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촌리 설화(金村里 說話 ) - 14 > 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본문 바로가기

Hambora Site

금촌리 설화(金村里 說話 ) - 14

이미지가 없습니다.///

금촌리 설화(金村里 說話) - 14



식탁에 앉으며 나는 배고픔이나 식욕보다 오늘 저녁에는 어떤 음식을 먹게될까에 호기심이 쏠렸다.
이미영 선생 댁에서의 저녁식사는 오늘이 세번 째다. 첫날은 계란으로 덮어 씌운 볶음밥이 입안에 들어가면 살살 녹는 옴 라이스, 두번째 만남에서는 바삭바삭하면서도 고소한데 그 안에 고기가 들어있는 돈카스, 모두 나로서는 처음 먹어보는 것이며 또 가장 맛있게 먹었었다. 그런데 오늘의 음식은 비프 스테이크라고 했다.
소고기를 큼직하게 구운 것으로 집에서 제사 때 가끔 먹는 고기적과 비슷했지만 맛은 훨씬 향기롭고 달콤했다. 그녀가 하는대로 나이프와 포크를 써가며 먹는 맛은 가히 신비롭다고 할만 했다.
"새임은 우째 이런 음식을 다 만들 줄 압니꺼?"
"그저 여고 가사시간에 배운 정도야. 음식은 만드는 것도 즐겁지만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이 있을 때 더욱 뿌듯하지. 영도가 맛있게 먹어주니 정말 고맙다."
특별한 음식을 맛보면서 칭찬까지 듣는다는 것도 특별한 경험이다.


식사가 끝난 뒤 그녀는 한동안 머뭇거렸다. 나는 빨리 안방으로 들어가 그녀를 안고 싶었지만 내가 주도하거나 조를 수는 없었다.
"영도야, 우리 차 한잔 할까? 너도 커피 마실래?"
나는 그때까지 커피를 마셔본 적이 없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커피를 몇모금 마실동안 우리는 둘다 말이 없다가 이윽고 그녀가 입을 열었다.
"나 이번 주로 이 학교를 그만 두게 됐어."
나는 가슴이 덜컥했고 그 서슬에 찻잔을 놓칠뻔 했다. 그러나 눈만 크게 뜨고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슬픔은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것 같았다. 나는 다시 이별을 겪어야 하는 것이다.
이별도 거듭되면 무디어지는 것인가. 서울띠기가 떠날 때는 눈물을 울컥 쏟았는데 어떻든 지금은 울음을 참고 버틸 수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눈에 물끼가 번지는듯 하더니 내손을 덮석 잡으며 침통한 어조로 말했다.


"영도야, 미안하다. 내가 정말 너한테 큰 죄를 지었어. 도저히 이 죄를 씻을 길이 없을 것 같구나. 어쩌면 좋으니?"
나에게 물어봤자 내가 해결책을 내놓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 나는 처음 그녀의 말을, 그녀 역시 나처럼 이별이 아쉽거나 섭섭해서 하는 말인줄 알았다.
"정말 너한테 그런 짓을 하지 말았어야 하는데 ...... 아, 그때 정말 내가 미쳤었나 봐. 그런 짓을 저지르고 나만 훌쩍 떠나게 되니 ...... 내 잘못을 속죄할 길도 없어 더욱 더 가슴이 아프구나! ...... 흐윽! ...... 너한테 마저 용서를 구할 길이 없어졌잖아. 아, 정말 어떡하면 좋으니? ...... "
울먹거리던 그녀는 울컥 울음을 터뜨리고는 내 손을 꼭 쥔 채 어깨를 들먹이며 흐느꼈다.
그녀의 우는 모습을 보며 내 마음도 더욱 침통해 졌다. 하지만 그녀가 죄 니, 용서 니 하는 말과 함께 너무 심하게 자책하는 것을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결혼한 사람은 부부끼리만 빠구리 하는 것이 원칙이다. 다른 사람과 한다면 욕먹을 짓이고 그렇기에 비밀스럽게 해야 한다.
하지만 이미영선생과 나 사이에서 그 일은 이미 엎어진 물이고, 그 문제를 제쳐 놓으면 서로가 좋았지 않았던가. 나로서는 감히 꿈도 꾸지 못하고 우러러 보기만 했던 그녀와 직접 빠구리를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꿈결처럼 황홀하기만 했고, 그녀 역시 나와 빠구리를 하면서 "앙, 앙!" 하고 울부짖을만큼 좋아 했었는데 새삼스레 죄 니 용서 니 하는 말은 필요 없을 것 같았다.
"명색이 선생이라며 교직을 천직으로 삼아 왔던 내가, 이렇게 순진하고 나이 어린 제자를, ...... 더구나 현모양처를 당연한 덕목으로 생각해 왔던 내가 스스로 모든 것을 망쳐 버리다니 ...... 나 자신이 너무 밉고 너한테 정말 미안하다. 영도야, 너는 이 충격을 이겨낼 수 있겠니?"


"괘않아예, 선생님. 나는 아무렇지도 않아예. ...... 새임을 다시 못본다는 것은 슬프지만 그래도 견디어 낼끼라예. 나는 괘않아예. 내 걱정은 하지 마이소, 선생님."
나는 자신에게 다짐하듯 또박또박 말했다.
그녀를 다시 못만난다는 것은 가슴이 찢어질만큼 비통한 일이지만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닦지도 않고 울먹이며 말하는 그녀에게 어느새 나는 위로하는 입장이 되어 버렸다.
"너를 처음 이 집으로 유혹해 왔을 때 나는 너무나 절망적이고 혼란스러울 때였단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이 어린 제자를 내 문제에 끌어들였다는 것은 정말 내가 미쳐 돌아갔고 너무 큰 죄를 저지른거야."
울음은 멎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침통한 얼굴로 자신의 아픈 사연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자신이 가르치는 것도 아닌 4학년 남학생을 이집으로 데려오기 두달 전 쯤 이미영은 남편의 불륜을 알았다.
남자가 바람 피우는 것은 그녀도 주위에서 더러 보아 왔다. 자신의 남편도 그런 점에서 꼭 결백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막상 그녀가 직접 겪게 되자 그 배신감의 충격은 너무나 컸다. 더구나 그 전후의 상황들이 유별나서 그녀는 도저히 남편을 용서하거나 스스로를 진정시키기 어려웠다.
남편은 그보다 6개월쯤 전, 뜻밖의 출세기회를 잡아 의기양양해 하며 단신 서울로 떠났다. 그는 아내도 "곧 서울로 전근토록 하겠다."고 떵떵거렸다. 그리고 그 의기양양함의 연장으로 두아이까지 수원에서 한 국민학교 교감으로 있는 자기 아버지 집에 맡겼다.
"앞으로 서울생활을 할텐데 촌놈 소리 듣지 않게 우선 표준말을 가르치겠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서울 전근은 몇달 째 미루어지기만 해서 일단은 남편의 출세를 계기로 그녀만 시골 구석에 외톨이로 남는 형국이 됐다. 갑작스런 변화들이 좀 황당하지만, 전근 문제만 해결되면 다시 가족이 모여 그전 같은 단란한 생활은 계속될 것이다.
전화도 귀했던 시절이라 부부는 일주일이 멀다하고 편지를 주고 받았으며 서로가 글로 상대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을 넘치게 담았었다.


