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촌리 설화(金村里 說話) - 32 > 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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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촌리 설화(金村里 說話) -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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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촌리 설화(金村里 說話) - 32



5학년이 되었다는 것만으로 나는 흐뭇하고 우쭐했다.
입학식과 개학식을 겸한 아침 조회에서 주위를 둘러보며 나는 한동안 감개무량한 기분에 젖었었다. 우선 운동장에 서 있는 내 위치부터 달랐다.
제일 왼쪽은 오늘 이 학교에 첫발을 딛는 신입생들이다. 모두 앞섶에 코수건을 하나씩 달고, 실제로 코를 줄줄 흘리며 아까 줄을 정리할 때부터 운동장에서 오줌을 질질싸며 울어대는 아이도 있었다.
물론 나도 입학하던 날은 코수건을 앞에 매달고 그 줄에 서 있었다. 하지만 해마다 한줄씩 옮겨 가더니 어느새 이렇게 올라온 것이다. 이제 우리 오른쪽은 6학년 하나 뿐이고 교장 선생은 훈시에서 이렇게 말했다.
"제군들은 이 교정에 이렇게 함께 서 있듯 모두 학우며 이 학교를 떠나도 영원히 동창생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서로를 공경하고 아껴주고 화목해야 한다. 특히 5, 6학년은 상급생으로서 동생들을 잘 보살피고 모든 면에서 모범이 되어야 한다. ...... "



상급생이 되었을 뿐  아니라 5학년이 되면서 나에게는 여러가지 변화가 있었다.
새로 줄을 서보니 우리 반의 30여명 남학생 중 내 뒤로는 5명밖에 없었다. 내가 우리반에서 6번 째로 키가 큰 것이다. 입학할 때부터 4학년까지도 내 키는 늘 중간 정도였다. 그런데 지난 2학기부터 이렇게 키가 부쩍 커버렸다.
더욱이 함부로 남에게 내보일 수는 없지만 자지털도 꽤 많이 났다. 지난번 황달자 올케가 면도를 해주기 전까지는 노랑털 사이로 갓난애 머리칼 처럼 가는 검은색 털이 겨우 몇올씩 보일 정도였는데 그후 새로 돋아난 털을 모두 검은색이며 이제는 제법 면적도 넓어 졌다.
"엄마야! 우리 영도가 진짜 어른이 되었네."
며칠전 꼽추 할매가 내 두덩을 쓸어 보면서 이렇게 말할 때 나는 자랑스러웠다. 꼽추 할매와는 작년 12월부터 다시 빠구리를 한 이래 한달에 한번씩의 약속을 쭉 지켜 왔다. 앞으로 어떤 여인과 빠구리를 하더라도 이제 나는 백자지가 아닌 것이 자랑스러울 것이다.


또 하나 자랑스러운 것은, 오늘은 입학식이라 수업이 없어 안 가져 왔지만, 나도 공장에서 만든 진짜 책가방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두꺼운 헝겁의 여기 저기에 가죽으로 장식이 되어있고, 가죽으로 된 두툼한 손잡이가 달린 가방은 정말 내가 갖고 싶은 물건 중 하나였다.
3학년 때까지 나는 보자기에 책을 싸들고 다녔다. 4학년이 되어 도시락도 담게 되자 엄마가 가방을 하나 만들어 주었는데 그것은 군인들의 천막천으로 바느질해 장바구니처럼 만든 것이었다. 공장에서 만든 진짜 책가방을 들고 다니고 싶었지만 아직도 우리반의 절반 이상이 책보나 천막 가방을 쓰는 터라 불평을 하거나 조를 수도 없었다. 그런데 영숙이 누나가 진급 선물이라며 그 비싼 가방을 사주었다.
상급생이라는 호칭을 듣게 된데다 키도 컸고 자지에는 검은 털이 나면서 나는 점점 어른이 되어간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게다가 멋진 책가방에 의자가 딸린 책상까지, 나의 5학년 생활은 이렇게 희망찬 항해의 닻을 올렸다.

하지만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호사다마라고 하듯 나쁜 일도 있었다. 그것도 하필이면 두 여인 때문에 ......


우선 문제는 "도라무깡" 이원주 선생이 우리, 즉 5학년의 담임이 되었다는 것이다.
"물귀신 같은 도라무깡." --- 그 생각만 하면 울화가 치밀면서 가슴이 답답해 진다. 또 학교의 전통이나 관행을 제대로 지켜 나가지 못하는 교장선생도 미워진다.
내리국민학교는 각 학년마다 한개의 반이 있는데 각각의 담임은 나름대로 질서와 원칙이 있었다. 이를테면 6학년은 가장 실력있고 나이 든 남선생이 맡는다. 지금의 6학년 담임 심재철 선생은 정년이 얼마 안 남았는데 8년 째 6학년만 가르쳐 왔다. 5학년은 그 다음 고참 남선생이, 4학년은 제일 젊은 남선생이 맡는다.
반면 여선생은 제일 나이 많은 고참이 1학년, 그 다음 여선생이 3학년, 경력이 짧은 여선생은 2학년을 맡게 된다.
이미영 선생 대신으로 전근 온 이원주 선생도 여선생 중 두번 째 고참이라 당연히 다시 3학년을 맡아야 했다.
그런데 이 못생겼으면서도 건방진 "도라무깡"이 "내가 6학년을 맡겠다."고 교장 선생에게 강력히 요구했다는 것이다. 그녀가 내건 명분은 우선 우리 학교의 진학률이 안 좋다는 이유다.


