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년 23-25
▶일본년◀ 제23화 (차 안에서 치마를 걷어 올리는...)
경부 고속도로가 개통된 것은 3년 전 이었다. 운전을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한번 쯤 달려보고 싶은 꿈의 도로였다.
막힘없이 쭉쭉 뻗은 도로는 오랜만에 상쾌한 기분을 심어
주고 있었다.
무언가에 긴장한 모습으로 가만히 앉아 있던 시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 얼굴은 왜 그랬어요? ]
[ 산에서 놀다 바위에 넘어졌어요. 어릴적 다친건데, 상
처가 없어지지 않네요.]
[ 많이 아팠겠어요.]
[ 모르겠어요. 지금은 기억이 나질 않아요. 아팠겠죠.]
안타까운 표정으로 상처를 주시하던 시영이 내 눈을 보며
웃어주었다.
웃음을 보이지 않던 시영의 웃는 얼굴을 처음으로 접하자
사람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녀로 부터 몇 가지 의
문점들을 캐낼 수 있을 것도 같았다.
[ 저어...]
우선은 시영과 친해져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저... 누나라고 불러도 되지요.]
시영이 나를 한번 바라보곤 잠시 무엇을 생각하는 듯 하
다 뜻밖의 말투로 대답했다.
[ 좋아. 그 대신말야, 아줌마 앞에선 누나라고 하지말구
그냥 지금처럼 똑같이 부를래.]
[ 아줌마 라뇨? ]
[ 주인 아줌마 말야.]
[ 사장님 이요? ]
[ 그래, 사장님.]
역시 뜻밖이었다. 요오꼬 앞에서 깍듯한 시영의 모습이
아니었다.
[ 네, 그럴께요.]
[ 너, 스물 네살이라고 했지? ]
[ 네...]
[ 그래, 누나라고 불러. 너, 내 말만 잘 들으면 누나가
잘 해줄께.]
시영은 마치 오래전 부터 누나였던 말투로 나를 대했다.
그것이 한편으론 편하기도 했지만 나를 어리둥절 하게도 만
들었다. 어쨋든 그녀의 가벼운 말투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내게 주었다.
[ 누나는 고향이 어디에요? ]
[ 아라까와 강변 이라는데 기억이 없어.]
[ 관동이요? ]
[ 너, 관동을 아니? ]
[ 아뇨, 잘 몰라요. 어렸을 땐 아버지가 학교 선생님이었
는데 지도를 많이 가지고 계셨어요. 지금은 돌아가셨구...
그때 지도를 많이 봐서 그런지 어디, 하면 대충 어느 지방
인지는 알아요.]
[ 응, 난 고향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어. 아줌마 하는 소
리가 아라까와 강변에서 태어났데...]
[ 학교는 한국에서 다녔나요? ]
[ 아줌마네 집으로 오구 얼마 안있어 하영이가 들어왔어,
하영이랑 바깥 세상을 모르며 어린 시절을 보내다가, 몬가
좀 알만한 나이 때 부터 가정 수업을 받았어, 학굔 안다니
구...]
[ 네에... 참, 아까 하영씬 어디서 나온거였어요? ]
갑자기 시영의 눈동자가 커졌다.
[ 어디서 나오다니? ]
[ 외출했다고 했었는데...]
[ 외출했었어.]
[ 옷차림이 아니던데...]
[ 뭐가 궁굼한데? ]
[ 궁굼한거 없어요. 그냥... 갑자기 나타나서요.]
[ 음...]
시영이 무슨 생각에 잠긴것 같았다.
[ 저어... 누나.]
시영이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 궁굼한게 있어요.]
[ 뭐가.]
너무 조급하게 서두르는 것이 아닌지 나는 망설였다. 아
무래도 액자 속의 통로는 시간이 좀 더 흐른 뒤에 물어야
할 것 같았다.
[ 기상시간이 늘 오늘처럼 늦나요? ]
[ 정말, 아침에 배 많이 고팠지? 처음이라 그래, 금새 익
숙해 질거야.]
[ 아침을 그때 먹으면 점심, 저녁은 언제 먹어요? ]
시영의 대답이 또 늦춰졌다. 그녀는 무엇을 계산하듯 생
각하는 것 같았다.
[ 하루에 두끼만 먹어.]
