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촌리 설화(金村里 說話) - 12
금촌리 설화(金村里 說話) - 12
명절이 흩어진 사람들을 만나게 한다면 명절의 끝은 상봉의 파장, 이별을 만들기도 한다.
추석 바로 다음날 영숙이 누나는 읍내 제재소집으로 갔다.
그리고 다음날은 아버지가 떠났다. 아버지는 요즘 천안 -대전구간의 고속도로를 뚫는 공사현장에서 일한다는 말을 옆에서 얻어 들었다. 고속도로란 서울에서 부산까지 자동차만 쌩쌩 달리는 일직선 길을 새로 만드는 것으로 돈이 엄청나게 든다고 한다.
나는 그런 길이 왜 필요한지 이해가 안 갔지만 하여튼 그 공사 때문에 아버지는 일자리를 얻은 것이다.
아버지는 떠나기 전날에도 엄마와 빠구리를 했다.
이번에는 아무 승강이도 없었다. 다만 아버지는 엄마와 몸을 포개기 전, "영도는 자나?" 라고 묻고 엄마는 "예."라고 대답했다. 괜히 내가 꿈이야기를 해서 신경이 쓰이나보다. 그때문에 나는 빠구리가 끝날 때까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엄마는 여전히 고비에 오르면 두다리를 들어 아버지를 감싸며 비명을 질렀다. 아버지도 사정을 할 때면 꼭 "아, 아아! ......" 하는 소리를 냈다.
"영자아부지요. 그래도 당신이 이집의 기둥인데 꼭 이래 밖으로만 나돌아야 하는교?"
빠구리가 끝나고 엄마는 아버지 품을 파고들며 말했다.
"그기 우리 팔자인갑다. 우야겠노?"
한동안 엄마는 말이 없었다. 몸을 떼고 똑바로 누운 엄마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20년이 지난 일을 지금도 가슴에 묻고 살아야 하나?"
아버지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리고 나는 잠이 들었다.
아버지가 집을 나서는데 특별한 감회 같은 것은 없었다. 당시의 나로서는 나그네 같은 아버지를 그냥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누나들도 나와 비슷한 생각이었을 것 같다.
그런데 다음날 나는 진짜 가슴아프고 슬픈 이별을 경험하게 된다.
엄마와 영자, 영미누나와 저녁식사를 끝내고 아직 상도 치우기 전에 서울띠기 아줌마가 찾아왔다. 그녀는 엄마를 형님이라고 부르며 우리집에 자주 놀러 왔었는데 나와의 빠구리 때문에 영자 누나한테 면박을 당한 뒤로는 발길을 끊었었다.
"형님, 안녕하셨어요?"
"아, 오랫만이네. 우째 그동안 통 놀러도 안 오고 ......? 저녁은 자셨는가?"
"네. 사실은 저 인사드리러 왔어요. 내일 아침 서울로 떠나거든요."
"그래? 섭섭하네. 하지만 서울사람은 서울서 살아야제. 그래, 재석 서방님 몸은 이제 다 괜찮고 ......?"
"네, 염려들 해주신 덕분에 ...... "
아줌마는 조그만 옷보따리 하나를 내놓았다.
"참, 이거 강숙아빠 안 입는 옷 줄인건데 영도 입으라고 ......"
"아이고, 그 전에 영도 아플 때도 잘 돌봐주더이 또 이런 것까지 ...... 아따, 기지가 모두 고급이다! 니, 아지매한테 고맙다고 인사해라."
나는 그녀의 "떠난다." 는 말에 충격을 받아 멍한 표정으로 있다가 그저 고개만 꾸벅했다. 그녀는 영자, 영미누나와도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내게도 똑같은 말을 했지만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입을 열면 울음이 터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다른 사람들 시선을 피해 내게 눈을 찡긋하고 입술을 씰룩거렸다. 나는 그 뜻을 알 것 같았다. 엄마가 그녀를 배웅하고 저녁상을 치우는중 나는 슬그머니 집을 나왔다. 내 생각대로 그녀는 민석이네 집 모퉁이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개울가로 갔다. 날씨가 흐려 주위는 완전히 깜깜했다. 그녀의 손에 이끌려 뚝에 앉을 때까지 우리는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영도야!"
그녀는 나를 부르며 얼굴을 당겼다. 이어 내 입술을 덮으며 혀를 쏙 내밀었다.그러나 나는 그 혀를 빨지 못했다.
"흑!"
끝내 북받치는 울음에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그저 엉엉 울어댔다.
나는 그때까지 이별을 몰랐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도 없었고, 거의 집을 떠나있는 아버지는 그러려니 했고 또 항상 돌아왔다. 엄마도 가끔 행상을 떠나지만 어김없이 며칠만에 돌아왔다. 그런데 그녀와는 기약없이 헤어지는 것이다.
이별이 얼마나 가슴 시리고, 허망하고, 스산하며, 아프고 무서운 것인가를 나는 절감했다. 아줌마가 없이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 하는 기분까지 드는 것이다.
"자, 고만, 고만. 내 꼬마 낭군님. 아니, 울보 낭군님. ......"
그녀는 나를 품에 안은 채 등을 또닥거렸다. 나는 눈물이 멈춘 후에도 한동안 그녀의 품에 머물러 있었다. 그녀는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준 뒤 다시 입술을 포갰다. 나는 그녀를 끌어안고 혀만 내밀어 맡긴 채 가만히 있었다.
우리가 처음 알몸이 되고 살을 섞었던 때, 그 열광과 황홀함이 이어져 왔던 순간순간들이 꿈처럼 스쳐간다. 추억을 되살리는 순간은 숭고하고 엄숙했다. 그녀의 품에 안겨 애무를 받으면서 자지도 서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시골생활을 하게돼서 참 적막했는데 영도, 너를 만나서 오히려 즐겁게 보냈어. 정말 내게는 잊지 못할 추억이 될거야."
나는 대꾸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말을 한다면, 당신이 추억의 대상이 된다는 것 자체가 지금의 내게는 너무 슬프답니다 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우리 마지막으로 한번 더 할까?"
그녀는 비스듬한 뚝에 등을 대며 치마를 걷고 팬티를 내렸다. 개울물 흐르는 소리와 함께 귀뜨라미인지 풀벌레의 울음도 들려 왔다. 나도 바지와 팬티를 무릎 아래까지 내렸다.