당시 중학교 입시는 전국이 모두 특차와 1,2차등 3차례에 걸쳐 신입생을 선발하는데 우리 같은 시골 따라지 학교는 감히 특차는 넘보지도 못한다.
6학년 졸업반 중 유난히 공부를 잘하거나 집안 형편이 괜찮은 아이들은 서울이나 대구, 혹은 안동이나 부산 같은 도시로 유학을 도모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중 절반 쯤은 1차에서 떨어져 도시에서도 2류 중학교를 다녀야 했다.
또 6학년중 일부는 중학교 진학을 포기한다. 집이 째지게 가난하거나 공부가 죽기보다 싫어서등 제각기 이유는 있지만, 그런 애들은 그저 부모 밑에서 농사를 짓거나 아니면 점원이나 공장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졸업생들이 해마다 10여명 쯤은 되었다.
나머지는 읍내에 있는 3개 중학교증 하나를 골라야 하는데 여기서도 우리 학교 졸업생중 1차 합격자는 채 절반이 못되는 것이 상례였다. 그래서 2차 마저 떨어지면 정원이 모자란 학교에 쑤셔넣듯 입학하거나 다른 읍의 중학교를 다녀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실정에서 이원주 선생은 "나에게 6학년을 맡겨주면 진학률을 훨씬 높일 자신이 있다." 고 교장 선생에게 큰소리 쳤다는 것이다. 마음 약한 교장 선생은 고참 남선생을 무시할 수도 없고, "학생들 실력을 키우겠다." 는 그녀의 요청을 묵살하기도 어려워 어정쩡하게 "우선 5학년을 맡아 보고 학력이 향상되면 그 반을 그대로 6학년까지 이어가라." 는 식으로 타협을 보았다고 한다. 그런데 재수없게 하필이면 그때 내가 5학년이 된 것이다.

이원주 선생은 우선 못생겼다는 것이 나는 싫었다. 오죽하면 부임한 첫날부터 "도라무깡"이라는 별명이 붙었을까.
더구나 그토록 우아하고 아름다우며 나와는 특별한 사이이기도 한 이미영 선생의 대신이라는 점에서 거부감이 들지 않을 수가 없다. 이건 마지 진주와 돼지를 맞바꾼 것 같은 일이니까.
게다가 나는 이원주 선생과 나쁜 인연까지 만들고 말았다.

4학년 때 3학년 담임을 맡은 그녀를 복도나 운동장에서 보게 되면 나는 괜히 기분이 뒤틀려 속으로 "에이, 도라무깡." 하면서 얼굴을 찡그리기도 했다. 그런 감정의 일환으로 나는 쉬는 시간에 칠판에다 그녀의 모습을 옮겨 놓았다. 
그림솜씨가 별로 없어도 그 작업은 간단했다. 우선 드럼통을 그린다. 원통형에다 주름만 셋을 가로로 그리면 누가 보아도 당시 휘발유나 석유를 담는 드럼통인줄 알아본다. 그 위에 좀 큰 눈과 두툼한 입술의 호박 같은 얼굴을 그려 놓으면 그것이 바로 이원주 선생의 커리커츄어가 되는 것이다. 게다가 나는 설명까지 했다.
"야들아! 나는 도라무깡이다!"
그 그림 앞에서 나는 소리를 지르며 엉덩이를 뒤뚱거리며 걷는 모습까지 흉내냈다. 교실에서는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런데 유난히 큰 웃음소리가 나며 "너 그림 잘 그리는구나." 라는 말이 들리는 쪽을 보다 나는 깜짝 놀랐다.
아뿔사! ...... 바로 놀림의 주인공인 이원주 선생이 교실 뒷문으로 몸을 반쯤 디밀고는 웃고 있는 것이다.
나는 얼른 돌아서서 지우개로 그림을 지워 버렸다. 그렇다고 잘못마저 지워지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증거인멸은 필요하다. 그러나 다음 행동은 어찌해야 좋을 지 몰라 그저 교단에 엉거주춤 서 있었다.
"너, 이름이 뭐지?"
"문, ...... 문영도라예."
나는 얼굴을 붉히며 더듬거렸다.
"흠, ...... 문영도라 ...... 그림을 센스 있게 그렸어."
그녀는 나를 꾸짖거나 기분 나쁜 표정을 짓지도 않고 이 말만 하고 떠났다.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우리반에는 또 한번 웃음바다가 되었다.

그녀가 새 학기에도 3학년 담임으로 머물러 있었다면 나와 다시 마주칠 일도 없고, 그저 무용담처럼 아이들 입에서 가끔 오르내리는 정도에서 끝났을 것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담임이 되다니 ...... 그녀는 분명 그날 일로 나를 점 찍고 있을 것이고 나는 첫 수업부터 기가 죽었다.


과연 그녀는 수업 첫시간에 출석부와 얼굴을 일일히 확인하며 출석을 부르다 "문영도!" 라는 차례에 "네!" 라고 대답하자 "음, 문영도라 ...... " 하고 혼잣말처럼 하며 나를 유심히 보더니 다음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그리고 셋째 날은 나 혼자 불려 나가 따귀를 맞았다.
산수시간에 그녀는 칠판에 써놓은 문제를 나에게 풀게 했다. 사다리꼴의 넓이를 계산하는 문제였던 것 같은데 4학년 때도 산수 성적이 젬병이었던 나는 5학년에 들어와서도 산수시간을 소설이나 숨겨놓고 보면서 건성으로 보내 문제조차 파악을 할 수 없었다.
"너는 무엇을 모르겠니?"
분필을 손에 든 채 한 글자도 쓰지 못하는 나에게 담임의 처음 질문은 부드러웠다.
"아무 것도, ...... 처음부터 모르겠심더."
그 말은 진짜였다. 수업시간에 딴청을 피운 것이 잘못이지만 나로서는 안 배운 것이나 마찬가지라 전혀 문제를 풀 수가 없었다.


"자, 여기에 이렇게 윗변과 밑변, 높이등 각각의 길이가 있다. 이 3가지 조건을 어떻게 이용해야 넓이를 구할 수 있을까?"
"모르겠심더."
나는 머뭇거리지 않고 바로 대답했다. 정말 추측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반 애 두어명이 킥킥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그녀에게 지은 죄도 있는데다 이렇게 망신을 당하게 되니 나는 잔뜩 위축되지 않을 수 없었다.
"자, 그럼 이건 한변이 10cm, 다른 변은 12cm인 직사각형이다. 이 도형의 넓이는 얼마일까?"
이 곤경을 벗어나려면 한 문제라도 풀어야 한다. 나는 문제를 풀려고 애썼지만 가슴은 벌렁거리고 머리는 어지럽고 식은 땀까지 나면서 도대체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한참을 더듬거리다 "44cm" 라고 칠판에 썼다.
"이 녀석아! 그건 둘레잖아?"
그녀는 알밤을 한데 쥐어 박으며 다시 물었다.


