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恐皇) 5부 <새로운 시대> Part 3-10편
사실, 슈발츠가 금방 나타나지 않은 이유는 신드라의 문제를 우선시했기 때문이었다.
기쁨의 궁전은 보통 예약하지 않은 방문자는 받지 않는다. 그리고 예약한 방문자조차도 난동을 부리면 지체없이 쫒겨 나갈 것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하기 위해, 한쌍의 파라곤 미노타우로스 전사를 포함한 일단의 용병들이 곳곳을 지키고 있고, [난동]이 격화되면 유니온 센티넬들의 지원도 받는 것을 기대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은 일반적으로는 다른 유니온의 대부분의 구역 이상으로 안전했다.
하지만 이번의 [문제]는 그런 지원도 기대할 수 없었다. 바로 그녀의 주인인 지니 대공, 메메트 2세(Mermett 2. 혼돈 중립 지니 남성 파이터 9/ 위저드 17)가 그녀를 [되찾기]위해 기쁨의 궁전에 쳐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열명의 최고급 전사들을 대동하고 직접 나타난 지니 대공의 기세는 무시무시했고, 그는 돈이 많기도 했다. 잠깐동안의 협의 후에, 머케인과 유니온 센티넬은 이 문제를 [사적인 영역]으로 분류하는데 합의를 봤다.
지니들의 강력함은 농담이 아니다. 게다가 상대가 일반의 지니가 아니라 최정예 지니 전사들을 거느린 지니 대공이라면, 승패는 불보듯 뻔한 것이다. 돈에 고용된 파라곤 미노타우로스들도 목숨을 걸 의리까지는 없었기에, 신드라는 사면초가의 상태가 되었다. 모두들 도망치고 텅 비어버린 기쁨의 궁전 중앙 홀에서, 옛 [주인]과 [노예]는 마침내 대면하게 되었다.
" 신드라. 오랜만에 보는구나. "/메메트 2세
" ... "/신드라
" 반갑지 않느냐, 이 내가 직접 너를 보러 왔는데도? 자,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지? "/메메트 2세
안그래도 푸른기가 도는 얼굴이 더욱 파랗게 변하면서, 신드라는 고개를 저었다.
" 그곳은 내 집이 아니야... "/신드라
" 어허, 앙탈은... 귀여운 것. 이리와서 주인님의 품에 안기려무나. "/메메트 2세
지니 대공이 한걸음 앞으로 나서자, 신드라는 새파란 예기가 흐르는 단검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스스로의 가슴에 겨누었다.
" 다시 노예가 될바엔... "
신드라가 칼을 찌르려는 순간, 슈발츠의 목소리가 텅 빈 로비에 울렸다.
" 아아, 잠깐... 아직 나는 약속했던 정보를 듣지 못했는데. "
모두의 시선이 연회장의 입구를 향했다. 그곳엔 슈발츠가 두르나와 알루데시아(치타 형태), 그리고 플로라와 알루시아를 데리고 서 있었다. 물론 슈발츠는 메메트 2세와는 문제를 일으킬 생각이 전혀 없었지만, 플로라와 알루시아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데려온 보험이었다.
" 누가 감히 시크(Sheik; 이슬람권에서 족장을 일컫는 말)께 불경하는가!... "
메메트 2세의 경호원 중 하나가 슈발츠를 향해 외ㅤㅊㅕㅅ을 때, 그는 비로소 지니 [대공], 메메트 2세의 계급을 알 수 있었다. 사실 유사 인간이나 아웃사이더 세계에서 [족장]이란 칭호는 작은 마을의 촌장부터 작은 도시국가의 수장에게까지 다양하게 붙여질 수 있기 때문에 칭호만으로 누군가를 평가하기란 상당히 애매한 감이 없잖아 있지만, 슈발츠 자신도 아니고 그의 [노예]중 하나인 젤라노라는 무려 황동 도시의 수장인 대 술탄의 전속 요리사를 불러내 요리강습을 받을 정도다. 그리고 그 술탄 전속 요리사인 하룬 알 라시드의 급수는 시크보다 한참 높은 파샤(pasha)급이었다.
