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모님... 나의 장모님... (8)
오랜만에 인사를 드리네요...
[바람속에 잠들다]를 19편으로 마감하고 바로 이글을 마무리 하려 했는데, 사실 시간도 여의치 않았고, 또 구상도 쉽게 이어지지 않아서, 많이 늦게 올리게 되었습니다.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나 저나, 이전 글의 내용을 기억을 못해서리, 다시 읽어야 하는 분들에게는 죄송하다는 말밖에는 드릴 말씀이 없군요...
그럼... 재밌게 읽어 주세요.(야한 것도 바람을 타야 하나 봅니다. 오랜만에 쓰니까, 전혀 야한 장면이 전개가 안돼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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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여사의 정보에 의하면 정보통신 관련 주들의 거품이 한 순간에 무너질 가능성에 대해 검토를 해봐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정치적인 배경은 이미 시장에서 인지가 되던 것이었으며, 경제가 정치의 논리와 어우러지면 반드시 험한 꼴을 보는 것이 인지 상정인 우리네의 현실이었기에, 김 여사와 난 더 이상의 욕심을 부리지 않고 투자금의 대부분을 회수해 버렸다.
우리의 예견은 적중했다.
주가는 단 3개월 만에 60%의 폭락을 보였다. 무서운 시장이었다.
난 혜진 씨가 궁금했지만, 그녀도 김 여사 못지않은 정보망을 가지고 있기에 큰 피해를 보지는 않았을 거라고 추측을 했다.
우리는 부동산쪽으로 관심을 돌렸고, IMF 이후 거의 바닥까지 추락한 부동산은 나름대로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는 정황 판단을 내렸다.
늘 그런 것이었다.
오를 때는 끝없이 오를 것 같고, 내릴 때는 또 바닥도 모르고 내릴 것 같은 게 모든 시세 품목의 가격 변화인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것이 현실이요, 그 내재 가치 이상의 상승이나 이하의 하락은 반드시 전환점을 맞이 하는 것이 진실이기에 우리는 원가에도 훨씬 못 미치는 부동산에 대규모 투자를 하는 것에 방향을 맞춘 것이었다.
여러 건물들을 검토한 끝에 김 여사와 나는 지은 지 4개월 밖에 안 되는 역삼동 소재 20층짜리 건물을 타겟으로 삼았다.
그 건물은 한때 강남 부동산의 황제라고 불리던 김 영구 회장의 건물이었다.
그는 1.4 후퇴 때 월남해서 자수 성가한 사람으로서, 국민 학교밖에 안 나온 사람이었지만, 타고난 장사 수완과 과감한 베팅 감각으로 하는 일마다 승승 장구하여 오늘의 부를 쌓은 사람이었다.
나이가 60이 넘은 노인네지만, 아직도 현역으로, 부동산과 채권 시장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도 시련은 있어, 90년대 중반이후에 대규모 유통 센터를 운영하던 그는 IMF 의 한파에 현금 압박을 받고 있었고, 더욱이 거품이 꺼져가는 90년대에 너무 화려하게 지은 이 건물은 경기 여파를 타고 분양도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일차적인 접근은 김 회장에게 자금을 빌려주는 것이었다.
당시 사채시장의 연리가 30% 가 넘는 고금리였던 관계로 김 회장같이 큰 자금을 다루는 사람에게는 금리 자체가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우리는 저리의 융자 조건을 들고 그에게 접근했다. 물론 담보는 그의 많은 부동산중에 바로 그 건물이었다.
그 건물에 유난히 애착을 갖고 있던 그는 우리의 속셈을 뻔히 보면서도 어쩔 수없이 우리의 돈을 차용해 썼고, 모든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다 우리는 난관에 부딪히고 말았다. 송 여사의 접근이었다. 김 여사는 유난히 그 건물에 눈독을 드리고 있었기에, 혜진 씨의 접근에 무척 당황하는 기색이었다.