"나는 너한테 넓이를 구하라고 했어. 둘레와 넓이는 어떻게 다르지?"
킥킥거리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려 나는 더욱 창피했다. 이 곤경을 벗어나려면 역시 어떻든 문제를 풀어야 했다. 진땀까지 흘리며 생각을 집중했다.
"둘레는 이쨔 ...... 길이고 ...... "
손가락으로 사각형의 주위를 한바퀴 돌며 대답한 뒤 손바닥을 그림안에 대고 말했다.
"넓이는 이 그림의 크기라예."
"그럼 이 직사각형의 넓이는 어떻게 계산해야 나올까?"
"모르겠심더."
"이놈아!"
욕설과 함께 내 왼뺨에 찰싹! 소리가 나며 눈에 불꽃이 튀었다. 그녀의 따귀는 여인이건만 매서웠다.
"이건 이미 4학년 때 다 배운 것들이고 새 학년이 되어서 벌써 두번이나 복습을 했는데 그걸 모른단 말야? 모두 공부할 때 너는 어디를 갔다 왔니?"


그녀는 칠판 앞에 서 있는 나만을 위해 공식을 새로 설명해 주고 다른 문제를 풀게 했다. 나는 정답을 써 냈다.
"자, 그럼 이제 사다리꼴을 볼까? 사다리꼴이란 이렇게 윗변과 밑변의 길이가 다른 4각형으로 ....... "
그녀는 이제 화를 내지 않고 차분하게 공식을 설명해 주었다. 그러나 받아 들이는 내가 문제였다. 하나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나는 문제를 풀지 못했다.
"사다리꼴은 이렇게 길이가 다른 윗변과 밑변을 먼저 더해서 둘로 나눈다고 했지? ...... 그럼 얼마일까?"
"18cm요."
"맞아! 그럼 그렇게 두변을 둘로 나눈 것에 무엇을 곱해 주어야지?"
그녀가 얼굴을 들이미는데 갑자기 머리가 어찔어찔해지며 마치 그녀가 나에게 박치기를 하려 대드는 것 같은 두려움이 났다. 숨도 가빠져 정신을 차릴 수가 없고 그녀의 얼굴도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데 콧구멍이 벌렁거리는 것 같다. 그 와중에서도 나는 픽! 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짝! ...... 또 한대의 따귀가 올라오며 그녀의 소리도 커졌다.
"웃어? 이놈아! 이 쉬운 문제도 못 풀면서 선생을 비웃어?"


그녀를 비웃을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나도 오기가 있는 놈이다.
그 다음에는 그녀가 아무리 친절하고 차분하게 설명해도 나는 "모르겠심더." 로 일관했다. 때릴려면 때려라 라고 나도 배짱이었다.
"이놈이 정말 ...... !"
나는 연달아 따귀를 세대나 맞았다. 아팠기도 하고 머리가 핑 돌아 눈물이 나려하지만 나는 이를 악물고 눈을 치뜨며 참았다.
갑자기 그녀의 안색이 변했다. 너 같은 놈한테 질렸다는 것 같기도 하고 한없이 슬픈 것 같기도 한 그런 표정이었다.
"들어가."
그녀는 맥없이 말했고 나는 돌아 서 내 자리로 돌아 왔다. 나의 바보짓에 킥킥거리기도 했던 교실은 쥐죽은 듯이 조용했다. 수업은 이어 졌지만 선생이나 학생들 모두 맥이 빠진 듯 분위기는 침울했다.
그 후 그녀는 한동안 나에게 교단에 불러 내거나져 앉은 자리에서라도 문제를 풀게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녀에게 여전히 감정의 앙금이 남아 있었고 그녀도 그럴 것이다. 우리는 일단 휴전한 것 같지만 언제고 부딪칠 위험은 남아 있는 셈이었다.


나를 괴롭히고 곤혹스럽게 하는 또 다른 한 여인은 고행자라고 바로 우리 반의 여학생이었다.
행자는 나와 같은 금촌리 사람으로 1학년 때부터 쭉 한반이었는데 3학년 2학기부터 집이 서울로 이사가면서 그녀도 사라졌다. 그런데 5학년이 되면서 다시 우리 교실에 나타난 것이다. 서울생활이 잘 안 맞는지 가족이 모두 다시 금촌리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3학년 때만 해도 행자는 키가 나보다 약간 크고 까무잡잡했었는데, 이제는 내가 좀 크다. 그런데 수돗물로 세수를 해서인지 얼굴은 해맑아 보이고 서울에서 얼마나 살았다고 꼴에 서울말씨를 쓴다.
"아, 문영도 너 참 오랫만이다!"
개학 첫날 소리지르듯 서울말로 떠들며 악수하자고 먼저 손을 내미는데 나는 괜히 머쓱하고 불쾌했다.


교실에서 그녀는 여학생 자리의 맨 뒷줄, 나는 남학생 자리의 끝에서 두번 째에 앉아 있다. 수업시간 중 괜히 뒷꼭지가 근질거린다 싶어 뒤돌아 보면 꼭 그녀가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눈을 부릅 떠 화 난 표정을 짓거나 아예 무시하고 외면해 버리는데, 그녀는 반갑다는 듯 힛죽 웃거나 아니면 급히 시선을 돌려 안 본 척 하기도 한다. 
쉬는 시간에도 교실이나 운동장에서 몇이 어울려 잡담을 하는 중에 꼭 우리 패에 닥아와서, 내가 한마디 하면 별로 우습지도 않은 말에 큰 소리로 웃기도 하고 계속 나를 응시하며 내 관심을 끌려고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오죽하면 사내 녀석들은 행자를 보면 나를 가리키며 "영도야. 니 각시 온다." "아, 저기 니 애인이 너 보고잡다 칸다." 라며 놀려댈 정도다.
그런 말 하는 녀석들이 나보다 힘이 약해 보이면 한대 쥐어 박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하지만 고까짓 계집애 때문에 놀림감이 된다는 것이 불쾌하고 지겨웠다.