" 주물질계의 백성이여. 그대는 누구인가? "
메메트 2세의 질문에, 슈발츠는 정중하게 인간식 군례를 취해 보이며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림자로부터 뛰쳐나간 알루데시아가 메메트 2세 일행의 시야로부터 벗어난 틈을 타 도망치려던 신드라를 덜쳐서 땅바닥에 쓰러트렸다.
" 아악!... "/신드라
" 캬아옹!... 크르르르르... "/알루데시아
" 이름을 댈 가치도 없는 무명소졸입니다만, 제 이름은 슈발츠라고 합니다. 신드라와 청산할 일이 조금 남아 있어서,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슈발츠
슈발츠가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다시 메메트 2세의 옆에 서 있던 지니 병사가 살기등등하게 호통을 쳤다.
" 이놈, 건방지구나. 신드라는 시크께서 소유하신 노예이다. 감히 시크의 재산에 볼일이 있다는 것이냐, 물러서라! "
슈발츠는 허리를 펴고, 알루시아에게 시선을 보냈다.
[죽지 않을 만큼만 손을 봐 주어라]
" 네, 주인님. "
알루시아는 즉답을 끝내자 마자 잔상이 남을 정도의 속도로 앞으로 달려나가 (방금전까지 호통을 치던)시크 옆에 서 있던 지니 병사의 배에 주먹을 꽂아넣고, 얼굴을 방패로 후려갈겨 바닥에 패대기치고 나서, 그대로 그 머리를 밟고 섰다. 설명으로는 제법 길지만 실상은 눈 한번 깜짝할 정도의 시간에 벌어진 연속 공격이었다.
쉬익!... 퍽!... 콰직!..
" 으억!... "
짧은 비명과 함게 그대로 기절해버린 지니를 밟고 선 알루시아. 다른 지니 병사들이 뭔가 해보기도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메메트 2세와 다른 지니들이 그 무시무시한 속도와 힘에 놀라는 동안, 슈발츠는 다시 정중한 어조로 한마디 했다.
" 주인께서 아무 말씀을 하지 않으시는데 개가 너무 시끄럽게 짖는군요. "
메메트 2세의 안색이 잠깐 창백해졌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 ... 무례하군. 하지만 맞는 말이기도 해. 그래 그 볼일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
" 그녀가 가지고 있는 정보 중에 저에게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제게 잠시만 신드라를 맏겨 주신다면 무척 감사하겠습니다. "
메메트 2세는 잠시 팔짱을 끼고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생각해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 이 자리에서, 내가 보는 앞에서 해결할 수 있다면야 못들어 줄 것도 없지. "/메메트 2세
" 감사합니다. 듣던대로 관대하기 그지없으시군요.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슈발츠
슈발츠는 턱짓으로 알루시아를 부려 원위치로 돌아가게 했고, 메메트 2세의 호위병들은 길을 비켜 주었다. 그가 아직도 알루데시아의 발 아래 깔려 있는 신드라에게 다가가자, 그녀는 다급하게 외쳤다.
" 시크로부터 절 구해 주신다면 뭐든지 대답할께요!... "
슈발츠는 고개를 저었다.
" 내가 여기 온 것은 원래 계약위반의 책임을 묻고자 함이었지만, 그 [벌]은 충분히 받을 걸로 보이는군. "/슈발츠
" 나는 계약위반 같은 것은 하지 않... "/신드라
" 오슬란이 다 불었어. "/슈발츠
" 그는 위선자에다 거짓말장이라고요! "/신드라
다급한 반박에, 슈발츠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그래 그렇긴 하지. 하지만 누구도 나에겐 거짓말하지 못해. 그리고... "
슈발츠는 신드라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수은 덩어리 같은 눈동자가 이글거리기 시작하면서, 드래곤적인 존재감이 무겁게 주변으로 퍼져 나갔다. 그 압도적인 기세에는 메메트 2세와 그의 호위병들조차 놀라서 움찔할 정도였다. 이런 상태의 슈발츠의 시선 아내 노출되면서도 견뎌내는 자는 드물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신드라는 그[드문]범주에 속하지 못했다.
