의식. 그래도 그 선택을 받은
아가씨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기꺼운 표정이었다.
"네, 저요? 현옥이, 이현옥인데요…!"
"그럼 현옥이 니가 앉아라. 거기 그 친구한테."
어라라. 그게 끝이었다. 그러자 곧바로 아쉬운 인사들을 남
기며 나머지 아가씨들은 우르르 룸 밖으로 나가버렸다. 현옥
이라 불린 그 아가씨는 그 중에서도 약간 키가 작은 편의 아
가씨였는데, 그녀는 깡총거리며 냉큼 내 옆자리에 엉덩이를
붙여오고 있었다.
"어때? 마음에 드니?"
희창이가 의사를 타진해왔어도 나는 아예 말문을 잃었다.
설사 마음에 안 들어도 어쩌랴. 만약 두 사람만 있다면 녀석
에게 이 난감한 신고식 해프닝부터 따져 물을 터였으나 그건
도저히 불가능했다.
이미 내 곁에 달라붙다시피한 제 삼자 호스테스 아가씨가
있는 까닭이었다. 다만 녀석이 이 아가씨만을 부르고 한 사람
을 더 청하지 않는 게 묘할 뿐이었다.
"근데 잠깐… 현옥이 너 공연도 하나?"
"공연요?"
"쇼 말이야. 기왕에 놀려면 화끈하게 놀아야잖아?"
쇼? 나는 영문 모를 그 단어에 희창이를 쳐다보았다.
"어머, 무슨 방석집도 아닌데 여기 오면 이사님은 꼭 그런
걸 시키시더라… 저는 쇼 못한다고 전에 말씀드렸잖아요."
"으응? 그런가? 너 언제 나랑 술 마신 적 있었니?"
"어휴, 이사님도… 저번에 거래처 사람들이랑 오실 때 오늘
처럼 신고드렸었어요. 그 때도 저한테 그렇게 물으시길래 안
배웠다고 했더니 다른 언니로 바꾸셨으면서…!"
현옥이란 아가씨의 귀여운 그 푸념에 희창이는 머쓱한 표
정을 지어보여야 했다. 얼마나 희창이가 이 술집의 단골인지
를 알게 해주는 대목이었다.
"어… 그럼 곤란한걸. 오늘 이 친구 확실하게 즐겁게 해줘
야 하는데. 그럼 너 빼고…"
이것 참, 그렇다면 희창이는 이번에도 또 바꾸겠다는 얘기
였다. 그렇지만 그럴 기미가 보이기 직전에 대뜸 끼여드는 현
옥이란 아가씨였다.
"좋아요, 알았어요. 그럼 이따가 조금 해볼게요. 하지만 잘
못한다고 뭐라 그러지는 마시기에요…!"
그래 좋아. 녀석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졸지에 그
쇼인지 뭔지에 떨떠름해진 나인데, 현옥은 투덜거리면서도 깎
듯한 자세는 결코 잃지 않았다.
"미진 언니 때문에 그러시죠? 이사님 미진 언니한테는 그런
것 안 시키시는 것 같던데… 그렇다고 너무 차별하지 마세요.
그렇게 전속만 찾으시면 저 같은 아르바이트는 맨날 찬밥이
게요."
미진이… 희창이가 기다리는 호스테스의 이름인 것 같았다.
하여간 전속은 뭐고 아르바이트는 또 뭔가. 도통 알 수 없는
단어들에 의아한 표정을 짓자 희창이가 싱긋 웃어보였다.
"창희 너 왜 그렇게 조용해? 옛날 생각이라도 하는 거야?"
"예, 옛날?"
"그래. 우리 군대 가기 전에 보영이네 가게 생각 안 나?"
보영이. 난 오랜만에 듣는 그 이름에 저절로 회상에 빠져갔
다. 단란주점 새끼 마담이었던 그녀. 그녀가 자기 단란주점에
서 내 입대 환송파티를 해준 뒤로 우리는 만난 적이 없었다.
"모르지? 걔네 가게 옮겼어. 어딘지 아니까 나중에 한 번
놀러가자."
희창이의 그 제안에 나는 응응대는 시늉만 해야 했다. 그
때였다. 룸의 문이 조용히 열렸고, 누군가가 살그머니 들어서
고 있었다.
"언니, 오늘은 저에요."
아마도 발랄한 게 트레이드 마크인 듯, 현옥이 먼저 그쪽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나는 귓가로 그 여자가 미진이라는 아가
씨리라는 걸 직감하고서 엉거주춤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그런데 순간적으로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그 여자는 분명
어디에선가 많이 본 얼굴이었다. 꾸벅, 아무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들어온 그 아가씨가 차분하게 희창이의 옆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나는 연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녀 역시 아까의 미녀군
단처럼 어깨끈만 달랑 달린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입기는 마
찬가지, 그러나 분명 무언가가 달랐다. 아니 도리어 어디선가
매우 익숙한 자태였다. 찰나 뻐기듯 만면에 웃음을 띄우며 내
의문을 풀어주는 희창이였다.
"뭘 그리 놀래? 미진이 몰라? 이미진."
이미진 - 성(姓)까지 들은 나는 한참이 지나 그 이름에 무
릎을 쳐야 했다. 응당 그녀를 모를 리 없었다. 아니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내 입이 떡 벌어지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알지? 요즘 뭐더라… 그 컴퓨터 광고로 텔레비젼에 나오잖
아."
그런 부가 설명 따위는 없어도 되었다. 이게 대체 뭔 얘기
일까. CF모델은 물론이요 신문이나 잡지 광고는 수십 편, 이
따금 쇼 프로그램에 게스트로도 얼굴을 비치는 모델 겸 텔런
트 이미선 - 그 준 스타급 연예인이 지금 내 앞에 있었다. 그
것도 거의 반 벌거벗은 것이나 진배없는 차림으로.
"오늘 드라마 촬영 있었니?"
"아니… 오전에 옷 피트(fit)모델 해주고 왔어."
이럴 수가. 세상에 이럴 수가. 연예계의 비사라는 생각은
안중에도 없었다. 희창이는 아주 능숙하게 그녀를 대하고 있
었다. 말을 척척 놓는 걸로 보아 그들 둘은 진작에 보통 사이
가 아니었다.
전속이라, 이제 나는 전속이란 단어가 무슨 의미인지 능히
짐작 가능했다.