그녀가 무릎을 올리고 가랭이를 한껏 벌린 위에 내 몸을 포갰다. 그래서 막 자지를 꼽으려는데 그녀는 무릎을 다시 내렸다.
"참, 내 이름은 강미란이야. 원래 호적상에는 강말자인데 너무 촌스러워 바꾸었지. 나이는 28살이고 ......"
그때 불쑥 왜 그녀가 그 말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나는 그동안 이름도 나이도 모르는 여인과 그토록 뜨겁고 환상적인 열정을 나누어 온 것이다. 나는 이제야 이름을 알게된 강미란과 마지막 빠구리를 하고 있다. 맨땅에 엎드려 방아질을 하려니 무릎이 무척 아파 왔지만 이별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마음은 더 아파왔다.
"역시 대단해! 정말 대단해! ...... 어제도 강숙아빠하고 한번 했는데 영 기분이 안나더라. 앞으로도 그러면 나는 어떡해? 시골에 와서 아래 입이 호강을 했지만 그것 때문에 입맛을 버린 것은 아닌지 몰라."
그녀는 이렇게 말하며 깔깔 웃었다.
나는 웃거나 우쭐대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다. 오히려 살을 섞고도 감정 차이가 난다는 것이 더 쓸쓸하고 서글펐다. 지금 나는 지난날의 모든 열광과 환희를 이별이라는 충격 속에 추억으로 다독거리려 하는데 그녀는 여전히 빠구리 자체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내일부터는 재실도 너 혼자 가야겠네?"
그녀의 말은 조금 놀리는 것 같기도 했다.
"아지매 없는데 거긴 말라꼬 가예?"
불쑥 말했지만 그때 마음을 굳혔다. 이제 혼자 꼽추 할매를 만나러 가지는 않을 것이다.
"정말 ......? 꼽추가 섭섭해 할텐데 ...... "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앞에서는 깍듯이 사모님 이라고 하지만 뒤로는 꼽추 라고 하는 것이 귀에 거슬렸지만, 어떻든 그녀가 빠진 뒤 꼽추 할매를 따로 만나고 싶지는 않았다.
생각해보면 꼽추 할매가 그리 싫을 것도 없고 나딴에는 동정심도 갔다.
하지만 그녀의 나이나 항렬이나 생김새, 또 우리와 비교도 안될만큼 잘사는 것들이 그저 빠구리 상대로 생각하면 모두가 부담이 되기도 했다.
첫빠구리를 하고 그녀가 내게 빳빳한 5천원권 두장을 준 뒤로 그녀는 가끔 내게 돈을 쥐어주려 했으나 나는 완강히 거절했었다. 웬지 자지값, 몸을 파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또 그녀가 당시로서는 나에게 두번째 여인이었지만, 서울띠기 아줌마가 없어도 이제 빠구리할 대상은 많았다.
이미영선생을 비롯해 병호 엄마와 효석 아재의 아지매, 황달자를 비롯한 7공주파의 일곱 처녀, 영구네 형수까지 ...... 물론 그중에는 내가 원할 때 항상 안아보기 어려운 상대도 있겠지만 그리 아쉬울 것은 없는 입장이었다.
"그래도 꼽추는 너 때문에 새롭게 사는 재미를 가졌었는데 ...... 나처럼 너를 쉽게 포기하지 못할지 몰라."
서울띠기, 아니 이제 이름을 알게된 강미란은 꼽추 할매가 세게 나올 경우 대처할 방법을 내게 귀띰해 주었다. 우리는 개울뚝에서 한번 더 키스를 하고 헤어졌다.
몇년 후 중학생이 되어 다시 만났을 때, 그녀는 3살짜리 어린애를 내딸이라고 소개하게 된다. 그러나 당시 우리는 다 그런 일이 있게될 줄 몰랐다.
학교에서 "이미영선생이 곧 서울로 전근간다더라." 라는 소문을 들었다.
서울띠기 아줌마는 이미 서울행 기차에 타고 있을 시간이며 꼽추 할매와도 결별을 작정한터라 이미영선생의 전근 소문은 더욱 내 마음을 스산하게 했다. 그러나 더 자세한 내용을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수업이 끝난 후 새 운동화도 신고 온김에 축구를 했지만 끝나고 나자 다시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교문을 나와 한 5분쯤 걸었을까,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박금지를 만났다.
"야, 문영도! 오랫만이다."
그녀가 웃는 얼굴로 먼저 말을 걸었다. 입가에는 보조개가 깊게 패인다.
"누부야가 우짠 일고?"
나도 반가워하며 대꾸했다.
"여가 우리집 아이가."
그녀가 가리킨 몇미터 앞의 집은 공산상회, 문방구와 술 담배 잡화등을 파는 가게였다. 우리학교 앞이라 나도 가끔 공책이나 과자를 샀던 곳이며 공산면 면사무소와 초등학교가 있는 내리에서도 가장 큰 가게였다. 그런데 이곳이 금지네 집이라니 ......
금지는 내손을 끌며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나도 안면이 있는 주인 아줌마가 "왔나?" 라며 먼저 알은 체를 했다.
"아부지, 저 왔심더."
그녀는 계산대 앞에 앉아있는 주인 아저씨에게 인사했고 그도 역시 "왔나?" 라고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금지의 부모는 시골사람 치고는 모두 신수가 훤한 편이고 아버지는 점잖아 보였고 어머니는 상냥했다.
"야가 문경미 동생이다."
금지는 나를 자기 어머니에게 소개했다.
"아, 그 금촌리 사는 ...... 누나 닮아서 니도 참하게 생겼네."
인사치례로 하는 말이겠지만 나는 고개만 꾸벅하고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경미가 내 손녀라는 것을 말했다가는 훨씬 복잡해질테니까.
"지금 밥 가질러 갈라캤는데 ...... 니도 같이 가자."
"내가 점방 볼테니까 아부지하고 같이 잡숫고 온나."
"그럴까? ...... 여보! 금지가 여기 본다카이 우리 같이 묵고 올까예?"
"그럼 오랫만에 부부겸상 저녁 좀 묵어볼까?"그라자."
금지 아버지도 일어났다. 아마 살림집은 따로 있고 밥을 평시에는 날라왔던 모양이다.
"니가 일찍 오이 이런 일도 있잖나? 앞으로도 좀 일찍 일찍 다니라. 참, 밥상은 차려 놓을테니 쟈도 같이 묵고 가그라."