" 자꾸 요리조리 발뺌하려 한다면 시크보다 나를 먼저 걱정하게 만들어 주지... "/슈발츠
" 으... 으아아아... "/신드라
신드라는 공포로 얼어붙었다. 그리고 동시에 메메트 2세는 비로소 슈발츠의 이름을 기억해 냈다. 주물질계의 상인이자 장군, 에버미트의 부마, 어비스까지 다녀온 와우킨 여신의 투사이며 마왕 살해자. 드러난 신분과 위업만으로도 칼리프조차 함부로 대하기 어려운 위대한 존재가 슈발츠였다. 그리고 그런 존재에게 일개 시크의 호위병이 호통을 쳤던 것이다. 비로소 누가 누구에게 결례를 범했는지 깨달은 메메트 2세의 등골에 서늘한 한기가 달렸다.
슈발츠의 심사가 뒤틀리면 그의 모가지를 따도 할말이 없는 것이다.
메메트 2세의 머릿속으로 빠르게 계산들이 오갔다. 신드라는 물론 탐나는 여자였지만, 목숨과 맞바꿀 만큼은 아니다. 슈발츠가 그녀를 가지길 원한다면 주는 것이 올바른 보신책일 것이다. 하지만 또한 남자로써 그의 자존심과 오기가 그 당연하기 그지없는 합리적인 결정을 반대하고 있었다. 지니는 자존심 드높은 종족이고, 메메트 2세는 그중에서도 귀족으로 태어났다. 일반의 지니보다 훨씬 더한 자존심 덩어리인 것이다.
한편 메메트 2세가 스스로의 자존심과 생명 보전의 본능 사이에서 갈등하는 동안, 슈발츠는 어버버버 하며 얼어붙은 신드라를 다그쳐서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얻어내고 있었다. 다그친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미인에게는 관대한 슈발츠 스타일이다. 언성을 높이지도 않고, 화를 내지도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러는 쪽이 상대방에게는 훨씬 더 거역하기 힘든 공포감을 조성하는 것이다.
" 제가 아는 것은 이게 전부에요... "
신드라가 제공한 정보는 이름 ㅤㅁㅕㅈ개 뿐이었다. 오슬란과 그가 초빙한 암살자들이 접선한 자들의 이름. 하지만 슈발츠에게는 그것도 충분한 단서였다.
" 고맙군. "/슈발츠
" 제발... 절 구해 주셔야 해요... "/신드라
이미 울기 시작한 신드라가 거의 애걸하면서 슈발츠의 발앞에 엎드렸을때, 그도 더이상은 외면하기가 힘들었다. 그는 기본적으로 미인이 우는데는 무른데다, 아바리엘 자매들이나 헬베티아의 일도 있고 해서 하렘에 입적시킬 바에는 후딱 해치우는게 좋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슈발츠는 지금까지 지켜보고 있던 메메트 2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 대공이시여, 이 여자의 가치는 얼마쯤 되옵니까? "/슈발츠
" 음?... 글쎄... 백만(gp)쯤 나가겠지. "/메메트 2세
신드라는 대공의 궁정에서 노예의 자식으로 태어났다. 어릴적 부터 미모가 두드러졌고 기예에 재능을 보여 하렘에 편입시킬 생각으로 키워왔던 것이 도망간 것이라 사실 금전적인 가치는 얼마 되지 않음에도 백만이나 부른 것은 메메트 2세의 허영심의 발로였다. 그리고 아무리 와우킨의 투사라도 노예 하나를 위해서 그 정도나 되는 돈을 지불할 마음은 없을 것이라는 계산도 들어 있었다. 하지만 슈발츠의 [지갑]은 메메트 2세의 상식을 벗어나 있었다.