행자의 언행은 요즘 말로 하자면 바로 스토커다. 남자든 여자든 스토커가 얼마나 그 대상을 짜증나고 곤혹스럽게 하는지를 나는 그때 절감했다.
사실 행자가 그리 밉상은 아니다. 원래 눈이 크고 입술이 도톰한데다 서울 물을 먹으면서 희어진 피부나 서울말투 등이 다른 시골 여자애들보다 세련되고 돋보여 남학생들 중에는 그녀의 관심을 끌려고 알랑방귀를 뀌는 녀석들도 많았다.
그런데도 행자는 지겹고 귀찮아 하는 나에게만 집요하게 매달리는 형태였다. 다른 상대를 골랐더라면 5학년짜리 나름대로 로맨스가 생길 수도 있었을텐데 그녀도 나를 잘못 찍은 셈이다.
내가 행자를 지겹고 귀찮아 하는 것은 우선 나에게 필요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미 나에게는 나이로 치면 10대 후반에서 60대까지, 다양한 계층에다 각각의 개성과 매력이 있는 빠구리 상대가 널려 있는데 5학년 짜리 계집애와 뭘 하잔 말인가.
나이를 떠나 나는 이제 소꿉장난 같은 짓은 할 때가 지난 것이다.


또 한가지, 이것은 일종의 자격지심일지 모르지만, 그녀를 보면 옛날 일이 떠오르며 그녀가 괜히 더 보기싫어진다.
고행자는 사실 내 인생에서 첫 키스를 경험하게 한 여인이다.
3학년 때, 나는 당시 빠구리를 어떻게 하는 것인지도 몰랐고 이성에 대한 욕구나 동경도 전혀 없었다. "개밥좆" 이니 "멍게좆" 이라고 놀림을 받으며 성장한 소년의 암울한 한 시절의 단면이다.
그날 하교길에 마침 행자와 나는 단둘만이었다. 고개마루의 모퉁이에서 우리는 잠시 쉬며 그저 그런 잡담을 하던 중인데 나는 충동적으로 그녀를 끌어 안고 입을 맞추었다. 혀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입술만 살짝 맞댄 정말 소꿉장난 같은 키스였다.
그녀는 눈을 스르르 감고 있었는데 그녀 입술이 무척 차가웠다는 기억만 남아 있다. 나는 곧 입술을 떼었는데 그녀는 나의 돌발적 행동을 탓하지 않고 새로운 제안을 했다.

"광철이랑 민자는 서로 자지 보지도 보여줬다 카는데 우리도 그거 해볼까?"
나는 당황해서 그녀를 재촉해 집으로 향했고 계속 우울하고 부끄러운 마음에서 헤어나지를 못했다.

어떻게 이 못난 자지를, 흉물스럽고 못생긴 자지를 그녀한테 보여준단 말인가? 그녀는 우선 비명을 질러대며 놀랄 것이고, 소문이 나면 나는 오랫동안 사람들에게서 잊혀져 왔는데 다시 학교에서 놀림감이 될 것이다.
고행자는 참 마음이 끌리고 예쁜 애였는데 ...... 그러나 나는 나의 가장 큰 비밀이며 쓰라린 약점을 감추기 위해 그녀를 포기했다.
다시는 학교에서 만나도 내가 먼저 외면을 하고 슬슬 피했다. 그녀만 보면 괜히 미안하면서 기가 죽었는데 2학기에 들어서며 그녀가 안 보이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겨우 1년 반만에 그녀는 더욱 귀찮고 지겨운 존재로 다시 내 앞에 나타난 것이다.


"영도야, 같이 가!"
행자가 소리치며 달려올 때 나는 오늘도 잘 못 걸렸다는 생각을 하며 눈쌀을 찌푸렸다.
금촌리와 학교를 오가는데는 두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신작로라고 자동차나 우마차도 다니고 평평한 길이다. 또 하나는 뒷산을 가로질러 가는 것인데 오르막 내리막이 거듭돼 힘은 좀 들지만 시간은 한 5분쯤 짧게 걸린다.
그래서 여럿이 어울리거나 보통 때는 대부분 신작로로 다니지만, 지각을 할 우려가 있거나 혼자나 사내끼리 두어명이면 이 빠른 길을 이용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날 나는 수업을 마친 뒤에도 축구를 한판 뛰었는데 끝나고 보니 금촌리 학생은 나 혼자라 산길을 타기로 했다. 그런데 그녀가 이길을 혼자 뛰어 오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나를 기다렸다가 뒤를 밟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얘, 여기서 좀 쉬었다 가자."
아직도 숨차 하면서 하는 말을 거절할 수는 없어 나도 바위에 걸터 앉았다. 고개마루의 모퉁이를 돌면 동굴 입구처럼 움푹 패여 바위돌만 몇개 있는 자리가 있는데 우리가 산길을 오르내리며 바쁘지 않으면 한번씩 쉬기도 하는 장소였다.
공교롭게도 이곳은 또 행자와 내가 첫 키스를 했던 곳이기도 하다.
"영도야, 우리 3학년 때 여기서 ...... 너 그거 생각나니?"
그녀는 말을 머뭇거리면서 부끄러운듯 살짝 웃어보인다. 그녀도 똑같은 기억을 되살리고 있었다. 하지만 저렇게 웃는 모습도 이제는 귀찮고 보기 싫다.