[ 배 안고파요? ]
[ 모르겠어. 어려서부터 그렇게 먹어서... 근데 태희야.]
시영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 네에.]
[ 나 오줌마려워. 휴게소 멀었어? ]
[ 글쎄요... 표지판을 못봤는데...]
[ 아이. 나, 급한데...]
[ 조금만 기다려보세요.]
[ 안되에, 싼단말야.]
[ 차 세워드려요? ]
[ 아니야, 그냥 가.]
아랫배를 꼬옥 잡고 안절부절하던 시영이 뒷좌석의 가방
을 뒤져 물통을 꺼냈다. 서둘러 뚜껑을 열고 창밖으로 물통
을 거꾸로 내밀어 흔들어댔다. 쏟아지던 물이 맞바람을 맞
아 뒷쪽 창문으로 튀어 들어왔다.
시영은 빠르게 움직였다. 치마를 걷어 올린 뒤 몸을 앞으
로 쭈욱 내밀었다. 의자 끝에 엉치뼈가 걸치는, 반은 누운
자세가 되었다.
▶일본년◀ 제24화 (스커트 속에서 나오는 하얀 물체...)
시선은 억지로 전방을 향했으나 시영의 움직임은 시야 가
장자리에서 그대로 보여지고 있었다.
잠시 후 물통을 두드리며 쏟아지는 오줌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소리가 멎음과 동시에 그녀의 반쯤 누운 자세가 일으켜졌
다.
[ 차좀 세워줄래.]
물통을 왼 손으로 옮기며 물통 밖으로 새어나온 오줌에
젖어버린 오른 손을 시영은 공중에서 툭툭 털어내고 있었
다.
깜박이를 켜곤 우측편에 차를 세웠다. 시영 쪽 차문이 조
금 열리면서 오줌을 받아 낸 물통이 밖으로 나갔다.
이번엔 콸콸거리는 물통안의 오물이 배출되는 소리가 들
려왔다.
[ 가자.]
뚜껑을 닫아 뒷좌석으로 물통을 던지며 시영이 말했다.
제 속도를 내며 승용차는 다시 주행선으로 들어왔다.
지금것 보아온 그녀의 언행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
았다. 보통 여자와는 달리 차분한 요조 숙녀의 면모가 있는
가 하면 때때로 저능아스런 행동을 보였고, 무엇인가를 깊
이 생각하는 듯한 총총한 눈빛으로 상대로 부터 쉽게 접근
할 수 없는 예리한 면이 있는가 하면 질질 흘리는 듯한 어
리숙한 면모로 누구나 쉽게 다가설 수 있는 틈을 열어놓기
도 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시영은 내 앞에서만 쉬운 여자로 보이
는것 같았다. 요오꼬와 하영 앞에서의 그녀 행동은 전혀 달
랐다.
[ 아무래도 안되겠다.]
시영이 중얼거리며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하얀 물체가 스
커트 속에서 기어나와 종아리를 타고 구두 끝으로 빠져나왔
다. 속옷이었다.
[ 만져봐. 다 젖었지? 아이, 벗으니깐 션하다.]
벗겨 낸 속옷을 시영은 내 코 앞에서 흔들어댔다. 나는
그녀의 말투와 행동에 웃음을 참지 못하고 터트리고 말았
다.
[ 하하하하하하! ]
폭소를 터뜨리는 내 모습을 지켜보며 즐거운 듯 시영이
히죽거렸다.
[ 히히, 나 잼있지? ]
[ 저기요...]
흐트러진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지금이 적당한 기회라
고 생각들었다.
[ 금새 말르겠지? 응, 말해봐. 뭐? ]
뒷 좌석 의자 위에 속옷을 펼쳐 놓고는 시영이 나를 바라
보았다.
[ 아까 집에서요... ]
[ 응.]
[ 벤자민 뒤에 커다란 액자 있자나요...]
[ 응.]
시영의 표정이 점점 굳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액
자를 유심히 바라보던 나를 발견한 요오꼬의 표정과 다르
지 않았다. 내가 알아서는 안될 만한 무언가가 통로속에 있
다고 생각했다. 그 자리에서 나는 생각을 굳혔다. 스스로
통로속의 비밀을 알아내야겠다고...
말머리를 돌렸다.