부모가 나가고 나자 금지가 완전히 주인행세를 했다.
"뭐 물래?" 라며 이것 저것 가리키는데 내가 계속 고개를 젖자 콜라와 과자 한봉지를 땄다. 우리는 함께 먹으며 잡담을 나누었다.
"내도 이집 단골인데 공산상회가 누부야네껀지는 몰랐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장사해 왔다. 이제 우리집도 알았으이 더 자주 보겠네."
그녀는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단둘이 마주 보고 앉아 있으려니 며칠전 그녀의 알몸이 떠올랐다. 젖꼭지가 연필지우개마냥 봉긋 솟아있는 젖통, 역시 봉긋한 두덩과 자지를 깨물듯 세게 주물러주던 그 뜨거운 보지, ...... 갑자기 자지도 바지 속에서 꺼떡댔다. 그런 나의 생각이나 몸의 변화를 혹 상대가 눈치채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얼굴도 좀 붉어지는 것 같았다.
"그날 뒤로 다른 아들은 안 만났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집에서 같이 저녁 묵고 가는기다. ...... 그런데 오늘 이렇게 우리 만난거는 달자성님이나 다른 아들한테는 비밀이다이."
나는 "저녁 같이 먹자." 는 말에 사양을 하려다, 그녀가 비밀을 강조하면서 나처럼 얼굴을 붉히는데 생각이 달라졌다. 비밀을 강조하는 것을 보면 오늘 그녀와 다시 빠구리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런데 누부야들은 와 달자를 모두 성님이라카노?"
나는 평소 좀 아니꼽고 궁금하기도 했던 것을 물어보았다.
"달자는 우리보다 나이가 서너살은 많다. 지금 꼭 20살 아이가. 그래서 그냥 이름 부르기도 뭣하고, 그래도 언니보다는 성님이 더 폼나지 않드나?"
나는 좀 놀랐다. 달자가 체격은 크지만 20살이나 될줄은 몰랐다. 영자누나보다도 나이가 많은 것이다.
"우째 혼자만 그래 나이를 많이 뭇노?"
금지는 좀 머뭇거리다 말했다.
"이것도 비밀인데 ...... 그 성님은 오빠들캉 엄마가 다르다. 말하자면 첩의 딸인 셈이제. 친엄마가 병이 들어 외할머니한테 맡겼다가 엄마가 돌아가시자 아버지 집으로 드간기다. 달자도 겉보기보다 불쌍한 곡절이 많더라."
대꾸를 하지 않은 채 나는 달자를 생각했다. 부잣집 딸에 왈패로 거들먹거리는 달자에게도 가슴 아픈 사연들이 있었다. 내 앞에서도 눈물을 주르르 흘리거나 글성이는 것을 보았는데 괜히 그런 것들까지도 지난날의 상처와 연관지어지는 것 같았다.
과자를 먹으며 이야기하는 중에도 손님들은 계속 찾아왔다. 금지는 "어서 오이소." "안녕히 가이소." 라는 인사를 빠트리지 않고 상냥하게 물건을 팔았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받은 돈을 자기 주머니에 넣는다. 또 금고에서도 지폐 몇장을 꺼내 역시 따로 챙겼다.
"누부야, 돈 훔지는기가?"
내가 어이없어 물었더니 그녀는 "히히 ...... " 하고 웃으며 천연덕스럽게 말한다.
"군자금 좀 챙기는기지. 일찍 와서 가게 봐준다꼬 부모님한테는 칭찬 듣고 용돈도 장만하이 이야말로 도랑 치고 가재 잡는 것 아이가."
금지는 성격이 명랑하고 밝아 보였다. 돈 훔치는 것도 그렇게 떳떳하게 말하니 그녀로서는 당연한 일 같기도 하다.
"금순이도 니 오마 같이 묵는다고 기다린다. 빨리 가그라."
30~40분쯤 뒤 금지 부모가 돌아왔다. 나는 절을 꾸벅하고 금지와 함께 나왔다.
"누부야 집에 또 누가 있나?"
"응, 우리 언니 ...... "
그녀는 잠시 멈추었다 다시 말을 이었다.
"참, 우리 언니는 맹인이다."
"맹인? ...... 그기 뭔데 ......?"
"앞이 안보이는 사람, 눈이 멀었단 말이다."
"아아, 장님! 소경!"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때까지 맹인이라는 단어를 몰랐었다. 나는 역시 맹인인 영자 누나를 떠올렸다. 금지가 내게 미리 말을 하는 것도 창피하거나 내가 놀랄까봐 미리 털어놓은 것일 수 있다.
나의 큰누나도 장님, 아니 맹인이라는 말을 할까 하다 말았다. 사실은 나도 창피해서 내 입으로 영자 누나가 장님이라는 말을 남에게 한적은 없었다.
한 5~6분 걸어서 도착한 금지네 집은 꽤 큰 기와집이었다.
금촌리는 집이 80여채 되지만 기와집은 10채 남짓이고 그중 반이상은 풍산 홍씨네 집이다. 그런데 내리는 잘사는 집이 더 많아서인지 절반쯤은 기와집인 것 같았다. 그중에도 금지네 집은 마당도 집채도 꽤 널찍했고 대청에는 우리학교에도 없는 피아노가 놓여 있어 꽤 잘사는 집임을 알 수 있었다.
"왔나?"
방문을 열자 돌아보며 말하는 여인과 눈을 마주치며 나는 깜짝 놀랐다. 그녀도 영자누나만큼 심하지는 않았지만 곰보였다. 그런데 첫인상이 너무 아름답다는 생각뿐이었다.
금지도 꽤 예쁘고 귀엽게 보이는 얼굴이다. 그녀 어머니는 수더분하면서도 상냥한 미인형이다. 그런데 이집의 3명 여인중 맹인이며 곰보인 그녀가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다.
"친구 동생이랑 같이 왔다."
"아, 그래? ...... 이름이 뭐니? 이리 와보렴."
"문영도라예."
나를 돌아보며 말하는 그녀의 손짓에 나는 가까이 갔다. 그녀는 내 손을 잡더니 다시 얼굴도 어루만졌다. 그 손마저 무척 고와 보였다.
"몇학년이니?"
"4학년이라예."