결국 우리는 계획했던 대로 건물을 인수하기는 했지만, 예상 가격보다 훨씬 높은 가격으로 인수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상황이 미묘하게 전개 되면서, 두 여자는 약간의 갈등이 있었고, 어찌 보면 가운데 입장인 나로서는 다소 곤란한 처지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난 그때만 해도 그게 시작을 알리는 나팔 소리였음을 알지 못했다.
그렇게 시작된 김 여사와 혜진 씨와의 보이지 않는 충돌은 여기 저기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발생하기 시작했다.
혜진 씨가 손을 대고 있던, 아파트 재 개발 사업에 김 여사가 끼여든 것은 순전히 김 회장 빌딩 인수시의 난관에 대한 보복이었다.
그러자, 혜진 씨도 김 여사의 자금 줄의 일부를 흔들어 놓는 서슴없는 반격을 감행했다.
어찌 보면 아무 것도 아닌 상황에서도 그녀들은 서로의 자존심을 꺽이지 않기 위해 적지 않은 손실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건 상황이 점점 나빠져 간다는 의미였다.
그녀들의 이런 보이지 않는 경쟁을 제어할 무엇인가가 필요한 시기였으나, 그렇다고 어떤 뚜렷한 방책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난 수시로 김 여사와 혜진 씨에게 이성적으로 대처하라는 메시지를 보냈지만, 그건 이미 그녀들에게 설득력을 지니고 있지 못했다.
그러나, 어느 싸움이나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법이었다.
이상하게 시작된 이 싸움은 자금과 줄이 조금은 더 좋은 듯한 혜진 씨쪽으로 기울기 시작했고, 일단 상황이 그렇게 흐르기 시작하자, 김 여사는 여러 곳에서 심하게 밀리기 시작했다.
혜진 씨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화를 통해 그녀가 요새 회사에도 나오지 않고, 집에서 칩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퇴근을 하고 그녀의 집으로 직접 찾아갔다.
“어머니는...?”
오랜만에 만나서 당황하면서도 반가와 하는 영미에게 집을 찾아온 이유부터 설명하는 조급한 모습을 보였다.
문득 가슴 한구석에 어느 곳으로 튈지 모르는 고무공처럼 웅크리고 있던, 영미와의 관계가 갑작스레 인식의 수면위로 떠오르자, 나도 모르게 허둥거리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영미는 차분하고 담담한 눈길로, 마치 왜 그간 연락 한번 하지 않았느냐고 질책하는 듯한 표정으로 내 허둥대는 마음을 들여다보는 듯 했다.
‘산책 가셨어요’
앉으라는 말도 없었건만, 내가 소파에 무겁게 몸을 파묻자 그녀는 아무 말도 없이 주방으로 가 물과 주스를 같이 가지고 와 조심스럽게 내려 놓으며, 내 맞은 편 자리에 앉았다.
‘많이 피곤해 보이네요’
영미는 내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면서 나즈막한 목소리로 그렇게 이야기를 걸어왔다.
문득 영미와 마지막 만난 것이 언제 였던가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내가 증권사를 그만두고 할 일없이 소일하던 때 였으니, 꽤 오래 전 일이 되어버렸다.
“유학을 간다고 했었잖아?”
영미는 대답대신 가벼운 미소를 입가에 달았다.
문득 어색한 기운이 감돌았으나, 바로 그때 혜진 씨가 들어와 더 이상의 얘기가 오가지 못했다.
혜진 씨는 많이 수척해 있었다. 아마도 김 여사와의 갈등에 적잖게 애를 먹었던 모양이었다.
‘어쩐 일이예요?’
혜진 씨는 그간의 공백에 대한 질책과 함께 나의 갑작스런 방문의 이유를 물었다.
“어떻게 지내고 있나 궁금해서요...”
어설픈 대답이었다. 그러나, 그 이상의 대답도 없었다.
그녀는 옷을 갈아 입고 오겠다며 방으로 들어갔고, 그 사이 영미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 나를 쳐다보며 아련한 미소를 보냈다. 문득, 이 모녀사이에서의 내 모습이 어떤 것인가?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난 누구인가?... 이들에게...’
