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德厚の野望 69

69



불로불사.

 

언젠가 흙을 돌아갈 운명을 진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꿈꾸었을 법한 성어. 한여름의 꿈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실행에 옮긴이들도 없잖아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모두 삽질로 끝났다. 권세와 재력을 한 몸에 지닌 고귀하신 분들의 걷잡을 수 없는 욕망과 현혹과 구라에 도가 튼 방술들의 궁합이 대게 그러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가능에 도전하는 행위 그 자체는 이다지도 아름다운가.”

 

도취한 목소리가 지하 공동을 울린다. 반백이 섞인 수염 그리고 망건과 심의를 쓰고 있어 학사 같은 용모였지만 산발한 머리와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어붙이고 드러난 피부에는 혈흔이 낭자하여 백정 같아 보였다.

그 위화감이 한 몸에 지닌 남자는 공동을 둘러보았다. 천장에 임시로 건 철봉에는 수많은 갈고리들이 고기 같은 것을 달고 있는데, 한 때 동남동녀였던 사체들이었다. 사체들은 목덜미에 꿰인 채 눈동자 없이 퀭한 시선을 남자에게 보냈지만, 그에게는 섬뜩감보다는 자기 작품에 대한 만족감을 더해줄 뿐이었다.

 

동남동녀에게 원래 달렸던 눈알을 비롯한 내장은 복강을 절개하여 긁어내거나 항문을 통해 뽑아서 공동에 설치 된 연단로에 집어넣었다.

남자가 희대의 살인마라 내장탕이 갑자기 땡겨서는 아니고, 비전의 ‘시혼충화단尸魂沖和丹’을 연성하기 위해서였다. 원래 연단의 역사를 살펴보면 초기에는 금속성 약물을 복용하는 외단법이 주를 이루었으나 수은 중독으로 죽는 부작용이 많아, 후기로 올수록 토납법과 영약 섭취를 보조로 삼은 내단법이 주를 이루었다.

 

전자는 성공하면 대박 예감이고, 후자는 장생을 이루기는 했지만 원래 목표를 생각하면 시원찮았다. 그래서 양자의 장점을 취하려는 시도는 꾸준히 이어졌고, 송말원초 무렵에 사교와 손을 잡은 연단가의 광기 어린 집념이 ‘시혼충화단尸魂沖和丹’을 세상에 내놓았다.

인과응보라고 할까, 그 연단가는 연단을 섭취한 장본인에게 사교 집단과 함께 끔찍한 최후를 맞이하였다.

 

이 연단법의 잔혹함은 우선 선천진기가 왕성한 동남동녀에게 태식법을 세뇌로 주입시켜 심신을 청정한 상태로 유지하게 만들고, 몸에 내단 자리 잡는 즉시 죽여서, 황금, 수은, 납, 유황, 그리고 여러 비약들을 은밀한 비율로 섞은 후, 내단이 자리 잡은 부위를 장기 째 들어내 연단로에 처박는 방법으로 드러난다.

이때 희생자는 마혈이 짚어졌을 뿐, 의식은 생생하게 살아있어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공포와 고통 그리고 원념을 품고 죽는다. 피눈물로 흰자위가 사라져가는 얼굴은 호러 그 자체였지만 남자에게 그깟 원념은 연단이 완성될 때까지 신선도를 유지해줄 촉진제에 불과했다.

이렇게 희생된 아이들이 수십 명이었고, 그 숫자는 우문세가 영역에서 실종된 아이들의 숫자와 일치했다. 남자는 투명한 재질로 된 뚜껑을 통해 연단 안에 졸아드는 내용물을 보고는 허공을 향해 괴소를 흘렸다.

 

“흐흐흐! 나 마의선魔醫仙이 본교로 화려한 귀환을 할 날이 머지않았군. 천하제일은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니야. 처음부터 만들어지는 것이지!”

 

입 꼬리를 찢어져라 끌어올리며 웃는 마의선은 지난날의 인고의 세월을 떠올리고는 회한에 잠겼다.

 

“나잇살을 처먹으면 이게 문제라니까. 방심하다가 뒈져도 할 말 없지.”