제 4화 탤런트와의 간접키스
이게 정말 꿈인지 생신지. 테이블 아래로 허벅지까지 꼬집
고 싶을 정도로 아연실색하는 나였지만 그런 나에게 희창이
는 스스럼없이 노란 원피스 차림의 그녀를 소개시켰다.
"자 정식으로 인사들 해. 미진이 너도… 여기는 창희라고
내 불알친구야."
"안녕하세요, 이미진이에요."
나로서는 황송할 따름이었다. 만약 이런 자리만 아니라면
공손하게 일어나 고개를 까닥이는 그녀에게 얼른 사인이라도
받아둬야 할 입장이었으니 말이다.
"안녕하세요, 이미진입니다. 오늘 처음으로 모시게 되어 영
광입니다."
현옥도 다시 일어서서 인사를 했다. 역시나 사뭇 다른 분위
기였다. 기실 군대 시절 휴가 때마다 희창이가 몇 번 아가씨
가 나오는 단란주점에 데려간 적은 있어도 그런 곳은 이런
식이 아니었다. 이게 단란주점과 룸살롱의 차이일까? 아무튼
그녀들의 태도에는 깍듯한 예의규범이 절로 배어 있었다.
"뭐하세요?"
옆자리의 현옥이 슬그머니 팔꿈치를 건드리는 바람에 나는
비로소 얼떨떨함을 떨쳐냈다. 돌아보니 긴 스트레이트 머리를
앞이마에서부터 갈라붙인 그녀가 빈 잔 하나를 손에 들고서
말똥말똥 내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술을 달라 착각한 내
가 엉거주춤 양주병을 집어들자 문득 조그만 웃음소리가 들
려왔다.
"그게 아니구요… 제가 어떻게 해드릴까 여쭤보는 거예요.
스트레이트로 하시겠어요, 아니면 얼음 타드려요?"
"어, 얼음을…"
하지만 얼어붙은 건 통에 담긴 얼음이 아니라 나의 더듬는
말투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현옥은 공손하게 잔에 얼음을 넣
고 달가락거리며 휘저어 내밀었고, 이어 다른 잔에 아이스 티
한 잔을 더 따라 내 앞에 놓아주고 있었다.
"어… 혀, 현옥씨도…"
이윽고 자기 잔에도 술을 따르려는 그녀인지라 나는 엉겁
결에 그녀의 손에서 술병을 가로채 채워주려 들었다.
"어머, 이사님 친구 분은 자상하시다. 첫잔부터 직접 주시려
구요?"
아마도 손님 술시중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알아서 자기 술
을 챙기는 것이 이런 곳의 도리인 모양이었다. 어쨌든 나는
주춤대며 현옥이 내민 스트레이트 잔에 양주를 따라주었다.
"저기 근데요… 제가 어떻게 불러드려야 해요? 이사님 친구
분이시면 같은 이사님이세요?"
"아, 아니에요. 이사는 무슨…!"
나는 펄쩍 뛰며 희창이 쪽을 바라보았다. 헌데 녀석은 나름
대로 미진씨와의 얘기에 열중한 듯 내게는 눈길도 주지 않으
며 홀짝홀짝 술을 마시고 있었다. 어쩌구 저쩌구, 알아듣지
못할 말귀만이 간혹 들리고 있었다.
"그, 그냥 창희씨라고 불러요. 난… 나는 그게 편해요."
뭐라고 말할 소냐. 오늘 방금 제대한 군인이라고 할 수는
없는 일, 그렇다고 대학 휴학생이라는 말도 창피스럽기는 피
차 일반이었다. 현옥이 명함이라도 한 장 달랄까봐 나는 더럭
겁을 집어먹었다.
"정말요? 아이 좋아라. 굉장히 민주적이시네요?"
민주적, 그 말이 대체 이런 자리에 어울리기나 하는 걸까.
나는 현주가 내민 술잔을 재빨리 마주 부딪히고는 타는 목구
멍을 진정시키기 위해 단숨에 비워버렸다.
"근데 진짜 창희씨라고 불러도 되나요? 만약 이사님이 화라
도 내시면…"
"그럴 리가요? 그, 그런 건 걱정 마세요…!"
"후훗, 근데 아까부터 왜 자꾸 존댓말 쓰세요? 제가 어린
것 같은데 말 놓으세요. 안 그러시면 제가 불편해요."
"그, 그래도 몇 살이길래…"
"저요? 전 스물 하나밖에 안됐어요."
스물 하나라. 그렇다면 만으로 갓 스물. 그런데 이렇게 성
숙한 이미지를 지녔다니. 아닌게 아니라 미진과는 달리 현주
는 어딘가 세미 정장 같은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하얀 블라우스에 까만 스커트, 뽀얀 얼굴이 앳되 보이긴 했
어도 어디 사무실 같은 곳에 있어도 괜찮은 OL 스타일이었
다. 단 하나, 타이트한 그녀의 치마가 지나치게 짧아 엉덩이
만 간신히 가리고 있음을 뺀다면.
그 무렵 와하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고개를 들어
그쪽을 바라보았다. 희창이가 호방하게 웃으며 미진과 떠들고
있었다. 몇 잔 술이 돈 것 같지도 않은데 벌써 홍조가 드는
녀석의 얼굴을 보니 그녀에게 상당히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
다.
"두 분 잘 어울리죠?"
정신 없는 내 곁에서 목소리를 낮춘 현옥이 속삭여왔다. 나
는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거려야 했다.
"이사님은 여기 오면 꼭 미진 언니만 찾으세요. 두 사람 동
갑이라던데, 밖에서도 만나는 것 같더라구요."
"바, 밖에서 따로?"
"네. 원래는 여기 단골이 아니셨다는데 미진 언니가 여기만
전속으로 나오니까 이리로 오시는 거래요… 미진 언니 같은
분은 아무나 못 불러요. 아시잖아요, 소문 나면 안 되니까. 아
르바이트하는 저희들에 비하면 엄청 차이가 나걸랑요."
차이가 난다는 그 말에 나는 그녀를 흘끗 돌아보았다. 자세
히는 몰라도 그 차이라는 것이 모종의 물질적인 것과 관련이
있다는 것은 대충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렇다면 얼마나 되려
나, 하는 내 머리 속 질문에 대답이라도 해주듯 현옥의 이야
기가 이어졌다.
"저런 분은 직접 돈 안 받아요. 그냥 차지(charge)에는 계
산만 하고 따로 받으세요. 근데 뭐라더라… 이사님 회사 신문
광고에 CF모델이었대요, 저 언니가."