[ 그림이 참 평화스럽던데... 어딘줄 아세요? ]
[ 모가 어디야? ]
[ 그림속의 마을이 어디인지 아냐구요.]
[ 아항. 몰라.] 라고 대답하며 마치 다른 사람처럼 돌변
하는 그녀의 날카로운 눈빛을 보았다. 순간적이었지만 한기
를 느낄만큼 앙칼진 눈초리였다.
[ 모가 잘못됐나요? ]
[ 왜? ]
[ 표정이 갑자기...]
[ 으응, 갑자기 생각난게 있어서... 딴 생각해서 미안.]
신기할 정도로 빠른 표정의 변화였다. 시영은 무언가를
알고 있는 내 마음을 눈치라도 챈 것처럼 그렇게 보여졌다.
결코 다른 생각으로 인한 표정 변화가 아니었다.
아직은 누구도 쉽게 믿어선 안될것 같았다.
근 여섯 시간을 소비해 도착한 곳은 부산 항 이었다. 시
영의 안내에 따라 이미 어두워진 부두 도로를 달릴 때는 짠
내만이 코를 찌르고 있었다.
[ 저기서 우회전.]
시영은 지리를 훤 하게 알고 있었다.
[ 다음엔 혼자 오게 될지도 모르니깐, 잘 기억해나. 저기
호텔 보이지. 영도 호텔인데, 저거만 찾으면 되.]
호텔은 미리 예약되어 있었고 시영과 나는 한개의 객실로
입실 되었다. 들어서자마자 방으로 들어간 시영이 곧 바로
나를 불렀다.
[ 태희야! 이리와바! ]
침대위에 큰 대 자로 벌렁 누워있던 시영이 내가 들어서
자 양반다리로 고쳐 앉으며 옆자리를 손바닥으로 두번 두드
렸다.
[ 여기 앉아봐.]
피곤한 얼굴을 부비며 시영이 권하는 자리에 앉았다.
[ 피곤하지? ]
[ 괜찮아요.]
[ 아까말이야, 액자에 대해서 왜 물었어? ]
속으로 뜨끔했다.
[ 액자라니요? ]
[ 솔직하게 말해봐. 궁굼한거 다 알려줄께.]
[ 아하, 풍경이 좋아서 어디냐구 물었던 그 액자요? ]
[ 응.]
[ 아세요? ]
[ 응, 알아. 태희가 본게 어디까지야? ]
[ 다 봤지요.]
▶일본년◀ 제25화 (나를 삼킨 시영의 치마 속...)
이번엔 시영의 표정에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차분했다.
[ 어디까지 알아? ]
[ 뭘 어디까지 알아요? 다 봤다니까요. 근데 이상해요.]
[ 뭐가? ]
[ 아까, 집에서도 그림을 보고있었거든요.]
[ 근데.]
[ 그림을 보고 있는데, 사장님이 내려오셨어요.]
[ 응.]
[ 그림 앞에 있는 나를 바라보는 사장님의 눈초리가 예사
롭지 않았었는데... 누나도 그런거 같아서요. 그림에 뭐가
있어요? ]
시영 나는 눈을 찡그려 요오꼬의 눈빛을 흉내냈다.
[ 호호호호! 아무튼 그 안엔 들어가지 마. 나도 들어갔다
가 혼난적 있었거든...]
[ 네에...]
[ 피곤할텐데 눈 좀 붙여. 새벽에 일어나야 해.]
[ 누구 만나야 하는거 아니에요? ]
[ 새벽에 만날거야.]
[ 새벽요? ]
[ 응. 자고 있어. 들어와서 깨워줄께.]
[ 어디 가게요? ]
[ 볼일 좀 보고 올께. 그리고 혹시 머리아프면 이 약 먹
어, 금새 나 질거야.]
티피티로 포장된 알약을 경대위로 던졌다.
[ 무슨 약인데요? ]
[ 두통약. 장시간 운전해서 머리 아플지 몰라.]
[ 괜찮아요. 그까짓것 운전했다고...]
[ 이따가 봐...]
[ 일찍 올거에요? ] 라는 물음에 그녀는 [ 몰라.] 라고
대답하며 급하게 밖으로 나갔다. 그녀가 나가자 방안은 금
새 지루해졌다.