클클 웃음을 흘리던 마의선은 연단로 밑에 놓여있는 수정관을 사랑스러운 듯 쓰다듬었다. 수정관 주변에는 연단로에서 이은 파이프들이 빽빽하게 꽂혀 있었다. 일종의 증류법을 통해 연단로에 나온 훈기를 12시진 내내 쐬기 위함이었다. 수정관에는 15세 정도의 소녀가 흰 옷을 걸친 채 잠든 듯 누워있었다. 광인으로 보였던 마의선의 표정이 이때는 지극히 부드러웠다.

 

“곧 있으면 일어설 수 있을 게다. 네가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이름을 지어주마. 너를 통해 내가 천하포무를 이루고, 네 존재를 통해 나는 만고의 업적을 남기리라. 그래서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리라.”

중얼거리던 마의선은 갑자기 울린 경종에 고개를 돌렸다.

샤샥, 스치는 소리와 함께 혈의인 둘이 나란히 들어섰다.

“주군! 침입자가 있습니다!”

 

“정체는?”

“스무 명 가량. 고수 아닌 자가 없습니다.”

 

긴장한 수하의 보고와 달리 마의선은 태연했다.

“그렇게나 제물을 모으려고 들쑤셨는데 우문 세가에서 수색을 안 할 리가 없지. 그래도 생각보다 시간을 잘 끈 편이야.”

마의선은 왼편에 있는 수하를 손짓으로 불러 옥함 하나를 꺼내주었다.

“약속대로 제조한 단약이다. 정강왕의 측실도 미모를 유지할 수 있을 테니 충분히 만족할 터.”

 

마의선의 표정에 비릿한 미소가 떠오르는 것으로 미루어 뒤탈이 꼭 있을 것 같아보였다. 사적으로 의문을 드러냈다가는 죽임을 당하는 것을 아는 터라 수하는 내색하지 않고 옥함을 품에 잘 갈무리했다.

마의선은 오른편 수하에게도 지시를 내렸다.

“대법이 곧 완성된다. 어차피 볼 일이 끝나면 이곳을 파기하고 떠날 터이니 이번 방문객들은 한 놈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죽여 버려라!”

 

“복명!”

수하 둘이 뒷걸음질을 하며 사라진다. 마의선의 주의는 다시 수정관으로 향했다.

 

“저들도 운이 없구나. 나중에 왔으면 너의 먹잇감으로 주었을 텐데. 미래의 천하인에게 최초로 죽는 영예를 말이다.”

다정한 목소리로 끔찍한 소리를 내뱉은 마의는 뺨을 쓰다듬듯 수정구를 톡톡 치고는 몽을 돌렸다. 공동은 왕부의 무덤 중 하나였고, 그가 있는 곳은 입구에서 가장 안쪽인 후전이었다. 그가 중전으로 나오자 좌우로 배전 입구가 보이고, 정면에는 전전으로 통하는 문이 보였다. 그곳에서 함성과 창칼이 부딪치는 소리가 울렸다.

 

“호오? 제법 고수가 있군.”

마의선은 청각에 집중하다가 미간을 좁혔다. 자신이 데리고 있는 수하들은 모두 일류 고수들이다. 그런데 비명이 울리는 빈도는 수하들 쪽이 더 높았다.

 

“우문 세가의 가주가 직접오기라도 했나?”

마의선은 생각나는 대로 뱉었지만 자신의 말에 확신을 얻었다. 한창 혈기가 끓을 나이가 아닌가. 절정고수에 오른 무공과 영호세가의 콧대를 납작하게 만들어준 용맹을 생각하면 그럴 법했다.

잠시 후.

 

전전 문이 와락 열리면서 상체에 문신을 새긴 청년이 성큼 들어섰다. 아수라장에서 바로 건너온 것을 증명하듯 혈향과 땀이 훅 하고 풍긴다. 그 뒤로 싸움 소리가 끊이지 않는 것으로 미루어 먼저 길을 트고 온 모양이었다.

마의선은 찬찬히 뜯어보며 머리 속에 인상과 비교해보고는 웃었다.

“이런, 우문 세가주가 직접 나서다니 참 의외롭구려.”

 

“나를 아나?”

“어찌 천하를 진동하는 그 용명을 모르겠소이까?”

 

좋은 의미로 들리지 않았기에 천강의 얼굴이 굳었다.

“아이들을 납치한 것이 너희 짓이더냐?”

 

“글쎄, 내가 대답할 의무는 없다고 보오.”

“여기는 우문 세가의 땅이다. 그리고 나는 가주이고.”