그런가. 그래서 저렇게 두 사람이 만나게 된 걸까. 조금씩
의문이 풀리기는 하는 중이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희창이가
하는 일이 뭔지도 아직 모르지만 신문광고까지 할 정도라면
퍽 잘 나가는 규모란 건 분명했다.
"미진아, 창희 저 친구에게도 한 잔 따라 줘."
그때 불쑥 녀석이 말을 건네고 있었다. 화들짝 놀란 나는
얼른 고개를 들었다.
"뭐하니, 잔 안 받구."
이런 황송할 데가… 희창이의 핀잔에 어쩔 줄을 모르는 나
였다. CF모델 이미진, 그녀가 손수 잔을 내밀고 있었다. 나는
그 잔을 보고는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없었다.
다름 아니라 그녀는 자신의 립스틱 자국이 선명한 온더락
잔을 내게 내밀어주고 있었던 것이다. 자기가 마시던 잔 - 과
장해서 말하면 나는 지금 이 유명 연예인과 간접 키스마저
하게 될 기회를 얻고 있었다.
팔을 뻗느라 허리마저 굽힌 미진씨. 얼음이 담긴 그 유리잔
으로 웨이브진 커트의 그녀 머리결이 흔들렸다. 그 아래로 그
녀의 원피스 자락이 살짜기 늘어진 모습이 비쳐보였다. 뚜렷
한 두 젖가슴의 계곡이 윤곽을 내보이는 그곳이었다.
제 5화 스타는 어떤 팬티를 입을까?
차마 그래도 나는 그 립스틱 자국에 입을 대는 것이 불가
능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받아든 그 잔에 절이라도 하고픈
나였다.
"얼른 드시고 저도 한 잔 주세요."
그 말에야 후닥닥 목구멍으로 술을 넘겼다. 술에서는 오묘
한 향내마저 감도는 것 같았다. 비단 최고급 외제 양주의 향
기여서만이 아니다. 내게는 그것이 분명 저 꿈결 같은 미인
이미진의 야릇한 내음으로 느껴지고 있었다.
술잔에 담긴 얼음이 달가닥거리며 서늘하게 윗입술에 닿아
왔다. 그것은 어둠 속에서 당한 도둑키스 같은 서늘함이었다.
그녀가 얼음을 더 집어넣고 술을 건네지는 않았다는 것이 상
기되었다.
그렇다면 아무리 내가 립스틱 자국이 뭍은 잔 가장자리를
피한다 해도 이 얼음 중 하나는 미진의 입술에 닿았던 것이
리라. 나는 마치 정말 키스라도 한 듯한 착각에 빠져 단숨에
잔을 비웠다.
이번엔 어지로운 머리 속을 가누며 내가 그녀에게 술을 따
를 차례였다. 하도 얌전하게 두 손을 모은 그녀이길래 나도
예의 바르게 두 손으로 술병을 모셔야 했다. 잔들이 여러 번
오갔다. 곁에서는 현옥이 따른 술을 희창이가 마시고, 다시
그 잔을 그녀가 돌려받고 있었다.
"이사님, 이제 밴드 부를까요?"
그럴까, 희창이가 동의하자 호스테스 현옥은 사뿐히 룸을
나갔다 돌아왔다. 이어서 대기하고 있던 두 사람의 악사가 들
어오고 있었다. 그들이 룸에 준비되어 있던 기타와 키보드를
이용해 조용한 경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나가시겠어요?"
현옥이 팔을 잡아끄는 바람에 어리버리한 나는 그만 룸의
홀로 이끌려나오고 말았다. 애초에 이런 호사를 바라지도 않
았던 나였다. 그저 희창이와 소주 한두 잔에 밀린 이야기나
했어도 족하련만, 그러나 분위기는 이제 영 딴판으로 흐르고
있었다.
나는 한 번 더 희창이에게 시선을 보냈다. 놀라운 광경의
연속이었다. 미진씨와 거의 안다시피 달라붙어 있는 녀석의
모습은 과연 나와 술을 마시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인지, 아니
면 저 연예인 호스테스를 만나러 온 것인지 분간이 가지 않
을 지경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자꾸만 주눅 드는 기분을 모면하려면 나로
서는 노래나 불러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
가. 마이크가 있었어도 나는 그것을 잡아볼 기회를 놓치고 있
었다.
어어… 어이없는 비음만 흘러나왔다. 어차피 현옥의 손에
붙들렸다는 생각도 잠시, 전혀 엉뚱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푹신, 또는 물컹. 나는 내 품으로 뛰어든 두 개의 질량감에
그만 호흡을 딱 멈추었다. 어느새 그녀가 능숙하게 내 등에
손을 감으며 안겨왔던 것이다.
그랬다. 현옥이 홀로 나오자고 한 것은 노래를 부르자고 한
말이 아니었다. 블루스 - 그것인 모양이었다. 나는 목구멍으
로 마른침을 삼키면서도 달리 어쩔 방도가 없었다. 당황스러
웠어도 예의없이 그녀를 뿌리치지 않을 정도의 정신은 차리
고 있었다.
귓가에 들려오는 잔잔한 라이브 음악, 가득히 달려든 늘씬
한 아가씨. 그것들이 내 의지를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었다.
"혀, 현옥씨…"
가까스로 아스라한 그녀의 이름이라도 부르려는데 그조차
어쩌지 못했다. 순간 현옥에게선 키득키득 웃음소리가 터져나
오고 있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그녀가 살짜기 몸서리를 치며
내 어깨 아래에서 바르르 몸을 떨어댔다.
"아이, 그러지 마세요… 간지러워요. 전 귀가 성감대란 말이
에요."
미칠 노릇이었다. 다른 것 때문이 아니었다. 그 키득거림에
따라 흔들리는 현옥의 몸뚱아리 - 그녀가 입은 얄팍한 블라
우스는 아무것도 입지 않은 맨살보다 더 간드러진다. 그런데
그럴수록 그녀는 찰싹 붙고 있었으니, 그에 따라 리드미컬한
출렁임이 직접적으로 내 가슴팍에 전달되고 있었다.
그게 어찌 그녀의 성감대를 자극하는 것이랴. 거꾸로 내 성
감대가 자극되는 판국이었다. 그건 꼭 간지러운 곳이 자신의
젖가슴인 양 이 아가씨 쪽에서 내게 마구 비벼대는 꼴이었다.