두달쯤 전 그녀는 뜻밖에 서울 갈 일이 생겼다.
도 교육위원회가 주관하는 모범교사 연수회에 참석자로 선발된 것이다. 벽지 교사의 위로차원에서 정기적으로  이어 온 이 행사는 버스 한대 규모의 경상북도 국민학교 교사가 3박4일 일정으로 문교부(지금의 교육인적자원부)도 방문하고 서울의 모법수업 참관, 창경원이나 뚝섬유원지의 관광등으로 일정이 잡혀 있었다.
참가자로 결정되었을 때부터 그녀는 마음이 설레었으나 일부러 남편한테는 알리지 않았다. 깜짝쇼를 하면서 더욱 상봉의 반가움을 나누고 싶어서였다.
첫날 일정이 끝난 뒤 그녀는 주고 받던 편지봉투의 주소를 물어가며 남편의 하숙집을 찾아갔다.
집안 일에는 손끝하나 까딱하지 않던 남편의 방이 얼마나 어질려 있을까, 하숙집 음식은 또 얼마나 부실할까 하는 생각들을 하며 반찬거리를 가득 담은 짐도 가벼웠다. 그러나 그녀는 근 반년만에 만나는 남편의 얼굴을 보는 순간 그 짐을 떨어트렸다.


남편은 밥상을 놓고 젊은 여자와 마주 앉아 저녁을 먹는 중이었다. 불쑥 들어선 아내를 보고 그도 경악했지만 상황을 둘러댈 처지도 못되었다.
그는 런닝셔츠에 파자마 차림이었고 여자는 홈웨어, 언뜻 본 방안은 정갈했다.
그들은 부부처럼 살고 있었던 것이다. 남편이 맨발로 뛰쳐 나왔지만 돌아선 아내를 다시 집안으로 끌어들이지는 못했다.
그녀는 퉁퉁 부은 눈을 가라 앉히느라 꽤 오래 서울의 밤거리를 헤메다 일행이 묵는 숙소로 돌아왔다. 기대에 부풀었던 3박4일 여행은 그녀에게 너무나 참혹하고 비극적인 나들이였다.
집에 돌아오자 그녀를 먼저 맞은 것은 남편의 편지였다. 그녀가 출발하기 전에 보낸 그 편지에는 여전히 아내를 향한 그리움과 사랑이 구구절절이 담겨 있었다.


여행중 그녀는 늘 손수건을 손에 쥐고 있었다. 아무리 참으려 해도, 잊으려 해도 울컥울컥 솟는 감정에 눈물이 쏟아지면 남들 눈치채지 못하게 얼른 그 흔적을 지워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혼자만 있는 이 집에서 이제는 배신의 또하나 징표 같은 그 편지를 보면서도 그녀는 눈물이 나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은 차디차게 얼어 버렸다.
이럴 때 아이들이라도 곁에 있었다면 ...... 그녀는 몸을 떨었다.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춥고 가난한 신세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한때는 집 안에서 남편과 두아이와 오손도손, 밖에서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그 생활에 마냥 행복한 기분에 젖기도 했었는데 ......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그 모든 것이 허상이나 물거품처럼 그녀 앞에서 사라져 버렸고 남은 것은 초라한 자신 뿐이었다.
그녀는 우선 남편의 배신에 원망을 넘어 분노했다. 자신의 신세에 대한 한탄도 이어졌다. 그러나 마지막 과녁은 5.16 쿠테타였다.
그래, 이렇게 내 소박한 꿈이며 생활이 모두 엉망이 된 것은 바로 그 빌어먹을 5.16 때문이야. ...... 직접 화를 내거나 욕설을 할 수도 없는 추상적 대상을 향해 그녀는 맹렬한 원망과 분노를 보냈다.


교육자의 3남1녀중 막내딸인 이미영은 소녀시절을 순탄하면서도 다복하게 보냈다.
아버지는 고지식하지만 또 성실하고 너그러운 남자였으며 어머니는 딸의 눈에도 현모양처의 표상 같았다. 집안에서는 큰소리 한번 난적이 없으며 항상 평온하고 정감이 넘치는 스위트 홈이었다.
그런 환경의 영향 때문인지 그녀도 아버지나 오빠처럼 전혀 망설임 없이 선생의 길을 택했으며.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대구의 한 국민학교에서 교사생활을 시작했다. 그녀는 이 천직을 정말 좋아 했으며 그녀의 용모나 교양은 늘 주위에서도 칭찬과 부러움을 받아왔다.
그렇지만 그녀는 큰 욕심을 내거나 억척스럽지는 않았다. 늘 그녀가 보고 자란 환경처럼, 그저 좋은 남자를 만나 사랑하면서 아들딸 낳고 행복하게 산다는 소박하면서도 서민적인 평범한 소망을 갖고 있었다.


권병찬이라는 남자와 결혼하고 남매를 차례로 낳으면서 그녀의 꿈은 별로 흐트러짐 없이 이어 지는 것 같았다. 그녀의 남편은 아버지와 사범학교 동기동창의 둘째 아들로 경북도청의 공무원이었고 그녀도 대구도심의 국민학교에 근무하며 맞벌이를 하게되니 직장이며 경제적으로 모두 안정되어 있었다.
남편은 좀 덤벙대는 것 같기도 하지만, 생활에 빈틈이 없어 오히려 꽁생원처럼 보이기도 했던 아버지에 비해 호방하고 진취적인 것이 매력으로 보이기도 했다.
그저 평탄했던 그들 부부의 생활에 갑자기 변화가 온것은 그 근원을 따지자면 5.16군사혁명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소박하고 평범한 행복을 지향하던 소시민의 가정이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혁명의 소용돌이에 휩쓸린 것이다.