" 천만을 지불할테니 그녀를 저에게 파시지 않겠습니까? "/슈발츠
" 천만!?... "/메메트 2세
메메트 2세의 눈이 똥그래졌다. 그들의 전설적인 사치와 허영심에 가려 있기 때문에 두드러지지 않았을 뿐, 지니들의 금전욕은 드래곤의 그것과 버금가거나 오히려 능가한다. 그리고 천만gp는 그런 지니들조차도 입이 벌어지게 만들기 족한 액수였다. 이미 슈발츠의 정체를 깨닫고 약간 쫄아 있던 그 지니 족장의 의향은 그것으로 결정적인 것이 되었다.
그리고 더 놀란 것은 신드라였다. 슈발츠는 제법 거액을 만지는 장사를 하는 그녀조차도 놀라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의 액수를 지불하려는 것이다. 아직도 알루데시아 아래 깔려 있는 그녀의 눈앞에서 합의가 오갔고, 순식간에 약식의 계약이 체결되었다.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그녀의 눈앞에서 메메트 2세는 자리를 뜨고 있었다.
" 돈이란 좋군요. 세상에, 지니 족장이 저렇게 순순히 응할줄은... "/두르나
" 뭐 나랑 척져봐야 좋을 일이 없다고 느낀거겠지. 목숨도 걸려있는 이야기고... "/슈발츠
사실 여차직하면 무력을 쓸 생각이었던 슈발츠의 판단은 정확한 것이었다. 잠깐 주종간에 돈을 너무 쓰신거 아니냐느니, 천만짜리 보석을 선물해 주겠으니 그만 질투하라느니 하는 사소하고 사사로운 태클과 반격이 오간 후에, 다시 그들의 시선이 신드라에게로 향했다.
" 그래, 이제 천만짜리 [노예]를 어떻게 할 것인가가 남았군. "
사실 노예제는 유니온에서는 불허된다. 하지만 유니온을 운영하는 머케인들의 융통성은 상당해서, 머케인 밖에서 성립된 주종관계에 대해서까지 태클을 걸지는 않는다. 슈발츠는 엄연히 유니온 밖에서 성립된 주종관계를 돈으로 땜방질 했으니까 머케인들의 태클을 받을 여지는 적었다.
" 어쨌든 데리고 가서 조교를 하셔야... "
[조교]라는 단어 자체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두르나의 말에 신드라는 자신의 처지를 상기했다. 슈발츠가 단순히 호의로 그녀를 [사 준] 것만은 아닐 것이다. 다시 자유를 잃는 저치가 된다고 생각하자 아득한 절망감이 밀려왔다.
" 일단 데리고 가지. "/슈발츠
" 네 주인님. "/두르나
" 아아... "/신드라
그렇게 결정된 시점에서, 두르나가 빙긋이 웃으며 허리춤에 매어두고 있던 하얀 밧줄을 꺼내 들었다. 그녀의 눈빛은 마치 먹이를 노리는 매의 그것과 같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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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여담이지만 신드라는 [잰]이라는 지니류의 하급 종족입니다만, 지니나 이프리트와는 전혀 안닯았습니다. 평균적인 신장이 인간보다 살짝 클 뿐, 인간과 몹시 비슷한 생김새에요. 사실 지니류 종족들의 물욕과 허영심도 드래곤 못지 않은데, 그리 표가 나지 않는 이유는 이 종족 자체가 D&D의 캠페인에서의 출연횟수가 적고, 대부분의 경우 소녀시대(소원을 말해봐!)나, 혹은 집사(뭐든지 가능합니다)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는 자신의 부를 늘리기에 혈안인 나머지 땅의 원소계에 쳐들어가 대규모 보석광산을 개발한다던지, 하급정령부터 고위정령까지를 망라하는 정령을 상품 삼아 노예무역에 종사하는 등 흠좀무한 지니들이 많습니다.