천천히 밴드 앞을 도는 우리의 춤동작에 따라 나는 현옥의
앞가슴 중량감을 확실히 느끼고 있었다.
크다. 그것도 상당히. 나보다 고개 하나 아래이기에 썩 큰
키가 아닌 그녀임에도 그 부피는 상상을 넘고도 남는 부피였
다. 통통한 편이었어도 살찐 몸매는 아닌지라 순전히 그녀 유
방의 풍만함만이 전부였다.
이렇게 말하면 어떻게 들릴지 모르지만 실상 3년 가까이
여자를 겪지 못한 내 몸뚱아리였다. 휴가 때마다 내내 아가씨
를 붙여줬던 희창이였으나 나는 한사코 그 마지막 단계만큼
은 삼가해왔었다.
그러므로 이런 당혹스러운 상황은 거의 결정적인 치명타였
다. 굳이 변명조차 불필요했다. 궁지에 몰린 내 몸은 금방 그
허기졌던 시절에 반기를 들며 터질 듯한 즉각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왜 그러세요? 어디 불편해요…?"
아이구, 현옥의 귓가가 아니라 내 귓가가 성감대로 변하기
일보직전이었다. 그 질문보다도 그녀의 뜨거운 숨결이 더 나
를 혼미하게 만들었다.
그녀로서는 그런 질문이 나오는 게 마땅했다. 내 허리는 이
미 십 센티 이상 현옥의 하체에서 떼어지려 엉거주춤한 자세
가 되고 있었다. 나는 재빨리 시선을 이리저리 옮기며 다른
생각을 해보려 애썼다. 음악을 연주하는 밴드 아저씨들이라도
쳐다봐야 할 성싶었다.
"후후, 분위기 딱 좋구만…! 현옥이 몸매가 창희 너한테는
아주 딱인데?"
맙소사, 그렇지만 주변은 악화일로에 있었다. 그 야릇한 목
소리와 함께 내 시야에는 한 가지 더 엄청난 광경이 등장하
고 있었다. 우리 곁에서 막 블루스를 추기 시작하는 커플, 그
들이 누구이겠는가. 다름 아닌 희창이와 미녀 모델 미진씨였
다.
그제야 제대로 미진의 전신을 볼 수 있었다. 하이힐을 빼고
도 거의 희창이 녀석의 눈썹 밑에 다다를 정도의 훤칠한 키,
게다가 그 야들거리는 원피스는 금방 끈이라도 풀어져서 바
닥에 흘러내릴 것 같았다.
그 찰랑이는 노란 원피스는 살랑 바람이라도 불면 휑하니
엉덩이를 드러낼 정도로 아슬아슬했다. 그 아래에는 늘씬하게
뻗은 허벅지와 종아리가 그림같이 이어지고 있었다.
달리 반쯤 벗은 것 같다는 표현을 쓰는 것이 아니다. 그녀
의 브래지어 선까지, 그녀의 일직선으로 쭉 훑어내린 탄탄한
등의 윤곽선까지 그 한 장짜리 옷은 모두 드러내주고 있었다.
차라리 나로서는 아찔한 눈을 감아버려야만 했다. 하지만
다음 찰라 미처 예기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잠시 조용한가
싶더니만 불현듯 귓가에 속삭이는, 이런 직업에 있는 아가씨
다운 현옥의 질문. 그것이 나를 와락 갑자기 긴장시키고 있었
다.
"근데요… 창희씨. 창희씨 머리는 되게 짧네요? 온몸도 울
퉁불퉁하구… 혹시 운동선수세요? 아님 군인인가?"
하지만 그 긴장은 결코 내게 도움이 못되는 것이었다. 뭐라
대꾸도 제대로 못하고 얼버무리는 그런 차에 화들짝 뜬 내
시야 - 본의 아니게 그곳에 닥쳐온 하나의 아득한 경치 탓이
었다.
아차차. 그 은밀한 모습에 억누르고 있던 나의 신경은 순식
간에 그 자리에서 무장해제해 당하고 있었다. 기절초풍할 일
이 벌어지는 중이었다.
텔레비전에도 나온 스타가 어떤 팬티를 입는지 본 사람이
있는가. 그렇게 누가 묻는다면 나는 그 때부터 본 적이 있다,
라고 대답해야만 할 것이다. 맞다. 나는 똑똑히 보고 있었다.
이미진, 그 아가씨의 속옷이 지금 그 야들야들한 치마 속에
서 반쯤 엿보이고 있었다. 왜냐. 희창이의 두 손이 그녀의 허
리와 엉덩이 중간쯤에 얹어져 있는 까닭이었다.
그들 둘은 여자는 남자의 어깨에, 남자는 여자의 둔부에,
다름 아닌 그런 자세로 천천히 블루스를 추고 있었다. 그런
연유로 그 가뜩이나 짧은 미진의 원피스 자락이 절반 가량
춤동작에 맞춰 끌어올려졌다 내려갔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제 6화 연예인용 끈 팬티
- 아따, 순진한 군바리 맘에 불을 댕기네요, 잉.
이 말은, 바로 오늘 오전에 헤어진 박 병장이 즐겨 쓰는 말
이었다. 훈련을 나갔다가 어쩌다 사제(私製) 여자를 마주치기
라도 하는 경우에는, 그것이 아줌마건 꽃띠 아가씨이건 그는
덕지덕지 위장크림을 바른 얼굴로 그렇게 침을 튀기고는 했
었다.
지금 나는 그 말을 떠올리고 있었다. 이건 모닥불 정도가
아니었다. 펄펄 붙은 산불, 정말 산불이라도 질러진 것처럼
내 머리통과 얼굴은 확 달아오르고 있었다.
신입생 시절 나이트 클럽에 떴다하면 그 깔끔한 춤 솜씨만
으로도 날라리 아가씨들의 눈길과 부킹을 한 몸에 받던 희창
이었다. 그런데 그 동안 얼마나 일취월장을 했는지 녀석은 마
치 사교 댄스라도 배운 듯한 능숙함으로 미진을 부드럽게 리
드하고 있었고, 그녀 역시 그에 맞춰 홍조 띤 얼굴을 절반쯤
희창이의 고개 아래에 묻고 있었다.
아예 양팔로 매달린 자세나 마찬가지, 그래서 희창이의 두
손길은 천천히 미진의 등뒤를 오르내리며 더듬는 중이었다.
넋이 나가 허둥대면서도 자꾸 그쪽으로 쏠리는 시선을 어쩌
지 못하는 나인데, 그런 귓가에 또 한 번 은근한 목소리가 들
려왔다.