거실로 나가 티브이를 켰다. 막 아홉시 뉴스가 시작되고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모 부대 방문 연설이 한동안 계속
되었다.
일기예보가 끝나갈 때 쯤,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오
른 쪽 귓속으로 젓가락을 쑤셔넣어 반대편 골을 헤집는 것
처럼 찌익거리며 머리가 갈라지는 듯한 통증이 순식간에 머
리통을 점령했다. 양 손바닥으로 머리통을 눌러대고 정신없
이 때려도 보았지만 깨져버릴것 같은 통증은 그칠줄 몰랐
다. 절로 눈물이 흐르는 아픔속에서도 의식은 살아있었다.
나는 방안으로 달려가 시영이 던져 놓고간 알약을 찾았
다.
5분 쯤 지났을까, 신기할 정도로 통증이 사라졌다.
( 두통약. 장시간 운전해서 머리 아플지 몰라.)
머리가 아파질 것을 시영은 알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어
제도 비슷한 통증을 느꼈던것 같다. 무언가 좋지 않은 예감
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아홉개의 알약이 남은 티피티를 주머니에 넣었다.
자정이 다 될때까지도 시영은 돌아오지 않았고 졸린 눈을
껌뻑이며 나는 잠자리로 들었다.
한밤중이었다. 거실에서 소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일
어나 조명을 켜고 거실로 나갔다. 시영이 어떤 남자와 머리
를 맞대고 신중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뒤를 향한 남자
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대화를 나누던 시영이 나를 보곤
날카로운駭 조금 더 지체 되었으면
하는 나의 바램과는 무관하게, 그녀는 마치 성난 짐승처럼
흔들어 댔고 마지막 깨물림에 세상을 처음 본 연약한 열매
는 터져버리고 말았다.
쭈욱, 쭉, 쭈욱 세번을 뽑아내며 털끝까지 힘이 들어간
나의 육신은 늘어지고 말았으나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는 시
영의 욕망은 더욱 사나와지려는 파도처럼 거칠게 물결을 일
으키다 마침내 몸을 떨었다.
일을 마친 시영이 서두르며 말했다.
[ 어서 옷 입어. 빨리 가야돼.]
경부 고속도로가 개통된 것은 3년 전 이었다. 운전을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한번 쯤 달려보고 싶은 꿈의 도로였다.
막힘없이 쭉쭉 뻗은 도로는 오랜만에 상쾌한 기분을 심어
주고 있었다.
무언가에 긴장한 모습으로 가만히 앉아 있던 시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 얼굴은 왜 그랬어요? ]
[ 산에서 놀다 바위에 넘어졌어요. 어릴적 다친건데, 상
처가 없어지지 않네요.]
[ 많이 아팠겠어요.]
[ 모르겠어요. 지금은 기억이 나질 않아요. 아팠겠죠.]
안타까운 표정으로 상처를 주시하던 시영이 내 눈을 보며
웃어주었다.
웃음을 보이지 않던 시영의 웃는 얼굴을 처음으로 접하자
사람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녀로 부터 몇 가지 의
문점들을 캐낼 수 있을 것도 같았다.
[ 저어...]
우선은 시영과 친해져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저... 누나라고 불러도 되지요.]
시영이 나를 한번 바라보곤 잠시 무엇을 생각하는 듯 하
다 뜻밖의 말투로 대답했다.
[ 좋아. 그 대신말야, 아줌마 앞에선 누나라고 하지말구
그냥 지금처럼 똑같이 부를래.]
[ 아줌마 라뇨? ]
[ 주인 아줌마 말야.]
[ 사장님 이요? ]
[ 그래, 사장님.]
역시 뜻밖이었다. 요오꼬 앞에서 깍듯한 시영의 모습이
아니었다.
[ 네, 그럴께요.]
[ 너, 스물 네살이라고 했지? ]
[ 네...]
[ 그래, 누나라고 불러. 너, 내 말만 잘 들으면 누나가
잘 해줄께.]
시영은 마치 오래전 부터 누나였던 말투로 나를 대했다.
그것이 한편으론 편하기도 했지만 나를 어리둥절 하게도 만
들었다. 어쨋든 그녀의 가벼운 말투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내게 주었다.