나도 모르게 얼굴이 찌푸려지는데 문득 한 생각이 스쳐갔다.
그래, 마침 지금은 우리 단둘 뿐이다. 이 기회에 저 계집애 야코를 콱 죽여 다시는 내 앞에 얼씬도 못하게 해야지. ...... 나는 우선 첫단계를 시도했다.
"그래, 지금도 한번 하고잡나?"
"히히 ...... "
그녀는 고개를 돌리고 웃었다.
오냐, 키스를 해주지. 혀를 넣고 빠는 진짜 어른들의 키스를 ...... 너는 아마 기겁을 할 껄. ...... 나는 얼굴을 적당히 돌려 코가 마주치지 않게 입술을 맞대며 혀를 쑥 집어 넣었다.
예상과 달리 그녀는 입을 벌려 혀를 받아 들이고는 빨아 댄다. 내가 혀를 거두어 들이자 다시 자기 것을 쏙 집어 넣는다.
흥, 제법 키스는 해 본 모양이구나. 하기야 3학년 때 이미 나와 입술이 마주쳤으니 그동안 어느 놈한테나 배울 수도 있었겠지.


그런대로 그녀와의 키스 맛은 달콤했다.
그래서 몇차례 서로의 혀가 드나들게 되자 내 한손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그녀의 가슴을 더듬었다. 그러나 그곳은 송판에 헝겁을 씨운 듯 딱딱하기만 했다. 역시 그녀는 애송이인 것이다.
그런데 내 손놀림처럼 그녀의 한손이 자지 부근을 쓰다듬는다. 애송이와 입을 맞추면서도 자지는 나도 모르게 반응하고 있었다.
"역시 ...... !"
그녀가 자지의 크기를 가늠하듯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보며 하는 말에 나는 약이 올랐다. 나는 "역시" 라는 말을 속으로 하고 말았는데 그녀는 입밖으로 터뜨리는 것이다.


나는 두번 째 작전을 쓰기로 했다.
"야, 우리도 자지 보지 한번씩 비주기로 할까?"
"히히 ...... "
그녀는 다시 웃기만 하는데 이제는 고개를 돌리지도 않는 것이 바로 동의한다는 의미다. 나는 더 강력하게 나가기로 했다.
"행자야. 우리 이제 다 5학년이나 됐는데 비주기나 하는건 유치하잖나? 아주 빠구리를 해뿔까?"
"어머나!" 라며 그녀가 눈을 크게 뜰 때 나는 공격의 효과가 난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이어지는 말에  맥이 빠지며 좀 혼란스러웠다.
"여기서 ...... ?"


이 계집애가 빠구리에 대해 제대로 알고나 있는 것일까? 하지만 성숙한 여인들, 그중에는 아이를 몇씩 낳은 여인들도 크다고 깜짝 놀라는 내 자지를 들이 밀면 어찌될 것인가? ...... 역시 아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나서 불쑥 그녀에게 물었다.
"니 올해 몇살이고?"
"무자생이니까 열한살."
"그라마 내캉 동갑이네.생일은 ...... ?"
"2월 17일."
"음력이가? 양력이가?"
"음력으로 ...... "
나는 음력으로 1월 20일생이니 한달쯤은 내가 더 먹은 것이다.


내가 그녀에게 한걸음 더 나아가 다음 작전을 시도할 생각을 한 것은 순전히 나이 때문이었다.
되돌아보면 나의 빠구리 상대들은 모두 나보다 나이가 많았다.
처음 빠구리를 알게 해 준 서울띠기는 18살이나 많았고, 며칠 전 만났던 송윤초는 64살로 작년에 빠구리를 처음 했을 때는 내 나이와 6배 이상 차이가 났다. 나의 상대중 제일 어리다는 영숙이 누나조차 나와는 6살 차이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면 부부나 연인 사이에 대개 남자의 나이가 많다. 아버지는 엄마보다 4살이 많고, 효석 아재와 그 아지매도 3살 차이, 영구와 청송띠기는 5살 차이다. 할아버지와 첫 할머니는 오히려 할머니 나이가 많았다지만 그것은 옛날 일이고 요즘은 대개 남자의 나이가 많고 기껏해야 동갑 정도다.
나도 앞으로 장가를 간다면 나이가 아래인 여인일 가능성이 많다.
나보다 어린 여인의 보지맛은 어떻게 다를까? ...... 그 단순한 호기심이 나를 충동질했다.


"와, 여기서 하마 안되나?"
"그래도 ...... 누가 지나갈 수도 있잖아? 바닥도 딱딱하고 ...... "
아쭈 이것 봐라 하는 기분이었다. 11살짜리 애송이 계집애가 빠구리 한다는 것 자체에는 전혀 거부감이나 망설임이 없는 것이다.
"그럼 어디서 하노?"
"아, 우리집으로 갈까? 아빠 엄마는 읍내에서 막차를 타고 오시고 낮에는 집에 아무도 없거든."
장소는 정해졌다. 우리는 목적지를 향해 다시 걸음을 옮겼다. 마을에 들어설 때까지 우리는 모두 굳은 표정으로 한마디 말도 나누지 않았다.
행자도 이제 슬슬 겁이 나거나 후회를 하고 있을지 모른다. 어쩌면 기대에 부풀어 있을 수도 있지만, ...... 그러나 나는 기대나 설레임보다는 슬슬 고민에 빠졌다.


과연 우리가 빠구리를 할 수 있을까?
나는 어릴적 개에게 물렸던 사고가 일찍부터 빠구리를 하게 된 하나의 요인이 되었기도 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남자들이 자지가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야 제대로 커지며 모양을 갖추듯, 보지도 적당한 나이가 돼야 커지고 영글 것이다.
가령 몽둥이와 구멍으로 생각해보자. 서로 꼭 맞으면 좋지만 몽둥이는 적어도 큰 구멍에 들어갈 수 있다. 14살 때 고추 같았다던 아버지의 자지가 많은 남자를 겪은 송윤초의 보지에 들어갔듯 ...... 그러나 너무 큰 몽둥이가 좁은 구멍에 들어가는 것은 문제다. 아예 못 들어가거나 구멍이 크게 상할 것이다.
장난끼도 섞여 나를 귀찮게 하는 계집애를 따돌리려 한 것인데 오히려 내가 자꾸 당하며 빠져들어간다는 기분까지 들었다.
그러나 빠져 나갈 구멍도 있기는 하다. ...... 그런 생각이 들자 나는 고민에서 벗어났다.