1961년 5월 16일 새벽, 일단의 군인들이 봉기한 쿠테타는 정권을 장악하는데 성공했고 대권은 민정이양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러면서 사회적으로도 큰 변화들이 이어졌지만 권병찬과 이미영 부부 같은 서민이 직접 그 영향을 받으리라고는 전혀 생각치 못했다.
그렇기에 새로운 변화들은 그 결과가 좋건 나쁘건 일단 그들 부부에게는 충격으로 받아들여 졌다.
첫 변화는 권병찬이 부정부패 공무원의 명단에 든 것이다.
쿠테타세력은 일단 자기들 외의 무리를 구악으로 규정하고 구악일소라는 구호를 내세우며 여러 분야에서 숙청작업을 벌였다. 정치인들은 정치활동을 금지했고, 깡패들에게는 나는 깡패입니다라는 피겟을 들려 거리를 행진케 했고, 부자들은 부정축재자로 몰았으며, 공무원 조직에도 부패공무원에 대한 대청소를 벌였다.
대청소라는 표현답게 부패공무원 솎아내기는 장,차관등 고급공무원에서 말단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이어졌고 그  빗질에 경력 7년차의 지방공무원인 권병찬도 휩쓸리게 된 것이다.


당시 공무원 사회의 뇌물이란 거의 관행처럼 있어 왔다. 그중에 권병찬이 유별나게 돈을 밝히거나 부패에 물들어 있었다고 말할 정도는 아닐 수도 있다.
다만 겉으로 보기에 호방하게 보였던 그의 성격 탓에 몸조심하지 않고 덥썩덥썩 받았던 것이 이럴 때 체한 셈이다. 그래도 구속이나 파면까지는 가지 않고 벽지의 군청으로 좌천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는 세상을 원망하고, 자신의 뇌물을 상납받은 상사며 함께 나누어 쓴 동료들을 싸잡아 욕하면서 심한 좌절감에 빠졌지만, 이미영은 살아가며 겪게 되는 역경의 하나로 치부하며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오히려 남편 따라 벽지의 학교로 전근을 온 뒤, 도시의 생활과는 또 다른 시골의 순박하고 전원적인 분위기에 빠지며 훨씬 오붓하고 차츰 정도 들어가는 중이었다.
그런데 그들의 생활에 또하나의 큰 변화가 왔다. 권병찬의 숙부가 내무부(현재의 행정자치부) 장관에 발탁되며 그도 그 줄을 타고 출세의 길로 접어들게 된 것이다.
"거 봐! 내가 이런 촌구석에서 썩을 놈이야? 그렇기에 인생은 새옹지마라니까."
권병찬은 세상을 다 얻은듯 한껏 의기양양해서 으스대며 서울로 떠났다. 사실 그의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지다 다시 솟구친 것 같은 변화는 5.16이라는 격변에 자신도 모르게 휩쓸렸기 때문이지만 당시 시대상의 특성 때문이기도 했다.
 
5.16 쿠테타가 일어났을 때 주모자인 박정희는 44살, 쿠테타의 주축이었던 육사 8기생들의 리더격인 김종필은 35살이었다.
그들은 총칼로 대권을 잡았지만 아직 나라 전체를 경영할 능력은 없었다. 민정이양이라는 정치적 수순을 밟으며 정권을 계속 쥐기 위해서는 주체세력을 내세우더라도 그들이 바로 어제까지  구악이라고 몰아부쳤던 기존세력과도 손을 잡아야 했다.
그래서 김종필이 앞장서 공화당을 사전조직하면서도 정구영, 윤치영, 김성곤등 자유당 시절에 득세했던  닳고 닳은 정지꾼들을 영입해야 했고, 행정분야 역시 청년장교들을 중앙부처의 장관이나 청장으로 앉히기도 했지만, 설사 도덕적으로 흠이 있더라도 일처리를 제대로 할 수 있는 테크너클렛이 필요했다.
그렇게 그들이 구악이라고 몰아부쳤던 기존세력과 손을 잡으며 박정희는 전대통령이었던 윤보선을 불과 30만표 차이로 누르고 민선 대통령에 당선되며 집권연장에 성공했다. 다소 여유가 생긴 쿠테타세력은 이제 여기저기에 자기 사람들을 심는데 열중했다.
당시 도장학사였던 권병찬의 숙부 권승호가 일약 내무부 장관으로 발탁된 것도 단지 박정희와 대구사범 동기동창이라는 인연 때문이었다.


그 숙부의 꽁무니를 잡고 권병찬도 직급이 일약 3단계나 뛰어 오른 내무부의 과장자리를 맡았다. 그 무렵 상식을 넘어선 별스런 일들이 비일비재했기에 권병찬의 출세는 부러움은 살지언정 비판의 대상도 되지 못했다.
그런 세상이니 그의 아내인 벽촌 국민학교 교사를 서울로 전근시키는 것도 손바닥 뒤집듯 쉬운 일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뜻밖의 장애가 생겼다. 그녀의 전근에 브레이크가 걸린 것이다. 굳이 원인을 따지자면 벼락출세로 아직 갈피를 못잡던 권병찬의 치졸함과 경망스러움 때문이었다.
"...... 아니, 부탁한지 벌써 일주일이 됐는데 아직 아무 조치도 안했다는거요. 우리 장관님이 직접 말씀하신 것을 이렇게 무시하다니 ...... 당장 당신네 국장 바꿔!"
권병찬은 나이도 경력도 자신보다 많고 같은 중앙부처 과장인 문교부 관리에게 호통을 쳤다. 그는 국장에게도 숙부인 내무부 장관을 들먹이며 재촉을 하고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이미영의 전근에 관련된 서류는 이미 작성되어 국장석에 놓여 있었고 국장도 별 검토 없이 결재를 할 참이었다. 그러나 그 전화를 받게되자 국장은 다시 그 서류를 꼼꼼히 보고 서랍에 처박아 버렸다.


