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환타지] 세자르씨의 유쾌한 전원생활 18
“우리 용병단 대장께서도 별다른 답이 없는 건가?”
“그, 그게 방금 전에 문뜩 떠오른 게 하나 있기는 한데.......”
“좋아. 그럼 해봐. 내가 전권을 주지.”
간단한 명령이었다. 그러나 백작의 어이없을 정도로 빠르고 간단한 결정에 세자르는 과연 ‘이래도 되나’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럼에도 세자르는 망설임을 떨쳐내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쨌든 지금은 살아남는 게 우선이었다.
세자르는 먼저 아이린에게 다가가 뭔가를 상의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결론이 난 듯이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인 뒤에 세자르는 노만에게 지시를 내렸다.
“자네는 대마법관님과 함께 여기 남아서 저 녀석의 시선을 끌어주게나. 저 녀석이 딴 데 신경 쓰지만 않게 해주면 되네.”
“나보고 미끼가 되란 얘긴가? 그럼 자넨? 병사들을 다시 규합하려고?”
“아니, 지금 상황에선 차라리 이렇게 혼란스러운 게 더 낫네. 그사이 저 녀석 뒤통수 칠 준비를 해야지. 그리고 내가 신호를 주면 말이야.......”
얼마 뒤 아이린과 노만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아이린은 이번엔 대규모 파괴마법대신 파이어 볼이나 아이스 미사일 같은 작은 공격마법들을 연달아 날려 됐다. 하지만 아이린의 마법은 그녀의 예상대로 괴물에 닿기도 전에 그 앞에 나타난 마법진에 반사되어 다른 방향으로 튕겨 나갔다. 노만의 화살 공격 또한 효과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화살은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괴물의 미끄러운 피부를 뚫지 못했다.
하지만 아이린은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괴물에게 마법을 날려댔다. 거기에 아마도 괴물의 처리대상 1호로 보이는 노만이 그 뒤에서 깐족거리듯이 숨었다 나왔다하며 화살을 날리며 괴물의 신경을 긁고 있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괴물의 시선을 붙잡고 있을 동안, 세자르는 눈에 안 띠도록 조심스레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리고는 우왕좌왕하는 병사들 속에서 용병단 조장들을 찾기 시작했다.
“매니! 어디 있어? 근처에 숨어있는 거 다 아니까 얼른 나와!”
“아, 알았다. 지금 나간다.”
매니는 세자르의 예상대로 세 마녀가 서있는 근처 으쓱한 암벽사이 그림자 속에서 마지못해 걸어 나왔다. 암살자 출신인 매니는 분명 ‘드래곤의 축복’을 가진 클로에 주변이 가장 안전할 것으로 판단하고 그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은닉해 있을 것이라는 게 세자르의 생각이었다.
우선 매니를 찾은 세자르는 그와 함께 한쪽에서 자신의 부하들과 창칼을 휘두르며 촉수 하나를 상대하고 있는 안톤에게 다가갔다.
“안톤! 매니와 함께 촉수를 고정시킬 함정을 하나 준비해봐!”
“뭔가 묘안이라도 떠오른 거야?”
“그렇다고 봐야지. 어때, 매니? 할 수 있겠나?”
“저 괴물이 아니라 촉수 하나라면 어떻게든 될 것 같다. 안톤이 시간을 끌어준다면 말이다.”
“좋아. 나머지는 두 사람에게 맡긴다. 준비가 끝내면 내가 신호 보낼 때까지 대기하고.”
매니는 지시가 끝나자마자 옆에 있는 벽을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안톤은 괴물이 그런 매니에게 관심을 갖지 않게 하기 위해 부하들과 함께 좀 전보다 큰 소리를 내며 괴물의 시선을 끌기 시작했다. 그사이 매니가 암벽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면서 뭔가 함정을 설치하는 것을 보던 세자르는 곧 다른 사람을 찾아 그 자리를 떠났다.