그녀가 내 자지를 보고 놀래 나자빠지거나, 아직 어린 보지라 끝내 빠구리를 못하게 된다면 그런대로 효과가 있다. 3학년 때 내가 그녀을 피했듯 그녀도 이제 나한테서 떨어져 나갈 것이다. 지겨웠던 스토커를 퇴치하는 적절한 수단이다.
그렇지 않고 어찌어찌해서 우리가 진짜 빠구리를 할 수 있다면 ...... 나는 비록 동갑이긴 하지만 나보다 어린 여인의 보지맛을 처음으로 보게 되는 것이다. 그동안 빠구리를 경험했던 여인들이 얼굴과 몸매가 다르듯 보지맛도 제각각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나보다 어린 여인의 보지맛도 은근히 기대가 된다.
행자와 빠구리를 하든 못하든 나는 손해볼 것이 없는 것이다.
그녀의 집은 거의 마을의 끝자락에 있어 우리집을 지나쳐 가면서 이제 내 발길을 가벼웠다.


행자네는 금촌리의 몇 안되는 타성바지중 하나인데 그전까지는 마을에서 가장 멸시받던 집안이었다.
이 마을에 들어온 선조가 백정 출신으로 그 일을 쭉 이어 왔고, 그녀의 할아버지에 이어 아버지 고명식도 소나 돼지를 잡는 일을 하고 있다.
요즘이야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하나 여전히 백정 출신이라는 것이 마을에서는 어느 정도 업신여김을 받고 있다. 행자의 할아버지는 돈을 꽤 알뜰히 모아 마을 안쪽에 팔려고 내 놓은 집으로 이사를 하려고 한적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종실을 비롯해 마을 어른들이 "감히 백정이 어찌 양반들과 이웃해서 살려고 하느냐?"
고 호통을 쳐 무산되었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
그런 멸시가 싫어서인지 그녀의 아버지는 서울에 있는 친척의 알선으로 서울에서 고깃간을 내며 온가족이 이사했다. 그러나 1년 남짓하는동안에 오히려 밑천을 다 까먹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것을 나는 귀동냥으로 들었다.


이미 어른들이 없는 것을 아는 터라 우리는 거리낄 것이 없었다.
안방에서 행자는 요를 깔고 그 위에 이불을 덮으면서 눈을 찡긋해 보인다. 그것은 나한테도 빨리 준비하라는 재촉 같기도 했다.
나는 옷을 훌훌 벗어 방바닥에 아무렇게나 내 던졌다. 마지막으로 팬티만 남았지만 속도를 늦추지 않고 확 벗어 내렸다. 애송이라지만 빠구리를 하기로 한 것이라 자지는 발딱 서 있었다. 이제 그녀의 반응에 따라 내 행동은 정해질 것이다.
"어머나!"
그녀는 거의 비명처럼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그 다음 그녀의 반응은 또 한번 내 예상을 뒤엎는 것이었다.
"야, 정말 대단하다. 역시 ...... "


전혀 망설임 없이 그녀는 내 자지를 움켜 잡더니 밑둥까지 훑어 나갔다. 그리고 이제 새싹처럼 돋아나고 있는 자지털을 손가락으로 문지르며 말했다.
"히히 ...... 이 털이 참 귀엽네."
아무래도 내 작전은 계속되어야 할 모양이다. 나는 좀 맥이 빠진 소리로 말했다.
"니는 안 벗나?"
"응, 벗어야지. 그런데 네가 좀 도와줘야 해."
그녀는 블라우스를 벗고 내게 등을 돌렸다. 그 등에는 어린애 기저귀 같은, 하지만 천은 더 고급스러운 것이 앞가슴까지 둘러 있었고 등쪽에 옷핀 둘로 고정시켜 놓았다.


"이것 좀 풀어 줘."
옷핀을 따고 한 세겹쯤 천을 풀어내자 맨살이 나왔다. 그것은 일종의 압박붕대처럼 가슴을 가렸던 것이다.
"여자들은 블라잔가, ...... 뭐 그런기 있던데 불편하게 와 이런걸 하노?"
"나도 브래지어를 하고 싶었어. 그런데 엄마가 나이도 어린 게 그런 걸 하면 남들한데 창피하다고 중학생이나 되거든 하라는거야."
맨살의 등어리를 보인 채 그녀는 팬티를 벗었다. 그리고는 두 손으로 앞가슴을 가린 채 그녀는 천천히 돌아섰다.
나는 눈을 크게 뜨고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말했다.
"니, 그 손 띠바라."

그녀가 두 손을 내렸을 때 나는 정말 화가 나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니가 아주 나를 데불고 놀라 카나?"


그녀는 시침을 뗀 표정으로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게 더 화를 돋꾸었다.
"야, 우리반에 니처럼 젖탱이가 탱탱하고 터레기가 그래 수북한 여학생이 또 있나?"
"글쎄, ...... 아마 없겠지."
여전히 별 표정도 없이 태연하게 말한다.
"야, 이 가시나야! 내가 이래뵈도 제일 어린 기 중학생도 아니고 고등학생, 그뿐 아이라 설흔살 마흔살, 많게는 환갑을 지난 할마씨하고도 해 봤다. 나도 빠구리만은 산전수전 다 겪었단 말이다."
"아, 그랬구나! 대단하다. 역시 ...... "
그녀는 눈을 좀 크게 뜨고 놀란 감탄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때문에 나는 더 약이 올랐다.