다시 일주일이 지나도록 일에 진전이 없자 권병찬은 숙부에게 또 한번 부탁을 했고, 권승호 장관은 직접 문교부 장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일개 국민학교 교사의 전근문제를 장관끼리 청탁한다는 것은 당시로서 너무 희귀한 일이었다. 문교부 장관은 담당국장을 불렀고, 국장은 그 내용을 보고하면서 내무부 장관 조카의 불손함도 덧붙였다.
"원참! 잉어가 뛰니 망둥어도 뛴다더니 ...... 촌놈들이 너무 설치는구만."
장관은 국장에게 서류를 가져오게 하더니 면전에서 찢어버렸다.
"앞으로 그 교사는 아무데도 못 옮겨! 이웃학교도 안돼! 내가 이 자리에 있는 한은 ...... "
당시의 문교부 장관은 일제시대부터 문교부에서 근무해오며 차근차근 승진해온 정통관료였다. 5.16이 일어난 후에 장관에 부임했지만 풋내기들이 총칼의 힘으로 득세하는 것에 늘 아니꼬움을 갖고 있었는데 이런데에서 그 불쾌감이 엉뚱하게 발산된 것이다. 특히 지금 내무부 장관이라는 자도 얼마전까지는 그의 발치에 자리잡은 교육공무원 아니었던가.
이렇게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격으로 이미영의 전근문제는 장관끼리의 알력으로까지 변모하면서 단절되었다가 거의 반년이 지난 뒤에 두 장관이 화해를 하면서 싱겁게 해결되었다.
그리고 그 지연된 시간속에서 권병찬은 현지처를 만들듯 서울에서 젊은 여인과 동거를 했고, 그것을 알게된 이미영은 그전이라면 상상도 못했을 어린 제자와의 간통으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그날 너를 우리집에 오라고 한 뒤에 얼마나 내 마음이 착잡했었는지 몰라. ......제발 오지 않거나, 우리집을 못 찾았으면 ...... 네가 왔을 때도 그냥 저녁만 먹이고 보내야겠다고 작정했다가 다시 마음이 흔들리고 ...... 그렇게 갈등을 겪다가 결국 너를 유혹해서 일을 저질렀으니 ...... 너를 보내고 나서 정말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단다. 사실 남편의 부정을 알았을 때보다 내 마음의 상처는 더 컸었어."
나는 가슴이 뭉클하면서 그녀의 울던 모습을 떠 올렸다.
우리가 두번째 만났던 날, 그날 나는 이집에서 이미영선생과 아예 긴밤을 같이 보냈다. 한밤중 이상한 기척에 잠이 깼을 때 그녀는 알몸인 채 내 옆에 엎드려 울고 있었다. 애써 소리를 죽이려 하건만 어깨를 들먹이는 것과 함께 "흐윽! ...... 흐윽!" 하는 소리가 배어 나왔다.
"새임요, 와 이라예?"
깜짝 놀란 내가 그녀를 흔들었으나 그녀는 아무 대꾸도 없이 오히려 울음소리만 커지더니, 한참을 그렇게 울고나서 눈물의 범벅이 된 얼굴로 내게 미소를 보내며 말했었다.
"사람은 가끔 울고싶을 때도 있는거야. 그럴 때 실컷 울고 나면 몸도 마음도 가뿐해지지."
아, 그녀는 나를 만날 때마다, 그러니까 나와 빠구리를 할 때마다 또 혼자서는 눈물을 흘렸던 것이다. 나는 그저 황홀함의 여운만 즐기고 있었는데 ...... 새삼 그녀에게 미안했고 그녀의 불행하게 얽힌 사연들로 내 가슴도 아팠다.


그런데 이미영의 심리적 갈등은 더욱 복잡하게 이어졌다.
월요일에 돌발적으로 어린 제자와의 간통을 저질르고 후회와 자책으로 번민하던 그 주말에 남편이 서울에서 내려왔다. 불륜이 탄로난 후 남편은 계속 사죄와 변명의 편지를 보내고 학교로도 전화를 걸어왔지만 그녀는 답장은 물론 통화도 제대로 하지 않았고 그 사건 후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한 것이다.
권병찬은 아내 앞에 진짜로 무릎을 꿇고 손바닥을 비비며 용서를 애원했으나 그녀는 냉랭했다. 하지만 그는 아내의 마음을 돌릴 자신이 있었다. 그는 아내의 약점을 알고 있었으며 자신은 비장의 무기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좆을 휘두르는 것이다.
이미영은 단아한 용모나 조용한 성격과 달리 내면적으로 색기가 넘친다고 할만큼 뜨거운 열정을 가진 여인이었다.  이런 점은 그녀 자신은 물론 남편도 미처 깨닫지 못했던 그녀의 육체적 특성이라고 할만 했다.
수줍고 아프고 때로 귀찮기도 했지만, 섹스를 그저 결혼한 부부의 당연한 행위며 자식을 낳기 위한 절차 정도로만 생각했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밀려온 오르가즘에 그녀는 "앙앙!" 소리를 지르며 울부짖고 남편을 할퀴며 몸부림을 쳤다.
그후 그런 절정감은 서너번의 섹스에 한번 쯤은 꼭 그녀를 엄습해 왔으며, 한차례 환희와 쾌락의 폭풍이 지나고 나면 일상생활에서 남편에 대한 사소한 불만 같은 것도 함께 휩쓸려 사라지고 새롭게 남편에 대한 애정과 경외감까지 갖게되는 것이다.


잠자리에 들 시간, 바로 권병찬이 비장의 무기를 활용할 기회가 왔다.
아직 이미영의 감정은 냉랭했지만 집안에는 부부만이, 그것도 몇달만에 합방을 하는 셈이며, 그녀 역시 부정을 저질렀다는 죄의식이 있어 차마 남편을 거부할 수는 없었다.
그는 알몸이 된 아내에게 평소보다 더욱 정성을 들여 전희를 시도했다. 그녀의 몸에는 그에 따른 여러가지 반응이 나타났다.
그런데 좆이 막 몸안에 들어왔을 때, 그녀는 마치 낭떠러지로 곤두박질 치는 것처럼 오히려 몸도 마음도 차디차게 식어 버렸다. 이런 반응은 그녀로서도 뜻밖이었다. 권병찬도 그런 아내의 돌변을 알고 더욱 열심히 성감대를 섭렵하고 테크닉을 발휘해 보았지만 끝내 아내의 호응을 얻지 못한 채 몇달만의 방사는 싱겁고 맥없이 끝났다.
그는 아내와 제대로 화해도 못한 채 서둘러 서울의 직장으로 되돌아가야 했다.


냉랭하게 남편을 떠나 보낸 뒤의 이미영은 혼란스러웠다.
오랫만에 남편의 손길과 입술이 자신의 민감한 곳을 샅샅이 훑어가고 그녀의 몸도 반응을 보여갈 때 그녀는 이제 한차례 폭풍이 몰아치고 나면 어쩔 수 없이 남편에게 굴복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직 마음으로 완전히 남편을 용서한 것은 아니지만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라는 말처럼 이렇게 끝나는 것이 여자의 약점이며 숙명이라는 기분까지 들었다.
그런데 막상 살을 섞는 순간 오히려 마음이 차디차게 얼어붙는다는 것은 그전의 경험은 물론, 전혀 예상치 못한 현상이었다. 그렇게 끝나고 나자 남편에 대한 미움과 경멸이 되살아나며 마음은 더 큰 구멍이 뚫린 것처럼 허전했다.
월요일, 그녀는 그때까지 남편 말고는 유일하게 씹을 했던 나이 어린 제자를 다시 자기집으로 불러 들였다
그리고 다시 그의 몸을 받아들였을 때 그녀는 "앙! 앙! ...... " 하고 울부짖으며 아직 앙상한 소년을 할퀴어 댈만큼 폭발적인 환희를 맛보았다.
그러한 변화는 그녀를 더욱 혼란스럽고 착잡하게 만들었다.
배신감을 갖게 된 남편과는 이제 살을 섞어도 감정은 죽어 버린 것인가. ...... 나이 어린 제자와의 불륜에 그토록 광분했던 것은 내 몸에 원래 더러운 피가 흐르기 때문일까. ...... 갈등과 죄책감으로 그녀는 잠든 소년 옆에서 또 한동안을 혼자 흐느끼며기 괴로워 했다.