영미는 영미대로 한때 나와 감정을 나눠 갖던 여자였고, 그녀의 어머니인 혜진 씨는 혜진 씨대로 나와 이미 깊어질 만큼 깊어진 여자가 아닌가?...
혼란스러웠다.
내가 일에 빠져 이들 모녀와의 관계 설정을 깔끔하게 하지 못한 것을 그때서야 느끼다니...
어의 없는 일이었다.
영미는 그렇게 한번의 미소를 흘리고는 지 방으로 들어가 버리고, 잠시 후 혜진 씨가 가벼운 옷차림과 다소 밝아진 표정으로 밖으로 나왔다.
그녀도 내가 왜 그녀를 찾아 왔는지 잘 알고 있었고, 나 또한 내 요구에 그녀가 어떻게 대답할 것인지 잘 알고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난 그녀에게 좀더 냉정해 질 것을 부탁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만약 두 기관차가 서로 정면을 보고 지금처럼 달려버린다면, 당연히 두 사람 다 심한 상처를 입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혜진 씨의 입장은 내 생각보다 다소 단호한 편이었다.
난 그녀의 그런 의지의 저변에 깔린 도도함을 잘 알고 있었다.
자기 남자를 향한 다른 여자의 추근거림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여자로서의 본능적인 오기인 것이다.
특히, 혜진 씨와 같이 세상 사에 자신이 있는 여자들에게 지금의 상황은 더욱 더 용납할 수 없는 그런 도전인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지금 필사적으로 거의 싸움을 하다시피 하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성수 씨 때문에 김 여사와 갈등을 겪고 있다고 만 생각하지는 말아 주세요. 김 여사와 난 어쩌면 서로 양존 할 수 없는 사이일 지도 몰라요. 그 오랜 숙원 관계가 성수 씨와 연관되어 좀더 빨리 수면위로 불쑥 솟아 오른 것이라고 생각해도 무관할 거예요’
이제 그녀와 더 할 얘기는 없었다. 어짜피 이 갈등은 끝을 향해 가고 있었고, 단지 난 혜진 씨에게 김 여사를 너무 궁지로 몰지만 말라는 얘기를 하는 것으로 얘기를 마감해야 했다.
오랜만에 보아서인지 그녀와 공적인 일이 끝났지만, 쉽게 자리를 털고 일어나 지지가 않았다.
‘술 한잔 할래요?’
그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그녀가 먼저 술을 권했고, 자연스레 이어진 술 자리에서 난 그녀의 최근의 생활에 대해 이런 저런 얘기를 들었고...
그때서야 왜 그녀가 그렇게 피곤한 얼굴로 지내고 있는 지를 알게 되곤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건 영미 문제였다.
영미가 혜진 씨와 나와의 관계를 따지고 들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엄마를 염려해서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다는 말을 하면서, 그녀의 표정은 지나치리 만큼 일그러졌다.
아마도 많은 얘기가 오갔고, 깊은 갈등이 있었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곤란한 순간이었다.
‘우리 영미를 어떻게 생각해요?’
난데 없는 질문이었지만, 언젠가는 꼭 집고 넘어가야 할 사안이었다.
“영미와 난... 내가 외롭고 힘들 때, 많이 가까워 졌소...”
난 얘기를 길게 하기가 어려웠다. 내가 힘들어 진 그때, 그 배경에 혜진 씨가 있었기 때문에 그녀 앞에서 그때의 상황을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이 어쩐지 우스꽝스럽고 고통스러웠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조용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며 술만 홀짝 거리며 마시고 있었다.
그러나, 난 그녀의 그런 표정이 그녀가 어려운 생각에 몰입했을 때마다 나타나는 표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성수 씨... 우리 당분간 시간을 좀 가져요.’
그녀의 표정은 무척 경색되어 있었다. 어려운 말이었다는 것이리라...
나도 적지 아니 당황했지만, 그녀가 왜 그런 제안을 했는지 알기에 더 이상의 토를 달지 않고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동조를 표했다.
‘우리 오랜만에 춤 한번 출래요?’