 

우문 천강이 으르렁거린다. 마의선은 맹수의 살기를 앞두고도 여유롭게 팔짱을 꼈다.

“필요한 것이 있어서 이곳에 머문 것일 뿐, 오지의 세가를 상대로 암약할 마음은 없소. 무엇보다 그대는 내 작품 중에 하나니까 굳이 해를 가하고 싶지 않거든.”

 

“무슨 소리냐?”

“그대는 날 잘 모르겠지만 나는 그대를 잘 알지. 정확히는 전대 가주님과 안면을 텄다고 해야 하나.”

 

“선친께 그런 이야기를 들은 바가 없다.”

“하지만 증거는 남아있지. 애물단지로 남은 신녀단 말일세. 그거 기획해준 게 나거든.”

 

우문 천강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그가 뽑은 검에 검기가 치솟았다. 검기가 다발적으로 일어나 하나의 형체를 이루는 것을 보고도 마의선은 태연하게 두 손을 내보였다.

“어허, 그렇게 성급하다가는 제 명이 못살지. 검강을 펼칠 때마다 안 그래도 꽤 부담을 느낄 법한데.”

천강은 남모르는 사실을 지적당하자 뜨끔했다. 솔직하게 되물으면 약점이 될 수 있으므로 태연을 가장한 채 묵묵히 서 있었다. 저 자 , 마의선의 기세는 수많은 죽음을 잉태한 듯 불길한 사기로 감싸이고 있는 것 같았다. 천강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든 안중에 두지 않고, 마의선은 빙글거리면서 주저리를 한다.

 

“오, 그렇지! 가주께서 직접 오신 것은 한 가지 전설을 의식해서 이겠군. 확실히 그 대마두의 유산을 찾는 거라면 그 고질 증세도 가능성 있는 일이야. 나도 그 때문에 이곳을 터전으로 삼은 것이니까.”

천강의 검에 맺힌 검강이 소멸되었다.

 

“잘 생각했어. 우리 사이에 협상의 여지는 있을 걸세. 내 비원이 이루어지면 자네의 고질 증세를 고쳐주지. 수십 년 전의 일이라 그땐 기술과 요령이 부족했거든. 내가 손수 고쳐주면 자넨 몇 년 안가 영호 세가의 독각룡과 능히 대적해볼만할 게야.”

“그래서 네가 얻는 것은 무엇이냐?”

 

“그야 물론 천하지. 아, 황제처럼 군림하겠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고, 꼭두각시를 내세워서 배후에서 조종하는 게 내 취향이거든.”

“너 같은 놈에게 양보할까보냐!”

 

천강은 더는 들을 것 없다는 듯 중전으로 내달렸다. 마의선이 피하려는 듯 몸을 돌린다. 그리고 도약해서 마의선을 찌르려는 찰나.

쿵!

 

바닥이 움찔하더니 좌우로 갈라졌다. 막 뛰기 위해 발을 딛던 천강은 그대로 빠져들었다. 어둠에 삼켜지기 전에 그는 마의선의 비웃음을 볼 수 있었다. 열렸던 바닥이 다시 닫히며 천강이 들어온 흔적 자체를 지워냈다.

마의선은 함정 발동을 위해 누른 지점에서 발을 떼었다.

 

“잘 찾아보라고. 밑은 천연동굴이니 대마두의 유산이 숨어 있을지도 모르지. 찾지 못하면 먼저 간 도굴꾼들 처럼 백골 하나 더 추가하던가.”

그렇게 중얼거리고 한참 후, 밖의 소란이 완전히 가라앉으면서 나갔던 혈의인 둘이 들어왔다. 중상을 입었는지 둘다 절뚝거리고 피를 철철 흘리고 있었다.

 

“놈들을 다 죽였습니다.”

“얼마나 살아남았나?”

 

“서, 서른 명 정도입니다.”

“절반이나 죽었군. 화골산을 줄터이니 시체를 치우고 임전 태세를 갖추도록. 가주가 실종되었으니 드잡이질하러 올 무리들이 있을 게다. 대법에 차질이 없도록하라.”
"하, 하지만...."
 