[ 누나는 고향이 어디에요? ]
[ 아라까와 강변 이라는데 기억이 없어.]
[ 관동이요? ]
[ 너, 관동을 아니? ]
[ 아뇨, 잘 몰라요. 어렸을 땐 아버지가 학교 선생님이었
는데 지도를 많이 가지고 계셨어요. 지금은 돌아가셨구...
그때 지도를 많이 봐서 그런지 어디, 하면 대충 어느 지방
인지는 알아요.]
[ 응, 난 고향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어. 아줌마 하는 소
리가 아라까와 강변에서 태어났데...]
[ 학교는 한국에서 다녔나요? ]
[ 아줌마네 집으로 오구 얼마 안있어 하영이가 들어왔어,
하영이랑 바깥 세상을 모르며 어린 시절을 보내다가, 몬가
좀 알만한 나이 때 부터 가정 수업을 받았어, 학굔 안다니
구...]
[ 네에... 참, 아까 하영씬 어디서 나온거였어요? ]
갑자기 시영의 눈동자가 커졌다.
[ 어디서 나오다니? ]
[ 외출했다고 했었는데...]
[ 외출했었어.]
[ 옷차림이 아니던데...]
[ 뭐가 궁굼한데? ]
[ 궁굼한거 없어요. 그냥... 갑자기 나타나서요.]
[ 음...]
시영이 무슨 생각에 잠긴것 같았다.
[ 저어... 누나.]
시영이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 궁굼한게 있어요.]
[ 뭐가.]
너무 조급하게 서두르는 것이 아닌지 나는 망설였다. 아
무래도 액자 속의 통로는 시간이 좀 더 흐른 뒤에 물어야
할 것 같았다.
[ 기상시간이 늘 오늘처럼 늦나요? ]
[ 정말, 아침에 배 많이 고팠지? 처음이라 그래, 금새 익
숙해 질거야.]
[ 아침을 그때 먹으면 점심, 저녁은 언제 먹어요? ]
시영의 대답이 또 늦춰졌다. 그녀는 무엇을 계산하듯 생
각하는 것 같았다.
[ 하루에 두끼만 먹어.]
[ 배 안고파요? ]
[ 모르겠어. 어려서부터 그렇게 먹어서... 근데 태희야.]
시영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 네에.]
[ 나 오줌마려워. 휴게소 멀었어? ]
[ 글쎄요... 표지판을 못봤는데...]
[ 아이. 나, 급한데...]
[ 조금만 기다려보세요.]
[ 안되에, 싼단말야.]
[ 차 세워드려요? ]
[ 아니야, 그냥 가.]
아랫배를 꼬옥 잡고 안절부절하던 시영이 뒷좌석의 가방
을 뒤져 물통을 꺼냈다. 서둘러 뚜껑을 열고 창밖으로 물통
을 거꾸로 내밀어 흔들어댔다. 쏟아지던 물이 맞바람을 맞
아 뒷쪽 창문으로 튀어 들어왔다.
시영은 빠르게 움직였다. 치마를 걷어 올린 뒤 몸을 앞으
로 쭈욱 내밀었다. 의자 끝에 엉치뼈가 걸치는, 반은 누운
자세가 되었다.
▶일본년◀ 제24화 (스커트 속에서 나오는 하얀 물체...)
시선은 억지로 전방을 향했으나 시영의 움직임은 시야 가
장자리에서 그대로 보여지고 있었다.
잠시 후 물통을 두드리며 쏟아지는 오줌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소리가 멎음과 동시에 그녀의 반쯤 누운 자세가 일으켜졌
다.
[ 차좀 세워줄래.]
물통을 왼 손으로 옮기며 물통 밖으로 새어나온 오줌에
젖어버린 오른 손을 시영은 공중에서 툭툭 털어내고 있었
다.
깜박이를 켜곤 우측편에 차를 세웠다. 시영 쪽 차문이 조
금 열리면서 오줌을 받아 낸 물통이 밖으로 나갔다.
이번엔 콸콸거리는 물통안의 오물이 배출되는 소리가 들
려왔다.
[ 가자.]
뚜껑을 닫아 뒷좌석으로 물통을 던지며 시영이 말했다.
제 속도를 내며 승용차는 다시 주행선으로 들어왔다.