그러나 그녀는 일단 한가지 결단을 내렸다. 남편에게 이혼을 제의한 것이다.
남편이 열심히 좆질을 하는데도 냉정해질 수 있다는데서 그녀는 섹스, 혹은 남자라는 굴레에서 벗어났다는 일종의 해방감과 자신감을 갖게 된 것 같기도 했다.
권병찬은 그제서야 사태가 심각하게 돌아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별 가책도 없이 외도를 하긴 했지만 그때문에 어느모로 보나 일등 아내감에게서 버림받을 수는 없었다. 그는 처갓집에 자신의 과오를 고백하면서까지 지원을 호소했다.
이미영의 부모는 사위를 통해 딸이 이혼하려 한다는 말을 듣고 펄쩍 뛰었다. 국민학교 교장직에 있는 그녀의 아버지는 여필종부와 모정본능을 들어 딸을 꾸짖고 타이르는 장문의 편지를 보냈고, 친정어머니는 직접 딸을 찾아와 눈물까지 흘리며 그녀를 설득했다.
그리고 남편은 자신의 경망함으로 시간을 끌었으나 이제는 결재가 떨어진 그녀의 전근통지서에다 그들의 남매까지 데려와 그녀가 마음을 돌릴 것을 애원했다.
그녀는 결국 마음을 돌렸다. 그녀는 다시 여인의 숙명속에 자신을 들이밀기로 작정한 것이다. 그리고 끝풀이처럼 갈등의 한 요인이었던 소년을 마지막으로 만난 것이다.


"이렇게 된 것이란다. ...... 나는 이제 다시 남편과 자식, 가정이라는 울타리 속으로 돌아가야 해. 그럴수록 너만 혼자 팽개치고 떠난다는 것이 정말 마음에 걸리는구나. ...... 너는 이 못된 선생을 잊고 부디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자라 좋은 청년이 되어야 해!"
이미영선생은 다시 울먹거리며 나를 껴안았다.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세차게 들이밀며 내 가슴에도 뭉클한 충격이 밀려 왔다.
나는 얼굴을 들어 그녀의 입술을 찾았다. 그녀가 피하지 않아 입술은 포개어 졌지만 내가 혀를 디밀어도 그녀는 입을 열지 않았다. 혀를 주고 받지 않는 입술이 차갑게 느껴지는 것처럼 지금 그녀의 마음도 차디찬 것 같았다.
그 마음에 불을 지피려는듯 내 오른손은 그녀의 젖통을 쓰다듬었다. 잠깐 움찔하는듯 하더니 그녀는 내 손의 침입을 부드럽게 제지하며 맞붙은 입술도 거두었다.
"영도야! 오늘은, 아니 다시는 이러지 말자.  ...... 그렇잖아도 그전에 지은 죄에 너한테 미안하고 나도 괴로운데 잘못을 되풀이해서는 안되지."
단호한 그 표정 앞에 나는 다시 어떤 행동도 할 수 없었다.


"참, 너한테 선물이 있어. 일어나자."
나를 이끌고 간 곳은 서재였다. 그녀는 서가에 가득한 책중 하나를 뽑아 펴 보면서 말했다.
"내게는 이 하나 하나에 정말 소중하고 아름다운 추억이 깃들어 있는 마음의 양식들이란다."
그녀는 그 책을 내게 건네 주면서 또 주섬주섬 서가에서 책들을 뽑아내고 있었다.
"너에게도 이 책들이 마음의 양식이 되고 좋은 추억으로 남기를 바란다. 책에는 새로 얻는 지식뿐 아니라 저마다의 독특한 개성과 아름다움과 향기가 있거든. 바로 지은이의 온갖 체험과 생각과 또 영혼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지."
내 손에 쥐어진 책장에 눈길을 보냈지만 깨알 같은 글씨만 보일 뿐, 그것이 단어나 문장으로 내게 전해 지지는 않았다. 그녀는 한껏 진지한 어조로 말하지만 나는 그말에 공감하기는커녕 귀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다.
나는 그녀와 내 손에 나뉘어 들린 책보다 방 전체를 다시 둘러 보았다.
다다미가 깔려 있는 이 방은 내가 처음 이 집을 찾아와서 바지를 내려 자지를 보였고, 결국 빠구리까지 했던 바로 그 장소였다. 치마로 가려져 있는 그녀의 백보지도 떠올랐다. 그녀가 지금 아무리 마음의 양식 이니 지은이의 영혼이니 하고 떠들어도 지금 나에게는 그날의 유별난 체험과 그녀의 알몸만이 너울거려 다른 것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새임요! 내한테는 다른거 필요 없어예. 새임이 바로 내한테 제일 소중하고 아름다운 추억인기라예."
나는 그녀 앞에 무릎을 꿇고, 그러니 그녀의 허벅지를 두팔로 끌어 안은  꼴이 되었다.
"아이 참, 이러지 마!"
그녀도 몸을 낮추어 나를 끌어 안으며 등을 따독거렸다. 그러나 지금 그녀의 말을 고분고분 따른다는 것은 너무 허망하다. 둘 다 무릎을 꿇고 끌어안은 상태에서 나는 그녀의 입술을 찾았다. 그녀가 도래질을 하는 바람에 내 입술은 그녀의 목에 머물렀다. 혀로 그 목덜미를 문지르고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내는 ...... 새임요! ...... 내한테는 새임, ..... 새임만 추억으로 간직할끼라예."
"아이 참!"
그녀는 감았던 팔을 빼 나를 밀어내면서 정색을 한 얼굴로 말했다.
"오늘은, 아니 앞으로는 이러지 말자. 아까도 말했지만 너는 이제 나를 잊어야 돼! ...... 너에게 전혀 도움이 안되는 ...... 그렇게 나는 못되고 나쁜 여자야."
"그래는 몬 해예. 그래는 안 돼예. 이대로 헤어지마 ......"
나는 그녀의 품을 더욱 파고들면서 떼를 쓰는데 울컥 감정이 북받치며 울음이 터져 나왔다.
"이대로 헤어지마 내는 영원히 새임을 못 잊을낍니더. 영원히 잊을 수가 없심더."