수하는 드물게 망설였다. 입은 상처로 인한 고통이 아니라 앞날에 대한 저어함 때문이었다. 가주가 실종 된 것을 알면 우문세가의 전력이 우르르 몰려올 것이다. 안그래도 자기네 전력이 절반이나 남은 상황에서, 배가 되서 찾아올 적의 전력을 어떻게 감당한단 말인가?
 
"다 방법이 있느니라. 왕년에 책사 노릇도 했는데 빠져나갈 구멍을 마련하지 못했을까?"
 
마의선은 야릇한 웃음을 지었다. 그는 급히 고개를 숙이는 수하의 상처에 아랑곳하지 않고 화골산을 던져준 다음 다시 후전으로 들어갔다. 수하들은 이제까지 싸웠던 전투의 흔적을 지웠다.


* * *


“보낼 수 없습니다.”

 

천강 일행이 요산으로 수색에 나선지 일주일이 흘렀다. 우문 세가의 중역들이 어떻게 해야 하나 연일 토의를 거듭하고 있을 때 자미가 장우와 덕후 일행을 이끌고 와 오라버니를 찾아나서겠다고 선고하자 중역 측에는 한 목소리로 반대했다.

“신녀님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저희는 가주님께 크게 혼납니다.”

 

장로가 아이 어르는 투로 말했다. 우문 자미는 그 태도 불쾌함을 느꼈으나 수화로 바쁘게 의사를 표현했다. 장우가 헛기침을 하고 통역했다.

“싸우러가는 것도 아니고 안돌아오니 흔적을 찾아보겠다는데 너무 과잉반응이 아니냐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소리인가. 신녀는 그 어떤 상황에도 그 자체로 보호받아야할 존체다!”

장우는 난처했다. 장로의 말에 신경을 써서가 아니라 우문 자미가 차가운 표정으로 건넨 수화 때문이었다. 한참 머뭇하다가 자미가 재촉하자 할 수 없이 통역했다.

 

“신녀 대접을 하기는 했느냐고 묻습니다.”

그 소리에 좌중의 분위기가 싸해졌다. 우문 세가의 신녀는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 아니라 선대 가주 륭광의 강압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권위 때문에 존중하기는 하지만 내심으로는 불복하는 어정쩡한 상태였고 그것은 자미에 대한 취급으로 충분히 드러나 있었다.

 

“그리고 신녀이기 때문에 더 가봐야 한다고 합니다. 신점神占의 결과를 가주에게 알려주기 위해서라는 군요.”

장로는 끄응하는 신음을 냈다. 그는 오랜 눈치로 신점이라는 말 자체를 신뢰하지 않았다. 그러나 반박을 하면 신녀의 권위를 흠집낼 수 있고, 자신들에게 대신 알려달라고 하면 가주의 권한에 참견하는 결과를 내놓는다.

‘누가 바람을 넣었지?’

 

장로는 자미와 신녀를 떠나 그들이 데려온 일가족을 살폈다. 덕후와 소월하, 그리고 마라였다.

“저들도 데려갈 참인가?”

 

“기관진식을 업으로 하는 일가라고 합니다.”

장우는 약간의 거짓말을 양념삼아서 덕후 일행의 신변을 보장했다.

 

“최대한 사람을 넉넉히 붙여주십시오. 흔적을 발견하면 바로 인편을 보내겠습니다. 그리고 경과에 따라 추가적으로 보내지요. 언제까지 여기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잖습니까?”

말은 그렇게 하면서 장우는 백무와 쟁상에게 눈짓을 하였다.

 

“저와 백무가 신녀님을 호위하겠습니다.”

가주를 제외하고 우문 세가에서 무력이 가장 강한 다섯 중에 셋이 모이게 된 셈이니 장로는 마음이 불편한 와중에도 마음이 슬며시 놓였다.

 

“보이지 않는 독침에 주의하게. 가주께서 기별이 오실 때까지 나는 이 자리에 있을 것이니라. 영호 세가의 동향이 심상치 않으니 서두르길 바라네.”

언제까지 중구난방만 할 수 없다는 것도 한 이유였다. 장로가 결단을 내리자 중역들은 각자 할 일을 정했다. 수색대의 인원은 총 50명으로 장우, 백무, 쟁상이 세 몫으로 나누어  통솔을 했다.

 

덕후 일행은 우문 자미의 보좌로 여정에 참가했다. 기관진식은 소월하가 총기는 덕후와 마라가 맡기로 한 것이다. 