스피커에서 라이어닐 리치의 ‘Hello’ 가 유난히 부드러운 멜로디로 흘러 나오고... 그녀는 그 고운 손을 나에게 내밀었고, 난 서슴없이 그녀의 손을 마주 잡고 일어나 거실의 한쪽으로 나아갔다.
마치 나이트 클럽에서 그녀가 나에게 안겨 같이 어우러져 춤을 출 때처럼 그녀는 내 품에 깊숙이 안겨 함께 돌고 있었다.
‘성수 씨... 성수 씨... 성수 씨...’
그녀는 날 부르는 것이 아니라, 혼자 그저 중얼거리듯이 내 이름을 불렀다.
난 그녀의 갈등과 그 갈등이 주는 고통의 크기를 알 것 같아 감히 그녀에게 아무런 얘기도 하지 못하고, 단지 그녀의 등을 조금 더 강하게 안아 줄 수 밖에 없었다.
그녀의 풍만한 가슴이 더 강하게 밀착해 오고...
내 의식은 주책 맞게 도발적으로 변하고...
그러나, 난 도저히 그녀에게 그 이상의 어필을 할 수는 없었고...
‘아직도 내가 여자로 느껴져요?’
“그게 무슨 말이요?”
난 그녀의 질문에서 이상한 느낌을 받았고, 그녀가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인가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대답대신 그저 웃음만 지어보일 뿐이었다.
내가 다시 추궁하듯이 물었지만, 그녀는 더 이상의 말을 끄집어 내지 않았다.
뭔가 복잡하게 꼬여 들고 있다는 얘기였다.
아니, 최소한 그녀와 나의 관계에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다른 이해 관계가 설정되었거나, 설정되어 가고 있다는 얘기였다.
혼란스러웠다.
그냥 아무 말없이 춤이나 추자며 그녀는 더욱 내 품에 파고 들었고... 난 풍염하다 못해 요염하기까지 한 혜진 씨의 육체를 품고 있으면서도 남자로서의 욕심을 내지 못하고, 의문의 실타래를 풀기 위해 고민에 빠져들고 있었다.
분명 뭔가가 있는 것이 틀림이 없었다...
[바람속에 잠들다]를 19편으로 마감하고 바로 이글을 마무리 하려 했는데, 사실 시간도 여의치 않았고, 또 구상도 쉽게 이어지지 않아서, 많이 늦게 올리게 되었습니다.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나 저나, 이전 글의 내용을 기억을 못해서리, 다시 읽어야 하는 분들에게는 죄송하다는 말밖에는 드릴 말씀이 없군요...
그럼... 재밌게 읽어 주세요.(야한 것도 바람을 타야 하나 봅니다. 오랜만에 쓰니까, 전혀 야한 장면이 전개가 안돼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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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여사의 정보에 의하면 정보통신 관련 주들의 거품이 한 순간에 무너질 가능성에 대해 검토를 해봐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정치적인 배경은 이미 시장에서 인지가 되던 것이었으며, 경제가 정치의 논리와 어우러지면 반드시 험한 꼴을 보는 것이 인지 상정인 우리네의 현실이었기에, 김 여사와 난 더 이상의 욕심을 부리지 않고 투자금의 대부분을 회수해 버렸다.
우리의 예견은 적중했다.
주가는 단 3개월 만에 60%의 폭락을 보였다. 무서운 시장이었다.
난 혜진 씨가 궁금했지만, 그녀도 김 여사 못지않은 정보망을 가지고 있기에 큰 피해를 보지는 않았을 거라고 추측을 했다.
우리는 부동산쪽으로 관심을 돌렸고, IMF 이후 거의 바닥까지 추락한 부동산은 나름대로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는 정황 판단을 내렸다.
늘 그런 것이었다.
오를 때는 끝없이 오를 것 같고, 내릴 때는 또 바닥도 모르고 내릴 것 같은 게 모든 시세 품목의 가격 변화인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것이 현실이요, 그 내재 가치 이상의 상승이나 이하의 하락은 반드시 전환점을 맞이 하는 것이 진실이기에 우리는 원가에도 훨씬 못 미치는 부동산에 대규모 투자를 하는 것에 방향을 맞춘 것이었다.