물론 내 말에 과장이나 허풍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내가 똑같은 말을 나와 빠구리한 여고생이나 과부나 유부녀, 환갑이 넘은 송윤초한테 했다면 그녀들은 한결 같이 "거짓말" 이라며 믿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 국민학교 5학년 짜리는 그 놀라운 무용담에 약간의 찬사만 보내며 아무 이의 없이 받아 들이는 것이다.
"그래가 내도 여자에 대해 알만큼은 안다 이기다. 니 참말로 몇살이고?"
"무자생 열한살. 아까 너하고 맞추어 보고 동갑이라고까지 했잖아."
"뻥 까지 마라, 이 가시나야! 열한살 짜리가 우리 큰 누나보다도 터레기가 많다 말이가? 더구나 그 젖탱이는 ...... "


정말 나는 그녀의 젖통과 보지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여자들은 체형이나 모양새가 각양각색이다. 황달자 올케처럼 전혀 쳐지지도 않은 육중한 젖통이 있는가 하면 꼽추할매처럼 조그만 젖이 시든 과일처럼 쳐진 것도 있다. 황달자는 골격이 크고 어깨도 넓지만 젖통은 납작했고 송숙자는 보통 때 젖꼭지가 속으로 들어가 있다.
보지털도 서울띠기나 병호 엄마도 많은 편이지만 내가 상대한 여자중에는 17살짜리 강복순이 제일 풍성하게 났다. 반면 이미영 선생 같은 백보지도 있고 효석아재 아지매나 꼽추할매처럼 수줍은 듯 씹두덩과 칼 자욱 주위에 약간만 돋아난 경우도 있다.
그런데 고행자의 젖통이나 보지털은 거의 영자 누나나 최나영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고개마루에서 키스할 때 가슴이 송판처럼 딱딱하게 느껴졌던 것은 압박붕대를 감아 놓았기 때문이고, 아까 조금씩 돋아나는 내 자지털을 보고 "귀엽다." 고 한 것도 제것과 비교하니 그런 말이 나왔을 것이다.


"히히 ...... 나는 음모가 8살 때부터 났는걸. 유방도 그 때쯤 비슷하게 커지기 시작했고 ...... "
"이 가시나가 참말로 나를 데리고 놀라카네. 자꾸 그래 뻥 깔래? ...... 터레기가 어디 바람에 날려와서 니 보지에 붙었단 말이가? 곡식이나 과일도 다 때가 돼야 여무는기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데는 근거도 있다.
영미 누나의 중학교 입학식이 있기 전날, 엄마는 부엌에서 가마솥에 물을 데워 누나를 목욕시켜 줬다. 그때 나는 문틈으로 누나의 알몸을 보았다.
지금 중 3이 된 누나는 이제 가슴이 볼록한 것을 보면 보지에 털도 났겠지만 그때의 가슴은 남자와 다름 없었고 보지는 그저 밋밋했을 뿐이다.
11살의 5학년짜리가 어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 그녀가 거짓말을 안 했다면 내 눈이 삐인 것이다.


"얘! 나도 너처럼 그렇게 굵고 크고 단단한 고추, 아니 성기를 처음 보았어. 그럼 너도 나를 데리고 놀고 있는거냐?"
그녀가 처음으로 나에게 반발했다.
"그기사 내가 특별하니까 그렇지."
"특별하다고 ...... ?"
"하모! 내가 지어낸 기 아이라 내껄 본 여자들이 다 그카데. 드가마 더 좋아가 울고 불고 ...... "
이 말도 전혀 허풍이나 과장이 아니다. 어쩐지 아까부터 그녀에게 자꾸 밀리며 주눅이 드는 것 같은 기분 때문에도 나는 좀 으스대며 말했다.
"네가 그렇게 특별하다면 남도 특별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해 봤니?"
"뭐? 니도 특별하다꼬 ...... ?"
"네가 그렇게 화를 낼 정도라면 나도 평범하진 않겠지."


"평범 ...... ?"
부끄럽게도 그때 그 말의 의미가 바로 들어오지 않았다. 평범이란 ...... 특별하지 않은 것을 가리키는 말일까? 그렇다면 평범하지 않다는 것은 바로 특별하다는 뜻이겠구나. ...... 이렇게 머리를 굴려보는 동안에 몇초쯤 시간이 지나 나는 반박할 기회를 놓쳐 버렸다.
하기야 까진 계집애들은 말도 잘하니 말싸움을 하면 내가 밀린다. 또 우리는 지금 빠구리를 하자고 이렇게 알몸으로 마주 있는데 아옹다옹할 것이 아니라 그냥 빠구리만 하면 된다. ...... 나는 이렇게 상황을 정리하고 그녀를 눕히면서 꽤나 수북한 보지털 사이로 자지를 가져 갔다.
그녀가 가랑이를 더 벌리자 빨간 속살들이 드러났다. 털이 많이 난 것 처럼 어린애 보지답지 않게 대음순도 좀 검은 것이 양쪽으로 늘어져 있는데 이미 보지속은 물끼로 번득이고 있었다.


자지는 별 저항이나 어려움 없이 쑥 들어갔다. 잠시 가만 있어봐도 별로 꼼지락거리는 기색은 없었다.
"아아, 이렇게 꽉 차!"
자지도 벌떡거리지 않았는데 그녀는 엉덩이를 살짝 들면서 속삭이듯 말했다.
고개마루에서 세웠던 나의 작전은 예상치도 못했던 그녀의 반격으로 하나 하나 무너져 내려가 결국은 이렇게까지 전개되었다.
그녀는 놀라지도, 겁을 내지도, 비명을 지르거나 도망치지도 않았다. 오히려 스토커를 퇴치하겠다고 나섰던 내가, 나의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무기가 그녀의 보지 속에 같혀 있는 것이다. ...... 나는 쓴 웃음이 나오며 기분도 찜찜했다.


어떻든 보지 속에 들어가 있는 자지는 제 역할을 해야 했다. 그런데 몇차례 엉덩이를 들썩이다 불쑥 생각이 났다.
나는 그녀에게 키스나 애무 같은 아무런 사전 동작 없이 그냥 자지만 박고 있는 것이다. 나의 공격에 대한 그녀의 특별한 반응도 그렇지만, 거의 성숙한 여인 같은 그녀의 몸매에 더욱 주눅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왕 빠구리를 하는 것이라면 내 실력을 발휘하며 제대로 해보자. ...... 자지를 꼽은 채로 우선 입을 맞추었다. 그녀의 혀가 먼저 쏙 들어 온다. 다시 귓바퀴를 덮고 혀로 훑어 가다 목덜미를 더듬어 주자 "흐윽!" 소리가 나며 밑에서도 엉덩이를 한두번 들썩인다.
그 입은 이제 젖통으로 옮겨 가고 한손으로 남은 젖꼭지를 매만졌다. 젖꼭지도 제법 딱딱해지며 꼿꼿하게 섰고, 젖통은 늘 압박붕대 속에 갇혀 있었기 때문인지 단단하면서도 탄력이 있었다.