"미진 언니 몸매 예쁘죠?"
머리카락 속으로 주르륵 진땀이 흘러내렸다. 현옥이었다.
어느 틈에 나의 낌새를 알아차린 그녀가 소리 죽인 웃음마저
짓고 있었다.
"킥킥… 모두들 저 언니만 나오면 난리라니까."
"아, 아니야…!"
무안해져 다급히 대꾸를 둘러댔지만 마치 속내를 들킨 양
저으기 창피스러웠다. 그래도 익숙한 만큼 별로 신경 쓸 일이
아니라는지 그녀는 반 미소로 푸념할 따름이었다.
"아이… 그만 쳐다보세요. 저 계속 섭섭하게 하실 거예요?"
나는 후닥닥 정신을 차렸다. 그런 대화를 나누면서도 여지
껏 희창이 커플을 향해 현옥의 등을 돌려세우고 있었으니 예
의상으로라도 그들 쪽을 외면해야 했던 것이다.
기실 이런 모든 일이 일어나기까지는 블루스 음악 한 곡도
채 흐르지 않은 시간이었다. 재빨리 위치를 바꾸자 현옥은 아
양을 떨 듯 좀 더 찰싹 내 몸에 달라붙어왔다. 그녀의 만만치
않은 젖가슴이 한층 밀착되었다.
"저도 알건 알아요. 미진 언니 원래 프로덕션 영화 때부터
날리던 몸매였으니까요."
"프, 프로덕션 영화?"
"으응… 국산 에로 비디오 말예요."
국산 에로물? 나는 그 이야기에 다시금 눈이 휘둥그래졌다.
그럼 TV출연도 심심찮은 저 인기 스타 이미진이 군바리 시
절 우리가 히히덕거리며 돌려보던, 한낱 그렇고 그런 비디오
영화배우 출신이란 걸까?
"어차피 몸매로 뜬 언니잖아요. 아마도 얼굴은 좀 고쳤는지
몰라도."
"저, 정말이야?"
"어머, 창희씨도. 제가 거짓말하겠어요? 그렇지만 몇 편 안
될 걸요…? 워낙 오래 전 일이구, 저렇게 뜬 후엔 아예 매니
저들이 원판을 회수한대요."
작게 낮췄어도 묘한 질투기가 배어나는 현옥의 속삭임이었
으나 나는 그저 멍청히 혀만 내둘러야 했다. 엄청난 연예계의
비화(秘話)이건만 무슨 일상인 것처럼 그녀는 스스럼없는 말
투였다.
어안이 벙벙했다. 텔레비전이나 화려한 잡지상에서 뭇 남성
의 이상형으로 떠오르는 유명 모델, 그런 스타급 연예인의 사
적인 은밀함을 훔쳐본다는 게 고작 스물 몇 해 살아온 내게
가당키나 한 일이었나. 그것도 엉덩짝 어디에 얼마만한 점이
있으며 사타구니 구석에 어떤 터럭이 있는지조차 속속들이
아는 나의 불알친구 희창이가 그 주인공이라니.
믿지 못할 일. 그러나 나는 그 실체를 방금 곁에서 보고 있
었다. 누구누구는 어디에 술 따르러 나오고, 누구는 얼마얼마
에 같이 놀 수 있고 - 그런 얘기란 지금껏 소문과 가십 기사
에서나 존재하는 줄 알고 있던 나란 놈이었기에 이 상황은
실로 대단한 충격이었다.
"근데 창희씨 춤 되게 못추시네요."
"어, 나… 나?"
"네. 무슨 막대기 같아요. 이게 뭐예요. 팔로 내 목이라도
조르는 것처럼."
어쨌든 화제를 돌리는 현옥에 나는 엉거주춤 당황했다. 아
까부터 엉거주춤 하체를 떼고 있건만 그도 모자라 줄창 내
품안을 파고드는 그녀였고, 그에 따라 팔꿈치마저 들고서 꽤
나 어색한 모습을 취해야 나였으므로 당연한 핀잔이었다. 안
그러면 호응이랍시고 마주 그녀를 얼싸 안을 수도 없는 까닭
이었다.
"긴장 좀 푸세요. 무슨 군인이 차렷한 것도 아니구… 안되
겠네, 이렇게 해봐요."
군인, 나로서야 찔끔거릴 단어인데 이어지는 상황은 그에
비해 차라리 약과였다. 호스테스 현옥은 슬그머니 능숙한 솜
씨를 보이고 있었다. 그녀가 팔을 약간 추스르니 후들대는 나
의 팔목은 금세 그녀의 어깨 위를 감싸는 몸짓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녀는 곧장 내 겨드랑이 사이로 깊숙이 팔을 끼워
넣고 있었다.
으으… 나는 그 황당해진 체위에 질겁을 하고 말았다. 자신
의 스스로 남자에게 파고드는 그녀, 그러니 왕창 다가선 그녀
의 두 유방은 이제 문제도 아니었다.
내 등뒤에서 대롱거리는 현옥의 손. 가뜩이나 나보다 한 뼘
이상 작은 몸집인 그녀의 손이 어디에 위치하겠는가. 자기 딴
에는 허리춤 어디라 생각할지 몰라도 현실은 결코 그렇지 않
았다. 자연스레 늘어뜨린 그녀의 두 손은 내 허리 아래, 쉽게
말해 내 엉덩이 위에 놓이고 있었다.
이젠 하체를 빼고 어쩌고도 불가능했다. 이건 꼭 그녀가 나
의 하체를 도망 못 가게 쥐고 있는 형국이었다. 그 상태로 완
전히 내 몸 전면에 자기 온 몸뚱이를 비비적거리며 현옥은
리드미컬하게 블루스 박자에 몸을 맞추고 있었다.
나는 아찔함만을 느끼며 그녀에게 끌려 다니듯 춤을 추어
야 했다. 천천히 우리는 한 바퀴 홀을 돌았다. 그 때였다.
엉? 나는 입속에서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빙글거리며 돌아
선 현옥과 영 어색함을 주체하지 못하는 나는 서로 이리저리
둘 곳 없는 시선을 굴리고 있었는데, 때 맞춰 희창이와 미진
의 커플도 그렇게 흔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곳에 가슴이 두방망이질 칠만한 경치가 존재했다. 저게
대체 뭐냐 - 나는 그것이 착시이기만을 바랬다.