지금것 보아온 그녀의 언행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
았다. 보통 여자와는 달리 차분한 요조 숙녀의 면모가 있는
가 하면 때때로 저능아스런 행동을 보였고, 무엇인가를 깊
이 생각하는 듯한 총총한 눈빛으로 상대로 부터 쉽게 접근
할 수 없는 예리한 면이 있는가 하면 질질 흘리는 듯한 어
리숙한 면모로 누구나 쉽게 다가설 수 있는 틈을 열어놓기
도 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시영은 내 앞에서만 쉬운 여자로 보이
는것 같았다. 요오꼬와 하영 앞에서의 그녀 행동은 전혀 달
랐다.
[ 아무래도 안되겠다.]
시영이 중얼거리며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하얀 물체가 스
커트 속에서 기어나와 종아리를 타고 구두 끝으로 빠져나왔
다. 속옷이었다.
[ 만져봐. 다 젖었지? 아이, 벗으니깐 션하다.]
벗겨 낸 속옷을 시영은 내 코 앞에서 흔들어댔다. 나는
그녀의 말투와 행동에 웃음을 참지 못하고 터트리고 말았
다.
[ 하하하하하하! ]
폭소를 터뜨리는 내 모습을 지켜보며 즐거운 듯 시영이
히죽거렸다.
[ 히히, 나 잼있지? ]
[ 저기요...]
흐트러진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지금이 적당한 기회라
고 생각들었다.
[ 금새 말르겠지? 응, 말해봐. 뭐? ]
뒷 좌석 의자 위에 속옷을 펼쳐 놓고는 시영이 나를 바라
보았다.
[ 아까 집에서요... ]
[ 응.]
[ 벤자민 뒤에 커다란 액자 있자나요...]
[ 응.]
시영의 표정이 점점 굳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액
자를 유심히 바라보던 나를 발견한 요오꼬의 표정과 다르
지 않았다. 내가 알아서는 안될 만한 무언가가 통로속에 있
다고 생각했다. 그 자리에서 나는 생각을 굳혔다. 스스로
통로속의 비밀을 알아내야겠다고...
말머리를 돌렸다.
[ 그림이 참 평화스럽던데... 어딘줄 아세요? ]
[ 모가 어디야? ]
[ 그림속의 마을이 어디인지 아냐구요.]
[ 아항. 몰라.] 라고 대답하며 마치 다른 사람처럼 돌변
하는 그녀의 날카로운 눈빛을 보았다. 순간적이었지만 한기
를 느낄만큼 앙칼진 눈초리였다.
[ 모가 잘못됐나요? ]
[ 왜? ]
[ 표정이 갑자기...]
[ 으응, 갑자기 생각난게 있어서... 딴 생각해서 미안.]
신기할 정도로 빠른 표정의 변화였다. 시영은 무언가를
알고 있는 내 마음을 눈치라도 챈 것처럼 그렇게 보여졌다.
결코 다른 생각으로 인한 표정 변화가 아니었다.
아직은 누구도 쉽게 믿어선 안될것 같았다.
근 여섯 시간을 소비해 도착한 곳은 부산 항 이었다. 시
영의 안내에 따라 이미 어두워진 부두 도로를 달릴 때는 짠
내만이 코를 찌르고 있었다.
[ 저기서 우회전.]
시영은 지리를 훤 하게 알고 있었다.
[ 다음엔 혼자 오게 될지도 모르니깐, 잘 기억해나. 저기
호텔 보이지. 영도 호텔인데, 저거만 찾으면 되.]
호텔은 미리 예약되어 있었고 시영과 나는 한개의 객실로
입실 되었다. 들어서자마자 방으로 들어간 시영이 곧 바로
나를 불렀다.
[ 태희야! 이리와바! ]
침대위에 큰 대 자로 벌렁 누워있던 시영이 내가 들어서
자 양반다리로 고쳐 앉으며 옆자리를 손바닥으로 두번 두드
렸다.
[ 여기 앉아봐.]
피곤한 얼굴을 부비며 시영이 권하는 자리에 앉았다.
[ 피곤하지? ]
[ 괜찮아요.]
[ 아까말이야, 액자에 대해서 왜 물었어? ]
속으로 뜨끔했다.
[ 액자라니요? ]
[ 솔직하게 말해봐. 궁굼한거 다 알려줄께.]