게다가 별로 큰 차이는 아니지만 체격이 나보다 적은 여인이라는 점에서 품는 맛이 다른 여인들과는 달랐다.
"하아! ...... 하아! ...... "
속도를 빨리 하자 그녀에게서도 조금씩 가쁜 숨소리가 터져 나왔다.
나는 그녀의 다리를 더욱 벌리게 하고 두팔을 뻗어 그녀의 몸 전체를 내려다 보며 자지를 박아댔다. 완전히 박았을 때는 끝이 보지 끝자락에 닿는 것 같고 엉덩이를 들면 보짓살이 자지에 딸려 나온다.
"아아, 너무 커! 자궁까지 건드리나 봐!"
그녀는 벌렸던 두다리로 내 허리를 휘감으며 속삭였다.


한동안 자지를 박아 대다 나는 자세를 바꾸어 그녀를 옆으로 눞게 하고 엉덩이 쪽에서 비스듬히 찔러 댔다. 그녀의 엉덩이는 별로 눈길이 안 갔었는데 그렇게 눞여 놓고 보니 키나 체격에 비해 통통하게 살이 붙어 있었다.
나는 그렇게 찔러 대면서 흥분이 조금씩 고조되고 있는데 어느 새 그녀의 가쁜 숨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이런 자세가 여인에게는 별로인가? ...... 그런 생각도 들어 내가 누우며 그녀를 올라오게 했다. 그녀는 자지를 직접 잡아 보지에 집어 넣고 앉은 자세를 했다. 그러나 눈은 사르르 감은 채 더 이상 움직임은 없다.
그녀의 부푼 젖통을 올려다 보며 자지는 보지 속에서 벌떡거렸다. 그러나 가만히 느껴 보니 보지에서는 별 반응이 없었다.


"니도 좀 움직여 봐라."
나는 그녀의 엉덩이를 잡고 들썩거리는 시늉을 했다. 비로소 그녀는 내 위에 몸을 포개며 엉덩이를 스스로 들썩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 동작에 서툴지 않았다. 속도가 빨라 져도 자지가 빠진 적은 없었다. 그러나 자신의 별다른 반응도 없었다. 다른 여인들은 저렇게 움직이면 헉헉거리거나 울부짖기도 하는데 ......
상대의 반응이 별로라 나는 다시 체위를 바꾸었다. 처음처럼 내가 다시 위로 올라간 것이다. 그래서 자지를 박아대자 다시 "하아! ...... 하아! ...... " 라는 가쁜 숨소리가 들려 왔다. 그러나 나는 문득 며칠 전 박금지가 했던 "니가 그래 위에서 꿀렁이니 우째 숨이 안 차겠노?" 라는 말이 생각났다.     
그때의 금지는 사실 거짓말을 했지만 지금의 행자는 자신이 정말 별로 느끼지 못하며 숨이 차서 나오는 소리 같기도 했다. 어떻든 나는 별로인 반응을 보면서도 결국은 사정했다.


사정이 끝나자 나는 웬지 좀 공허한 기분이 들면서 그냥 누워 버렸다.
그녀는 보지를 먼저 한번 훔치고 나서 자지를 꼼꼼히 닦아주고 다시 그 가제 수건으로 보지를 막았다. 표정 없이 하는 그 동작은 익숙해 보이면서도 어쩐지 삭막하기도 했다.
"니, 빠구리 많이 해봤구나. 그렇제?"
"뭐, 그저 그럭 저럭 ...... "
그녀는 고개를 돌리며 힛죽 웃고는 말했다.
"몇번이나 해봤노?"
"그걸 어떻게 ...... ?"
그녀는 오늘 어쩌면 처음으로 내 앞에서 머뭇거렸다.


"야, 행자야. 우리 이래 알몸으로 할 것 다 했는데 더 이상 뭐를 감쭐 끼 있노? 니 말대로 니나 내나 다 특별한데 솔직히 다 까내 보자."
오늘 그녀의 말이나 행동은 모두 나를 놀라고 맥이 빠지게 한다. 그럴수록 나는 그녀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었다.
"정말 ...... ? 너도 다 털어 놓을 수 있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은 서울에서 살던 4학년 때 한번 공책에 적으면서 세어 본 적은 있지. 그때 숫자가 스물일곱 ...... "
"뭐, 스물일곱번이나 ...... ?"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지며 다급하게 물었다.
"아니, 스물일곱명. ...... 그중엔 열번도 넘게 한 남자도 있으니까 횟수는 더 많겠지."


배시시 웃으며 대수롭지 않게 하는 말에 나는 기가 막혔다. 그 놀라움중에도 나는 몇번을 했는가를 세어 보려 했다. 하지만 그 기억조차 제대로 떠오르지 않는다.
"처음 한건 언제고?"
"여덟살 때 ...... "
정말 점입가경이다. 내가 여덟살 때는 무엇을 했는가. 종이를 접어 딱지치기나 하고 군것질꺼리가 없나 눈을 밝히고, ...... 아, 엄마의 빈젖도 빨았었지. 그 다음은 생각이 안난다.
나는 오늘 귀찮은 계집애를 떼어 놓는다는 생각으로 그녀를 건드렸다가 나보다 어리다는 점에 혹해서 결국 그녀와 빠구리까지 하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혼란스럽고 그녀에게 주눅이 든다.
고행자는 나보다 어린 계집애가 아닐 뿐 아니라 꼬리가 아홉개나 달렸다는 늙은 여우, 동화에 나오는 마귀할멈 같이도 느껴져 나는 으스스한 기분에 휩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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