루이는 그리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병사들이 괴물을 피해 여기저기 도망 다니는 아수라장에서도 한 발짝 벗어난 곳에서 헤벌레한 표정으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열심히 기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자르는 다짜고짜 그런 루이의 뒷덜미를 잡고는 한쪽으로 질질 끌고 갔다.
“아악! 지금, 뭐하는 거예요? 이것 좀 놓고 얘기해요!”
“네가 말로 해서 쉽게 따라올 놈이냐? 자, 같이 저 해파리나 잡으러 가자고.”
“장난하세요? 저 해파리는 마법도 안 통하잖아요! 아까 대마법관님 마법이 멋지게 튕겨나간 거 안 보셨어요?”
“그러니까 우리한테 명령이 떨어진 거 아냐! 자, 잔말 말고 따라 와!”
세자르는 루이와 함께 병사들을 헤쳐가면서 안톤들과 반대쪽으로 달려갔다. 이윽고 충분한 위치까지 왔다고 생각한 세자르는 루이에게 자신의 계획을 설명했다. 루이는 그 내용에 어이없어하며 인상을 찡그렸지만, 세자르의 윽박에 어쩔 수 없단 표정으로 작업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윽고 준비가 다 끝난 것을 확인한 세자르는 루이에게 지시를 내렸다. 여전히 반신반의한 표정의 루이는 할 수 없다는 듯이 문지기 괴물을 향해 준비해두었던 공격마법을 날렸다.
어류답게 넓은 시야각을 자랑하는 듯이 앞쪽에서 아이린과 노만의 끊임없는 마법과 화살공격을 받으면서도 동시에 여유롭게 다른 사방의 병사들을 사냥하던 괴물은 그러나 옆쪽에서 의외의 화염마법공격이 날아오자, 간헐적인 반항 정도라고 생각을 했는지 마법을 날린 루이와 세자르 쪽을 향해서도 촉수를 하나 날렸다.
하지만 그것을 기다렸다는 듯이 촉수가 날아오는 타이밍에 맞춰 두 사람이 재빨리 옆쪽으로 몸을 피하자, 촉수는 그대로 그들이 서있던 바닥을 강하게 후려쳤다. 그 순간, 거기에 설치했던 루이의 함정마법이 발동했다. 순식간에 땅으로부터 강한 화염이 일어나 촉수를 덮쳤다.
“루이, 지금이야!”
루이는 세자르의 명령이 떨어지기도 전에 이미 다음 마법을 날리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화염공격으로 촉수에 심한 화상을 입은 문지기 괴물은 괴성을 지르면서 속히 촉수를 호수 속으로 빼내려고 했다. 그러나 그 전에 루이가 날린 여러 개의 얼음화살이 촉수의 상처부위에 떨어졌다. 얼음화살들은 미끄러운 표면이 열기에 녹아 사라진 촉수의 상처부위를 관통해 말뚝을 박듯이 땅에 촉수를 고정시켰다.
‘역시 예상대로군. 방어마법의 효과는 오직 호수 안에서만 유지될 수 있었어.’
세자르는 방어마법은 대개 그 효력을 유지하기 위해선 범위가 어느 정도 한정될 수밖에 없다는 아이린의 말을 상기했다. 그리곤 거기에 기초해 세운 가설이 기분 좋게 들어맞았다.
한편, 괴물은 그 고통에 더 큰 소리를 지르면서도 다른 촉수를 휘두르며 두 사람을 공격하는 동시에 땅에 박힌 촉수를 빼내려고 몸부림을 쳤다. 하지만 그것은 두 사람도 노리고 있던 것이었다.