"뭐? ......"
그녀는 눈을 크게 뜨고 내 다음 말을 기다렸다. 이제는 내가 울먹이면서 말했다.
"아쉬버서 ...... 너무 가슴이 아파서 ...... 못난 내가 미버서 ...... 새임도 미버서 ...... 아, 너무 서글퍼서 ...... "
난생 처음 나는 어깨를 들먹이며 토막말들이 넋두리처럼 튀어 나왔다.
"아이 참!"
그녀는 다시 나를 꼭 끼어 안으며 말투도 부드러워 졌다.
"영도야! 어쩌면 좋으니? ...... 내가 어떻게 해야 하니?"
"몰라예. 내는 몰라예. ...... 그래도 이렇게는 ...... 이대로는 ......"
그녀의 목을 훑었던 내 입술은 이제 그녀의 젖가슴에 머문 채 얼굴을 부벼 댔다.
"영도야! ...... 꼭 그렇게 해야 하겠니?"
내 얼굴을 떼고 눈을 마주치며 굳은 표정이 된 그녀의 질문에 나는 멈칫했다. 말뜻도 잘 모르겠다. 한동안 그대로 있다가 나는 좀 겁먹은 표정을 숨기지 못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 참!"
그녀는 다시 탄식을 하고 눈을 감았다 뜨더니 나를 일으켰다.
"그럼 저 방으로 가자."


안방으로 들어서자 그녀는 우선 요를 폈다. 그리고 쉐터의 단추를 따면서 "너도 벗어야지."라고 말했다.
아! --- 나는 세상에 대고 고함을 질러내도 싶은 기분이었다.
오늘 그녀를 만나면서 당연히 빠구리로 이어질 줄 알았던 것이, 내가 중간에 행망을 떨고, 또 그녀가 강력하게 거부해서 기대가 수포로 돌아갈 줄 알았는데 결국은 이렇게 다시 성사된 것이다.
가슴이 울렁거리고 숨이 가빠 졌지만 차마 그 감동을 표현하지는 못하고 나는 착한 학생이 되어 그녀의 말대로 조용히 옷을 벗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녀의 숨소리도 가빠진 것이 내 귀에 들릴 정도였다. 젖가슴을 드러내고 팬티만 남은 그녀는 아직 허리띠를 풀려 하는 나의 바지를 벗겨 내렸다. 그녀도 조급했던 모양이다.
함께 알몸이 된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요 위에 몸을 뉘었다. 그 자세로 서로의 몸을 매만지던 중 그녀가 몸을 일으켰다.
"오늘은 내가 서비스 할 거야."
내 입술을 덮고 한동안 서로의 혀를 주고받다 그녀의 입과 혀는 나의 목덜미를 타고 가다 젖꼭지에 머물렀다. 그럴 때 남자의 젖꼭지도 커지고 딱딱해진다는 것은 이미 나도 경험한 터라 황홀한 기분으로 내 몸을 내 맡겼다.
그 입술은 배를 훑어 가다가 아까부터 탱탱해서 끝이 휘어진 채 혼자 끄덕거리는 자지를 물어버렸다.


"아! ...... 아아! ......"
이번에는 참을 수 없는 신음이 작게 튀어 나오며 나는 몸을 움찔했다. 그것은 황홀함만이 아니라 놀라움도 포함된 것이었다.
내 자지를 입속에 넣어준 여인들은 꽤 있었다. 아니, 내 자지는 실제로 빠구리라는 행위를 하기 전에 먼저 처음 여인과의 접촉이 바로 그 입속에 들어간 것이다. 서울띠기가 나의 벌떡 선 자지를 보고 놀래다 입에 물었을 때 나는 기겁을 해서 "아 아! 그건 안돼! 드러버요!"라며 제지 했었다.
물론 서울띠기의 입속에 자지가 들어가면서 난생 처음의 황홀함을 맛보았고, 그밖에도 몇몇 여인들이 내 자지를 입속에 넣어 주었다. 또 나도 그 답례처럼 몇몇 여인의 보지를 빨아 보았다.
하지만 똥구멍이나 자지 보지는 배설기관이라는 점에서 여전히 입에 넣기는 더럽다는 선입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자지를 입에 넣는 여인은 서울띠기가 하는 것을 보고 단한번 시도했던 꼽추할매를 빼고는 나이가 많든 적든 다 닳고닳은 여인들이라는 기분도 들었다.
그런데 한껏 우아하고 조신해 보였던 이미영선생이 거침 없이 자지를 덮썩 문다는 것은 사실 놀라운 일이었고 나고 모르게 움찔거린 것이다.


"괜찮아. ...... 오늘은 나한테 맡겨! ...... 내가 다 할거야!"
말을 하느라 입에서 뺐던 자지를 그녀는 혀로 훑어 갔다. 벌써 나는 자지만 벌떡거리는 것이 아니라 온 몸이 달뜨고 있었다. 그녀는 이제 자지를 입안 가득히 물고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기 시작한다. 자지를 빨면서 그녀의 숨소리는 헐떡인다고 할만큼 가빠졌다.
"아아! ...... "
나즈막히 탄성을 지르며 나는 그녀의 입놀림에 자지뿐 아니라 온 몸을 맡겨 버렸다. 한동안 황홀함 속에 푹 빠져 있던 나는 혼자서 헐떡이는 그녀에게 좀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더 큰 자극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아이, 그냥 맡기라니까 ...... "
내가 몸을 비틀며 자지를 빼자 그녀는 다시 나를 눕히려 했다. 그러나 내가 그녀를 밀어 눕혔다. 체격은 아직 그녀보다 작지만 좀 우악스럽게 밀자 그녀는 내 밑에 깔려 버렸다.


아까 그녀가 나에게 했던 것처럼 우선 그녀의 목덜미를 덮었던 입술은 가슴으로 내려와 오른쪽 젖꼭지를 물었다. 내 오른손은 그녀의 남은 젖꼭지를 거머 쥐었다. 새하얀 피부와 달리 검붉은 색에 청포도알만한 젖꼭지는 이미 빳빳하게 굳어 있었다.
"아아! ...... "
그녀도 탄성을 지르며 내 머리를 끼어 안다가 그 손은 등어리를 지나 엉덩이까지 훑어 갔다. 내 입술도 젖에서 떨어져 그녀의 아랫배를 훑으며 보지 둔덕에 머물렀다. 딴 여인들에게 했을 때와 달리 털이 한오라기도 없다는 것 때문에  그곳은 더욱 신선하면서도 깨끗하게 느껴졌다.
"아이, 거기는 ...... "
자지를 물렸을 때 내가 움찔했듯 그녀도 움찔하며 나를 밀어내려 한다. 하지만 내 입술을 벌써 보지를 덮었고 질벽을 파고 들어갔던 혀는 한동안 여기저기를 찔러 보다가 공알에 머물렀다.
"아아! ...... 아아! ...... "
연달아 탄성이 터지며 밀어내려던 내 머리를 감싸고 몸을 비틀어 대던 그녀는 가랭이를 활짝 벌리고 두다리들 들어 올린 채 벌써 "앙앙! 아아앙! ....." 하며 울부짖기 시작했다.