여러 건물들을 검토한 끝에 김 여사와 나는 지은 지 4개월 밖에 안 되는 역삼동 소재 20층짜리 건물을 타겟으로 삼았다.
그 건물은 한때 강남 부동산의 황제라고 불리던 김 영구 회장의 건물이었다.
그는 1.4 후퇴 때 월남해서 자수 성가한 사람으로서, 국민 학교밖에 안 나온 사람이었지만, 타고난 장사 수완과 과감한 베팅 감각으로 하는 일마다 승승 장구하여 오늘의 부를 쌓은 사람이었다.
나이가 60이 넘은 노인네지만, 아직도 현역으로, 부동산과 채권 시장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도 시련은 있어, 90년대 중반이후에 대규모 유통 센터를 운영하던 그는 IMF 의 한파에 현금 압박을 받고 있었고, 더욱이 거품이 꺼져가는 90년대에 너무 화려하게 지은 이 건물은 경기 여파를 타고 분양도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일차적인 접근은 김 회장에게 자금을 빌려주는 것이었다.
당시 사채시장의 연리가 30% 가 넘는 고금리였던 관계로 김 회장같이 큰 자금을 다루는 사람에게는 금리 자체가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우리는 저리의 융자 조건을 들고 그에게 접근했다. 물론 담보는 그의 많은 부동산중에 바로 그 건물이었다.
그 건물에 유난히 애착을 갖고 있던 그는 우리의 속셈을 뻔히 보면서도 어쩔 수없이 우리의 돈을 차용해 썼고, 모든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다 우리는 난관에 부딪히고 말았다. 송 여사의 접근이었다. 김 여사는 유난히 그 건물에 눈독을 드리고 있었기에, 혜진 씨의 접근에 무척 당황하는 기색이었다.
결국 우리는 계획했던 대로 건물을 인수하기는 했지만, 예상 가격보다 훨씬 높은 가격으로 인수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상황이 미묘하게 전개 되면서, 두 여자는 약간의 갈등이 있었고, 어찌 보면 가운데 입장인 나로서는 다소 곤란한 처지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난 그때만 해도 그게 시작을 알리는 나팔 소리였음을 알지 못했다.
그렇게 시작된 김 여사와 혜진 씨와의 보이지 않는 충돌은 여기 저기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발생하기 시작했다.
혜진 씨가 손을 대고 있던, 아파트 재 개발 사업에 김 여사가 끼여든 것은 순전히 김 회장 빌딩 인수시의 난관에 대한 보복이었다.
그러자, 혜진 씨도 김 여사의 자금 줄의 일부를 흔들어 놓는 서슴없는 반격을 감행했다.
어찌 보면 아무 것도 아닌 상황에서도 그녀들은 서로의 자존심을 꺽이지 않기 위해 적지 않은 손실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건 상황이 점점 나빠져 간다는 의미였다.
그녀들의 이런 보이지 않는 경쟁을 제어할 무엇인가가 필요한 시기였으나, 그렇다고 어떤 뚜렷한 방책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난 수시로 김 여사와 혜진 씨에게 이성적으로 대처하라는 메시지를 보냈지만, 그건 이미 그녀들에게 설득력을 지니고 있지 못했다.
그러나, 어느 싸움이나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법이었다.
이상하게 시작된 이 싸움은 자금과 줄이 조금은 더 좋은 듯한 혜진 씨쪽으로 기울기 시작했고, 일단 상황이 그렇게 흐르기 시작하자, 김 여사는 여러 곳에서 심하게 밀리기 시작했다.
혜진 씨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화를 통해 그녀가 요새 회사에도 나오지 않고, 집에서 칩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퇴근을 하고 그녀의 집으로 직접 찾아갔다.
“어머니는...?”
오랜만에 만나서 당황하면서도 반가와 하는 영미에게 집을 찾아온 이유부터 설명하는 조급한 모습을 보였다.