괴물의 큰 몸부림 덕에 촉수가 고정된 곳까지 호수물이 넘쳐흐르자, 루이는 또 다른 마법을 발동시켰다. 잠시 후, 촉수 주변을 흠뻑 적신 호수물이 얼어붙기 시작하면서 촉수를 더욱 단단히 그 자리에 고정시켰다. 괴물은 급히 고정된 촉수를 빼내기 위해 다른 촉수들로 아예 그 주변 바닥들을 모두 깨부수려고 했지만, 그 때는 이미 루이가 그 주위에 방어마법을 건 뒤였다.
이젠 자신의 촉수들이 아까와 반대로 공격하는 족족 튕겨나가기 시작하자 괴물은 화가 단단히 났는지 다른 방향의 공격을 모두 멈추더니, 세자르와 루이를 향해 공격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수많은 촉수들이 그들을 향해 날아왔다. 그 모습에 루이가 외쳤다.
“젠장, 내가 이래서 싫다는 거였는데!”
“루이! 잔말 말고, 살고 싶으면 어서 뛰어!”
세자르는 거의 울상이 된 루이를 이끌고 그 자리를 벗어나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 그들을 향해 촉수들은 마치 춤을 추듯이 흔들거리며 공격해 들어왔다. 벽에 금이 가고, 바닥이 부셔졌다. 병사들은 그 혼란에 나 살려라 도망을 다니기 바빴지만, 얼마 뒤 공격이 세자르와 루이에게만 집중이 된다는 것을 알자 다들 한 발치 뒤로 물러서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멍하니 구경을 하기 시작했다.
반면, 두 사람은 문지기 괴물의 파상공세를 피해 죽자 사자 달려 나갔다. 그렇게 호수 주변을 반 바퀴 삥 돌아 안톤과 매니가 있는 곳에 거의 도착한 세자르는 멀리서 안톤이 수신호로 함정이 있는 곳을 가리키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하지만 세자르는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아니 줄일 수가 없었다. 세자르와 루이의 바로 뒤로는 계속해서 문지기 괴물의 촉수들이 그들을 노리고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렇게 전속력으로 달려가던 세자르는 함정이 있는 곳에 거의 다다르자, 갑자기 루이의 머리를 누르면서 아래로 몸을 푹 숙였다. 그러자 납죽 엎드린 두 사람을 지나친 촉수들이 안톤이 가리킨 함정이 있는 범위 안에 들어가고, 곧이어 그 곳에서 ‘우두득’하며 뭔가 끊어지고 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매니가 설치해 둔 강철선들이 촉수들에 휩쓸려 뽑히거나 끊어져나가는 소리였다. 그래도 매니가 설치를 꽤나 꼼꼼하게 해뒀는지 그렇게 많은 강선들이 끊어졌는데도 아직도 남아있는 강선들에 막혀 촉수들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질 못했다. 더욱이 뽑혀진 강선들에 휘감긴 촉수들은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더욱 더 강선들에 휘감겨 오히려 더 단단히 묶이고 있었다.
괴물의 촉수들이 예상대로 함정 안에서 한 번 움직임을 멈추자, 그 건너편에 있던 안톤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 발밑에 세워둔 작은 막대기를 발로 찼다. 그러자 함정 위에 있던 암벽들이 무너지면서 그 아래 정지해 있던 촉수들을 고스라니 아래쪽으로 깔아 뭉개버렸다.
연달아 두 번에 걸친 인간들의 예상 밖의 공격에 문지기 괴물은 꽤 당황한 듯이 보였다. 본체는 여전히 호수 안에서 방어마법의 보호를 받고 있음에도 상처 입은 동물이 본능적으로 달아나려는 것처럼 서둘러 몸을 움직여 호수 속으로 되돌아가려고 했다. 하지만 호수 양쪽으로 고정된 자신의 촉수들이 그 움직임을 방해하고 있었다.