그녀는 독특한 경상도식 억양은 남아 있지만 나처럼 심한 사투리는 쓰지 않았다. 금지가 아랫목에 덮어둔 밥 세그릇을 가져오자 우리는 밥상에 둘러 앉았다. 흰 쌀밥에다 반찬도 우리가 명절이나 제삿상 차린 것처럼 먹음직한 것이 많았다.
자매는 밥을 먹으며 몇마디 대화를 나누었고, 금지 언니가 묻는 말에 나는 간단히 대답만 하는 정도였다. 그러면서도 나의 관심은 그녀의 용모와 행동에 온통 쏠려 있었다.
나이는 20대 중반 쯤 되었을까, 안경 속의 눈이 참 예뻤으며 길게 늘인 생머리, 오뚝한 콧날, 도톰한 입술과 가지런한 이빨, 긴 목덜미등이 참 우아한 미인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곰보자국만 없으면 이미영선생과도 견줄만한 미모였다.
나는 머리를 갸우뚱했다. 그녀도 장님에 곰보다. 그런데 왜 영자 누나와는 그렇게 달라 보일까? ...... 조금씩 답이 나왔다.
우선 그녀는 눈이 열려있다. 성한 사람처럼, 아니 유난히 큰 눈에 검은 눈동자가 그대로 반짝이는 것이다. 영자 누나의 눈은 백태가 끼어 있어 늘 희뿌옇게 흉했는데 금지 언니는 투명한 안경속의 눈동자가 처음 보는 사람에게 전혀 장님으로 보이지 않았다.
머릿결이나 옷차림도 그렇지만 또 표정이 전혀 구겨지지 않았다. 영자 누나는 자신의 표정을 못봐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특히 말을 할 때면 찡그리거나 일그러지는 표정을 잘 짓는데 그녀는 은은한 표정에 웃기도 잘한다. 그리고 웃으면 곰보자국의 얼굴에도 금자처럼 보조개가 패인다.
또 하나의 특징은 그녀의 말투다. 거의 표준말을 쓰는 것도 그렇지만 몇마디 대화 속에서도 그녀의 지식이나 교양이 배어 있는 것 같았다.
가령 날씨 이야기를 하면서도 가을의 정취 니 들국화 향기 같은 말을 구사하고, 음식맛에 대해 말하면서 소설 속의 한귀절을 인용하기도 한다.
수저를 놀리는데도 장님 특유의 망서림이 거의 없이 반찬들을 잘 골라 먹는다. 영자 누나 같으면 옆에서 누가 일러 주거나 본인이 손으로 확인을 한뒤에도 다시 더듬거리는 경우가 많았다.
어떻든 나는 금촌리에서 보아왔던 장님들과는 다른, 세련되고 아름다운 장님을 만난 셈이다.
"자, 이제 내 방으로 가서 그거 해보자."
밥상을 치우고 나자 금지가 내게 눈을 찡긋하면서 말했다.
"뭘 하는데 ......?"
"아, 영도 숙제 같이 풀어주기로 했다."
"아니, 돌대가리 우리 금지가 남의 공부도 봐준단말야?"
"언니는 남 앞에서 동생 망신 주는기 그리 좋나? 내도 국민학교에서 산수는 거의 백점 받았다 아이가."
나는 금지의 손에 이끌려 그녀의 방으로 가다 물었다.
"누부야는 피아노도 치나?"
"아이다. 저건 언니끼다."
"맹인이 우째 피아노를 ......?"
"건반이야 손으로 치는긴데 어떻노? 내도 교습을 좀 받았지만 소질도 취미도 없는기라. 그런데 언니는 콩쿨대회에 나가 상도 받았다."
금지의 방은 책상과 의자, 거울 달린 조그만 옷장이 있는 아담하고 깔끔한 둥지였다.
방문을 닫자말자 그녀는 내 목을 끌어안고 키스했다. 나도 그녀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 혀를 받아들이며 응답했다.
"영도야! 참말로 니를 다시 만나고 싶었다."
귀에 대고 속삭이는데 뜨거운 숨결이 느껴졌다. 내 몸도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자, 우선 오늘 할데를 펴 보고 ......"
그녀는 짐짓 큰소리를 내며 내게 눈을 찡긋하고 방문을 건 뒤에 조심스럽게 이부자리를 폈다. 그리고는 옷을 벗기 시작하며 내게 눈짓을 했다. 나도 옷을 벗었다.
"소리 안나게 조심하자이. 맹인들은 청각이 훨씬 예민한기라."
그녀의 속삭임에 따라 우리는 살금살금 옷가지를 벗어놓고 이불을 완전히 덮어썼다. 나도 갑자기 눈이 먼것처럼 암흑속에 갇혀 버렸지만 이미 뜨거워진 두몸은 엉켜 있어 우리 모두 장님이 된들 불편할 것이 없었다.
봉긋 솟아있는 그녀의 젖꼭지를 번갈아 빨며 보지에 손가락을 넣자 그녀도 벌떡 선 내 자지를 손바닥으로 훑으며 "아 ......!" 하는 신음을 뜨거운 입김과 함께 내 귀로 보냈다.
아무래도 우리는 서둘러야 했다. 내가 그녀의 위로 몸을 포개자 그녀는 자지를 잡아 이미 질퍽해 있는 그곳으로 인도했다. 나는 엉덩이를 들이 밀었다.
"아 --- !"
나는 작은 소리였지만, 끝내 신음소리를 내고 말았다. 그녀의 보지는 또 내 자지를 잘근잘근, 아니 그보다는 훨씬 강도가 높게 주물러대고 있었다.
"누부야 보지가 막 나를 깨문다."
나는 자지만 꼽은 채 움직이지 않고 어둠속에서 속삭였다.
"니꺼도 막 벌떡거리네."
"누부야가 너무 세게 물어대이 그렇제."
"여자들 속은 다 그런거 아이가?"
그녀의 보지는 확실히 특별하다. 그런데 그녀 자신은 오히려 그런 사실을 별로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다른 남자들은 그런 소리 안하드나?"
"내는 ...... 사실 별로 많이 안해봤다. 세명, ...... 그러이 영도 니가 네번째지."
그녀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속삭였다.
"여자가 이런 말 하는거 싫제?"
"아이다. 내도 그런데 뭘 ......"
나는 여전히 엉덩이를 움직이지 않고 그녀 보지 속살의 강렬한 애무를 즐기고 있었다.