문득 가슴 한구석에 어느 곳으로 튈지 모르는 고무공처럼 웅크리고 있던, 영미와의 관계가 갑작스레 인식의 수면위로 떠오르자, 나도 모르게 허둥거리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영미는 차분하고 담담한 눈길로, 마치 왜 그간 연락 한번 하지 않았느냐고 질책하는 듯한 표정으로 내 허둥대는 마음을 들여다보는 듯 했다.
‘산책 가셨어요’
앉으라는 말도 없었건만, 내가 소파에 무겁게 몸을 파묻자 그녀는 아무 말도 없이 주방으로 가 물과 주스를 같이 가지고 와 조심스럽게 내려 놓으며, 내 맞은 편 자리에 앉았다.
‘많이 피곤해 보이네요’
영미는 내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면서 나즈막한 목소리로 그렇게 이야기를 걸어왔다.
문득 영미와 마지막 만난 것이 언제 였던가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내가 증권사를 그만두고 할 일없이 소일하던 때 였으니, 꽤 오래 전 일이 되어버렸다.
“유학을 간다고 했었잖아?”
영미는 대답대신 가벼운 미소를 입가에 달았다.
문득 어색한 기운이 감돌았으나, 바로 그때 혜진 씨가 들어와 더 이상의 얘기가 오가지 못했다.
혜진 씨는 많이 수척해 있었다. 아마도 김 여사와의 갈등에 적잖게 애를 먹었던 모양이었다.
‘어쩐 일이예요?’
혜진 씨는 그간의 공백에 대한 질책과 함께 나의 갑작스런 방문의 이유를 물었다.
“어떻게 지내고 있나 궁금해서요...”
어설픈 대답이었다. 그러나, 그 이상의 대답도 없었다.
그녀는 옷을 갈아 입고 오겠다며 방으로 들어갔고, 그 사이 영미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 나를 쳐다보며 아련한 미소를 보냈다. 문득, 이 모녀사이에서의 내 모습이 어떤 것인가?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난 누구인가?... 이들에게...’
영미는 영미대로 한때 나와 감정을 나눠 갖던 여자였고, 그녀의 어머니인 혜진 씨는 혜진 씨대로 나와 이미 깊어질 만큼 깊어진 여자가 아닌가?...
혼란스러웠다.
내가 일에 빠져 이들 모녀와의 관계 설정을 깔끔하게 하지 못한 것을 그때서야 느끼다니...
어의 없는 일이었다.
영미는 그렇게 한번의 미소를 흘리고는 지 방으로 들어가 버리고, 잠시 후 혜진 씨가 가벼운 옷차림과 다소 밝아진 표정으로 밖으로 나왔다.
그녀도 내가 왜 그녀를 찾아 왔는지 잘 알고 있었고, 나 또한 내 요구에 그녀가 어떻게 대답할 것인지 잘 알고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난 그녀에게 좀더 냉정해 질 것을 부탁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만약 두 기관차가 서로 정면을 보고 지금처럼 달려버린다면, 당연히 두 사람 다 심한 상처를 입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혜진 씨의 입장은 내 생각보다 다소 단호한 편이었다.
난 그녀의 그런 의지의 저변에 깔린 도도함을 잘 알고 있었다.
자기 남자를 향한 다른 여자의 추근거림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여자로서의 본능적인 오기인 것이다.
특히, 혜진 씨와 같이 세상 사에 자신이 있는 여자들에게 지금의 상황은 더욱 더 용납할 수 없는 그런 도전인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지금 필사적으로 거의 싸움을 하다시피 하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성수 씨 때문에 김 여사와 갈등을 겪고 있다고 만 생각하지는 말아 주세요. 김 여사와 난 어쩌면 서로 양존 할 수 없는 사이일 지도 몰라요. 그 오랜 숙원 관계가 성수 씨와 연관되어 좀더 빨리 수면위로 불쑥 솟아 오른 것이라고 생각해도 무관할 거예요’
이제 그녀와 더 할 얘기는 없었다. 어짜피 이 갈등은 끝을 향해 가고 있었고, 단지 난 혜진 씨에게 김 여사를 너무 궁지로 몰지만 말라는 얘기를 하는 것으로 얘기를 마감해야 했다.