"이리 ...... 조금 이쪽으로 ...... "
그녀는 내 두 팔을 잡아 위로 끌었다. 밑에서 자신도 몸을 움직이며 나를 아주 반대편으로 몸을 돌려 놓았다. 우리는 머리와 다리가 어긋난 채로 몸을 포개고 있다. 서로가 자지와 보지를 빨고 핥을 수 있는 자세가 된 것이다. 두가지가 한꺼번에 충족되니 그 느낌은 한결 강력하고 황홀했다.
그녀도 비슷한 모양으로 헐떡이며 자지를 빨다가 입을 떼고는 엉덩이를 들썩거리고 비틀면서 "앙앙! ......"  하며 울부짖다 다시 자지를 물곤 했다.
한동안 그렇게 엉켜 있던 우리는 다시 그녀의 리드로 얼굴을 맞대며 포갠 자세가 되었다. 그래야 자지가 제대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아아! ..... "
물끼가 넘치는 그녀의 보지 속에 자지가 완전히 자리 잡자 그녀는 나를 으스러지듯 껴안으며 또 신음을 냈다. 자지는 그 속에서 혼자 벌떡거렸다.
그날의 빠구리는 정말 격렬하고 질편하고 요란스러웠다. 또 시간도 오래 끌었다.


마지막이라는 아쉬움 때문인지, 서로의 자지 보지를 빨기까지 해서인지 나도 순진한 척 했던 가면을 벗어버리고 보다 적극적이 되었다.
그녀가 울부짖다 가쁜 숨을 다소 진정하게 되자 그녀를 내 몸위로 올라오게 했다.  그녀의 엉덩이 움직임은 닳고닳은 서울띠기 못지않게 능숙해 보였다. 내 위에서 물을 울컥 쏟아내고 울부짖다 다시 헐떡거리는 그녀를 이제는 엎드리게 하고 뒤에서 박아 댔다.
엎드린 채 찌르기에 맞추어 엉덩이를 들썩이면서 그녀는 한손을 자기 보지에 대고 문지르기 시작했다. 분명히 자기 공알을 자극하는 것이리라. 그리고는 이 밤들어 가장 거세게 울부짖었다.
이미영선생이 이렇게 적극적이며 거의 광분하듯 환희에 빠지는 것은 나에게 새로운 놀라움이었다.
나도 더욱 흥분이 고조되면서 "아이, 그만 그만! 이제는 도저히 못해!"라며 엎어져버린 그녀를 다시 바로 누이고 빠른 방아질을 해댔고, 사정이 완전히 끝난 뒤에도 한동안 방아질은 계속되었다.
자지를 뺐을 때 그녀는 완전히 탈진한 듯 가슴만 오르락내리락 하며 가쁜 슴을 쉬고 있었다. 그러나 유난히 사정도 많이 한 것 같건만 내 자지는 아직도 탱탱해 있었다.


요 위에는 어른 손바닥만한 얼룩이 생겼고, 그녀의 보지 주변은 물을 부은 듯 질퍽하게 젖어 있었다.
기절한 듯 꼼짝도 않고 있는 그녀의 분비물과 땀을 수건으로 닦아주며 코 끝에도 송글송글 맺여있는 작은 물방울을 닦을 때 그녀는 눈을 살짝 뜨더니 왈칵 나를 껴안고 입을 부벼 댔다. 그러나 "고마워!" 라는 말한마디만 하고는 다시 축 늘어져 버렸다.
나는 아직 가쁜 숨이 다 진정되지 않았으나 자지는 죽어 있었다. 그제서야 나도 피로를 느꼈고 그녀 옆에 가만히 누웠다.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그녀가 팔베게를 하며 나를 끌어 당겼다.
"이제 기분이 좀 풀어졌니? ...... 사실 너를 오늘 그냥 보냈더라면 이 시간에 나는 또 혼자 후회하면서 눈물이나 짜고 있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도 옳은 일은 아니고 ...... 아, 왜 이리 혼란스러운지 ...... "
그녀가 고민을 하는 중에도 나는 그녀의 젖가슴에 얼굴을 묻고 한손은 젖꼭지를 매만졌다. 그러면서도 그 감촉에 흥분하기 보다는 다시는 이런 순간을 갖지 못하게 된다는 생각이 들며 고독이 밀려 왔다.


"새임이 정확히 언제 그만둡니꺼?"
"금요일에 이취임식을 하니까 꼭 3일 남았지. 근무는 이틀이고 ...... "
"이취임식 ...... ? 그게 뭐라에?"
"떠나는 사람과 새로 부임하는 선생이, 말하자면 전교생 앞에서 신고하는 행사인 셈이지."
"다른 선생님도 오십니꺼?"
"물론. 그래야 수업에 차질이 없지. 참 ...... !"
그녀는 젖가슴에 묻힌 내 얼굴을 밀어 눈을 마주치며 말을 이었다.
"내 후임으로 오는 이원주 선생님은 마침 나의 사범학교 2년 선배야. 전교 수석을 할만큼 실력이 있고 정말 좋은 선생님이지. 그 선생님은 또 이 집에서 살기로 했어. 가르치던 학생과 살림집을 모두 그 선배와 인수인계하는 셈이지."
아무리 실력이 있고 그 선생 역시 이 집에 산들 당신을 대신할 수는 없읍니다. ......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입밖에 내지는 않았다.


"참, 그 선생님은 아직도 독신이야."
"네?" 하고 나는 되물었다. 벽촌의 국민학교 4학년생으로 그때 나는 어휘가 너무 모자랐다. 아까 이취임식이라는 말처럼 그 말도 역시 못알아 들었다.
"아직 처녀란말야."
"숫처녀요?"
그때 나한테서 왜 그런 질문이 나왔는지는 지금도 모르겠지만 하여튼 나는 다시 물었다.
"호호호 ...... " 하고 그녀는 오늘 밤 처음으로 내게 웃어보이면서 말했다.
"거기까진 모르겠는데 ...... 아직 결혼을 안한 여자를 처녀, 혹은 독신이라고 하지만 숫처녀란 아직 남자 경험이 없는, 그러니까 섹스를 안 한 여자를 말하는 거야."
하기야 그런 구분은 나도 할 줄 안다. 나와 빠구리한 여인들중 문경미와 홍금순은 숫처녀, 그러니까 나와 첫경험을 한 여인들인 것이다.