"처음 상대는 말도 한마디 못나누고 헤어졌고, 다른 남자들은 그런 말을 하더라. 뭐, 긴자꾸? ...... 또 뭐, 보지 속이 너무 뜨겁다꼬 ...... 나는 그기 다 내 듣기 좋으라꼬 하는 말인줄 알았다. 참말로 내가 다른 여자들캉 다르나?"
"하모! 남들은 이리 뜨겁고 꽉꽉 깨물지는 몬한다. 참말로 누부야 보지가 특별한갑다."
"니 좆도 특별하다. 내는 그리 큰것도 처음 봤고, 그리 힘 좋은 것도 처음 봤다. 그러이 다른 아들도 확 가뿌맀제. 그런데 세명하고 한 뒤에도, 그날 니는 내한테 두번 쌌제?"
깜깜한 이불 속에서 우리는 이런 말을 속삭이며 키득거렸다. 나는 엉덩이를 움직였다. 역시 금방 사정을 할 것 같아 나는 딴 생각을 하려 애썼다.
"아, 아아! ......"
참으려 하면서도 그녀의 신음이 조금씩 커졌다. 그보다 더 신경이 쓰이는 것은 이불이 풀썩거리는 소리였다. 그녀도 그것이 거슬렸는지 내 동작을 멈추게 했다.
"이불을 걷어뿌자."
우리는 다시 서로의 알몸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내 얼굴을 당겨 키스를 하더니 머리맡의 수건으로 보지와 자지를 닦고 다시 그 수건을 입에 물었다. 나도 그 의미를 알 수 있었다. 그녀의 분비액으로 밑에서는 질컥거리는 소리가 났고, 신음도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음, 음, 으음! ......"
목졸린 사람이 낼 것 같은 신음을 그녀가 내는 중에 나는 사정했다. 속도를 최고로 올리는데도 그녀의 보지 속살이 나를 잡고 놓지 않으려 하는 것같은 졸림을 느낄 수 있었다. 사정이 다 끝났는데도 속살은 더 맹렬히 움직여 그 자극으로 움추러 들었던 자지가 다시 커지고 있었다.
나는 다시 엉덩이를 움직이려 했다.
그때 노크소리에 이어 잠긴 문을 열려는 삐걱거림이 있었다. 우리는 급히 몸만 떼고 당황해서 다음 행동을 취하지도 못했다.
"문이 잠겼나?"
"어 ,,,,,,! 와? ...... 잠깐, 내 곧 나갈께."
곧이랬지만 허둥지둥 옷을 챙겨 입고 금지가 방문을 열고 나가는 시간이 꽤나 오래 걸린 것 같았다. 언니를 만나러 간 그녀는 좀체로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발각됐다는 낭패감으로 겁이 나는 중에 문을 살짝 열고 귀를 귀울였다. 자매의 두런거림은 들려오지만 대화내용은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러나 차츰 언성이 높아졌다.
"쟈는 안된다카이 ......"
"너 언니하고 약속한거 잊었나? 그때 거짓말 한기가?"
언니도 화가 났는지 사투리 억양이 나왔다.
"쟈는 언니캉 안 맞는단 말이다."
그 다음 말은 다시 안들렸다. 둘다 목소리가 작아진 것이다.
그래도 두런거림은 한참 더 이어졌다. 안방문이 열리는 기척에 나는 급히 살짝 열었던 문을 닫고 방 한가운데 우두커니 서 있었다.
"영도야, 내 부탁 좀 들어줄래?"
생글생글 잘 웃던 그녀의 표정은 간곳 없고 잔뜩 찡그린 얼굴에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말했다.
"뭔데 ......?"
그녀는 더욱 표정이 굳어지며 머뭇거리다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니, 우리 언니캉 한번 해줄래?"
"뭐로 ......?"
나는 거의 짐작은 했지만 더 확실하게 알아야 했다.
"방금, ...... 우리가 했던거 ......"
그녀는 얼굴이 붉어지며 눈물이 맺히자 고개를 돌리며 눈을 훔쳤다.
"내 잘못이다. 니캉 이방에서 그러는게 아닌데 ...... 언니는 사실 불쌍하고 그 전에 서로 약속한 것도 있어서 ...... 아, 정말 우야마 좋겠노? ......"
그녀 잘못만이 아니다. 나도 공범인 것이다. 그런데 지금 금자 혼자만 곤경에 처해 있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할께." 라고 하자 그녀는 "참말로 ......?" 라며 눈을 크게 떴고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고맙다!" 라며 내 목을 끌어안고 얼굴을 부볐다.
언니에게 내 의사를 전하러 간 금지가 다시 돌아왔다.
"니 목욕, 아니 샤워락도 하자."
그녀에게 이끌려 욕실로 갔다. 옛날집이건만 욕실은 꼽추할매네 집처럼 양변기와 욕조가 놓여 있었고 수도꼭지를 틀자 더운물이 나왔다.
"자, 벗자. 내가 씻겨 줄께."
그녀가 옷을 벗길래 나도 알몸이 되었는데 그녀는 브래지어와 팬티는 벗지 않은채 내 몸에 비누칠을 해 주었다. 괜히 창피한 기분도 들었지만 나는 그녀의 손에 몸을 맡겨버렸다.
그녀는 나를 씻어주면서 간략하게 가족과 특히 그녀의 언니 이야기를 해주었다.
금지네는 2남2녀, 금순이가 24살로 첫딸이고 오빠 둘이 있는데 다 대구에서 고교를 나와 서울의 대학에 입학했고, 큰오빠는 지금 군복무중이라고 했다. 금지도 대구에서 다니려 여고 입학시험을 쳤으나 2차까지 다 떨어져 읍내 고교에 다니게 되었다고 한다.
금순이는 영자 누나처럼 어릴 때 마마를 심하게 알아 곰보와 함께 눈이 멀었지만 일찍부터 대구에서 한 기독교단체가 운영하는 맹아학교를 다녔다. 총명한데다 배우기를 좋아해 그녀는 학교성적도 좋았고, 병신이라는 것조차 자각하지 못할만큼 즐겁고 보람찬 시절이었다. 하지만 당시 우리나라에는 맹인에게 고교 이상의 과정을 배울 수 있는 커리큘럼이 없었다.그녀는 고교를 졸업하면서 미국유학을 꿈꾸어 왔다.