어느 샌가 숫제 반 이상 끌어올려져 있는 미진의 원피스
자락이었다. 하도 철석같이 미진의 허리를 안은 그 희창이인
지라 그녀의 치마 뒤는 한참 위로 당겨져 있었고 그 아래에
는 내가 상상도 못했던 부분이 드러나 있었다. 그럼에도 녀석
은 미진의 긴 머리채에 코를 박고 있는 통에 자신이 어떤 짓
을 하고 있는지 짐작도 못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고작 그녀의 팬티 따위를 말하는 게 아니다. 아니아니, 다
름 아닌 그 팬티 이야기가 맞기는 맞다. 중요한 것은 내가 태
어나 처음 보는 속옷을 마주한다는 점이었다.
아뿔싸. 내가 아까 언뜻언뜻 팬티라 착각했던 것은 진짜 그
녀의 팬티가 아니었다. 그랬다. 그건 미진의 허연 속살이었다.
즉 그녀의 허벅지와 둔부는 틀림없이 다른 살결색을 띄고 있
었던 것이다.
그게 팬티라인이었다. 필경 피치 못할 사정에 의해 - 나는
그녀가 수영복 모델로 나온 광고 사진을 기억한다 - 그렇게
되었을 터였다. 정확히 말해 팬티쯤으로 가리워졌을 그 부위
가 완전히 뽀얀 색으로 드러나 있었다.
내가 무얼 보았단 말일까. 노 팬티? 노(No). 끈 팬티였다.
뭐라더라, 영어로 T백 스타일(T-Back Style)이라던가. 아무
튼 그녀는 그런 속옷을 입고 있었다.
쫙 올라붙은 엉덩이, 폭이 삼사 센티도 안 되는 그 까만 색
천조각이 탤런트 겸 모델 이미진의 엉덩이 사이에 한 줄로
끼어 있었다.
제 7화 유두주와 둔덕주
나는 오늘 오전에 피트(fit) 모델 일을 하고 왔다는 그녀의
이야기를 상기해냈다. 그렇다면 유명 브랜드 또는 디자이너의
옷을 시착(試着)하고 사진촬영을 했거나 패션쇼 리허설 따위
를 했다는 얘기이리라.
그제야 미진이 왜 그런 팬티를 입고 있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겉옷에 팬티라인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여자들이 가
끔씩 그런 속옷을 입는다는 정도는 나로서도 익히 아는 상식
이었다. 설마 속옷 모델 촬영을 한 건 아니었을 테니 보나마
나 그녀는 그 때 입고 있던 속옷 그대로 여기에 나타난 모양
이었다.
이유야 어쨌든 실로 굉장한 비경을 관찰하는 셈이었다. 어
느 누가 감히 연예인의 엉덩이를 훔쳐봤으리요, 그것도 한 몸
매 한다는 섹시 스타 이미진의 속살을.
물론 그것은 순간이었다. 그 무렵 뭐라 그녀와 대화를 나눈
희창이가 손을 들어 밴드의 음악을 중지시켰던 것이다. 아마
도 술 한 잔을 더 마실 차례가 된 듯 녀석은 미진의 손을 잡
고 다시 테이블로 돌아가고 있었다.
재빠르게 옆에 앉은 현옥이 내 잔에 얼음과 술을 따랐다.
미진 역시 희창이의 잔을 채웠다. 그러자 생각난 듯 야릇한
농을 건네 오는 희창이였다.
"참, 이럴 게 아니라 창희 너 미진이랑 블루스 한 곡 춰볼
래?"
푸하, 나는 그만 술잔에 코를 빠뜨릴 뻔했다. 한 곡 춰보라
니 그럼 나랑 미진이와 블루스를 추라는 건가.
"시, 싫어. 임마…!"
"싫어? 얼레, 미진이 삐지겠는걸. 자기랑 춤도 안 추려는 남
자를 만나다니."
내 얼굴이 취기 아닌 취기로 붉어졌다. 어찌 그런 뜻으로
말했을까. 나는 서둘러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그, 그래. 그럼 여기 현옥씨가 싫
어하잖아."
핫핫. 그 바람에 나는 실없는 웃음마저 웃어 보여야 했다.
정말로 그런 척 돌아보자 내 말에 감격했다는 듯 배시시 미
소로 마주보는 현옥이었다.
"정말이냐? 너 현옥이가 되게 마음에 드나 보구나?"
뭐라고 대꾸할 말이 없다. 나는 비질거리는 표정만 지어 보
였다. 희창이도 오케이, 감 잡았어 - 라는 말과 함께 고개만
끄덕거렸다.
"그건 그렇고 너 어쩔 거냐?"
"어… 어쩌다니?"
"다음 학기 말야. 그냥 복학할 거니?"
글쎄다. 결국 학생 신분이 탄로난 판국이기에 나는 머쓱한
표정으로 현옥의 얼굴만 흘끔거렸다. 응당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마도 먼저 말을 시키지 않는 한 손님들이 대
화를 나누는 동안에는 함부로 끼여들지 않는 것이 그녀들의
예절인 듯했다.
"한 학기는… 쉴까 생각해."
"맞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선영이 누나 귀국이 아직 좀 남
았다고 했지?"
선영이 누나의 귀국. 맞는 말이었다. 원래 예정대로라면 그
녀는 몇 달 후 여름에나 돌아오기로 되어 있었다.
희창이는 자기가 말을 꺼내놓고도 뭔가 생각에 빠진 표정
으로 묵묵히 술잔만을 기울여댔다. 우리는 한참을 그렇게 사
소한 이야기를 이으며 술을 마셨다. 학교 얘기, 장래 얘기…
거기에 미진과 친하다는 몇몇 연예인이나 가수 이야기까지.
비로소 밀린 이야기를 나누는 우리였다. 그 사이 중간치 양
주 한두 병이 말끔히 비워졌고 곧바로 다음 병이 오픈 되었
다. 서로의 얼굴이 술기운에 불콰하게 달아올랐고 그것은 그
간 옆에서 한 잔 두 잔 홀짝이는 아가씨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들의 뺨 또한 발그레하게 홍조를 머금고 있었다.
"야, 근데 이거 너무 심심하잖아?"
불쑥 희창이의 투덜대는 음성이 튀어나왔다. 약간은 의외였
다. 이 정도면 적지는 않아도 전성기의 녀석이나 나의 한 절
반 가량의 음주량일 뿐인데, 갑갑한 듯 그는 자기 목에 맨 고
급스런 넥타이까지 풀어헤치고 있었다.