오랜만에 보아서인지 그녀와 공적인 일이 끝났지만, 쉽게 자리를 털고 일어나 지지가 않았다.
‘술 한잔 할래요?’
그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그녀가 먼저 술을 권했고, 자연스레 이어진 술 자리에서 난 그녀의 최근의 생활에 대해 이런 저런 얘기를 들었고...
그때서야 왜 그녀가 그렇게 피곤한 얼굴로 지내고 있는 지를 알게 되곤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건 영미 문제였다.
영미가 혜진 씨와 나와의 관계를 따지고 들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엄마를 염려해서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다는 말을 하면서, 그녀의 표정은 지나치리 만큼 일그러졌다.
아마도 많은 얘기가 오갔고, 깊은 갈등이 있었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곤란한 순간이었다.
‘우리 영미를 어떻게 생각해요?’
난데 없는 질문이었지만, 언젠가는 꼭 집고 넘어가야 할 사안이었다.
“영미와 난... 내가 외롭고 힘들 때, 많이 가까워 졌소...”
난 얘기를 길게 하기가 어려웠다. 내가 힘들어 진 그때, 그 배경에 혜진 씨가 있었기 때문에 그녀 앞에서 그때의 상황을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이 어쩐지 우스꽝스럽고 고통스러웠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조용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며 술만 홀짝 거리며 마시고 있었다.
그러나, 난 그녀의 그런 표정이 그녀가 어려운 생각에 몰입했을 때마다 나타나는 표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성수 씨... 우리 당분간 시간을 좀 가져요.’
그녀의 표정은 무척 경색되어 있었다. 어려운 말이었다는 것이리라...
나도 적지 아니 당황했지만, 그녀가 왜 그런 제안을 했는지 알기에 더 이상의 토를 달지 않고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동조를 표했다.
‘우리 오랜만에 춤 한번 출래요?’
스피커에서 라이어닐 리치의 ‘Hello’ 가 유난히 부드러운 멜로디로 흘러 나오고... 그녀는 그 고운 손을 나에게 내밀었고, 난 서슴없이 그녀의 손을 마주 잡고 일어나 거실의 한쪽으로 나아갔다.
마치 나이트 클럽에서 그녀가 나에게 안겨 같이 어우러져 춤을 출 때처럼 그녀는 내 품에 깊숙이 안겨 함께 돌고 있었다.
‘성수 씨... 성수 씨... 성수 씨...’
그녀는 날 부르는 것이 아니라, 혼자 그저 중얼거리듯이 내 이름을 불렀다.
난 그녀의 갈등과 그 갈등이 주는 고통의 크기를 알 것 같아 감히 그녀에게 아무런 얘기도 하지 못하고, 단지 그녀의 등을 조금 더 강하게 안아 줄 수 밖에 없었다.
그녀의 풍만한 가슴이 더 강하게 밀착해 오고...
내 의식은 주책 맞게 도발적으로 변하고...
그러나, 난 도저히 그녀에게 그 이상의 어필을 할 수는 없었고...
‘아직도 내가 여자로 느껴져요?’
“그게 무슨 말이요?”
난 그녀의 질문에서 이상한 느낌을 받았고, 그녀가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인가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대답대신 그저 웃음만 지어보일 뿐이었다.
내가 다시 추궁하듯이 물었지만, 그녀는 더 이상의 말을 끄집어 내지 않았다.
뭔가 복잡하게 꼬여 들고 있다는 얘기였다.
아니, 최소한 그녀와 나의 관계에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다른 이해 관계가 설정되었거나, 설정되어 가고 있다는 얘기였다.
혼란스러웠다.
그냥 아무 말없이 춤이나 추자며 그녀는 더욱 내 품에 파고 들었고... 난 풍염하다 못해 요염하기까지 한 혜진 씨의 육체를 품고 있으면서도 남자로서의 욕심을 내지 못하고, 의문의 실타래를 풀기 위해 고민에 빠져들고 있었다.
분명 뭔가가 있는 것이 틀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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