기쁨의 궁전은 보통 예약하지 않은 방문자는 받지 않는다. 그리고 예약한 방문자조차도 난동을 부리면 지체없이 쫒겨 나갈 것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하기 위해, 한쌍의 파라곤 미노타우로스 전사를 포함한 일단의 용병들이 곳곳을 지키고 있고, [난동]이 격화되면 유니온 센티넬들의 지원도 받는 것을 기대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은 일반적으로는 다른 유니온의 대부분의 구역 이상으로 안전했다.
하지만 이번의 [문제]는 그런 지원도 기대할 수 없었다. 바로 그녀의 주인인 지니 대공, 메메트 2세(Mermett 2. 혼돈 중립 지니 남성 파이터 9/ 위저드 17)가 그녀를 [되찾기]위해 기쁨의 궁전에 쳐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열명의 최고급 전사들을 대동하고 직접 나타난 지니 대공의 기세는 무시무시했고, 그는 돈이 많기도 했다. 잠깐동안의 협의 후에, 머케인과 유니온 센티넬은 이 문제를 [사적인 영역]으로 분류하는데 합의를 봤다.
지니들의 강력함은 농담이 아니다. 게다가 상대가 일반의 지니가 아니라 최정예 지니 전사들을 거느린 지니 대공이라면, 승패는 불보듯 뻔한 것이다. 돈에 고용된 파라곤 미노타우로스들도 목숨을 걸 의리까지는 없었기에, 신드라는 사면초가의 상태가 되었다. 모두들 도망치고 텅 비어버린 기쁨의 궁전 중앙 홀에서, 옛 [주인]과 [노예]는 마침내 대면하게 되었다.
" 신드라. 오랜만에 보는구나. "/메메트 2세
" ... "/신드라
" 반갑지 않느냐, 이 내가 직접 너를 보러 왔는데도? 자,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지? "/메메트 2세
안그래도 푸른기가 도는 얼굴이 더욱 파랗게 변하면서, 신드라는 고개를 저었다.
" 그곳은 내 집이 아니야... "/신드라
" 어허, 앙탈은... 귀여운 것. 이리와서 주인님의 품에 안기려무나. "/메메트 2세
지니 대공이 한걸음 앞으로 나서자, 신드라는 새파란 예기가 흐르는 단검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스스로의 가슴에 겨누었다.
" 다시 노예가 될바엔... "
신드라가 칼을 찌르려는 순간, 슈발츠의 목소리가 텅 빈 로비에 울렸다.
" 아아, 잠깐... 아직 나는 약속했던 정보를 듣지 못했는데. "
모두의 시선이 연회장의 입구를 향했다. 그곳엔 슈발츠가 두르나와 알루데시아(치타 형태), 그리고 플로라와 알루시아를 데리고 서 있었다. 물론 슈발츠는 메메트 2세와는 문제를 일으킬 생각이 전혀 없었지만, 플로라와 알루시아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데려온 보험이었다.
" 누가 감히 시크(Sheik; 이슬람권에서 족장을 일컫는 말)께 불경하는가!... "
메메트 2세의 경호원 중 하나가 슈발츠를 향해 외ㅤㅊㅕㅅ을 때, 그는 비로소 지니 [대공], 메메트 2세의 계급을 알 수 있었다. 사실 유사 인간이나 아웃사이더 세계에서 [족장]이란 칭호는 작은 마을의 촌장부터 작은 도시국가의 수장에게까지 다양하게 붙여질 수 있기 때문에 칭호만으로 누군가를 평가하기란 상당히 애매한 감이 없잖아 있지만, 슈발츠 자신도 아니고 그의 [노예]중 하나인 젤라노라는 무려 황동 도시의 수장인 대 술탄의 전속 요리사를 불러내 요리강습을 받을 정도다. 그리고 그 술탄 전속 요리사인 하룬 알 라시드의 급수는 시크보다 한참 높은 파샤(pasha)급이었다.