오늘이야 모르겠으나 내 짐작으로 요즘 이곳저곳 술자리가
많았던 모양인 녀석이었다. 하기사 학교생활도 접어두고 이사
라는 명함까지 달고 다니는 그이다 보면 능히 그럴 만도 한
일이었다. 그가 갑자기 이색적인 제안을 하고 있었다.
"어때? 우리 현옥 언니 공연 한 번 할래?"
공연. 그 놈의 공연이 무엇인지 미리 알고 있었다면 나는
직후 벌어질 일을 한사코 말렸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차마
그러지 못했다. 그 순간 너무나도 당당히 현옥이 자리에서 일
어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좋아요, 까짓 것 한 번 해보죠 뭐. 대신 재미없다고 뭐라
그러지 마세요…!"
하핫, 안 그러겠다는 뜻으로 희창이는 웃어 보였다.
"뭐부터 보여드릴까요, 그럼?"
"음… 미진이도 있으니까 간단한 걸로 해. 그거 있지? 유두
주."
유두주? 나는 그 의미를 알지 못해 멀뚱한 시선만 굴렸다.
그런데 그 지시에 착실히 따르는 현옥은 무언가 황당한 짓을
저지르고 있었다. 그녀가 자신의 앞섶에 손을 가져가더니 휙
휙 무언가 날렵한 동작을 보였다.
이윽고 나는 그녀의 모습에 입이 떡 벌어지고 말았다. 허연
천 한자락이 저만큼 날아갔다. 그리고 두 개의 반원이 기다렸
다는 듯 허공에 불쑥 돌출되고 있었다. 현옥이 단숨에 블라우
스를 벗어던진 것이었다.
"어… 어, 현옥씨…"
미처 말릴 틈도 없었다. 두 말할 필요 없이 그곳은 실오라
기 하나 존재하지 않는 노브래지어였다. 내가 여자였다면 엄
마야, 라고 비명이라도 지를 모습이었다.
그래도 미진 쪽은 단순히 흥미로운 웃음만을 띄고 있었다.
마치 그녀도 이 순간에 익숙하다는 얼굴이었다.
"어느 분 해드릴까요?"
현옥의 그 말은 분명 어느 분 해드릴까아요오, 라는 장난기
가 다분한 어투였다. 나는 완전히 아연해져야만 했다. 그녀는
시키는 대로 해드리겠다는 철저한 봉사의 뉘앙스였다.
"아… 나도 하고 싶지만 미진이가 있으니 됐구, 거기 언니
파트너한테나 해드려."
하고 싶지만, 이란 대목에서 미진의 팔꿈치는 슬쩍 추근대
듯 희창이의 옆구리를 찔러대고 있었다. 그나저나 나부터라는
말에 나로서는 바싹 긴장을 해야만 했다. 아냐, 나도 됐어 -
라고 말했어야 옳았으나 불가능했다. 그럴 기회도 주지 않고
내 시야에 가득 뭔가가 들이닥친 때문이었다.
뭐, 뭐야 이것은? 그것은 현옥의 아찔하게 거대한 두 유방
이었다. 허연 그 속살들에 내 얼굴은 바싹 점령당하고 있었
다.
"자, 그럼… 제 파트너님 받으시와요…"
그녀의 한 손이 가득찬 스트레이트 잔을 들고 있었다. 그
손이 그녀의 목덜미를 향해 움직였다. 뭘하는 걸까. 자기가
마시려는 걸까. 아니었다.
살살, 마치 자기의 젖가슴에 술을 먹이듯 현옥은 그 잔을
자신의 두 계곡 중앙에 붓고 있었다. 급기야 유두주의 의미가
무엇인지 눈치챌 수 있었다.
"뭐해 임마, 술 안 마셔?"
술을 마셔라. 그렇다면 내가 이 술을 마시라는 것이냐. 머
리통이 백짓장 마냥 하얘졌다.
그 몇 방울의 술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 술이 담긴, 아니
흘러내리는 장소가 문제였다. 그 술을 받아 마시려면 꼼짝없
이 현옥의 젖가슴에 내 입술을 들이대어야 한다는 이야기였
다. 그나마 완전히 마시기 위해서는 아예 그녀의 유두를 정말
빨기라도 해야 했다.
내 흐릿한 의식 속에 그녀의 가슴을 타고 천천히 한두 방
울씩 흘러내리는 양주의 갈색 액체가 선명하게 보였다. 기막
힌 광경이었다. 정중앙에 부어져 흘러내리는 술자국은 이제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분홍빛 젖꽂지로부터 시작한 술방
울들이 계곡을 따라 한 줄기를 이루며 현옥의 작은 배꼽 우
물로 담겨가고 있었다.
"어머머… 뭐하세요? 제 스커트 젖는단 말이에요."
환장할 노릇이었다. 현옥의 재촉에도 꼼짝할 수가 없었다.
아이 안되겠네, 하고 아양을 떠는 듯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다음 찰라 더욱 어마어마한 일이 감행되는 중이었다. 그 자
리에서 갑작스레 다가서는 현옥. 그녀가 짧은 스커트 속에서
서슴없이 허벅지를 벌리며 내 무릎을 타고 올라왔다. 미끈한
밴드 스타킹에 싸인 두 다리가 드러나는 것도 잠시, 이내 그
녀의 손길이 내 뒤통수를 붙들며 끌어당기고 있었다.
제 8화 팬티를 적시는 위스키
어쩌란 것인가. 술방울을 핥으란 것인가 아니면 그 젖무덤
을 핥으란 것인가. 뒤로 물러나지도 못한 채 엉겁결에 붙잡혀
안긴 내 고개는 현옥의 뽀얀 살결만 마주 보아야 할 따름이
었다.
실타래가 뒤엉키듯 갈팡질팡대는 머리 속임에도 귓가에는
무어 그리 즐거운지 까르르 웃음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남
자 것만이 아닌 걸로 보아 미진도 함께 웃는 게 분명했고, 그
것은 저 연예인 아가씨도 이런 상황을 한두 번 겪은 게 아님
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이 진퇴양난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것인지 도통 떠오르
지 않는다. 아니 떠올릴 새도 없었다. 이미 나의 입술과 코는
그녀에 의해 지분거려지고 있었던 것이다. 스스로 입을 대지
않아도 이미 닿아 있는 나의 입술이었다.
"아이 뭐예요, 정말 유두주 안 받으실 거예요?"