그런데 모교에서는 그녀를 점자선생으로 채용했다. 맹아학교에서 다른 학과는 정상적인 교사가 가르치지만 점자는 같은 맹인이 훨씬 잘 가르쳤다. 그녀는 자신과 처지가 같은 다른 맹인들을 가르치는 것에도 즐거움과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한 3년을 보내는 중 그녀의 생활에 혼란이 찾아왔다.
열렬한 구애자가 둘씩이나 나타난 것이다. 하나는 학교 이사장인 목사의 아들이었고, 또 한 남자는 같은 맹인인 점자선생이었다.
목사의 아들은 무척 친절하고 자상한 남자였다. 그녀를 음악회나 영화관, 바닷가에까지 데리고 가 소리나 감촉, 냄새만으로 느낄 수 없는 풍경을 자세히 설명해주기도 했다. 그가 "사랑한다." 며 첫키스를 했을 때 그 입술을 받아 들이며 그녀도 사랑을 느꼈다.
그러나 그녀는 또 그를 경계하고 확고하게 선을 그었다.
이미 읽어본 많은 소설 속에는 사랑의 아름다움뿐 아니라, 남자의 욕망과 농락과 배신에 대한 사례도 많이 나와 있었다. 또 주위에서 실제로 맹인여인들이 정상인들과 사귀다 어떻게 비극을 맞게 되는가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들어왔다.
한편 같은 맹아학교의 고교과정에 점자를 가르치는, 그녀보다 7살이 많은 맹인은 그녀에게 정식으로 청혼했다.
한 교무실에서 함께 일하며 그들은 문학이나 음악에 대해서도 자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어느날 저녁, 둘은 학교 기숙사 앞의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처음으로 그녀의 손목을 잡으며 그는 좀 떨리는 소리로 말했다.
"박선생, 나 박선생 얼굴을 봐도 돼요?"
그녀는 잡힌 손으로 그의 손을 꼭 쥐어 허락을 표시했다. 맹인들간에 본다 는 것은 만진다는 의미다. 그는 조심스럽게 두손을 내밀어 그녀의 얼굴을 더듬었다. 안경을 벗겨내고 눈두덩을 엄지 지문으로 쓸어보고, 두 귓바퀴와 오뚝한 콧날, 입술까지 훑어갔다. 점자를 읽는 예민한 촉감은 그녀의 곰보자국도 알았을 것이다.
"금순씨, 나와 결혼해 주시겠습니까?"
이제는 떨지도 않고 그는 정중하게 말했다. 오히려 금순이가 떨면서 대답했다.
"자신이 없어요."
그녀는 사랑과 결혼이라는 떡을 양손에 든 셈이었다. 그러나 그 어느쪽도 입에 넣지는 못했다.
버림받을 것이 뻔한 사랑에 빠지지 않으려고 그녀는 목사 아들의 키스와 애무에 몸을 떨면서도 더 깊이 빠져들지 않으려고 몸부림쳤다.
점자선생의 청혼을 감격으로 받아들이면서도 맹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불편하고 힘든 것인가를 매일 새롭게 느껴가는 생활에서 결혼, 그것도 같은 맹인끼리라는 것이 더욱 앞날을 암담하게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정말 자신이 없었다.
두남자 사이에서 그녀는 항상 이율배반의 곤혹감에 빠지며 갈등과 혼란만 더해갔다. 차라리 그들을 몰랐을 때, 그저 배우거나 어린이들을 가르치기만 하는 것이 더욱 행복했다.
그녀가 갈등과 혼란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중 점자선생이 자동차에 치어 죽었다. 그녀가 생각할 때 그것은 단순한 교통사고가 아니었다.
맹인이 동반자도 없이 만취한 채 생소한 거리를 걷는다는 것은, 개헤엄이나 겨우 치는 사람이 한강을 헤엄쳐 건너겠다고 나서는 것만큼 무모하고 위험한 일이다. 그녀의 소극적인 반응이 좌절감이 되어 그를 거리로 내 몬 것이다.
그녀는 목사 아들도 다시 만나지 않았다. 한동안 자책감과 후회에 빠져 있던 그녀는 실제로 자살을 기도했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심한 우울증으로 반년이상 정신병원에서 치료까지 받은후 집으로 돌아왔다.
장님에 곰보라는 불행 속에서도 좋은 가정환경과 자신의 총명함으로 밝게 살았던 그녀는 사랑과 결혼이라는 문턱을 넘지 못하고 이렇게 허물어져 버린 것이다. --- 금지가 들려준 박금순의 지난날이었다.
가정의 품에 돌아와 그녀는 차츰 안정을 찾아갔다. 가족은 모두 그녀가 다시 밝은 생활을 찾도록 최대한 배려했고 금지도 언니의 좋은 말벗이었다.
하루는 금지가 빠구리를 하고 온날 언니는 여자의 직감인지, 맹인 특유의 예민함 때문인지 그녀에게 "너 섹스 하고 왔지?" 라고 물었다. 원래 솔직한 성격에다 서로 감추는 것이 없는 자매 사이라 금지는 순순히 시인했다.
"그걸 하면 기분이 어떠냐?" "남자는 실제로 어떻게 하느냐?" 는 식으로 그녀는 꼬치꼬치 물어왔다. 별로 숨기지 않고 자신의 느낌대로 털어놓던 금지가 불쑥 "언니도 한번 해보마 알꺼 아이가?" 라고 했다.
"얘가 무슨 말을 그렇게 ......?"
금순이는 펄쩍 뛰며 대화를 끊었다.
"아이, 남자 냄새! ...... 너 오늘 또 섹스했지?"
"히히, 그리 돼 삤다."
며칠 뒤 비슷한 대화가 벌어졌다. 금순이는 한동안 잠잫고 있다가 나직히 말했다.
"나는 앞으로도 사랑이나 결혼 같은 것은 절대로 생각조차 안해! 하지만 ...... 여자로 태어났는데 ...... 한번이라도 그걸 경험하고 싶어."
금지가 대꾸를 못하고 있는데 언니가 말을 이었다.
"네가 좀 도와줄래?"
"뭐를 ......?"
"나는 외출도 거의 않고 누굴 사귀지도 안찮아. 나하고 섹스할 상대를 네가 하나 골라줘."
역시 나직한 어조로, 지나가는 말처럼 하지만 금지는 가슴이 뭉클했다. 언니의 아픔과 절실함이 그대로 전해졌기 때문이다.
"오야, 좋다! 어떤 남자를 원하노?"