남은 이들의 배웅을 받으며 신녀 일행은 요산으로 향했다.

나무와 수풀 그리고 바위로 이루어진 천연 병풍이 시야를 끈질기게 가린다. 끈적끈적하고 미지근한 공기를 맛보면서 일행은 요산의 왕릉으로 향했다. 길잡이는 장우와 쟁상이 번갈아가면서 했는데, 둘은 이동 경로가 확실치 않으면 자미에게 찾아왔다. 그러면 자미는 흔적이 남은 곳으로 가 정신을 집중하는 듯 눈을 얼마간 감았다 뜨면 방향을 지정했다.

 

“저건 신녀의 권능일까요?”

소월하는 신기함을 느낀 듯 자세히 관찰한다. 덕후는 모른다는 듯 고개를 젓고는 마라에게 슬쩍 물었다.

 

“네가 보기에는 어떠니?”

“아빠도 볼 수 있잖아?”

 

“난 평범한 인간이라서 말이야.”

덕후는 시침을 떼었다. 마라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설명했다.

 

“내겐 반투명한 실선 같은 게 자미의 몸에서 수없이 나와서 사방으로 뻗는 걸로 보여. 그게 뭔가를 감지하려는 것 같아. 매번 동일한 색을 잡는데 그걸 따라가더라.”

마라는 머리카락으로 가려진 붉은 눈이 은은한 광채를 머금으면서 주시한다. 덕후는 그런가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아빠, 기껏 설명해줬으니 착한 딸에게 포상을 줘야겠다는 바른 생각은 안 들어?”

 

“이 정도가지고....아, 원한다면 들어줄 수 있을 것 같네.”

 

한 대 쥐어 막아주려던 덕후는 올린 팔을 팔짱으로 돌리면서 빙글 웃었다.

 

“네가 먹어치워야 할 것이 좀 있다.”

 

“그래?”

 

마라가 반색했다.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덕후는 살인을 허용한 것이고, 마라는 생략한 의미를 깨달아 인육에 대한 반가움을 드러낸 것이다. 그렇게 두 가짜 부녀는 공감을 나눌만한 미소를 지었는데 분위기가 흉흉한 지라 소월가 끼어들었다.

“무슨 대화를 쑥덕쑥덕하는 거예요?”

 

“아아, 부용이 정말 좋아하는 걸 사주기로 해서 말이야.”

“으응, 아빠가 맛있는 거를 준대요!”

 

덕후와 마라는 순진무구하게 웃어보였다. 물론, 소월하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수상쩍어 보였다.

“골치 아픈 일은 만들지 말아요.”

 

소월하는 한 발 물러나면서 견제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덕후와 마라는 믿으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는데 영 신뢰가 안 간다.
다음 날 황혼이 질 무렵에 일행은 시야가 트인 장소에 도달했다.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 아닌, 벌채 후 가로수와 석상을 배치하여 인간의 손길이 거쳤음을 시각 정보로 받아들였다.

“저기 지하무덤에 가주님이 계십니까?”

 

장우는 자미에게 입모양을 크게 하여 물었다. 자미는 수긍의 제스처를 보여주고는 바닥에 엎드려 가만히 정신을 집중하였다. 무공과 주술을 접목시킨 천응도해경으로 기감을 최대한 확장시키는 것이다. 엎드려있던 자미의 몸이 간헐적으로 떨린다. 거의 간질 일보 직전이라 장우가 당황했는데, 마라가 냉큼 다가가 붙잡았다. 강신 중에 건드리는 것은 금기라 따라온 우문 세가 일원은 얼어붙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마라가 붙잡자 자미의 몸과 정신이 안정을 찾았다.

 

땀으로 흠뻑 젖은 얼굴을 들어 장우게 자신이 접한 것을 전했다.

“큰 싸움, 죽음, 원념, 기다림, 불길함.”

 

정보라기보다는 암시에 가까운 단어의 나열을 두고 장우가 백무와 쟁상과 함께 고민하고 있는데 소월하가 덕후를 건드려 통역으로 내세웠다.

“매복이 있을지도 모르니 주의하라는군요.”

 

장우의 안색이 급속도로 어두워졌다.

“가주님이 안에 있고 적이 매복을 갖췄다면...으음.”