미칠 것 같다. 흡사 아이처럼 보채기까지 하는 현옥이었다.
아양의 목소리로 그녀가 몸을 흔들자 나는 넓적다리 쪽에 묵
직한 중량감마저 느끼고 있었다.
비록 커다란 두 개의 출렁이는 살모음에 의해 제대로 내려
다 볼 수는 없어도 그것이 무엇일지는 뻔했다. 나의 몸뚱이
위로 기어올라온 현옥은 자연스레 사타구니를 벌려야 했고,
하여 타이트한 미니 스커트는 이미 그녀의 둔부 위로 잔뜩
말려 올라가 있었다.
외형상으로는 얇디얇은 속옷만이 그녀의 엉덩이를 가린 채
널을 뛰듯 내 허벅다리를 내리누르며 흔들고 있었다. 좌위(座
位). 그것은 섹스시 체위 중 하나라는 그 자세와 거의 동일했
다. 심지어 동작마저도 그것과 다름없었다.
고마워해야 할지 어쩔지, 그마나 아련한 나를 구해주는 것
은 그녀의 등뒤에서 들려오는 희창이의 투덜거림이었다.
"이봐, 그 친구 그게 아닌 것 같은데."
무슨 소릴까. 어쨌든 그제서야 들이댔던 젖꼭지를 내 얼굴
에서 떼어주는 현옥이었다. 그 덕분에 나는 무언가에서 풀려
난 듯 참고 있던 숨을 몰아쉴 수 있었다.
"그럼 어떻게요?"
"으응, 그거 말구 다른 걸 해봐. 아마 그 녀석 그 정도로는
안 넘어갈 거야."
"다른 거요? 어떤 거요?"
"아 왜, 그거 있잖아… 둔덕주."
둔덕주? 그건 또 뭐람.
"어머머, 전 그런 거 못해요, 이사님…!"
"못하는 게 어딨어. 전에 다른 아가씨는 하던걸?"
"아잉, 그거야 그런 게 특기인 언니였으니까 그렇죠!"
위는 위대로 함지박 만한 반구 둘, 아래는 아래대로 수박
만한 반구 둘. 그런 무기 아닌 무기로 사람을 짓눌러대면서
대체 이 사람들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다. 이것은 차라
리 고문보다 더 심한 고문이었다.
말 그대로 육탄공세였다. 그럼에도 그 실행자인 현옥으로서
는 그리 크게 반발하지는 않는 눈치였다. 드디어 합의점을 찾
아낸 듯 그녀에게선 이런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좋아요. 하지만 미진 언니도 있으니까 팬티는 안 벗을 거
예요."
이 아가씨 방금 뭐라 그랬지? 팬티만은 안 벗는다? 이제
커질 대로 커진 눈으로 나는 숨가쁘게 현옥을 쳐다보았다. 순
식간에 썰물 빠지듯 내 하체 위에서 물러서는 그녀였다. 그리
고 나는 그녀가 과감히 시행하는 그 행동에 훅, 숨을 멈췄다.
내 몸 위에 오르기 전에 이미 상체는 전라가 되어 있던 그
녀였건만 이번엔 그 아슬아슬한 하체마저도 숨 넘어갈 모습
을 보이고 있었다. 처음에 나는 그녀가 허리춤까지 걷어올렸
던 치맛자락을 다시 끌어내리는 줄만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순전히 내 바램이었다.
현옥은 자신의 미니스커트를 보듬으려는 게 아니었다. 그녀
의 허리가 굽혀졌다. 그녀의 손도 거침없이 움직였다. 마지막
으로 그 손길에 의해 그녀의 하복부에서 검은 색 무언가가
쑥 끌어내려지고 있었다.
그것이 바닥까지 흘러내린 것을 확인하고서야 실체를 파악
가능했다. 이럴 수가. 그것은 그녀의 달랑 하나 남은 제대로
된 겉옷가지, 그 미니스커트였다. 그녀는 그 폭보다도 길이가
짧은 원형의 고리에서 한쪽 발목씩 차례로 빼내고 있었다.
그 천조각 또한 어디론가 날아갔다. 내 신경도 어디론가 날
아갔다. 뽀얗기는 매한가지인 허벅지였으나 그녀가 그 짧디
짧은 미니 스커트 안에도 겨우 밴드스타킹 한 켤레만 신고
있음을 목격한 나는 거의 졸도할 지경이었다. 그나마 그것이
유일하게 조금 전까지 그녀가 갖춰진 옷을 입고 있다는 걸
증명해주고 있었다.
결국 저런 까닭에 그래도 같은 여자인 미진씨 앞에서 부끄
러움이라도 탄다는 얘기였나. 하여간 그녀는 그 검은 색 치마
와는 달리 하얀 백색의 팬티를 입고 있었다. 약속대로 그것마
저 벗지는 않았지만 육체적 유혹이 실로 철철 넘치는 몸매였
다.
"후훗, 너무 불결하다 생각하지는 마세요. 저 이것 입고서
아직 화장실도 한 번 가지 않았으니까…!"
그 말은 현옥이 내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며 건네는 통보였
다. 듣고도 도무지 영문을 짐작 못할 나로서는 멍하니 처분만
기다려야 했다.
"자, 그럼 둔덕주에요."
마침내 그 결정적 순간이 도래한 모양이었다. 그렇지만 그
말과 함께 전혀 엉뚱하게 행동하는 그녀였다. 한 잔 술을 든
그녀가 한 번 더 내 몸 위를 가로지르며 오르기는 오르는 것
같았는데, 다만 다른 것은 아까와의 자세였다.
넓게 다리 들고 올라앉기 - 그 장소는 내 허벅지 위가 아
니었다. 굳이 말한다면 내 자리 옆에 가까이 놓인 푹신한 소
파였다. 그녀는 꼿꼿이 그곳에 서고 있었다. 즉 그녀는 쭉 뻗
은 다리를 굽히지 않고 두 발로 양쪽 곁의 소파를 밟은 채
내 정면에서 들어선 형국이었다.
똑같이 하얀 부분이 내 코앞으로 다가온다. 저번에는 뽀얗
게 맨 속살이었는데 지금은 허연 색 레이스가 달린 천조각이
었다. 그게 무엇인지는 따로 말하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다름 아닌 현옥의 팬티였다. 그녀의 배꼽 아래 가장 비밀스
런 부분이 그 얇디얇은 천에 가려진 채 내 시선 15도 위, 십
추천114 비추천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