"아무나 ...... 나는 그저 남들이 맛있다는 과일, 나도 맛 한번 보는 정도니까 ...... 다만 너무 천박하지 않고 다시 집적거리지 않을 상대면 돼. 참, 네가 경험한 남자라면 그런 것이 보장되겠지."
"오늘 상대는 ...... 언니 관점으로는 좀 천박해서 안되겠다."
"너무 좋아서, 아까워서 그런건 아니고 ......?"
금순이가 빙긋 읏으며 농담조로 말했다.
"뭐라카노? 내사 언니한테만 좋다카마 참말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나 남편이라도 언니한테 내줄끼다. 언니가 내한테 얼마나 소중한데 ......"
당시 그 말은 금지의 진심이었다. 그런데 오늘 금순이가 나를 그 상대로 지목했다는 것이다.
"내는 니가, ...... 언니는 아직 숫처녀라서 니 물건이 너무 커서 안된다캤는데 언니는, 그 말을 안 믿고 니가 어리고 순진한 것 같아 더 좋다 안카나. 할 수 없다. 하지만 좀 부드럽게 해 줘라. 우리 언니 참 맘이 여리데이."
나는 금지에 이끌려 금순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이부자리를 펴놓고 누워 있었다.
"영도 왔다. 참, 아부지 어무이 올 때까지 한시간도 안 남았다. 그전에 빨리 끝내야 될끼다."
"혹 내가 그때까지 안나가면 네가 적당히 말해서 붙잡아놔야 해."
금순이가 조용히 말하는데 금지는 언니의 귀에다 뭐라 속삭이고 방을 나갔다.
첫날밤을 치루는 신랑 색시가 이럴까, 나는 유난히 가슴을 두근거리며 금자가 나간 뒤에도 방 한가운데 엉거주춤 서 있었다.
"영도씨, 이리 와 보렴."
내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그녀는 나직히 말했다. 이름에 씨를 붙이는 것은 처음 듣는 말로 좀 쑥스러웠다. 닥아가자 그녀는 내 손과 얼굴을 다시 어루만지고는 좀 떨리는 소리로 속삭였다.
"아주 옷을 벗고 들어올래?"
내가 옷을 벗는동안 그녀도 잠옷을 벗었다. 속에는 브래지어나 팬티가 없어 우리는 곧 다 알몸이 되었다. 그녀가 들추는 이불 속으로 들어가 나란히 몸을 뉘었다.
"키스 해줄래?"
나는 이미 배우고 실행했던 것처럼 부드럽게 그녀의 입술을 덮었다.
입뿐 아니라 그녀의 머릿결, 피부에서 제각기 다른 향기가 나고 있었다.혀를 주고받는 중 내 오른손은 그녀의 목덜미에서 젖가슴, 아랫배, 엉덩이들을 훑어 갔다. 금지보다 체격이 큰 것처럼 젖통이나 엉덩이도 풍만했고 살결도 부드러웠다.
"아 --- !"
입을 떼며 큰 숨을 내쉰 그녀의 한손도 내 얼굴에서 목덜미, 가슴, 아랫배를 더듬어 온다.
"한번 만져봐도 되지?"
대답을 하기 전에 그녀의 손은 벌떡 선 내 자지에 머물렀다.
"어머나!"
손바닥으로 감싸쥐며 그녀는 낮지만 비명같은 소리를 지르며 벌떡 일어나 앉았다. 이제 두손으로 쥐어보고 훑어가며 나름대로 크기와 굵기를 가늠하는 것 같았다.
"이런게 들어간단 말이지? 너무 하다!"
"금지 누부야도 했는데 ...... "
그녀를 안심시킨다는 생각에 불쑥 말이 튀어나왔지만 말을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나를 탓하지 않았다.
"하기야 ...... 그러니까 처음에는 고통스럽다고 하겠지? ,,,,,, 자, 나는 어떻게 해야되지?"
"그저 다리만 좀 벌리주마 ......"
"아 참! ...... 아까 금지가 일러 줬는데 ......"
그녀는 타올을 집어 자기 엉덩이 밑에 깔았다.
그녀가 가랭이를 벌릴 때 그녀의 보지 위에 손가락을 대 보았다. 보지는 이미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입구를 훑으며 공알에 손을 대자 "흐윽!" 하며 그녀는 다리를 모았다. 나는 그대로 자지를 꼽을까 하다가 젖꼭지를 입에 물었다. 자녀의 체형이 비슷해서인지 그녀의 젖꼭지도 봉긋 솟아 있었다.
"아아!"
부드럽게 물며 혀를 돌리자 그녀는 내 머리를 감싸며 작은 신음을 냈다. 젖을 번갈아 빨면서도 내 손은 보지에 머물러 공알을 부드럽게, 그러나 속도는 조금씩 빨리 하며 문질러 갔다.
"아아! ...... 내가 왜 이래? ...... 아아! ...... 너무 이상해! ...... 영도씨, 빨리 넣어줘."
그녀는 내 자지를 잡아 자신의 보지 쪽으로 이끌었다. 그러나 질구 앞에 다다르자 갑자기 그녀는 다리를 오무려버렸다. 자지는 문을 찾지 못하고 대가리에 떨의 까찔까찔한 감촉이 느껴져 왔다.
"좀 더 벌리 주이소. 그라고 힘을 빼이소."
경미의 몸에 처음 들어갈 때 다른 여자애들이 조언해주던 말이 생각나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밀착된 가슴에서도 내 등을 휘감고 있는 팔에서도 그녀의 떨림이 내게 전해져 오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녀는 내말대로 해 주었다.
이제 자지는 입구를 제대로 찾았다. 그런데 손가락 한마디쯤이 들어가자 역시 막혀 있다. 조금 뒤로 뺐다가 좀 더 힘을 주어 밀어 넣었다.
"으음 ......!"
이빨 사이로 새어 나오는 것 같은 소리가 아주 낮게, 그러나 좀 길게 이어졌다. 그러나 그녀는 결코 비명을 지르지는 않았다.
아아, --- 내가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그녀의 보지 속살도 금지처럼 내 자지를 주물러 댔다. 그러나 나도 비명을 지르지는 않았다. 또 하나 나를 옥죄는 것은 내 등을 휘감은 그녀의 팔이었다. 여자의 팔힘이 그리 셀까, 놀랄 정도로 나는 숨이 막혀 왔다.