[ 아하, 풍경이 좋아서 어디냐구 물었던 그 액자요? ]
[ 응.]
[ 아세요? ]
[ 응, 알아. 태희가 본게 어디까지야? ]
[ 다 봤지요.]
▶일본년◀ 제25화 (나를 삼킨 시영의 치마 속...)
이번엔 시영의 표정에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차분했다.
[ 어디까지 알아? ]
[ 뭘 어디까지 알아요? 다 봤다니까요. 근데 이상해요.]
[ 뭐가? ]
[ 아까, 집에서도 그림을 보고있었거든요.]
[ 근데.]
[ 그림을 보고 있는데, 사장님이 내려오셨어요.]
[ 응.]
[ 그림 앞에 있는 나를 바라보는 사장님의 눈초리가 예사
롭지 않았었는데... 누나도 그런거 같아서요. 그림에 뭐가
있어요? ]
시영 나는 눈을 찡그려 요오꼬의 눈빛을 흉내냈다.
[ 호호호호! 아무튼 그 안엔 들어가지 마. 나도 들어갔다
가 혼난적 있었거든...]
[ 네에...]
[ 피곤할텐데 눈 좀 붙여. 새벽에 일어나야 해.]
[ 누구 만나야 하는거 아니에요? ]
[ 새벽에 만날거야.]
[ 새벽요? ]
[ 응. 자고 있어. 들어와서 깨워줄께.]
[ 어디 가게요? ]
[ 볼일 좀 보고 올께. 그리고 혹시 머리아프면 이 약 먹
어, 금새 나 질거야.]
티피티로 포장된 알약을 경대위로 던졌다.
[ 무슨 약인데요? ]
[ 두통약. 장시간 운전해서 머리 아플지 몰라.]
[ 괜찮아요. 그까짓것 운전했다고...]
[ 이따가 봐...]
[ 일찍 올거에요? ] 라는 물음에 그녀는 [ 몰라.] 라고
대답하며 급하게 밖으로 나갔다. 그녀가 나가자 방안은 금
새 지루해졌다.
거실로 나가 티브이를 켰다. 막 아홉시 뉴스가 시작되고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모 부대 방문 연설이 한동안 계속
되었다.
일기예보가 끝나갈 때 쯤,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오
른 쪽 귓속으로 젓가락을 쑤셔넣어 반대편 골을 헤집는 것
처럼 찌익거리며 머리가 갈라지는 듯한 통증이 순식간에 머
리통을 점령했다. 양 손바닥으로 머리통을 눌러대고 정신없
이 때려도 보았지만 깨져버릴것 같은 통증은 그칠줄 몰랐
다. 절로 눈물이 흐르는 아픔속에서도 의식은 살아있었다.
나는 방안으로 달려가 시영이 던져 놓고간 알약을 찾았
다.
5분 쯤 지났을까, 신기할 정도로 통증이 사라졌다.
( 두통약. 장시간 운전해서 머리 아플지 몰라.)
머리가 아파질 것을 시영은 알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어
제도 비슷한 통증을 느꼈던것 같다. 무언가 좋지 않은 예감
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아홉개의 알약이 남은 티피티를 주머니에 넣었다.
자정이 다 될때까지도 시영은 돌아오지 않았고 졸린 눈을
껌뻑이며 나는 잠자리로 들었다.
한밤중이었다. 거실에서 소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일
어나 조명을 켜고 거실로 나갔다. 시영이 어떤 남자와 머리
를 맞대고 신중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뒤를 향한 남자
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대화를 나누던 시영이 나를 보곤
날카로운駭 조금 더 지체 되었으면
하는 나의 바램과는 무관하게, 그녀는 마치 성난 짐승처럼
흔들어 댔고 마지막 깨물림에 세상을 처음 본 연약한 열매
는 터져버리고 말았다.
쭈욱, 쭉, 쭈욱 세번을 뽑아내며 털끝까지 힘이 들어간
나의 육신은 늘어지고 말았으나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는 시
영의 욕망은 더욱 사나와지려는 파도처럼 거칠게 물결을 일
으키다 마침내 몸을 떨었다.
일을 마친 시영이 서두르며 말했다.
[ 어서 옷 입어. 빨리 가야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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