" 주물질계의 백성이여. 그대는 누구인가? "
메메트 2세의 질문에, 슈발츠는 정중하게 인간식 군례를 취해 보이며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림자로부터 뛰쳐나간 알루데시아가 메메트 2세 일행의 시야로부터 벗어난 틈을 타 도망치려던 신드라를 덜쳐서 땅바닥에 쓰러트렸다.
" 아악!... "/신드라
" 캬아옹!... 크르르르르... "/알루데시아
" 이름을 댈 가치도 없는 무명소졸입니다만, 제 이름은 슈발츠라고 합니다. 신드라와 청산할 일이 조금 남아 있어서,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슈발츠
슈발츠가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다시 메메트 2세의 옆에 서 있던 지니 병사가 살기등등하게 호통을 쳤다.
" 이놈, 건방지구나. 신드라는 시크께서 소유하신 노예이다. 감히 시크의 재산에 볼일이 있다는 것이냐, 물러서라! "
슈발츠는 허리를 펴고, 알루시아에게 시선을 보냈다.
[죽지 않을 만큼만 손을 봐 주어라]
" 네, 주인님. "
알루시아는 즉답을 끝내자 마자 잔상이 남을 정도의 속도로 앞으로 달려나가 (방금전까지 호통을 치던)시크 옆에 서 있던 지니 병사의 배에 주먹을 꽂아넣고, 얼굴을 방패로 후려갈겨 바닥에 패대기치고 나서, 그대로 그 머리를 밟고 섰다. 설명으로는 제법 길지만 실상은 눈 한번 깜짝할 정도의 시간에 벌어진 연속 공격이었다.
쉬익!... 퍽!... 콰직!..
" 으억!... "
짧은 비명과 함게 그대로 기절해버린 지니를 밟고 선 알루시아. 다른 지니 병사들이 뭔가 해보기도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메메트 2세와 다른 지니들이 그 무시무시한 속도와 힘에 놀라는 동안, 슈발츠는 다시 정중한 어조로 한마디 했다.
" 주인께서 아무 말씀을 하지 않으시는데 개가 너무 시끄럽게 짖는군요. "
메메트 2세의 안색이 잠깐 창백해졌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 ... 무례하군. 하지만 맞는 말이기도 해. 그래 그 볼일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
" 그녀가 가지고 있는 정보 중에 저에게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제게 잠시만 신드라를 맏겨 주신다면 무척 감사하겠습니다. "
메메트 2세는 잠시 팔짱을 끼고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생각해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 이 자리에서, 내가 보는 앞에서 해결할 수 있다면야 못들어 줄 것도 없지. "/메메트 2세
" 감사합니다. 듣던대로 관대하기 그지없으시군요.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슈발츠
슈발츠는 턱짓으로 알루시아를 부려 원위치로 돌아가게 했고, 메메트 2세의 호위병들은 길을 비켜 주었다. 그가 아직도 알루데시아의 발 아래 깔려 있는 신드라에게 다가가자, 그녀는 다급하게 외쳤다.
" 시크로부터 절 구해 주신다면 뭐든지 대답할께요!... "
슈발츠는 고개를 저었다.
" 내가 여기 온 것은 원래 계약위반의 책임을 묻고자 함이었지만, 그 [벌]은 충분히 받을 걸로 보이는군. "/슈발츠
" 나는 계약위반 같은 것은 하지 않... "/신드라
" 오슬란이 다 불었어. "/슈발츠
" 그는 위선자에다 거짓말장이라고요! "/신드라
다급한 반박에, 슈발츠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그래 그렇긴 하지. 하지만 누구도 나에겐 거짓말하지 못해. 그리고... "
슈발츠는 신드라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수은 덩어리 같은 눈동자가 이글거리기 시작하면서, 드래곤적인 존재감이 무겁게 주변으로 퍼져 나갔다. 그 압도적인 기세에는 메메트 2세와 그의 호위병들조차 놀라서 움찔할 정도였다. 이런 상태의 슈발츠의 시선 아내 노출되면서도 견뎌내는 자는 드물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신드라는 그[드문]범주에 속하지 못했다.