"그 선생님은 몇살인데예?"
"내 2년 선배니까 올해 서른네댓살 쯤 되었겠지."
그 말에 내가 눈을 크게 뜨자 그녀는 내 옆구리를 살짝 꼬집으며 좀 짖꿋은 표정이 되었다.
"왜, 처녀 선생님이라니까 더 호기심이 생겨? 아까부터 자꾸 묻기만 하더니 ...... "
나는 괜히 좀 무안해져 얼굴을 붉혔다. 사실 새로 온다는 선생에 대한 관심은 전혀 없었다. 단지 그녀가 34~35살이 되도록 독신이라는 것이 좀 특별해 보였을 뿐이다. 당시 우리 마을이나 주변에 서른살이 넘도록 시집을 못간 노처녀는 없었다. 그때 금촌리 사람들은 홀아비나 과부는 있었지만, 혼기가 되면 남녀를 불문하고 어김없이 시집 장가를 갔던 것이다.
"하기야 그렇게 좋은 선생님이 너하고도 좋은 인연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드는구나. 내가 가르치던 제자들도, 살던 집도 다 그 선배한테 인계하는데 애인도 ...... "
그녀는 멈칫 말을 끊으며 손으로 입까지 가렸다. 그리고 아까 나처럼 눈을 크게 떴다가 다시 나를 끼어 안으며 말했다.
"그래! 영도가 내 애인이야! ...... 그런데 소중한 애인을 버리고 나만 떠나다니 ...... 정말 그 선배한테 인계해 줄까?"


짖꿎은 표정과 놀라운 표정이 교차되는 그녀의 말이 농담인지 진담인지 나는 헷갈렸다.
하지만 내 기분은 여전히 확고했다. 새로 오는 선생이 아무리 실력이 있고 앞으로 이 집에 살게 될 노처녀라 해도, 아니 그보다 더욱 좋은 조건이 있다하더라도 이미영 선생을 대신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나는 결국 그 감정을 말로 옮겼다.
"내한테는 새임뿐이라예. 새임이 떠나는거로 가슴에 큰 구멍이 생겼지만 아무거로도 그건 채울 수 없는기라예."
"어머나! 우리 애인, 꼬마 애인이 정말 어른 같은 말을 하네. 하기야 이것도 어른이니까."
그녀의 손이 불쑥 자지를 거머 쥐었다. 몸을 맞대고 대화를 하면서도 내 한손은 그녀의 젖꼭지를 부비고 있어 자지는 벌써 탱탱해 있었는데 그녀의 손이 닿자 혼자 벌떡거렸다.
내 손도 보지 쪽으로 내려가 손가락을 갈라진틈에 넣었다. 부드럽게 훑으며 살짝살짝 찔러 보는 중 그곳에도 물끼가 서리기 시작했다. 덩달아 내 자지는 계속 벌떡거렸다. 우리는 둘다 또 한번의 환희를 맛 보는 문턱에 서있는 셈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내 손을 빼내며 나를 일으켰다.
"자, 오늘 시간도 너무 늦었고 이제 일어나자. 또 선물도 챙겨야지."


우리는 다시 서재로 갔고 그녀는 아까처럼 주섬주섬 책들을 골라 내었다.
"이건 동화집들, ......  영도도 이 동화의 주인공들처럼 착하고 용기있는 사람으로 자라야지. ...... 여기 소설책들도 영도가 건장하고 현명한 청년이 되는데 좋은 양식이 될꺼야. ...... 또 시집(詩集)도 몇권 ...... 참, 영도 너는 시(詩)를 좋아하니?"
"시가 뭐라예?"
"음 ..... 한마디로 하자면 가장 아름다운 말, 혹은 글이라고 할 수 있지. 우리의 일상생활, 주변의 풍경, 기쁨이나 슬픔, 그리움과 외로움, 동경과 환상, 이런 모든 것들에 시인이 자기 감정을 실어 좋은 말로 표현하면 듣거나 읽는 이에게도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단다. 아, 국어책에도 동시가 있지?  그 동시나 동요의 가사들도 다 어린이용의 시들이란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나 동요는 좀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아름답다거나 감탄스런 적은 없었지만 그녀의 말을 알아들었다는 표시를 해준 것이다.
새로 뽑는 책을 보니 윤석중동요집 소월시집 하이네시집 같은 제목들이 붙어 있었다.


그녀가 서가에서 뽑아낸 책은 족히 30~40권쯤은 되어 보였다.
그녀는 첫장을 열고 백지로 되어 있는 곳에 만년필로 <사랑하는 제자 문영도에게. 이미영>이라고 큰 글씨로 쓰고 오늘 날짜도 적었다.
어떤 책에는 <국민학생이 된 예쁜 딸에게. 아빠가>, <12살 생일을 축하한다. 더욱 슬기롭고 예쁘게 자라거라
아빠가>, <축 졸업. 담임 박찬욱>, <진급을 축하하며. 오빠가> 같은 말들과 함께 날짜도 적혀 있는데 모두 20여년 전부터 10여년 전의 연도였다. 그녀가 "내게는 가장 소중한 추억들이란다." 라고 했던 말들도 이해가 갔다.


그녀는 그런 책장에도 <다시 문영도에게. 이미영> 이라는 서명과 함께 오늘의 날짜를 적었다.
그 책들은 배낭 하나에 넣고도 남아 다시 두개의 꾸러미로 묶었다. 대문 앞에 섰을 때 그녀는 문을 열기 전 "밤이 너무 늦었는데 조심해 가거라." 라며 나에게 키스했다. 배낭을 메고 양손에도 책을 든터라 나는 단지 입술만 내맡긴 꼴이었다.
대문을 나서서도 나는 한동안 발을 떼지 못햇다. 엉거주춤한 나 때문에 그녀도 집안으로 들어서지 못하고 마주 보고만 있는중 내 얼굴이 씰룩 거렸다.
"가라니까! 빨리 가란말야! 빨리 가 ...... "
똑같은 말의 되풀이었지만 그녀는 말을 끝맺지 못하고 훽 돌아서더니 대문을 쾅 닫아 버렸다. 그 소리가 내 가슴으로 유난히 크게 울려 왔다. 가슴에 구멍이 뚫려 메아리가 치나 보다.


반달이 떠 있었으나 구름에 가리워 밖은 꽤 어두었다. 빤히 아는 길이지만 나는 돌뿌리에 걸려 두번이나 넘어졌다.
캄캄한 밤에 15리 시골길을 혼자 걷는 것은 너무나 쓸쓸하고 외로웠다. 더구나 등과 양손에 든 짐들은 갈쑤록 무거워 졌다. 이미영 선생과 그 감미롭고 환희에 찼던 순간들을 되살리려 해도 어둠에 모든 것이 묻혀 있듯 외로움과 짐의 무게에 모두 묻혀 버린다.
등짐을 내려 놓고 잠시 쉬다 다시 걸어도 늦가을 밤에 땀이 흐르고 숨도 가빠진다. 이 짐들만 없다면 아까 올 때처럼 뛰어갈 수도 있을텐데 ...... 그러나 잠시 후 나는 생각을 바꾸며 글을 지어 보았다.


마음의 양식을 지고 어둠 속을 헤멘다.


하지만 어둠의 근심이나 짐의 무거움이 아니라


양식의 든든함으로 발걸음은 가볍다. 


이것도 시(詩) 라고 할 수 있을런지 ...... 어떻든 나는 좀 더 편한 기분으로 집에 도착했다.




추천118 비추천 25
Copyright © www.webstoryboard.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