괴성을 지르며 온 몸을 흔들어 보지만, 이젠 마음대로 움직이기도, 아님 몸을 뺄 수도 없게 된 해파리 괴물은 곧 분노의 눈빛으로 상황을 이렇게 만든 주모자, 세자르를 찾아 남은 모든 촉수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온 분노를 실은 해파리 괴물의 채찍질은 무시무시했다. 다시 한 번, 유적 입구에서의 다리 파괴의 현장을 재현하는 것처럼 좀 전까지 금이 가고 부셔지던 암벽과 돌바닥들이 이번엔 아예 가루가 되도록 박살이 나고 있었다.
세자르와 루이는 주변의 돌들이 움푹움푹 파이면서 부셔져나가는 그 파상공세 속에서 죽어라하고 마녀들이 있는 곳으로 뛰어가고 있었다. 아까 전 세자르의 말처럼 지금 이 지하호수 안에서 가장 안전한 곳은 ‘드래곤의 축복’을 가지고 있는 클로에 주변뿐이었다. 그러나 세자르에겐 또 다른 계획이 있었다. 그는 손을 흔들면서 외쳤다.
“노만, 지금이야!”
세자르의 신호에 노만은 괴물을 겨냥해 화살을 날렸다. 화살은 정확히 괴물의 한쪽 눈을 노리면서 날아갔다. 문지기 괴물은 반사적으로 그 화살을 촉수로 쳐냈지만, 그건 역효과였다.
노만이 날린 것은 연막화살이었다. 촉수에 맞은 연막통이 터지자, 순식간에 괴물의 눈 주변에 흰 연기가 퍼지면서 괴물의 시야를 가로막았다. 순간적으로 눈이 보이지 않자, 괴물은 당황했는지 쩌렁쩌렁하게 괴성을 질러대며 남은 촉수들을 사방으로 휘둘러댔다. 비록 노리고서 휘두르는 건 아니었지만, 그 전 방위적 공격에 병사들은 이리저리 피해 다니기 바빴다. 하지만 세자르는 그런 건 상관없다는 듯이 다음 지시를 내렸다.
“대마법관님, 지금입니다!”
“좋아, 알았어! 라이트닝 스피어 (Lighting Spea)!”
아이린은 문지기 괴물의 머리를 조준해서 한줄기 번개의 창을 날렸다. 긴 섬광과 함께 괴물을 향해 날아간 번개는 역시나 괴물의 방어진에 막혀 위쪽으로 튕겨버렸다. 연막이 걷혀가는 와중에 그 속을 뚫고 비수처럼 날아온 번개에 식겁했던 괴물은 호수의 방어마법이 그걸 효과적으로 막아내자 안도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또다시 자신을 계속해서 괴롭히는 세자르와 노만을 향해 공격을 재개할 때였다.
톡!
갑자기 괴물의 머리 위로 작은 돌멩이 하나가 떨어졌다. 그 모습에 괴물을 비롯한 지하공동 안 모두가 위를 쳐다볼 때, 또 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우두둑! 쿠구구구구궁!
호수 안을 가득 채우는 파열음과 동시에 괴물의 머리 위로 계속해서 작은 암석 파편들이 괴물의 머리 위로 떨어다. 그리고 보는 이들 모두가 뭔가 반응을 하기도 전에 동굴 천장에 매달려있던 거대한 종유석들 중에서 가장 크고 굵은 종유석이 괴물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쿠오오오오오옷!!!!