 

죽거나 사로잡혔을지도 모른다는 최악의 경우를 생각해야할지도 모른다. 일대 일로는 겨룰 상대가 없다고 확신하지만 함정이라면 독수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확실하진 않소. 하지만 고립된 처지라면 우리가 들어가서 변수를 만들어주는 게 좋아요.” 

 

“일주일 동안 오지 않았고, 우리가 여기까지 오는데 사흘이 걸렸소. 그때까지는 좀...”

“그대는 우문 가주를 믿지 않소?”

 

그 말에 장우와 쟁상, 백무의 기세가 돌변했다. 덕후가 당황하여 두 손을 들며 해명했다.

“아니, 도발할 생각은 없소. 그저 그런 초인적 무위를 지닌 이가 며칠 사이에 당할까 생각한지라.”

 

“생판 남에게 우리 가주가 이랬다느니 저랬다느니 평을 직접 듣고 싶지 않소.”

백무가 퉁명스럽게 일침을 놓았다. 덕후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굽실거렸다. 장우와 쟁상은 상의를 한 다음 작전을 짰다.

 

“일대를 보내서 매복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면 밖으로 꾀어 나오게 하도록. 빠져나온 다리에 다음 대가 신녀님을 모시고 들어간다.”

듣고 있던 덕후가 의문을 표했다.

 

“너무 경솔한 것이 아니요? 안에 적이 얼마나 있을지, 그리고 어떤 함정이 있을지 모르잖소?”

“지금 우리는 보물을 찾으러 온 것이 아니라 가주님을 빨리 찾기 위함이오. 알아채고 깊이 숨기기보다는 허를 찌르는 게 이편에 좋지. 그리고 함정이라면 소 부인이 계시지 않소?”

“그렇지만 전격적으로 움직이면 찾기 힘들 텐데.”

“함정의 존재를 발견하는 것은 신녀님이 하실 거요. 강신을 제한시켜 일상생활에 지장 없도록 계속 유지시킬 수 있는 분이시니. 소 부인이 필요한 역할은 그 함정을 해체하는 쪽이오.”

 

장우는 평소 서글한 인상은 사라지고 잘 벼린 칼과 같은 기상을 품은 전사로 변했다. 덕후는 그 기세에 눌린 듯 어깨를 살짝 좁혔다.

“알았소. 우리 가족의 안전만 보장한다면 어떻게든 따르리다.”

 

“최전선에 칼받이로 내세우지는 않겠소.”

자신이 심하게 몰아붙였다고 여겼는지 장우가 씩 웃으며 안심시켰다. 모인 이들은 작전 내용을 검토하고 소월하의 간섭으로 세부적으로 수정한 다음 행동으로 옮겼다.

 

신녀와 덕후 일행은 장우가 인솔하는 무리에 보호를 받으며 입구 옆에 섰고, 백무도 반대편에 자리 잡았다. 제일 선두는 쟁상이었다. 그는 마대 자루를 진 조련사를 부르더니 입구로 뱀을 투입시켰다. 뱀술사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진기를 실어 땅을 두드렸다.

딱. 따악. 따다닥!

 

뱀술사들이 입구로 완전히 들어가자 안에서 의외의 기습을 받은 듯 비명과 욕설이 터져 나왔다. 안에서 고함과 금속성 소리가 한동안 울렸다. 그리고 입구에서 뱀술사들이 쫓겨나왔다. 그 뒤를 잡겠다는 듯 혈의인들 스물이 냉큼 튀어나왔다. 그들은 좌우에 포진하고 있던 장우와 백무의 무리를 보고 흠칫했다.

“우오오오!”

 

장우보다 백무가 장소성을 지르며 입구의 뒤를 끊었다. 쟁상과 함께 혈의인들을 앞뒤로 막아놓은 사이 장우가 얼른 입구로 들어갔다.

“무운을!”

 

“그쪽이야말로!”

짧게 대화를 주고받으며 신녀와 덕후 일행을 포함한 열 명 넘는 무리가 어두컴컴한 지하무덤으로 진입하였다.

 


 


 


 


 



생존신고. 하도 오랜만에 쓰는 것이라 예전에 플롯을 적은 연습장을 보고 겨우 썼습니다. 혹시 앞뒤가 안 맞거나 하면 지적 바랍니다. 70화는 한 5월 달에?(탈자했군요, 한달에 한 번 올리고 싶지만 지금 일이 성수기라 늦으면 5월달에 올린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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