몸은 움직이지 못하건만 보지 속에 들어간 자지는 그 옥죄임에 반발하듯 벌떡거렸다. 자지의 움직임에 박자를 맞추는 것처럼 잠시 그녀의 "으음, 으음 ...... " 이라는 신음이 이어졌다.
나는 엉덩이를 움직였다. 보지 속살은 계속 자지를 비벼대며 나에게 항복을 재촉하는 것 같았지만 조금전 한차례 사정을 한 때문인지, 나는 좀 더 버텨낼 자신이 있었다. 조금씩 속도와 강도를 높였다.
"아아, 영도씨! 좀 천천히 해줄래? ...... 정말 너무 아프군."
얼굴을 들어보니 그녀는 웃음을 짓지만 얼굴 전체로는 찡그린 표정이었다. 나는 아예 동작을 멈추었다.
"하아 --- "
그녀가 숨을 크게 내쉬는중에도 보지 속살은 계속 움직였다. 화답하듯 자지도 그 속에서 벌떡거렸다. 향긋하면서도 부드러운 그녀의 품속에서 그 느낌은 정말 좋았다. 그러나 가쁜 숨이 진정되듯 보지도 자지도 경련이 가라 앉았다.
"다시 움직여 봐. 이제 참을 수 있을 것 같아."
그녀가 먼저 내 엉치뼈를 들먹거렸다. 나는 다시 엉덩이를 움직였다. 쾌감이 점점 고조되며 어쩔 수 없이 속도가 빨라졌다. 그리고 다른 여인들과 했던 것처럼 그녀의 몸에 사정했다.
"어머나! 이게 ......?"
숨이 점점 가빠지던 그녀는 첫 정액이 튀어 나오자 나를 다시 세게 끌어 안으며 엉덩이를 들어 올렸다. 그러나 사정이 끝난 내가 엎어지자 그녀도 감았던 팔을 풀며 시체처럼 사지를 뻗어 버렸다.
보지 속살이 다시 움직이고 있었다. 그 자극으로 자지도 조금씩 부푸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다시 그녀를 찔러대는 것은 너무 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자지를 빼자 역시 피가 묻어 나왔다. 그리고 그녀가 아까 깔아둔 타올에도 내 엄지손가락만한 핏물이 얼룩져 있었다.
그녀는 두손으로 눈을 가리고 있었다. 보이지도 않는 눈을 가린 것은 눈물 때문이었다. 손으로 가렸어도 눈물은 양 귓가로 흘려 내렸다.
"누부야, 기분 안 좋아예? 어디 아파예?"
보지에서는 정액이 꿀럭꿀럭 나오고 있는데 눈을 가린 채 아무 움직임이 없는 그녀가 걱정스러워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 아니! ...... 나 좋았어. 상상했던 것보다 더 ...... 고마워, 영도씨."
그녀가 벌린 두팔에 나는 내 몸을 맡겼다.
우리는 옷 입는 것을 서둘렀다.
나는 옷을 입다 그녀를 돌아 보았다. 문득 여인은 옷 입는 자태도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을 돌려 다소곳한 자세로 팬티를 올리고 브래지어를 채우고 다시 잠옷으로 전신을 가리는 그 과정은 하나씩 그 껍질을 벗을 때처럼 역시 매혹적으로 보였다.
저렇게 옷으로 감싸고 있어도 나는 그 보지속, 젖통, 잘룩한 허리, 유난히 희면서도 보드라웠던 피부의 감촉을 모두 내 기억속에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옷을 다 챙겨 입고 나서야 방안을 둘러볼 여유가 있었다. 그녀의 방에는 금지의 방처럼 책상과 옷장이 있었지만 또 바닥부터 천정까지 이어진 큰 책장에 책이 가득차 있었다.
장님도 책을 읽나? ......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다가도 해답을 찾을 수 없어 물었다.
"이기 다 누부야 책이라요?"
"응. 다만 그건 전부 점자책이야."
책을 하나 꺼내 펴보았다. 두툼한 책인데 백지에 점들만이 빼곡히 찍혀 있었다. 그리고보니 책상 위에도 무슨 틀 위에 점이 찍힌 종이가 놓여 있었다.
"이기 전부 글씨라예?"
"그렇지. 맹인들만 볼 수 있는 ...... 아니 맹인에게만 통하는, ...... 우리는 손끝으로 그 글을 읽거든."
신기했지만 자꾸 물어댈 수는 없었다. 그녀의 손에 이끌려 방을 나왔을 때 나는 주눅이 들었다. 금지의 부모가 벌써 집에 돌아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내가 절을 꾸벅했을 때 금지 어머니는 그저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범상하게 대해 주었다. 아마 금지가 적당히 둘러댄 모양이다.
"그래, 금순이가 잘 가르쳐 주더나? 그런데 밤이 너무 늦었잖나? 집에서 걱정하시겠다."
나는 그저 "예." "미리 말하고 와서 괘않아예."라고 얼버무렸고 금지 어머니가 과일과 과자를 담은 접시를 내오는 바람에 쇼파에 다시 눌러 앉았다.
금지 어머니는 보던 TV프로 때문인지 안방으로 들어가고, 조금전까지 빠구리 상대였던 두 여인만 남게 되자 나는 웬지 더 어색한 기분이었다. 금지도 애써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하는 것 같았다.
금순이가 피아노 건반을 열었다.
가볍게 두드리지만 밤이라 그런지 그 소리는 무척 영롱하게 들렸다. 연주를 멈추고도 그녀는 피아노 앞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기 무슨 노래라요?"
박수를 치기도 뭣하고 나는 인사치레처럼 물었다.
"마르티니 곡인 사랑의 기쁨이야."
그녀가 나직히 말했다. 마르티니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사랑의 기쁨>이라는 노래는 바로 전에 우리의 행위와 관련된 곡인 모양이다. 나는 괜히 조금 우쭐한 기분도 들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나는 그 노래를 가사까지 붙여 부를줄도 알게 되었다.
<사랑의 기쁨은 어느덧 사라지고
사랑의 슬픔만 영원히 남았네
눈물로 보낸 나의 사랑아
그대 나를 버리고 갔는가 야속하다
사랑의 기쁨은 어느덧 사라지고
사랑의 슬픔만 영원히 남았네>
곡목은 사랑의 기쁨이지만 그 내용은 온통 사랑의 슬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