" 자꾸 요리조리 발뺌하려 한다면 시크보다 나를 먼저 걱정하게 만들어 주지... "/슈발츠
" 으... 으아아아... "/신드라
신드라는 공포로 얼어붙었다. 그리고 동시에 메메트 2세는 비로소 슈발츠의 이름을 기억해 냈다. 주물질계의 상인이자 장군, 에버미트의 부마, 어비스까지 다녀온 와우킨 여신의 투사이며 마왕 살해자. 드러난 신분과 위업만으로도 칼리프조차 함부로 대하기 어려운 위대한 존재가 슈발츠였다. 그리고 그런 존재에게 일개 시크의 호위병이 호통을 쳤던 것이다. 비로소 누가 누구에게 결례를 범했는지 깨달은 메메트 2세의 등골에 서늘한 한기가 달렸다.
슈발츠의 심사가 뒤틀리면 그의 모가지를 따도 할말이 없는 것이다.
메메트 2세의 머릿속으로 빠르게 계산들이 오갔다. 신드라는 물론 탐나는 여자였지만, 목숨과 맞바꿀 만큼은 아니다. 슈발츠가 그녀를 가지길 원한다면 주는 것이 올바른 보신책일 것이다. 하지만 또한 남자로써 그의 자존심과 오기가 그 당연하기 그지없는 합리적인 결정을 반대하고 있었다. 지니는 자존심 드높은 종족이고, 메메트 2세는 그중에서도 귀족으로 태어났다. 일반의 지니보다 훨씬 더한 자존심 덩어리인 것이다.
한편 메메트 2세가 스스로의 자존심과 생명 보전의 본능 사이에서 갈등하는 동안, 슈발츠는 어버버버 하며 얼어붙은 신드라를 다그쳐서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얻어내고 있었다. 다그친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미인에게는 관대한 슈발츠 스타일이다. 언성을 높이지도 않고, 화를 내지도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러는 쪽이 상대방에게는 훨씬 더 거역하기 힘든 공포감을 조성하는 것이다.
" 제가 아는 것은 이게 전부에요... "
신드라가 제공한 정보는 이름 ㅤㅁㅕㅈ개 뿐이었다. 오슬란과 그가 초빙한 암살자들이 접선한 자들의 이름. 하지만 슈발츠에게는 그것도 충분한 단서였다.
" 고맙군. "/슈발츠
" 제발... 절 구해 주셔야 해요... "/신드라
이미 울기 시작한 신드라가 거의 애걸하면서 슈발츠의 발앞에 엎드렸을때, 그도 더이상은 외면하기가 힘들었다. 그는 기본적으로 미인이 우는데는 무른데다, 아바리엘 자매들이나 헬베티아의 일도 있고 해서 하렘에 입적시킬 바에는 후딱 해치우는게 좋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슈발츠는 지금까지 지켜보고 있던 메메트 2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 대공이시여, 이 여자의 가치는 얼마쯤 되옵니까? "/슈발츠
" 음?... 글쎄... 백만(gp)쯤 나가겠지. "/메메트 2세
신드라는 대공의 궁정에서 노예의 자식으로 태어났다. 어릴적 부터 미모가 두드러졌고 기예에 재능을 보여 하렘에 편입시킬 생각으로 키워왔던 것이 도망간 것이라 사실 금전적인 가치는 얼마 되지 않음에도 백만이나 부른 것은 메메트 2세의 허영심의 발로였다. 그리고 아무리 와우킨의 투사라도 노예 하나를 위해서 그 정도나 되는 돈을 지불할 마음은 없을 것이라는 계산도 들어 있었다. 하지만 슈발츠의 [지갑]은 메메트 2세의 상식을 벗어나 있었다.