세자르 덕에 호수 한복판에서 오도가도 못 하는 신세가 된 문지기 괴물의 머리 위로 곧장 떨어진 종유석은 그대로 어묵꼬치마냥 괴물의 몸을 향해 내려 꽃아 버렸다. 거기에 연이어 남아있던 종유석의 커다란 밑둥 파편들까지 그 위로 떨어지면서 괴물의 몸통을 깔아뭉개자, 그 충격에 괴물은 즉사했는지 외마디 커다란 비명만을 남기면서 더 이상 움직이질 않았다. 그리고 그대로 체액과 거품을 품어내며 천천히 호수 하래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방금 눈앞에서 벌어진 일에 여기저기 산개해 있던 병사들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어찌됐든 자신들을 공격하던 괴물이 단방에 박살이 난 것을 확인하자 부대 전체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여기저기서 살아남은 기쁨으로 소란스러운 와중에, 다행이란 듯이 한숨을 내쉬는 아이린을 보던 세자르도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만큼 이번 작전은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도박에 가까웠다. 아비규환 속에서 순간 떠오른 아이디어가 성공할는지 확신할 수가 없었던 상황이었고, 비록 아이린이 가능하다고 귀띔을 해줬지만, 괴물의 촉수들을 고정해 정말 필요할 만큼 괴물의 움직임을 잡아둘 수가 있을는지, 또 그 타이밍에 정확하게 아이린이 천장의 종유석을 떨어뜨릴 수 있는지도 의심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사실 세자르가 문지기 괴물의 촉수들을 묶는다는 계획을 진행하는 동안, 아이린이 끊임없이 연달아 불과 얼음마법들을 날린 것은 괴물의 주위를 계속 아래로 잡아두고, 동시에 괴물의 방어마법을 역이용하기 위해서였다. 아이린은 마법진에 자신의 마법이 튕겨나가는 각도를 계산해서 계속해서 그 종유석의 밑동을 향해 마법을 날리고 있었다. 오랜 세월동안 그렇게 크고 무거운 종유석을 천정에서 붙잡고 있던 굵고 단단한 밑동은, 그러나 짧은 시간동안 번갈아 날아온 강력한 냉온 공격에는 더 이상 버티질 못하고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균열을 향해 전격마법이 결정타를 가하자, 밑동이 더 이상 균열을 버티지 못하고 종유석 전체가 아래로 추락해버린 것이었다.
말은 쉽지만, 실제로 그렇게 정확한 타이밍에 카운트 공격을 날린 아이린의 실전능력에 세자르는 내심 감탄해 하면서도 동시에 그런 그녀의 탐욕스런 지난밤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어떻게 하면 그녀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까가 진지하게 고민되기 시작했다.
세자르가 그런 망상을 하는 사이, 물속으로 잠겨가던 괴물의 몸뚱이는 점점 투명해지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물에 녹아버린 듯이 아예 사라져 버렸다. 그 모습에 일행들은 이번엔 또 무슨 일이 벌어질까 경계하면서 그저 호수 쪽을 바라다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호수에서 올라오는 빛의 색깔이 에메랄드빛에서 루비 색으로 바뀌더니 곧이어 사파이어 색으로 바뀌었다. 그리고는 갑자기 호수 중앙에서 위쪽을 향해 두 개의 커다란 흰빛줄기가 올라왔다. 계속해서 마치 기둥처럼 위로 솟은 그 빛줄기 앞으로 마치 일행들을 환영한다는 듯이 두 줄을 지어 일행이 있는 곳까지 또 다른 빛줄기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 다음에 벌어진 일엔 보는 이들 모두가 감탄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갑자기 빛기둥의 양쪽을 경계로 하듯이 호수물이 양쪽으로 쫙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사이로 드러난 노랗게 포장된 경사로 끝에는 이전에 봐왔던 출구문과 비슷한 높다란 문 하나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 아름답고 환상적인 광경에도 일행들은 함부로 움직이질 않았다. 지금까지 경험한 함정들 때문에 선발대가 안전을 확인한 뒤, 자기 혼자 사지로 보낸다며 투덜거리는 루이가 문을 열 때까지 제자리에서 대기하던 일행은 루이가 문을 여는 데 성공하자 다시금 매니를 보내 문 건너편을 정찰해 보았다. 하지만 잠시 후 돌아온 매니가 전해온 소식은 세자르와 다른 이들 모두를 허탈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저쪽에 또 다른 요정이 기다리고 있다. 기다린 지 오래됐다고 대표자는 언제 오냐고 물어보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