" 천만을 지불할테니 그녀를 저에게 파시지 않겠습니까? "/슈발츠
" 천만!?... "/메메트 2세
메메트 2세의 눈이 똥그래졌다. 그들의 전설적인 사치와 허영심에 가려 있기 때문에 두드러지지 않았을 뿐, 지니들의 금전욕은 드래곤의 그것과 버금가거나 오히려 능가한다. 그리고 천만gp는 그런 지니들조차도 입이 벌어지게 만들기 족한 액수였다. 이미 슈발츠의 정체를 깨닫고 약간 쫄아 있던 그 지니 족장의 의향은 그것으로 결정적인 것이 되었다.
그리고 더 놀란 것은 신드라였다. 슈발츠는 제법 거액을 만지는 장사를 하는 그녀조차도 놀라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의 액수를 지불하려는 것이다. 아직도 알루데시아 아래 깔려 있는 그녀의 눈앞에서 합의가 오갔고, 순식간에 약식의 계약이 체결되었다.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그녀의 눈앞에서 메메트 2세는 자리를 뜨고 있었다.
" 돈이란 좋군요. 세상에, 지니 족장이 저렇게 순순히 응할줄은... "/두르나
" 뭐 나랑 척져봐야 좋을 일이 없다고 느낀거겠지. 목숨도 걸려있는 이야기고... "/슈발츠
사실 여차직하면 무력을 쓸 생각이었던 슈발츠의 판단은 정확한 것이었다. 잠깐 주종간에 돈을 너무 쓰신거 아니냐느니, 천만짜리 보석을 선물해 주겠으니 그만 질투하라느니 하는 사소하고 사사로운 태클과 반격이 오간 후에, 다시 그들의 시선이 신드라에게로 향했다.
" 그래, 이제 천만짜리 [노예]를 어떻게 할 것인가가 남았군. "
사실 노예제는 유니온에서는 불허된다. 하지만 유니온을 운영하는 머케인들의 융통성은 상당해서, 머케인 밖에서 성립된 주종관계에 대해서까지 태클을 걸지는 않는다. 슈발츠는 엄연히 유니온 밖에서 성립된 주종관계를 돈으로 땜방질 했으니까 머케인들의 태클을 받을 여지는 적었다.
" 어쨌든 데리고 가서 조교를 하셔야... "
[조교]라는 단어 자체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두르나의 말에 신드라는 자신의 처지를 상기했다. 슈발츠가 단순히 호의로 그녀를 [사 준] 것만은 아닐 것이다. 다시 자유를 잃는 저치가 된다고 생각하자 아득한 절망감이 밀려왔다.
" 일단 데리고 가지. "/슈발츠
" 네 주인님. "/두르나
" 아아... "/신드라
그렇게 결정된 시점에서, 두르나가 빙긋이 웃으며 허리춤에 매어두고 있던 하얀 밧줄을 꺼내 들었다. 그녀의 눈빛은 마치 먹이를 노리는 매의 그것과 같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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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여담이지만 신드라는 [잰]이라는 지니류의 하급 종족입니다만, 지니나 이프리트와는 전혀 안닯았습니다. 평균적인 신장이 인간보다 살짝 클 뿐, 인간과 몹시 비슷한 생김새에요. 사실 지니류 종족들의 물욕과 허영심도 드래곤 못지 않은데, 그리 표가 나지 않는 이유는 이 종족 자체가 D&D의 캠페인에서의 출연횟수가 적고, 대부분의 경우 소녀시대(소원을 말해봐!)나, 혹은 집사(뭐든지 가능합니다)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는 자신의 부를 늘리기에 혈안인 나머지 땅의 원소계에 쳐들어가 대규모 보석광산을 개발한다던지, 하급정령부터 고위정령까지를 망라하는 정령을 상품 삼아 노예무역에 종사하는 등 흠좀무한 지니들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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